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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공작산과 수타사(詩山會 제43회 산행)

공작산과 수타사(詩山會 제43회 산행)

산 : 공작산(홍천. 877 미터)

코스 : 공작골 삼거리-솔밭-정상-안공작재-공작골 삼거리(원점회귀)

소요시간 : 오름 2시간 30분 내려 옴 2시간

일시 : 2006년 9월 3일 (일) 7시 30분

모이는 곳 : 전철 2호선 잠실역 3번 출구 너구리상 앞

준비물 : 중식, 살얼음낀 막걸리

연락 : 한양기(017-729-3457)

시산회(이경식) 블로그 : blog.daum.net/sisan20

도움쇠의 블로그 : blog.daum.net/yc012175 & blog.naver.com/yc012175

 

 

사랑이 고통일지라도 우리가 고통을 사랑하는 까닭은

고통을 사랑하지 않더라도 감내하는 까닭은

몸이 말라 비틀어지고

영혼이 까맣게 탈진할수록

꽃피우지 못하는 모과가 꽃보다 지속적인 냄새를 피우기 때문이다

 

꽃피우지 못하는 모과가

꽃보다 집요한 냄새를 피우기까지

우리의 사랑은 의지이다

태풍이 불어와도 떨어지지 않는 모과

가느다란 가지 끝이라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의지는 사랑이다

 

오, 가난에 찌든 모과여 망신(亡身)의 사랑이여!

-모과(김중식)전문

 

 

모과를 처음 접하는 사람은 4번 놀란다. 못 생긴 외모에, 그윽한 향기에, 떫음에,

한약재로 유익하게 쓰인다는 것에 놀란다.

 

모과 냄새를 향기라고 표현하면, 모과는 꽃에 대한 콤플렉스를 자인하는 꼴이다.

냄새와 향기는 다르다. 그러니까 '집요한 냄새'는 지독한 자의식이다. 가난에 지지

않겠다는 도저한 사랑의 의지다. 사랑이 의지라고? 그렇다. 역설적이게도 사랑은

인위(人爲)다. 사랑이 지극한 인위가 아니라면, 사랑은 탐욕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문재

 

8월 20일의 아침, 일기예보에 의하면 비가 내리지 않는다 했으나 아침에 일어나

하늘을 보니 구름이 잔뜩 끼어 있다. 마나님이 상계역까지 태워준다니

흐린 날의 즐거운 일!

걸어서 20분이나 미리 힘을 뺄 일은 없다. 차에 오르자 비가 약간 뿌린다.

처음으로 가 보는 코스라 마음이 설레고 우의를 세 벌이나 챙겼으니 비가 오더라도

강행해야겠다는 생각! '오늘은 내 남은 생의 첫날'이라는 책을 보면서 구파발에

15분 전에 도착. 그 책은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문인 101인의 가상유언장을

수록한 책인데 내용에 대하여 후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겁니다.

 

아홉 산우가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학교에서 급히 연락이 와서 불참하게 된

한 교장과 피곤해 하는 조 전도사가 불참하고 대신 새 신랑인 임 수석의 모습이

보이니 무척 반갑다. 정 산우가 절필사건의 원인이 자기인 것처럼 사과의 말을

했으나 천만의 말씀, 냉방이 꺼진 무더운 사무실에서 열심히 쓴 장장 3시간 30분의

작업을 망가뜨린 망할 놈의 벼락을 탓한 도움쇠의 극히 신경질적인 반응이었으니

전혀 개의치 마소. 2002년 여름 무렵 약 70회의 산행메모를 망가뜨린 것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하드디스크의 장난이었는데 온전한 복원은 불가능했고

운전기사의 수첩만으로 기억에 의존하여 복원했으나 오르는 시간과

내려 온 시간의 정확성은 상실하고, 그 후로는 작업 중인 글은 내문서에

저장하지 않고 반드시 메일의 임시보관함에 보관합니다. 산우들도 유의하고

조심하소서.

 

9시 20분, 의정부행 34번 버스(704번도 간다)에 타고 35분에 푸른 농원에서 하차.

올해 휴식년제에서 해제되어 '밤골지구'라는 이정표가 너무 작은 글씨로

표시되어 있다. 오히려 무속절인 '국사당'의 표시가 더 크고 선명하다.

