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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보은의 구병산(詩山會 제104회 산행)

보은의 구병산(詩山會 제104회 산행)

산 : 구병산(九屛山 876.5 미터. 보은. 상주)

코스 : 적암리-안부-정상-삼가초등학교

소요시간 : 오름 2시간 내려옴 1시간 30분

일시 : 2009년 2월 28일(일) 7시

모이는 곳 : 전철 2호선 3번 출구 너구리상 앞

준비물 : 간식, 안주, 과일, 사진기(아침식사는 휴게소에서, 점심은 하산 후 뒤풀이 겸)

연락 : 이재웅(010-3454-7717)

블로그 : 사진 blog.daum.net/sisan20

산행기 blog.daum.net/yc012175

카페 cafe.daum.net/K-20

 

 

큰형님이 떠났습니다

 

갑작스런 부음처럼 슬픔도 갑작스레 왔다

 

갔습니다 남은 내가 한 일은

 

휴대폰 번호를 지우는 것

 

이름과 숫자를 지우고 내친김에

 

항간과 어머니와 초또마을

 

절구통과 떡시루와 용접기

 

형만한 아우가 없다는 말까지도!

 

그쯤이면 다 지워졌을 성싶습니다

 

지상에서의 이별은

 

성호를 긋듯 당신을 차례로 지우는 일

 

또 내가 떠날 때까지 썩지 않게 하는 일입니다

 

-김종철 '당신을 지우며'전문

 

마음으로 가까운 이의 죽음은 남겨진 사람이 감당하기에 너무 가혹하다. 큰 죽음이든 작은 죽음이든 마찬가지다. '당신'이 육신의 끈만 풀어놓았을 뿐 기억을 함께 거두어가지 않은 탓이다.

 

울퉁불퉁한 세월의 마디에 새겨진 흔적들이 어찌 쉽게 지워지겠는가. 생전에 아끼던 옷이나 신발, 주소, 명함, 휴대폰, 우스꽝스러운 말투, 아련한 눈빛….

 

그를 이뤘던, 터무니없이 사소한 모든 것들이 견딜 수 없는 그리움이 된다. 삶은 만남과 이별을 쌓아가는 과정이고 이별은 '당신'을 차례로 지워가는 일이다. 하지만 어떤 이별은 끝내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렇게 불면으로 뒤척이는 가운데 세월이 흘러간다.

-시평(이정환. 언론인)

 

 

 

주변의 친척과 지인들의 몸과 영혼이 스러져가는 부음을 자주 접한다. 우리도 그렇게 된다. 죽는 것이 두렵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우리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고 겪는 것보다 겪지 못하고 죽는 것이 더 많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 가운데 우리가 절대로 알지 못 하고 죽는 것이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우주의 기원이다. 생명의 기원이라고도 한다. 과학자들은 진화론을 들먹이고 종교인들은 창조론을 펼치지만 어림없는 일이다. 그들이라고 주장하는 이론의 한계를 모를까. 영원히 모를 것이다.

 

둘째 영혼의 존재다. 불가에서는 윤회를 앞세우나 어림없는 짓이다. 육신이 죽으면 영혼도 스러져가는 법이다. 사후세계란 있을 수 없지만 현세에서 죽을 때 치매증상이 있던 혼미해진 영혼이 사후세계에서 갑자기 정신이 맑아지고 육신이 건강해질까. 현세와 래세를 연결해주는 끈도 증거도 없다. 기적 같은 증거를 들먹이지만 기적은 증거가 아니기 때문이다.

 

셋째 선악의 귀결이다. 선한 사람은 흥하고 악한 사람은 망한다는 단순논리는 아직도 증명이 되지 않고 있다. 악하고 독한 사람들이 더 잘 살고 즐겁게 사는 모습을 너무나 많이 봐왔기에 우리는 이것도 영원히 알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 가지가 종교의 존재하고 존재해야 하는 충분하고 필요한 이유다. 시간이 없어 이만 줄이고 다시 거론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제103회 불암산 산행기(2009.2.8)

 

이 경 식

 

참석자 : 신원우, 조문형, 임삼환, 박형채, 염재홍, 최광일, 남기인

 

나창수, 최영수, 전 작, 기세환, 이재웅, 이경식(불암산 정상의 뒷자리순)

 

 

일요일 아침

 

일어나자 마자 베란다 창문을 열고 하늘을 쳐다본다.

