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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도일봉에 오릅니다(詩山會 제89회 산행)

도일봉에 오릅니다(詩山會 제89회 산행)

도일봉과 중원계곡

산 : 도일봉(864 미터. 양평. 용문산 근처)

코스 : 중원리 허병석가게-합수곡-도일봉정상-안부삼거리-중원계곡-허병석 가게

소요시간 : 오름 2시간 내려옴 2시간

일시 : 2008년 7월 20일 8시 30분

만나는 곳 : 전철 2호선 잠실역 3번 출구 너구리상 앞

준비물 : 식수. 시원한 막걸리, 안주(하산 후 뒷풀이 겸 점심)

연락 : 김종화(010-2406-0332)

블로그 : 사진 이경식 blog.daum.net/냔무20

산행기 도움쇠 blog.daum.net/yc012175

동창회카페 김용우 cafe.daum.net/K-20

 

 

짧은 한평생이라는데

가도가도 끝이 없구나

 

안경알을 닦으면

희미하게 생각나는

지난 일들

 

가다가 가다가 서글퍼

주저앉으면

안경알 저쪽에

희미하게 떠오르는

짧은 희망

 

다시 가다가 문득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것을 잊어버리기도 한다

 

-한 세상(박이도)전문

 

참으로 많은 일을 겪는 한 세상.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인 삶. 시간이 흐르는 것과 같이 나 자신도 흘러 나는 어제의 나가 아니고, 원하는 그 무엇이 되고자 하지만 시간은 나를 허비하여 돌아오지 않는 ‘나’만을 씁쓸히 기다린다. 홀로 어두운 밤에 남겨진다는 것. 내가 쓴 책인지 남이 쓴 책인지 모르는 책을 헤적이며 무사함을 안도해야 한다는 것. 짧은 한평생이라는데 가도가도 끝이 없구나. 끝이 없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시간을 향해 눈을 닦네. 주저앉아 물을 마시네. 가다 문득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잊어버린다네. 그리하여, 생의 구두 한 켤레 묻어두고 홀연히 사라져 버릴 수 있다면. 발자국도 없이 사라져 버릴 수 있다면. 영혼의 영원 속으로 흔적없이 사라져 버릴 수 있다면······

-시평(박주택. 시인)

 

반백의 나이를 훌쩍 넘어버린 세월을 우리는 무엇을 얻고자 달려왔는가. 해서 얻어진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죽으면 모든 것은 잊혀지고 사라지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천국과 지옥은 내 맘 속에 있다. 우리는 善을 지향하고 堊을 구축하는 삶을 살아왔으나 선과 악의 인과관계나 메카니즘을 알 수 없고 영원히 알 수 없지 않겠는가. 한 순간에 흘러가는 자연현상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특히 천체물리학자들은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지 않는가. 밤하늘의 별들을 올려다보면 천국과 지옥의 존재를 도저히 믿을 수 없다지 않는가. 우주는 팽창하고 있다는 가설이 있다면 우주 밖은 무엇인가. 우리의 영역이 아니니 그만 두고 앞에 있는 삶이나 열심히 살아 볼까나. 육신이 죽으면 영혼도 사라지려니 윤회의 불확실한 끈도 놓아 버리고 앞에 있는 삶이나 즐기며 열심히 살아 볼까나. 인생은 고해라는 비관의 끈도 놓아 버리고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자. 이것이 삶이다. 삼라만상 안의 티끌 같은 삶이다.

-도봉생각

 

 

시산회 제 88회 “불곡산” 산행기(2008.07.06 / 이경식)

(참석자) : 11명 (이경식, 임용복, 나창수, 한천옥, 박형채, 이재웅, 김용우, 한양기, 임삼환, 김종화, 김정남 - 뒷풀이 때 좌석순)

 

산행기를 써 달라는 숙제를 받았다.

지금까지 몇 번인가 쓰긴 했는데, 하여간 숙제란 부담스러운 법.

빨리 써서 김 총장에게 전하려 했지만 날은 덥고 글은 왜 이리 더딘지..

짥게라도 써서 얼른 전달해야 될 것 같다.

오늘(7/10)은 출근하자 마자 만사를 제처놓고 숙제를 하기 시작했다.

