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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두위봉과 1,400년 주목(詩山會 제56회 산행)

두위봉과 1,400년 주목(詩山會 제56회 산행)

1,400년 된 주목을 보러 두위봉에 오릅니다

산 : 두위봉(1,466m.정선, 영월)

코스 : 함백역-단곡천-감로수-산마루고개-정상-큰도사고개-1,400년 주목-탄전기념관

소요시간 : 오름 2시간 내려옴 2시간

일시 : 2007년 3월 18일(일) 7시

모이는 장소 : 2호선 잠실역 3번 출구 너구리상 앞(25인승 버스 대기)

준비물 : 중식, 막걸리, 사진기(주목 촬영용)

연락 : 이경식(011-222-1028)

블로그 : 사진 blog.daum.net/sisan20

산행기 blog.naver.com/yc012175

 

 

늦은 점심으로 밀국수를 삶는다

펄펄 끓는 물속에서

소면은 일직선의 각진 표정을 풀고

척척 늘어져 낭창낭창 살가운 것이

신혼 적 아내의 살결 같구나

한결 부드럽고 연해진 몸에

동그랗게 몸 포개고 있는

결연의 저,하얀 순결들!

엉키지 않도록 휘휘 젓는다

면발 담긴 멸치국물에 갖은 양념을 넣고

코 밑 거뭇해진 아들과 겸상을 한다

친정 간 아내 지금쯤 화가 어지간히는

풀렸으리라

-이재무 '국수'전문


살아오면서 하루 세끼씩 거의 빠짐없이
챙겨먹었다는 사실을 돌이켜 보면 경악하고 만다.

그 많은 음식을 누가 무엇으로 만들어 주었던가.

그 엄청난 양을 먹어치운 만큼 가치 있는 삶을 살았나.

나이를 먹을 수록 복잡미묘한 맛 보다는 순수한 맛 쪽으로 기우는 스스로를 보고

슬쩍 웃곤 한다.

'소면'도 그 중 하나다.

무엇보다 조리과정이나 먹는 방식이 단순명쾌해서 좋다.

있는 듯 없는 듯 늘 곁을 지켜주는 ‘아내’ 같은 음식이다.


-이정환(시평)

 

 

하늘도 무거운 지난 3월4일...

70미리의 폭우예보에 마음이 움츠려 들었는지 지난 번 보다 훻씬 적은 9명의 친구들이

길음역에 모였습니다.

전작, 한양기, 김종화, 박형채, 김순단, 이원무, 이창우, 한천옥, 이경식

 

아무래도 오후에는 비가 올것 같아 당초의 국민대 들머리 코스를 정릉-보국문-대동문-

아카데미하우스로 단축하기로 했습니다.

 

사실 여름비는 시원한 맛이라도 있지만 겨울비나 봄비를 맞으면서 까지 등산할 필요는

없는 것이어서 급히 보국문을 향하여 산행을 시작했지만... 소낙비도 아닌 것이 이슬비는

더욱 아닌 것이 찔끔찔끔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주에 간 덕유산의 눈꽃 산행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산행은 즐거운 법...

마른 산이나 비에 젖은 산이나 산이 주는 기쁨은 한결 같아 집에서 TV앞에 있기 보다는

산에 오길 잘 했다고 맘 먹으면서 등산을 계속했습니다.

 

아무리 비가와도 먹을 건 먹자....우리는 먹산회가 아닌가..?

김정남 회장이 일부러 챙겨 보내준 흑산도급 홍어를 빗 속에서 시식하고 막걸리로

입을 행구면서...우리는 감사 했나이다 “ 어이 정남이 고맙네....”

 

보국문이나 대동문 성루 밑에서 비를 피하면서 점심을 먹기로 했으나 막상 성채에

도달하니 성문으로 쏱아져 들어오는 메가톤급의 강풍 때문에 도저히 점심을 먹을 수가

없어서 그냥 계속 산행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 차라리 내려가서 편하게 뒷풀이 겸 식사를 하자....

이윽고 대동문을 빠져나와 20여분 쯤 가니 비가 그쳤다.

이때다. 하늘이 항상 기회를 주는 건 아니어서 점심을 펼쳤습니다.

 

전작의 나물비빕밥, 김종화의 초밥, 이창우의 깁밥, 형채부부의 준비된 식단, 한천옥의

과일 후식 등등으로 먹산회 다움을 이번에도 과시 했습니다.

