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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아차산에서 망우산까지(詩山會 제63회 산행)

아차산에서 망우산까지(詩山會 제63회 산행)

산 : 아차산(285m), 용마산(348m), 망우산

코스 : 광나루역-아차산-용마산-망우산-면목역

소요시간 : 3시간

모이는 곳 : 전철 5호선 광나루역 2번 출구

일시 : 2007년 7월 1일(일) 10시

준비물 : 간단한 간식, 살얼음 낀 막걸리(하산 후 매운탕으로 식사 겸 뒷풀이)

연락 : 이경식(011-222-1028)

블로그 : 사진 blog.daum.net/sisan20

산행기 blog.daum.net/yc012175

 

 

뗏목은 강을 건널 때나 필요하지
강을 다 건너고도
뗏목을 떠메고 가는 미친 놈이 어데 있느냐고.
이것은 부처님의 말씀을 빌어
명진 스님이 하던 말이다.
저녁 내내 장작불을 지펴 펄펄 끓는
방바닥에 배를 깔고 누운 절 방
문을 열어 는개로 뽀얀 골짜기를 내려다보며
곰곰 생각해 본다.
혹 나 지금 뗏목으로 버려지지 않겠다고
밤낮으로 바둥거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 나 지금 뗏목으로 버려져야 할 것들을 떠메고
땀 뻘뻘 흘리며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는개 - 안개보다 조금 굵은 비

 

-신경림(뗏목)전문

 

강을 건네준 뗏목을 버려야 한다. 어떻게 생사를 함께한 것들을 버릴 수 있겠는가.

는개를 내다보며 쉬고 있는 저 깊은 희양산의 봉암사 저녁. 절방에서 생은 참

허허롭기만 했을 것 같다. 나는 지금 필요없는 짐을 짊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시평<고형렬.시인>

 

신경림 시인은 내가 좋아하는 시인 중의 한 분이다.

그 분의 책도 몇 권 있다. 동반시로 선정된 시가 여럿 있다.

목계장터, 농무 등은 시인의 대표작일 수 있다.

시와 인생 사이에서 그는 많은 것을 생각한다.

하여, 시인에게서 문득 얻어지는 것이 많다.

좋아하는 시인 한 분쯤 있으면 좋을 것이다.

부처님 말씀치고 틀린 말이 있겠는가. 중도 아닌 것들이 중인 척 하는 것이

못 마땅할 따름이다. 정치판이나 그 판이나 어중이 떠중이들이 모여

척하는 꼴 보기 싫어도 나도 속물 중의 속물인데 어이하랴.

 

 

시산회 제62회 한라산 산행기

 

참석자- 기세환 신원우 이원무 박형채 한양기 한천옥 전작 남기인 김종화

이창우 정해왕 나창수 조문형 김순단

 

16일 오후3시 김포공항에 집합하여 아시아나 항공으로 제주행

바쁜 일정을 마치고 애쓴 보람으로 전원이 탑승을 했으나 두 회원이 전날에야

사정으로 불참을 통보해서 기 회장 심기가 편하지 않은 눈치였다. 내 눈치가

10단이라고 애들 앞에서 큰소리 치고 있는 형편인데 맞았는지 궁금한 문제이다.

서울은 찜통 더위인데 1시간도 안가 도착된 바다 건너 제주에는 비가 오고

있었다. 혹시 이러다가 등산 일정에 차질이 생길까 걱정이 되긴 했으나 2년 전에

인천항에서 배로가는 한라산 등반모임에 참석했던 기억을 살려 걱정을

묻어 두었다. 초속 20미터 강풍에도 1950미터 정상에서 비바람 속에서 밥을 먹고

내려 왔으니 말이다.

김 종화 산우의 도움이 시작되는 렌트카 업무부터 시작되어 우리가 즐겨 탔던

노란애마처럼 15인승 쌍용 이스타나를 빌려 타고 서귀포로 달렸다.

공항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이창우와 한양기는 나타나지 않아 서귀포행

중간에서 우리와 합승을 했는데 1분도 안 기다리고 갔다는 억지를 두사람

중에 한분이 우겨서 낯이 두꺼운 걸 증명해 주는 즐거움을 주었다.

입 반찬이 즐비한 한 양기 산우는 우리의 귀를 즐겁게도 하고 귀찮게도

하는 취미를 가졌다.

하루 이틀 먼저 와서 관광을 즐긴 일로 이들 두 회원은 진작이라는 분과

비양도행을 꿈꾸는 어처구니 없는 일로 늦었으면서 우리 일행(12명)이

1분도 안기다리고 공항을 떠났다는 억지를 남발했으니 웃기는 마우스가

아닌가 말이야.

이렇게 웃다보니 금방 숙소에 도착하게 되었다.

 

해안가에 아늑하게 자리 잡고 연근해 어류 연구를 하는 곳이라 매우 마음에

들었다. 비가 오지만 따끈한 숙소에 방이 7개라 잠자는 데는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 생각되어 마음이 놓였다.

