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모산-구룡산에 오릅니다(詩山會 제111회 산행)
산 : 대모산-구룡산
코스 : 대모산-구룡산-양재천-서울의 숲
소요시간 : 3시간
일시 : 2009년 6월 14일 9시
모이는 곳 : 전철 3호선, 분당선 수서역 6번 출구
준비물 : 가벼운 간식, 살얼음낀 막걸리, 안주, 과일, 카메라(하산 후 뒤풀이 겸 점심)
연락 : 이재웅 총장(010-3454-7717)
블로그 : 사진 blog.daub.net/sisan20
산행기 blog.daum.net/yc012175
카페 cafe.daum.net/K-20
너무 크고 많은 것을
혼자 가지려고 하면
인생은 무자비한
칠십 년 전쟁입니다.
이 세계가 있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닙니다
신은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평화와 행복을 위하여
낮에는 해 뜨고
밤에는 별이 총총한
더 없이 큰
이 우주를 그냥 보라고 내 주었습니다
-김광섭 '인생'전문
뭔가 비비 꼬인 것 같다. 벗어나려 할 수록 깊이 빠져버리는 늪에 들어선 느낌이다. 그 늪에는 너무 크고 많은 걸 혼자 차지하려는 욕심이란 괴물이 살고 있다.
괴물이 또 다른 괴물과 격돌하면서 피비린내나는 전쟁이 벌어진다. 전쟁터로 변한 일상에서 사람들은 별을 헤는 즐거움을 잊어버렸다. "별 하나에 추억과,별 하나에 사랑과,별 하나에 쓸쓸함과,별 하나에 동경과,별 하나에 시와,별 하나에 어머니,어머니"(윤동주)하고 노래부르지 못한다.
치매에 걸린 거나 진배없다. 해뜨는 고마움과 별을 헤는 동심(童心)을 잃어버린 결과다. 치매에 걸린 채 70년,아니 100년을 살아야 한다니 그게 전쟁이 아니고 뭐겠는가.
-시평(남궁 덕 중앙일보 문화부장)
‘삶과 죽음이 자연의 한 조각’이라는 고 노무현 전대통령의 유언장에 들어 있는 구절이 내 머리 속을 계속 맴돌고 다닌다. 그에 대하여 집사람과 함께 추모도 하고 딸들과 많은 대화를 하면서 젊은 사람들의 성향도 엿보았으나 ‘오직 가슴이 아플 뿐’이라는 말로 나의 허전한 마음을 표현하고 말을 아끼겠다. 언젠가 산행기를 통하여 토로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십이선녀탕계곡-대승령-장수대 산행기
참석 : 김종화, 이재웅, 나창수, 조문형, 전작, 박형채, 이원무, 한천옥, 임삼환, 염재홍, 김정남(11인의 산우)
신록의 5월. 오래 전부터 오르기로 한 십이선녀탕계곡에 오르는 날이다. 6시 반에 맞춰 집결지에 가니 반가운 얼굴들이 보인다. 11명의 반가운 산우들이다. 좋은 산행코스인데 오지 못한 산우들이 아쉽다. 도움쇠는 3개월 만에 참석한다. 아직도 마음의 여유를 찾지 못하고 있으니 답답한 일이다. 우리의 노란 애마에 올라 힘차게 남교리로 출발. 차 안에서 이 총장의 풀코스 노래 모음집에 대하여 설명을 듣고 그의 성의에 모두 감탄한다. 그의 취미이자 시산회원을 위한 열정에 감탄 또 감탄. 이러다 종신직 총장으로 추대될 가능성이 있다. 12개의 선녀탕이 있으니 12명이 가야 각 1명의 선녀를 책임질 텐데 11명뿐이니 산행길의 안내를 맡은 죄(?)로 도움쇠에게 2명을 책임지란다. 1명뿐인 마나님을 건사하기도 힘든데 그 어여쁜 선녀를 2명이나 책임지라니 오오! 하느님, 부처님, 알라신이여! 시산회원들의 덕담에 모두 흐드러지게 한바탕 웃고 또 웃고. 어쨌든 열 여자 마다하지 않는 게 남자이거니. 우리야 항상 화기애애하니 즐거운 산행의 전조이다. 다만 신원우 이사가 오지 못 한 것이 못내 아쉽다. 본인도 대홍수로 거의 모두 떠내려가 초토화된 등산코스의 복구가 끝났으니 현장점검 차 꼭 가야하는데 선약이 있어 오지 못함을 안타까워했다.
