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악산과 임꺽정(詩山會 제64회 산행)
임꺽정이 놀던 감악산에 오릅니다
산 : 감악산 (파주, 양주. 675 m)
코스 : 운계폭포-범륜사-숯가마터-정상-임꺽정봉-숯가마터-범륜사-운계폭포
소요시간 : 오름 1시간 30분 내려옴 1시간 20분
일시 : 2007년 7월 15일 (일) 9시. 9시 30분
모이는 곳 : 9시. 전철 2호선 교대역 2번 출구. 노란 중형버스 대기(011-223-8239)
9시 30분. 전철 4호선, 7호선 노원역 3번 출구
준비물 : 중식, 시원한 막걸리
연락 : 이경식(011-222-1028)
블로그 : 사진 blog.daum.net/sisan20
산행기 blog.daum.net/yc012175
그대 보고 싶은 마음 죽이려고
산골로 찾아갔더니 때 아닌
단풍 같은 눈만 한없이 내려
마음속 캄캄한 자물쇠로
점점 더 한밤중을 느꼈습니다
벼랑끝만
바라보며 걸었습니다
가다가 꽃을 만나면
마음은
꽃망울 속으로 가라앉아
재와 함께 섞이고
벼랑끝만 바라보며 걸었습니다
-조정권(벼랑끝)전문
하늘에 길이 있다는 것을 새들이 먼저 안단다.
하늘에 길을 내며 가는 새는 그 길을 지우며 간다.
새들이 하늘 높이 길을 내지 않는 까닭은 그 위에 별들이 가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야 알았다. 사랑에도 길이 있다는 것을.
사랑의 길은 깜깜한 한밤중에 벼랑끝을 걷는 것이며,
벼랑끝을 걷다가 만나는 꽃이 사랑이란다.
간혹은 벼랑끝에 핀 꽃을 꺾다가 떨어져 죽어도 아까울 것이 없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이제 알았다.
사랑은 죽을 때까지 오고 간다 했거늘 늙어서라도 참한 사랑을 한번 하다 죽어도
좋다는 생각을 해본다. 마음이 닿는대로 그 사랑이 외사랑이든 짝사랑이든 불륜의 사랑이든
원 없이 사랑 한번 하고 싶다.
시산회 제63회 아차산(-용마산-망우산) 산행기
참석자 ; 기세환, 김정남, 한양기, 이경식, 조문형, 이원무, 위윤환, 박형채,
김순단 여사, 전 작, 김종화, 이창우, 그리고 이재웅 이상 13명
살다 보면 내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상황들이 펼쳐지는 것을 자주 체험하면서
마치 개봉영화의 주인공을 따라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산행도중 왕 회장님께서 앞으로는 산행후기를 산우들이 돌아가면서 쓰자고
제안하는 말을 나도 듣기는 들었다. 그러나 그 지상명령이 나에게 떨어질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고 그냥 산행기는 다른 산우들이 쓰는 것이리라
가벼이 생각하고 산행과정에서 산행기를 쓰기 위한 취재(?)도 전혀 없었는데
등산 다음날 전화로 이번 아차산 산행기를 쓰라는 거역할 수 없는 엄중한(?)
Order를 느닷없이 받았다.
지금까지 한 번도 산행기를 쓰지 않으신 시산회 산우님들은 산행기를 쓸
기회가 곧 도래할 것이니 항상 각오를 단단히(?) 하시는 것이 좋을 걸세.
앞전에 기세환, 이경식, 박형채, 김종화, 등 다른 친구들이 글을 너무 잘
썼기 때문에 왕 회장님도 산우들이 돌아가면서 산행기를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작용했으리라 생각하여 평소 글 쓰는 일 하고는 거리가
멀었던 나에게까지 이렇게 글 쓰는 기회가 주어진 것에 대해 왕 회장님께는
물론이고 세환, 경식, 형채, 종화 친구들에게도 감사를 드리네.
2007년 7월 1일, 아침부터 비가 꽤 많이 내린다.
오늘은 특이한 빗속 산행이 될 것 같다.
여느 사람들은 비가 오는 것을 불편해 하는 이도 많은데 나는 변화하는
모든 자연의 각각의 분위기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것을 즐거이 느끼는
취미(?)가 있다.
