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철학의 관계에 대한 역사 9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우리의 인식이 세계를 만든다'
철학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일어났다!
이제까지 소개한 것처럼 영국 철학은 '사람은 경험에 의해 지식을 얻는다.'고 생각했다(경험론). 한편 데카르트에서 시작된 대륙의 철학은 '사람은 태어나면서 신에 의해 이성과 지식을 부여받았다.'고 생각했다(대륙 합리론). 18세기 무렵까지 대립하는 이들 두 가지 철학은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계속 발전해 나갔다.
이제 경험론과 대륙 합리론을 융합시킨 생각을 만들어 내고 과학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고도 간주할 수 있는 철학자를 소개할 차례이다. 산업 혁명이 시작되고, 근세라는 시대가 종말을 고하는 18세기 중순 무렵에 활약한 독일의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1724~1804)이다.
세계가 먼저인가 인식이 먼저인가?
발상의 역전이 이루어진 철학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는 말이 있다. 코페르니쿠스가 제창한 지동설이 천동설을 뒤집은 것처럼 사물을 보는 방식이 180° 바뀌는 일을 나타낸다. 실은 현대에도 사용되는 이 말을 만들어 낸 사람이 칸트였다.
칸트가 등장하기 이전의 철학은 '질서 있는 세계가 이미 존재하며, 우리는 그것을 인식한다'는 전제에 바탕을 두었다. 그러나 칸트는 '우리의 인식이 먼저 있으며, 인식이 질서 있는 세계를 만든다.'는 식으로 이전과는 180°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파악했다.*
칸트는, 우리는 바깥 세계를 인식하기 위한 '필터'를 미리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바깥 세계가 정말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필터'를 통해 바깥세계[물(物) 자체]를 파악함으로써 자연법칙에 지배되는 질서 있는 세계로 인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칸트는 이 '필터'를 만드는 것으로 인간의 ’오성(悟性)'과 '감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필터'는 인류 공통이며, 인식에 의해 모두가 같은 세계를 만든다. 칸트는 이 세계 속이라면 '객관적인 지식'을 쌓아 올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은 경험론에 대해서 사람 각자의 개별적인 경험으로는 인류 공통의 객관적인 지식은 얻을 수 없다는 지적이 있었다. 또 대륙 합리론에 대해서는 신의 존재를 전제로 한 이론은 이성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있었다.
칸트는 대륙 합리론처럼 신의 존재는 가정하지 않았다. 두 철학의 결점을 동시에 극복한 칸트의 생각은 객관적인 지식을 쌓아 올리는 과학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는 견해도 있다.
※ 칸트의 생각은 버클리의 철학과 약간 비슷하지만, '물(物) 자체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점에서는 버클리의 것과 다르다.
이마누엘 칸트
1724년 프로이센 왕국(현재의 독일)출생. 자연 철학에도 관심이 있어 뉴턴 역학의 영향을 받았으며, 가스가 모여 태양계가 생겼다는 '성운설'을 주장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필터'를 통해 인식하는 세계
칸트의 생각에 근거해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는 메커니즘을 그렸다. 바깥 세계에는 '물(物) 자체'가 있으며, 우리는 미리 가지고 있는 공통의 '필터'를 통해 물 자체를 파악하고, 그 인식에 의해 질서 있는 세계를 만든다고 한다.
바깥 세계에 있다'물 자체'-바깥 세계를 인식하기 위한 '필터'-'필터'를 통해 인식된 공간-'필터'를 통해 인식된 물체
라플라스의 악마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지성이 존재할까?
19세기에 프랑스의 수학자인 피에르 라플라스(1749~1827)는 “만약 세상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는 '지성'이 존재한다면, 그 '지성'에게는 불확실한 것이 하나도 없게 되고, 그 눈은 미래를 모두 꿰뚫고 있을 것”이라는 의미의 주장을 했다.
라플라스가 말하는 세상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는 '지성'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사물'의 위치나 속도를 파악할 수 있는 '전지전능의 신' 같은 존재를 말한다. 라플라스가 상정한 '지성'은 나중에 '라플라스의 악마'라고 불리게 된다.
라플라스의 악마가 본 세계는?
라플라스의 악마에게는 결정론적 물리 법칙을 전제로 하면 세상의 모든 일이 이미 정해진 것으로 보인다. 공이나 행성, 기체 분자는 물론 인간의 몸도, 그리고 의식을 맡은 뇌 분자라는 '사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각 개인의 의지조차도 결정론적 세계관으로 말할 수 있다.
즉, 오늘 아침 내가 아침 식사를 한 뒤 커피를 마실까 홍차를 마실까 망설이다가 결과적으로 스스로의 의지로 커피를 골랐다고 해도, 그러한 망설임 끝에 커피를 골랐다는 것이 이미 결정론적으로 정해져 있었다는 생각이다. 바로 결정론적인 세계관의 궁극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능력이 부족해 모든 것을 파악할 수는 없지만, 세상은 본질적으로는 결정론적이다.' 19세기까지는 이러한 생각이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와 과학이 미시적인 세계로 서서히 확장됨에 따라 그 생각에는 큰 의문이 생기게 된다.
전지전능의 '지성'이 보는 세상
라플라스의 악마 같은 전지전능의 '지성'이 만약 존재하면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의 상태(위치나 운동의 모습 등)를 파악할 수 있다. 그러한 존재는, 이 세상에서 미래에 일어날 모든 일을 결정론으로 완전하게 꿰뚫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림은 라플라스의 악마와 같은 존재의 의미로,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수정 구슬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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