 

2008년 7월 6일, 일요일.

장마비가 들락 날락하고 하늘은 우중충한 잿빛 이었지만, 그래도 친구들의 표정은 밝았다.

그럼, 그럼 우린 만나면 항상 웃는 50대 중반의 어쩡쩡한 중늙은이(?)려니... 허허

중년이라기에는 아직도 힘이 넘치고 마음은 청년 같은데 안타깝게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네.

직장에서는 퇴출 당했거나 무언의 압박에 시달리고,

사회적으로도 뭔가 자꾸 힘이 빠져서 위축되어 가고,

가정에서는 갱년기에 접어든 와이프의 드센 힘에 주눅들고,

20대 중반에 들어선 애들은 이제 다 컸다고 아빠를 시큰둥하게 쳐다보고,

또 와이프와 애들에게는 사랑이든 돈 이든 뭔가를 베풀어야만 하고,

늙은 부모님에게도 베풀어야 하고,

직장에서는 후배들에게 또 베풀어야 하고,

주변의 모두에게 일방적으로 베풀기만 하고 받은 것은 별로 없는 우리 세대다.

 

하지만, 유일하게 동등하게 주거니 받거니 하는 사이가 우리들 동기 아닌가.

그래서 편하고 그래서 즐거운 사이이니 만나면 웃고 보세나... 허허허

 

가능역에서 32번 버스타고 동두천방향으로 북상하다 양주시청에서 파주 쪽으로 달렸다.

15분 쯤 달렸나?... 유양초교에서 하차하여 바로 불국산의 주 능선을 향하여 전진했다.

불국산 또는 불곡산은 해발 470 m로 그리 높지 않다.

경기 북부 지역을 지나면서 자주 옆을 지나는 갔지만 산행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 주변의 왠만한 산들은 그래도 다 몇 번씩 올랐는데, 늘상 멀리서 정상을 바라만 보면서 지나만 다녔다.

 

10여분 쯤 오르니 등산로 좌, 우측에 빨강색의 곱고 투명한 산딸기 열매가 눈에 확 띄였다.

서너 알을 입에 넣고 맛을 보았다. 달작지근(?) 했다.

이 불곡산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많았을 텐데...

아직까지 내 몫으로 남아 시식의 기회를 준 것이 고마울 뿐이다.

앞섰던 많은 등산객들이 뒤따르는 다음 사람들을 위해 넉넉한 마음으로 남겨 두었으리라.

나머지는 다음 등산객을 위하여 남겨두고 길을 재촉한다.

 

산딸기가 나오면 사촌쯤 되는 복분자 얘기가 으례 뒤따른다.

하긴, 가능역에 도착하자마자 임 수석이 한 잔 건네준 복분자 술로 모닝차를 대신하였으니,

오늘은 벌써 산딸기와 복분자를 둘 다 먹은 셈이다.

정력상징의 대명사인 복분자와 그에 버금가는 산딸기를 먹었으니 강력한 스테미너가 온몸에

퍼지는 듯하여 발걸음이 한층 가벼워 졌다.

 

잠시 오르다 전망이 좋은 곳에서 김 전회장이 특별히 준비 했다는 문어를 안주삼아 우리의 대표 술 “막걸리”로 목을 축인 후 좁은 오솔길을 올랐다.

정상으로 향하는 중간에 사방을 휘둘러보았다. 운무가 끼여 자세히는 보이질 않았으나 수락산과 불암산도 눈에 들어오고 멀리 도봉산과 북한산도 동양화처럼 펼쳐져 보인다.

철재 사다리를 올라 조금만 가면 정상이다.

드디어 정상(상봉, 468.7 m)에 도착했다.

사방이 눈에 들어온다. 옛날식 군대용어로 표현하면 정말 훌륭한 감제고지다.

흐릿한 안개 속에 상투봉과 임꺽정봉이 우뚝 솟아서 그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이제부터 바위를 타고 오르락내리락 해야 한다.

상투봉 쪽으로 향했다.

 

건너편의 임꺽정봉이 안개에 묻혀 우리를 부른다.

