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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분당 영장산에 오릅니다(詩山會 제90회 산행)

분당 영장산에 오릅니다(詩山會 제90회 산행)

산 : 영장산(413.5 미터)

코스 : 산행 시 결정

소요시간 : 2시간

일시 : 2008. 8. 3. 9시 30분

만나는 곳 : 분당선 야탑역 2번 출구

준비물 : 식수, 막걸리, 안주, 과일

연락 : 김종화(010-2046-0332)

블로그 : 사진 blog.daub.net/sisan20

산행기 blog.daum.net/yc012175

카페 cafe.daum.net/K-20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상한 영혼을 위하여(고정희)전문

 

 

시름 많은 사람들과 "어두운 땅 한 평 가꾸다 갈래요/ 우리나라 하늘 한 평 비추다 갈래요"라고 노래했던 시인 고정희(1948~1991). 이 시를 읽고 있으면 마치 그녀가 상한 영혼의 곁에 앉아 작은 목소리로 "흙에 심은 뿌리 죽는 법 보았나요"라고 묻는 것 같다.

 

평론가 김주연이 분석한 대로 이 시는 "상한 갈대도 꺾지 아니하시고 가는 등불도 끄지 아니하신다"는 성경의 말씀과 겹쳐 읽힌다. '하늘 아래'라는 표현도 예수의 언약과 임재(臨在)를 둥글게 포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 넋으로 기댈 곳 없이 큰 고통에 놓여있는 사람들을 힘껏힘껏 껴안고 살겠다는 강한 의지를 이 시는 보여준다.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했고 다분히 기독교적인 신앙에 기초한 시편들을 써낸 고정희 시인은 기독교의 현실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칼을 들이댔다. "하느님을 모르는 절망이라는 것이 얼마나 이쁜 우매함인가"라고 질문했고, 동시에 "하느님을 등에 업은 행복주의라는 것이/ 얼마나 맹랑한 도착 신앙인가"라며 고민했다. 그녀가 비판하고 날카롭게 투시한 대상은 눈앞의 현실 그 자체였으며, 돌봄이 있는 따뜻한 공동체는 그녀가 꿈꾸는 세계였다.

 

고정희 시인은 한 생애를 정열적으로 살다 간 여성운동가이기도 했다. '여성신문' 초대 편집주간을 지냈고, 여성주의 문화집단인 '또 하나의 문화' 창립 동인으로도 활동했다. "제도적 억압의 굴레를 극복하려는 힘, 그것이 자유 의지라고 말할 수 있다면 나의 시는 항상 자유 의지에 속해 있는 하나의 에너지"라고 자평했는데, 조금의 호락호락함도 없이 평소 신념을 시 창작과 생활에서 실천했다. 한 시대의 깊고 어두운 계곡을 묵상했으므로 그녀의 시는 미지근하거나 융융한 그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시는 80년대의 격문이면서 '우릉우릉 폭발하는 화산(火山)'이었다.

 

1991년 6월 지리산 뱀사골을 오르다 폭우로 불어난 물에 휩쓸려 생을 마감했다. 그녀의 충격적인 죽음을 생각하면 생전에 쓴 시 '지리산의 봄 1-뱀사골에서 쓴 편지'가 자꾸 떠오른다. "아득한 능선에 서 계시는 그대여/ 우르르우르르 우뢰 소리로 골짜기를 넘어가는 그대여/(…)/ 아름다운 그대 되어 산을 넘어갑니다/ 구름처럼 바람처럼/ 승천합니다"라고 쓴 시. 그녀의 시를 읽고 있는 오늘 새벽은 내 가슴이 아프다.

-시평(시인 문태준)

 

한국 현대시가 100주년을 맞았다. 한국시인협회는 1908년에 발표된 육당 최남선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우리 현대시의 효시로 삼고 있다. 시인들이 추천하는 100편의 시에 뽑힌 시이다. 가장 추천을 많이 받은 시가 김수영 시인의 ‘풀’인데 우리는 2005년 5월 1일 제14회 예봉산행 때 도움쇠가 매력적인(?) 허스키한 목소리로 읊었다.

