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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청계산과 오리훈제고기(詩山會 제67회 산행)

청계산과 오리훈제고기(詩山會 제67회 산행)

산 : 청계산(망경대 618m)

코스 : 옛골-이수봉-망경대-옛골(원점회귀)

소요시간 : 오름 2시간 내려옴 1시간 30분

일시 : 2007년 9월 2일(일) 9시

만나는 장소 : 전철 3호선 양재역 5번 출구

준비물 : 간식, 식수(하산 후 오리훈제고기로 식사)

연락 : 이경식(011-222-1028)

블로그 : 사진 blog.daum.net/sisan20

산행기 blog.daum.net/yc012175

 

 

유람으로나 가겠다

 

제일 마음 가난한 사람 하나와

곁에 초라한 나를 세워

그를 위해서

 

세월의 강물 건너가는 그림자로

얼굴도 팔도 하나가 된

이제 어디 있는지를 모르는

나를 찾으러

 

제일 아름다운 사람 하나와

가다가 나는 없어지고

그 사람만 남게 해

 

이 해 뜨고 해 지는 세상에서

그 사람 제일 가슴 아프게 만들어

혼자 이물에 세워놓고

 

나의 깨끗한 친구 어깨 옷이여

바람보다 슬픈 마음으로나

간다면 온다면

 

그를 데리고 만사 접어두고

그냥 유람으로만 간다면

 

-고형렬 '강상(江上)유람이라면'전문

 

유구한 세월에서 인생은 찰나에 불과하다는 깨달음은 잔혹한 것이다.

인류 역사의 많은 부분도 따지고 보면 '유한한 삶'에 대한 저항과 순응의 흔적이 아닌가.

옛 제왕들의 거대한 무덤들도 영원을 희구하던 애처로운 몸짓일 뿐이다.

어떻든, 우리는 스러질 존재다.

그렇다면 제일 아름다운 사람과 가다가 없어지고 싶다고 시인은 말한다.

짧은 삶에 절망하기 보다는 만사 접어두고 그와 함께 유람하듯 살고 싶다는 고백이다.

찰나에 불과한 삶인데,시비하고 분노하고 불평할 겨를이 어디 있겠는가.

-시평(이정환)

 

시평을 쓴 사람은 찰라에 불과한 삶이라는데 찰라 같은 영원도 있고 영원 같은 찰라도

있지 않겠는가. 더럽다고 피하면 그 악취나는 똥은 누가 치울 것인가.

똥에 접근해서 내 몸에 똥이 묻더라도 그 똥을 제거해야 주변이 깨끗해진다.

사업을 하는 자는 동업을 하는 수도 있다. 동업의 과정에서 자주 발생하는 싸움의

발단이야 무엇이든 함께 똥이 된다는 것을 반백이 넘어서야 알았다.

하여, 동업은 지옥에 가서도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의성 김씨 문경공파(모재 김안국) 가훈 중 특히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가훈이 있다.

1.남이 도모하는 일에 보증을 서주지 말지어다.

2.일가를 이루고 싶으면(혼인을 하고 싶으면) 늦더라도 자신이 벌어서 이루라.

여기에 3.동업은 지옥에 가서도 해서는 안 된다.

를 내 가족에 한하여 추가한다.

 

시산회 제 66회 변산 “관음봉” 등반기

(참석자) : 11명(구자빈, 기세환, 김옥란, 김종화, 신원우, 이원무, 이재웅, 이창우, 임용복, 조문형, 한양기)

견우와 직녀가 오작교에서 1년에 한번씩 만난다는 ‘칠석’(음력 7월 7일)날이다.

일기예보상 중부 이남 지방엔 비가 온다고 하였는데, 시원한 바람은 불지를 않지만 구름이 끼여 있어 그런대로 등반 하기엔 좋은 날씨이다.