시산회에 가끔 부부가 뻔질나게 참석하는 나는 부부가 방 하나를 독차지해야

하는 눈총을 받아 피투성이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그런 시름을

놓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기 회장이 방 배정을 하는데 조건이 까다롭다

담배 피워 애국한 회원방, 자면서 코로 노래부르는 회원방, 부부가 자는방,

서로 자고 싶은 회원방, 등 다양한 방법으로 방 배정을 하여 모두가 만족한

눈치였다.

 

각 방에 짐을 두고 연구소 시설을 둘러보는 시간, 평소에 바다낚시라도

해봤더라면 해박한 지식을 나열 할 수 있겠지만 많은 고기들을 기억하지

못해 기록하기가 어렵다.

감성돔, 돌돔, 참돔 등 많은 바다 물고기를 기르는 중인데 종화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저 큰 바다 물고기 한 두마리면 우리 회원들이 오늘 저녁에

배불리 회로 먹을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을 갖으며 두루 살펴 보았다.

저녁 먹을 시간인데 시산회 전임 김 회장이 오늘 다금바리 비슷한 회를

사기로 약속했는데 불참하여 그 기쁨을 맛 볼 수 없을거라 생각이 들었으나

시산회 회원들이 누군가, 먹산회가 아닌가, 종화가 젊은 시절 근무하면서

은밀하게 감춰 놓은 회집을 찾아 나섰다.

20년(?) 전이라 주인 마님은 늙어서 딸과 함께 우리의 저녁거리를 만들고

있었다. 나는 서울서 준비해온 3년 숙성한 30도 오가피주를 얼음에 타서 한잔씩

돌리고 기회장이 재미난 구호로 건배 선창을 하였다.

꼿꼿하게! 꼿꼿하게! 꼿꼿하게! 세우세! 세우세! 세우세!

우리의 기상을 세우자는 건지, 거시기를 계속 세워보자는 건지는 유일한

여성 산악회원 땜시 기회장의 설명은 듣지 못했으나 필시 후자려니 생각된다.

우리학교 나 또래 여선생 시아버님께서 충남 당진에 사셨고 80이 넘어서도

가끔 젊은 다방아가씨를 불러 커피를 마셨다는데 이사하면서 보니깐 성인

용품이 깊숙한데서 나왔다고 남자의 성적 편력이 그렇게 오래 지속되는지

몰랐다나 하면서 시아버지 흉을 본 일이 있었다.

우리도 그런 점에서 예외일 수 없을까 성 싶기도 하니 등산으로 열심히

체력을 증진시키자는 구호로 여겨진다.

 

횟집 두 여자 주인은 부지런히 오고가면서 그 회집에 있는거 없는거

다 동원하여 우리의 주린 배를 불룩하게 채워 주었다.

맑은 공기와 바닷바람을 맞으며 숙소로 와서 우린 내일을 위해 행복한

꿈나라로 날라 들었다.

아침 5시가 조금 넘어 하나 둘 잠자리를 벗어나와 모기타령들이다.

엊저녁에 모기에 많이 뜻긴 모양이다.

난방을 뜨끈뜨끈 하게 하여 더운 관계로 모두들 모기에 알몸을 헌납하였던

모양이라 한마디씩이다.

종화와 문형이가 헌신적으로 왕 컵라면에 계란을 풀어 아침 식사를 준비해

맛있게 먹고 난후에 갖가지 개인용 간식거리-해황표 모시떡, 바나나, 초코렛

등을 배급받고 점심용 김밥을 배낭에 넣은 다음 숙소를 7시경 떠났다.

 

여전히 비는 내려서 7시 40분경 성판악 휴게소에 도착 비옷 3000냥을

투자하여 착용한 결과 흰색이 많아 마치 겨울 산악 스키부대 모양 한 줄로

정상을 향해 전진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앞이 터지지 않은 우비라 더웠던지

20분이 지나자 하나 둘 우비를 벗기도 했다.

어찌하랴 비를 맞아 감기들지 모르니 그냥 입고 가는 인내파가 대부분이었다.

걷다가 쉬다가 또 걷고 걸어서 사라악 약수터까지 5.1킬로 목표를 삼고

열심히 걸어 10시경 도착하여 맛있는 산속 삼다수를 마음껏 먹고 병에 가득

채워 또 정상을 향해 걸었다. 중간 기착지인 진달래 산장에는 지금 공사

중이고 아마 대피소를 짓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기 회장의 커피 선물을 한잔씩

마시고 걷기를 시작 한참 가는데 햇살이 우리를 기쁘게 했다.

왜냐하면 백록담을 볼 수 있는 기적을 선사하리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안개비는 그래도 추적추적 내려 우리의 체온을 조절해주었고 무사히

한라산 정상에 오르게 해 주었다.

그 동안 닦은 등산 실력으로 한사람의 낙오자 없이 12시경 정상에 도착하였다.

 

백록담 전망대에 자리를 펴고 김밥으로 점심을 시작하면서 막걸리를

한 잔씩 부어 우리의 소원을 위하여 건배하였다.

15분쯤 지났을까 누군가 구름이 거친다! 외쳐서 밥먹다 말고 백록담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더니 과연 기적이 일어났다.