9시 40분, 매표소에서 표를 끊는데 임 수석이 매표소 여인에게 말을 건넨다.

혼자 심심하겠다는 등 매표시간을 물으니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라 하니

그 전에 오면 입장료를 아끼겠다는 등, 어쨌든 즐거운 농담. 그 여인네도 지지 않고

말을 받는데 심심했거나 미남들의 집단이라 자기도 즐거웠으리라.,,

 

시작부터 화기애애하다. 임 수석의 덕분이다. 외길이라 오솔길을 5분쯤 오르다

계곡을 만났는데 가뭄 탓인지 말라 있다. '북한산의 다람쥐'라는 사나이의 말에

의하면 북한산의 계곡 중에서 가장 넓고 수량이 풍부하다 했는데 계곡에 물이 없어

약간 실망했다. 건너서 돌길을 오르니 바로 능선길이 시작되고 군데군데 단풍나무가

보이니 가을의 단풍 산행코스로 좋겠다. 가파르지 않은 능선길을 따라 걸으니 왼 쪽으로

북한산의 맨 북쪽능선인 상장능선의 선이 뚜렷하고 너머로 도봉산의 오봉능선도

보인다. 사기막골이라는 이정표가 자주 보이는 걸 보니 그 쪽에서도 오르는 코스가

많은 듯 하다.

 

따가운 여름 해가 없고 선선한 산들바람이 불어 주니 산행하기에 적합한

날이라고 이구동성! 이 코스는 10년동안 산객들의 발걸음을 거부한 코스라

북한산의 코스치고는 길이 넓지 않다. 십 수년 전에 임수석이 올랐다는데

마지막이 가파르다고 겁을 주나 우리가 누군가! 최소 500회 산행을 이루고자 하는

산객들이 아닌가! '추월금지'를 외치는 나 원장이 없어 도움쇠가 오랜만에

앞에서 걸으니 따라오는 전작 산우가 약간 힘겨워한다. 두 번의 산행을 거른 탓이다.

살얼음낀 막걸리를 한 잔씩하고 피로회복제인 홍삼젤리도 빨면서 40분쯤

쉬엄쉬엄 걸으니 임 수석의 말대로 약간 가파른 암릉이 시작된다.

 

오른 쪽으로 원효봉능선이 뚜렷하다. 한 총장의 입담이 없어 심심했으나

임 수석과 기 산우의 EDPS(음담패설의 이니셜)성 입담이 걸쭉하게 펼쳐지니

가파른 암릉도 힘들지 않고 쉽게 오른다. 마침 한 총장의 반가운 전화가 왔는데

'마나님과 무주구천동으로 피서왔는데 어제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오늘은

안개가 잔뜩 끼어 답답하고 재미가 없다'고 한다. 초상을 치루느라 힘들었을

마나님을 위로해줄 목적으로 함께 갔는데 우리의 나이가 이제는 부부만의

여행보다는 친구끼리의 회동이 더 즐거운 나이가 되었을까? 되돌아 보고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마침 울창한 숲 사이로 멀리 숨은 벽 암릉이 보인다.

인수봉과 백운대, 그 사이로 뚜렷하게 뽀쭉한 삼각형으로 우뚝 솟은 암릉인

숨은 벽을 배경으로 한 컷씩.

 

11시, 마지막으로 가파른 암릉을 올라 세 봉을 배경으로 단체사진. 멋있는 봉우리다.

간식으로 정해황 산우의 쫄깃쫄깃한 쑥떡과 전작 산우의 오이를 깎아 먹으면서

하산 코스를 결정하는데 7 : 1로 우이동으로 정해졌다. 유일한 소수의견은

임 수석인데 그의 무릎 탓이다. 그는 우리와는 반대로 오르는 것이 어렵고

내려올 때는 무릎이 괜찮다고 한다.

숨은 벽은 가파른 암릉이라 자일을 타고 오르는 산객들이 보였으며, 공원 직원들이

통제하고 있었는데 안전장구를 갖춘 산객들만 올라 가도록 만류하고 있는 것

같았다. 숨운 벽의 오른 쪽으로 내려 가니 계곡과 능선의 갈림길이 나오고

우리는 능선 쪽으로 오른다. 10분을 가니 샘이 나왔는데 시원한 물맛이 상큼하다.