즐거운 기분으로 집을 나서서 광나루역 2번 출입구에 도착한 시각이
오전 9시 15분, 기세환 회장님의 집결통보시각 오전 10시까지는 45분이나
남았다.
이 기회에 등산준비운동 겸 이 근처 뒷골목길 여행이나 하자는 맘을 먹고
우산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행진곡 삼아 뒷골목 도보운동을 약 40분간
하고나니 이 또한 나만이 느끼는 보너스 행복이어라.
뒷골목도보운동 중에 새로이 육중하게 다시 축조된 광진교를 직접 가 보았는데
예전 통행금지상태의 허름한 광진교를 연상하고는 격세지감 같은 것을 느꼈다.
열시가 되니 광나루역 2번 출입구에 정다운 산우님들이 다들 모였다.
그런데 산우 중 조 아무개(이름을 직접 대면 걸릴지 모르니까 이름 대신
아무개라 칭했음, 그래도 알 사람은 다 알겠지만, 조씨가 한 사람이니까 ㅎㅎ)
산우께서는 아차산역 2번 출입구에서 하차를 하셨다나? 그 님을 기다린 시간이
한 20분 가까이 되는 것 같았다. 기다리는 동안 김정남 왕 회장님이 오늘 처음
밝은 하늘색(?) 새 셔츠를 입은 것이 이전까지 검정색 일색으로만 코디를
했던 것에 비해서 훨 fashionable하게 보이는 것을 놓고 이경식 총무님은
101만원짜리 핸드폰디카 셔터 눌러대고 또 어떤 산우는 박형채 산우의
4만5천원짜리 값비싼(?) 모자를 왕회 장님 머리에 씌워 보이고 또 한 모 산우는
왕회장님의 새 샤쓰가 메이커제품이기는 하지만 중국산일 수도 있다하면서
왕 회장님의 심기를 건드려 보기도 하면서 조 산우를 기다렸다. 조 산우가
하차하는 역을 잘 몰라서 집결지에 늦게 도착하는 것을 불편해 하거나
원망 섞인 말을 하는 산우는 아무도 없었다. 다들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즐거이 기다리는 그 모습이 좋았다.
10시 반경에 등산 출발
주택가를 지나 아차산이 시작되는 곳부터 동의초등학교 옆길까지는
초행길인데 자연친화적으로 잘 가꿔진 공원길 이었다. 등산 시작 후
얼마 후부터 비는 개이고 등산하기에 좋았다.
동의초교옆길에서부터 아차산 정상까지는 95, 96년도에 한 달에 두어 번은
등산을 했었던 길이어서 나에게는 오늘의 등산길이 10여년 전 추억을 더듬는
산행이기도 했다.
아차산 정상을 오르기 전에 해돋이광장을 만났다.
해돋이광장에서 인공무대위에 올라 동쪽을 보니 팔당 쪽 한강과 아득히
멀리 예봉산, 검단산으로 보이는 산자락과 함께 확 트인 광활한 전경이
아스라이 보인다. 새해 첫날 새벽 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 해돋이광장에서
무슨 소원들을 그리도 빌어 왔을까를 잠시 생각하다가 집에 가서 마누라쟁이한테
당신은 무슨 소원을 빌었었느냐고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우리 마누라가 작년
원단에 남편보고는 집에 있으라 하고는 자기는 철야기도를 하고는 신도들과
함께 새벽 해돋이를 보러 다녀왔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집에 와서 마누라에게 그 때 해돋이광장에서 뭘 빌었느냐고 물으니
별로 보드랍지 않은 말투로 “식구들 잘되기”를 빌었지 특별히 뭘 빌었겠느냐고
별걸 다 묻는다는 식으로 핀잔 섞인(?) 답변을 들었다.
핀잔이 섞인 대답이든 퉁명스런 대답이든 지금 이 나이에 보드랍지 않은
언어포장을 탓할 것 없다. 식구들 잘되기를 빌었다 하니 나도 그 식구에 속한
사람이니 그러면 됐다 생각했다.