모두들 기뻐서 사진을 찍는 등 기쁨의 아우성으로 몇 분 동안의 기적을

맛보았다. 우리에게 기쁨도 잠시 백록담은 안개속으로 사라져 내려올때는 날씨

변덕 때문에 눈 인사도 못하고 내려오게 되었다.

시산회 역사 중에 가장 검소한 점심을 먹고 모두 서서 김순단 님의 가냘픈

목소리로 한라산 등반시 김영명의 '내가 당신을 얼마나 꿈꾸었으면'을 낭송하였다.

자신들의 천국을 향해 서로의 꿈을 꾸면서 자신들만의 세계를 갖고자하는

사랑의 시였다.

 

이제는 관음사쪽 코스로 향해 아쉬운 하산을 할 시간이 왔다.

또 언제 이곳을 찾아 소원을 빌어 볼 날이 올 것인지 생각하며 걸음을 옮겼다.

마침 새싹이 돋아난 구상나무 군락지가 앞에 전개되고 기묘한 석회암으로

마치 석부작을 연상케 했다. 성판악 오름과는 다른 능선길이라 시야가 트여

신선함을 보여주었다.

죽은 고목은 새 생명을 지켜주는 수호신인양 군데군데 꿋꿋하게 서 있었다.

햇살이 나오고 안개 구름이 산위에서 계곡쪽으로 소리없이 내려오는 모습이

동양화가의 붓놀림 같아 잠시 넋을 놓고 감상했다. 신이 만들고 있는

작품이려니 초단위로 새로운 풍경화를 연출하는 위대함이란 여기 아니면 또

어디서 찾아 보겠는가! 조금 더 내려오니 계곡에 능선을 향해 사진 찍기 좋은

휴게소가 있어 이리저리 모두 다 사진을 찍었다.

관음사까지 빨리 가야 일정을 마칠 수 있어 쉬지 않고 걷고 걸어

관음사휴게소에서 거의 10시간 동안의 한라산등반 대장정을 마쳤다.

 

잠시 우리의 애마가 오는 동안 지친 몸을 씻고 관음사 휴게소에서 나 원장이

제공한 히테 맥주를 한 꽝씩 들이키고 난 후 목욕탕으로 이동하여 사우나도

하고 한양기 산우 누님조카가 운영하는 용꿈식당에서 저녁을 맛있게 먹고

공항으로 직행 8시50분 제주발 서울행 아시아나에 몸을 실었다.

참 짧지만 의미 있는 여정의 산행으로 우리의 기억에 남으리라.

좋은 곳에서 즐겁게 지낼 수 있게 배려해 준 김종화 산우께 심심한 감사의

말을 우리 모두 드리고 싶네. ㅉ ㅉ ㅉ

시산회원 들이여! 처음 마음처럼 영원하라!

그리고 사랑의 시를 읽는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고 가꾸어 가자!

끝으로 무사히 한라산 등반하도록 일정을 도와준 이경식 총장과 기세환

회장의 노고에 대해 참석한 모든 산우들이 감사의 박수를 보내네. ㅉ ㅉ ㅉ

 

2007. 6. 19. 01:30

박형채 씀

 

 

*다음은 김종화 산우의 산행후기이다.

 

약 10여년 전의 일이다...

 

부산 본원(국립수산과학원)에서 외국과의 과학기술협력 업무를 담당하고 있을 때였지...

외국 손님들이 우리원에 오면 스케쥴을 짜고, 입국시 공항에서 부터 출국시까지 안내를

해 주는 것이 나의 주요 업무 중의 하나였었지...

 

그런데 한번은 일본 농림수산성에서 귀중한 손님이 왔었고, 2박 3일간의 모든 일정을 잘

마치고 귀국하던 날 내차로 해운대 G호텔에서 김해공항까지 바려다 주었던 일이 있었지...

출근시간이라 차가 막힐걸 예상하고 공항까지 2시간이면 충분할 걸로 예상하고 예정된

출국시간 보다 약 1시간의 여유를 두고 3시간전에 해운대 숙소에서 출발 하였었지...

 

그런데 그날따라 차가 워낙 많이 막혀서 공항 출국장에 도착하니 불과 30분 밖에 시간이

남질 않았다... 겨우 비행기표를 티켓팅하고 곧장 탑승수속을 밟는 시간 밖에 없었지...

 

오랜만에 한국에 와 면세점에 가서 가족이나 친지, 직원들의 선물도 사야 할텐데...

외국손님에게 그런 실례가 있을 수 있겠는가... 너무나 죄송하여 백번 사죄하고

미안함을 표하였지만, 그 사람의 입장에선 얼마나 황당하고 기분이 어떠 하였겠는가???

 

그런데 3년전에 일본에 출장 갈 일이 있었는데, 일본 동경의 한 만찬장에서 바로

그 시람을 만나 옛날에 있었던 그 창피한 사건을 이야기 하였였지... 그 사람도 이해는

한다고 했지만 아직까지 출퇴근시간에 교통정체는 어떻게 해결해야 될지...??? 지금도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미안하고 창피해서 고개를 들지 못할 심정이다...

