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석모도 해명산-낙가산에 오릅니다(詩山會 제112회 산행)
산 : 해명산-낙가산
코스 : 해명산-낙가산-보문사
소요시간 : 3시간
일시 : 2009년 6월 27일(토) 7시
모이는 곳 : 전철 2,4호선 사당역 4번 출구 남태령 방향으로 40m 가서 도로변
준비물 : 가벼운 간식, 살얼음낀 막걸리, 안주, 과일, 카메라(하산 후 뒤풀이 겸 점심)
연락 : 이재웅 총장(010-3454-7717)
블로그 : 사진 blog.daub.net/sisan20
산행기 blog.daum.net/yc012175
카페 cafe.daum.net/K-20
불빛 노을
이제 쇠처럼 식어가고
황량한 나의 청춘의 일모(日暮)를
어디메 한구석
비가 내리는데
맨드라미마냥 달아오른 입술이
연거퍼 들이키는 서느런 막걸리.
진실로 나의 젊음의 보람이
한잔 막걸리에 다했을 바에
내 또 무엇을
악착하고 회한하고 초조하랴--
무수히 스스로의 이름을 부르며
창연한 노을 속에
내 다시 거리로 나선다.
-‘주점일모(酒店日暮)’-김종길(1926~ )
마신 술잔 꽃 꺾어 세 가며 무진무진 먹자는 이백의 호방한 권주가가 있는가 하면 이처럼 비장한 엘레지, 정갈한 술시도 있다. 천하의 술꾼 천상병 시인도 저녁 어스름은 가난한 시인의 보람이라며 목숨 걸고 마셨다. 동심과 청춘, 순수와 열정 소환하려. 취해 몽롱한 것은 장엄하니 한잔 술에 삶의 보람 다한들 어떠리. 호방하고 비장한 술꾼 사라진 세상 얼마나 삭막하리.
-시평<이경철·문학평론가>
석모로를 간다기에 바로 떠오른 시였다. 왜 저녁 어스름에 해무(海霧) 자욱한 바다로 지는 빨간 해와 노을을 연상했을까? 가을날 저녁 어스름에 보문사에 올라보라. 의문이 풀린다. 대하(큰새우)철이 일러 고소한 밴댕이회 한 접시 앞에 놓고 술 한잔에 취하지 않으면 언제 취하랴. 내가 가지 못함을 한탄한다.
-도봉생각
시산회 제111회 “대모산, 구룡산” 산행기(2009. 06.14, / 신원우)
(참석자) : 20명 ( 기세환, 김용우, 김종화, 남기인, 박형채, 신원우, 염재홍, 위윤환, 이경식, 이승렬, 이원무, 이재웅, 임삼환, 임용복, 전작, 정해왕, 조문영, 최광일, 최영수, 한양기 )
오늘은 제111회 시산회 날이다. 이재웅 총장의 기상 메세지에 눈을 뜨니 여섯시 반이다 상쾌하고 기분 좋은 일요일 아침이다. 여러 차례 빠져서 꼭 참석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차에 어제 밤 이재웅 총장으로부터 산행기를 쓸 차례라고 연락 받고 약간의 부담을 가지기는 하였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집사람이 챙겨준 파프리카 한통에 물 한 병을 딸랑 배낭에 챙겨 넣고 양재 역에서 지하철을 이용 약속 장소인 수서 역으로 향했다. 일요일 이어서 그런지 지하철은 몹시 한산해서 여유롭고 좋았다. 정다운 얼굴들을 모처럼 만나려니 마음이 설렜다.
제111회 시산회 산행은 지금까지 가장 많은 사람이 참석하는 참석인원 측면에서 새로운 기록을 갱신하는 그런 날이라고 한다. 한양기 산우가 오는 중이라 잠간을 담소하며 기다렸다. 때마침 우리가 모인 수서역 주차장에서 마라톤 동호인들이 여럿이 모여 있다가 출발하는 시간이었나 보다. 모르는 사람들임에도 마라톤 출발을 모두 환호하며 잘 뛰라고 응원해 주었다. 정겨운 모습이다. 등산이나 마라톤이나 주말을 이용하여 모두 취미생활을 하는 일은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는데 꼭 필요한 것으로 남다른 부지런함이 요구된다.