한참을 가다가 보니 일행숫자는 분명 열 세 명이었는데 갑자기 일행이
세 명으로 확 준 게 아닌가? 박형채 산우, 박형채 산우와 가장 친한 김순단 여사,
그리고 나 이렇게 세 사람만 뒤 쳐졌다(나중에 알고 보니 앞장섰었음)는 것을
알고는 셋이서 먼저 간 일행을 따라잡을 목적으로 있는 힘껐 걸었으나
아차산 정상을 지나도록 일행을 만나지 못하였는데 왕 회장님의 전화연락을
받았다. 알고 보니 전작산우의 안내로 아차산성을 구경하고 거기서 위윤환
산우가 준비한 삶은 낙지안주에 서울막걸리 잔치를 벌였던 것인데 우리 셋은
그것도 모르고 앞서 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기다리면서 오이 안주에 마시는
막걸리맛도 괜찮더라. 그래도 용마산 헬기장에서 먹는 타임을 가질 때
위윤환 산우가 준비한 낙지안주를 아차산성잔치에서 다 먹지 않고 우리
세 사람 몫으로 남겨와 주신 산우님들의 배려에 감사했습니다.
아차산(285m)을 지나 용마산((348m) 능선을 지나는 도중 팔당쪽 한강,
풍납동, 암사동, 명일동, 고덕동, 하남시, 검단산 지역을 넓게 바라볼 수 있는
한 전망 좋은 곳에 잠시 머물게 되었는데 박형채(선생님)산우님께서 유능한
공인중개사가 재테크설명을 하듯이 능란하게도 강동구지역과 하남시지역에
대해 손으로 가리켜 가면서 잘도 설명해 주었다. 역시 선생님은 다방면에
박식하구나!!! 라고 여러 산우들이 감탄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망우산 등산을 하게 되었다. 시산회에 가입한 것을
감사히 생각했다. 망우산 등산로는 포장이 잘 되어 있었고 그 포장된 길을
따라서 의롭고 큰일을 하고 가신 근세의 대인(大人)들의 묘지들이 있었다.
고 장덕수 님(언론인,정치가), 고 조봉암 님(독립운동가, 제헌의원,
초대농림부장관, 2대 3대 대통령출마, 1958년 국가보안법위반으로 사형),
고 오세창님, 고 지석영 님(한국 최초로 종두를 보급실시),
고 한용운 님(독립운동가, 승려, 시인), 고 방정환(소파, 1931년에 32세로 요절)
등 님들의 묘소가 있었다.
왕 회장님은 고 조봉암 님의 산소 앞에서 불교신자가 합장하고 허리 굽혀
예를 갖추는 모습으로 잠깐 예를 올리는 숭고(?)한 모습이 좋았다.
고 만해 한용운 님의 묘소에는 묘 두 기가 있었고 우측 묘는 부인 유씨의
묘라는 비문이 있었는데 묘를 바라볼 때 우측 묘를 말하느냐 묘를 등지고
있을 때 우측 묘를 말하느냐의 논쟁(?)이 산우들 간에 잠시 있었는데
내가 114안내로 묘지 관리사무소에도 물어 보았으나 당직 직원도 답변을
못하더라. 애라 오른쪽이면 어떻고 왼쪽이면 어떻겠느냐? 부부는 一心同體인 것을.
소파 방정환 선생의 묘소를 보면서 잠시 가슴이 저리는 애달픔을 느꼈다.
1899년부터 1931년까지 불과 32년의 짧은 생애동안 만세에 이어갈 어린이날이
있게 한 위업을 이룬 것을 생각하니 존경스럽고 한 편으로는 더 좀 긴 생을
사시지 못하고 젊으디 젊은 나이에 요절을 한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저려 옴을
느꼈다.
고교시절에 국어교과서 내용 중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책) 내용이
나오길래 그 책을 사서 숙독한 적이 있는데 지금 그 책의 세세한 내용은
잊었지만 지금 기억으로 그 책에서 얻은 주요 교훈은 이런 것이 아니었나 싶다.
사람이 나이가 젊어서 죽는 거나 좀 더 많은 세월을 살다가 죽는 거나 많은
세월이 흐른 후에는(예를 들어 30년을 살다가 죽은 사람이나 80년을 살고
죽은 사람이나 100년이 지난 후에는) 요절한 사람과 장수한 사람의 차이는
없어지고 그 사람이 남긴 업적으로 그 사람의 가치가 평가된다는 뭐 그런
교훈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런 교훈에 비추어 소파선생님은 긴 생애를
사셨던 분으로 생각된다.