 

시평이 좋아 끝까지 옮긴다. 앞으로 프롤로그 시는 이재웅 산우가 외워서 읊어라. 동반시 다음에 읊어도 좋고 뒤풀이 때 읊어도 좋을 일이니 그대가 선택하라. 시 해석까지 곁들어서 읊어주는 그의 열성과 노력이 고맙다. 늦은 발걸음에 따른 숙제를 마다하지 않는 그가 항상 고맙다. 시를 외우면서 오르다보니 그의 늦어지는 발길을 항상 맞춰서 따라가는 속 깊은 김종화 총장도 고맙다.

 

꽃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도 울어 예고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 햇빛도 바람도 비도 눈도 그렇게 내려줘야 한다. 달빛과 별빛도 필요하다. 우리의 삶은 시간과 공간의 영원한 흐름 속에서 육신이라는 옷 한 번 갈아입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지 않는가. 한 송이 꽃 같은 이 생에서 모든 것을 이루려하지 마라. 완성된 삶이란 없다. 누구도 이루어본 적이 없지 않은가. 석가도 예수도 공자도 소크라테스도 마호멧도 마찬가지로 제자들이 진행 중이다. 다만 '앞에 놓인 삶을 죽을 때까지만 즐기며 사는 것이 현명한 삶의 방법'이라고 지천명의 나이에야 조금은 알 것 같다. 고정희 시인은 좋아하는 산을 오르다 승천했으니 허무하나 행복한 사람이다. 허무하지 않은 삶이 어디 있으랴. 우리도 산에 오르다 죽어가는 행복한 사람들 아니겠는가. 그녀를 생각하며 새벽에 이 글을 쓰는 나도 가슴이 아프다. 하늘과 맞닿은 곳 지리산에서 승천했으니 더욱 그렇다.

 

 

시산회 제 89회 “검단산” 산행기(2008. 7. 20. 비 / 전 작)

(참석자) : 8명 (기세환, 김종화, 김정남, 김용우, 이재웅, 위윤환, 전작, 조문형)

 

검단산 들머리에서 김 총장으로부터 산행기 숙제를 받았다. 글재주가 없어 부담스러웠다. 그렇다고 회원이 돌아가면서 산행기를 쓰기로 한 시산회의 선의의 규율(?)을 어길 수도 없지 않겠는가? 어차피 한 번씩 돌아가면서 써야만 하는 것이기에 잠시 시간을 내어 써 본다.

 

시산회 역사상 이번처럼 산행지가 여러 번 변경된 것은 처음이다.

6월 소요산 산행 때 다음번은 원거리 산행으로 주왕산이 결정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후 월출산, 도일봉, 검단산 등이 차례로 입에 오르내리던 끝에 현지 사정과 날씨 등 여름 산행지로의 적합성 등을 고려하여 검단산이 당일 아침에 집결지에서 결정되었다. 어수선한 2MB 사태와 실황중계 수준의 일기예보도 결정에 한 몫을 한 듯싶다. 고민을 많이 한 기 회장과 김 총장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한다.

음이 있으면 양이 있고, 잃은 것이 있으면 얻는 것이 있는 법이 세상 이치다. 덕분에 경상도, 전라도, 경기도, 서울근교로 도상연습을 잘한 것 같다. 다음에 이름에 오른 이들 산에 갈 적엔 좀 편할 것만 같다.

 

중국 출장을 갔다 온 후 금요일 김 총장에게 전화를 걸어 이번 산행지는 ‘도일봉’임을 확인하였다. 그동안의 시산회 철칙에 따라 우천에도 강행 한다고 한다.

 

태평양 ‘갈매기’가 하늘을 뚫고 날아갔는지? 토요일 내내 장대비가 오락가락 한다.

그래도 내일은 비가 그치겠지? 내심 바라면서 토요일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일요일 새벽 일어나 창 밖을 보니 장대비가 계속 온다. 이 정도면 산에 못 갈 것 같다. 마누라도 이런 날씨에 무슨 놈의 산이냐고 한다. 김 총장의 우천 불구란 말에 갈등이 생긴다.

