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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예봉산으로 모십니다(詩山會 제14회 산행)

예봉산으로 모십니다(詩山會 제14회 산행)

산 : 예봉산(남양주,679미터)

코스 : 15번 종점-마을회관-농장-정상(1시간 30분소요)-예룡정(1시간 20분)

일시 : 2005년 5월 1일(일) 9시 30분

모이는 장소 : 전철 2호선 강변역 1번 출구

준비물 : 중식, 막걸리나 포도주

연락 : 한양기(017-729-3457)

 

바이칼湖의 비밀

바이칼은

그 어떤 연구진의 세세한 수치 제시로도

올곧게 파악될 수 없는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모든 오래된 호수들이 빙하기를 거치면서 퇴적물이 쌓여

사라지는데 오직 이 바이칼만은 노화되지 않고 처음과 같은

싱싱한 젊음을 유지하면서 오늘날까지 생명을 노래하고

있음이다. 안으로는 태고의 원시성을 그대로 지니면서

겉은 생기가 용출하는 건강한 생리를 보여준다.

알 수 없는 비밀이다.

 

- 김종록의《바이칼》중에서 -

 

사람도 바이칼과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나이가 들어도 늙음의 퇴적물에 쓸려나가지 않고

오히려 신체적 정신적 젊음을 더 잘 유지하며 사는

그런 사람 말입니다. 태고적의 싱싱함과 원숙한 노련미가

조화를 이루며 죽는 날까지 맑은 영혼으로 사는 사람 속에

당신과 내가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도움쇠는 韓민족의 발상지인 바이칼을 시산회 회원들과 언젠가 가고 싶다는

제법 거창한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밝고 건강한 꿈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2005년 4월 17일.

백목련과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핀 화창한 봄날의 아침 새로운 회원

마도로스 전작과 부동산 전문가 정해황 산우를 포함한 10명의 회원이

어김없이 정시에 모두 집합하여 위윤환 산우가 추천한 검단산으로

즐거운 출발.

늦으면 오천원을 벌금으로 납부해야한다는 규율담당 나 원장의 엄포가 겁이

났던가 봅니다만 이런 투철한 정신무장이라면 나원장은 북한산 하산길에

미리 먹은 막걸리값을 충당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강변역을 지날 때마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光高人 테크노마트 백종헌 회장을

떠올리지요.도움쇠와는 光建會 회원으로서 자리를 같이 할 때가 있는데 모임의

뒤풀이로 금호건설의 임병욱 부사장과 논현동의 카페에서 폭탄주를

마시기도 합니다.테크노마트 건너편 정류장에서 113번 버스를 타고 10시 20분

산곡초등학교 입구에서 하차하여 산행 시작.

 

산곡동은 30년 전에는 하산곡과 상산곡마을이 고시촌을 이루고 있었는데 도움쇠가

대학 4학년 때 고시공부를 하던 그 마을이었습니다.

그때 6명정도의 고시생이 있었던 그 집의 날씬하고 활달했던 큰 딸은 서울에서

직장에 다녔고 참하고 조신했던 작은 딸은 산곡초교의 선생이었습니만

어머님이 엄격해서 작은 딸은 항상 눈을 내리깔고 다녔지만 활달했던 큰 딸은

어머님의 감시와 눈총 속에서도 고시생들과 스스럼 없이 어울렸고 특별한 로맨스는

없었을 것으로 생각되나 남녀간의 사랑이라는 것이 막는다고 막아지며

지킨다고 지켜질 일이겠습니까! 아마 큰 딸은 훗날 고시에 합격하여

판사가 되었으나 얼마 전에 매스콤에 나왔던 특별검사 ㅇㅇㅇ 변호사의 사모님이

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상상을 감히 해봅니다. 사랑은 성취하는 것이며 용감한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기도 하죠.

 

뒷켠으로 돌아가면 도자기를 굽는 가마가 있었고 그 집의 모든 고시생이

불합격하고 온 날 하늘에서 별이 쏟아져내리는 밤에 따뜻한 가마옆에서

가마의 새빨간 불을 보면서 처연하게 밤새도록 내년을 기약하는 期約酒를

마셨던 기억이 났는데 그때 그들의 마음도 가마만큼이나 밤새 발갛게

불탔을 것입니다. 불합격 후유증의 치료는 여행을 하면서

바람이나 쐬고 오면 가장 빠르게 치유되겠지만 가난한 고시생의 입장에서는

사치스러운 일이었고 산곡초교 운동장에서 테니스볼로 야구를 한다거나

가벼운 소설을 읽는 정도였습니다.그러면서 합격을 자신할 수 없는 막막한

1년을 준비하는거죠.

