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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검단산과 팔당호 (詩山會 제39회 산행)

검단산과 팔당호 (詩山會 제39회 산행)

산 : 검단산(하남시. 650 미터)

코스 : 산곡초등학교-약수터-정상-큰고개-창우동 종점

소요시간 : 오름 1시간 30분 내려옴 1시간 30분

일시 : 2006년 7월 2일(일) 9시

모이는 곳 : 전철 2호선 강변역 1번 출구

준비물 : 박형채- 보리를 섞은 밥, 무채, 생채

최용식-나물류 3가지 이상, 플라스틱 그릇 14개

나창수-가지나물, 열무김치, 고구마순

위윤환-냄비나 양푼, 낙지

기세환-순창고추장, 순창참기름

한양기-부추, 양념된장

이원무-후식

이재웅-플라스틱 숟가락 14개

김정남-상추, 얇게 저민 마늘, 청양고추(정해황 산우가 대신 하소)

전 작-볶은 소고기

한천옥-한 총장과 상의

임용복-한 총장과 상의

공 통-살얼음낀 막걸리

연락쇠 : 한양기(017-729-3457)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귀천(歸天. 천상병) 전문

1993년 4월 8일. 아침밥을 먹던 천상의 시인 천상병이 갔다.

아니 죽은 것이 아니라 한마리 새가 되어 하늘로 날아간 것이다.

자신이 죽음의 강줄기 되어 우리의 삶에 힘과 빛이 되려고 귀천하였다.

우리들의 사랑방 인사동 해인에서 세 번을 꺾어 가다보면 그의 미망인이

운영하는 찻집 '귀천'이 나온다.

일곱 살배기 시인에게 대한민국은 간첩의 누명과 정신병동밖에 준 것이 없건만,

가난해야 행복하다며 시와 술과 노래를 벗 삼아 취해 살았던 그가

맨 뒷자리에서도 우리 시대 가장 사랑 받는 시인으로 삶의 열애가로,

인간의 찬미가로, 순수 언어의 음악가로 살았던 그가 이승의 소풍을 끝내고

저승으로 소풍을 가셨으니 우린 언제쯤이나 그의 노래를 따라 불러 볼까!

아아! 아름다운 시인이여! 천상(天上)의 시인이여!

6월의 셋째 일요일. 6.25 한국전쟁 56주년을 일주일 앞둔 6월 18일, 8시.

일기예보는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소나기가 올 수도 있다고 한다.

무더운 여름날, 깊은 산에서 소나기를 맞아본 사람은 안다.

그게 시원한 청량제와 다름없다는 것을...

항상 오던 정 산우와 전 산우가 없어 서운했으나 그들만의 사정이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

남기인 산우가 불참의 미안함을 일부러 모이는 곳까지 와서 잘 포장된

초콜릿으로 메우고 갔다. 아름다운 사람이다. 이재웅 산우는 자기가 오늘은

많이 싸오지 못해 그것을 나눠주는 것으로 미안함을 대신한다 했는데 천만의 말씀,

소백산의 최고급 메뉴였던 추어탕을 우리가 어찌 잊으리까! 그것만으로

앞으로 백 번을 우려먹어도 됩니다. 하 하 하!

24개를 2개씩 12명이 나눠 맛나게 먹었는데 가는 길의 달콤함만큼이나 뒤돌아

가는 그의 마음도 유쾌하고 달콤했을 것을 의심치 않습니다. 차 속에서 막걸리의

수를 세어 보니 11병, 막걸리 전선 이상 무. 가평을 지나 북면에 접어드니 9시 45분,

최 교수의 라디오 대담프로를 듣고자 KBS FM2 방송의 채널을 찾았으나 지역은

이미 강원도와 접경지역인 오지라 수신상태가 좋지 못해 아쉽게도 찾지 못하고 연인산의

들머리인 백둔리, 화악산의 들머리인 관청리, 명지산의 들머리인 적목리를 지나니 바로

석룡산의 들머리인 38교에 도착. 6.25 한국전쟁 전에는 남북의 경계여서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56년이 지났지만 잊혀질 수 없는 전쟁이죠.

