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락산에 올라 봅시다(詩山會 제29회 산행)
산 : 수락산(640.6 미터)
코스 : 통제소-철전주-영원암-540고지-쉼터-정상(원점회귀)
소요시간 : 오름 2시간 내려 옴 1시간 30분
일시 : 2006년 2월 5일 10시
모이는 곳 : 전철 7호선 수락산역 1번 출구
준비물 : 가벼운 요기거리(기호주,빵,연양갱,컵라면 등) 하산 후 식사 겸 뒤풀이
연락 : 한양기(017-729-3457)
'벌써'라는 말이
2월처럼 잘 어울리는 달은 아마
없을 것이다.
새해 맞이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
지나치지 말고 오늘은
뜰의 매화 가지를 살펴보아라.
항상 비어 있던 그 자리에
어느덧 벙글고 있는
꽃,
세계는
부르는 이름 앞에서만 존재를
드러내 밝힌다.
외출을 하려다 말고 돌아와
문득
털 외투를 벗는 2월은
현상이 결코 본질일 수 없음을
보여 주는 달,
'벌써'라는 말이
2월만큼 잘 어울리는 달은 아마
없을 것이다.
도움쇠의 고향 영광의 시인 오세영님의 詩 <2월>의 전문이다.
흐르는 것이 강물 뿐이랴! 세월도 사랑도 돈도 하늘도 인생도 흐른다.
이들이 흐르면 모든 것이 흐르는 것이다. 2월의 4일은 입춘(立春)이다.
2월 5일 우리가 수락의 정상에 있을 때는 어김 없는 봄이다.
5월의 6일,입하(立夏)는 무시하고 6월의 21일, 하지의 전 날까지는
봄이라 생각하고 다가오는 봄을 실컷 즐기자. 一切唯心造! 세상사 마음 먹기에
달렸다.
지난 가을의 수확이 풍성하지 못해 이번 겨울이 유난히 춥고 길어 지루했던
사람들은 시인의 말대로 추운 겨울의 무겁고 답답한 털 외투를 벗고 꽃향기
그윽한 따뜻한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하자.
새해의 셋째 일요일 1월 15일의 새벽에 동대문운동장역에서 모였는데
여간해서는 늦지 않는 이경식 산우가 모이는 장소를 착각해서 약 20분이
늦어졌는데 항상 모이는 장소는 어디다 하는 선입견이 미리 입력되어
있었던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마음도 흐르고 사랑도 흐르는데 모이는
장소도 항상 흐른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숲향산악회의 女총무는 일정과
다른 손님들때문에 그냥 떠나자고 조르는데 없는 아양을 떠느라고 혼났습니다.
이런 점이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등산회를 따르는 것의 단점입니다.
우리끼리야 조금 늦은 들 누가 뭐랍니까! 늦잠을 자서, 출발지를 착각해서,
앞에 앉은 예쁜 여인네의 고운 자태에 한눈을 팔다 하차할 역을 지나쳐서,
전 날에 고운 님과 향기로운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사랑하는 마나님과 쫄깃쫄깃한 운우지정을 나누느라 동지달 긴 긴 밤이
짧았기에 늦을 수도 있겠지요. 차는 양재역과 분당의 복정역을 경유해서
부지런히 달리고 새로 동참한 박기승 회계사를 포함한 14인의 반갑고
건강한 얼굴들을 대하니 기쁨 반 설렘임 반의 즐거운 마음으로 태백으로
힘찬 출발.
눈을 담고 있는 시베리아 고기압이 이상기류로 인하여 서해안으로 흘러
서해안은 폭설이 내리고 동해안 쪽은 가물어서 걱정했는데 이틀 전 밤에
눈이 내리는 것을 보고 안도의 함숨. 명색이 눈꽃축제를 보러 가는데
눈이 없으면 오아시스 없는 삭막한 사막이 되는 꼴이 되어 내심 초조했으나
다행. 축령산행 때는 반가운 첫눈이 내렸고 납회 때 청계산행도 눈이 내려
시산회의 산행을 축하해줬는데 시산제를 지낼 태백산행 때도 눈이 내린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시산회는 눈과 함께'이므로.....
