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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 시에서 계절과 사랑을 읽다

반낭만적(反浪滿的) 낭만주의(浪漫主義) -김춘수 시인의 浪漫性 / 아! 김춘수

반낭만적(反浪滿的) 낭만주의(浪漫主義) -김춘수 시인의 浪漫性 / 아! 김춘수

 

개인과 사회, 개인과 역사, 개인과 이념의 대립이라는 의식 구도는 자아와 세계의 갈등이라는 문학 체계와는 다른 것이다. 문학의 일반적 구성 방식으로서 자아와 세계의 갈등은 어느 일방의 세력이나 가치의 우위를 동일 범주 내에서 비교함으로써 종국적으로는 해소될 수 있다. 하지만 김춘수 시론에 상정된 관계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어떤 대립이든 간에 쌍방이 속해 있는 개념의 차원이 상이해서 우열을 판명할 수 있는 척도를 설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와 역사와 이념의 악은 바로 그것들의 본성에서 유래한 것이고, 그로 인한 개인의 희생은 운명과도 같은 것이어서 피할 도리가 없다. 두 번째 인용문에서 시인이 자신을 파괴하는 악에 맞서 싸우지 못하고 도망쳐야 했다고 쓰고 있는 것이 이 때문이다.

 

두 번째 인용문에 서술된 네 가지 상태는 김춘수 시론의 기본적인 원리와 속성을 나타내는데, 그 어느 것이나 낭만적 문학관의 주요 내용과 연관돼 있다. 시를 대상으로 한 논의에서, '이기적 상태'는 주관주의와 개인주의, '도피적 상태' 는 유미주의와 내재주의, 방관자적 상태'는 소외 의식과 보상 심리, '무관심주의적 상태' 는 상대주의와 허무주의의 표명으로 이어진다. 이 같은 상태를 초래한 원인으로 제시된 "현실 무감증 현상은 예술과 현실을 분리하려는 기획과 결부되고, “역사에 대한 회의는 계몽주의적 역사관을 일축하려는 시도와 연결된다. 세 번째 인용문은 김춘수 시론의 이념적 배경으로서 역사에 대한 부정을 야기한 원인이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세 번째 인용문에 따르면, 역사는 폭력 및 이데올로기와 삼각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역사는 이데올로기의 구현이고, 이데올로기는 역사의 근원이며, 폭력은 역사의 수단이라는 것이 김춘수의 생각이다. 여기서 '역사' 란 정확히 말하면 실체가 아니라 계몽주의 역사관을 가리킨다. 그래서 김춘수는 "세계는 직선으로 앞만 바라고 전진해 간다는 역사주의자들의 낙천주의적 비전을 거부하고, "세계는 윤회하면서 나선형으로 돌고 있다는 비역사 내지는 반역사적 생각”(『처용단장, 140쪽)을 바탕으로 “역사주의의 유일회적) 세계관을 배척하는 신화적 · 윤회적 세계관의 기교적 실천"을 기도한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역사 허무주의'나 '역사 부정주의' 란 낭만주의에서 제기된 역사주의' 와 상통한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김춘수의 역사주의 비판은 극단적 주관주의에 의거해서 수행된다. 이는 역사 자체의 속성에도, 비판의 논리에도 다 같이 해당되는 말이다. 도대체 역사란 무엇인가? 철저한 반역사주의의 입장에서 그가 지적하는 역사의 정체를 명제로 정리한다.

 

① 역사란 역사가라고 하는 사람의 주관이 하는 짓거리다.

②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역사가의 주관-이데올로기다. 역사란 기록(기술)이지 사실(실체)이 아니다.④ 역사란 소설처럼 허구일 수밖에는 없고, 만들어지는 것이다.(「처용단장」, 174쪽)

 

첫 번째와 두 번째 명제를 근거로 김춘수는 역사의 객관성을 부정한다. 그가 보기에 주관과 객관은 모순 관계에 있어, 주관적이면 객관적일 수 없고, 객관적이기 위해서는 주관적이지 않아야 한다. 김춘수는 "객관적 견고함과 주관적 독단 사이에는 상호주관적 화해라는 중간지대가 있다"13)는 미학적 일반론을 인정치 않는다. 주관에 의한 객관의 왜곡은 두 가지 이유로 불가피하다. 주관은 곧 “편견”이고, 편견은 곧 “생리”(『처용단장, 173쪽)라는 것이 첫 번째 이유다.