 

그리고 손을 쭉 뻗어 창밖으로 내밀어 본다.

 

산행 가는 날의 습관이다

 

TV의 기상일기보다 직접 체감 일기를 맛보기 위해서다.

 

사실 여름은 그냥 우의 한 벌만 챙기면 되지만 겨울은 추위에 대비한 별도의 옷을 꼭 챙겨야 한다.

 

 

먹거리 챙기기도 중요하지만 입을거리 챙기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

 

겨울산행의 사고는 대부분 저체온증이니 잘 입을 수밖에...

 

겨울의 끝자락에 봄 날씨가 녹아든 것 같다.

 

약간은 냉랭한 바람이 기분좋게 상쾌한 아침이다.

 

우리 시산회의 산행날씨가 늘 그랬듯이 오늘도 정말 등산하기에 좋은 날씨다.

 

모범적인 등산모임인 우리 “시산회”에 대한 신의 배려로 우리는 단 한번도 날씨 때문에 산행을 취소한 적이 없다.

 

신도 아무나 돕는 게 아니다. 우리처럼 자격을 갖춘 자만 도울 뿐이다.

 

아무튼 우리는 타의 모범이 되는 등산회임이 틀림없다.

 

 

대학 2년생인 딸과 단촐하게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섰다.

 

어떻게 상계역 까지 가야 하나...?

 

집은 물론 노량진동 이지만 1호선은 물론 7호선도 걸어서 탈 수 있다.

 

1호선을 타면 서서 가야 할 것 같고....7호선을 타면 앉아서 갈수 있을 것 같고...

 

본능적으로 손익을 계산한 후 7호선 상도역으로 걸음을 돌려서 전철에 올랐다.

 

자리가 듬성듬성 비어 있다.

 

 

한 자리는 할머니 옆 자리이고 한자리는 30대 아줌마 옆 자리이다.

 

할머니 옆 자리를 지나 30대 자리 옆에 앉았다.

 

계산 이전에 본능적인 문제다.

 

노인이 노인을 더 싫어한다더니....다가올 내 미래를 싫어하는 셈이다.

 

앞으로 늙는 법을 배워야 할 텐데.....얼마나 나이를 더 먹어야 모든 여성이 평등(?)하게 보일려나...?

 

모든 여성이 평등하게 보이면 내가 남자인가..??

 

아무튼 노인 옆자리를 굳이 외면한 내 순간적인 판단을 가볍게 반성한다.

 

 

엉덩이의 따스한 감촉을 느끼면서 앞에 쭉 앉아있는 내 또래의 등산객들을 훝어보고, 눈을 떴다 감았다를 반복하니 상계역에 도착했다.

 

1-2분 늦은 것 같은데 1명 빼고는 벌써 다 도착해 있었다.

 

언제부터 인지 우리 시산회의 시간지킴은 정말 칭찬할만하다.

 

 

상계역에 등산객들이 넘친다.

 

불암산 인기가 이리도 대단했나....

 

전에는 한가했었는데 등산객들이 확실히 많아지긴 많아진 모양이다.

 

 

이 총장은 내심 걱정 했는지 출발하자마자 나보고 산행기를 쓰라고 엄명한다.

 

지난 25회 불암산(2005.11.20) 산행기도 내가 썼는데...이러다 불암산 전문 작가 될라...

 

정남이나 종화 같은 작가들이 다 빠졌으니 내 차례가 온 것이다.

 

5분 쯤 산에 오르자 놀이터 겸 체육장이 나탄난다.

 

40대 초반, 창동에 살 때, 지금은 대학 다니는 딸애를 데리고 자주 와서 같이 운동하고 때로는 약수를 뜨던 곳이다.

 

 

내가 마음속에 그렸던 옛 모습은 없지만 아기자기한 추억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놀이터를 지나 왼쪽의 능선으로 코스를 잡았다.

 

아무래도 능선이 골짜기 보다는 조망권이 좋아서 덜 지루하다.

 

산에 오르자 마자 기 전회장이 보온밥통에 밤 세워 보관한 후 급히 가져온 따끈따끈한 고구마를 먹으면서 체력을 보충했다.

 

서울의 동북부를 한눈에 내려다 보면서 정상을 향해 발걸음 옮겼다.

