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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계방산 단풍과 민둥산 억새(詩山會 제46회 산행)

계방산 단풍과 민둥산 억새(詩山會 제46회 산행)

산 : 계방산(1,577 미터. 평창, 홍천) & 민둥산(1,117 미터. 정선)

계방산 코스 : (1안) 운두령-1,492봉-정상-동쪽 고개삼거리-천년주목군락지-계곡-

이승복생가

(2안) 운두령-1,492봉-정상-운두령으로 원점회귀(2안)

민둥산 코스 : 발구덕-정상-발구덕

소요시간 : 계방산 오름 1시간 40분 내려옴 1시간 10분

민둥산 오름 1시간 20분 내려옴 1시간

일시 : 2006년 10월 15일 5시

모이는곳 : 잠실역 3번 출구 너구리상 앞

준비물 : 중식, 막걸리, 간식

연락쇠 : 한양기(017-729-3457)

블로그 : 시산회(이경식) blog.daum.net/sisan20

도움쇠 blog.naver.com/yc012175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다는 것.

오늘 아침을 다소 서럽다고 생각는 것은
잔돈 몇 푼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어도
내일 아침 일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쳐 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가 있는 것은
이 햇빛에서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

나의 과거와 미래
사랑하는 내 아들딸들아,
내 무덤가 무성한 풀섶으로 때론 와서
괴로웠을 그런 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 라고,
씽씽 바람 불어라….

 

-나의 가난은(천상병)전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은 웃음꽃이란다.

시인의 천진무구한 웃음은 부자의 풍요로운 웃음이지

결코 없는 자의 가난한 웃음이 아니다.

인생에도 때로는 지우개가 필요합니다.

먼저 나 자신의 상처를 지워내고,

그 다음 다른 사람의 허물을 지워내면,

그렇게 지워진 상처와 허물 위에

새로운 사랑과 희망의 싹이 다시 돋아납니다.

용서는 아름다운 인생의 지우개입니다.

시인은 이 풍진 세상 소풍을 끝내고 아름답게 떠났다.

시인을 자기를 파괴한 자들을 그렇게 용서하고 떠났다.

그러나 남아 있는 나는 그들을 용서하지 못하고

아직도 분노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것일까?

왜 한때 친구처럼 지냈던 '하얀나비'의 시인가수 김정호의 노래를 노래방에서

부르지 못하고, 왜 아직도 서가에 꽂혀있는 시인의 시집 '귀천'을 펼치지 못하는 것일까?

 

 

 

전날 도움쇠의 주치의로서 한 교장과 함께 목포에서 목포상고 병설인 제일중학과

고교를 같이 다닌 목동오거리의 김신경정신과 원장 김명호의 큰아들 결혼식에 참석하고

다시 사무실에 돌아오니 벌써 6시다. 마나님의 건강이 좋지 않아 내일 산행 때 먹을

홍어를 사는 것은 내 몫이다. 중계동 롯데마트나 까르프매장은 엎드리면 코가 아니라

엎드리면 무릎이 닿는, 가까운 곳이지만 창동 농협 하나로마트의 홍어가 맛있다고

중계동에서 거기까지 간다. 혼자 가기 싫어 같이 가자고 하니 근처의 장어집에서

민물장어구이를 사 달라는데 이원무 산우, 이경식 산우와 두 번 쯤 가본 곳이다.

흔쾌히 대답하고 같이 먹는데 결혼식이 3시여서 12시 쯤 가벼운 간식을 먹고 갔지만,

식이 끝나고 나온 식사를 먹성이 좋아 외면하지 못하고 4시까지 맥주를 반주로 식사를

했으니 식욕이 생길 리가 없다. 토요일 3시의 결혼식은 하객들에게는 고역이니

삼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옆에 GS정유의 김명환 전무가 앉아 한 교장, 김 원장이

너무 선하고 점잖아서 목포사람같지 않다기에 나는 왜 빼냐고 반문하자 예의 사람좋은

웃음으로 답한다. 그 특유의 약간은 시니컬한 웃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직도 궁금하다.