 

그런데... 이번 제주도 한라산 등반과 관련하여 나에게 불행하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3시에 공항에서 만나기로 친구들과 약속하고 2시간이면 성남집에서 공항까지 충분히

도착할 것으로 예상하고 잠실에서 공항버스를 탔었는데... 토요일이라서 그런지

차가막혀 예정시간보다 30분이 더 소요되었다...

 

기다리던 기회장과 친구들은 얼마나 애가 타서 안절부절 기분나빠 했겠는가...???

물론 출발시간도 잘 못 알고 갔었지만, 제주도에서 약 5년을 생활 하였었기에

누구보다도 비행기를 많이 타 보았고,... 해서 최소한 15분전 까진 좌석배정을 받아야

하는데...

 

버스안에서 안절부절 속을 태웠던 내 심정이야 오죽하였겠는가??? 출발 10분 전에 도착,

겨우 탑승을 하고나니 이마와 등에 땀이 배였다... 이 자리를 빌려 애태우게 했던

기회장과 친구들에게 다시한번 사죄하고 다음 부터는 그런 일이 없도록 각성할테니

용서 하시게네...

 

금번 한라산 등반에 김정남 전회장이 불참한 관계로 기회장께서 산행기는 제주도를

잘 알고 한라산도 몇 번이나 등반을 한 나에게 부탁한다...

 

글쓰는 재주가 별로 시원치를 않해 극구 사양했지만 글쏨씨가 뛰어난 형채와 같이

의해서 필히 시산회 블로그에 올리라고 해서 잠시 시간을 내어 생각나는대로 몇자

적어보네...

제주공항에 오후 4시 반경에 도착하니 일기예보대로 주적주적 비가 내린다...

이번산행엔 14인이 동행하게 되었다. 당초엔 정남이가 고소공포증이 있어 비행기

타기를 꺼려함에 따라 두 부부가 육로로해서 목포나 완도에서 배를 타고 오기로

했었는데...불행이도 불참하였다...

 

아마도 월요일에 아침일찍 회사일 등의 개인사정이 있는가 보다... 그동안 정남인

몇번이고 한라산 등반을 시도했건만 아직까지 정상에 한번도 못 올라봤다고 한다...

섭섭한 점도 있지만 본인 심정이야 오죽하겠는가...??? 모두들 이해를 해야지...

 

이미 예약해 놓은 봉고(15인승)를 렌트하여 12인(세환, 형채, 순단, 기인, 창수,

천옥, 해황, 문형, 원우, 원무, 전작, 종화)의 산우들은 제주대학교 입구에서 하루 먼저

도착한 한 총장과 창우를 태우고 5.16도로로 가다 산굼부리가 있는 남조로로 해서

숙소(위미)를 향하였다...

 

숙소는 김 소장이 약 20여년 전에 근무하였던 남제주군 남원읍 위미리에 있는

국립수산과학원 종보존연구센터의 관사를 활용하기로 하였다...

 

숙소로 오는도중 김순단 선생은 날씨도 좋지않고 꼬불꼬불한 길에 차멀미를 하여

잠시 휴식을 요청한다... 내일 아침에 가야 할 5.16도로는 이 길보다도 더 꼬불꼬불하여

어지러울텐데... 심히 걱정이 앞선다...

숙소로 들어와 방 배정과 짐을 풀고 오늘과 내일 산행일정에 대하여 간단히 상의하고

종보존연구센테의 시설견학과 사무실 앞 야자수나무를 배경으로 기념촬영도 하였다...

 

당초계획은 제주시 동문시장에서 광어회에다 저녁을 하면서 쐬주를 한잔하기로

되었으나 그것보단 기왕 제주도에 모처럼 왔으니 숙소 가까운 곳에 바다가 보이고

자연산 회를 시식하는게 좋을 것 같아 기회장과 상의하여 곧장 숙소로 왔었다...

 

그 옛날 제주도에서 약 5년동안 생활하면서 느낀 점은 제주도는 약 1~2년은 이국적인

맛이 있어 그런대로 괜찬지만 그 이상은 마치 유배생활을 하듯 갑갑하기 그지없는

그런 곳이다...

제주도 사람들은 다 그러하지는 않지만 예부터 고려시대 몽고족의 침입이나 이조시대

임진왜란, 근년에 와서는 4.3 제주도민 학살사건 등으로 항상 피해의식이 잠재해

있어서인지 육지사람에 대한 배타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저녁식사는 숙소에서 가까운 위미항 근처에 있는 어촌계장이 운영한다는 곳을

김소장이 그곳 직원을 통하여 소개받아 찾아갔다... 그날따라 비도 오고 받아놓은

고기가 없어 갯돔과 아나고, 쥐노래미(게르치) 등 횟감이 별로 시원치가 않았지만

순수 자연산이라는 것과 형채와 김순단 선생께서 정성들여 담가 가져온 그윽한 향기의

오갈피술 맛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이번 산행에 동행한 친구들은 개인적으로 몇 번씩 제주도 여행을 하였겠지만...

아마도 상당한 기대감을 가지고 왔었을 줄로 믿는다. 숙소나 맛있는 저녁만찬, 등등...

내가 주선한 이런저런 것들이 친구들의 기대에 충분히 부응치 못해 죄송스럽기 그지없다...)

