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에 올라 봅시다(詩山會 제31회 산행)
(총동문회 시산제를 겸한 산행입니다)
산 : 관악산
일시 : 2006년 3월 5일 (일) 9시
코스 : 낙성대역-마당바위-말고개-정상-과천(혹은 서울대 입구)
소요시간 : 오름 2시간 내려옴 1시간 30분
모이는 장소 : 전철 2호선 낙성대역 1번출구
준비물 : 중식, 정상주 1병 (주최측에서 떡,돼지고기,과일은 준비)
연락 : 한양기(017-729-3457)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정호승<봄길>-
이제 봄이다. 가을에만 사랑하는 게 아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오고 가는 것을 모든 것을 사랑하자.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듯이 봄이 왔으니 여름도 멀지 않다.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멀어도 봄 같은 사랑의 마음으로 가다 보면 언젠가 끝이 보인다.
어깨에 무거운 짐을 가득 지고 먼 길을 가는 이여!
끝이 보이지 않으면 어쩌랴! 시작이 있었으니 끝이 있겠거니 하자.
길 없는 길도 있듯이 끝 없는 끝도 있단다.
사랑으로 시작하면 사랑으로 끝을 맺는단다.
2월 19일. 雨水. 대동강 얼음이 풀린다는 우수에 2004년 납회를 겸해 올랐던
추억의 비봉과 사모바위 코스를 오르기로 하고 거의 정시에 행운의 7인이
구파발에 모였습니다. 추위를 유난히 타서 겨울산행에 뜸했던 규율부장
나 원장이 오래만에 나타났는데 반가웠습니다. 그를 위해 택한 코스이기도
했으니 당연히 나와야죠. 걸어가자는 팀과 멀어서 택시를 타야한다는 의견이 갈렸지만
안내를 자처하고 나선 '북한산의 사나이' 임 수석과 이경식 산우의 의견이 강해
택시로 결정. 5대 2의 열세였어도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고...내 원 참.
두 사람의 강력한 카리스마에 다섯 명이 못 당했습니다.
매표소에서 내려 뒤풀이를 할 미림산장을 지나 부드러운 길을 따라 올라가니
산객들의 수가 점점 늘어나고 진관사의 연혁도 읽어가며 계곡을 쉬엄쉬엄 가는데
선녀탕의 얼음은 아직 녹지 않았습디다.
계곡의 얼음 색깔이 파란 것은 수질이 1급수에 가깝다는 것인데 거기까지는 아직
인간들의 때가 덜 묻은 청정지역이죠. 산우들이 싸온 귤을 먹으면서 계곡 건너의
매끈하고 잘 생긴 이름 없는 암벽도 보며 암벽을 자일 없이 오르는 젊은 산객들의
만용도 걱정해가며 지나온 구파발도 뒤돌아 보고 하늘 한 번 쳐다보고 물 한모금
먹다보니 어느 새 진흥왕순수비가 서 있는 비봉에 도착했는데 초행인 전작 산우와
나 원장만 올라갔습니다. 마음만...ㅎㅎㅎ
이경식 산우가 비봉을 배경으로 잘 생긴 용모의 두 산우의 사진을 찍어주는데 역시
멋있는 봉우리임에 틀림없습니다. 비봉의 뜻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땅에서 하늘로
새가 날아 오르는 날렵한 형상의 飛峰이고 둘은 신라의 진흥왕순수비가 옛 백제땅에
있다는 역사적 의미가 큰 碑峰임을 잘 기억하십시오. 역사는 승자의 편이고 전문적인
판단은 역사학자들의 몫이지만 우리가 자란 곳이 옛 백제땅인 빛고을이어서인지
조금은 섭섭한 마음들.....
어떤 산우가 "신라놈들이 밤에 몰래 세우고 도망친거지...그러고도 남을 놈들"이라
하던데 모두의 마음였을 겁니다. 도움쇠의 본관은 의성이고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
김부의 자손이니 신라인일 수도 있지만 그 쪽하고는 별로 가깝고 싶지 않다오.
충청도가 고향인 어느 시인의 말이 경상도 남자들은 너무 뻥이 쎄답니다.
그러면 전라도 남자들은.....
내가 너무 깊이 왔나...하 하 하.