4시간의 긴 여정 끝에 유일사주차장 못 미쳐 화방재에 도착했으나
눈꽃축제의 탓인지 들머리인 주차장까지 관광버스를 비롯한 온갖 차들이 밀려
미리 하차하여 눈이 쌓인 태백산으로 오르는데 산객들이 너무 많은데다 우리의
숫자도 많고 도움쇠의 컨디션도 좋지 않아 코스에 대한 브리핑을 생략했던
탓에 일부 회원들이 정해진 코스가 아닌 유일사 방향으로 가서 혼선이 생긴
것을 보고 선두와 항상 뒤쪽에서 올라가는 도움쇠간에 무전기 2대는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항상 강조하지만 선두는 예정하지
못 했던 갈림길에서는 미리 정해진 약속이 없었다면 약간의 고민을 해야합니다.
더구나 그 길은 작은 물길도 있었으니 큰 길이 아닌 것을 짐작했을 텐데
개척정신으로 가보았겠죠.
갈라진 길의 합류지점인 유일사 쉼터에서
위 산우와 박 산우등과 만나서 처진 산우들을 기다리다 지쳐 먼저
밧줄을 타고 올라가면서 이리도 사람이 많으니 앞사람의 뒤꿈치만 보고
가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기온이 낮지 않고 바람이 불지 않아
그 무시무시한 칼바람이 없어 다행스러웠으나 도움쇠가 이름을 붙인
칼바람능선을 오르는 맛이 반감. 그토록 많은 산객들에 밀려 가면서도
수 백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주목의 가지와 잎 위에 탐스럽게 얹혀있는
새하얀 눈꽃도 이름모를 나무 위의 투명하고도 맑은 상고대도 보고,
젊은 청춘남녀들이 사진을 찍을 때 싱그럽게 웃는 모습에 가뿐 숨도
고르면서 쉬엄쉬엄 오르니 나쁜 컨디션에도 어느 새 정상인 장군봉에 도착.
가운데가 비워 있는 돌제단 안에서 토속신앙인 무당굿을 하는 징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지는데 자기들끼리 차례를 정해 가면서 굿을 하는 지
1년 365일을 쉬지 않고 밤낮으로 징소리와 방울소리가 울리고
그 사람들이야 말로 정성이 대단합니다.
성스러운 천제단을 놔두고 일부 산객들이 하늘의 해를
보면서 두손 모아 합장하고 머리를 조아리는 것은 묘한 대조를 이룹디다.
300 미터를 더 가니 성스러운 천제단에 도착하여 회원들을 모으고 사진
한 컷을 빼놓을 수 없는 일! 태백에 오를 때마다 갖게 되는 의문은 정상인
장군봉에 성스러운 천제단이 있지 않고 무당들의 제단이 있으며 천제단은
멀리 떨어져 있을까..... 누구 아는 산우 없소?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사장(샤먼)이어서...
집합지인 단종비각으로 내려가서 세 번이나 회원수를 헤아려 봐도
13명밖에 안 보이니 국민학교 때 읽었던 돼지들의 소풍생각이 나던데
키 큰 이원무 산우가 동창들을 챙기느라 뒤돌아 서 있었던 탓이었습니다.
제주는 김삼모 산우로 이미 정해졌고 올리는 술을 치는 초헌은 전 제주
기세환 산우가 자진해서 맡았는데 초를 세우는 기발한 방법이 역시
광고인이더이다. 또렷하고 밝은 음성으로 축문을 읽고 한 많은 단종임금에게도
절을 했으니 여리고 외롭고 슬펐던 그 분도 좋은 기분이었을 겁니다.
한 총무는 차디 찬 땅바닥에 손과 무릎을 닿기 싫었던지 읍만 하자 했지만
절대 안 될입니다. 하 하 하...
제를 끝내고 돼지고기와 떡등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였는데 주변의 산객들과
나눠 먹었으니 절차와 형식은 갖췄습니다. 위 산우가 두 병을 가져온
막걸리가 부족해서 아쉬움으로 남고 부족해서인지 막걸리가 참으로 꿀맛.
전에는 하산할 때 만경사부터 반재까지는 오궁썰매를 탈 수 있었는데
올해는 눈이 부족하고 산객은 많아 불발. 예정은 당골로 내려가서
뒷풀이 겸 점심을 먹고자 했으나 산객이 너무 많아 시간이 지체되었다고
女총무가 몰아치면서 내려가서도 뒷풀이 시간을 줄 수 없다니 난감했는데
다행스럽게 어묵 파는 곳에서 간단히 요기도 하면서 술도 한 잔씩.
역시 위 산우의 정성이 담긴 추어탕이 일미(一味)! 또 술이 부족했습니다.
도움쇠의 더덕주로는 간에 기별도 안 갔으니...비장의 술 한 병씩은 갖고
다닙시다.