학교 앞을 지나가면서 보니 그 집도 없고 강산이 세 번이나 변했는데 옛날의

흔적이 남아있을 턱이 없죠. 그러한 옛생각과 아쉬움을 뒤로 하고

비교적 순탄한 코스를 부담없이 올라 가는데 뭔가 허전한 생각이 들어 자꾸 뒤를

돌아보아도 허전한 생각은 모두의 공감. 아! 한양기 산우도 보이지 않고 그 만의

알맞게 식은 동지팥죽같은 걸쭉한 입담도 없는 것이 아닌가. 한양기 산우는

우리를 허전하게한 책임을 통감하고 앞으로는 빠지지말고 우리의 귀와 마음을

즐겁게 해주기 바랍니다. 쉬운 길인데 힘들었던 것은 순전히 당신의 탓입니다.

 

약수터까지 오르는 동안 만물박사 최용식 산우의 진달래와 철쭉,산철쭉의

구별법에 관해 강의를 듣고 구별법을 간추려 보았는데 상식으로 알아두면좋을

듯합니다.진달래는 잎이 나기 전에 꽃부터 피고 철쭉은 꽃보다 잎이 먼저 나오거나

꽃과 잎이 동시에 피고 산철쭉은 잎이 꽃보다 먼저 나오는데 철쭉의 잎모양이

달걀형이라면 산철쭉은 긴 타원형이면서 잎에 털이 많고 점액성분이 있어

만지면 끈적거립니다.

최용식 산우가 호를 지어달라는데 '경산(經山)'은 생각해 봤으나 나는 썩 내키지

않고 최용식 산우도 마음에 들어할 것같지 않아 망설이고 있습니다.

 

한양기 산우 탓에 약수터까지 힘들게 오르고 시원하게 한 잔하고 고개를 든 순간

능선에 있어야할 아름다운 팔각정 휴게소가 안 보이는 게 아닌가.

올라가 보니 무심한 주춧돌만 남아 있는데 이것도 무심히 흘러가는 세월의 탓인가요.

여기서 부터는 부드러운 능선 길이 시작되고 멀리 경안천도 보면서 더 멀리는

북한산과 도봉산도 보면서 가다보니 드디어 정상. 11시 40분.

1시간 20분 소요. 정상에서 보니 다음 산행지인 예봉산이

팔당댐 너머로 보이고 뒤편으로 수종사로 유명한 운길산이 숨어 있는데

우측으로 시선을 돌리니 장난감같은 양수대교와 양수철교,두물머리(兩水里)의

탁 트인 전망은 언제나 우리의 마음을 시원스럽게 하지만 맑은 날은

오전 11시 이후에는 빛의 난반사때문에 그러한 아름다운 풍경도 흐릿하게 보이죠.

풍경을 찍는사진작가들은 새벽부터 시작해서 10시 이전에 작업을 끝낸다고 합니다.

우리는 흐릿했지만 어김 없이 두물머리를 배경으로 단체사진 한 컷.

항상 탁월한 배경선택과 훌륭한 사진솜씨로 우리의 감성을 만족시켜주는

이원무 산우에게 감사드립니다.인화해서 말없이 건네주는 사진에 두 번

감사드립니다. 복 많이 받으소서.

 

창우동 방향으로 하산하다가 넓은 공터에 자리를 잡으니 12시 정각.

푸짐하고도 화려한 삼합과 홍탁이 준비된 흥겹고도 즐거운 점심시간.

시산회 13회 산행 중 가장 푸짐하고 맛난 점심이 우리를 즐겁게 했는데

불참한 회원들도 또 기회가 있을 테니 기다려봅시다. 사랑의 전도사 조문형

산우가 준비한 깨와 대파가 곁들어진 삶은 돼지고기, 나 원장이 수산시장에서

손수 장을 봐온 알맞게 삭힌 홍어,기세환 산우대신 묵은 김치를 싸온 박형채

산우, 장에 절인 마늘과 양파 및 고추를 준비해주신 김순단 여사께 감사를

드립니다.색색의 맛난 과일을 싸온 이원무 산우,맛있는 찰밥을 많이 싸왔으나

이들때문에 약간은 빛이 바래 남는 바람에 이경식 산우는 그 찰밥을 치우느라

고생이 많았겠지만 또 부탁합니다.막걸리와 곁들어진 그것들은 훌륭한

성찬이었고 지상최대의 오찬이었습니다. 아흐, 동동다리!!!

막걸리는 항상 있는 것이고홍어를 준비해오실 산우는 말리지 않을 테니

언제라도 준비해오십시요.