전망좋은 암반에 낚시꾼 의자에 앉자 하염없이 임꺽정봉을 감상하는 30대의 사나이가 있다.

막걸리 한 잔을 권하며 단체 기념사진을 부탁하니 임꺽정봉을 배경으로 한 장 찍어주었다.

이 지점이 불국산 일대에서 제일 경치가 좋다고는 하지만 무슨 맛으로 그 자리에 않아 오랫동안 산봉우리만 쳐다보고 있는지? 그의 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산이 좋아서 그리하겠지...

 

상투봉을 살짝 옆으로 지나 임꺽정봉을 향했다.

쉼터(불무리쉼터?)로 내려가는 암벽은 밧줄을 타고 힘을 좀 써야 한다.

정상에서 거의 하산하다시피 하여 임꺽정봉을 오르니 새로 산행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임꺽정봉(445 m)에 도착하니 커다란 바위가 우뚝 솟아있다,

2 m가 조금 넘을 듯한 우람한 바위다. 그러나 오르기는 쉽지 않았다.

 

정상의 벤치 앞에는 세 그루의 소나무가 무수한 세월과 역경을 거치면서 암벽에 뿌리를 박고 있었다.

두 그루는 살아서 이름을 날리고, 한 그루는 죽은 고목으로 이름값을 하고 있었다.

450년 전의 임꺽정... 그가 여기서 당시의 양주관아 일대를 내려다보고 관군과 치열하게 전투를 벌렸다는 곳인가?

인걸은 가고 역사와 전설만 남은 그 봉우리에서 잠시 임꺽정을 생각했다.

의적인지 실패한 대도인지...

어디에도 임꺽정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백정의 자식 임꺽정은 홍길동, 장길산과 3대 도적으로 일명 거정(巨正). 양주(楊州)의 백정(白丁)이었으나 정치의 혼란과 관리의 부패로 민심이 흉흉해지자 1559년(명종 14년) 불평분자들을 규합, 황해도와 경기도 일대에서 창고를 털어 곡식을 빈민에게 나누어 주고 관아를 습격, 관원을 살해했다. 한때는 개성(開城)에 쳐들어가 포도관(捕盜官) 이억근(李億根)을 살해하기도 했다.

 

백성들의 호응으로 관군(官軍)의 토벌을 피했으나 1560년 형 가도치(加都致)와 참모(參謀) 서림(徐林)이 체포되어 그 세력이 위축되다가 1562년 토포사(討捕使) 남치근(南致勤)의 대대적인 토벌로 구월산(九月山)에서 체포되어 처형되었다.《명종실록(明宗實錄)》에는 그의 이름이 임거질정(林巨叱正)으로 적혀 있다.

 

주위 골짜기는 이름도 많다.

靑松골(소나무가 많다고), 靑笑골(소나무가 웃는다고), 天然골(자연이 아름답다고), 天골(골짜기가 많아서)이라고... (사전에서 베꼈다)

 

골짜기 이름들이 너무 좋다. 그대로 지나치기에는 아깝다.

우리 시산회에 秋溪 빼고는 변변한 아호가 없으니 이 기회에 우리도 하나씩 주워보세.

자네는 靑笑, 나는 靑松, 그대는 天然, 또 그대는 靑天, 또 그대는 巨正... 그것도 모자라면

巨岩.... 하여간 청풍명월에 막걸리 한 사발씩 들이 키고 아호 작명식을 한번 해 보세나.

 

능선을 타고 하산 길에 들었다,

조금 내려가니 거대한 70~80도의 긴 암벽이 나타났다.

도대체 밧줄타기가 몇 번째냐.

이곳이 마지막 불곡산의 묘미를 느끼게 했다.

5,60m의 암벽에 2개의 밧줄이 긴 꼬리를 저 아래로 늘어뜨린 채 우릴 맞았다.

먼저 내려간 김정남, 나창수는 힘들게 내려 온 암벽을 쳐다보고 안도의 미소를 보내고...

저 멀리 수직 암벽위에서 초조하게 순서를 기다리는 김용우, 한천옥은 씁쓸한 미소로 어정쩡하게 웃고 있다.

