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과 봄날(詩山會 제55회 산행)
산 : 북한산
코스 : 국민대 옆 북악매표소-형제봉-대성문-보국문-대동문-아카데미하우스
소요시간 : 오름 1시간 40분 내려옴 1시간 20분
일시 : 2007년 3얼 4일 (일) 10시
모이는 곳 : 전철 4호선 길음역 3번 지상출구(버스로 국민대까지 이동)
준비물 : 중식, 막걸리
연락 : 이경식(011-222-1028)
블로그 : 사진 blog.daum.net/sisan20
산행기 blog.naver.com/yc012175
아버님, 꽃구경
하시고 싶다 하셨지요.
벚꽃 그늘 아래서
예전처럼 어머님 뵙고 싶다
하셨지요.
며늘아기는 시아버지 입성중
제일 좋은 것으로 갈아입히고
진주라 천리길 유행가대로 가서
정말로 꽃에 파묻혀 사시라는듯
두고 왔다.
치매에 걸린 노인은
버려진 것도 모르고, 꽃 핀 것도 모르고
자꾸 배 고프다고 칭얼대며
며늘아가, 며늘아가를 불러도 대답 없고
아지랑이는 타오르는데
아지랑이는 타오르는데
꽃 핀 봄날은
곁눈질도 안 준채 무심히 갔다.
-꽃 구경(강우식)전문
2월 10일. 토요일. 맑은 날이다. 신문을보니 세종문화회관에서 한국현대시 100년을
기념하여 현대시인 500인과 미술가 500인의 시와 그림전이 열린다기에 시간을 내어
찾아갔다. 일종의 시화전이다. 관람하고 나오니 정가 50,000원의 시집
'시가 다시, 희망이다'를 25,000원에 판다기에 지갑을 보니 만원권 지폐 9장.
3권을 구입했다. 한 권은 서가에, 한 권은 시 선정에 도움을주는 시인에게, 한 권은
아직 책상에 있다. 누군가에게 주고 싶다. 주인이 누구일런지..... 위 시는 그 책을
뒤적이다 구한 시이다.
이 시를 읽으면서 가슴이 뭉클해졌다.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가 그리워졌다.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그리고 눈물이 났다.
아버지, 꽃구경, 벚꽃, 며늘아기, 시아버지 등은 우리의 이야기다.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다.
어머니...
저도 제 삶의 모든 말과 이야기를 다 담아 체로 걸러내면
어, 머, 니....
당신의 이름 세 글자만 남습니다.
봄이 온다. 남녘에는 벌써 봄소식이 왔단다. 방심하다가는 곁눈질도
안 준채 무심히 가버리는 봄이다. 이 좋은 봄날에 꼬-옥 꼭 어머니 손잡고 꽃구경을
가자. 시간이 없다. 기다려주지 않는다. 동백도, 매화도, 산수유도 피어 있다.
남도로 내려 가면 모두 피어 있다. 아지랑이가 필 때는 이미 늦다.
2월. 시샘달의 25일. 대동강물도 풀린다는 '우수(雨水)'도 지나갔다. 7시에 잠실역에서
만났다. 참석자가 많아 25인승 중형버스를 38만원에 대절했다. 가격은 거리에 따라
다르다. 이창우, 이원무, 이경식 산우와 나는 북쪽에 집이 있고 차고지가 구리시여서
용마산역에서 미리 탔다. 건대역에서 갈아타는 수고로움이 없었지만 시간으로는
별 차이가 없었다. 정겨운 17인의 산우들은 반갑게 악수하고 가까운 삼전동에 사는
박 산우와 김 선생만 10분 늦엇지만 여자의 화장은 무죄라 하지 않는가. 7시10분.
덕유를 향하여 힘차게 출발. 대전을 지나면서 앞 유리창에 가는 빗방울이 비쳤으나
새벽에 일어나서 기상청 홈페이지를 보니 전주의 날씨가 흐린 후 맑음으로 나와 별
걱정없이 계속 전진.
