민주주의의 탄생 / 소설, 때때로 맑음. 이재룡 비평에세이
화자의 논문을 지도하는 역사학 교수 베지르치스는 아토스 산에 성모가 방문함으로써 그리스는 의심의 시대에서 확신의 시대, 달리 말하면 철학의 시대에서 신앙의 시대로 넘어갔다고 주장한다. 그의 강의에 따르면 그리스 고대 철학은 세상을 창조한 신이나 사후세계를 상정하지 않았고 따라서 인간의 영생불사, 나아가 부활의 가능성을 부정했다. 사후세계의 꿈을 박탈당한 인간은 오로지 현세에서 최선을 다해 그 보상을 받아야만 했다. "죽은 자를 살리려던 아스클레피오스는 제우스의 분노를 사 벼락을 맞았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죽음은 대단히 슬픈 현실이었고 인간들에게 아주 작은 희망이라도 주기 위해 고대 종교인은 민주주의를 제공한 것이다. 인간이 처한 비극적 운명에 대한 인식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결단으로 이어진 것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영생과 부활, 혹은'윤회에 근거한 종교는 인간에게 내세의 희망을 주는 대신 각박한 현실, 나아가 불평등한 현실을 인내할 여지를 남긴다. 예컨대 목화밭에서 흑인노예를 짐승처럼 부리기 위해 농장주들은 그들에게 성경과 찬송가를 가르쳤고 브라만은 불가촉천민에게 환생의 헛된 꿈을 주입하여 부당한 현실에 대한 불만과 개혁의지를 무산시켰던 셈이다. 베지르치스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기독교로 개종한 비잔틴의 황제가 과연 신을 믿었는지 확신할 수 없다. 그는 정신적 타락이 극에 달하고 무당과 점쟁이가 떼돈을 버는 제국에 새로운 종교를 이식하려 했다. 가난한 자를 위로하고 그들에게 희망을 주고 제국의 신민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것이 바로 기독교라고 그는 믿었을 것이다. 우리는 기독교도들이 겪은 박해에 대해선 많은 것을 알지만 그것은 교회에서 말하는 것만큼 큰 박해가 아니었다. 반면에 그들이 이교도, 특히 유대인에 가한 박해에 대해선 거의 모른다. 그들은 이교도를 불태우고 십자가형에 처하고 자살을 강요했다. 5세기경 알렉산드리아에서 강의했던 철학자이자 수학자 히파이티는 기독교인들에 의해 갈가리 찢겨졌다. 그 만행에 축성을 내린 주교 시릴은 수도승들에게 비신자들에 대한 징벌 원정을 사주했다." 베지르치스 교수에 따르면 비잔틴 제국이 본격적으로 철학과 다신교를 파괴하기 시작한 것은 4세기부터였고 서기 392년 테오도즈 황제의 이교도 학살은 종교가 아니라 문명의 파괴로 이어졌다. 529년 드디어 아테네 학당이 폐쇄됨으로써 그리스 철학은 막을 내렸다. 그리고 1837년에 이르러서야 아테네 대학에 철학 강좌가 생겼다. "우리는 13세기 동안의 지적 무기력, 13세기 동안의 침묵을 거쳤습니다. 이 시기 동안 그리스의 책에서 자유란 단어가 사라졌었지요. 우리는 18세기에 이르러서야 그 단어를 다시 찾았습니다." 의심과 회의를 질식시킨 기독교에 순종하는 은둔 수도승이 지켜야 할 첫 번째 계율은 생각하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이다. 사유는 신앙의 적이기 때문이다. 생각을 끊는 것은 신에게 귀의하는 첫 번째 길이다. 그러나 과연 수도승은 기도를 통해 회의와 유혹에서 벗어났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