망우산 하산직전 김정남 왕 회장님은 남은 막걸리 누구 없느냐고 막걸리를
찾는다. 아무도 남은 막걸리는 없었다. 망우산 등산로가 두 갈래 길인데
우리는 한 쪽 길로 내려 와 두 길이 합쳐지는 곳에서 김정남 산우는 우리가
걷지 않았던 다른 등산로를 따라 혼자서 거꾸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詩 <목마와 숙녀>로 유명하며 나이 30세에 요절한 박인환 시인의 묘지를
참배하기 위해서였다. 망자를 찾고 그 망자를 기리는 그 마음은 거룩한 생을
영위하는 좋은 바탕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등산은 세 시간 반 정도로 끝나고 당초 예정으로는 면목동 매운탕으로
뒤풀이를 할 예정이었으나 망우동의 한 삼겹살집에서 뒤풀이를 끝으로 63회의
산행을 마쳤다.
아차산성을 직접 가보는 기회를 내가 놓치기는 했으나 아차산성의 내용을
조사하여 간단히 여기에 올립니다.
475년 백제의 개로왕(재위 455∼475)이 백제의 수도 한성을 포위한 3만여 명의
고구려군과 싸우다가 전세가 불리하자 아들 문주를 남쪽으로 피신시킨 뒤 자신은
이 아차산성(=아단성) 밑에서 고구려군에게 잡혀 살해되었다. 이로써 백제는
한성에서 웅진(熊津)으로 천도하게 되었다. 또 고구려 평원왕(平原王:재위
559∼590)의 사위 온달(溫達) 장군이 죽령(竹嶺) 이북의 잃어버린 땅을
회복하려고 신라군과 싸우다가 아차산성 아래에서 신라군의 화살에 맞아
전사를 하였는데 병사들이 온달장군의 관을 옮기려다 꼼짝도 하지 않다가
평강공주가 위로의 말을 건네자 비로소 관이 들렸다는 애절한 전설도 전해진다.
이 아차산성은 백제 초기의 전략적 요충지였으며 그 후 고구려가 잠시 차지했다가
신라 수중에 들어가 신라와 고구려의 한강유역 쟁탈전 때 싸움터가 된 삼국시대의
중요한 요새였다.
이상 산행 후기를 마칩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재웅 올림.
나를 왕 회장으로 지칭한 것을 빼고는 참으로 잘 쓴 글이다. 부끄럽다고 했지만 겸손의 말이다.
성격대로 차분하고 조리가 있다. 光高人은 누구나 잘 쓴다고 믿는다. 이 좋은 솜씨로 자식들에게
e-메일의 형식으로 좋은 말을 주고 받으면 아버지의 가치가 한층 더 높아질 것이므로 한 번
시도해 보기 바란다.
다음은 한천옥 산우의 차례다. 꼭 참석하여 숨은 솜씨를 빛내주기 바란다.
하면 되는 여자 vs 돼야 하는 남자
사람은 언제까지 섹스를 할 수 있을까? 남성은 언제까지 할 수 있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지푸라기 집어들 기운만 있으면…,문지방을 넘어갈 수 있다면…, 숟가락 몽둥이를 들 수 있다면 할 수 있다는 등 남성의 섹스 능력을 높이 평가하는 말을 한다.
여성은 언제까지 할 수 있느냐고 물으면 아무도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폐경이 되면 못하는 거 아닐까?라는 자신 없는 대답과 생리가 끊어지면 여자도 아니라는 자조섞인 소리로 여성의 성적 능력을 비하하는 말뿐이다.
사람이 성적으로 가장 왕성한 때는 남성 17세,여성 35세다.
여성은 폐경이 되면 난소의 작용이 떨어지면서 여성호르몬의 양은 줄어들지만 부신피질로부터의 남성호르몬 분비가 남성보다도 절대량이 많아져 성적 욕구가 증가한다. 음핵이나 다른 성감대의 자극 반응은 변하지 않으나 질의 분비물은 줄어들고, 폐경 후 질벽은 불과 대여섯층의 얇고 약한 세포층만 남게 되어 남성이 삽입할 때나 성교 중에 통증을 느끼게 되니 자연히 섹스를 멀리 하게 된다.