가는 도중에 신원우 산우에게서 '자연 속에서 읽는 한 편의 시'라는 제목의
시집 5권을 받았다. 국립공원공단에서 발행하는 '시인마을'의 시집 시리즈는
국립공원을 찾는 시민들을 위해정성을 다해 만들어 대출해주는 시집이다.
좋은 시가 많아 시 선정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대진고속도로의 덕유산 I.C를 지나친 시간은 9시43분. 안성매표소에 도착하니 관리소장
등이 나와 공단이사인 신원우 산우와 악수하고 반긴다. 그들도 등산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이사에 대한 예우와 정기순찰의 목적인 것같다. 한쪽에서는 경상도 방면에서 온 이름모를
산악회의 시산제가 진행되고 있다. 우리가 호명산에서 올린 시산제와 제수는 비슷하나 향로에
향이 가득한 것을 보니 전 회원이 각자 하나씩의 향을 피웠나보다. 앞으로 우리도
그럴까 싶다. 제사의 방식이야 집안마다 방식이 다르듯이 각자 알아서 할 일이고 남에게
자랑할 것은 없다지만 향 하나라도 몸소 올리자는 생각이 좋다. 다음 제주는 나 원장이니
기억해주기 바란다.
당초의 코스는 백련사를 들머리로 하고 구천동을 거쳐 백련사를 들르고 향적봉에서 식사와
시 낭송, 중봉을 거쳐 오수자굴을 지나 다시 백련사로 내려오는 코스로 정했으나 공단 소장의
건의에 따라 이 코스로 정했다. 나도 그쪽은 수 차례 올라봤으나 이쪽은 처음이라 기대가 크다.
10시 정각. 산행 시작.
안성계곡의 넓이는 구천동의 반 정도. 물은 맑고 푸르고 깊다. 칠연폭포는
규모는 작지만 물줄기는 힘차다. 쉬엄쉬엄 게곡을 따라 오르며 주변의 숲을 보니
활엽수가 많은 것을 보니 가을의 단풍은 환상적이겠다. 계곡 가에서 김종화 산우의
송어회를 안주로 간단히 막걸리 한 잔씩. 이 맛이다. 항상 김종화 산우에게 고맙다.
늦게 참여했지만 훈제연어 등 맛난 먹을거리를 제공해준다.
1,320 미터의 동엽령에 오르니 12시 정각이다. 간간히 눈발이 날리고 바람이 분데다
21명이 모여 식사할 마땅한 자리도 없다. 배고픔을 참고 향적봉 대피소에서 눈과 바람을
피할 수 있으니 거기까지 가자는 공단 직원들의 의견에 동의하여 능선길을 따라 간다.
능선길은 키작은 철쭉으로 양쪽이 가득하다. 철쭉 가지 위의 상고대가 멋있다.
그러나 시산회 사상 초유의 민망한 일을 당하여 도움쇠 등 뒷팀의 기분이 나빠졌다.
입으로 들어갔는지 코로 들어갔는지 귀로 들어갔는지도 모를 식사를 마치고 향적봉을
향하여 계속 전진. 주변은 상고대와 눈꽃으로 절경을 이루고 주변은 온통 흰 색이다.
능선은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며 철쭉 가지에 핀 상고대 위에 눈이 내려 눈꽃이 피니
35년 산행의 도움쇠도 이러한 절경을 본 적이 없다. 이경식 산우나 이원무 산우는 가장
많은 사진을 찍었으리라. 모두의 입에서 감탄사가 절로 터진다. 주목과 비슷하게 생긴
구상나무가 간간이 눈에 띈다. 구상나무는 모든 나무 중에서 피톤치드가 가장 많이
나온다는 나무이다. 나 원장은 연신 감탄사를 발하고 철쭉 철에 꼭 오자고 하는데 나도
적극 동의한다.
이경식 산우의 블로그로 들어 가서 좋은 설경을 꼭 보기 바란다.