10분을 더 가니 호랑이 굴이 나오고 사람이 하나 쯤 들어갈 만큼의

좁고 짧은 협곡이 나왔는데 부는 바람이 세차 냉동실은 비교할 바가 못된다.

 

12시 5분, 너른 바위에서 터를 잡고 막걸리의 시간. 도움쇠가 깜박 잊고

홍어를 싸오지 못 했는데 미안했다. 막걸리는 있으나 위 산우의 오징어무침만으로

안주 삼아 살얼음낀 시원한 막걸리로 정상주 한 잔씩. 백운산장을 거쳐

하루재를 넘는데 영봉으로 가는 코스가 숨은 벽 코스와 함께 1월1일부터

통제가 해제되어 언젠가는 가 볼 수 있겠다. 당장 그 코스로 가자는 산우가 있었으나

다음을 기약하고 도선사 광장으로 가서 셔틀버스로 우이동 종점으로 하산.

 

즐거운 뒤풀이 겸 점심시간! 주인이 남원사람인데 맥주와 소주로 소맥주를 제조하고

부침개, 묵, 두부김치, 뼈 없는 닭발을 안주로 배를 채우고 가려는데 기 산우가

시 낭송을 생략할 수 없는 일이라며 시를 꺼내든다. 위 산우가 또 사랑타령이라고

항의 했으나 이원무 산우가 사랑타령을 가장 자주 주장한 사람이 위 산우라며

항의를 묵살. ㅎㅎㅎ

위 산우가 동반시를 한 번 선택해보소서. 6개월의 산행계획을 미리 선정하자고

제안했지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우선 계획대로 산행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신뢰도가 떨어질 것 같습니다. 위 산우가 이런저런 제안이 많은 것은

시산회에 대한 사랑이고 사랑이 있기에 따뜻한 관심을 기울인다고 생각합니다.

조용히 그의 낭송을 듣고 아쉬운 마음으로 헤어짐. 그날도 좋은 산우들, 새로운 코스,

숨은 벽, 선선한 날씨, 시원한 맥주, 조촐한 점심이 있어 즐거운 하루였다.

 

숨은 벽과 인수봉, 백운대를 뒤 쪽에서 찍었는데 후에 내 블로그에 올릴 테니 감상하소.

절경입니다.

 

기 산우나 임 수석처럼 걸쭉한 입담도 없고 그만한 자료도 없으니 나름대로

생각해 본 산과 여자를 비교해 본다. 여기까지가 도움쇠의 한계이다.

다만 산과 여자를 비교함에 양자를 비하할 의사는 전혀 없다.

 

산과 여자가 같은 점

1.정상까지 올라야 올랐다고 말할 수 있다.

중간에 가다가 마는 놈, 올라가기도 전에 내려오는 놈, 들머리에서 놀다 오는 놈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밑에서 놀다 왔으면서 정상을 정복했다고 떠드는 놈은

정말로 치사한 놈이다.

2.계곡도 봉우리도 숲도 있다. 더구나 졸졸 흐르는 물도 있다.

3.명산은 또 가고 싶어진다.

4.명산은 가도 가도 질리지 않는다.

5.정상을 오르기까지는 맑은 날, 흐린 날, 비 오는 날, 눈 내리는 날,

바람 부는 날 등이 있다.

6.명산일수록 수많은 사람이 자주 오르내린다.

7.들머리를 제대로 찾으면 정상을 오르기가 쉬우나 첫길을 잘못 잡으면 어렵고 힘들어

시간이 많이 걸린다.

8.들머리를 제대로 찾더라도 부주의하면 길을 헤맬 수 있다.

9.오르기는 어려우나 내려오기는 쉽다.

10.한 번 오르면 그 다음부터는 오르기가 쉽다.

11.우습게 알다가는 죽는 수도 있다.

12.능력의 한계를 느끼면 포기하는 것이 신상에 좋다.

13.쉬면서 빨리 오르는 것 보다 쉬지 않고 천천히 오르는 것이 시간도 절약되고

힘도 덜 든다.

14.어머니처럼 잉태하고 모든 것을 포용한다.

 

 

 

 

홍천군에 있는 공작산은 멀리서 바라보아도 명산의 풍모를 풍긴다.

100대 명산에 들어가는 산인데 출석율이 가장 좋은 기 산우가 빠지게 되어 몹시 아쉽다.