가볍게 여기고 들어선 대모산의 들머리는 특히 무게가 좀 나가는 나에게 있어서는 계단도 있고 경사도도 만만치가 않다. 숨이 찬다. 허나 기분은 좋다. 햇빛도 없는 구름 낀 날씨에다 우거진 녹음 때문에 시원하고 상쾌한 출발이다
대모산은 생각했던 것보다 등산하기 좋은 곳이라고 누군가 말하더니 소문대로 산행하기 좋은 산이라 여겨진다. 표고 293m의 대모산(삼각점 메모에는 291.58m)은 산 모습이 늙은 할미와 같다하여 할미산 또는 大姑山이라 불렸으나, 세종때 헌릉을 정한 후 大母山으로 고쳐졌다고 한다. 일원동 넓은 쪽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후 서울 근교 주민들이 휴식 공간으로 주로 찾는 산이며 산이 별로 높지 않고 산세가 나즈막하여 일반인은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강남 사람들에게는 서울 근교의 최고의 휴식공간중 하나로 각광 받고 있다.
서울 강남 일대에서 매일 아침 운동 할 수 있는 곳으로 양재동에서 수서 아파트 단지에 이르기까지 산행 코스가 다양하고 짧게는 30분에서 길게는 3시간까지 다양한 코스를 선택 할 수 있다. 또한 약수를 받기위해 새벽부터 산행을 시작하는 이들로 붐비고 이 지역 시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산이다. 대모산(293m)은 구룡산(306m)과 나란히 접근 코스도 많고 교통 좋은 도심의 근린공원으로 역할을 다하고 있다. 특히 대모산은 강남구 개포동, 수서동, 일원동 사이에 솟은 산으로 높이도 비교적 낮고, 도심에 근접해 있어 명산으로 대접받지 못하나 옛적엔 여러 임금이 찾고 있던 복지명당터로 풍수가들이 예언한 산이다.
조망대에서 보는 서울 강남과 서초·송파의 모습은 웅장했다. 타워팰리스가 역시 크게 보인다. 꽉 들어찬 아파트와 건물·도로, 그리고 사람들의 점 같은 모습들을 보면서 이런 저런 상상의 나래를 편다. 건물 사이사이 끼어있는 녹색 벨트가 아름다움을 더하게 한다. 강남 아파트 값이 비싼 이유는 구룡산, 대모산 같은 앞마당이 있어서 일 것 이라고 누군가 중얼거린다.
능선을 따라 휀스가 쳐져있다. 국정원 보안시설 보호를 위한 것이란다. 그 아래쪽으로는 인헌릉이 위치한다. 인헌릉은 인릉과 헌능을 이르는 것이다. 헌릉(獻陵)은 조선 3대 태종과 그의 비 원경왕후 민씨의 능이며, 이 능을 바라보아 왼쪽에 있는 인릉(仁陵)은 23대 순조와 그의 비 순원왕후 김씨의 능이다. 이 헌릉과 인릉을 합쳐 사람들은 ‘헌인릉’이라고 부르는데, 헌릉은 왕과 왕비의 봉분을 나란히 마련한 쌍봉릉(雙封陵)의 형식이며, 인릉은 왕과 왕비를 하나의 봉분에 합장한 합장릉(合葬陵)이라고 할 수 있다. 태종은 56세로 승하했고, 순조는 11세에 즉위하여 재위 34년에 45세로 승하했으며, 순원왕후는 69세로 승하하였다. 음~, 예나 지금이나 여자가 오래 살기는 오래 사는가보다.
대모산의 입구라고 자처하는 개포동을 모른 체하고 넘어가기가 아쉬워 유래를 살펴본다. 개포동은 예전에 갯벌 지역이어서 ‘갯벌’이라 하던 명칭이 변하여 ‘개패’ 또는 한자명으로 ‘개포(開浦)’"라 하였으며, 지금도 이런 옛 지명이 전해지고 있다. (그냥 우스갯소리로 ‘개도 포기한 동네’-ㅎㅎ - I am sorry-라고 했는데 산행 중 우리와 만났던 중년부부는 개포동에 산다고 하면서 개포동에 사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긍지를 갖고 있는 듯 보여 이 경우는 ‘개도 포니 타는 동네’로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두어 번 쉬어가며 한참을 걷다보니 구룡산 날머리 산길에서 마주오던 위윤환 대장을 만났다. 천주고 신자가 되기 위해 교리공부 때문에 말미에야 합류하게 되었다고 들었다. 참으로 훌륭한 산우다. 암튼 축하의 뜻을 표하고 싶다. 누구나 늘그막에는 종교에 귀의하고 인생의 깊은 맛을 정리하는 귀한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할 줄로 안다. 시간에 쪼들려 텅 빈 가슴으로 방황하는 일을 경계할 일이다.
이재웅 총장은 이 행사를 위해서 사전 답사도 하고 미리 준비를 많이 한 모양이다 참으로 고맙고 존경할 만하다. 손수 앞장서며 안내하는 모습에 모두 감동한다. 당초 계획은 양재천을 따라 시민의 숲으로 이동코자 하였으나 염천 뜨거운 볕 때문에 모두 버스로 이동 양재 시민의 숲에 당도하니 이총장의 마나님과 아드님이 차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다.