반대편에서 오는 여 산객이 발목에 부상을 입었는지 부목을 대고 건장한 사나이의 등에
업혀 온다. 산행은 같이 오르고 함께 내려 와야 한다. 중봉을 지나고 향적봉 대피소에서
잠간 쉬고 바람이 부는 향적봉에서 기념사진 한 컷. 마침 공단 여직원들까지 올라왔기에
동반시를 소장님에게 읊어줄 것을 청했는데 신 이사가 여직원에게 권한다.
가늘지만 고운 소리로 읊으니 새로운 감동이 온다. '내가 죽어서도 섬길 당신은'의
시어는 모두의 가슴에 깊이 남아 있을 것이다. 실천봉으로 내려와서 상제루를 들르고
곤도라로 무사히 하산. 돼지찌개와 막걸리로 뒷풀이를 했으며 뒷풀이 비용은 신 이사가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쏘았다. 훌륭한 코스, 맑은 물, 천년 주목과 구상나무, 환상적인
상고대와 눈꽃 등이 있어 좋아야 할 날이었으나 그때까지도 도움쇠의 마음은 몹시 서운하고
무거웠다.
매우 좋은 설경이었다. 부득이 참석하지 못한 산우들은 다음에 꼭 기회를 다시 갖자.
참석 : 이경식, 김삼모, 김순단, 박형채, 김종화, 이원무, 나창수, 한양기, 조문형, 정해황,
전작, 이창우, 신원우, 임용복, 위윤환, 이재웅, 김정남(17인)
시산회를 해인에서 발기하여 1회 도봉산행을 시작으로 54회의 산행을 하면서 참으로
민망한 꼴을 당하여 이 글을 올린다. 두 번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서운한 일이다.
우리의 모임은 회칙도 없고 모아진 기금도 없지만 정 하나로 뭉쳐진 시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임을 표방하며 작은 발걸음을 디딘지 2년 5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회원끼리 싸운 적도
얼굴을 붉힌 적도 없었는데 심히 유감스럽다. 나는 뒷담화도 싫어하고 뒷공론은 더 싫어하므로
작정하고 공개적으로 이 글을 올린다.
산을 오르는 속도는 개인의 차가 심하다. 사랑을 얻는 것과 부자가 되는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듯이 산행의 속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당일의 컨디션에도 좌우될 수 있다.
산행의 속도는 단지 시간의 차이일뿐 별다른 능력의 차이는 아니다. 최근에 박형채 산우는
늦는 사람들을 겨냥하여 산행의 연습을 열심히 하여 빨리 오르도록 하자는 말을 완곡하게
표현한 적이 있는데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어쩌랴! 늦는 사람들은 늦고 싶어 늦는 것이
아니라 체력이 약해 늦는 것이다. 위윤환 산우도 그런 표현을 한 적이 있으나 요즘은
그 말을 하지 않으니 고마운 일이다.
1978년. 내가 암벽등반을 하고 싶어 산악연맹의 회원으로 도봉산장에서 교육을 받을 때 앞장
서서 오르는 사람은 뒷사람의 산행속도를 맞춰가며 올라야 하며 그것이 리더의 올바른
자세라 배웠고 뒤로 처지는 사람은 체력을 단련하거나 컨디션을 최상으로 유지하여
뒤처지지 않도록 유의하라고 배웠다. 서로서로 모두를 배려해서 즐거운 산행을
하라고 배웠다. 산행은 즐거워야 한다고 배웠다. 산 앞에 항상 겸손하라고 배웠다.
어려움도 즐거움도 함께 하라고 배웠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얘기들이다.
규율은 엄했으나 후배는 선배를 공경했고 선배는 후배를 아꼈다.
뒤로 처지는 사람들의 거친 숨소리를 들어보았는가?
힘들어하는 그들의 무거운 다리를 본 적이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리더는 갈림길에서는 쉬면서 뒷사람이 다른 길로 들어서지 않도록 배려해주어야 한다.
늦는 것이 부끄러운 게 아니고 불편할 뿐이듯이 빠른 게 자랑할 것도 아니며 오히려
겸손해야한다. 맨 끝의 사람을 배려해주며 오르는 것이 진정한 리더의 자세이다.