 

 

전망좋은 마당바위(?)에서 한 번의 휴식을 취했다.

 

단체 인증사진을 폼잡고 한번 찍었다.

 

사진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우리 시산회의 역사를 기록하고 먼 훗날 회원들의 훈훈한 추억거리로 16회 때부터 블로그를 만들어 사진을 올렸다.

 

지금은 K20도 있고...김 전회장의 블로그도 있으나...

 

원조는 분명히 SISAN20 즉, 시산회 블로그다 ㅎㅎ

 

하여간 지금은 그만 둘 수도 없고 그만 둘 생각도 없어서 내가 건강하게 시산회를 나오는 날까지는 시산회 블로그에 우리의 추억을 차곡차곡 쌓아둘 것이다.

 

 

먼 훗날, 우리가 80대의 노인이 되거든 30년 전의 지금을 회상하고 자신의 흘러간 생애를 그려 보리라.

 

그리고 살아있는 자들은 먼저간 자들을 기억해 보리라.......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불암산 정상 오르는 방법은 변함이 없다

 

다른 산들은 사다리도 많이 놓아서 등산객에게 편의를 제공하는데 여긴 비좁은 정상에 오직 밧줄하나만 댕그랑 놓여 있었다

 

사람은 많고 길은 밧줄 외길이니 정상부근은 혼란스러웠다

 

간신히 1평도 채 안 되는 507미터 정상에 엉덩이를 걸치고 여기서도 기념샷... 찍자마자 하산길로 접어들었다

 

올라 올 때도 밧줄타기...내려 갈 때도 밧줄타기....이게 불암산 정상의 매력이다

 

 

밥 먹을 자리를 잡아야지..

 

햇볕은 잘 들고, 바람은 안 불고, 바닥은 평평하고, 좀 넓어야 하고.. 13명이 앉을 수 있는 넓은 그런 자리

 

어디 그런 자리 없나....

 

여기 저기 기웃 거리다 헬기장 부근에 이 4대 조건에 딱 맞는 그런 자리를 잡았다

 

조문형표 과메기를 주안주로 삼아 느긋하게 늦겨울의 이상고온을 즐겼다

 

 

자 먹었으니 떠나야지.

 

삼육대학 방향으로 하산 중에 서울온천 얘기가 나왔다

 

빨리 가자 온천으로..

 

중간에 코스를 틀어 중계본동으로 하산키로 했다

 

대표적인 달동네다. 주변 집들에서 가난과 무질서가 묻어 나왔다

 

 

택시를 타고 서울온천에 도착하여 함께 몸의 피로를 풀었다.

 

지금까지 모자에 가려진 누구의 대머리도 보고 옷에 가려진 똥배도 보고....

 

누가 이 나이를 피할 수 있으리오 ??

 

중계동 먹자거리를 우왕좌왕하다가 결국은 대구매운탕집으로 낙착되었다

 

대구는 별로 없고 맹물만 가득하니 결국은 대구맹물탕만 먹은 셈이다

 

오늘의 뒤풀이 자리를 만들어준 남기인 친구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아무튼 대접받고 즐겁지 않은 이가 그 누구랴....기분 좋게 산행을 마쳤다.<이상 이경식 전 총창의 글임>

 

(이하는 이 재웅 총장이 쓴 산행기 보완편 입니다)

 

우리 시산회는 지금까지 산행활동을 통한 심신의 단련과 인격수양과 산우들 간의 친목도모를 위주로 해 왔고 산행활동 이외에 달리 즐기는 것에는 즐겨하지 않았다. 진짜 착실하고 알찬 등산회가 아닌가? 싶다. 시산회의 오늘 등산이 무려 103회째 등산인데 등산 끝나고 목욕탕 간 것은 한 세 차례밖에 안 되는 것 같다. 변산반도등산(2007.8.19), 분당 영장산등산(2008.8.3), 그리고는 오늘 불암산 등산이 세 번째 목욕탕코스를 넣은 산행인 것 같다. 그만큼 오늘의 온천목욕탕은 각자 그 효용도가 높았던 것 같다.