나 원장, 박강석 전무, 나와 더불어 오랜 골프멤버로서 해외로 골프투어를 가자고

기금을 천만원까지 모은 사이니 나를 잘 알겠기에 내가 목포인 특유의 깐깐함이 있다는

걸로 해석한다. 그래도 나는 무늬만 목포고 색깔은 영광인이데...

내가 비행기를 타기 싫어해서 아직도 그 기금은 못쓰고 있다. ㅎㅎㅎ!

 

장어구이를 맛있게 먹는 마나님을 자세히 보니 가슴이 아플 정도로 많이 말랐다.

암중 가장 약한 암이라지만 갑상선암의 징후가 있다. 장모를 비롯하여 여섯 자매 모두의

갑상선과 관련한 병력이 있는데 아주대교수를 하는 바로 밑의 여동생은 암으로 고생을

많이 했으나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많이 극복했다. 병 때문에 마른 게 아니고

병을 이기기 위해 무리하게 운동을 많이 하다 보니 마른 것같다. 바쁜 직업이지만

더 많이 관심을 갖고 더 많은 시간을 같이 해야겠다. 쓰다 보니 신변의 얘기가 너무 깊이

들어왔다. 이해바란다.

 

떡 본 김에 제사를 지내고 엎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50회 산행을 마치고 회장의 소직을

2기 집행부로 넘기려 한다. 도움쇠의 역할이나 참석에 소홀하지도 않을 것이니 이번에는

나의 간절한 뜻을 꺾지 말기 바란다. 새 집행부에 관한 내 구상은 있으나 산우들의 의사로

결정하는 것이니 밝히지 않겠다. 회장은 희생과 봉사의 마음과 조정, 결정의 능력 및

의지도 필요하나 산우들의 마음을 어우르고 포용하며 무엇보다 시산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큰 산우가 되어야 한다. 나는 산우들 모두가 아시는 바와 같이 눈이 큰 탓인지 지독히

겁이 많아 폐쇄와 고소공포증이 있어 사업 때문에 건설부문의 일로 중국, 온천 설계의

이유로 일본 견학, 온천 매각의 이유로 미국을 가봤을 뿐 골프나 여행의 목적으로는

비행기를 타기 싫어서 제주도도 가기 싫은 사람이다. 하여 내가 회장으로 있는 한

비행기로 가는 백두산은 갈 수 없으니 유념하소서.ㅎㅎ

예정대로 산행을 하면 12월 17일 납회산행이 50회가 된다. 12월에는 내가 먼저 거론을

하겠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기 바란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그자. 새 집행부가 신선하고

새로운 기획으로 시산회를 더욱 즐거운 모임으로 만들기 바란다.

 

 

일찍 자야 4시에 깰 수 있으니 11시 드라마를 보고 바로 잠을 청했다. 술은 숙면에

방해가 되니 산행 전날은 금주하는 것이 좋다. 잠을 푹 자지 못하면 신체의 리듬이

깨져 다음 날 산행이 고행이 된다. 새벽에 나오니 기온은 춥지 않고 온화한 기분이 드는

것으로 봐서 무난하고 즐거운 산행이 예견된다. 한 총장과 상의하여 30분을 앞 당겼는데

5시에 모두 모였고 박형채 산우만 5분 늦었지만 김순단 선생이 특유의 맛난 음식을

바리바리 싸 주느라 그랬으니 백 번이라도 이해할 일. 더 늦어도 좋으니 많이 싸 오소서.

오랜만에 대명포구의 사나이 임삼환 산우와 차기 국민은행장 김삼모 산우가 오니

반갑다. 길가의 임시주차장에 차가 없는 것을 보니 5시에 출발하는 차는 우리 뿐인데

5시를 넘기자 관광버스가 한 대 주차하는 것이 5시 30분 출발차로 보인다.

 

5시 8분. 가을 산의 대명사 설악으로 힘차게 출발. 차 안에서 사려깊은 산우들의 간식이

나오고 즐겁게 얘기하며 부지런히 달린다. 철정휴게소에서 아침으로 우동과 라면을

먹는데 박 산우만 먹지 않는 것이 부지런한 김 선생이 아침까지 먹어 보낸 것이다.