 

숙소로 들어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내일 아침식사용 컵라면과 달걀, 막걸리, 과일,

초코렛, 물 등을 준비하고 아침 6시 반경에 출발하기로 하고 취침에 들어갔지만

코고는 소리, 엥엥거리는 모기소리와 잠자리가 바뀌어 신경 예민한 잠 못자는

친구들이 몇몇 있었다...

 

제발 비가 그치길 염원했건만 아침 5시경에 일어나 창문을 열어보니 부슬비가

소리없이 계속 내린다... 컵라면에 달걀을 넣어 간단히 아침요기를 하고 개인별로

김밥, 과일, 초코렛과 막걸리 등을 분담하여 배낭에 넣고서 오늘 산행의 들머리인

성판악을 향하였다...

 

성판악휴게소에 도달하니 벌써 먼저온 등산객들이 일회용 비닐을 입고서 산행준비에

분주하다... 일기예보에 오늘 비가 계속 온다고 하니 벌써 몇몇 친구들은 “적당히

오르다 하산하여 고스톱이나 하던지, 발맛사지나 받고 말지”하고 걱정스러운지

실망스런 푸념을 한다... 하지만 우리가 누군가?? 약 두달 전부터 계획을 세워서

기다려 왔고, 비가오나 눈이와도 산이 좋아 여기까지 오지 않았던가... 모두들 우의나

일회용 비닐을 입고서 07시 40분에 성판악(해발 750 m) 휴게소를 출발하였다...

 

성판악에서 정상까진 9.6 Km,... 1 Km도 오르지 않아 벌써 빗물인지...??? 땀물인지

이마와 머리가 물에 졌는다... 비가 조금 그치면 비닐우의를 벗어 배낭에 걸치고,...

다시 비가오면 다시 또 입기를 몇 번 반복하고 약 1시간 간격으로 쉬엄쉬엄 막걸리도

한잔, 초콜렛과 과일도 자시면서 오르니 진달래밭대피소가 보인다...

 

잠시 비가 멎고 구름이 거치면서 햇살이 보이기도 한다... 겨울철 등반객을 위해

대피소를 한창 수리중이다... 이곳에서 잠시 쉬면서 커피도 한잔, 기념사진도 한장

찍고나니 기분이 한결 새로와 진다...

 

여기에서 정상까지는 이제 약 3 Km, 2/3 이상을 오르니 그렇게 힘들지가 않았다...

다만 등산로가 거의 돌이나 나무로 만든 계단이어서 발목과 무릎관절이 시큰거린다...

나 원장이 힘든지 자꾸만 뒤로 처진다...

 

하지만 나 원장은 디카가 아닌 접사렌지가 있는 큼직한 사진기를 가지고 오면서

간혹 좋은 풍광을 담는 것 같았다... 날씨만 좋았으면 나 원장이 찍은 멋진 사진을

우리 시산회 홈페이지에서 구경할 수 있을 텐디..??? 날씨가 좋질 않아 아쉬운 일이다...

 

해발 1,000 m 고지에서부터 동능정상까지는 구름에 묻혀서 보이질 않았고...

정상(백록담)에서 관음사로 내려오는 길은 앞봉우리와 주변산세가 정말 환상의

절경이었다... 가을철에 다시한번 와야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

< 그 다음의 산행기는 형채가 보낸 글을 참고하시기 바라네... >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글이 있어서... 간단히 몇자 글 올리네...

한 수필집에서 누군가 이름은 기억이 나질않지만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 글이 있어

올리니 참고하시기 바람니다...

 

시간의 중요성

 

매일 아침 여러분에게 86,400원을 입금해 주는 은행이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런데 그 계좌는 당일이 지나면 잔액이 남지 않습니다...

 

매일 저녁 여러분이 그 계좌에서 쓰지 못하고 남은 잔액은 그냥 지워져 버리죠...

자네들이라면 어떻게 하시겠는가???... 당연히 그날 모두 인출해야죠...

 

시간은 우리에게 마치 이런 은행과도 같지 않을까요...???

 

매일 아침 86,400초를 우리는 부여받고 매일 밤 우리가 좋은 목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버려진 시간은 그냥 없어져 버릴 뿐이죠. 잔액은 더 이상 없습니다.

더 많이 사용할 수도 없어요...

 

매일 아침 그 은행은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돈을 넣어주죠... 매일 밤 그날 의 돈을

사용하지 못했다면 손해는 오로지 우리들이 보게 되는거죠...

 

돌아갈 수도 없고, 내일로 연장시킬 수도 없습니다. 단지 오늘 현재의 잔고를 갖고

살아갈 뿐입니다....

 

건강과 행복과, 성공을 위해 최대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뽑아 쓰십시오!!!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하루는 최선을 다해야 되겠지요...

 

1년의 가치를 알고 싶으시다면, 낙방한 수험생에게 물어 보십시오...

1달의 가치를 알고 싶다면, 미숙아를 낳은 애기 엄마를 찾아가 물어 보시고....

 

하루의 가치는 신문 편집자들이 잘 알고 있지요...

1시간의 가치가 궁금하면,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물어 보십시요...