화양강 휴게소에서 선지해장국, 장국밥 등으로 아침을 간단하게 해결하고 김종화 회장님의 제안에 따라 코스에 관한 간단한 회의. 신 이사가 도움쇠와 김 회장님의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었는데 김 회장님에게 전화를 걸어온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은 산행의 안내를 제안했으나 김 회장님께서는 코스를 잘 아는 회원이 있다며 완곡히 거절했다며, 직원의 다른 제안은 우리가 당초 남교리 쪽에서 오르기로 했으나 오르는 코스가 너무 길어 힘들고 시간이 많이 걸리므로 장수대에서 대승령으로 오르면 처음에는 가파르고 힘이 들지만 그 후에는 내려가는 길이라 쉬우니 장수대 쪽에서 오르는 것을 나이든 산객들에게 권한다는 내용이다. 수차례 올라본 도움쇠는 남교리에서 올라 우리의 주 산행지인 십이선녀탕계곡을 완만하게 오르면서 맛있는 식사도 해가며 절경을 즐기고 안산 삼거리에서 대승령으로 빠지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제시하여 대다수의 의견에 따라 들머리를 남교리로 결정. 절경은 오를 때 보는 법이다. 내려갈 때는 피곤하므로 좋은 경치를 지나치기 쉽다. 직원은 우리를 흔하디흔한 늙은 산객들로 오해했다. 오해도 큰 오해이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지리산 종주도 해본 산사람들이다. 그 어렵다는 공룡능선도 오른 산사람들이다. 백담사-마등령-비선대 코스와 오색-대청-한계령 코스도 오른 산사람들이다. 우리는 산객이 아니라 산사람들이다. 시산아일체(詩山我一体)를 표방하고 추구하는 세상에서 둘도 없는 용감한 산사람들이다. 내려와서도 그 코스에 대하여 옳은 결정이었다고 모두 공감했으니 훌륭한 산사람들임에 틀림없다.
10시45분에 남교리 십이선녀탕 입구에 도착하니 옆으로 만해기념관이 보인다. 들르고 싶었으나 시간관계로 생략한다. 백담사를 들머리로 잡는 날에 가기로 하자. 다만 콘크리트로 지은 건물이라 卍海 한용운님의 감회가 덜 하더라. 훗날 백담사-구곡담계곡-봉정암-대청봉의 코스가 시산회의 계획에 있으니 그때 가자. 11시 정각. 화강암으로 잘 단장된 돌다리를 건너서 안내소에 이르니 국립공원직원이 나와 있다. 신 이사를 얘기하니 반갑게 맞는다. 김 회장님이 우리 산우 중에 길을 잘 아는 회원이 있어 안내를 고사했다며 소요시간과 뒤풀이하기에 좋은 먹거리를 묻는다. 장수대로 내려가서 한계령을 넘으면 오색약수가 나오는데 그곳에서 산채정식을 먹으면 좋을 것이라고 답한다. 미식가인 나 원장은 벌써 침을 삼킨다. 소요시간은 6시간이면 충분하단다. 도움쇠는 그때 고개를 갸우뚱했다. 젊은 날에도 더 걸렸는데 하고. 그러한 도움쇠의 의문은 얼마 가지 명확하게 풀렸다. 10분쯤 올랐을까, 오래 전에 눈사태로 희생된 산사람들의 위령비가 대홍수 전에는 길가에 있어 비석을 더듬으며 그들의 명복을 빌었는데 코스가 바뀌어 훌륭한 나무다리가 옆으로 세워지고 비석을 먼발치로만 볼 수 있었다. 