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수역에서, 두물머리의 노래 / 도봉별곡
어둑새벽까지 떠나지 않는 불면과
외로움을 만나기 위해
낡은 원고지에 추억의 시간을 그리는 늙은 시인은
지난 것은
그리움을 위해 만들어졌음을 즐기는 것이며
버리고 비우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시집도 지우는 짓이다
고 생각한다
비꽃 떨어지면 서리가을 맞으려
아침을 떠나
용을 숨긴 늪을 품은 두물머리를 지날 때
늙은 시인의 얼굴은 전설을 닮아있다
그리다 만 추억의 미완을 후회하며
여우비 틈으로 나온 낮달과 손가락 끝을 보니
그들 사이 누구도 모르는 갈애渴愛가 자리 잡는다
갈애는 남북으로 갈라지고
손가락 끝과 달 사이의 신화는
자존과 겸허로 이루어진다
늙음이 채찍질이라면
채찍이 유혹이라면
시를 사랑하는 만큼
시를 쓰는 것 말고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짓에 서툴러도
그는 자신을 닮은 남한강으로 달린다
울음소리 애써 감추며
추운 산그림자를 피하며
아름다운 물결무늬 살갑게 출렁이며
그치지 않고 흘러도 지치지 않는 저 강들
북한강을 외면하고 남한강을 가르며 달리는 열차와
흔들리지 않는 그는 강바람이 된다
바람이 지쳐 돌아올 때 바라기별 뜨면
두물머리역에 내려
시름 가득 찬 둔치에 서서
한 쪽으로 기운 달이 비추는
달물결 따라
강물이 흔들리고
시인의 어색한 노래를 잊지 못하는
바람의 얼굴 닮은 물결은
당신에게 하나의 우물이 있느냐고
마중물답게 묻는다
아직도 사랑에 익숙하지 못한
그는
시는 자존과 겸허로 이루어낸 한 글자가 아님을 깨닫고는
사랑은 쓸쓸함과 외로움으로 이루어지는 거라며
사랑은 흐르고
흐르는 것은 지치지 않는 거라고
산처럼 늙게 웃는다
바람이 지쳐 누우면 나도 눕는다고
*제2시집 <시인의 농담>에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