시를 낭송하고 싶었으나 춥고 배가 고파 다음 산행 때로 미뤘습니다.
다만 신입산우인 박기승 회계사가 빠졌는데 그대를 눈에 익히지 못한
내 탓이었으니 해서하소서. 신입산우는 그룹에서 이탈하면 인원파악이나
이러한 돌발적인 상황에서 손해를 볼 수도 있음을 양지하십시오.
뒷풀이도 못 할 정도로 시간이 없어 중간의 단군성전을 지나쳤는데 다음날
봄철의 철쭉을 보러갈 때는 대단한 볼거리는 없지만 꼭 들르도록 합시다.
눈길에 별 사고 없이 당골에 도착하여 박기승 회계사와 조우하고 미안한
마음에 같이 오뎅으로 요기했는데 얻어 먹기까지...맛납디다.
뒷풀이의 아쉬움을 남겨두고 무사히 서울에 도착. 상행길의 버스 안에서는
음주가무도 금하던데 좋은 점도 있었습니다. 도움쇠도 영리 목적의 산악회를
처음 따라와 보니 시행착오가 있었습니다. 반성하여 개선합시다.
그날의 산행 때 오랜 감기에 시달린 도움쇠의 컨디션이 좋지않아 표정이
어두웠던지 여러 산우들이 걱정해 주었는데 여러분들의 따뜻한 마음에
감사드립니다. 이 맛에 즐거운 마음으로 도움쇠를 한답니다. 하 하 하...
다만 시간에 쫓겨 즐거운 뒷풀이를 하지 못 한 것이 아쉬웠던 산행이었습니다.
참석 산우 : 기세환, 김삼모, 박기승, 박형채, 위윤환, 이경식, 이원무, 이재웅,
전작, 정해황, 조문형, 한양기, 김정남
"사랑에 빠지면 여자가 남자보다 아홉 배쯤 더 많이 좋아합니다"
조셉 캠벨의 '신화의 힘'에 나오는 얘기인데 많은 여성 예술가들이 왜 그토록
남자에게 집착하는 삶을 살았을까. 그 사랑이 당사자를 고통으로 밀어 넣는데도
끝끝내 그 사랑을 안은 채 불행의 나락으로 걸어 들어갔을까.
저 어리석고 서투르며 질투하는 삶이 바로 사랑의 본질이며 또한 예술의
핵심이라는 것을.... 사실 그것이 궁금했다.
왜 아홉 배인가, 누구도 근거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사회적으로 남자의 권력이 여자의 아홉 배쯤 크기때문일 수도
섹스할 때 느끼는 절정감이 남자의 아홉 배쯤 크기때문일 수도 있고
사랑할 때 느끼는 감정의 떨림이 남자의 아홉 배쯤 크기때문일 수도 있고
정자의 가격보다 난자의 가격이 아홉 배쯤 비싸기때문일 수도 있고
아무려나, 그 아홉 배쯤 큰 사랑이 그만한 축복이며 용기와 희생과
예술적 창조성으로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해서 사랑에는 여자가 더 용감하답니다.
특히 불륜의 사랑에는 더욱 더 하며 사랑에 눈 멀고 목숨 건 여자가 남자보다
아홉 배쯤 많다는 것을 우리가 알죠.
이번 산행은 수락산으로 정합니다. 2005년 1월의 8회 산행 때 오르고자
했던 코스를 함박눈때문에 길을 잃고 힘들고 가파로운 깔딱고개로 가게
되어 특히 임용복 수석의 원성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눈도 없으니 길을 잃을 일이 없어 수락산의 진수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산은 높지 않으나 코스 중에는 가장 길어서 단체산행 때는 소요시간이
두 시간이 넘을 겁니다. 도봉, 북한, 관악과 더블어 서울의 4대 명산 중의
하나이고 산우 중에는 이 코스를 가본 분이 없는 것으로 압니다.
아직은 날이 차가워 정상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하산하여 태백산행 때
못 다푼 뒷풀이의 한을 수락의 주막에서 풀어 봅시다.
하산코스는 정상에서 정합니다.
인간을 제외한 모든 만물은 자신을 바치는데 인색함이 없는 듯 합니다.
나를 비우고 그것들과 함께 살 수 있는 삶이 부럽다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 시를 만난 오늘부터 우리는 더 많은 것들을 사랑하며 살았으면 싶습니다.
이 동반시가 수락의 정상에서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 오는 지 기대해 봅시다.
수선화에게
정 호 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2006년 2월 2일
시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도움쇠 金 定 南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