젊은 시절, 나는 선배의 명에 따라 처음에는 길을 잘 안다는 이유로 리더를 했지만
경륜이 쌓인 수년이 지난 후에는 맨 마지막에 오르면서 낙오되는 회원을 독려하는
구조반장을 했다. 선배들은 리더보다 수고롭지만 중요하고 영광스러운 자리라고 했다.
무거운 약품통은 항상 내 차지였다. 전체가 도착해야 식사를 함께 하고 산행이 끝나
헤어질 때도 마지막 회원이 도착해야 함께 헤어진다. 산행은 리더와 맨 끝의 차이가
많이 벌어지면 끝의 사람은 더 힘들어지고 오히려 산행시간이 길어진다. 그 시간을
줄이기 위해 내가 항상 맨 끝의 산우와 함께 도착하는 이유이다. 지난 일이지만 도움쇠가
미주알이 빠져 불참해서 할 말이 없으나 설악산행 때도 앞 팀과 뒷 팀의 차이가 두 시간
이상 차이가 난 것은 리더의 부재 때문이었으나 산행인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훌륭한 리더는 앞팀과 뒷팀의 차이가 짧도록 리드하는 사람이다.
빠른 팀과 늦는 팀으로 갈라설 수도 없는 일이다.
이제 항상 앞 서서 가는 것을 즐기는 위 산우와 박 산우도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뒤로
처져서 뒷팀과 함께 가보기도 해야한다. 덕유산행 때 앞 팀이 먼저 식사를 한 것은 우리
시산회 일명 먹산회에서 발생해서는 안 될 사건이었다. 옛 산우들에게 물어봐도 같은
대답이다. 더우기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인 신원우 산우와 그 직원들이 동행했는데
그들은 우리 시산회를 어찌 생각했겠는가. 부끄러운 일이다. 반성해야 한다.
배가 고팠다면 물이라도 먹으면서 참았어야 할 일이다. 핸드폰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이다. 돌이켜 보건대 이원무 산우는 사진을 찍어주면서 늦었고 뒤처진 산우들의 배낭에는
함께 맛있게 나눠 먹으려고 먹을 것들이 가득차서 무거워진 배낭때문에 발걸음이
느려졌을 수도 있다.
정해황 산우, 김종화 산우, 이창우 산우, 나 원장, 도움쇠의 배낭에는 그날따라 유난히
맛있게 먹을 것이 많았다. 한 총장은 우리를 위해 어려운 일을 마다하지 않은 사람이다.
조문형 산우는 나 원장이 무거워서 맡긴 추어탕까지 주인의 허락없이 먼저 먹고 조금만
남겼으니 악심이라고는 찾아볼 것이 없는 천사표 나 원장도 특히 그것에 대해 화가 많이
났었다.
정상에서 기념사진을 찍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모두가 올랐음을 확인하고 함께 찍어야 한다.
불참한 기 회장이 있었으면 그런 불상사가 없었을 텐데 아쉬운 일이다.
특히 위 산우와 박 산우는 처음부터 고락을 같이 한 창립멤버인데 다른 산우들이
그러자고 해도 막았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그들에 대해 심히 유감스럽다.
곤도라를 타고 내려오면서 김삼모 산우가 대책회의 운운하며 자기 탓이라며 변을
이야기하려 했으나 더 듣지 않았다. 어떤 이유로도 이해가 가지 않았고 더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뒷풀이하면서 거론하려했으나 공단직원들이 참석하고 먹는 자리인데다
신원우, 임 수석, 김 선생, 전 산우등이 사과하고 말려 그만 두었으니 나도 앞으로
두 번 반복하지 않는다.
산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포용하고 인내하라고 가르쳤으나 우리는 배우지 못 했다.
누구나 실수는 한다. 그러기에 인간이다.
나도 지나치게 화를 낸 것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고 반성한다.