발 아래로 흐르는 홍천강을 배경으로 한 컷. 원통을 지나 북면 삼거리에 오니 주변의 천이

심상치 않다. 지난 홍수에 하천의 변형이 심하고 길도 많이 파괴되어 겨우 복구한 흔적이

역력하다. 장수대까지도 손상을 입었다면 산행이 금지될 수도 있을 것이니 장수대에

도착할 때까지 심히 걱정된다.

 

8시 10분. 그러나 장수대는 건재했고 장수대 주차광장의 산행지도에 흑선동계곡은

여전히 통행금지로 표시된 것이 아니라 아예 길이 없다. 내가 산행지도판에 서서 오늘의

코스를 설명하자 모두의 표정에 긴장감과 비장함이 보인다. 이른바 '길 없는 길'을 가는

모험가의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우리가 누군가! 누가 뭐라 해도 묵묵히

우리의 길을 가는 자들이다. 매표소의 검표원이 12선녀탕 코스는 지난 여름의 대홍수에

거의 모든 다리가 끊어져 예정시간 8시간에 2시간이 더 소요된다고 한다.

복숭아탕과 막탕을 비롯한 8개의 큰 소가 자갈로 메워져 12선녀탕이 아니라 12자갈탕이

되었다니 우리와는 관계는 없지만 가슴아픈 친절한 안내! 남설악의 주전골은 훼손이 너무

심해 복구를 포기하는 것이 자연의 변화에 따른 순리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8시 15분. 고도계를 보니 해발고도 500 미터. 들머리의 초입부터 길은 바뀌고 홍수에

떠 내려온 아름드리 나무들의 형상이 껍질도 남아 있지 않고 처참한 모습으로 즐비하게

넘어져 있다. 급경사의 길을 가면서 잠시 숨을 돌리는 사이에 멀리 건너편의 가리봉산,

주걱봉, 삼형제봉을 보니 그 쪽의 계곡도 훼손이 심하다. 대승폭포에 도착하니

오히려 가을 가뭄이 심해 수량이 적어 실망스럽고 바람도 없어 떨어지는 폭포수가 하늘로

치솟는 장관도 기대할 수 없다. 그래도 휴식과 함께 기념사진 한 컷 씩.

 

쉬는 타임에 막걸리 한 잔을 빼놓을 수 없는 일인데 이게 무슨 횡재인가!

대명포구의 사나이 임 산우가 흑산도 홍어를 슬그머니 내민다. 얼마만에 맛보는

황금홍어인가! 젓가락을 꺼낼 여유도 없이 맨손으로 한 점, 혹은 두 점 씩 먹는데

입 안에서 슬슬 녹으면서 퍼지는 알싸한 특유의 향!!! 분명 오늘의 하이라이트!!!

칭찬에 입이 마른다. 그 맛의 즐거움을 말로 다 못하고 글로 표현 못한다. 도움쇠의

칠레산 홍어는 슬프단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 흑산도 홍어는 아름답다. 흑산도

홍어의 힘으로 힘차게 오른다. 피톤치드가 많이 나오는 시간에 전나무 숲을 걷는 것은

또 하나의 즐거움. 앞에서 걷는 도움쇠의 귀에 뒤따르는 산우들의 "이 맑고 좋은 공기"라는

탄성이 계속 들리고 약간은 편해진 전나무 숲길을 계속 오른다. 고도계가 1,000 미터가

되면서 빨간 단풍이 보이기 시작한다.

 

남의 탓을 할 것까지는 없지만 단풍이 8일 쯤 빨라진다는 방송기자들이 말을 믿고 왔는데

역시 방송기자들의 '뻥'은 알아줘야 한다. 남의 약점을 들추어 자신의 이익과 즐거움을

취하는 그들의 직업적 속성이 나는 참으로 싫다. 그들은 그것을 자신들의 사명감이라하며

자긍심을 느끼기겠지만 남에게 베푸는 것을 모르는 극단적으로 이기적인 집단의

그들이 싫다. 그래서 직업적으로 기자들의 평균수명이 가장 짧다지 않는가.