내심 표정은 웃고는 있지만 내려오는 모습이 잔뜩 겁먹은 표정이다.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바위를 매번 탈수 있는 것도 아니니 이 기회를 즐기자는 맘으로 마지막 관문을 통과했다.

 

군부대에서 좌측 길로 하산했다.

등산이 힘들어도 내려오는 길은 발걸음이 가벼운 법.

불곡산은 산의 규모가 작아 주변의 도봉산에 눌려 빛을 보지 못했으나 기암들로 이어진 오밀조밀한 산세와 약간의 스릴 있는 코스는 충분히 우리를 만족하게 했다.

대교 아파트 쪽으로 내려와 뒷풀이 장소인 의정부 부대찌개집(보영식당)으로 이동했다.

오늘 뒷풀이는 나 원장과 김 총장이 즐겁게 쏘았다. 늦은 점심이었으나 소, 맥주를 곁들여 배불리 먹었다.

부대찌개... 50~60년대 궁핍했던 시절,

미군부대 군수물자인 쏘세지와 햄을 슬쩍 빼와 여기에 김치를 넣어 동서양의 맛을 조화시킨 원조 퓨전음식이다.

 

이재웅은 몇 번인가 안돌아가는 머리를 돌려서 산행 중에 폰을 보며 뭔가 메모를 하더니

뒷풀이 장소인 부대찌게집에서 그가 메모한 김춘수 님의 “꽃”을 읊었다.

지난번 산행때에 김 전회장이 숙제를 내 주었는데, 깜박 잊고 있다 산행 중에 생각이 나 아들에게 전화하여 멧세지로 받아 메모한 것이다.

고교시절은 물론, 재수를 거쳐 대학 내내 그와 많은 시간을 붙어 다녔지만 항상 노력하고 연구하는 그의 진지한 자세가 늘 존경스럽고 아름답게 보였다.

 

주변은 약간 소란스러웠지만 김춘수 시인의 “꽃“은 우리를 감격하게 했다. 주변을 살펴보고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자. 그러면 누군가가 내게 다가와 꽃이 되어 줄 것이다.

또 누군가가 나를 불러 주거든 달려가서 향기도 되어주고 밥도 사주고 술도 사주자. ㅎㅎㅎ

 

“꽃” - 김 춘 수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 김 춘 수 - 출생/사망 : 1922년 11월 25일 / 2004년 11월 29일.

학력 : 경기중, 니혼대학교, 경력 : 경북대 교수, 영남대 문리대 학장, 한국시인협회 회장 )

 

2008. 7. 10 이 경 식 씀.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최영미 ‘선운사에서’전문

 

 

선운사 동백꽃, 벚꽃이 벌써 지는가.

도솔봉 매운 바람 꿈쩍 않고 맞으며, 고독한 겨울을 숨죽여 참아낸 결실이 분분이 떨어져 내리는가.

사랑도 꽃을 닮아서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고, 긴 설렘으로 왔다가 느닷없이 떠나간다.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더 어렵다.

어떤 사랑은 끝내 잊혀지지 않는다.

설렘과 아픔과 깊은 아쉬움이 뒤섞여 실체가 보이지 않는, 그런데도 자꾸 잡으려하는 사랑이라는 것. 도대체 무엇인가.

-도봉생각

 

월요일 아침에 김종화 총장과 통화를 하니 산행지를 근교인 검단산으로 정하였는데 내 의견을 듣고 싶다며 기 회장의 허리병이 온전하게 낫지 않아 참가하고 싶은 마음에 쉬운 산으로 일단 정했다기에 그만큼 쉽고 풍광이 좋은 산이 충주, 포천, 가평 쪽에 많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여름에는 볕이 따가우니 숲이 우거지고 계곡이 좋은 곳을 권했다. 산행노트를 보니 ‘등산 2시간 하산 2시간. 2003. 7. 11. 114회 산행. 중원계곡은 수량이 풍부하고 시원한 계곡이나 수 개의 폭포가 장엄하지는 않다’고 쓰여 있다. 등산길 안내책을 보니 ‘용문산에서 뻗어내린 지산이나 위성봉으로 볼 수 있고 이 일대는 산림이 울창해서 수량이 풍부하고 유명한 폭포들이 많으며 가을 단풍이 특히 좋은 산’이라 적혀 있다. 정상에 오르면 용문산이 지척이고 함왕봉, 장군봉, 중원산, 백운봉 등 용문산의 위성봉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멀리는 화악산, 명지산 등 고봉들을 볼 수 있다. 아직은 못 올랐지만 언젠가는 오를 산들이다. 모두 참석하여 미리 그 산들을 봐두자. 좋은 날, 좋은 산우들과 휴일의 한나절을 즐겨보자.