 

김 총장에게 산행여부를 확인하기 위하여 막 전화를 하려는 참에 7시14분경 김 총장의 "오늘 산행 집결시간 변경합니다. 10시30분, 잠실역 3번출구" 문자메시지가 날아왔다.

계속해서 굵은 비가 내린다. 이정도 빗줄기면 산에 갈 수 없다고 포기하고 있는데, 10시가 가까이 되면서 빗줄기가 가늘어 지고 하늘이 맑아진다.

간단히 요기를 하고 얼른 배낭에 생수와 우산을 챙겨 넣고 집을 나섰다.

큰길에 나와서 시간을 보니 10시10분이다. 택시를 탔다. 잠실 곰둘이상 앞에 도착하니 약속 시간 3~4분 전이다.

세환, 정남, 윤환, 재웅, 용우 등의 산우가 기다리고 있다. 서로 밝은 얼굴로 수인사를 나누었다 언제 봐도 편안한 친구들이다. 조금 후에 문형이가 왔다. 문형이와 용우는 김 총장의 문자메시지를 받기 전에 집을 나서 일찍 도착해 두어 시간 동안 여기저기를 헤맸다고(?) 한다.

 

곧장 34-1번 시내버스를 탔으나 버스는 옛 길을 빙빙 돌아 그 옛날의 완행버스처럼 운행한다. 에니메이션고교 앞에 도착하니 11시40분이다. 비는 그쳤으나 날씨는 후덥지근하다.

 

코스는 여느 때 처럼 김 전회장이 추천한다.

오름 길은 유길준 묘를 지나 정상으로,... 내림 길은 정상을 조금 지나 우측 능선을 따라 내려오는 넓고 긴 코스이다. 김 전회장은 1시간 남짓이면 올라 갈수 있는 쉬운 길이라 한다. 늘 그랬던 것처럼 마음속으로는 김 전회장의 한참 때의 시간이겠거니 하고 좀 넉넉하게 생각하고 올라갔다.

 

들머리 길은 아주 완만하고 비에 촉촉이 젖은 녹음이 감싸고 있는 무척 아름다운 길이다. 비에 젖은 흙길이라 먼지도 안 난다. 콧구멍 속에 빨려 들어가는 공기는 너무 달았다. 얼마를 가니 몇 개의 묘지가 보인다. 한말 서유견문을 쓴 유길준의 가족 묘라는 안내판만 확인하고 지나쳤다.

조금 올라가니 제법 가파른 길이 나온다. 숨이 목에까지 찬 상태에서 약 30여분 걸은 것 같다. 이제 쉬었다 갔으면 싶은데 앞을 보니 평상이 보인다.

 

앞서 간 기 회장, 김 전회장, 윤환이가 막걸리나 한 잔하고 가자고 한다. 수 십 차례 산행을 함께 했으니 서로가 이심전심으로 마음이 통한 것 같다. 안개비가 오락가락 한다. 비 온다고 막걸리 안 마실 시산회 산우들이 아니다. 평상에 막걸리를 꺼내어 기 회장이 준비한 송편과 재웅이가 내어놓은 수박을 안주 삼아 모두들 목을 축였다. 모두들 맛나게 잡수신다.

 

다시 가파른 돌계단, 돌길을 올라갔다. 빗줄기가 굵어지자 다들 배낭에서 우의나 우산을 끄집어냈다. 돌길이 미끄럽고 비가 와도 땀은 난다. 높은 습도와 땀 때문에 몸이 후덥지근하고 길이 미끄러워 천천히 산을 올랐다. 산행 대오가 흐트러졌다. 오늘따라 재웅이는 자칭 50씨씨 오토바이엔진이라고 넉살을 부리면서 걸음이 무겁다고 한다. 토요일 저녁에 과음을 하여 무리(?)한 게 아닌가 싶다.