10시 3분.

예정한 시간에 정상을 향하여 출발. 조무락골의 시원하고

맑게 흐르는 계곡을 옆에 두고 싱그러운 녹음이 잔뜩 우거진 편안한 오솔길을

걸으며, 한국전쟁에 대한 최 교수 집안의 내력을 들었는데 그의 집안만큼이나

우리 집안의 내력도 슬프다오. 모두가 일어나서는 안 될 참혹한 전쟁의 슬픈 부산물이죠.

전쟁이 일어나면 군인보다 민간인이 더 많이 죽는다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임을

지금도 우리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아버지와 누이를 좌익의 손에 잃고 복수심에 불탔던 장인은 24세의 젊은 나이에

지리산 서남지구 빨치산 토벌대의 중대장을 지내면서 피아간의 전투를 통해

수많은 죽음을 직접 봤는데, 간혹 술 한잔 들어가면 '나만큼 시체를 많이 본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는 처연한 말씀을 여러 번 들었는데 치열했으며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 있던 슬프고 괴로웠던 전투에 관한 이야기는 훗날 다시 합시다.

장인의 이야기는 지루하지 않게 서 너 시간은 이어집니다.

10시 18분.

하얀 색의 사이딩 판넬로 밝게 외벽을 장식한 카페를 지나니 바로 산행지도가 있는

갈림길이 나오고 산우들에게 오늘의 코스를 브리핑. 정상 3.7km. 조무락골보다

물이 적은 부채골로 접어든다. 편한 길인데 녹음이 우거져 온통 하늘을

가린다. 여기서부터 나 원장은 들꽃을, 박형채 산우는 산나물과 약초를 챙긴다.

마음이 착하거나 아름다운 사람은 그만큼 꽃이나 식물을 좋아하는 가보다. 벌써부터

입산주 타령이 나오는데 물이 거의 흐르지 않고 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진 계곡이라

바람이 없어서 땀이 많이 흐른다. 자기의 컨디션이나 능력대로 쉬엄쉬엄 산을

오르는 시산회의 성격으로 봐서는 관광버스를 통한 산행은 맞지 않는다는 것이

모두의 생각입니다. 여자 총무가 뒤에서 심하게 몰아치던 태백산 시산제 때 겪어 보니

그러한 마음이 더욱 확실합니다. 회비를 알뜰하게 모으다 보면 25인승 중형버스를

마련할 때가 오겠지요. 부디 차기 회장단이 이루소서.

꿈이 절실하고 소중하면 언젠가는 이루어집니다.

 

그리하여 기념으로 지리산 천왕봉에 올라 봅시다.

토요일 오전에 출발하면 오후에 진주에 도착하여 임진란 3대첩의 하나인

진주성 옆을 흐르는 남강 가에 앉아 기생이 아닌 최경희 장군의 부인이었던 논개와

애틋한 술 한잔 나눠 봅시다. 새벽에 터미널 근처의 해장국집에서 설렁탕이나

해장국으로 속을 채우고 중산리 매표소에서 시작하여 빨치산 본부였던

법계사를 지나 천왕봉에 올라 마지막으로 우뚝 솟은 백두대간의 기를 마음 것 받고

고사목으로 뒤덮인 황량한 제석봉을 지나 아늑하게 자리잡은 장터목 산장에서 목을

축이고 산의 높이만큼이나 폭이 넓은 중산리 계곡의 아름답고 새빨간 단풍을

보며 천천히 내려옵시다. 월요일이 쉬는 날이면 이왕 가기 어려운 지리산을 간 김에

12번째 국립공원인 주왕산까지 갑시다. 국립공원은 언제나 그 값어치를 합니다.

지리산의 여독이 심하여 정상에 오르지 못하면 어떻습니까!