 

이른 새벽 행복씨와 같이 잠에서 깨었다. 어젯 밤 행복씨가 모처럼 사랑하는 낭군에게 써비스(따뜻한 밥에 유부초밥 만든다고...) 한다고 새벽 5시에 모닝콜을 해 놓으라고 했던 것이다. 어제 저녁에 가족과 함께 모두가 좋아하는 ‘오리훈제 바베큐’로 외식을 한 것이 약발이 먹혀 들어 간 것일까??? 아님 금년부터 한달에 한, 두 번 교회에 나가는 걸 고맙게 받아 드린 것일까.??? 아무튼 황송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06시 50분 정각에 잠실역 5번 출구에 도착하니 벌써 24인승 봉고차가 대기 중이다. 창우부부와 원무가 중화역에서 탔었고, 잠실에선 기 회장과 나 둘 뿐이라고 한다. 잠시 후 기 회장 사모님께서 친히 회장님을 태우시고 나타 나셨다. 지하철로 도저히 시간을 맞출 수 없어서 마나님께 부탁을 하였단다. 낭군님이 자신의 건강과 가정의 평화를 지키기 위하여 장거리 산행을 가는데 출발지점까지 알현 해 주시는 그 모습이 너무나도 보기 좋았다.

 

한 교장이 오기로 했었는데, 전화를 해 보니 갑자기 급한 일이 있어 참석을 못 한다고 이 총장께 연락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 총장은 오늘 참석하질 않았고, 회장님께 보고도 하지 못 했던 모양이다. 기 회장이 몹시도 못 마땅한 눈치이다. 다음 기착지인 교대역으로 이동 도중 이(재웅) 소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잠실역에선 이미 출발을 하였으니 교대역으로 오라고 하였다. 이 소장은 당초 참석이 어렵겠다고 했었다는데 아침에 일어나 마음이 동했는 모양이다.

 

교대역에서 세명의 산우들(신 이사, 구 이사, 이 소장)이 합류하고 다음에 산우들이 기다리는 장소인 구로디지털로 향 하였다. 잠실에서부터 조금 늦게 출발 하였지만 답답하기 그지없는 외골수인 운전기사 양반의 운전(네비게이션이 가르키는 대로 가는 외고집통) 때문에 당초 예정된 시간보다 약 30분 이상이 지나자 그 곳에서 만나기고 되어 있는 입심 좋은 한 총장과 문형이, 임(용복) 산우가 기다리다 지쳐 기 회장에게 전화가 왔다. 당초 기다리는 장소는 서해안 고속도로로 가는 방향이 아니기에 반대편으로 건너 가 기다리겠으니 참고로 하란다. 하지만 기사양반은 그 근방의 길을 잘 몰라서 인지(?), 다른 이유 때문인지(?) 구로디지털 부근을 갔던 길로 한 행보 더 하고서야 예정된 시간보다 약 40분 늦게 도착하였다. 예상은 했었지만 한 총장과 문형이는 차에 오르자 마자 숨 돌릴 틈도 없이 잘잘못을 따지면서 회장단에게 만날 장소를 잘 못 정했다고 꾸짖는다. 이 총무가 산우들에게 선심을 베풀어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만날 장소(4개소)를 정한 것이 잘 못 되었다는 것이다. 이동시간으로 조금 불편함이 있더래도 만날 장소는 2개소 정도가 적당하니 회장단은 앞으로 참고해 주시기 바란단다.

 

오늘은 그동안 다른 장거리 산행때 보다 비교적 적은 11명의 산우들이 동참, 조금 섭섭한 마음도 있었지만, 24인승 차 속에선 공간을 편안하게 확보할 수 있는 적당한 인원이었다. 오랜만에 서해안의 아름다운 곰소만과 변산반도를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들뜬 마음에 졸음도 오질 않았고, 가는 도중 신 이사가 산지인 영암(?)에서 목포 친구가 소중하게 공수한 먹어보기 힘든 잘 익은 무화과를 산우들께 맛 보라고 내어 놓는다. 무화과는 로마에서는 바쿠스(Bacchus)라는 주신(酒神)이 무화과 나무에 열매가 많이 달리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다산(多産)의 표지로 삼고 있다. 꽃말의 ‘다산’이란 뜻은 여기에서 유래되었을 것이다. 무화과는 알카리성 무공해 과일로 옛날부터 성경이나 동의보감에서도 아주 소중히 여겨왔었다.

특히, 병충해에 강하며 어린 새순도 깨끗하게 자라, 농약을 하지않고 공해 없는 자연속에서 자라는 건강 식품이라는 걸 들어서 알고 있기에 감사히 잘 먹고 있는데, 옥란씨와 다정하게 앉아 있던 창우가 조용히 한 말씀을 하신다.