오대산에서 갈라진 능선이 홍천강과 명찰 수타사에서 시작된 덕지천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홍천 동편에서 가장 높게 솟은 명산이다. 정상에는 표지석이 있고

삼면이 깎아지른 절벽이며, 3평 가랑 되는 바위 위에서면 홍천강으로 흘러내리는

골이 부채살같이 퍼져 아름답고 동남쪽으로는 응봉산 등이 겹겹이 감싸

화심(花心)을 연상케 한다. 능선에는 노송군락이 곳곳에 있고 서편 덕지천에는

천년고찰인 수타사가 있으며, 보물 제 745호인 월인석보 17권과 18권이 있다니

하산 후에 시간이 나면 들러 봅시다. 굽이마다 널찍한 반석이 깔려 있고 청송으로

덮은 아늑한 계곡이 있어 더욱 좋다. 이 산을 홍천시내에서 바라보면 날카롭지도

위압적이지도 않고 사람이 잠자는 얼굴 형상으로 보이며, 산세의 아름답기가

공작새와 같다고 해서 공작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오랜만에 가는 100대 명산이다.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여름이 가기 전에 모두 참석하여

반갑고 정겨운 얼굴들을 보여 주소서. 8월까지는 근교 산행으로 점심은 내려와서

먹었으나 공작산은 2002년 12월 18일 눈 쌓인 겨울에 올라본 적이 있는데 내려와

식사할 곳도 뒤풀이할 곳도 마땅치 않으니 점심을 준비해야 합니다.

상경길은 팔당 쪽으로 가지 않고 광주 쪽으로 잡았으니 시간이 나면 남한강을 따라

드라이브하면서 뒤풀이로 분원의 참붕어찜을 먹어도 좋습니다.

 

공작산의 산행후기는 박형채 산우가 쓰소서. 글을 쓴다는 것은 나와 내 안의 나의

대화이며 자신의 삶의 무게와 빛깔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계기가 되며 내면에서

소용돌이치는 생각과 이야기를 세상에 토로한다는 것은 즐겁고 행복한 작업이다.

글을 쓰는 우리는 그 행복의 연장선에 있는 행복한 사람들이다. 다산 정약용은

다만 한 사람이라도 자기의 글을 즐겁게 읽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자기는

계속 글을 쓰겠다고 했다. 침묵하는 사람은 그러한 행복을 포기한 사람이다.

처음부터 글을 잘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잘 쓴 글은 노력의 산물일 뿐이다.

 

 

봉화 청량산에 가면 들머리를 입석대로 잡는다. 솔향 가득한 능선길을 걷다가

퇴계 이황의 체취가 서린 청량사로 내려오면 바로 밑에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이라는

찻집이 있다.

이번 공작산행의 동반시로 그 찻집에 붙어 있는 주지 석지현 스님의 시를 선택한다.

매년 가을에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이라는 산사음악제가 열리는데

너무 멀지만 기회가 되면 가을에 가보자. 그 좋은 산도 오르고 음악제도 보면서

찻집에서 솔향기 가득한 솔바람차 한 잔 마셔보자. 상경길에 봉화 송이축제에

들러 솔향 그윽한 자연송이에 소주 한잔이 취하지도 않고 그리도 좋단다.

시간이 넉넉해지면 국립공원 주왕산과 영덕의 강구항에 가서 대게까지 먹을 수

있다면 행복할 텐데.....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무엇이 될까! 아는 산우 없소?

답은 낭송하는 자만이 알 수 있다오니 미리 준비하소.

공작산의 정상에서 박 산우가 읊으소서. 그 감동까지 후기에 쓰면 좋겠네.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淸凉山人 석지현-

 

1.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꽃이 필까 잎이 질까

 

아무도 모르는 世界의 저 쪽

 

아득한

 

어느 먼 나라의 눈소식이라도 들릴까

 

저녁 연기 가늘게 피어 오르는

 

청량의 山寺에 밤이 올까

 

창호문에 그림자

 

고요히 어른거릴까.....

 

 

2.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그의 손을 만나면 나도 바람이 된다.