시민의 숲 한 가운데 자리를 펴고 둘러앉았다. 막걸리에 위스키, 꼬냑에 부드럽고 쫄깃한 살이 오른 풍성한 문어의 맛은 정말 좋았다. 그것은 축제였다. 한쪽에서는 부지런히 굵은 낙지 살을 썰어대고 한쪽에서는 환한 얼굴로 기분 나게 술잔을 기울이고 시산회 낙지축제, 몸과 마음이 풀어지고, 녹아드는 정이 묻어나는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내 짧은 필력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워서 답답하다. 그것은 예술이었다. 모처럼 많은 산우들이 모인 풍성한 잔치였다. 나원장, 김왕회장, 최근호, 한교장, 구자빈등 자리를 함께하지 못한 산우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모두 한데 손을 모아 시산회! 시산회! 시산회! 파이팅!을 끝으로 오늘 행사의 대단원의 막이 내렸다. 아름답고 정에 넘치는 추억으로 시산회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광고20회 시산회여! 영원하라!!
산문에기대어
송 수 권
누이야
가을 산 그리메에 빠진 눈썹 두어 낱을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정정한 눈물 돌로 눌러 죽이고
그 눈물 끝을 따라가면
즈믄 밤의 강이 일어서던 것을
그 강물 깊이깊이 가라앉은 고뇌의 말씀들
돌로 살아서 반짝여오던 것을
더러는 물 속에서 튀는 물고기같이
살아오던 것을
그리고 산다화 한 가지 꺾어 스스럼없이
건네 이던 것을
누이야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가을 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그 눈썹 두어 낱을 기러기가
강물에 부리고 가는 것을
내 한 잔은 마시고 한 잔은 비워두고
더러는 잎새에 살아서 튀는 물방울같이
그렇게 만나는 것을
누이야 아는가
가을 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눈썹 두어 낱이
지금 이 못물 속에 비춰옴을
오늘의 산행 주제 시이다. 한국의 시인들이 애송하는 백편의 시 중에 있다고 한다.
2009년 6월 14일 신 원 우 씀.
며칠 전에 이재웅 총장의 문자를 받고 메일을 보니 신 이사의 메일이 올라있어 반갑게 읽어보았다. 보기 드문 명문장이 펼쳐져 있다. 이런 명문울 두고 졸문이라고 겸손을 떨면 도움쇠의 졸문은 무엇이 되는가. 성의를 다해 쓴 명문을 잘 쓰고 잘 읽었다. 그러고 보니 시산회원들 모두 명문장가다. 그 명문들을 졸문이라 하니 모두 겸손하다. 산과 시가 우리를 겸손하게 하는 것이다.
20인의 산우가 올랐다니 반갑고 고맙다. 전임 기 회장이 간혹 한 말이 기억난다. 우리의 회원이 딱 좋은 수라고. 그 말이 기 회장의 진심이었는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항상 공감했다. 이 수를 넘으면 함께 오르고 함께 먹고 함께 내려오기가 쉽지 않다는 이유였다. 내 기억에 오대산을 오를 때 김순단 선생, 인사동 해인의 박 사장, 도움쇠의 마나님을 포함한 19인이 올랐는데 나와 한양기 전 총장이 건네준 기록에 없었는지 이재웅 총장이 빠뜨렸다. 김순단 선생은 지금도 정회원이고 마나님과 박 사장은 준회원이었으니 정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다음 산행지는 강화도 외포리에서 도선을 타고 건너는 석모도행이다. 임용복 수석이 마나님을 여의고 마음을 둘 데가 없어 위로 겸 내 차를 몰고 떠났던 기억을 떠올려 본다. 늦가을, 오후, 바닷가 횟집에서 커다란 농어회를 맛있게 먹고 유서 깊은 전등사도 들르고 외포리에서 도선을 타고 도선 꽁무니를 따라오는 갈매기 떼들에게 새우깡을 주면서 바닷가의 추경을 즐겼다. 추수가 끝나 스산하고 한가로운 들녘을 바라보며 억새가 우거진 해안선 일주도로를 달리면서 서로 아호를 지어주기도 하고 보문사 위 눈썹바위에 올라 해무에 싸인 서쪽 수평선으로 떨어지는 붉은 해를 바라보며 그는 한없이 회한에 젖었었다. 마음을 추스르지 못 하고 갈등에 쌓일 때 며칠을 묵으며 올라서 참선을 했다던 바위도 있다. 하여 늦가을의 석양 무렵이 좋으나 여름이지만 마침 밴댕이 철이기에 더 좋다. 