그러나 이제는 걱정할 것이 없다.
러브 젤 한 방울이면 깨끗이 한 방에 끝난다.
매끌매끌 거리는 것이 옛날에 시어머니 방에 참기름 병이 부럽지 않다.
게다가 약국이나 성인용품 숍에 젤을 사러가기 민망하다면 선인장 화분을 안방에 들여놓고 잘라서 쓰고 또 잘라서 쓰니 걱정이 없다.
이렇게 여자는 젤 한 방울 떨어뜨리고 '하면 된다'. 언제까지?죽을 때까지.
반면 남성은 '돼야 한다'. 중년 남성은 고환과 부신피질의 위축으로 남성 호르몬의 분비가 적어지고 상대적으로 여성호르몬이 증가해 성적 욕구를 억제한다. 성적 욕구의 원동력은 남녀 모두 남성호르몬이 좌우한다. 중년 남편은 피부 감각이 둔해져서 아내의 손이 닿아도 짜릿한 감각을 못 느끼며 성욕이 떨어지고 발기력도 옛날 같지 않아진다. 아무리 자타가 공인하는 변강쇠의 후손이라도 힘 자랑 횟수가 뜸해지면서 돌발 사태가 생긴다. 남성은 여성화되고 여성은 남성화되면서 섹스에서도 중년까지 계속 리드하던 남편이 아내에게 리드를 당하게 되는 것이 숙명인 것이다.
매스터스와 존슨도 1960년에 남자는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이상이 없는 한 80대 이상 지속되지만 여자는 시간적 제한이 없다고 했다.
노화에도 불구하고 남성들은 자신의 성적 능력에 여전히 관심을 갖고 여성을 만족시킬 수 있을 만큼 훌륭한 솜씨를 갖고 싶어하나 물건이 말을 안 듣는다. 그런 일로 병원을 찾는다는 것에 대한 어색함내지는 민망함을 극복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딜레마에 빠진다.
그러니 갖은 보약을 찾게 되고,온갖 희귀동물도 닥치는 대로 먹어 보지만 한 번 고개숙인 거시기는 벌떡 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럴 때는 아랫동네 쪽으로 공부를 많이 하신 의사선생님의 도움을 받는 것이 백 번 좋을 것 같다. 챙피는 순간이요 발기는 행복하다.
바지를 내리기는 민망하지만 심혈관에 이상이 있는지 없는지 샅샅이 밝혀낸 후,이상이 없으면 발기부전치료제로,이상이 있으면 자기 수세미에 자기가 주사하는 방법이나 공기를 집어넣어 강제로 잡아 빼는 펌프도 있고,약 먹고 기다리는 1시간도 번거롭거나 음경에 주사기를 찔러대는 짓도 무섭고 펌프질도 다 귀찮지만은 하고 싶다는 분들은 거금을 들여 음경보형물 삽입수술을 하면 감쪽같다. 그러니 남성 또한 죽을 때까지 할 수 있지 않은가. 인생은 생각만큼 길지 않다. 나중에 후회말고 할 수 있을 때 최대한 잘 하는 게 현명한 사람이다.
남자만 오랫동안 할 수 있다고 누가 먼저 퍼뜨렸을까? 태초부터 아내는 지푸라기 잡을 기운이 없어도 할 수 있지만,남편은 의사선생님과 친해야만 할 수 있다는 걸 알까? "아니, 정말 그렇단 말이지? 여자도 계속 할 수 있단 말이지?" "애고애고 이제 난 죽었다. 아내가 자꾸 덤비면 뼈도 못 추릴 거 같은데 어떡하지?"
성경원 칼럼니스트/www.성박사.com
감악산은 화악산, 송악산, 관악산, 운악산과 더불어 경기 5악의 하나로 정상에 오르면
강 건너편으로 휴전선 일대의 산과 들이 눈 앞에 펼쳐 지며 맑은 날에는 개성의 송악산과
북한산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 온다. 산 정상에는 흔적도 없이 마모되어 글씨를 찾아
볼 수 없는 감악산비가 석대 위에 우뚝이 서있다.
