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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시, 사랑에서 행복을 찾다

소울메이트/이근화(1976~) 소울메이트/이근화(1976~) 우리는 이 세계가 좋아서 골목에 서서 비를 맞는다 젖을 줄 알면서 옷을 다 챙겨 입고 지상으로 떨어지면서 잃어버렸던 비의 기억을 되돌려주기 위해 흠뻑 젖을 때까지 흰 장르가 될 때까지 비의 감정을 배운다 단지 이 세계가 좋아서 비의 기억으로 골목이 넘치.. 더보기
가방 같은 방/김소연 가방 같은 방/김소연 쌀 옆에는 운동화가 있다 생리대 옆에는 오렌지가 있다 과도 옆에는 상비약이 있다 팬티 옆에는 서류봉투가 있다 가방을 열어 변기를 꺼낸다 손수건을 열어 욕조를 꺼낸다 발바닥을 열어 슬리퍼를 꺼낸다 땡볕을 궁리하며 나날이 시커매진다 빨래를 궁리하며 나날.. 더보기
밤에 용서라는 말을 들었다/이진명 밤에 용서라는 말을 들었다/이진명 나는 나무에 묶여 있었다. 숲은 검고 짐승의 울음 뜨거웠다. 마을은 불빛 한 점 내비치지 않았다. 어서 빠져나가야 한다. 몸을 뒤틀며 나무를 밀어댔지만 세상모르고 잠들었던 새 떨어져내려 어쩔 줄 몰라 퍼드득인다. 발등에 깃털이 떨어진다. 오, 놀라.. 더보기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自畵像)/조용미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自畵像)/조용미 폭우가 쏟아지는 밖을 내다보고 있는 이 방을 능우헌(凌雨軒)이라 부르겠다 능우헌에서 바라보는 가까이 모여 내리는 비는 다 직립(直立)이다 휘어지지 않는 저 빗줄기들은 얼마나 고단한 길을 걸어내려온 것이냐 손톱이 길게 쩍 갈라졌다 그 사이.. 더보기
흔들릴 때마다 한 잔/감태준(1947∼) 흔들릴 때마다 한 잔/감태준(1947∼) 포장 술집에는 두 꾼이, 멀리 뒷산에는 단풍 쓴 나무들이 가을비에 흔들린다 흔들려, 흔들릴 때마다 한 잔씩, 도무지 취하지 않는 막걸리에서 막걸리로, 소주에서 소주로 한 얼굴을 더 쓰고 다시 소주로, 꾼 옆에는 반쯤 죽은 주모가 살아 있는 참새를 .. 더보기
괄호처럼/이장욱 괄호처럼/이장욱 (무언가를 보고 있었는데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았다. 내가 거기서 너와 함께 살아온 것 같았다. 텅 빈 눈동자와 비슷하게 열고 닫고 창문 너머로 달아나는 너를 뒤쫓는 꿈 내 안에서 살해하고 깊이 묻는 꿈 그리고 누가 조용히 커튼을 내린다. 그것은 흡, 내가 삼킬 수 있.. 더보기
첫마음/박노해 첫마음/박노해 한번은 다 바치고 다시 겨울나무로 서 있는 벗들에게 저마다 지닌 상처 깊은 곳에 맑은 빛이 숨어 있다 첫마음을 잃지 말자 그리고 성공하자 참혹하게 아름다운 우리 첫마음으로 더보기
애플 스토어 4/이원(1968~ ) 애플 스토어 4 - 이원(1968~ ) 젖은 비둘기를 안고 낮에 아이가 찾아왔다 억지로 물에 넣었냐고 했다 아이는 나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해질녘에 산양을 안고 아이가 찾아왔다 다리를 다쳤냐고 했다 누구 다리냐고 물을 수 없었다 한밤에 까마귀를 머리에 얹고 아이가 찾아왔다 살아 있다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