몇 년 전에는 나무다리가 하나도 없었고 계곡 옆으로 난 숲길과 돌길이었는데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딱 맞는 표현이다. 대신 길은 잘 닦여지고 군데군데 아름다운 나무다리가 놓여있다. 몇 년 전에는 자연상태 그대로 지형을 따라 길이 구불구불하고 경사가 심했으며, 물을 건너는 경우가 있었는데 수해복구가 끝난 지금은 새로 난 신작로와 다름없다. 건설업을 오래 동안 해온 나로서도 참으로 고생이 많았고 공사비가 많이 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절경은 변하지 않았다. 점입가경. 산우들의 입에서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고 많은 사진을 찍는다. 찍은 사진은 K-20 마을의 시산회란이나 행사사진란에 올리니 다시 보기 바란다. 어떤 산우는 선녀탕은 있는데 선녀는 없냐고 볼멘소리를 하는데 순발력이 좋은 조문형 산우는 선녀는 밤에 목욕하러 내려오니 밤에 와야 한다고 너스레를 떤다. 그러나 홍수의 상흔이 너무 심해 수차례 오른 도움쇠의 뇌에 남아 있는 모습은 오고 간 데 없고 새롭고 현대적인 모습만 남아있다. 다행히 용탕은 남아있어 그 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천하절경이자 비경인 복숭아탕(일명 여인네 엉덩이탕)과 막탕은 홍수 때 떠내려 온 돌덩어리들에 매몰되어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신 이사는 옛 모습을 찾아주기 바란다. 막탕 위의 두문폭포 아래서 점심을 먹곤 했는데 그 모습도 찾을 수 없었다. 두문폭포의 본래 모습은 옛 모습이 아니어 같이 점심을 먹던 다람쥐와의 추억도 사라졌으니 도움쇠는 많이 아쉽고 상심했다. 두문폭포 위의 파란 이끼 낀 검은 바위와 뚜렷한 녹색의 관목이 어우러져 화려한 절경을 이뤘던 절벽은 흔적조차 없고 이끼가 떨어져 색깔이 바래 퇴색한 바위만 남아 있다. 그것도 초라하게 느껴졌다면 지나친 기대에 대한 상실감일까 싶다. 그러나 어쩌랴, 흐르는 세월 속의 자연현상이며 변화의 한 조각일 뿐인데. 다만 그 기막힌 절경을 다시는 볼 수 없는 시산회 산우들에 대한 아쉬움은 남는다. 한 장의 사진이라도 남아있으면 좋으련만. 생각해보니 2002년에 가족과 함께 가서 찍은 필름이 집안 한구석에 남아있으니 언젠가는 찾아서 스캔을 하여 CD로 구워 시산회 사진란에 올릴 것을 약속한다. 세상이 좋아졌다. 필름 사진은 한물 간 것으로 생각했는데 필름을 스캔하는 방식으로 티지탈화 하여 CD로 구우니 디지털 카메라 못지않게 화질이 좋다. 다만 아직은 CD값을 포함하여 스캔 값이 거금 4천원이 드나 멀지 않아 그 값도 내려갈 것이다. 완만하게 잘 닦여진 길을 남아있는 길을 따라 올라가면서 절경도 보며 감탄도 했다가 간식도 먹고 사진도 찍어가며 오르니 전혀 힘이 들지 않는다. 들머리를 십이선녀탕으로 잡은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여러 차례 표현했는데 전작 산우가 가장 많이 강조한다.