나는 건설업 20년과 온천업 10년의 경험에서 그들을 싫어하게 되었다. 내가 그들의

습성과 취재형태를 잘 알지만 개인의 생각으로 대체적으로 그들은 공적인 사명감을

잃은 것 같다. 자신의 실수나 잘못은 '그럴 수도 있는 일'이고 남의 잘못이나 실수는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다. 가장 공부를 하지 않는 직업인들!

그들에게 저널리즘은 어디 가고 센셔이셔널리즘만 남아 있는가!

 

기 산우가 계속 이런 길이냐고 묻는다. 대체적으로 완만하지만 한 번은 가파른 길이

나온다고 답한다. 이재웅 산우가 처음에는 처져서 보조를 맞춰서 같이 올라왔는데

내가 선두에 서고 이 산우가 바로 뒤 쪽에서 따라오는 지금은 본인의 말대로 근육이

풀려서인지 잘 따라온다. 이 산우! 선두에서 2-3-4의 순번이 가장 쉬우니 앞으로

유념하게나. 나 원장이 오면 그날의 산행은 약간 쉬워지고 위 산우가 앞장서면

그날의 산행은 어려워진다니 나 원장이 빠지지 말고 나와야 한다. 이제 산행에는

이력이 붙어 모두 잘 오른다. 언젠가는 산사람들의 마음의 고향 히말라야도 가자.

내 그때는 죽음을 각오하고 비행기를 타겠다.ㅎㅎ.

 

10시 20분. 대승령에 도착. 선두에서 오르다가 30 미터를 남기고 잠깐 뇨의를 느껴

지체한 사이에 나 없이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산우들이 서운하다. 직책상의 책임감도

있지만 나는 항상 정상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려할 때 모두 도착했는가를 꼭 확인하고

함께 찍는다. 등반에 책임이 있는 사람은 선두가 정해진 코스를 가는 가를 항상 점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후미를 끝까지 챙기고 확인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인원이 많아지면

선두와 후미의 간격이 생기는데 간격의 길이가 길어질수록 후미가 어려워지며 낙오할

수도 있으니 단체등반은 선두가 후미와의 간격을 적당히 유지하는 테크닉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선두 그룹은 후미가 보이지 않으면 쉬면서 기다려주는 여유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항상 유념하자, 빠른 산행이 잘 하는 산행이 아니고 모두 낙오 없이 같은

시각에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착하는 산행이 바람직한 산행이라는 것을.

위 산우의 말과 같이 등산은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속도가 달라지는데 항상 후미를

배려해주는 것이 단체산행에서 최고의 덕목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대승령의 서쪽으로 가면 안산(案산)과 12선녀탕계곡, 동쪽은 서북주릉으로 대청봉까지

이어지며, 북쪽으로는 '통제구역'이라고 쓰여있는 표시판 뒤로 희미하게 길이 보인다.

3년 전에는 '5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는데 오늘은 없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흑선동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희미하게 난

능선길을 따라 조용히 내려가는데 벌써부터 코로 느껴지는 공기의 질이 다르다.

상큼한 향이다. 과태료와 벌금의 차이에 대한 농을 주고 받으면서 혹시 나타날지도

모르는 공단의 직원에 대해 촉각을 세우며 내려가는데 처음에는 단아하게 물든 단풍의

색이 노랗다. 울창하게 우거진 활엽수림이 원시림처럼 아름다운 이 길을 잊지 못해

3년 만에 시산회의 산우들과 함께 왔는데 보람을 느낄 만큼 아름다운 코스로서 군데군데

하늘을 찌를 듯이 우뚝 서 있는, 백년은 넘어 보이는 소나무과의 아름드리 나무들을

보며 모두 탄성을 지르고 조 산우는 애들처럼 팔을 벌려 재보기도 한다. 새소리조차

숨을 죽이는 적막함에 노란 단풍의 활엽수림과 아름드리 소나무과의 상록수림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20분을 내려왔는데 고도계는 아직도 1,000 미터이다. 단풍은 거기까지고, 아직은 초록인

상태의 단풍나무군락이 좌우에 펼쳐진다. 초록이 지쳐야 단풍이 든다고 미당 서정주

선생이 노래했는데 10월 10일경에는 절정을 이룰 것이므로 고개를 넘거나 봉우리를

넘는 설악산의 코스 중 가장 쉽고 짧은 코스이니 그때 다시 오고 싶다. 울창한 숲 사이로

왼쪽으로 우람한 암릉이 문득 보이는데 안산에서 백담사까지 이어지는 이름없는 암릉이다.