 

가을잎 떨어지는 어느 저녁 무렵

 

내가 그의 소리를 만나면

 

그는 웃음이 될까 우수수 사랑이 될까

 

2006년 8월 28일 새벽에

 

시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도움쇠 金 定 南 올림

 

 

공작산과 수타사(詩山會 제43회 산행)

산 : 공작산(홍천. 877 미터)

코스 : 공작골 삼거리-솔밭-정상-안공작재-공작골 삼거리(원점회귀)

소요시간 : 오름 2시간 30분 내려 옴 2시간

일시 : 2006년 9월 3일 (일) 7시 30분

모이는 곳 : 전철 2호선 잠실역 3번 출구 너구리상 앞

준비물 : 중식, 살얼음낀 막걸리

연락 : 한양기(017-729-3457)

시산회(이경식) 블로그 : blog.daum.net/sisan20

도움쇠의 블로그 : blog.daum.net/yc012175 & blog.naver.com/yc012175

 

 

사랑이 고통일지라도 우리가 고통을 사랑하는 까닭은

고통을 사랑하지 않더라도 감내하는 까닭은

몸이 말라 비틀어지고

영혼이 까맣게 탈진할수록

꽃피우지 못하는 모과가 꽃보다 지속적인 냄새를 피우기 때문이다

 

꽃피우지 못하는 모과가

꽃보다 집요한 냄새를 피우기까지

우리의 사랑은 의지이다

태풍이 불어와도 떨어지지 않는 모과

가느다란 가지 끝이라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의지는 사랑이다

 

오, 가난에 찌든 모과여 망신(亡身)의 사랑이여!

-모과(김중식)전문

 

 

모과를 처음 접하는 사람은 4번 놀란다. 못 생긴 외모에, 그윽한 향기에, 떫음에,

한약재로 유익하게 쓰인다는 것에 놀란다.

 

모과 냄새를 향기라고 표현하면, 모과는 꽃에 대한 콤플렉스를 자인하는 꼴이다.

냄새와 향기는 다르다. 그러니까 '집요한 냄새'는 지독한 자의식이다. 가난에 지지

않겠다는 도저한 사랑의 의지다. 사랑이 의지라고? 그렇다. 역설적이게도 사랑은

인위(人爲)다. 사랑이 지극한 인위가 아니라면, 사랑은 탐욕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문재

 

 

 

8월 20일의 아침, 일기예보에 의하면 비가 내리지 않는다 했으나 아침에 일어나

하늘을 보니 구름이 잔뜩 끼어 있다. 마나님이 상계역까지 태워준다니

흐린 날의 즐거운 일!

걸어서 20분이나 미리 힘을 뺄 일은 없다. 차에 오르자 비가 약간 뿌린다.

처음으로 가 보는 코스라 마음이 설레고 우의를 세 벌이나 챙겼으니 비가 오더라도

강행해야겠다는 생각! '오늘은 내 남은 생의 첫날'이라는 책을 보면서 구파발에

15분 전에 도착. 그 책은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문인 101인의 가상유언장을

수록한 책인데 내용에 대하여 후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겁니다.

 

아홉 산우가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학교에서 급히 연락이 와서 불참하게 된

한 교장과 피곤해 하는 조 전도사가 불참하고 대신 새 신랑인 임 수석의 모습이

보이니 무척 반갑다. 정 산우가 절필사건의 원인이 자기인 것처럼 사과의 말을

했으나 천만의 말씀, 냉방이 꺼진 무더운 사무실에서 열심히 쓴 장장 3시간 30분의

작업을 망가뜨린 망할 놈의 벼락을 탓한 도움쇠의 극히 신경질적인 반응이었으니

전혀 개의치 마소. 2002년 여름 무렵 약 70회의 산행메모를 망가뜨린 것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하드디스크의 장난이었는데 온전한 복원은 불가능했고

운전기사의 수첩만으로 기억에 의존하여 복원했으나 오르는 시간과

내려 온 시간의 정확성은 상실하고, 그 후로는 작업 중인 글은 내문서에

저장하지 않고 반드시 메일의 임시보관함에 보관합니다. 산우들도 유의하고

조심하소서.

 

9시 20분, 의정부행 34번 버스(704번도 간다)에 타고 35분에 푸른 농원에서 하차.

올해 휴식년제에서 해제되어 '밤골지구'라는 이정표가 너무 작은 글씨로

표시되어 있다. 오히려 무속절인 '국사당'의 표시가 더 크고 선명하다.