오늘 산행에 참여한 산우들에게 삼합을 제공키 위해 김옥란 여사는 새벽 1시에 일어나 한약제에다비개살이 적당히 붙어있는 돼지고기를 삶고, 홍어와 익은 김치(생김치 포함)를 준비 하였다고 한다. 이런 알뜰한 정성이 있겠는가??? 정성으로 봐선 관음봉 정상에 가서 맛있게 시식하여야 되겠지만, 김 전회장이 공지사항으로 정상엔 십수명이 식사를 함께 할 공간이 없다고 하였기에 더운 날씨에 배낭의 짐도 덜어 줘야 하겠고, 아침을 걸르고 온 친구들이 자꾸만 군침을 흘리면서 사산휴게소쯤 가서 시식을 하자고 한다. 그런데 웬걸(?) 기사양반은 오늘 운전대를 잡은 시간이 두 시간이 넘어서 휴식을 취할려고 그런지(?), 아님 본인이 화장실이 급한 건지(?), 그것도 아니면 아침을 굶고와서 가락국수라도 한그릇 드실라고 하는지(?)는 몰라도 마땅히 펼쳐 놓고 먹을 수도 없는 서해대교 중간에 있는 ‘행담도휴게소’로 들어가 버린다... 모두들 기사 양반에 대해 불만을 털어 놨지만 오늘은 잠시 쉬는 것도 운전수 맘대로라 어쩔 수 없이 약 10여분 휴식을 취하고 오늘따라 막힐 줄로만 예상했던 서해안고속도로를 막힘없이 시원스럽게 내리 달렸다.

 

대천휴게소에 잠시 들러 옥란 여사의 정성이 가득 담긴 삼합에다 막걸리를 두세 잔씩 자시고 나니 아침식사를 못 한 대부분의 산우들이 허기도 잊게 되고 기분도 한결 나아졌다.

가는 도중 신 이사가 미리 전화를 하였는지(?) 변산반도국립공원 관리소장이 줄포 I.C로에서 기다리겠다고 한다. 그동안 덕유산, 가야산, 설악산, 도봉산(북한산) 등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산을 등반할 때 마다 산행지도와 함께 친절하게 안내도 해 주시고 하여 신 이사의 덕을 톡톡히 보고있는 터라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줄포 I.C에 도착하니 예정대로 변산반도 국립공원관리소장이 기다리고 있다가 우리들을 영접하고 자기 차에 신 이사를 태우고 앞서서 천천히 인도한다. 신 이사 덕분에 마치 특사 대접을 받는 기분이다. 내소사로 향하면서 차 안에서 구두로 업무보고를 하는 건지(?) 아님 주변의 산세를 구경하라고 하는 건지(?) 너무나 서행을 하는 터라 성질이 급한 조 산우와 몇몇 산우들이 기사 양반에게 앞지르기를 하라고 권한다. 기사 양반도 그 때는 답답했는지(?) 곧장 앞지르기를 한다. 이런 실례를... 설사 아는 길이라 하더래도 조금은 참았어야 좋을 듯 싶었는데 여하튼 웃어야 할지(?) 아무튼 오늘은 기사 양반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와 옆에 앉아있는 기 회장이 다음 산행때 부턴 임차를 고려 하겠다고 한다.

 

관리소장의 안내로 곧장 내소사 주자장을 통과하여 절 입구 공터에 주차한 후 관리소장님이 준비한 안내 팜프렜과 손수건 등을 하나씩 선물 받고, 오늘의 산행 일정을 물으신다. 기 회장은 나에게 일임 하였지만, 이 곳을 잘 알고 계신 소장님께 관음봉이 목적지라 하니 안내요원으로 젊은 남,녀 직원 두명을 함께 동행하도록 하여 주셨다. 산행 후 인근에 있는 채석강과 적벽강을 한번 들르겠다고 하니 목표지점을 산행 후 날머리는 다시 내소사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것 좋을 것 같다고 한다.그 옛날 서해안(인천, 보령, 태안)에 근무할 때 서,너번 와 봤지만 내소사로 향하는 입구는 전나무로 잘 조성되어 있어 항상 추억 속에 남아있는 곳이다.