안산에서 이어지는 능선이라 했더니 풍수지리에 밝은 김삼모 산우가 안산의 '안'의

한자가 무엇이냐고 물어 '기안'할 때의 '안'자라 했더니 책상'안'자 라면서 풍수의

주산과 마주보는 안산이라며 먹냄새가 나는 유익한 지식을 들려준다. 지루하지 않은

화제와 지루하지 않은 코스를 즐기며 1시간쯤 내려오니 왼쪽에서 들리는 물소리에

귀가 뜨이며 발걸음도 그 쪽으로 향한다. 계곡이 나오자 박형채 산우가 웃옷을 벗는데

제법 몸매가 탄탄하다. 한 총장이 빠지지 않고 한마디 한다. 김 선생과 관련된 악의가

없는 말이나 약간은 야해 생략한다. ㅎㅎ

 

고도계의 시간을 보니 11시 35분이나 먹산회답게 이른 식사를 하기로 한다.

마침 물가에 편평한 터가 13명이 식사하기에 충분히 넓다. 이윽고 펼쳐지는

마나님들의 성의에 입이 벌어진다. 김삼모 산우의 제주 옥돔, 낙지 두 접시, 위 산우

마나님의 껍질까지 벗긴 대하, 홍어 두 접시, 순단표 마늘과 양파장아찌,

무공해 열무김치 등등 기억을 하지 못할 만큼 산해진미다. 쑥떡, 유부초밥, 오곡김밥,

과일 등 산우들의 준비물은 자리 잡아간다. 막걸리와 더불어 즐겁고

흥겨운 식사의 시간! 막걸리 두어 순배에 주흥이 도도해지며 음식이 바닥이 난다.

 

식사의 파장 무렵에 기 산우가 오늘의 시 낭송을 하자고 한다. 쭉 들러보니 올라올 때

약간 힘들었던 이재웅 산우가 첫눈에 들어온다. 차분하고 성의있는 목소리로 엄숙하고

장중하게 읊조리는 그의 모습이 아름답다고 느껴진다. 항상 차분하고 진지한 사람이다.

천여세대의 관리소장의 자격이 넘치는 성실한 사람이다. 그는 일하는 순간이 즐겁고

행복하단다. 항상 묵묵히 일하는 황소같은 성격의 사람이며 때를 느긋히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다. 지루한 기다림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그의 변환모드는 자유자재다.

이 산우! 기다리고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는 자네의 시대가 올 것을 믿어 의심치 말게.

시의 마지막 귀절에 대해 묻는 한 총장의 말에 모두 빙그레 웃는데 이러다

色山會까지 갈까 두렵다.ㅎㅎ

 

12시 50분. 맛나고 길었던 식사 후의 하산길은 계곡 옆으로 난 길인데 합수곡 부근은

계곡조차도 흔적이 없고 자갈로 뒤덮혀 폐허로 변한 그 곳이 축구장보다 넓게 변했다.

'桑田碧海'란 귀절이 어울리는 말이다.

지난 홍수 탓에 그나마 희미한 길이 없어지고 끊어지고 무너지고 흔적이 없어

등반대장 위 산우가 앞에서 새 길을 개척하느라고 고생했다. 그의 저돌적인 과감성

때문에 많은 도움이 되었는데 이경식 산우가 '자네는 오늘에야 제대로 등반대장의

소임을 다했다'고 치사를 한다. 도움쇠 이상으로 시산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홍수의 흔적은 처참했는데 아름드리 나무가 동강이 나고 껍질이 모두 하얗게 벗겨지고

가지는 흔적조차 없고 그때 떠내려 왔을 풀들이나 비닐등은 키높은 나무가지의

중간 쯤에 걸려 '길을 잃지 말고 조심해서 잘 가시오'하고 바람에 나풀거리며 손을

흔든다. 같이 흔들어 주고 고개를 돌린다. 천불동계곡과 더불어 설악의 대표적인 계곡인

수렴동계곡과 만나니 건너편에는 대청에서 내려왔거나 마등령을 넘어왔을 지쳐있는

산객들로 길이 넘친다.