 

무사히 아카데미하우스 앞으로 하산하여 4.19 묘지 까지 걸으면서 뒷풀이 장소를 물색하여

한적한 생맥주집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아무리 비가와도 시는 낭송하자....우리는 시산회가 아닌가..?

비오는 수유리의 생맥주집에서 한용운 선생이 살아 났습니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한양기의 시 낭송이 끝나고 우리의 건배도 홀 안을 넘쳤습니다.

생맥주잔을 높이 들고.... “ 잘 먹고 잘 사세 ” “그러세”

정말 맞는 말입니다 잘 먹고 잘 삽시다.

 

끝 2007.3.6. 이경식 씀

 

 

작년은 쌍춘년이라고 억세게 결혼들을 해 댔다.

올해쯤 결혼하려고 했던 커플들도 웬만하면 당겨서 했을 것이다.

모처럼 찾아온 황금 돼지해에 복이 더덕더덕 달라붙은 아기를 낳고 싶은 욕심

때문이리라.

 

주례 선생님은 또 어떤가.

단골 메뉴로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이러이러하게 살라고 하나님 같은 좋은 말씀만

하시지만 앞으로는 더 잘 안 들을 것 같다.

 

며칠 전 파비엔 구-보디망 세계미래학회 회장은 평균 수명이 120세가 되는 2070년에는

평범한 사람도 결혼을 두세 번 이상 하게 될 것이며 장수 사회가 결혼 패턴과

가족 제도를 바꿔 놓을 것이라고 하였다.

 

일단 결혼하면 똑같은 배우자와 80~90년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끼 있는 사람이건

아니건 간에 남편이나 아내를 적어도 두서너 명 이상 갈아치우게 될 것이고, 가치관도

결혼 패턴도 송두리째 바뀌어 30세쯤 첫 번째 결혼, 40대에 두 번째 결혼, 60대에

세 번째 결혼, 80대에 네 번째 결혼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한다.

지금의 결혼 제도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해서 20~30년쯤 함께 살던 시대에

사람들에 의해 제도화된 것이다.

 

너도 나도 역사 이래 유례 없이 오래 살면서 지루하게(?) 한 사람과만 평생을 산다는

것은 고문(?)일 것이다.

사랑이라는 찬란한 이름 앞에 눈멀고 귀먹어 '온리 유'만을 부르짖다가 유효 기간이

다하는 날, 핑크 렌즈가 벗겨지면서 또 다른 사랑을 꿈꾼다.

제 짝을 놔둔 채 본능에 충실한 인간의 한눈 팔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있어 왔다.

일부일처의 역사 이래 서로 속고 속이면서 끊임없이 다른 사람을 찾아 헤매는

짝짓기 경쟁, 더 많은 짝을 추구하는 남성과 더 나은 짝을 추구하는 여성, 평생을 약속한

제 짝을 둔 사람들에게 때아닌 사랑은 기쁨이며 슬픔이었다.

 

"아니, 국회의원들은 도대체 뭐하는 거야? 난 결혼해서 딱 5년씩만 살게 했으면 좋겠어.

사람이 말야, 뭐 새로운 맛이 있어야 살맛이 나지.한 사람과 몇십 년을 살아왔는데 아직도

살아갈 날이 더 많다는 건 너무 끔찍하지 않아? 난 제일 싫은 말이 검은 머리 파뿌리야."

 

"난 그렇게까지는 안 바래. 한 20년씩만 살면 바꿔서 살아도 된다는 법이 있었으면 좋겠어.

국회에서는 맨날 쌈질만 하지 말고 민생을 챙겨야지. 그 전 같으면 애들 낳아 키우며 잘

먹지도 못하고 뼈빠지게 일 하다 보면 늙고 병들고 기운 빠져 죽을 병에 걸리니 그냥그냥

참고 살았지만 이제는 그게 아니지. 워낙 다들 건강하고 쉽게 죽어지지도 않으니 그게

문제야.그렇다고 샛밥 좀 먹어 볼래니 안 들킨다는 보장도 없고 말이야. 앞으로는 누구라도

서너 번 결혼을 하게 된다니 기쁘긴 하지만 우린 너무 일찍 태어났단 말이야. 속상해서 원…."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적을수록 건강한 사회이겠으나 그렇다고 그저 한 번쯤 해 보는

말이라고 치부할 수도 없는 지금이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전체 이혼 건수 중 20년 이상 결혼 생활한 사람들의 이혼은 지난

10년 동안 8.2%에서 18.7%로 증가하였고 재혼도 94.5%가 급증하였다.