9시 40분, 매표소에서 표를 끊는데 임 수석이 매표소 여인에게 말을 건넨다.

혼자 심심하겠다는 등 매표시간을 물으니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라 하니

그 전에 오면 입장료를 아끼겠다는 등, 어쨌든 즐거운 농담. 그 여인네도 지지 않고

말을 받는데 심심했거나 미남들의 집단이라 자기도 즐거웠으리라.,,

 

시작부터 화기애애하다. 임 수석의 덕분이다. 외길이라 오솔길을 5분쯤 오르다

계곡을 만났는데 가뭄 탓인지 말라 있다. '북한산의 다람쥐'라는 사나이의 말에

의하면 북한산의 계곡 중에서 가장 넓고 수량이 풍부하다 했는데 계곡에 물이 없어

약간 실망했다. 건너서 돌길을 오르니 바로 능선길이 시작되고 군데군데 단풍나무가

보이니 가을의 단풍 산행코스로 좋겠다. 가파르지 않은 능선길을 따라 걸으니 왼 쪽으로

북한산의 맨 북쪽능선인 상장능선의 선이 뚜렷하고 너머로 도봉산의 오봉능선도

보인다. 사기막골이라는 이정표가 자주 보이는 걸 보니 그 쪽에서도 오르는 코스가

많은 듯 하다.

 

따가운 여름 해가 없고 선선한 산들바람이 불어 주니 산행하기에 적합한

날이라고 이구동성! 이 코스는 10년동안 산객들의 발걸음을 거부한 코스라

북한산의 코스치고는 길이 넓지 않다. 십 수년 전에 임수석이 올랐다는데

마지막이 가파르다고 겁을 주나 우리가 누군가! 최소 500회 산행을 이루고자 하는

산객들이 아닌가! '추월금지'를 외치는 나 원장이 없어 도움쇠가 오랜만에

앞에서 걸으니 따라오는 전작 산우가 약간 힘겨워한다. 두 번의 산행을 거른 탓이다.

살얼음낀 막걸리를 한 잔씩하고 피로회복제인 홍삼젤리도 빨면서 40분쯤

쉬엄쉬엄 걸으니 임 수석의 말대로 약간 가파른 암릉이 시작된다.

 

오른 쪽으로 원효봉능선이 뚜렷하다. 한 총장의 입담이 없어 심심했으나

임 수석과 기 산우의 EDPS(음담패설의 이니셜)성 입담이 걸쭉하게 펼쳐지니

가파른 암릉도 힘들지 않고 쉽게 오른다. 마침 한 총장의 반가운 전화가 왔는데

'마나님과 무주구천동으로 피서왔는데 어제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오늘은

안개가 잔뜩 끼어 답답하고 재미가 없다'고 한다. 초상을 치루느라 힘들었을

마나님을 위로해줄 목적으로 함께 갔는데 우리의 나이가 이제는 부부만의

여행보다는 친구끼리의 회동이 더 즐거운 나이가 되었을까? 되돌아 보고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마침 울창한 숲 사이로 멀리 숨은 벽 암릉이 보인다.

인수봉과 백운대, 그 사이로 뚜렷하게 뽀쭉한 삼각형으로 우뚝 솟은 암릉인

숨은 벽을 배경으로 한 컷씩.

 

11시, 마지막으로 가파른 암릉을 올라 세 봉을 배경으로 단체사진. 멋있는 봉우리다.

간식으로 정해황 산우의 쫄깃쫄깃한 쑥떡과 전작 산우의 오이를 깎아 먹으면서

하산 코스를 결정하는데 7 : 1로 우이동으로 정해졌다. 유일한 소수의견은

임 수석인데 그의 무릎 탓이다. 그는 우리와는 반대로 오르는 것이 어렵고

내려올 때는 무릎이 괜찮다고 한다.

숨은 벽은 가파른 암릉이라 자일을 타고 오르는 산객들이 보였으며, 공원 직원들이

통제하고 있었는데 안전장구를 갖춘 산객들만 올라 가도록 만류하고 있는 것

같았다. 숨운 벽의 오른 쪽으로 내려 가니 계곡과 능선의 갈림길이 나오고

우리는 능선 쪽으로 오른다. 10분을 가니 샘이 나왔는데 시원한 물맛이 상큼하다.