도움쇠는 그때의 광경이 오래 기억에 남아 가족과 함께 그 행로를 두 번이나 다녀온 적이 있다. 가을이어서 밴댕이 철이 지났으나 생새우와 밴댕이를 냉장해 둔 횟집이 있어 회무침과 회를 무지 맛나게 먹고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애들과 애처럼 놀았던 즐거움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다. 그 횟집은 바닷가 언덕 위에 있어 탁 트인 경관이 일품이었으며 모래사장이 넓게 펼쳐져 있어 내려가 거닐어도 좋을 것이다. 남도사람이 운영하여 시원한 매운탕도 맛이 좋았다. 그 맛을 잊지 못한 마나님도 간혹 얘기한다. 기회가 오면 또 가보자고. 남기인 원장이 차를 내주고 그 차로 도선을 타고 석모도까지 들어간다니 모두 가자. 내가 일정을 조정하기 어려워 임 수석에게 부탁했더니 노모가 편찮으셔서 광주에 가야한다 하면서도 산우들을 위해 일정을 미루고 기꺼이 인도하겠단다. 자신 있게 권하지만 좋은 기억이 될 것이다. 누구의 제안인지 모르지만 집행부에서 결정했으니 집행부의 탁월한 선택이다. 산행과 탁 트인 경치, 해안 일주 드라이브, 바닷길, 오랜만의 뱃놀이, 훌륭한 먹을거리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일석육조의 즐거운 여행이 될 것이다. 일단 혼자서 먼저 가보고 가족과 함께 그 행로를 따라 다시 가면 더 좋다.
김 회장님에게 이번에는 동반시를 선정과 산행기를 정리해 줄 것을 부탁하였는데 무슨 이유인지 완곡하게 고사해서 다시 권하지 못해 내가 다시 선정과 정리를 한다. 프롤로그 시는 중앙일보의 ‘시가 있는 아침’에서 선택하고 동반시는 한국일보의 ‘시로 여는 아침’에서 선택했다. 마침 강화대교를 지나 강화도로 들어가서 배를 타고 석모도를 가는 여정인데 시의 제목이 무인도라 동반시로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산과 섬, 바다 그리고 사랑을 생각하고 읊으면 좋을 시다. 어렵다고 하지 마라. 시평을 읽으면 눈과 마음에 쏙 들어올 쉬운 시다. 내가 가면 내가 낭송하겠으나 어려우니 회장님이 알아서 할 일이다. 잘 다녀와서 즐거운 산행기를 부탁한다.
시평이다.
이별을 하고 난 뒤 며칠 몸살이 나서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서 일터로 가서 일을 하고 그리고 몇 달 시간이 흐르고 난 뒤, 몇 달 혹은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난 뒤, 이 시를 읽어보시라고 이별을 한 모든 이에게 권하고 싶다.
‘사랑했지만 이별한 사람이 먹다 남은 빵’, 그 빵을 포장할 수 있는 포장용기는 무엇인가? 당연히 노래다. ‘껍질이 벗겨지는 곳에서 강이 태어나’게 하는, 마지막으로 남은 그 무엇들조차 다 포장할 수 있는 것은 노래뿐. 그 포장지에 싸인 내용물이 굳어지는 것을 보면서도,
노래는 노래한다, 짧막한 후렴구와, 말이 될 수 없어서, 우우, 아니면 랄라, 라고 마음만을 실어나르는 순간의 축복. 그 축복 속에 이별을 한 이들은 한없는 무인도에에서 굳어가는 빵을 바라보는 시간. 그러나 즐겁지 않은가, 우리 모두 잃어버릴 것이 있어서 마음 속에 무인도, 하나씩 가지고 있으니.
-시평(허수경. 신인)
무인도/박 주 택
우리가 서로에게 젖다 다시 홀로 스스로의 길로
걸어 돌아갈 때 언뜻 스쳐 지나가는 부드러우면서도
삐걱거리는 외로움을 마음에 새겨두라
그 외로움의 성분에 곰팡이가 끼고 누룩 뜰 때쯤
어느 멀리서는 이기지 못하는 괴로움으로 횃불을 피우고
더 먼 곳에서는 유해들이 배를 깔고 탄식하는 소리로
적막하기 그지없는 밤을 채우기도 하니까
바깥에서, 높은 곳에서, 운명이 비웃으며
우리들에게 약속의 증서를 써주었던 손으로
계약서를 찢어버리고 창문으로부터는 봄에 머물렀던
나뭇가지들이 기어올라온다. 어리석게도
껍질이 벗겨지는 곳에서 강이 태어나고
기념비적인 죽음도 생겨나리라. 서서히 묘역에서는
사랑했지만 이별한 사람이 먹다 남은 빵이 노래에 싸여
굳어지는 것을 본다
2009년 6월 24일 새벽에
詩를 사랑하는 山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도움쇠 김정남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