 

변산의 높이는 508 m 이고, 최고봉은 의상봉이다. 예로부터 능가산, 영주산, 봉래산이라 불렸으며 호남의 5대 명산 중 하나로 꼽혀왔다고 한다. 서해와 인접해 있고 호남평야를 사이에 두고 호남정맥(湖南正脈) 줄기에서 떨어져 독립된 산군(山群)을 형성하고 있다. 변산반도 내부의 남서부 산악지를 내변산(內邊山), 그 바깥쪽 바다를 끼고 도는 지역을 외변산이라고 할 정도로 안과 밖이 매우 다른 산이다. 최고봉의 높이는 낮으나, 쌍선봉 · 옥녀봉 · 관음봉 · 선인봉 등 400 m 높이의 봉우리들이 계속 이어지고 골도 깊다. 울창한 산과 계곡, 모래해안과 암석해안 및 사찰 등이 어우러지면서 뛰어난 경관을 이루고 있어 일찍이 한국 8경의 하나로 꼽혀 왔으며, 산이면서 바다와 직접 닿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내변산에는 높이 20 m의 직소폭포(直沼瀑布), 높이 30 m와 40 m의 2개 바위로 된 울금바위, 울금바위를 중심으로 뻗은 우금산성(禹金山城) 외에 가마소·봉래구곡 · 분옥담 · 선녀당 · 가마쏘[釜棲] · 용소(龍沼) · 옥수담(玉水潭) 등 명소가 있다. 또 내소사(來蘇寺) · 개암사(開岩寺) 등 사찰이 있고 서해를 붉게 물들이는 '월명낙조'로 이름난 낙조대(落照臺)의 월명암(月明庵)도 유명하다고 한다. 외변산에는 해식단애(海蝕斷崖)의 절경을 이루는 채석강(採石江: 전북기념물 28호) · 적벽강(赤壁江: 전북기념물 29호)이 있고, 그 밑 해안에는 경사가 완만한 변산해수욕장을 비롯해 고사포해수욕장, 격포해수욕장 등 여름철 휴양지가 많다...

1971년 12월에 변산반도 서부의 변산산괴(邊山山塊)를 중심으로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1988년 6월 11일에 국립공원으로 승격 되었다고 한다. 격포해수욕장의 채석강에서 지는 해의 낙조가 유명하고, 우리의 등반 목표인 관음봉은 김 전회장이 말 했듯이 내소사 일주문을 지나 시원한 전나무 길이 끝날 즈음에서 왼 쪽으로 난 등산로가 있었다.

 

작은 능선 길을 약 20분 올라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을때 항상 앞서서 갔던 문형이가 자꾸만 뒤로 처진다. 등산복 바지가 마치 물 속에 빠진 것처럼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요즈음 너무 무리 한 건지(?), 늦더위에 더위를 먹은 건지(?) 오늘 등반을 포기한다고 한다. 아예 배낭을 동행한 관리소 직원에게 부탁하고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물을 양껏 마시게 하고 그렇게 높은 산이 아닌 만큼 쉬엄쉬엄 오르게 하였다.

문형인 대천휴게소에서 맛있는 삼합에 막걸리 세 잔을 마신 것이 그 취기가 이제사 오른다고 했다. 최근에 산행을 자주 빠지더니 체력이 많이 약해진 것 같았다. 나이들면서 모다들 건강관리가 최 우선인 만큼 적당한 운동은 기본이지 않을까??? 모다 몸 관리 잘 해야지.

 