지역적인 편견이나 선입관은 우리가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모르지 않죠.
비봉에서 사모관대의 형상을 하고 있는 사모바위까지는 10분 거리.
한 컷의 기념사진을 빼놓을 수 없는 것. 다들 미남입디다. 앞의 헬기장에서
식사하려 했으나 산객들이 많고 복잡하고 시끄러워 카리스마 임이
큰 목소리로 "앞으로-" 하니 모두들 군말 없이 따라가고 능선길을 내려오면서
2004년 도움쇠가 큰 맘 먹고 가져왔지만 참석한 산우들의 수가 너무 많아 겨우
한 잔 아니면 반 잔밖에 못 마셨던 53도의 독한 술 '마오타이'주 생각이 나더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먹으려고 한 병은 아직 남겨 놓았는데 그 날이 언제 올 지...
임 수석이 너른 터를 잡고 즐거운 식사의 시간. 오랜만에 나온 나 원장의 음식이
다양하고 푸짐했고 도움쇠의 마나님이 사다가 싸준 잘 익은 홍어와 새 신랑
임 수석의 정력제인 얇게 썰어진 등심과 버섯과 갖은 양념이 버무려진 버섯볶음은
그의 마나님의 정성스런 솜씨도 기막히게 좋았지만 정력제로서의
가치가 더 있다고 판단했는지 산우들의 손이 그 쪽으로 부지런히 들락거립디다.
이 산우의 삶은 낙지를 곁들여 서울막걸리로 먹산회답게 배부르게 먹고
시낭송의 시간!
그 날의 동반시 강은교님의 '사랑법'과 태백산과 수락산에서 추워서 미뤘던 시 중
정호승님의 '수선화'를 도움쇠가 읽었는데 시가 좋았던지 나 원장이 시를 적은
쪽지를 뺏어갑디다.
해서 나머지 태백산에서 읽지 못한 서정윤님의 '사랑한다는 말은'은 뒤풀이 때
나 원장에게 낭송시키려고 생각했는데 막상 뒤풀이의 시간이 즐거웠는지
내가 또 잊었습니다.
다음에 꼭 읽게.
푸짐한 두부김치와 참기름과 향긋한 들깻잎 냄새가 잘 어우러진 도토리묵으로
가볍게 한잔하고 다음 산행지를 총동문회 관악산 시산제에 합류하기로 결정하고
헤어졌습니다. 미림산장의 좁은 봉고를 타고 편하게 나왔습니다. 그 날도 좋은 벗들과
멋진 산과 향기로운 시와 맛난 음식과 걸쭉한 술이 있어 즐거웠습니다.
참석 : 이경식, 임용복, 전작, 나창수, 이재웅, 한양기, 김정남(비봉의 7 인)
그 날의 낭송시 '사랑법'이 가슴에 닿지 않아 무슨 의미를 가슴에 담아야할 지
모르겠다고 한 총무와 임 수석이 말했는데 시는 읽고 의미를 생각하지 말고
가슴에 닿는 것이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그만이니 그냥 버려도 언젠가는
끄집어낼 수 있다 했거늘.....
나름의 해석을 하자면 사랑하는 방법은 서둘지 말고 침묵으로 하고 기다림의
구름이 앉아 있는 삶의 도(道)처럼 하라는 의미...
헤어짐도 아름답게, 흐르는 것처럼 떠나는 사람도 잡지 말고...
시의 종장 부분의 '가장 큰 하늘'은 아버지이다.
그대 등 뒤에 언제나 푸르고 너른 어깨를 가진 하늘처럼 서 있는 우리들의 아버지...
항상 든든하고 어려움을 말 없이 견뎌내면서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아버지...
현재의 우리들...
이 부분이 시의 절정이다.
이번 산행은 총동문회 시산제가 열리는 관악산으로 정했습니다. 우리는 태백산에서
미리 했지만 우리도 총동문회 소속이라 불참할 수 없다하여 내린 결정입니다.
시산제는 음력 설이 지나고 입춘이나 정월 대보름 후에 하는 것이 원칙이라
앞으로는 섭섭하지만 따로 하지 않고 총동문회가 주최하는 시산제에 참여하는
것으로 정합니다. 산우들의 다른 의견이 있으면 전과 같이 할 수도 있습니다.