 

창우동 방향으로 내려오다가 내려다본 팔당댐 밑의 물색은 빛의 난반사때문에

역시 흐린 색이었는데 오히려 흐린 날은 맑은 비취색이니 조화옹(조물주)의

장난이고 심술이려니 생각합시다. 그래도 곳곳에 진달래가 흐드러졌습디다.

관례대로 신참회원의 뒤풀이는 생략할 수 없는 법이라 백목련이 흐드러지게 핀

농원에서 정해황 산우가 조용히 베풀었는데 삼합잔치의 뒤라 만포고복의

상태여서인지 간소했습니다. 매화가 흐드러지게 피면 봄이 눕는다는데 흐드러지게

핀 백목련에 나도 봄인양 눕고 싶어졌습니다.

화창한 봄날의 산, 강, 철교, 댐, 진달래, 백목련, 홍어, 돼지고기, 묵은 김치, 막걸리,

고추장아찌 그리고 좋은 산우들!

내내 행복했습니다.

정상에서의 점심이나 농원에서의 뒤풀이는 간소했지만 푸짐한 진수성찬이나

산해진미에 비하겠나이까!

 

이성과의 우정!

사랑은 오고 가지만 우정은 머물러 있는 것이겠지요.

아무리 불같은 열정적인 사랑도 그 열정을 36개월을 지속하지 못한다지요.

그러한 열정이란 두뇌의 생리적 화학작용에

의하여 발생하는데 36개월의 기간은 이 세상 누구에게나

예외가 없이 적용된답니다.생화학적으로는 절대로 예외가 없답니다.

남녀간의 우정이란, 정말이지, 남녀간에 생길 수 있는

진짜 우정은 과거에 소위 '끝까지 갔던' 남녀에게만 주어지는

엑기스 같은 보상품이랍니다.연애감정은 엷어졌지만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만큼은 여전히 남아있기에 가능하겠지요.

'끝까지 갔기'에 더 바랄 것이 없기에 가능하겠지요.

이별의 아픔을 처절하게 느껴봤기에 가능하겠지요.

헤어졌다가 한 2년쯤 절여진 다음에 도저히 보고싶어 안 되겠다

싶어 만났을 때의 환희같은 운명적인 감정도 경험해보고 싶습니다.

시인 이정하는 詩<사랑의 이율배반>에서 "그대여 손을 흔들지 마라.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떠나는 사람은 아무 때나 돌아오면

그만이겠지만 남아 있는 사람은 무언가. 기약도 없이 떠나려면 손을 흔들지 마라."

고 노래했는데 헤어질 때는 눈부시게 먼저 떠나십시요.남아서 눈물겹지 않도록.....

그러나 헤어질 때를 알고 깨끗하게 헤어진다는 것이 세상사 중의 가장

어려운 일 중의 하나임을 우리가 모르지 않죠.그러나 남는 미련은 또 어찌 합니까!

 

위윤환 산우가 추천한 예봉산은 예빈산(禮賓山)이라고도 하는데 조선시대의

정부관서에 귀한 사신이나 손님을 맡아보던 예빈시라는 관청에 이 산의

벌채권이 있었기에 예봉산이라는 산명이 생긴 것으로 추측된다고 합니다.

산세는 검단산과 비슷하나 도움쇠는 가을에 팔당역 뒤의 코스로 올라가

본 적이 있는데 코스는 부드러웠고 당단풍의 색깔이 참 곱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번에는 위윤환 산우가 추천한 코스로 올라갈 예정이고 약간

가파른 코스도 있다는데 높지 않은 육산(肉山)이라 된비알(급경사길)은

아닐겁니다.

 

산을 오를 때 시를 외우며 가노라면 가슴에 담겨지는 아름다움으로

힘든 것은 반이 되고 즐거움은 배가 됩니다.이번 산행에 동행할 시는

황지우님의 <너를 기다리는동안>과 김수영 님의 <풀>중에서 선택할까

합니다.시절상으로는 김소월 님의 <진달래>가 적절하겠지만 이미

배운 시이므로 피합니다. 동행시를 선정할 때 계절을 의식하기도 하지만

인생과 사랑에 관한 시를 선호하는 편입니다. 시 두 편이 너무 좋은 시라

동시에 욕심나는 경우가 있어 가벼운 고민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산우들께서 추천해주시면 좋을 텐데.....

부탁해봅니다.

 

풀 --김 수 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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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상 : 1960년대의 대표적 참여시로서 대립적 심상의 반복으로 주제를

부각시키며, 동일한 시어를 사용함으로써 동적 리듬감을 얻고 있는 시이다.

암울한 시대 상황이나 횡포 속에서도 지혜롭게 견디는 백성들의 삶을

상징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 지 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詩山會 등산 도움쇠 金定南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