살다가 싫으면 헤어질 수도 있고 또 다른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

 

이처럼 우리도 한 사람하고만을 고집하는 제도가 무너져 가고 한 발 한 발 세계 추세에

따르고 있다고 봐야 한다.

눈만 뜨면 서로 쳐다보는 부부는 행복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오래되어 찌들고 찌그러진 양은 냄비도 쇠 수세미로

벅벅 닦으면 반딱반딱 윤이 난다.

 

요즘 나날이 발전하는 찜질방은 떨어져 나간 사랑 퍼즐을 주워 맞추기 안성맞춤이다.

이 방 저 방 돌아다니면서 사람들 구경하며 골라 드러눕는 재미도 있지만 오페라의

유령처럼 마스크 팩을 서로 붙여 줘 가며 진흙 발라주는 재미에다 푸석푸석한 얼굴이

반들거리기까지 한다.

신혼 때 기억을 되살려 낯익은 손톱과 발톱도 깎아 주고, 내친 김에 따끔거리기야 하겠지만

이 동네 저 동네 뒤적거려 가며 파뿌리를 쏙쏙 뽑아내는 품앗이까지 한다면 잠은 솔솔

오고 서로의 무르팍은 천당이 된다.

 

친밀감은 보너스로 따라와 얼굴이 벌개지면서 빨리 집에 오고 싶을 것이고

아름다운 밤은 커밍 쑨….

 

-성경원(행복한 성)

 

나는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익산의 원불교 영모묘원에 계신 어머님 산소에

가는 습성이 있다. 그런다고 안 되는 일이 풀리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마음 속의 다짐이나

의지를 더 키우기 위한 핑계이며 방편이다. 그 분의 일생은 나에게 많은 귀감이 되어

내 인생의 좌표가 되기도 한다. 독실한 원불교도로서 사비를 털어 양로원을

설립하여 원장을 하시고 복지법인의 이사장으로 계시다 양로원의 현대식 건물이

완공된 직후 꽃 피는 춘삼월 4월 8일에 생전에 혼신의 힘을 기울여 만드신 양로원에서

조용히 영면하셨다. 유난히도 비명에 가신 분들이 많은 집안의 비운을 안타까워

하시다가 자식에게 1원을 물려 주면 1원짜리 바보를 만드는 것이요, 1억원을 물려

주시면 그 만큼의 바보를 만드신다며 사랑하는 자식인 내게는 단돈 1원도 물려 주시지

않고 양로원에 가지신 모든 것을 바치신 분이다. 임 수석이나 나 원장 같은 친구들은

그 사정을 잘 안다. 그러한 보시 덕분인지 그 후에는 집안에 큰 비운이 없었다고

자위한다. 오늘날, 내가 이 만큼이나마 된 것은 그 분의 음덕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극히 사적인 얘기이므로 여기까지다.

 

익산까지 간 김에 전주와 남원을 거쳐 구례의 산동마을에 가서 산수유꽃도 보고 광양의

매화마을에 가서 매화도 보고 왔다. 매화꽃밭의 한 모퉁이에 외롭게 피어있는 동백꽃도

보았다. 만개하지는 않았지만 구경할만 했다. 다음 주는 축제라 차와 인파로 혼잡할 것이다.

벌교의 꼬막정식으로 늦은 점심을 먹고 왔는데 별미 중의 별미였다. 꼬막을 까느라고

손톱이 상했는데 다 까먹을 무렵에는 요령이 생겨서 괜찮았다. 산우들에게 한 번쯤

권하고 싶다. 40여장의 사진으로 남기니 내 블로그로 가서 구경하기 바란다. 매화도,

동백도, 섬진강, 노고단의 원경도 있으니 꼭 방문하기 바란다. 이 총장! 미안하네.

어쩌다 자네의 영역까지 침범했으니...ㅎㅎㅎ

 

산수유꽃으로 유명한 구례 산동면 상위마을의 맨 윗쪽 계곡에서 찍었다.