 

온천목욕을 한 후 우리는 뒤풀이차 중계동의 먹자골목을 찾았다. 시원한 생맥주집엘 가는 것이 다수 의견이었으나 나창수원 장은 대구탕집(이동 중에 보았던)에서 저녁 식사 겸 뒤풀이를 하자는 제안을 했고 오늘 하루 회장 직무대행 겸 총무(이재웅)는 나창수 1인의 강력한 제안에 민주주의원리를 잠시 적용하지 않고 1인의견을 좇아 대구탕집으로 뒤풀이장소를 유도했다. 오늘 이 대구탕집 식사를 하면서 느낀건데 대구괘기는 쇠괘기보다 더 비싼괘기라는 것을 알았다. 대구탕에 대구괘기가 숨었있었기 때문이다. 오늘의 뒤풀이는 남기인산우가 쐈다. 남 산우는 경기도 화성시 기안동에 있는 대형 유치원인 다솜유치원의 이사장님으로써 작년 12월 6일 개원식행사에 시산회 친구들이 참석하여 개원행사를 다소나마 빛내 준데 대한 감사의 표시를 할 기회를 잡느라 긴 긴 기간을 대기하다가 드디어 오늘 쏜 것이다. 쏠 사람들이 앞으로도 두 명이나 계신다. 남기인 이사장님! 부디 다솜을 기초로 해서 훨씬 더 큰 교육기관으로 발전하시기를 우리 시산회 산우들은 기원하네(이사장님께서 오늘 쏘셨다고 해서 이 덕담을 드리는 것만은 아니네).

 

 

<뒤풀이때 거론됐던 내용들>

 

1. 다음 산행 : 2월 28일(토) 남덕유산, 집결지 교대역 14번 출입구, 집결시각 07시 20분, 07시30분에는 무조건 버스 출발할 예정

 

2. 나창수 원장의 의사발언 : 앞으로 근거리산행 시에는 오늘처럼 온천욕코스같이 즐기면서 피로를 푸는 프로그램도 가미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회장단은 이에 대한 회원들의 여론을 잘 파악해봐야 할 것이다.

 

3. 이 총무의 예고 발언 : 2월 28일의 원거리 산행 때 진도산 문어파티 예고로 다 들 환영일색이었는데 나창수원장이 강력 반발(본인은 그 산행 못하므로 그 다음 산행으로 문어파티를 연기하자 주장), 문어 두 마리 남겼다가 그 다음 산행 때 가져가서 나 원장과 남기인 이사장이 먼저 드시도록 하고 남거들랑 다른 산우들이 먹도록 하는 절충점에서 논란은 무마됐음, 나 원장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이 없도록 산우들은 신경을 많이 쓰세요(ㅎㅎㅎ). 나 원장이 제일 무셔.

 

4. 이재웅 총무가 두 가지 정신선물을 준비해 와서 산우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 선물을 준비하느라 시간 좀 들였을 것 같다. 우리 나이를 살아 가는데 적잖게 참고가 될 것으로 본다. 물건을 나눠주는 선물 못지 않은 좋은 선물이다. 고맙다.

 

 

1) 요즘 유행하고 있는 여러 가지 50대10계명을 합친 “종합 50대 10계명”

 

일 : 일일이 간섭하지 말라. 일일이 따지지 말라. 일일이 알려고 하지 말라.

이 : 이것저것 따지지 말라. 이유를 묻지 말라. 이간질 하지 말라.

삼 : 삼삼오오 모임에 부지런히 참여하라. 삼삼하게 멋쟁이로 살아라.

삼각관계를 갖지 말라.

사 : 사생결단하는 식으로 살지 말라. 사소한 일에 목숨 걸지 말라.

오 : 오~ 예스, 오~케이하는 긍정적인 마음과 자세로 살라. 오기 부리지 말라.

육 : 육체적인 스킨십을 자주 하라.

칠 : 칠십 프로면 만족하고 살아라.

팔 : 팔팔하게 살아라.

구 : 구구 절절히 설명하지 말라, 듣는 사람 지겹다. 구질구질하게 살지 말라.

십(열) : 10% 정도는 남을 위해 봉사하라. 열어라 지갑과 마음을.

 

 

2) 존경받는 노후를 위한 7-UP>

 

앞 글자를 따서 GPS S C CD로 하여 암기하면 잊혀지지 않을 것임

 

G : Give Up ~ 포기할 것은 과감하게 포기하라. 되지도 않을 일로 속을 끓이느니 차라리 포기하는 것이 심신과 여생을 편안하게 한다.