두문폭포를 지나, 아니 정확한 표현은 두문폭포의 흔적을 지나 활엽수로 우거진 숲을 지나는데 쓰러진 아름드리나무도 많다. 식사할 자리를 정하고 모두 들러 앉아 음식을 꺼낸다. 임삼환표 홍어가 나오고 회장님의 과메기와 도움쇠의 문어를 모으니 새로운 삼합이 된다. 이른바 홍어, 과메기, 문어 삼합이다. 시원한 서울막걸리에 화양강 휴게소에서 보충한 일동 쌀막걸리를 펼치는데 위윤환 산우의 살얼음낀 막걸리가 생각나면서 정겹게 미소 띤 그의 얼굴이 떠오른다. 천주교 신자가 되려고 열심히 교리공부 중이다. 음식은 싸오지 않으나 걸쭉한 입담은 변함없이 싸오는 한양기 산우, 누구보다 오르고 싶었을 신원우 산우, 아버님이 중한 병환 중이서 오지 못 한 기세환 전 회장, 마나님 걱정 때문에 오지 못한 이경식 전 총장, 유치원 일이 바빠서 올 수 없는 남기인 원장, 사적인 일로 오지 못한 임용복 수석, 항상 모시쑥떡으로 우리의 미각을 즐겁게 해주는 정해황 산우, 조용하게 산을 오르는 최근호 산우, 거의 빠짐없이 참석하는 김용우 산우 등 오지 못한 산우들이 이 좋은 곳에서 함께 하지 못함에 아쉬운 마음이 일어난다. 그러나 기회는 가고 오는 것이니 다음에 더 많은 산우들과 오를 것을 기약하자. 푸짐하고 화려한 삼합을 앞에 두고 술 한 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좋은 날씨에 좋은 곳에서 좋은 벗과 좋은 술 한 잔에 마음이 즐거움으로 가득 차 온다. 아깝게 서거한 전임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건배하고 광주 5.18 영령을 위한 추모의 건배. 추모의 마음을 옆에 두고 오랜만에 시원하고 맑은 물소리와 계곡의 서늘한 바람에 흔들리는 잎새소리가 어우러지며 친근한 벗들과 함께 하는 깊은 산속에서의 즐겁고 흥겨운 오찬이다. 밝은 웃음소리와 산행의 수고로움에 대한 덕담이 서로 오고 가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소풍 온 어린애들처럼 마냥 즐겁다. 옥에 티, 미식가인 나 원장이 딸꾹질로 술과 음식을 맛있게 먹지 못함을 모두 자기 일인 냥 걱정한다.
흥겨운 점심식사가 끝나고 오늘의 정상인 안산 갈림길로 출발. 오르는 길에 때늦게 진달래꽃이 피어 있어 기념사진을 빼놓을 수 없는 일. 삼삼오오 짝을 지어 사진을 찍는다. 5월에 진달래꽃과 함께 하는 일도 드문 일인데 철쭉꽃과 진달래꽃이 공존하는 것을 봐도 깊고 깊은 산속임에 틀림없다. 오르는 길의 오른쪽에 나무 사이로 우뚝 솟은 안산이 보인다. 높이가 1,430 미터이다. 도움쇠는 30년 전에 오른 적이 있지만 오르고 싶었을 김 회장님은 시간관계상 포기한다. 산을 잘 아는 지인들이 꼭 오를 것을 권했단다. 김 회장님! 기회가 되면 자네와 나만이라도 한 번 올라보세. 높이가 1,400 미터가 넘으니 다른 곳에 있다면 그 위용이 대단한 산인데 설악에 있으니 평범한 봉우리에 불과하다. 드디어 안산 갈림길. 오늘은 더 오를 곳이 없다. 30년 전에는 나무가 없어 민둥한 곳이어서 주변의 능선과 계곡들을 멀리까지 볼 수 있었는데 이제는 높고 낮은 나무들로 숲을 이루어 조망이 좋지 않다. 지금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부터 나는 설악의 매력에 푹 빠졌다. 김 회장님의 안산에 대한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대승령으로 힘차게 향한다.
능선길을 두어 번 오르고 내리니 대승령이다. 대승령까지 긴 산행이었는데 힘들어 하는 산우가 한 사람도 없는 것을 보면 긴 말이 필요 없이 우리는 건강한 산사람들이다. 아니면 훌륭한 경치와 좋은 벗, 맛있는 음식, 잎새에 이는 시원한 바람, 맑은 계곡물과 힘차게 쏟아지는 폭포소리에 힘든 줄 몰랐을까. 수 년 전 50만원씩의 과태료를 물 용감한 각오로 내려갔던 흑선동계곡의 입구에 국립공원지킴이 한 분이 딱 버티고 앉아있다. 오전 11시에 올라와서 지킨단다. 우리는 기회를 잘 포착해서 그 좋은 절경을 이미 보았으니 행복한 사람들이다. 아름드리나무로 가득 찬 원시림의 기억이 새롭다. 이제는 내려가는 길밖에 없다. 대승폭포까지는 몇 년 전과 다르게 길이 시원하게 뚫렸다. 키 큰 침엽수에서 품어 나오는 피톤치드라는 항균성 방향제의 향기는 언제 맡아도 기분이 상쾌해지는 묘약 같다. 대승폭포에 도착하니 전망대가 훌륭하게 설치되어 있다. 금강산 구룡폭포, 개성 송악산의 박연폭포와 더불어 한국의 3대 폭포다. 금강산을 다녀온 산우는 구룡폭포보다 수량도 많고 높이도 가장 높아 국내 최고의 폭포라고 힘주어 강조한다. 대승폭포를 배경으로 혼자 또는 단체로 기념사진. 멀리 남설악능선의 삼형제봉과 가리봉산을 배경으로 한 컷씩. 오늘의 시 백석의‘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산행기를 쓰기로 한 도움쇠가 읽는데 도움쇠는 시를 읽는 체질이 아니라 시를 고르는 체질인가 보다. 시를 낭송할 때 목소리가 기어 들어간다. 대홍수로 길이 없어지고 하산길은 거의 나무로 만든 계단이다. 전작 산우는 이쪽으로 올랐으면 고생이 많았을 거라며 오늘 십이선녀탕계곡 쪽으로 오른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또 목청을 높인다.