약 10여 분을 더 오르니 조망이 좋은 곳이 나온다. 뒤를 돌아 좌측을 보니 닭이 알을 품은 듯한 곳(관리소 김수미 양의 말에 의하면 “包卵之鷄”)에 내소사가 자리를 잡고 있었고, 멀리 보이는 앞 쪽엔 고창만과 변산만이 시야에 들어왔다.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기 회장이 제공한 복숭아를 나눠 먹고 다시 약 10여분을 올라 능선에 다다르니 두갈래 갈림길이 나온다. 좌측길은 내소사 주차장 입구로 내려가는 하산길이고, 우측으로 가면 관음봉과 세봉으로 가는 등산로가 있었다. 관음봉을 오르는 것을 그만 두고 점심식사를 하자고 하는 몇몇 산우들이 있었지만 모두 배낭을 벗어 창우 부부가 남기로 하고 좁은 바위 능선 길을 약 20여 분 정도 오르니 헬기장이 있고 그 앞에 가묘인지는 몰라도 조망이 좋은 곳에 이름 없는 묘가 하나 자리잡고 있었다. 확 트인 공간에 북쪽엔 짙푸른 빛의 부안호와 내변산이 보였고, 바로 앞에 세봉과 조금 떨어진 곳에 옥녀봉이 보인다. 내, 외변산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오늘의 목표지점인 관음봉을 올랐다. 정상석도 표지석도 없는데다 자그마한 나무들로 둘러샇여 있어 전망은 좋질 않았고, 다른 등산회 일행이 그 좁은 곳에서 식사를 하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이었다. 앞에 보이는 세봉까지 오르자는 몇몇 산우들도 있었지만 안내양인 김 양의 말에 의하면 약 40~50분이 소요 된다기에 곧장 배낭을 놔 둔 곳으로 내려왔다.

 

하산 도중 조촐한 점심식사를 한 후 확 트인 바위 능선에서 오늘의 동반시 ‘야트마한 사랑의 노래’를 같이 동행 한 김수미 양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낭송 하였다... 시를 낭송한 김양은 서른 한 살의 본나이 보다 5~6세나 어려 보이는 귀여운 아가씨였다. 오직했으면 한 총장이 아직 장가를 못 보낸 아들과 짝을 맞춰 볼 양으로 “애인이 있냐(?)” 고 물으니 불행이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고 한다. 김 양은 시를 읊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누구보다도 시를 좋아하고 우리 시산회의 시 선정을 담당해 온 정남인 오늘의 동행시를 선정하면서 “무더운 한여름 날에 갑자기 시원하게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내리는 사랑이라면 피하지 말고 맞으라 했다.그것도 흠뻑...사랑은 죽을 때까지 오고 간다 했지만, 시골의 5일장처럼 때 맞춰 오고 가지 않는다나(?) 그 사랑을 믿고 놓지 말고. 오늘의 시처럼 야트막한 사랑이라도 해보라고... 석삼년은 못 하더라도 한삼년은 해 보라고... 이렇게 가까이 다가온 사랑도 못 한다면 다시는 그런 기회를 맞이하지 못 할 것이다‘ 라고 말이지.... 나이들어 늙으막에 순수한 사랑(야트마한 사랑?)을 할 수 있으려나(?) ㅎ ㅎ ㅎ.. 좋은 시를 선정해 주고 멋진 풀이까지 해 주신 김 전회장의 멋있게 살려고 하는 인생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서 좋았다.

 

날 머리에 도착하자 김 양은 모두에게 잠시 스트레칭을 하자고 한다. 다른 운동도 마찬가지 이지만 등산 후 스트레칭은 이완된 근육을 풀어 주는 좋은 운동이라는 것을 새삼 알았다... 하산 후 관리소장은 반갑게 맞이하여 주며, 친히 채석강이 있는 격포로 안내를 하여 주시면서 인근 온천에 가서 잠시 목욕 하기를 권한다. 우리들은 너무 폐가 될까 봐 그냥 뒷풀이 장소로 갈 것을 원하였지만, 신 이사의 체면을 봐서 인지는 몰라도 변삼온천에 가 온천욕과 또한 오디주까지 선물을 차에 다 실어 주셨다. 물론 신 이사에게 선물로 준 것이지만 신 이사는 오늘 산행에 참가한 산우들에게 마나님과 한 잔씩 하시라고 한다... 친구 덕분에 좋은 산행과 온천욕과 더불어 좋은 선물까지 받으니 황송하기가 그지 없다... 아무튼 신 이사와 관리소장 및 안내를 하여 준 직원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뒷풀이는 한 총장이 등반하기 전부터 하산 후 뒷풀이는 전라도 음식의 별미인 바지락 죽이나 백합죽을 대접하겠다고 한다. 지난 주초에 어머님 기일과 겹쳐 장인 어른이 별세하여 산우들의 문상에 대한 보답으로 여겨진다. 정남인 김비싼 회보단 전주 완산구청 앞의 백송회관에서 전주 육회 비빔밥에 권하였지만, 일정도 맞질 않고 기왕 부안에 왔으니 그 지방의 유명한 음식을 시식하는게 좋을 것 같아 전라도의 유명한 음식 8가지 중의 하나인 백합죽을 시식하기로 결정하고 부안군 행안면 신기리에 있는 “계화회관”(대한명인 이화자 - 부안군 향토음식 1호)를 찾아갔다. 마침 그 곳엔 전주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모주가 있어 다들 한잔씩 맛 보고 얼큰한 백합 국물에다가 맥주도 한잔씩 하니 늦더위에 지친 산행의 피로가 조금은 가신 듯 하였다... 70년대 후반부터 대량 폐사로 인하여 양식이 거의 않되고 있는 백합죽을 맛있게 잘 먹고(한 총장 감사히 잘 먹었네...) 돌아오는 길에 기 회장과 재산 상속과 관련, 재미있는 여담을 나눴었는데 재산 상속과 관련한 지방지에 게재된 실화 이야기를 옮기면서 산행기를 맺는다.