P : Pay Up ~ 돈이든 일이든 자기 몫을 충분하고 넘치게 하라. 지갑은 열면 열수록, 입은 닫으면 닫을수록 대접을 받는다.

S : Show Up ~ 회의나 모임에 부지런히 참석하라. 집에만 칩거하며 대외활동을 기피하면 정신과 육체가 모두 병든다. 주변인들에게 내가 연로하지만 아직까지 살아 있다는 것을 실증해 줘라. 인간은 이 세상을 구경하러 왔다는 학설(?)도 있지 않은가? 회의나 모임에 부지런히 참석하면서 나를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도 되지만 나는 나대로 세상 구경을 그만큼 많이 하게 되지 않는가?

S : Shut Up ~ 말하기보다는 듣기를 많이 하라. 말 대신 박수를 많이 쳐 주는 것이 환영받는 비결이다.

C : Clean Up ~ 주변환경을 청결히 하고 정리정돈을 잘하라. 불필요한 물건들은 과감히 덜어내라, 귀중품이나 패물은 유산남기기보다는 생전에 선물하라.

C : Cheer Up ~ 항상 밝고 유쾌한 분위기 유지하고 유머도 곁들여서 주변을 활기차게 만들어라.

D : Dress Up ~ 용모를 단정히 하라. 젊은 사람은 아무 옷이나 입어도 폼이 나지만 나이든 사람들은 값비싼 옷을 입어도 폼이 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생각하라.

<끝>

 

 

지난 산행 때 남덕유산으로 정했으나 겨울에 갈 산이 아니라고 이 총장에게 조언을 했더니 집행부와 여러 산우의 의견을 모아 가을이나 봄으로 변경했다. 겨울에 산행하기에는 산행시간이 길고 길이 험하다. 해가 길고 기온이 적당한 봄가을에는 다리 튼실한 산우들은 갈 만 하다. 178회 산행 중 가장 힘들었던 산은 가리왕산과 남덕유였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훌륭한 명산이다. 두 산의 산행시간이 7시간 반으로 기록되어 있다.

 

다음 산행지는 충북 보은과 경북 상주에 걸쳐 있는 구병산이다. 아홉 개의 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당연히 산림청이 선정한 100대 명산에 당당히 그 이름이 올라있다. 도움쇠의 산행노트를 보니 ‘2003년 4월 22일. 97회 산행. 등산 2시간. 하산 1시간 30분. 산세가 좋은 훌륭한 산’. 코스에 들머리는 적암리고 날머리는 삼가초교로 되어있는데 시간별로 체크해놓은 것은 날머리가 적암리로 되어 있으니 이상하다. 나이듬은 격정적인 즐거움이 점점 사라져간다는 것이다. 뫼와 들에 물이 오르는 3월. 물오름 달을 하루 앞둔 2월의 마지막 날. 좋은 산을 좋은 산우들과 오르는 일이야 말로 사라져 가는 즐거움을 보태주는 일이다. 예상보다 인원이 적다고 이재웅 총장이 울상이다. 많이 참석하기 바란다. 진도 문어는 철이 일러 5월로 연기하고 대신 전작표 막걸리가 기막히다니 파전이나 부침개를 부치는 솜씨가 좋은 마나님을 모시고 사는 산우가 있으면 가져오면 좋겠다. 나는 마나님에게 시산제 때 가져온 생굴을 부탁했으나 그때처럼 씨알이 굵지 않아 걱정이라는 전언이 있었다. 맛은 떨어져도 많이만 사 주소. 하산 후 점심 겸 뒤풀이를 할 예정이니 해황표 모시쑥떡도 필요하다.

상주에서 레미콘과 아스콘 공장의 사장을 하는 친구가 있어 먹거리를 물어 봤는데 매운탕이 좋은데 멀어서 적합하지 않을 것 같다고 한다. 부지런히 알아본다고 했지만 별로 기대할 상황이 아니다.

 

 

 

동반시다. 특이한 문체이면서 특이한 시인이어서 관심을 가져 봤다. 이 시가 좋은 산우는 자발적으로 읊어라. 여류시인의 시평도 기막히게 좋다.