파주시 향토 유적 제8호인 이 비는 글자가 없다고 하여 몰자비, 또는 빗돌대왕비,
설인귀사적비, 감악산 신비, 진흥왕순수비 등 여러 개의 비 이름과 함께 전설들이 구전되어
오고 있다.
80년대 후반에 일부 등산로가 개방되면서 몇 개의 등산코스가 개방되었다. 범륜사를
통해 정상으로 가는 길은 범륜사 입구에서 하차, 비탈길을 올라가면 관광 안내소와
운계폭포가 나타난다. 5분 정도 더 오르면 범륜사, 이곳에서 식수를 준비하고 계곡을 따라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게 된다.
1시간 20분 정도 오르면 능선안부 좌측이 정상, 우측이 장군봉이다.
정상은 펑퍼짐한 평지에 감악산비가 석단 위에 있다. 정상에서 남쪽으로 안부를
지나 장군봉까지 암릉길을 따라가면 암봉 아래 임꺽정굴이 있다. 능산을 따라 내려가면
신암리로 가게 된다. 우리는 원점회귀 산행 예정이나 그때 결정하자.
산행일기를 보니 '2002년 5월 14일. 45회 산행. 3월 말경에 오르려 하였으나 들머리에서
산불조심 강조기간에 걸려 오르지 못함. 멀리서 보는 감악산은 여느 산과 달리 멋있는
형태를 가지고있다. 암릉이 발달하여 예사롭지 않으며, 멋있게 보이는 산이나 산길은
육산의 형태로 오르고 내려오는 것은 어렵지 않다. 코스는
운계폭포-범륜사-숯가마터-까치봉-정상-임꺽정봉-숯가마터-운계폭포'라고 적혀 있다.
시산회가 경기 오악 중 관악과 운악은 올라 보았고 이제 감악을 오른다.
당연히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에 낀다. 산을 사랑하는 위윤환 등반대장이 무척이나 오르고
싶어 하는 산이었는데 이제 오르게 된다. 일종의 소원풀이다. 이번에는 참석하는 산우가
많기에 시외버스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번잡하므로 편하게 시산회 전용 중형버스로 간다.
자리가 충분하니 모두 모이자. 특히 버스에 안경을 두고 내린 나 원장은 꼭 와서 안경을 챙겨라.
그러나 우리 모임의 구심점인 기 회장님의 불참이 아쉽다. 사업이 번창하고 가정이
다복하다 보면 발생하는 일이니, 마치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개성의 송악은 지금은 갈 수 없으나 건강하게 살다 보면 오를 날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화악은 1,450m의 높은 산이나 정상 부근에 단풍이 물드는 초가을에 가면 좋은 산이다.
주변의 위성봉인 애기봉이나 깃대봉에서 바라보는 화악은 우뚝 솟은 웅장한 모습으로
다가 온다. 정상에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어 길은 있으나 통행이 불가하며 우리가 그렇게
오른 적은 없다. 서울은 맑았으나 화악의 정상에는 눈이 많이 내리던 추운 겨울날, 편편한
군용도로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정상의 군부대를 시찰하고 내려가던, 젊고 잘 생긴 소장이
선두차에서 내려 일행 중의 노인에게 건강의 인사를 하고 지나가더라. 잘 생긴대다 예의까지
갖췄으니 지금은 대장이 되었을 거다. ㅎㅎㅎ
치유의 숲, 사람을 이렇게 바꾸어 놓는다.
1.나무의 피톤치드가 세균을 죽이고, 만성질환을 낫게 한다.
나무의 향기와 수액에 포함된 피톤치드는 테르펜계 물질로 소염제, 소독제, 완화제 효과를
낸다. 숲 속에서 삼림욕을 한 아이들의 아토피가 호전되는 사례는 피톤치드가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균을 막아내기 때문이다. 충북대 산림과학부 신원섭 교수는 실제 숲에서 방출하는
피톤치드가 최고라고 한다.
2.숲의 사진만 봐도 혈압을 낮추고, 면역력을 높인다.
일본에서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숲에 있을 때는 뇌의 전두엽이 안정상태를 유지했으며,
혈압과 스트레스 호르몬의 농도도 낮아지고 면역 글로불린 A의 농도는 높아졌다고 한다.