 

1분의 가치는 열차를 놓친 사람에게 물어 보시고...

1초의 가치는 목숨과 바꿀지도 모를 아찔한 사고를 순간적으로 피할 수 있었던

사람에게 물어 보십시요...

 

천분의 일초의 소중함은, 아깝게 은매달에 머문 그 육상선수에게 물어 보십시요....

 

당신이 가지는 모든 순간을 소중히 여기십시요...

또한 당신에게 너무나 특별한, 그래서 투자할 만큼 그렇게 소중한 사람과 시간을

공유했기에 그 순간은 더욱 소중합니다...

 

시간은 아무도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평범한 진리!!!

어제는 이미 지나간 역사이며, 미래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지않는가...???.

 

오늘이야 말로 당신에게 주어진 선물이죠...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

 

우리들 주변에는 일주일의 피곤함을 달래는 일요일에도 가족과 함께 있어야 할

그 소중한 시간을, 소외된 사람과 삶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싶어, 짧은 시간이지만

장애인들과 함께 지내는 친구가 있더군... 그 누구가 시켜서가 아니라 먼 후일

내 생애를 뒤돌아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때...뜻있는 삶, 보람된 삶을 위해

정진하고 있는 멋있는 친구가 있어 그 친구를 생각하며 내 자신을 뒤돌아보면서

두서없이 이글을 올리네...

 

[ 추신 ] :

어제 퇴근시간 무렵, 형채와 김순단 선생님이 이곳에 왔다 갔었지... 지난번에 약속했던

표주박 및 단호박 모종과 꽃나무를 한자루 가지고 와 텃밭에다 심어주고 갔었지...

 

이 모종이 잘 커서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면 가을철 산행때에 시산회 친구들에게

좋은 걸로만 골라서 하나씩 드릴테니 다들 기대하시길...

 

산행기를 두 산우가 올렸는데 시산회 62회 산행 중 처음 있는 사건이다.

두 산우의 글을 보면서 느낀 소회는 앞으로 이 장을 회원 모두의 장으로 하고 싶다는

것이다. 맛깔스러우며, 신선하고 유익한 내용도 있고 새로운 느낌도 있다.

버릴 것이 없는 훌륭한 글들이다. 산우들의 생각도 같으리라 믿는다.

도움쇠가 자주 부탁할 예정이니 원고 청탁을 할 때는 거절하지 말고 써주기 바란다.

원고료는 막걸리 한 사발이다. 영원히 남겨지는 살아 있는 기록이므로 본인의

자취로 남는다. 그러니 사양할 일이 아니다.

일본의 베스트셀러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글을 쓰는 즐거움을 최고의 행복이라 한다.

그는 1년에 소설 한 편을 쓰고 1년을 놀고 1년을 수정한다고 한다.

즐기면서 돈까지 버니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내가 한라산을 산우들과 함께 오르지 못 한 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그 이유가

비행기에 이르면 민망하고 창피해서 얼굴을 들 수 없고 할 말이 없다. 기 회장이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지 않겠냐고 했는데 틀리지 않고 맞는 말이다. 이번에도 큰맘 먹고

오르려 했던 한라산 등반에 또 실패했다. 마나님도 그런 정도의 중증(重症)이면

20년 전부터 약속했던 유럽은 언제 가고 호주와 뉴질랜드, 미국, 일본, 중국은 언제

가냐고 놀리기도 하고 혼자라도 간다고 으름짱이다. 마나님에게 당한 수모(?)는

그뿐만이 아니다. 건설업을 하는 사람은 꼭 가봐야 한다는 체코의 프라하는 언제 갈까나!

일요일 오후에 육지로 출발하는 배편도 결항과 휴항이라니 황당했다.

비행기편도 월요일 오후 3시 이후에 있다니 월요일 아침과 점심의 약속은 깰 수 없는

약속이라 나로서는 불가항력이 되었으나 궁색한 변명이다.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기 회장의 기분은 박형채 산우가 말한대로 였단다. 내가 한라산행 경험이 많은

김종화 산우에게 특별히 부탁은 했지만 산행에 경험이 많은 위 산우, 이경식 총장,

나까지 빠져서 김도 샜고 답답하기도 했단다. 사죄의 뜻으로 토요일 밤의 횟값은

불참한 내가 냈으니 부디 해서(海恕)해주기 바란다.

한 총장은 전화 통화를 하면서 여태까지의 산 중 최고라고 약을 올린다.

산은 우열의 대상이 아니라고 수차례 강조를 했건만 묘한 심술(?)이다.

이래저래 수난시대다.

비행기표를 예약하는 순간부터 불안하고 탑승 일주일 전부터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사망공포증 환자를 고쳐줄 산우 없소?

 

 

*받기만 하는 아내, 주기만 하는 남편

 

누가 섹스를 먼저 하자고 할까?

남편이나 아내 중에 어느 쪽이든 옆구리 쿡쿡 찔러도 아무 상관없고 짜릿짜릿한 사랑을 나누면 그 뿐이다.