제1.2.3폭포를 지나 전기 없는 내원마을까지 가서 폐교 옆의 주막집에서 손두부와

도토리묵을 안주로 동동주 한 잔이면 충분한 즐거움. 오는 길에 갯내음 물씬 풍기는

강구항에서 향긋한 맛이 나는 살이 통통하게 오른 가을의 영덕대게를 매취 순을

곁들여 먹으면서 대취해 봅니다.

아아, 생각만으로도 이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다시 석룡산으로....

실개천 가에서 잠시 쉬면서 목도 축일 겸 입산주를 한 잔씩 하는데 차가운 살얼음이

목을 지날 때의 서늘한 짜릿함을 무엇에 비할까.

주변에 점잖은 노인들이 계셔서 천사표 박형채 산우가 방울토마토와 함께 표주박으로

한 잔 권하니 그 중 한 분이 반색하며 맛있게 드시는데 우리의 마음도 그 분만큼

맛있었습니다.

 

11시 30분.

계곡을 지나 940봉의 능선에 오르니 능선 너머로 싱그러운 참나무 향을 가득 실은

시원한 산들바람이 분다. 뒤쪽의 명지산과 국망봉은 녹음이 마음 것 우거져 볼 수 없고

경기도에서 가장 높은 산인 남쪽의 화악산만 1,450 미터의 높이로 웅장하게

솟아 있더이다. 언젠가는 우리가 올라야할 산입니다. 도움쇠의 산행수첩을 보니

2003년 11월 13일에 화악산 중봉에 올랐는데 서울은 을씨년스럽게 흐렸지만 고도가

높은 화악산의 정상에는 겨울철에나 볼 수 있는 많은 눈이 내렸습니다. 그때를 전후로

화악산의 주변 봉우리인 눈 덮인 애기봉과 촛대봉(깃대봉)도 다녀왔습니다. 계속되는

능선 길의 봉우리를 오르고 내리며 화악산도 보면서 쉬엄쉬엄 사진도 찍고 막걸리도

한 잔하면서 가니 반가운 정상. 1시, 정상은 참나무들이 울창하게 들어 차있고

바위들이 솟아 비좁았지만 기어코 단체사진 한 컷. 김순단 선생은 한 시간 전에

도착했다니 대단한 체력을 갖춘, 바람같이 빠른 산녀입니다.

올랐으니 먹어야죠. 식사터 담당 위 산우가 빠르게 내려가서 찾은 곳은 녹음이

우거진 편평한 점심터. 수가 많아 음식들이 두 패로 나뉘고 오고 가는 맛난 음식으로

부산했지만 '처음처럼'의 건배를 빼놓을 수 없는 일. 시원하게 한 잔을 하니

피로가 가시고 두 잔을 드니 얼큰, 세 잔을 드니 배가 불러오면서 식사가 끝나갈 때

나 원장이 다음 산행 때는 우리도 비빔밥을 먹어 보자는 뜻밖의 제안이 있었고 모두가

동의하여 1인 2-3찬의 준비를 하기로 했는데 기발한 착상의 파격적인 즐거움이다.

시 낭송의 시간! 기 산우가 작심하고 온 듯, 맨 먼저 시를 꺼내드니 오늘의

시 낭송은 그의 몫. 약간은 가늘지만 부드러운 테너풍의 미성으로 송하선 시인의

<사랑을 위한 서시>를 우리 모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성이 가득한 마음으로

읊었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저 높은 산의 마음을 배우는 일임을 그때 알았다.

산신령이시여, 오늘의 느낌은 어떠했나이까! 산에 오는 모든 이의 근심, 걱정

그리고 세속의 모든 티끌을 받아 주소서. 그리하여 산에서 내려갈 때는 모두의

마음이 깨끗해지도록 어루만져 주소서. 오르는 길보다 내려오는 길은 쉬워 바로

방림고개에서 우축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오며 작은 와, 폭, 소로 이루어진

조무락골에 가까워지니 시원한 물소리가 반기고 물가에서 잠시 휴식.