3.숲은 음이온 천국이다.
숲에 있는 음이온의 양은 도심에 비해 14배에서 70배가량 더 많다. 음이온은 폭포, 계곡물,
식물이 광합성을 하는 숲 속에서 방출되는데, 몸이 산성화되는 것을 막고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하는 등 면역 기능 강화에 도움을 준다.
4.숲은 사람의 감각을 일깨운다.
숲의 소리와 색깔은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또 눈에 가장 좋은 색깔이라고
밝혀진 녹색의 천국인 숲은 눈의 피로를 풀어준다.
국립공원 관리공단 수석 부이사장인 신원우 산우가 입회하여 거의 빠짐 없이 산행에
참석한다. 남한에는 20곳의 국립공원이 있으며, 명산이 있는 곳은 15곳이다.
시산회는 가야, 덕유, 속리, 오대, 북한, 설악, 월악, 소백, 한라 등 9곳의 산을 올랐으니
지리, 치악, 계룡, 내장, 월출, 주왕 등 6곳이 남아 있다. 나는 한맺힌 한라산을 빼고는
모두 올라 보았다. 든든한 신 산우도 있으니 내년까지 역량 높은 기 회장님의 선도 아래
모두 올라 보자.
신 산우에게 받은 10권의 시집 '자연 속에서 읽는 한 편의 시(부제 : 사람과 시)'는 내게
가뭄 속의 단비 같은 존재다. 지하철을 탈 때 한 권을 재킷 상의 주머니에 넣고 부담 없이
읽으며 지하철 여행을 즐긴다. 동반시를 고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시는 많으나 시산회가
정상에서 맛있게 식사를 하고 읽는 시이므로 고심하다가 고르는데 산행기를 쓰는
노력의 반이 시 선정에 소요된다. 그러나 지금은 그 시집 때문에 쉽다. 거듭 감사한다.
이번의 동반시는 10권에서 골랐다. 우리가 산행 중에 만나게 되는 바위 위 소나무의
가지가 멋드러지게 휘어져 올라가는 것을 보고 감탄한다. 그러기에는 많은 어려운
과정이 있었음을 알지 못한다. 모든 이루어진 것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우리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듯이
볼 수 있는 것보다 볼 수 없는 것이 더 많으며,
들을 수 있는 것보다 듣지 못하는 것이 더 많다. 그러고도 잘 산다.
임꺽정이 놀던 곳에서 이 좋은 시를 읊어 보자.
하여, 한 마당의 봉산탈춤을 추고 장산곶 매처럼 하늘 높이 사라져 갔을 의적 임꺽정을 기리자.
혹시 아는가, 저승에서 우리에게 큰 박수라도 보내줄지.
이 시는 감악산행 소원풀이를 하는 위 산우가 낭송해야 한다.
아름다운 관계 / 박 남 준
바위 위에 소나무 저렇게 싱싱하다니
사람들은 모르지 처음엔 이끼들도 살 수 없었어
아무것도 키울 수 없었던 불모의 바위였지
작은 풀씨들도 날아와 싹을 키웠지만
이내 말라버리고 말았어
돌도 늙어야 품안이 너른 법
오랜 날이 흘러서야 알게 되었지
그래 아름다운 일이란 때로 늙어갈 수 있기 때문이야
흐르고 흘렀던가
바람에 홀씨하나 날아와 안겼지
이끼들과 마른 풀들의 틈으로
그 작은 것이 뿌리를 내리다니
비가 오면 바위는 조금이라도 더 빗물을 받으려
굳은 몸을 안타깝게 이리저리 틀었지
사랑이었지 가득찬 마음으로 일어나는 사랑
그리하여 소나무는 자라나 푸른 그늘을 드리우고
바람을 타고 굽이 치는 강물소리 흐르게 하고
새들을 불러모아 노랫소리 들려주고
뒤돌아본다
산다는 일이 그런 것이라면
삶의 어느 굽이에 나, 풀꽃 한 포기를 위해
몸의 한 편 내어준 적 있었는가 피워 본 적 있었던가
2007년 7월 11일
시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도움쇠 金 定 南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