S시에 거주하는 한 아버지가 4남매를 잘 키워 모두 대학을 졸업시키고 시집, 장가를 다 보내고 한 시름 놓자. 그만 중병에 걸린 사실을 알고 하루는 자식과 며느리, 딸과 사위를 모두 불러 모았다. "내가 너희들을 키우고, 대학 보내고 시집, 장가 보내고 사업을 하느라 7억정도 빚을 좀 졌다... 알다시피 내 건강이 않좋고 이제 능력도 없으니 너희들이 내가 진 빚을 얼마씩 좀 갚아다오. 이 종이에 얼마씩 갚겠다고 좀 적어라" 라고 말했다. 아버지 재산이 좀 있는 줄알았던 자식들은 서로 얼굴만 멀뚱히 쳐다보고 아무말이 없는데... 형제중 그리 잘 살지 못하는 둘째 아들이 종이에 5천만원을 적었다... 그러자 마지못해 나머지 자식들은 경매가격을 매기듯 큰 아들이 2천만원, 세째 아들이 1천5백만원, 딸이 1천만원을 각각 적었다. 사위와 며느리는 구경만 하고...... 수 개월 후, ...문병 한번 없고, 그 흔한 휴대폰으로 안부전화 한번 없는 자식들을 다시 모두 불러 모았는데... 이번에는 며느리. 사위는 오지 않고 4남매만 왔다.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이 "내가 죽고나면 너희들이 얼마되지 않는 유산으로 싸움질하고 형제간 반목 할까봐 전 재산을 정리하고 공증까지 마쳤다... 지난번에 너희가 적어준 액수의 5배를 상속금으로 지금 준다. 이것으로 너희들에게 내가 줄 재산상속은 끝이다". 장남 1억원, 둘째 2억5천만원, 세째 7천5백만원, 딸은 5천만원... 상속을 적게 받은 자식들의 얼굴 안색이 사색이 되었다. "나머지는 내 치료비와 너희 엄마와 앞으로 살아 갈 우리 내외 생활비다. 다른 의견이 있으면 말을 해봐라". 그러나 자식들은 아무 말이 없이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사람들 마음은 다 그런건지??? 욕심을 버리고 부모가 돌아가실 때까지 효를 다 하여야 하는데...??? 형제들 간에도 부모의 재산을 탐하여 의(義)가 상하는 경우를 우리 주위에서 많이들 본다. 현명하게 대처한 그 아버지를 다시한번 생각하면서, 우리 세대엔 자식들이 한, 두명이고 많아봤자 세명인데... 아무튼 어느정도의 재산은 죽을때 까지 가지고 있어야 하고, 죽은 다음에 자식들 간에 의리 상하게 하들들 말고 죽기 전에 공증까지 마쳐 놓는 것이 현명한 처사가 아닌가 싶다. 다시한번 이야기지만 죽을때 까진 생활할 수 있는 재산은 가지고 있어야 자식들한데 미움 않받고 대접 받을 수 있다는 걸 명심들 하시게나...ㅎ ㅎ ㅎ

[ 2007. 8. 24. 청평에서 김 종 화 ]

 

 

들킬 것만 같은 야외정사

 

처서가 이미 지나고 여름휴가는 저만치 가고 있다.