탁족과 세심을 했다. 도움쇠는 머리까지 감다가 목에 두르는 수건을 빠르게

흐르는 계곡물에 빠뜨려 잃었는데 산신령이 갖고 싶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밑에 있던 한 총장의 행동이 조금만 빨랐어도 잊지 않았을 텐데 그도 놓치면서

작은 소에서 기어이 떠오르지 않은 것은 석룡산의 산신령이 시산회의 시를 듣고

하- 좋아서 여운을 계속 즐기고자 대표인 도움쇠의 수건을 잠시 가져간 것으로

생각하니 아깝지 않더이다. 세상사 마음 먹기 달렸지요. 一切唯心造!

하산하니 3시 40분.

뒤풀이를 하려고 올라갈 때 눈여겨 보아둔 계곡 옆의 집을 찾았으나 정화차원으로

추정되지만 모두 영업을 하지 않아 명지산의 들머리인 적목리까지 가서 자리를 잡고

즐겁고 유쾌한 뒤풀이 시작. 감자전과 도토리묵, 알맞게 잘 익은 묵은 김치를 곁들인

손두부에 시원한 맥주와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주흥이 도도할 즈음, 월드컵이 화제로

떠오르며 내기의 고수 기 산우가 프랑스 전의 스코어 맞추기 내기를 제안, 12명이

1만원씩 내고 각자 예상하는 스코어를 기재하였으며 도움쇠는 마지막에 산우들이

하지 않은 1:1로 결정했는데 족집게 점쟁이가 됐습니다.

스코어가 결정되는 순간의 새벽에 기 산우에게 연락이 와서 바로 받으니 승리 확정.

다음 산행 때 뒤풀이는 즐거운 마음으로 내가 책임집니다. 많이 참석하소서.

이겨서 즐겁고, 베풀 수 있음에 감사하는 일석이조의 기쁨!

그날도 내기의 설레임, 진수성찬과 살얼음낀 막걸리, 반가운 친구들, 시원한 계곡물,

산신령, 새소리가 있어 행복했습니다.

조 산우와 한 총장이 또 수고했습니다.

참석 : 기세환, 위윤환, 이재웅, 나창수, 이원무, 한양기, 박형채, 김순단,

조문형, 이경식, 최용식, 김정남 (12人의 석룡산인들)

 

 

열정적인 사랑의 이야기

가까이 가만히 다가와 이제 내 그대에게 하는 말을 들으라

나 그대를 사랑하노라, 오 그대는 온전히 나를 사로잡았으니,

오 그대와 나 다른 이들로부터 달아나, 자유로이 무법자로서,

자취도 없이 사라지자.

공중에 뜬 두 마리 매도, 바다를 헤엄치는 두 마리 물고기도

우리보다 거침없지는 못할지니.

저 사나운 폭풍우가 나를 꿰뚫고 내달음치고

나는 정열에 넘쳐 전율하네.

우리 두 사람 갈라지지 않기로 약속한 맹세,

나를 사랑하고 내가 내 목숨보다도 사랑하는 여인이여,

이 맹세로서 다짐할지니

오 나의 모든 것을 기꺼이 그대에게 바치리.

-월트 휘트먼(갇혀 소용돌이 치는 물가에서)

이제 우리의 수명은 85세까지도 건강하게 살 수 있단다.

우리가 섹스를 경원시 하고 사랑도 멀리 하기에는 남은 생이 너무나 길다.

오는 사랑 막지 말고 가는 사랑은 붙잡아서라도 열정적으로 살자.

사랑 없는 인생이란 황량한 사막과 같은 것임을 잊지 말자.

<신곡>의 저자 단테는 70살이 넘어 16세의 아름다운 처녀 베아트리체와

열정적으로 깊은 사랑에 빠져 생을 즐겼음을 우리가 알고 있지 않는가!