 

오르막 돌길 언덕 주위 여기저기에 베어낸 나무 밑둥치에 녹색 비닐을 씌운 것이 많이 보였다. 왜? 씌웠는지를 모르겠다. 헉헉거리고 올라가니 큰 고개가 나온다. 방향표시판이 보인다. 에니메이션고 1.55 Km, 정상 1.97 Km가 쓰여 있다. 반도 못 왔는데 벌써 1시간이 지났다. 멀리 내려다보이는 한강은 황토 흙물이 넘실거린다. 미사리와 예봉산은 운무에 가려 반쯤만 보이는데 한 폭의 동양화와도 같다. 한참을 오르다 보니 앞서가는 두 분의 여성 산객 중 한 사람이 비를 맞고서 걸어간다. 마침 위 산우가 여분으로 가지고 있는 하얀 비닐 우의를 빌려 준다.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오늘처럼 우중산행에 말벗이 생겼으니 지루하지도 않을 것 같다.

 

다시 정상을 향해 얼마 오르니 언젠가 산우들과 단체사진을 찍었던 전망 좋은 곳이 나왔다. 양수리와 팔당호가 보인다. 전경이 마치 운무와 물안개 속에 한 폭의 수채화로 환상적이다. 눈이 즐겁다. 숨차게 몇 개의 봉우리를 올라서니 정상 바로 아래 헬기장이 나왔다. 비도 멈췄다. 함께 오른 두 산객이 점심 좌판을 차린다. 오늘 따라 우리 시산회 여덟 산우들은 먹산회 답지 않게 메뉴가 빈약하다. 하산 후 점심 겸 뒷풀이를 하기로 한 탓인 것 같다. 다행이 두 산객이 화순 능주 모시잎으로 만든 속에 콩고물이 들어있는 송편과 어려울 적에 먹어봤던 기전떡 등을 준비하여 골뱅이통조림, 수박에다 남아있는 막걸리를 감칠 맛나게 먹었다.

 

한 산객은 장흥이 고향이고, 한 산객은 충청도인데 부모 따라 어릴 적 무안 해재에서 살았다고 한다. 정이 많은 게 남도사람이 아니던가? 우의 좀 빌려주고 푸짐하게 얻어먹었으니 남는 장사임에는 틀림이 없다. 모두가 위 산우의 덕이다.

 

먹었으니 이번에는 여기서 시를 읊자고 한다. 오늘 산행기의 필자라고 나보고 읊으라 한다.

오늘 동반시는 이기철 시인의 " 햇볕이 되었거나 노을이 되었거나 " 이다.

코끝이 찡한 인생의 노래다.

목소리를 가다듬어 읽었으나 제 맛이 안 난다.

기 회장은 김 전회장이 김 총장에게 읽으라고 고지했다며, 시 낭송을 몇 번이고 연습했을 종화에게 ‘다시 한 번 낭송하라’고 한다. 부지런한 김 총장이 부럽다.

또 재웅이가 김 전회장이 추천, 공지한 최영미의 "선운사에서"라는 시를 반은 외워서 반은 빗물에 젖은 메모지를 보면서 해설까지 곁들이며 낭송하였다.

시산회의 시 낭송 수준이 일취월장하여 예사롭지가 않다.

 

657 m 검단산 정상에 올랐다. 검은 구름이 몰려온다. 비가 다시 올 것 같다. 정상 표지석을 배경으로 단체 사진 한 장을 찍고 하산을 재촉했다. 전국의 웬만한 산은 다 가봤다는 두 산객이 추천한 능선길로 함께 내려가기로 하였다. 마사토같은 부드러운 흙길이다. 비가 와서 인지 길 따라 물이 흐른다. 길 옆 계곡은 조그만 폭포수처럼 흐른다. 하산길은 숲이 우거져 하늘이 안 보인다. 쭉쭉 뻗은 잣나무 등의 침엽수가 바둑판처럼 빽빽이 잘 자라 서 있다.

검단산에 이런 곳도 있는지 처음 알았다. 다들 뒷풀이는 어제가 복 날이니 내려가서 닭백숙이나 먹자고 한다. 산 중턱 아래 내려오니 계곡이다. 물이 많이 불어 콸콸콸 흐른다. 다들 조심스럽게 건넜다. 잰 걸음으로 내려오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 했다.

다시 빗방울이 굵어진다. 계곡을 건너 조금 내려오니 처음에 올랐던 들머리 길이다. 오후 3시가 훨씬 지났다.