 

수렴동계곡은 수렴동대피소에서 시작하여 백담사까지 이어진다. 위쪽은 구곡담계곡인데

수렴동계곡의 지류로서 봉정암 아래의 쌍용폭포까지 이어지며 백담사 아래부터

용대리까지 백담계곡이라 한다. 계곡을 따라 내려오면서 보니 물의 빛깔이 약한

비취색인데 전작 산우는 설악은 물까지도 여느 산과 다르다고 하던데 내 생각에는

광물질이 많이 섞여 있어 빛의 난반사에 따른 현상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 물들이 흘러

지척에 있는 동해안으로 흘러갈 것으로 알았지만 집에서 지도를 보니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로서 현 문화재청장인 유홍준 교수의 말대로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 그 강물들은 소양호를 거쳐 북한강을 따라 서해로 흘러간다.

 

2시. 백담사에 도착하여 위 산우, 이경식 산우 그리고 내가 셔틀버스의 기다리는

줄 담당을 하고 나머지 산우들은 전두환과 이순자의 옛 거처를 구경하고 이재웅 산우와

김삼모 산우는 부처님 앞에 몸을 낮추고 예를 올린다. 나는 한때 부처님과 친구라며

부처님 앞에 예를 올리는 것을 거부했으나 젊은 날 한때의 치기였음을 깨닫고 지금은

예를 올리고 불전도 내지만 삼천배와 같은 지나친 경배나 과다하게 불전을 바치는 것은

지금도 반대한다. '일일부작이면 일일부식'을 주장한 고승 백장선사의 가르침대로 중들도

바치는 시주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적당한 정도의 생산적인 노력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백장은 노력봉사를 수행으로 생각하고 강조한 사람이다.

卍海 한용운 스님은 그런 꼴들이 보기 싫어 일찌기 조선불교유신론을

주장하지 않았던가. 성철 스님은 자기를 만나려면 여러 날이 걸리는 삼천배를 올리고

오라 했지만 그의 진정한 뜻은 영악스런 제자들에게 왜곡되어 그의 신격화에

일조를 한다. 그의 진정한 뜻은 자기도 일개 필부범인에 불과하니 가르쳐줄 것도 얻을

것도 없으니 헛수고를 하지 마라는 의미 이상은 아니었으나 신심도 노력도 불연(佛緣)도

부족한 영악스런 제자들이 그것을 악용하여 만나기 어려울 만큼의 고승으로 격상시키니

제자인 자기도 그 만큼의 높이가 되는 것을 노린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러한 중들이 싫다.

전당을 키울 궁리나 하고 베품에 뜻이 없는 그러한 종교인들이 싫다. 백담교 옆의

새로난 흉물스런 다리도 전당만을 키우려는 배부른 중들의 소행이려니 생각하니 괘심하기

그지 없다.

 

징검다리로 되어 있을 때 껑충껑충 건너는 사람과 물에 비친 빨간 단풍과

붉은 산과 맑은 물과의 아름다운 조화를 잊지 못한다. 1시간을 기다리고 10분만에

용대리 내가평에서 내린다. 뒤풀이는 도토리묵과 황태구이, 감자전을 안주로 시원한 맥주.

땀을 흘려 부족해진 수분을 보충하고 갈증을 해소하기에 최고다. 이 산우가 고대산과

공작산에 관해 명산의 개념을 거론했으나 내가 정한 것도 아니고 주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그날의 코스에 따라 수긍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공작산의

코스는 처음의 예정대로 문바위골로 올라가 솔밭을 경유하여 정상에 오르고 하산은

안공작재를 경유하여 궁지기골로 내려왔으면 이 산우의 생각도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나 그날 시산회는 공작고개에서 시작하여 단조로운 능선길을 타고 정상에 올랐다가

가장 가까우며 쉽고 단조로운 능선으로 내려왔으니 이 산우의 입장에서는 어디에도

명산의 풍모는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홍도에 있는 386 미터의 깃대봉도 명산의 풍모는

결코 갖추지 못했으나 산림청이 선정한 100대 명산의 반열에 당당히 들어 있음은

일정한 기준에 의한 것이므로 크게 신경쓸 일은 아니다.