피서 덕분에 '썸씽'을 만들어 새록새록 사랑이 넘치는 부부들도 있는가 하면 화만 돋우고 아픈 생채기만 남긴 부부들도 있을 것이다.

어린 아이들이 있을 때는 아이들 뒤치다꺼리 하느라 부부는 대충 지나가도 그런 대로 묻히지만 아이들이 커버린 중년은 부부사이가 특히 더 중요한데 섹스에 대한 흥미가 줄어든 부부라면,열정을 되살릴 뭔가가 필요하다.

그 중 하나가 섹스는 반드시 방에서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인데,이를 버리는 순간 비로소 자유를 느끼며 세상이 즐거워진다.

늘 안정적이고 평온했던 침실을 벗어나면 기대했던 것 이상의 짜릿한 쾌감과 스릴을 느낄 수 있고,일탈의 본능이 솟구친다.

야외 섹스는 매너리즘에 빠진 커플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고 기대 이상으로 격렬하게 타오르게 한다.

충동과 무모함이 더해져 색다른 흥분을 만끽할 수 있는 아웃도어 섹스.

섹스란 본디 은밀한 것이라 남의 눈을 피해야 하지만,누군가에게 자신들의 은밀한 행위를 들킬지도 모른다거나 누군가 훔쳐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흥분되며,위험과 모험은 최음제가 된다.

'에로틱 마인드'라는 책을 쓴 존 모린은 "사람들은 약간 불안정하고 불확실하며 환희와 재앙 사이에 위험하게 걸쳐 있을 때 가장 강력하게 흥분한다"고 말했다.

모린의 방정식은 자극 플러스 장애물은 곧 흥분이라는 것이다.

조사에 의하면 성인 남녀 40%가 한번쯤 해보고 싶은 섹스로 야외 섹스에 동그라미를 쳤다는 것.젊었을 때는 닭살부부라는 애칭까지 있을 정도였던 부부도 나이 들면서 밋밋하고 무관심해 권태로운 부부들은 한번쯤 따라 해도 좋을 것이다.

야외 섹스는 우리 조상들도 즐기는 편이었으며,예부터 건강한 정사로 불려졌다고 한다.

조선후기 춘화들을 보면 시냇물이 흐르는 정자 위에서,달밤에 부엉이 울고 대청마루를 침실 삼아 정사를 벌이거나 풍광이 좋은 산천을 배경으로 섹스를 즐기는 모습이 자주 나온다.

자연과 남녀의 몸이 하나가 되는 음양의 조화로 야외 정사는 자연스러운 풍경으로 여겨졌던 모양이다.

예전에 에로틱 공간이라면 추수철을 앞둔 보리밭이나 물레방앗간과 폭포가 단연 으뜸이었다지만 지금은 밤 해변가나 계곡도 좋을 것이다.

파도 소리,풀벌레 소리에 먼데서 간간이 들리는 인기척 등은 없어서는 안될 야외 섹스의 묘미이다.

물위로 얼굴만 내민 채 물 속에서 하는 은밀한 짓거리,산책길에 밤바람 즐기며 껴안은 채 걷다가 나무에 기대고 하는 키스,인적 없는 밤바다·으슥한 리조트 풀장 근처에서 들리는 가쁜 숨소리는 영화 속에서만 가능할까? 파도 소리와 바람 소리와 남녀가 하나가 되는 자연의 하모니로 사랑을 느끼고 태초의 사랑을 나눈다면 그 로맨틱한 무드는 집으로까지 이어져 더 없이 좋은 사이가 될 것이다.

"낮에 젊은것들이 노골적으로 애정 표현하는 건 눈꼴셔서 못 봐주겠던데,우리도 해 보니 아주 환상적이더라고요.

깜깜한 데다 인적은 없었지만 밖에서 한다는 게 좀 불안해서 소리를 죽이면서 하는데 개구리가 덩달아 소리를 내주는 거예요.

정말 다른 때와 달리 짜릿짜릿 했었다니까요."