 

길 끝 왼쪽에 누룽지닭백숙집이 있다. 집결지에서 잘못된 판단과 산행시간을 예측 못해 늦은 점심을 겸하여 “장수촌”이라는 음식점에서 뒤풀이를 하였다. 비가 오는 날이니 파전이나 빈대떡이 생각난다. 우선 시원한 맥주부터 한 잔 마셨다. 바로 이 맛이다. 시산회 회원 아니면 느낄 수가 없는 것 아닌가? 닭백숙 나올 때까지 입담으로 웃는 시간이다. 기 회장이 감칠맛 나는 얘기로 분위기를 띄운다. 사랑의 전도사 문형이가 오늘도 명 강의를 시작한다. 부인=사랑+정 이고 애인≠정 ∴ 사랑 끝=관계 끝 이란다. 앞으로도 한 30년은 문제가 없다고 한다. 우리도 등산을 부지런히 하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한데(?) 아무튼 의문이 간다. ‘이 사람아 우리가 30년이면 90이 다 되네그려’, 한 바탕 또 웃음을 자아냈다. 누군가(?) 사랑의 유효기간 ≤ 18개월 이란다. 돌아가면서 하는 한마디에 엔도르핀이 솟는다. 닭백숙과 누룽지죽을 배부르게 먹었고 이제는 집으로 갈 시간이다. 오후 5시가 조금 넘어 뒤풀이는 끝났다. 장대비가 다시 세차게 내린다.

 

검단산은 나와 2가지 인연이 있다. 하나는, 내가 25년여 동안 직장 생활을 하며 한 사람은 먼발치에서 또 한 사람은 아주 가까이에서 모셨던 정주영 회장(1915~2001년)과 정몽헌 회장(1948~2003년)의 유택이 있고, 또 하나는, 유길준(1856~1914년)이 조선 최초로 일본과 미국 유학을 위해 1881년 현해탄을, 1883년 태평양을 횡단하고, 1885년 미국유학을 마친 후 대서양을 횡단하여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각국을 여행한 후 그 해 말 수에즈운하와 인도양을 횡단하여 싱가포르, 홍콩, 일본을 거쳐 인천항에 도착했다고 한다. 한국인으로서 최초로 배를 타고 세계일주를 한 사람인 것 같다. 마도로스인 나도 못해 본 세계일주를 한 선각자 유길준이 부럽고 존경스럽다. 1976년 내가 처음 태평양을 횡단하여 미국에 갔을 때의 문화적인 충격을 생각할 때 유길준이 받은 충격은 상상을 초월했을 것 같다. 그래서 “서유견문”을 쓰지 않았나(?) 상상해 본다.

 

오늘 여덟 산우와 그리고 여름비까지 어우러진 멋진 산행을 했으니 검단산은 오늘 나랑 세 번째 인연을 맺은 셈이다. 태풍의 여파로 비 오는 날, 좋은 산우들과 함께 한 즐거운 산행, 일생에 잊지 못할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며 두서없이 산행기를 맺는다.

 

2008. 7. 25일 전작 씀

 

 

두서없는 산행기가 아니라 군더더기 없이 대단히 잘 쓴 글이다. 산행기를 쓴다고 부담스러워 하지 마라.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다. 시인과 작가들도 습작의 높이가 자기의 키를 넘는다.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잠시 익히면 된다. 중요한 부분만 모두에게 별도로 보내니 참고하여 배우고 익히면 평생의 재산이 된다.

 

이번 산행지는 우여곡절 끝에 검단산을 오르게 되었다. 비가 오면 집행부가 바쁘게 된다. 용문산 옆의 도일봉을 오르려고 버스를 예약했다가 비가 많이 내려 새벽에 취소했는데 계곡을 세 차례 쯤 건너야 하기에 부득이한 경우이다. 모이는 시간을 8시 30분으로 정했다가 10시 30분으로 늦췄는데 다행히 비가 그쳐 검단산을 올랐다. 동행한 산객이 있어 뒤풀이를 함께 했는데 용문산 옆의 백운봉을 산객들 사이에서는 한국의 K2봉이라 한단다. 뽀쪽한 모양이 희말라야의 K2봉과 닮았다 해서 붙인 이름이라는데 능선길이 햇볕에 노출되는 산이라 여름에 오르는 것보다 겨울산행에 적합한 산이다. 눈 내리는 겨울에 올라봤는데 확 트인 전망이 좋았다. 눈 내릴 때 함께 오르자.

