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산에 오릅니다(詩山會 제113회 산행)
산 : 도봉산 도봉계곡
코스 : 탐방지원센터-도봉계곡-용어천계곡-주봉사거리-관음암-거북바위와 거북샘
소요시간 : 오름 1시간 반 내려옴 1시간 반
일시 : 2009년 7월 12일 9시
모이는 곳 : 전철 1,7호선 도봉산역에서 내리고 7호선 대합실에서 모임(도봉역과 도봉산역 을
혼동 하지 말 것)
준비물 : 살얼음낀 막걸리, 안주, 과일, 카메라(하산 후 뒤풀이 겸 점심)
연락 : 이재웅(010-3454-7717)
블로그 : 사진 blog.daub.net/sisan20
산행기 blog.daum.net/yc012175
카페 cafe.daum.net/K-20
오직
나를 위해서만 살아달라고
나를 잊어선 안 된다고
차마 소리내어
부탁하질 못하겠어요
죽는 날까지
당신을 잊지 않겠다고
내가 먼저 약속하는 일이
더 행복해요
당신을 기억하는
생의 모든 순간이
모두가 다 꽃으로 필 거예요.
물이 되어 흐를 거예요.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해인 '물망초' 전문
줄줄 읽어 내려가는 동안 그만 사랑의 추억에 빠지게 만든다. 나만을 사랑해 달라고 애원하는 대신 나 스스로 당신의 포로가 되겠다는 다짐이 절절하다.
사랑은 추억을 꽃으로 피우고, 물로 흐르게 한다니. 시인은 이상향이 마음속에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마법 같은 시를 쓴 시인은 지금 병마와 싸우는 중이다. 그의 마법에 걸렸던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쾌유를 빌고 있다. 수녀님 당신은 지금 꽃으로 피어나고 계실 겁니다. 힘내세요.
<남궁 덕 문화부장. 언론인>
우리에게 넓고 깊은 사랑을 가르쳐주신 해인 수녀님도 병마와 싸우고 계신다는 말에 이 시를 바로 선택했다. 항상 아름다운 시어로 우리의 가슴을 따뜻하게 감싸주신 수녀님, 툭툭 털고 일어나소서. 그래서 ‘새들도 가는구나’라고 했던 어느 시인의 말이 생각난다. 누구나 오지만 간다. 난 요즘 ‘맘대로 되지 않으니까 인생이다’라는 화두를 들고 매일 살아간다.
시산회 제 112회 “석모도” 산행기 (2009.06.27 / 염재홍)
▣ 산행코스 : 전득이고개-(1.8km)->해명산-(1.9km)->밤개고개-(0.6km)->새가리고개 < 낙가산>-(1.9km)->보문사(주차장)... [산행시간 : 약 3시간 30분]
▣ 참석자 : 14명 ( 김용우, 김종화, 남기인, 박형채, 염재홍, 이경식, 이원무, 이재웅, 임삼환, 임용복, 전 작, 최광일, 최근호, 한양기 )
▣ 오늘의 동반시 : “무인도” / 박주택
2008년 6월27일, 오늘은 우리 시산회에서 서해안의 조그마한 섬(석모도)으로 산행 계획이 된 날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어제 밤에 미리 준비해 둔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섰다. 날씨는 초여름이라 조금 더울 것 같았으나 산행 하기에는 좋은 맑은 날씨이다. 약속된 7시가 조금 못 되어 사당역 4번 출구로 나서니 벌써 많은 산우들이 와 기다리고 있었다.
맨 마지막으로 이경식 산우와 전작 산우가 도착하여 오늘은 당초 17명의 산우들이 참석하기로 되어 있었다는데, 3명(원우, 정남, 영수)의 산우가 급한 일이 생겨 불참이라 14명이다. 대기 중인 노란색 애마에 올라 잠시 일정을 협의하였다.