"아무리 경치 좋은 데로 피서를 가면 뭐하냐고.아무 짓도 안 하고 그냥 잠만 퍼잔 걸.모처럼 집 떠나서 그런 곳에 갔으면 기분도 들뜨고 분위기도 달라졌으니 한 번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기다리다 기다리다 마지막 날 밤 내가 못 참고 먼저 건드렸는데 씨도 안 먹히고 '왜 이러냐'며 '잠이나 자라'고 팔을 툭 치는데 나 참 기가 막혀서….

사흘 동안 얌전하게 옷 입고 자고 왔다는 거 아냐."

'어느 집인지 당분간 고달프겠네….'

한국성교육연구소/www.성박사.com

 

 

지난 산행 때 참석을 못 했으나 이번 산행지를 결정하는데 참여하지 못 하게 되어 참석한 산우들이 청계산으로 정했는데, 도움쇠가 간혹 느끼는 것이 있다. 남촌에 사는 산우들은 북쪽의 산을 자주 갔으니 이번에는 남쪽의 산을 가자고 한다. 이유는 만나는 장소가 멀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청계산은 낮고 코스가 단조로우나 무릎이 좋지 않은 임 수석이 주장했다니 이해한다. 시산회가 오르기 좋은 산은 북쪽과 동쪽에 있으니 어쩌랴. 나 원장은 서촌에 사나 서쪽에는 갈만한 산이 없음이 안타깝다. 이번에는 이수봉에서 막걸리 한잔하고 망경대까지 가면 좋겠다. 하산하여 시원한 맥주를 곁들여 먹는 오리훈제고기가 일품이니 그나마 다행이다. 산은 우열비교의 대상이 아니지만 시산회 멤버들의 체력이 탄탄하여 오르지 못 할 산이 없다. 산행하기 좋은 가을이다. 도움쇠가 산우들에게 권하고 싶은 산이 많으니 앞으로는 혼자서도 쉬게 오를 수 있는 청계산은 가능하면 피했으면 좋겠다.

 

산행후기를 김종화 산우에게 맡긴다. 그의 문체가 유려하고 소재가 참신하고 다양해지니 산우들에게 좋은 일이다. 이번 산행기를 이창우 산우가 쓰려했으나 포기했다는 기 회장님의 말씀을 듣고 묘한 웃음이 나온다. 물론 쉽지 않다. 하지만 처음이 어렵지 써보면 쓸만 하다. 이 산우, 다음에는 사람좋은 웃음만 웃지 말고 끝까지 써보게. 산행후기의 부담이 적어지니 시 선정에 더욱 신경이 쓰인다. 언제가는 프롤로그 시나 동반시 선정도 산우들에게 맡길 예정이다. 중복이 될까봐 다시 읽어 보면 주옥 같은 시가 많다. 기 회장님과 이 총장, 산우들과 상의하여 수록시집을 만들어 20회 동기들에게 전하고 싶다. 시평을 포함하면 더욱 좋으나 산우들의 수고를 동반하는 일이므로 함께 상의하자. 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 발행한 수록시집의 제목은 '자연 속에서 읽는 한 편의 시'이고 부제는 '사람과 시'이다. 우리는 '산과 시'로 정함이 어떨런지. 동반시는 갈대가 바람에 휘는 늦가을에 강화도 석모도 보문사 뒷산 상봉산에 올라 빨간 저녁노을이 지는 서쪽 바다를 처다보며 부르면 좋을 시다. 그 산은 임 수석과 함께 오른 적이 있다.

 

섬 / 도종환

 

그대 떠나고 난 뒤 눈발이 길어서
그 겨울 다 가도록 외로웠지만
그대가 곁에 있던 가을 햇볕 속에서도
나는 내내 외로웠다

그대가 그대 몫의 파도를 따라
파도 속 작은 물방울로
수평선 너머 사라져간 뒤에도
하늘 올려다보며 눈물 감추었지만

그대가 내 발목을 감으며
밀려오고 밀려가는 물결이었을 때도
실은 돌아서서 몰래 아파하곤 했다

그대도 눈치채지 못하고
나도 어쩌지 못한
다만 내 외로움
내 외로움 때문에 나는 슬펐다

그대 떠나고 난 뒤
가을 겨울 봄 다 가도록 외로웠지만
그대 곁에 있던 날들도
내 속에서 나를 떠나지 않는 외로움으로
나는 슬펐다

 

2007년 8월 28일

시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도움쇠 金 定 南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