날머리인 장수대로 내려오는 길의 침엽수림도 점차 울울창창해지는 것 같다. 5시 30분 모두 무사히 장수대에 도착. 나 원장의 딸꾹질을 제외하고는 힘들어하는 산우가 없다. 다행이다. 탐방지원센터에 들러 신 이사를 팔아(?) 상냥하고 고운 여직원에게 맛있는 커피를 한 잔씩 마시고 나 원장의 요청에 도움쇠가 용감하게 나서서 설악산 지도까지 여러 장 빌려(?)와서 한 부씩 배포. 여기서부터는 나 원장의 독무대다. 딸꾹질은 여전하고 괴롭지만 깔끔한 성격 때문에 목욕을 하자는데 오색에서 온천을 하기로 하고 한계령을 넘는다. 한계령은 역시 화려한 단풍의 가을이 좋다. 아니 눈 내린 추운 겨울도 좋다. 무성한 푸른 잎으로 가득 찬 무더운 여름도 좋다. 신록의 싱그러운 5월도 나쁘지 않다. 그러고 보니 사시사철 모두 좋다. 하하하.
한계령을 넘는 김에 온천욕을 하고 동해안으로 싱싱한 회를 먹으러 가잔다. 회를 먹으러 동해안으로 가면 늦을 것이라며 조 산우는 한 교장과 박형채 산우에게 내일 교육지도안이 마련되었느냐고 묻는다. 분위기 좋은 만장일치. 오색에서 기분 좋게 탄산이 주성분인 탄산온천욕을 즐겼다. 온천탕에 들어가니 일요일인데도 불구하고 손님이 별로 없다. 내가 3년 전까지 ‘목욕탕집 남자’였던 것을 떠올리며 옛 생각에 젖는다. 온천사업은 목돈 들고 푼돈을 건지는 장사라 할 사업이 아니므로 가까운 지인이 온천사업을 한다면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말린다’는 시쳇말대로 행동하겠다. 유쾌하게 온천욕을 마치고 주문진으로 향한다. 주문진에서 활어를 사서 회를 뜨고 양념집에서 먹을 예정이었으나 조문형 산우와 나 원장은 3년 전에 오대산 노인봉을 오르고 동해안으로 와서 맛나게 먹었던 기사문리의 회집을 떠올리며 그 회집으로 가잔다. 전화를 하니 받지 않아 주문진으로 가는데 기사문리항을 지나면서 핸드폰이 울려 받아보니 횟집아줌마의 급하고 반가운 목소리가 들린다. 차를 돌리고 도착하니 반갑게 맞는다. 아저씨도 여전하다. 우선 방어 한 마리를 잡는데 엄청나게 크다. 자연산 광어도 오르고 쥐치, 도다리 세꼬시도 곁들여서 배불리 맛나게 먹는다. 너무 양이 많아 남은 회는 냉장포장하고 아들이 많은 김 회장님에게 흔쾌히 양보한다. 집에 도착하니 1시반이다. 오늘 하루도 좋은 벗과 좋은 산,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있어 즐거운 하루였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즐긴 하루였다.