그런데 조사에 의하면 성관계 제의는 남성의 91.7%가 '본인',여성은 88.7%가 '배우자'라고 답해,열 쌍 가운데 아홉 쌍은 남편이 성관계를 시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핏대를 올려가며 양성평등을 부르짖는 요즘,사랑을 나누는 행위에서는 남녀가 불평등한 것 같다. 누가 먼저 요구할 필요 없이 자유로이 섹스를 시작할 수 있는 부부가 가장 행복한 부부다.

섹스는 왜 여자만 주인공이 되어야 할까?

섹스를 평가하는 사람은 여자이고 평가받는 사람은 꼭 남자여야 하는 걸까? 침대에서 주인공은 늘 아내고 남편은 조연이다. 얼마나 좋았냐고,어떻게 해줄까 매일 물어 보고 섹스의 달인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은 늘 남편. 매일 무슨 반찬을 해 먹나 고민하는 아내들 못지 않게 남편들도 침실에서는 아내 눈치 보느라 바쁘다.

늘 먼저 옆구리 찔러대야 하고 추근거려야 하고 건드렸다 딱지 맞으면 뾰루퉁 해서 엉덩이 홱 돌려 돌아누우면서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 쓰는 남편은 거부당했다는 생각에 삐지기 일쑤다. 남편들은 오직 내 아내를 만족시키는 것이 지상 목표로,하인처럼 희생하는 섹스를 하면서 아내가 행복해 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며 헛기침을 하고 으쓱해하면서 다음 날 당당하게 아침밥상을 받는다. 아내는 침대 위에서는 왕비가 되고 눈을 뜨면 하녀가 되는 거다.

그러나 한 번쯤은 남편들도 그런 질문을 받아보고 싶다. 때로는 남편들도 밥보다 밤일에서 아내로부터 황제처럼 온갖 서비스를 받고 싶어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부부들은 오로지 남편은 리드하고 아내는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정석으로 여기니 중년이 되면 성관계는 싫증나고 지겨워진다.

받기만 하는 아내도,주기만 하는 남편도 부담되고 피곤하기는 마찬가지다. 여성들이 오르가슴을 속인다는 사실이 누구나 아는 상식이 되어버린 것은 남성이 섹스를 리드하고 여성은 잠자코 따라가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이다.

조사에 의하면 언제나 주도하는 여성과 전혀 주도하지 않는 여성은 성생활에 만족을 덜 느끼고 있다. 부부관계에 소극적인 여성들은 남편에게 화를 잘 내고 섹스를 불쾌하거나 불만족스럽게 느낀다는 것이다.

침대에서 섹스에 대해 표현하는 아내들 중 75%는 섹스에서 능동적이며,수동적인 아내들보다 훨씬 성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어느 한 쪽에서만 요구하는 섹스에서는 만족을 못 느낀다는 얘기다.

"아내는 제 기분을 한번도 생각 안 하는 거 같아요. 그저 자기가 하고 싶지 않으면 '싫다'고 톡 쏘아붙이고 말지요. 제가 늘 먼저 하자고 그러기는 하지만 거절당하는 기분을 아마 아내는 모를 거예요. 남자는 속도 없이 늘 껄떡거리는 사람으로 취급하면 얼마나 자존심 상하는데요. 다 아내를 위해 해주려고하는 걸 모르나봐요."

자신과의 섹스를 달가워하지 않는 여성 앞에서 남성은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 자존심을 다친 남자는 바람을 꿈꾸든지 자신의 무능력함을 자책하며 조루라는 덫에 걸려들 수밖에 없다.

"저도 하고 싶은 생각이 날 때가 있지만 그걸 어떻게 남편에게 말하겠어요. 남편이 날 어떻게 생각할지도 모르는데. 그러니까 항상 남편이 시작하는 사람이 되는 거지요."

아내들은 달라져야 한다. 아내가 남편 요구에 못 이겨 마지못해 하는 서비스가 아니라,가끔은 자의로 섹스를 리드해갈 필요가 있다.

아내가 남편에게 어디를 어떻게 해달라는 말이 입에서만 뱅뱅 돌듯이 남편 역시 그렇다. 이제는 아내가 먼저 남편을 품에 안고 샅샅이 애무해 주는 슬기로움을 발휘해 주면 어떨까?

침대에서는 남편과 아내가 절반씩 리드해 갈 때 즐겁고 신나는 놀이가 된다.

여자이니까? 여자가 어떻게 하냐고? 으이구….

-성경원의 <행복한 성>

 

 

제주도에서 다음 산행지로 아차산에서 망우산까지로 정했다. 전작 산우가 발의하고

나 원장이 동의해서 결정됐다니 우리가 나 원장의 영향력을 무시하지 못 한다. ㅎㅎ

 

아차산에 대한 간단한 소개다.