년회비는 동창회 총무로 회비 집행권자인 임 수석이 내주었으니 우리의 든든한
배경입니다. 참가비가 있지만 영리한 한 총무가 요령껏 할 것이고 총동문회가
정한 들머리는 과천이지만 그 코스는 모두가 싫어해서 우리는 낙성대를 들머리로
정했습니다. 날머리는 등산대장 위 산우가 서울대로 하자 했지만 뒤풀이를
하기에는 과천이 좋죠.
숲 속의 주막에서 사랑의 전도사 조문형 산우가, 그레이스호텔 옆의 두부집에서
위 산우가 맛있게 쏘았던 생각이 새롭습니다.
그 날 모두가 정합시다.
관악은 예로부터 개성 송악, 포천 운악, 양주 감악, 가평 화악과 더불어
경기 五嶽의 하나로 불리며 정상의 암봉과 암릉미가 뛰어난 산입니다.
남쪽 줄기는 과천,청계산을 거쳐 수원의 광교산에 이르고
서로는 삼성산 동으로 청계산 남으로 모락산 남서에 수리산 등이 한눈에 잡히고
북으로 인왕산에서 북한산을 거쳐 동북쪽 불암산 수락능선까지 아물거립니다.
특히 연주대의 수직의 직벽으로 솟아오른 까마득한 벼랑 위에 지어놓은 응진전은
몸에 전율이 감돌만큼의 절묘한 풍경이라서 달력이나 산수화에도 자주 등장합니다.
또한 연주대는 고려가 망하자 남은 유신 열 사람이 관악산 절에 숨어 살며
송도의 왕궁을 향하여 통곡을 했다하여 임금을 사모한다는 뜻으로
연주대(戀主臺)라 불러지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관악 산행에 산우 가족 여러분의 많은 참가를 바랍니다.
사랑은 자로 재듯이 오고 가는 것이 아니다.
5일장처럼 때 맞춰 오고 가는 것도 아니다.
날이면 날마다 오고 가는 것은 더욱 아니다.
어느 날 화선지에 먹물이 먼지듯 그대를 받아들여 물들어 간다.
꽃이 필 땐 꽃이 지는 훗날을 생각하지 말자.
오늘 홍매화가 피었거든 그것만 보아라.
그 홍매화 그늘 아래서 춤을 추는 게 사랑이라는 이름의 기차다.
놓친 열차가 아름답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놓친 열차의 꽁무니는 아름답지 못 하다는 것을 우리는 모른다.
뒤에서 오는 여인이 아름다운 것처럼 고운 봉숭아 꽃빛 사랑은 뒤에서도 온단다.
하여 사랑이 올 때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눈만을 정면으로 응시하자.
그런 사랑은 다른 곳을 쳐다보지 않는다.
아아... 우리는 언제나 뒤에서 오는 꽃처럼 아름다운 사랑을 겪어볼까나!
그런 사랑은 헤어짐도 아름답다는데........
등산대장 위윤환 산우가 사랑타령을 자주 하기에 이번 글은 사랑으로 도배했습니다.
동행시 '사랑이 올 때'는 당연히 그를 위해 선택했습니다.
하여 낭송자는 위 산우이니 미리 목을 다듬고 와서 시인보다 더 시인답게 읊조리고
우리는 "지화자! 좋다"라고 추임새를 소리쳐 관악의 정상 연주대를 울리게 합시다.
이 시가 위 산우의 가슴에 어떻게 다가 올 지 흥겨운 뒤풀이의 시간에 들어 봅시다.
사랑이 올 때
- 신 현 림 -
그리운 손길은
가랑비같이 다가오리
흐드러지게 장미가 필 땐
시드는 걸 생각지 않고
술마실 때
취해 쓰러지는 걸 염려치 않고
사랑이 올 때
떠나는 걸 두려워하지 않으리
봄바람이 온몸 부풀려갈 때
세월가는 걸 아파하지 않으리
오늘같이 젊은 날, 더 이상 없으리
아무런 기대 없이 맞이하고
아무런 기약 없이 헤어져도
봉숭아 꽃물처럼 기뻐
서로가 서로를 물들여 가리
2006년 2월의 마지막 날 새벽에
시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도움쇠 金 定 南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