 

이 시는 허수경(44) 두 번째 시집의 제목으로 쓰인 시이다. 이 읊조림을 시라 불러도 좋고 구음(口音)이라 해도 좋다. 웅얼웅얼, 중얼중얼, 킥킥……. 뭐라 불러도 좋은데 결국은 시가 될 수밖에 없는 읊조림이다.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삶. 삶이 상처임을 일찍 알아버린 이에게 독기와 연민은 삶을 견디는 한 방법이니,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당신을 부르는 시인은 이미 알고 있다. 당신을 호명하는 것이 또 한 번의 상처임을. 그런데도 부른다. 킥킥, 가엾이 여기며 부른다. 이것은 일종의 동종요법. 상처를 상처로 견뎌가는 참혹한 치유 요법이다. 사랑을 떠나보낸 참혹만이 아니라 생이 몽땅 상처인 것이어서 이 참혹함을 피해 볼 손바닥 만한 그늘도 찾을 수 없을 때, 나는 불현듯 깨달아버리는 것이다. 나도 혼자 가고, 당신도 혼자 가고, 먼 집도 영영 혼자 가는 것임을.

 

-1988년 실천문학사에서 나온 허수경의 첫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를 처음 읽던 내 나이 스무 살. 〈폐병쟁이 내 사내〉라는 시를 읽던 기억이 난다. 시집 표지에 실린 앳된 여고생 같은 얼굴의 여자가 이런 시를 쓴 게 오싹할 정도였다. 샤먼의 신명처럼 간곡하고 치렁치렁한 리듬으로 가득하던 첫 시집. 그 이후 지금까지 네 권의 시집을 세상에 내보낼 때마다 허수경의 노래법은 조금씩 달라졌지만, 안쓰러운 세상과 당신이 아파서 자기도 아픈 허수경의 비통함은 아주 넓은 진폭으로 당신이라는 세계를 확장하며 공명한다.

 

진주에서 태어난 허수경은 두 번째 시집을 낸 직후 돌연 독일로 갔다. 지인들은 그가 곧 돌아올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그는 15년이 넘도록 오지 않고 있다. 그간 독일 뮌스터대에서 고대동방고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천생연분이라 할 독일 남자와 결혼해 살고 있다. 발굴 작업을 위해 일 년의 절반 정도를 모래 서걱이는 터키나 이집트의 변방에 가 있고, 새벽이면 모국어로 시를 쓴다. 지인에게 들으니 집 뒤란에 텃밭을 만들고 한국에서 공수한 씨를 뿌려 상추며 쑥갓 등을 직접 길러 먹는단다. 음식 솜씨 좋기로 유명한 그의 손이 이국에서 김치를 담그고 각종 국을 끓이는 것을 상상하면 코끝이 찡해진다. 슬퍼서가 아니라 먹먹해서. 당신도 잘 견디고 있구나, 싶어서. 그녀가 진주 남강 가에 가장 잘 어울리는 여자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와보니 그녀는 모래도시와도 퍽 잘 어울린다.

 

지구 위 어디든 '혼자 가는 먼 집'이니, 참혹한 절망을 통해 어떤 희망을 볼 수 있는지는 킥킥, 온전히 당신 몫이다. '가수는 노래하고 세월은 흐른다/ 사랑아, 가끔 날 위해 울 수 있었니'(〈울고 있는 가수〉 부분). '킥킥 당신 이쁜 당신' 파이팅!

 

-시평(당신을 부르는 것이 또 하나의 상처임을...이라면서 여류시인 김선우가 썼다)

 

 

혼자 가는 먼 집 / 허 수 경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나 킥킥……, 당신을 부릅니다 단풍의 손바닥, 은행의 두

 

갈래 그리고 합침 저 개망초의 시름, 밟힌 풀의 흙으로 돌아감

 

당신……, 킥킥거리며 세월에 대해 혹은 사랑과 상처, 상처의

 

몸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당신……, 그대라는 자연의

 

달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당신……, 그대라는 자연의

 

달과 별……, 킥킥거리며 당신이라고……, 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에 기대 마음의 무덤에 나 벌초하러

 

진설 음식도 없이 맨 술 한 병 차고 병자처럼, 그러나 치병과

 

환후는 각각 따로인 것을 킥킥 당신 이쁜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는, 무를 수도

 

없는 참혹……, 그러나 킥킥 당신

 

 

2009년 2월 25일

詩를 사랑하는 山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도움쇠 김 정 남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