 

다음의 산행지에 대해 이 총장은 중간 거리의 산으로 가고 싶은 마음 같았으나 기 회장이

처음 정한대로 가자고 해서 두위봉으로 정한다. 산마루고개와 큰도사고개까지의 능선에

피는 봄의 철쭉도 좋으나 철쭉은 한국의 산하에는 봄에는 어디나 핀다. 깊은 산이라 때가

묻지 않아 가을 단풍이 화려하고, 높이에 비해 순하고 험하지 않으므로 위험하지 않아

겨울 설경도 좋다.

2003년 12월 4일에 오른 적이 있다. 내 기억에는 쉬이 오른 산인데 산우들이 믿지 않으니...

두위봉은 1,400년된 주목을 보는 것으로도 그 만큼의 가치가 충분한 산이다.

들머리의 해발고도가 700m이니 700m만 오르면 된다.

내 기억으로는 큰도사고개를 넘어 내려오면서 비탈진 곳에 세 그루가 있다.

그 정도의 수령이면 땅 속에 묻히지 않은, 살아 있거나 세워져 있는 것 중 최고령일 것이다.

등산안내서에는 1,800년이라고 나와 있으나 현지의 게시판에는 분명히 1,400년으로

쓰여 있다.

 

두위봉은 정선군에서 가리왕산(1,561 미터) 다음으로 높게 솟아 있으며, 첩첩산중에

있으므로 쉬이 접근할 수 있는 산이 아니다. 이 기회에 빠짐 없이 가서 사진도 찍고

천년 이상의 세월을 곧게 살아있는 주목을 보고 오자. 안 가면 후회할 것이다.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의 주목에 관한 말이 무색하다.

비슷한 높이의 봉우리가 있는데 영월군과 정선군은 자기 군에 속한 봉우리에 각각

정상이라는 정상목을 세웠다. 웃어야 할 일이다.

 

열차편으로 갈 수 있지만 왕복 교통비가 버스보다 싸지 않고 걷는 시간이 너무 길어

시간이 많이 소요되므로 호명산행처럼 뒷풀이를 못 할 수 있으므로 버스로 편하게 갑시다.

 

동반시를 선택하는 것이 갈수록 어려워진다. 산우들과 내가 시를 조금씩 알아가면서

느끼는 생각이다. 이제는 수 차례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가 정한다. 일조의 선시(禪詩)다.

나의 애송시 첫 번째이다. 그러나 끝까지 외우지 못 한다. 내 젊은 날, 불교에 심취했을 때

이 시를 만해선사(卍海禪師)의 오도송(悟道頌)으로 생각했다. 선승들이 오랜 수도 끝에

자신이 깨우쳤다고 생각했을 때 짓는 시를 오도송이라 하는데 그들은 한시를 지는다.

나는 만해를 깨우친 사람으로 간주했었다. 그의 <조선불교유신론>은 읽어 보지 않았지만

대강의 요지는 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들은 한시를, 만해는 현대시의

형태를 갖춘 것이 다를 뿐이다. 그들은 생의 덧없음을, 허무를 노래하지만 만해는

자연현상, 즉 보이는 것을 묘사하면서 깨달았음을 수줍게 표현한 것이다. 이것은

고교시절의 서상학 선생과 지금의 내가 일치하는 해설이다. 잠시 해설집을 보니

어느 저명한 교수님은 '부정을 통해 긍정에 이르고 그것을 다시 부정하므로써 보다

큰 긍정에의 길을 준비하는 불교적 변증법의 방식'으로 이 시를 해석했는데 그것은

학자들이 논문을 쓰거나 학위를 받기 위한 현학적인 표현이고, 시는 생각대로 읽고

느끼면 된다. 그들이 알까. 스님들이 말하는 허무가 '有無의 無'가 아님을.....

'空'이 滿空의 空이 아님을... 생의 덧없음에서의 생이 生死의 生이 아님을...

아마 임 수석은 알 것이다. 이 시는 필히 임 수석이 읽어야 한다.

그러니 꼭 참석해야한다. 그리고 해석까지 덧붙여야 한다.

 

 

 

알 수 없어요 / 한 용 운

바람도 없는 공중에서 수직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이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을 알지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2007년 3월 12일 새벽에

 

시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도움쇠 金 定 南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