나도 좋아서 이런 글을 올리겠는가. 내가 산우들 앞에서 화를 낸 적이 있는가.
그러나, 공언한다. 앞으로 또 그런 일이 있으면 내 그 밥상을 발로 차버리겠다.
내 불같이 급한 성격보다 더 빠르게 발이 먼저 나갈 것이다.
그 다음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겠다.
말이 길었다. 개인적인 감정도 없다. 더 잘 하자는 의미로 받아 주면 고맙겠다.
늙어 가면서 모두 함께 가야할 사람들이지 않는가!
이 사건을 거울삼아 한층 더 화기애애한 시산회로 거듭나기 바란다.
[행복한 性] 향수에 젖은 남자, 해방구 꿈꾸는 여자
한 해의 운은 그 해 수호동물이라 할 수 있는 12지 동물의 성격,행태와
많이 닮았다고 생각한다.
양띠 해는 양을 닮아 평화롭고,말띠 해는 말을 닮아 활기 차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띠'를 가지고 태어나 어른들로부터 그 동물의 좋은 덕성과 의미를
들으면서 자신을 동일시하려고 했다.
올해는 돼지해다. 돼지해에 우리는 뭘 기대하는 걸까?
우리는 그저 '더럽고 많이 먹는다'는 이미지만 떠올릴 뿐이다. 보기보다
젠틀한 돼지는 억울할 것이다. 새끼 돼지가 여러 개의 어미 젖꼭지 중
자기에게 할당된 것 말고는 넘보지 않는다는 것.
자기 것을 정확하게 알고 형제들 것을 넘보지 않으며, 어미는 새끼들
모두가 젖을 물었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젖을 흘러내 보내는 습성이 있다.
그런데 IQ가 돼지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은 인간은 어떤가?
내 것인지 남의 것인지 다 알면서도 남의 것을 탐한다.
기혼여성의 절반가량(49.4%)이 현재 외도를 하고 있거나 과거에 외도를
한 적이 있다는 충격적인 조사가 나왔다.
'배우자를 두고 외도를 해본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현재 하고 있다 26.3%, 과거에 한 적은 있지만 현재는 안하고 있다 23.1%,
하고 싶지만 실제로 한 적은 없다 38.9%, 전혀 하고 싶지 않다'고
답한 여성은 9.1%에 그쳤다. 한 번쯤은 결혼식장에서 맹세한 서약의
사슬에서 벗어나 즐기고 싶은 게 인지상정.
같은 사과라도 몰래 먹는 사과가 더 맛있다는데 몰래하는 사랑 놀음은
얼마나 짜릿할까? 오랜만에 가슴 떨리는 사랑을 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미팅이든 부킹이든 번개팅이든 상관없이….
남성도 마찬가지. 하루에도 수억마리씩 생산해내는 정자를 주체할 수
없어 아예 본능에 충실하겠다고 작심한 부류들도 적지 않다. 최근 관련
조사를 보면 기혼남성의 88.5%가 기회가 닿으면 배우자 외의 여성과
섹스를 하고 싶다고 대답했고,78.0%가 실제로 배우자 이외의 여성과
섹스를 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자신의 정자를 하나라도 더 퍼뜨리고 싶어하는 것은 수컷의 본능이라고
치자. 그런데 평생에 난자 400개만 소수정예로 만들어내는 여성은
어떻게 설명해야하나.
여자는 자신과 아기를 안전하고 편안하게 살게 해 줄 능력 있는 남자라고
생각해서 결혼을 한다. 그리고 나서도 왜 바람을 필까? 한마디로
종족보존과는 상관없는 섹스 그 자체를 즐기고 싶어하는 것이다.
바람 피는 여성은 배우자와 정서적으로 소통이 잘 안 될 때, 남편보다
성적 매력이나 재력이나 지적능력이 뛰어난 남성을 만났을 때, 적극적인
유혹을 받았을 때 새참(?)을 먹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고 말한다.
쾌락, 호기심, 모험의 욕망을 못이겨 일상의 궤도에서 이탈해 버린 것이다.