 

이번 산행지는 분당의 영장산이다. 기 회장님과 김 총장이 반긴다. 그들의 집이 분당이니 당연하다. 해발고도 413 미터로 높지 않고 평탄한 능선길이라 어렵지 않으며 내려와서 점심 겸 뒤풀이하기에 좋을 산이다. 특히 기 회장님이 뒤풀이를 준비한다니 모두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 성의에 답하자. 도움쇠는 장모의 기일이라 부득이 산행은 불참하나 기 회장님이 준비하는 뒤풀이는 꼭 참석할 예정이다.

 

시산회는 2004년 10월 1일 도봉산을 처음 오른 후 벌써 90회 산행을 하기에 이르렀다. 50회 산행까지 1기 집행부가 미미하나 초석을 다졌고 2기 집행부가 보다 잘 하고 있음을 우리 모두가 잘 안다. 하나 제안한다. 20회 동창회도 총동문회 산악회처럼 매년 꽃 피는 봄이나 단풍이 물드는 가을에 동창회 차원의 산행을 하면 좋을 것 같다. 기 회장님은 동창회 회장도 역임했고 나도 현재 참석은 거의 하지 못하나 수석부회장으로 되어 있으며 임 수석은 전직 만년 총무였고 막강한 현직 총무가 김용우 산우다. 현재 장선식 회장도 반대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모아둔 동창회비도 많으니 회비로 관광버스를 대절하여 선선한 가을 날 주왕산도 좋고 월출산도 좋지 않을까 싶다. 부부동반이나 가족동반이면 더 좋지 않겠는가. 주왕산은 굳이 산에 오르지 않아도 좋으니 산에 취미가 없는 사람들은 1.2.3폭포를 지나 전기 없는 마을에서 파전에 막걸리를 마셔도 좋고 월출산은 산에 오르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해남이나 강진바닷가에 짱뚱어탕을 준비해 바다내음을 맡으며 먹고 와도 좋지 않겠는가. 기 회장님과 김종화 총장, 동창회 총무인 김용우 산우가 수고해주기 바란다.

 

동반시는 비를 주제로 한 서정시이다. 적막한 내 마음과 같은 시이다. 마른 장마였다가 장마비가 내리기에 시를 선정했는데 이제 장마비가 그치고 폭염이다. 비 내리는 검단산의 정상에서 읊었으면 좋았을 시이나 가슴이 촉촉한 사람의 가슴 속에서는 항상 비가 내린다. 시인은 비로 만든 집에서 산단다. 우리도 가슴 속에 비로 만든 집 하나 지어놓고 살아보자. 우리가 시인이지 않은가. 산의 시인들이다. 산이 시이고 시가 산이다.

때 맞춰 창 밖에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린다.

 

 

비 / 이 형 기

적막강산에 비 내린다.

늙은 바람기

먼 산 변두리를 슬며시 돌아서

저문 창가에 머물 때

저버린 일상

으슥한 평면에

가늘고 차운 것이 비처럼 내린다.

나직한 구름자리

타지 않는 日暮(일모)......

텅 빈 내 꿈의 뒤란에

시든 잡초 적시며 비는 내린다.

지금은 누구나

가진 것 하나하나 내놓아야 할 때

풍경은 정좌하고

산은 멀리 물러앉아 우는데

나를 에워싼 적막강산

그저 이렇게 빗속에서 저문다.

살고 싶어라.

사람 그리운 정에 못 이겨

차라리 사람 없는 곳에 살아서

청명과 불안

기대와 허무

천지에 자욱한 가랑비 내리니

아 이 적막강산에 살고 싶어라.


2008년 7월 30일 오전 중랑천을 바라보며

詩를 사랑하는 山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도움쇠 金 定 南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