너른 벌판 위를 달리던 한 줄기 바람이 갑작스럽게 숨을 몰아 쉬어야 하는 곳,

우뚝 아차(蛾嵯)라고 이름 한 곳이 바로 아차산이다. 정상표고 200m되는 지점에서

시작하여 동남의 한강변 쪽으로 경사진 산허리의 윗 부분을 둘러싸고 있는 산성의

형태가 남아 있다. 백제의 도읍이 한강 유역에 있을 때 우뚝 솟은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일찍부터 이 아차산에 흙을 깎고 다시 돌과 흙으로 쌓아 올려 산성을 축조함으로써

고구려의 남하를 막으려는 백제인의 노력이 있었다. 한강을 사이에 두고 맞은 편

남쪽에 있는 풍납동 토성과 함께 중요한 군사적 요지로서 백제의 운명을 좌우하던

곳이기도 하다. 아단성(阿旦城), 아차성(蛾嵯城), 장한성, 광장성 등으로 불리우기도

하여 백제, 신라, 고구려가 한강을 중심으로 공방전을 장기간에 걸쳐 벌였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성의 흔적은 60년대까지만 해도 눈으로 알아 볼 수 있을 정도로

남아있었다. 아차산 분수령의 전부와 그 북쪽 기슭 면목동의 동쪽과 아차산의

서남쪽 기슭을 달리는 진맥의 분수령 및 그곳부터는 분명치 못하지만 모진동 밭에

이르는 사이에 이어져 있었던 길이 4km에 달하는 토성과 석성 자리는 신라가 쌓은

장한성으로 알려져 있다. 1500여 년이라는 장구한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여러 차례

그 운명을 달리해야 했던 아차산성은 아직도 그 자신의 운명을 나타내려는 듯 당시의

토기와 기와조각 등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옛날 산성수비군의 역할을 다시

되새겨보려는 듯 많은 사람들이 오르는 시민공원이 되어 그 역사적 변신을

꾀하고 있다. 백제 개로왕의 한맺힌 사연이나 고구려 온달 장군이 최후를 마친 곳이라는

슬픈 얘기가 전해 내려 오고 있다. 그러나 다만 전설일 뿐이다.

 

내친 김에 용마산을 거쳐 망우산까지 가자. 거기에는 만해 한용운,

이승만에 의해 아쉽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진보주의자 죽암 조봉암, 고하 장덕수,

소파 방종환, 영원한 낭만주의자 이면서 준비된 연인 <목마와 숙녀>의 박인환,

우두접종법을 전파한 지석영 선생 등의 유택이 있다니 지나치게 되면

한 잔 술이라도 따라 드리자. 먹다 남은 술이 아닌 새 병의 술로 따라 드리세.

아차산의 해발고도는 285m, 용마산은 348m로 낮아 한여름에도 부담 없는 산이니

모두 오르자. 내려 와서 매운탕으로 뒷풀이를 즐겁고 맛있게 하잔다.

 

 

이번 산행의 동반시다.

시인은 스무 살에 한 여자를 만나고 스물여섯에 그녀는 소식이 끊어진다. 못 견디게

그리운 그의 사랑은 계절병을 만들어 봄만 되면 모든 걸 팽개치고 일기장, 원고지,

읽고 있던 책을 챙겨 어디론가 떠나게 한다. 그래야만 다시 1년을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모아진 시로 그는 1991년 <죽어서도 내가 섬길 당신은>이란 시집을

발표하여 그 여자를 찾기 시작했다. 그 후<죽어서도 2(허시 사랑)>,

<죽어서도 3(나를 태워, 내가 타는 뜨거움으로 너를 부르면)>,

<죽어서도 4(사랑 몰이)>를 매년 발표하였으나 소식이 없었다. 그런데 1995년

목매이게 그리워하던 그 여자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13년 사랑의 귀결인 그녀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그는 그의 사랑을 정리해 보기로 결심, 소설을 썼다. <끝없는 사랑>은

장편 실화 소설<죽어서도 내가 섬길 당신은>상, 하의 그 뒷 이야기이다.

'내가 죽어서도 섬길 사랑은'이라는 제목의 시는 101번까지 이어진다.

우리가 한 번 동반한 적이 있는 시다. '허시 사랑'이라는 제목의 시는 78 번까지 이어진다.

미련하고도 지독한 사랑이다. 참으로 요즘에 보기 어려운 멍청한, 그러면서도 서러운 사랑이다.

우리는 질긴 집착으로 볼 수 있지만 그에게는 죽어도 좋을 사랑이다. 가슴이 저리는 사랑이다.

죽을 때까지 한 번쯤 오고 가면 좋을 그런 사랑이다. 그런 사랑을 해본 산우가 읊어라.

없다면 늙은 나이라도 상관 없이 그런 사랑을 하고 싶은 산우가 읊어라.

 

 

죽어서도 내가 섬길 당신은 6 / 손종일
길게 이어진
수평선이 무색할 정도로
당신과는
평행을 그리고 있는 사랑.
차라리,
당신의 사랑을 꾸어 올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제 몸이 온통 헝클어져도
마다 하지 않겠지만
그 어디에도
당신의 사랑을 파는 곳이 없어
절망에 머리만 싸늘히 비어 갑니다.
계절의 틈새로
제 사랑도 함께 끼워
덮어버릴 수도 진정 없으면서도
무작정 당신을 그리는 가슴만 몸살을 앓고
그럴수록
혼자 되는 버릇만 되풀이합니다.
당신께서 제게 오셔야만 끝이 날
서러운 사랑입니다.

 

2007년 6월 26일

시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도움쇠 金 定 南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