 

살얼음낀 막걸리와 간단한 안주를 준비하여 산에서 요기를 면한 후 하산 후에 점심을 겸하여 파전에 시원한 맥주로 즐겁게 뒷풀이하자.

 

예정했던 월출산은 다른 산악회와 일정이 맞지 않은 탓인지 다음으로 미뤘다. 먼 거리라 편한 관광버스로 가야한다. 월출산은 바위산이라 여름에는 햇볕에 노출되면 무척 더우니 선선한 가을에 가면 억새와 단풍을 동시에 즐길 수 있으니 10월과 11월의 첫째 주까지 다른 산의 단풍을 즐기고11월의 셋째 주에 가면 좋을 것이다. 추수가 끝나 텅 빈 가을 들녘을 내려다보며 시 한 수 읊을 때 우리들 고향의 시원한 가을바람이라도 불어오면 가슴에 담겨지는 아련함에 더 없이 좋을 일이다.

 

동반시는 최영미 시인의 ‘선운사에서’와 시평을 준비하였으나 김종화 총장이 88회 산행 때 같이 올렸던 이기철 시인의 ‘햇볕이 되었거나 노을이 되었거나’가 썩 마음에 든다고 복사하겠다 하니 그 또한 좋을 일이다. 위의 시는 다음에 가져가면 된다. 마음에 든다니 도일봉의 정상에서 경기의 최고봉인 1,450미터의 화악산을 바라보며 시원한 막걸리 잔을 들고 그가 낭송하면 더 맛있겠다. 꼭 참석하기 바란다. 위의 시는 이재웅 산우가 외워서 뒤풀이 때 외우면 더 좋을 일이다.

도움쇠의 직업은 토목공사와 주택을 짓는 건설업인데 현장은 휴일에도 쉬지 않는다. 현재는 잠시 쉬고 있으나 언제 공사를 시작할지 모른다. 땅을 구하기도 쉽지 않고 경기가 어려우니 쉽게 시작할 수도 없어 관망 중이다. 물론 동업자와 지분이 완전하게 정리되지 않은 것도 주요한 원인이다. 하여 공사가 시작되면 참석율이 떨어질 것이므로 한가할 때 부지런히 참석하련다. 7월 20일이 생일이나 전날 밤에 가족과 함께하면 된다. 가족모임은 언제나 할 수 있지만 산우들과 즐기는 도일봉의 산행은 다시 오기 어려운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산길이 뚜렷해 못 오를 일은 없으나 산우들 중엔 가본 적이 없을 것이기에 내가 안내하려 한다.

 

 

햇볕이 되었거나 노을이 되었거나 / 이기철

 

들판에 흩어져 피는 꽃들에 하나하나 이름을 붙여놓은 사람들은

어언 제 이름도 꽃이 되었거나

꽃술에 취해 잠든 나비가 되었거나

 

한 해 봄에서 가을까지 날아가도 제 그리움까지 닿지 못한 작은 새들에 이름을 붙여준

사람들은 제 이름도 어언 새가 되었거나

오리나무 가지에서 우는 새의 울음이 되었거나

 

도라지꽃을 피워놓고 혼자 잠든 산과 산에 그 키와 봉우리에 알맞는 이름을 붙여놓은

사람들은 벌써 산이 되었거나

산을 씻으며 흘러가는 강물이 되었거나

 

산 너머 또 산 너머 잠들어 있는 마을에 제가끔 이름을 붙여준 사람들은 벌써

제 이름도 햇볕이 되었거나

햇볕의 마지막 숨소리인 노을이 되었거나

 

2008년 7월 15일 새벽

詩를 사랑하는 山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도움쇠 金 定 南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