 

다음 산행지를 선정함에 있어 의견을 듣기 전에 내가 먼저 설명하고 권유를 하고

모두의 의견에 따라 정하나 목소리가 큰 산우의 의견이 반영되는 경향이 있다.

내가 서대산, 금수산을 거론했고 이경식 산우가 소요산과 억새를 보고 싶었던지

민둥산과 명성산을 거론했으나 겨울에는 먼 곳은 가지 못하니 이 좋은 가을에는

먼곳으로 가자는 조문형 산우의 훈수에 힘입어 서대산으로 결정했다. 차를 타고 오면서

위 산우의 재청으로 평창의 계방산으로 변경되었다. 이경식 산우! 내가 회장으로 있을 때

한 번이라도 보다 좋은 산으로 가고자하는 욕심에 자네의 의견이 채택되지 않아

서운했을 것이나 언젠가는 가게 될 것이네. 설악의 코스 중 자네가 못 가본

비선대-금강굴-금강문-세존봉(오르지 못함)-금강문-마등령-오세암-백담사 코스는

내년 신록의 봄이나 가을 단풍의 산행지로 미리 정하네. 비선대에서 마등령까지 오르는

2시간 30분이 오르막이고 백담사까지는 내리막이므로 흑선동코스 다음으로 쉬우니

산우들도 부담없이 갈 수 있다네. 마등령에 오르면 설악의 전경을 파노라마영화처럼

볼 수 있으니 내년에 꼭 가세. 이원무 산우도 용문산에 오르고 싶어하나 아직 못 오르고

있습니다. 능선길이 해가 비춰 춥지 않으니 겨울에 가 봅시다.

계방산은 해발 1,089 미터의 운두령에서 오르고 원점회귀하면 2시간 50분이 소요되므로

내려온 후 민둥산에 갈 수도 있으니 그때 결정합시다.

그날도 장수대, 대승폭포, 대승령, 흑선동계곡, 아름드리 나무들, 수렴동계곡, 백담사,

백담계곡, 정겨운 산우들이 있어 즐거운 날이었습니다. 특히 먼길 안전하게 운행해

준 조 산우와 한 총장에게 감사를 드린다.

참석 : 기세환, 김삼모, 임삼환, 이경식, 이원무, 박형채, 한양기, 전작, 정해황, 위윤환

조문형, 이재웅, 김정남 (13명)

 

산사람들에게는 암벽등반과 설악산행, 백두대간과 지리산종주는 일종의 계급승진과

같은 거라오. 그 만큼 힘들다는 것이며 무궁한 화제거리를 가져다 준다오.

글이 길어진 이유는 설악의 얘기를 쓰고 있기 때문이라오.

긴 겨울 날 화톳불이나 벽난로 옆에서 진한 향을 풍기는 코냑이나 위스키를 마시며 밤을

샐 수 있는 것은 산과 여행, 그리고 이성(異性)얘기를 빼고는 뭐가 있겠소.

 

 

가을 산행은 10월의 첫째, 셋째 와 11월의 첫째 일요일의 세 번에 불과하다.

수요는 많으나 공급이 부족하다. 가고 싶은 산은 많으나 갈 기회가 별로 없으니

이번에는 두 곳을 강행하기로 하자. 마침 거론된 두 산이 가까이 위치하고 있고

들머리의 해발고도가 높아 소요시간을 단축할 수 있으니 처음으로 시도한다.

계방산은 오대산에서 한강변까지 뻗어 내린 산맥 중에서 제일 높은 산으로 남한에서는

한라산(1,950 미터), 지리산(1,915), 설악산(1,708 미터), 덕유산(1,614 미터)에 이어

다섯 번째로 높은 산이나 오대산의 명성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던 명산이다.

들머리로 잡은 표고 1,089 미터의 운두령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고개이다.