10분을 더 가니 호랑이 굴이 나오고 사람이 하나 쯤 들어갈 만큼의

좁고 짧은 협곡이 나왔는데 부는 바람이 세차 냉동실은 비교할 바가 못된다.

 

12시 5분, 너른 바위에서 터를 잡고 막걸리의 시간. 도움쇠가 깜박 잊고

홍어를 싸오지 못 했는데 미안했다. 막걸리는 있으나 위 산우의 오징어무침만으로

안주 삼아 살얼음낀 시원한 막걸리로 정상주 한 잔씩. 백운산장을 거쳐

하루재를 넘는데 영봉으로 가는 코스가 숨은 벽 코스와 함께 1월1일부터

통제가 해제되어 언젠가는 가 볼 수 있겠다. 당장 그 코스로 가자는 산우가 있었으나

다음을 기약하고 도선사 광장으로 가서 셔틀버스로 우이동 종점으로 하산.

 

즐거운 뒤풀이 겸 점심시간! 주인이 남원사람인데 맥주와 소주로 소맥주를 제조하고

부침개, 묵, 두부김치, 뼈 없는 닭발을 안주로 배를 채우고 가려는데 기 산우가

시 낭송을 생략할 수 없는 일이라며 시를 꺼내든다. 위 산우가 또 사랑타령이라고

항의 했으나 이원무 산우가 사랑타령을 가장 자주 주장한 사람이 위 산우라며

항의를 묵살. ㅎㅎㅎ

위 산우가 동반시를 한 번 선택해보소서. 6개월의 산행계획을 미리 선정하자고

제안했지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우선 계획대로 산행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신뢰도가 떨어질 것 같습니다. 위 산우가 이런저런 제안이 많은 것은

시산회에 대한 사랑이고 사랑이 있기에 따뜻한 관심을 기울인다고 생각합니다.

조용히 그의 낭송을 듣고 아쉬운 마음으로 헤어짐. 그날도 좋은 산우들, 새로운 코스,

숨은 벽, 선선한 날씨, 시원한 맥주, 조촐한 점심이 있어 즐거운 하루였다.

 

숨은 벽과 인수봉, 백운대를 뒤 쪽에서 찍었는데 후에 내 블로그에 올릴 테니 감상하소.

절경입니다.

 

 

기 산우나 임 수석처럼 걸쭉한 입담도 없고 그만한 자료도 없으니 나름대로

생각해 본 산과 여자를 비교해 본다. 여기까지가 도움쇠의 한계이다.

다만 산과 여자를 비교함에 양자를 비하할 의사는 전혀 없다.

 

산과 여자가 같은 점

1.정상까지 올라야 올랐다고 말할 수 있다.

중간에 가다가 마는 놈, 올라가기도 전에 내려오는 놈, 들머리에서 놀다 오는 놈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밑에서 놀다 왔으면서 정상을 정복했다고 떠드는 놈은

정말로 치사한 놈이다.

2.계곡도 봉우리도 숲도 있다. 더구나 졸졸 흐르는 물도 있다.

3.명산은 또 가고 싶어진다.

4.명산은 가도 가도 질리지 않는다.

5.정상을 오르기까지는 맑은 날, 흐린 날, 비 오는 날, 눈 내리는 날,

바람 부는 날 등이 있다.

6.명산일수록 수많은 사람이 자주 오르내린다.

7.들머리를 제대로 찾으면 정상을 오르기가 쉬우나 첫길을 잘못 잡으면 어렵고 힘들어

시간이 많이 걸린다.

8.들머리를 제대로 찾더라도 부주의하면 길을 헤매일 수 있다.

9.오르기는 어려우나 내려오기는 쉽다.

10.한 번 오르면 그 다음부터는 오르기가 쉽다.

11.우습게 알다가는 죽는 수도 있다.

12.능력의 한계를 느끼면 포기하는 것이 신상에 좋다.

13.쉬면서 빨리 오르는 것 보다 쉬지 않고 천천히 오르는 것이 시간도 절약되고

힘도 덜 든다.

14.어머니처럼 잉태하고 모든 것을 포용한다.

 

 

 

 

홍천군에 있는 공작산은 멀리서 바라보아도 명산의 풍모를 풍긴다.

100대 명산에 들어가는 산인데 출석율이 가장 좋은 기 산우가 빠지게 되어 몹시 아쉽다.

