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탑 길의 단풍 / 도봉별곡
강원도 정선 땅 노추산 모정탑길
중턱 계곡에 쌓은 수 천 개의 사람 키보다 높은 돌탑
할머니는 한을 쌓았다
자신의 탑을 다 쌓은 그미는 시간을 쌓았지만
그래도 시간이 남아
다른 사람이 못다 푼 한을 모은 탑을 쌓았다
한은 지쳐 핏빛 가을 단풍이 되어
더 붉게 떨었지만
마침내 한이 넘쳐 길에 떨어진 단풍잎은
도시에서는 쓰레기가 되겠지만
산길에서는 붉어져 푹신한 해탈이 된다
멀리 떨어진 억갑사의 범종이 울리는 것은
단풍이 파란 하늘과 만나면 사랑이 된다는 젊은 시인과
단풍이 지치면 그리운 사람이 된다는 노시인과
어머니 신사임당을 여읜 율곡 이이의 설움이다
갈바람에 실려 짧은 가을은 더 짧게 퍼진다
선운사 계곡에 가면 산山사람이 거꾸로 세운 500개의 돌탑이 있다
자기 삶처럼 아슬아슬했을까
몇 년이 흘러도 거친 비바람에 넘어지지 않는 것은
계곡길 단풍이 화려해서
그 사람이 넘어지지 않고 쓸쓸하기 때문이다
목 부러져 추워지면
신경 다친 손이 아파 마음의 파동이 심하게 떨다
나오는 시는 쓰레기처럼 거칠어도
차마 버리지 못하고
내년에 필 단풍을 기다리며 탑을 쌓는다
*제2시집 <시인의 농담>에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