 

 

이번 주 산행은 검단산으로 정합니다. 도움쇠의 불찰로 100대 명산 중의 하나인

홍천의 공작산을 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80노령인 장인의 생신을 큰처형이 도움쇠와

사전협의 없이 7월 2일로 정하여 가벼운 다툼이 있었으나 다른 사람들의 일정변경이

불가능하여 부득이 이번 산행지를 변경합니다. 공작산을 가 본 산우가 없고

들머리와 날머리를 잡기가 쉽지 않아 한 총장과 등반대장 위 산우와 협의하여

결정하였으니 해서하소서. 이경식 산우까지 못 가니 산행후기는 기 산우가 쓰소서.

13회 산행 때 올랐던 검단산의 그 코스로 갑니다.

창우동으로 올라가서 산곡초교로 내려오면 뒤풀이에 곤란을 겪게 되니 산곡초교로

올라가야 합니다. 하산할 때 팔당호를 보며 내려와서 뒤풀이 때 백목련이 화사하게

피었던 집에서 또 뒤풀이를 하는 게 좋을 듯 합니다. 그때 정해황 산우가 베풀었는데

친절하고 맛이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셋째 주 산행은 15.16.17일이 연휴이므로 순연하고

마지막 다섯째 주에 공작산으로 갑니다.

세상에 가장 맛있는 술은 공짜술이고, 둘은 내기에 이긴 판돈으로 먹는 술이요,

셋은 외상술이라오. 우리는 그날 세상에서 둘째로 맛있는 술을 먹게 되니

모두 참석하여 호탕하게 같이 마셔 봅시다. 박 산우가 자주 참석하는 순서대로 고소한

들기름 향이 물씬 풍기는 멋드러진 부채를 선물한다니 무더운 여름이 지나가기 전에

받아 봅시다.

 

 

이번 산행의 동반시입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가질 수 없으면 잊어라.

내 것이 아니면 버려라.

사랑의 기쁨은 끝이 있지만 사랑의 고통은 끝이 없을 수도 있다지요.

그래서 목숨을 건 사랑도 있고 그 고통으로 인해 목숨까지 버리는 사랑도 있답니다.

이제 그러한 죽어줄 수도 있는 사랑이 온다면, 그 사랑이 훗날 버려진다 해도

우리는 그 고통을, 슬픔을 피할 수 없다면 즐깁시다. 잊을 수 없다면, 내 것이 아니면

버립시다. 목숨이 다하도록 사랑은 오고 갑니다. 가져지기도 하지만 버려지기도 하겠지요.

도움쇠가 없는 검단산의 정상에서 오랜만에 나타나는 임 수석이 읊으소서.

시인보다 더 시인답게 읊어 보소서.

사랑의 전설

서정윤

사랑은 아름다워라

그대 눈빛을 보고 있으면

나는 촛불이 다 타는 것도 잊고

떨리는 내 그림자를 숨기며

그냥 그대 앞에만 있고 싶어라.

사랑은 굳건하여라

나의 생각이 요구하는 어떤 것도

그대를 향한 믿음의 나무보다

튼튼하지 못하고

한갓 말이 부리는 재주에

흔들리지 않는 사랑으로

내 그대에게 다가가리니.

사랑은 생명이어라

메마른 마음의 깊은 계곡에

풀이 돋아 꽃을 피우는 사랑은

죽음조차 함께할 수 있는

새로운 전설이어라.

하지만 사랑은 아픔이어라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오랜 기다림으로도

사랑의 속삭임을 들을 수 없어

내 소중한 나를 다 버려도

사랑의 미소는 잡을 수 없다.

사랑의 아픔은 더욱 소중하여라.

오래 남는다.

사랑의 상처는 너무 오래 남는다.

아득한 시간이 흘러 아픔은 사라져도

상처의 흔적은 남아

슬프지 않은 추억이 된다.

사랑의 전설이 된다.

사랑의 전설은 언제나 아름답다.

2006년 6.25의 날 새벽에 쓰고 6월 27일 새벽에 가필과 정정을 하다.

詩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도움쇠 金 定 南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