오대산에서 갈라진 능선이 홍천강과 명찰 수타사에서 시작된 덕지천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홍천 동편에서 가장 높게 솟은 명산이다. 정상에는 표지석이 있고

삼면이 깎아지른 절벽이며, 3평 가랑 되는 바위 위에서면 홍천강으로 흘러내리는

골이 부채살같이 퍼져 아름답고 동남쪽으로는 응봉산 등이 겹겹이 감싸

화심(花心)을 연상케 한다. 능선에는 노송군락이 곳곳에 있고 서편 덕지천에는

천년고찰인 수타사가 있으며, 보물 제 745호인 월인석보 17권과 18권이 있다니

하산 후에 시간이 나면 들러 봅시다. 굽이마다 널찍한 반석이 깔려 있고 청송으로

덮은 아늑한 계곡이 있어 더욱 좋다. 이 산을 홍천시내에서 바라보면 날카롭지도

위압적이지도 않고 사람이 잠자는 얼굴 형상으로 보이며, 산세의 아름답기가

공작새와 같다고 해서 공작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오랜만에 가는 100대 명산이다.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여름이 가기 전에 모두 참석하여

반갑고 정겨운 얼굴들을 보여 주소서. 8월까지는 근교 산행으로 점심은 내려와서

먹었으나 공작산은 2002년 12월 18일 눈 쌓인 겨울에 올라본 적이 있는데 내려와

식사할 곳도 뒤풀이할 곳도 마땅치 않으니 점심을 준비해야 합니다.

상경길은 팔당 쪽으로 가지 않고 광주 쪽으로 잡았으니 시간이 나면 남한강을 따라

드라이브하면서 뒤풀이로 분원의 참붕어찜을 먹어도 좋습니다.

 

공작산의 산행후기는 박형채 산우가 쓰소서. 글을 쓴다는 것은 나와 내 안의 나의

대화이며 자신의 삶의 무게와 빛깔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계기가 되며 내면에서

소용돌이치는 생각과 이야기를 세상에 토로한다는 것은 즐겁고 행복한 작업이다.

글을 쓰는 우리는 그 행복의 연장선에 있는 행복한 사람들이다. 다산 정약용은

다만 한 사람이라도 자기의 글을 즐겁게 읽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자기는

계속 글을 쓰겠다고 했다. 침묵하는 사람은 그러한 행복을 포기한 사람이다.

처음부터 글을 잘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잘 쓴 글은 노력의 산물일 뿐이다.

 

 

봉화 청량산에 가면 들머리를 입석대로 잡는다. 솔향 가득한 능선길을 걷다가

퇴계 이황의 체취가 서린 청량사로 내려오면 바로 밑에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이라는

찻집이 있다.

이번 공작산행의 동반시로 그 찻집에 붙어 있는 주지 석지현 스님의 시를 선택한다.

매년 가을에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이라는 산사음악제가 열리는데

너무 멀지만 기회가 되면 가을에 가보자. 그 좋은 산도 오르고 음악제도 보면서

찻집에서 솔향기 가득한 솔바람차 한 잔 마셔보자. 상경길에 봉화 송이축제에

들러 솔향 그윽한 자연송이에 소주 한잔이 취하지도 않고 그리도 좋단다.

시간이 넉넉해지면 국립공원 주왕산과 영덕의 강구항에 가서 대게까지 먹을 수

있다면 행복할 텐데.....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무엇이 될까! 아는 산우 없소?

답은 낭송하는 자만이 알 수 있다오니 미리 준비하소.

공작산의 정상에서 박 산우가 읊으소서. 그 감동까지 후기에 쓰면 좋겠네.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淸凉山人 석지현-

 

1.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꽃이 필까 잎이 질까

 

아무도 모르는 世界의 저 쪽

 

아득한

 

어느 먼 나라의 눈소식이라도 들릴까

 

저녁 연기 가늘게 피어 오르는

 

청량의 山寺에 밤이 올까

 

창호문에 그림자

 

고요히 어른거릴까.....

 

 

2.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그의 손을 만나면 나도 바람이 된다.

 

가을잎 떨어지는 어느 저녁 무렵

 

내가 그의 소리를 만나면

 

그는 웃음이 될까 우수수 사랑이 될까

 

2006년 8월 28일 새벽에

 

시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도움쇠 金 定 南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