하산을 천년 주목이 있는 남쪽 산록으로 잡으면 거의 내려와서 이승복의 생가터가 있으나

여느 산촌의 집과 다를 바 없고 나처럼 당시 위정자들이 연출하여 지어낸 사기 드라마로

생각하는 사람은 가지 않는 것이 좋다. 도움쇠는 2002년 10월 10일에 운두령 못 미쳐

건막교에서 올라 30대 줌마들이 주류를 이룬 팀과 같이 동행하다가 그들은 운두령으로

내려가고 나는 동쪽 능선을 타고 천년 주목군락이 있는 계곡으로 내려와 이승복의

생가터를 지나온 적이 있다. 해서, 시산회는 운두령으로 올라가 배낭 없이 정상으로 올라가

운두령으로 내려오면 정상과의 표고차가 488 미터로 2시간 50분이 소요되므로

일찍 내려와 정선 소금강의 절경을 보며 점심을 먹고 내친 김에 민둥산까지 갑시다.

민둥산은 2002년의 봄과 가을에 가 본적이 있으며 들머리를 승용차가 올라갈 수 있는

해발 800 미터의 발구덕으로 잡으면 석양 무렵에 비끼는 해를 보며 키가 넘는 억새군락의

장관을 구경할 수 있으니 강행합니다. 발구덕은 7-8군데의 땅이 꺼져 있으며 지하는

석회동굴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상경길에 화암약수의 짜릿한 맛을 볼 수도 있고 정선 아우라지에 가서 민물매운탕에

소주를 마시거나 철은 지났으나 봉평에 들러 메밀묵, 메밀전병에 메밀꽃막걸리 두어

사발 마시고 옵시다.

그러면 우리의 가을은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가을에 맞는 동반시를 고르고자 인터넷의 바다를 헤매다가 문정희 시인의 가을 노트는

무난히 찾았으나 나가는 길에 눈에 뜨이는 천상병 시인의 시를 외면하지 못하고

프롤로그시로 선택하고 말았다. 기분이 썩 좋지 않다. 그를 생각하면

그들 박 통, 전 통, 정형근, 이근안 류의 인간들이 미워진다. 그들이 있어 서슬이

퍼렇던 시절, 나도 연구소에 근무한 적이 있어서 204호실도 알고 남산도 알고

서빙고도 안다. 그들의 무모함, 무경우, 무취, 야만적인 문화를 안다.

그래서 그들이 더 싫다. 한때는 그들과 같은 하늘 아래 숨쉬는 것도 싫었다.

내가 안정되고 보수도 좋았던 연구소를 박차고 나와 남대문극장 4층에서 장사를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다. 연휴기간 중 석공사가 시작되어 나도 조금 한가하다.

그래서 말이 많아지고 내 말을 많이 했다. 이 글은 나와 내 안의 나의 대화이므로 산우들은

굳이 읽지 않아도 된다. 다만 공지사항과 갈 산의 소개, 동반시는 읽어주기 바란다.

이번의 동반시는 쉬운 시이므로 보고 듣는 대로 읽고 느끼면 된다. 맑고 차가운 물과

이끼가 낀 바위와 빨간 단풍이 어우러지는 소금강의 한 켠에서 어떻게 다가오는지

기대해본다. 사랑을 아는 가을 남자 조문형 산우가 읽어주면 좋겠네.

 

 

 

가을 노트

문정희

 

그대 떠나간 후
나의 가을은
조금만 건드려도
우수수 몸을 떨었다.

못다한 말
못다한 노래
까아만 씨앗으로 가슴에 담고
우리의 사랑이 지고 있었으므로

머잖아
한 잎 두 잎 아픔은 사라지고
기억만 남아
벼 베고 난 빈 들녘
고즈넉한
볏단처럼 놓이리라.

사랑한다는 것은
조용히 물이 드는 것
아무에게도 말 못하고
홀로 찬바람에 흔들리는 것이지.

그리고 이 세상 끝날 때
가장 깊은 살 속에
담아 가는 것이지.

그대 떠나간 후
나의 가을은
조금만 건드려도
우수수 옷을 벗었다.
슬프고 앙상한 뼈만 남았다.

 

2006년 10월 6일 한가위의 새벽에

 

시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도움쇠 金 定 南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