"내가 돈을 안 벌어다 줬어? 밥을 굶겨? 뭐가 불만이야? 밖에 나가
돈 벌기가 쉬운 줄 알아?내가 버는 돈의 3분의 2는 모욕의 대가야.
알기나 해?"
"아니,요새 누가 밥 못 먹구 사는 사람 있어? 난 럭셔리하고 엘레강스하고
판타스틱하게 살고 싶단 말이야. 공주로 살고 싶다는 얘기지."
농경시대에 태어난 중년남성들은 젊은 시절 산업시대의 역군을 자부하면서
뼈빠지게 일만 했고 이제 머리 희끗희끗해지면서 정보화의 바다를 표류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들은 시대가 바뀌면 눈치껏 바뀌어야 하는데도 기득권의
향수에만 젖어 꿈쩍을 않았다. 그 사이 여성들은 곳곳에 해방구를 만들어 왔다.
불쌍한 남성들이여. 어쩌겠는가? 변신하든지,적응하든지 해야지….
공룡처럼 멸종당할 수는 없지않는가?
뜨거운 감자는 호호 불어가며 입술이 데지 않게 잘 다뤄야 한다.
내 이드(id)대로 리비도(libido)만 추구한다면 금가는 건 시간 문제다.
남의 떡이 더 큰 거 같아 작은 눈 크게 뜨고 짧은 목 길게 늘여
휘둘러보면서 바람도 쏘여보지만 정신을 차렸을 땐 씁쓰레한 상처뿐.
이게 다 일부일처제의 비극이라고 한탄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는가.
돼지해인데 돼지보다 못한 인간이 될 수는 없지.
아무리 여성해방구 시대라고 하지만 원초적 욕망대로만 살수는 없지.
무엇이든지 있어야 할 곳에 있어주는 게 자연스럽지. 내 것이 아닌 걸
탐하면서 돼지나 다를게 없지.
남의 것에 신경 끄고 제발 내 것에 체널 고정! 설도 지났으니 나부터
매력을 키우려고 노력해보는 거다.
"자갸 나 이뻐? 몰라몰라… 자기 멋쟁이…."
일간 경제지에 연재되는 성(性)에 관한 칼럼에서 펴온 글이다.
개인적으로는 죽어도 좋다. 본능에 따라 살고 싶다.
얼마나 긴 인생이라고..... 죽으면 썩어 문드러질 육신인데.
후생이 있다고.....지옥과 천당이 있다고..... 없다. 증명해 봐라.
다음 산행지는 덕유산에서 정한대로 북한산이다. 들머리를 정할 때 이 총장은
정릉,나는 국민대 방향을 권했으나 다음에 갈 곳이기에 순서만 바뀌었다.
날머리는 먹을거리가 많은 아카데미 하우스방향으로 정한다. 들머리의
해발고도가 200m이고 보현봉이 705m이니 500m를 오르는 셈이다.
프롤로그시와 동반시 선정이 어려워 애를 먹는다. 산우들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는 말을 늘어놓다보니 내 맘도 불편해져서인지 연설모드에서 시적 감상모드로
전환이 잘 안 된다.
한용운 님의 '알 수 없어요'와 '님의 침묵', 서정주 시인의 '귀촉도' 중에서 귀촉도로
정했다가 그래도 또 사랑의 시이다. '님의 침묵'으로 정한다. 고교 시절, 서상학 선생은
'님'을 조국으로 한용운 선생을 애국지사로 분장해서 이 시를 해석했던 기억이 난다.
아니다. 스님이기전에 그도 인간이었고 사랑도 했을 것이다. 아무리 읽어도 분명
사랑의 시이다. 가슴이 물클해지는 사랑의 시이다. 일요일에는 비가 온단다.
어찌 될지 모르지만 비오는 삼각산에서 이 시를 읽는 기분은 어떨런지...
님의 침묵 / 한 용 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微風)에 날어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은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2007년 3월 3일
시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모임 시산회 도움쇠 金 定 南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