회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다음 산행지를 집행부 측에서 알아서 근교산행지를 정하기로 결정했다. 대모산과 구룡산을 오르고 내려와서 양재천과 서울의 숲을 걸은 후 뒤풀이 겸 식사를 하기로 한 집행부의 메일과 문자를 받았다. 이 총장이 식사를 준비하는 것 같다. 설악에 오르지 못한 산우들까지 신록의 계절에 모두 모여 웃고 즐기자. 나는 부득이 불참하고 참석한 산우들이 선택하겠지만 6월의 셋째 주 토요일 산행은 강원도 태백의 태백산 옆의 함백산으로 정한다면 도움쇠가 안내하겠다. 높이는 김 회장님이 K-20에 올린대로 1,573 미터로 남한에서 여섯째로 높은 산이지만 만항재에서 오르면 쉽다. 1시간 반이면 오른다. 정상의 바위가 멋있고 비라도 쏟아진다면 비구름이 중함백을 넘지 못하고 하늘로 솟아오르는 절경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산길에는 멋있는 주목군락을 볼 수 있다.
산행기를 써야 하기에 동반시까지 골랐다. 한국의 시인들이 애송하는 백편의 시 중에 있다.
하마터면 이 시는 세상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유성처럼 사라질 뻔했다. 송수권(68) 시인이 서대문 화성여관 숙소에서 이 작품을 백지에 써서 응모를 했는데, 잡지사 기자가 “원고지를 쓸 줄도 모르는 사람의 원고”라며 휴지통에 버렸다. 당시 편집 주간이었던 이어령 씨가 휴지통에 있던 것을 발견해 1975년 ‘문학사상’ 지면에 시인의 데뷔작으로 발표했다. 이 일화로 ‘휴지통에서 나온 작품’이라는 ‘입소문’을 타 문단에서 화제가 되었고, 발표 이후에는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누이’를 애타게 호명하고 있지만, 이 시는 남동생의 죽음에 바치는 비가(悲歌)였다. “내 한 잔은 마시고 한 잔은 비워두고” 비어 있는 맞은편을 망연히 바라보았을 그 시방(十方)의 비통함은 짐작되고도 남음이 있다. 시인은 무엇보다 죽은 동생의 환생에 대한 강한 희원을 드러낸다. “더러는 물 속에서 튀는 물고기같이” “더러는 잎새에 살아서 튀는 물방울같이” 등의 역동적인 문장은 적극적인 환생을 바라는 시인의 마음을 엿보게 한다. 산문(山門)은 속계(俗界)와 승계(僧界)의 경계이고, 이승과 명부(冥府)가 갈라지는 경계인 바, 산문에 기대어 생사의 유전(流轉)을 목도하는 것은 큰 고통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생사의 감옥에 갇혀 살아도 죽은 사람은 산 사람의 마음속에서 영생을 살아 이처럼 마음을 절절하게 울리는 노래를 낳았다.
송수권 시인은 전통 서정시의 맥을 이어오면서 황토와 대(竹)와 뻘의 정신에 천착해 왔다. 그는 ‘곡즉전(曲卽全·구부러짐으로써 온전할 수 있다)’을 으뜸으로 받든다. “곡선 속에 슬픔이 있고, 추억이 있고, 들숨이 있지요. 시간이 있고, 희망이 있고, 공간이 있습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그의 시는 “고깔 쓴 여승이 서서 염불 외는 것” 같아서 사람의 마음을 ‘애지고 막막’하게 하지만 남도 특유의 가락과 토속어의 사용으로 슬픔과 한을 훌쩍 넘어서는 진경을 보여준다.
(문태준·시인)
산문(山門)에 기대어
송수권
누이야
가을산 그리메에 빠진 눈썹 두어 낱을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정정(淨淨)한 눈물 돌로 눌러 죽이고
그 눈물 끝을 따라 가면
즈믄 밤의 강이 일어서던 것을
그 강물 깊이깊이 가라앉은 고뇌의 말씀들
돌로 살아서 반짝여오던 것을
더러는 물 속에서 튀는 물고기같이
살아오던 것을
그리고 산다화 한 가지 꺾어 스스럼없이
건네이던 것을
누이야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그 눈썹 두어 낱을 기러기가
강물에 부리고 가는 것을
내 한 잔은 마시고 한 잔은 비워두고
더러는 잎새에 살아서 튀는 물방울같이
그렇게 만나는 것을
누이야 아는가
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눈썹 두어 낱이
지금 이 못물 속에 비쳐옴을
2009년 6월 10일 새벽에
詩를 사랑하는 山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도움쇠 김 정 남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