 

두 번째 이유는 인간의 본성에 관계된다. 설령 사람이 편견을 벗고객관적 입장에 선다 하더라도 사실을 제대로 알 수는 없는데, 사실을파악하는 인간의 능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김춘수는 "인간에게는 사실이 허락되어 있지 않다” (『처용단장, 173쪽)는 운명론적 언사로역사에 대한 불가지론을 마무리한다. 객체에 대해서는 알 수 없고 오직 주체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다고 얘기함으로써 김춘수의 사론(史論)은 칸트의 인식론에 접근하는데, 칸트 미학이 독일 낭만주의 시대에 수립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역사가들이 하는 일이란 대체 무엇인가? "실은 사실을 모르면서 사실을 말로만 씨부렁거리고 있는 데 지나지 않는다” (「처용단장, 173)는 것이 그의 답이다. 앞에 나온 '짓거리' 란 표현도 그렇고 여기 나온 '씨부렁거린다'는 언사도 그렇고, 역사에 대해 말할 때면 김춘수의 말투는 상당히 거칠어진다. 평문에 기술된 내용에 따르면, 그 이유는 아주 실제적인 데 있다.

 

왜 5백 년 전의 정몽주의 암살은 의미가 있는데 내가 일제 때 당한 요꼬하마 헌병대에서의 고문은 의미가 없다고 하는가? 의미의 있고 없음을 누가 가리는가? 나에게는 내가 당한 고문이 훨씬 더 의미를 가질는지도 모르는데 그것은 객관성이라는 어떤 역사적 미명 아래 뭉개지고 만다. 그 객관성이라는 것은 누가 또 가려내는가? 나에게는 어디 가서호소할 방도도 없어진다. 나라는 개인은 역사로부터 완전히 소외된다. 나는 그때 학교도 퇴학당하고, 그 학력 때문에 10년간 대학에서 시간강사 노릇을 했는데도 아무도 나를 위해서 변호해 주지 않았다. (처용단장』, 174쪽)

 

이 인용문은 이념적 지향의 형성 원인을 파악하는 데 상당히 요긴하다. 김춘수의 문학적 이념을 결정한 것은 다름 아닌 현실적 소외 의식으로, 이것이야말로 낭만적 논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요인의 중요성은 그가 이 평문에서 동일한 내용을 두 번이나 되풀이해서 서술하고 있는 데서 짐작할 수 있다. 김춘수는 문학적 동인으로서 이 일의 의미를 여기서는 '소외' 라는 개념으로, 다른 곳에서는 “피해의식" ('처용단장, 136쪽)이란 용어로 요약하고 있다.

 

앞에서 정리한 반역사주의적 명제 중에서 세 번째와 네 번째는 역사를 허구로 치부하고 있는데, 이로써 역사는 문학과 등가가 된다. 어차피 둘이 다 허구인 까닭이다. 역사와 문학의 차이는 전자가 "소설보다는 한결 리얼하게 속임수를 쓴다는 것뿐이다"(처용단장』, 174쪽).김춘수의 문학 개념은 시와 역사를 구분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와 예술과 역사를 분리한 쇼펜하우어의 사상을 결합한 것이라 할 수 있다.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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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주지하듯이 쇼펜하우어의 미학은 낭만주의 음악의 정점을 표현한다. 예술과 역사의 관계에 대한 그의 논증을 든다. "어떤 행위의 외면적인 중요성은 현실에 미치는 영향과결과에 의하여 측정되지만 그 내면적인 중요성은 인간성에 빛을 던지고 인간 생활의 특수한 면을 발굴하여 인간의 본성에 대한 깊은 진리를 깨닫게 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예술에 있어서는 행위의 내면적 의의만이 중요하고, 역사에 있어서는 그 외면적 의의가 소중하다. 이 양자는 서로 분리되기도 하고 결합되기도 하지만, 실은 독립된 것이다.” Arthur Schopenhauer, 쇼펜하우어 인생론, 최민홍 역, 집문당, 2006, 121쪽.15) Umberto Eco, 미네르바 성냥갑」, 김운찬 역, 열린책들, 2004, 1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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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의 구별이 아리스토텔레스의 구분과 다른 점은 양자를 모두 허구로 보면서, 어느 한쪽을 다른 한쪽의 보상 체계로 규정한 데 있다. 김춘수에게 문학이란 무엇인가? 아니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역사에 무슨 의미가 있다고 하는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의미 부여는 역사가의 지독한 근시안적 독단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라. 이처럼 심한 허구가 또 어디 있을까? 그러나 나를 구제해줄 손이 있다. 그것은 문학이다.(「처용단장』, 175쪽)

 

그에게 문학은 현실적 처지에 대한 '호소' 고, 나아가 역사적 피해에 대한 '구제' 다. "역사가 무엇을 구제한다는 것인가?" ('처용단장』, 175쪽)란 선의로 김춘수는 역사의 가치를 단호하게 부정한다. 널리 알려진 대로 낭만주의는 "예술과 문학 분야에서는 위대하지만 개인의 삶에서는 불행하고 이해받지 못하는 예술가의 모델"15)을 고안했다. 문학을--------------------

 

시와 미와 삶 / 제2부 아! 김춘수

21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