오늘 산행의 안내는 과거에 석모도에 잠시 있었다는 임용복 산우가 선도하기로 하였다. 산행코스는 전득이고개에서 해명산, 낙가산, 상봉산까지 연계 산행을 하고, 하산 후 보문사 근처의 식당에서 밴뎅이회와 산채비빔밥으로 뒷풀이를 하기로 하였다.
우리들을 안전하게 태워줄 애마는 지금까지 우리와 함께 하였던 노란색 미니버스가 아닌 다솜유치원 마크가 새겨진 25인승 노란 미니버스이다. 7시10분경에 출발하다.
강화도로 가는 길은 모두들 한번쯤은 다녀왔는지? 한마디씩 거든다. 우리를 안전하게 모실 기사님은 네비게이션에다 가야 할 강화도 외포리를 입력하신다. 나 역시 다른 산우들에 비해 많이 와 본 곳이다. 88올림픽도로’로 해서 제방도로로 가면 가장 빠른 길이다. 누군가? 아침을 거르고 왔는지? 오늘은 해황이가 없어서 모시떡을 맛볼 수 없다고 푸념이다. 그러나 우리의 존경하는 이 총장님은 오늘 산행을 위하여 여행자 보험도 들었다고 안심시키니 배는 고파도 마음은 든든하다.
우리를 실은 애마는 어느새 88도로를 지나 제방도로에 들어선다. 이른 아침이지만 부지런한 농민들은 한강변의 넓은 밭에서 파 수확이 한창이다. 한가한 한강 풍경을 바라보며 한눈파는 사이 벌써 제방도로를 지나 고촌으로 들어간다. 안내하는 모니터가 그렇게 안내를 한다니 기계는 믿지 말아야지. 제방도로의 경치를 아쉬워하면서 농수로에서 낚시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이제부터는 김포-강화간 4차선 대로이다.
도중에 조문형 산우와 기세환 전임회장님, 김정남 왕회장님한테서 전화가 왔다는 전갈이다. 모두가 다 잘 다녀오라는 인사말이다. 함께하고 싶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으니 내 몫까지 대신 하루를 재미있게 즐기라는 마음일 게다. 시산회’아니면 그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는 우정이겠는가.
어느새 애마는 갈산사거리를 지나 강화대교에 다다르니 08시 20분이다. 불과 1시간만에 사당역에서 강화도 초입에 도착한 셈이다. 강화인삼센타, 풍물시장, 시외버스터미날을 지나 찬우물약수터 삼거리를 지나니 예전에 왕복 2차선이었던 도로가 어느새 4차선으로 시원하게 뚫려 있다. 그동안 변화된 모습에 세월의 무상함을 느껴본다.
강화도를 관통하여 서쪽으로 내달리니 어느새 멀리 외포리 선착장이 눈에 보인다. 맛있었던 강화포도를 샀던 포도밭도, 그 유명한 서산꽃게집도 다 지나치고 단숨에 달려오니 외포리 선착장이 새로운 도선장을 만들어 도착과 출발을 구분하여 배에 오르내리게 만들어 놓았다.
예전에는 조그만 선착장이 하나 있었는데, 옛날 것은 도착전용 이고, 새로 만든 넓은 선착장은 출발전용으로 구분되어 있다. 배삯은 개인 일인당 왕복 2천원, 25인승 이하의 버스는 2만3천원 이란다
커다란 도선선박에 우리의 애마를 함께 싣고, 말로만 듣던 그 유명한‘갈매기에게 새우깡 주는 모습’을 연출하면서 증명사진도 찍다보니 ‘섬 속의 섬’인 석모도에 도착하였다
난, 몇 년 전 12월31일, 한 해를 보내면서 가족들과 같이 이곳에 여행와서 민박집에서 하룻밤을 자고(그 민박집이 지금도 있었다. -‘금강산 민박집’) 그 다음 날인 1월1일에 섬 일주를 하면서 상여 나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그 이후에도 다른 모임에서 보문사 답사를 한 적도 있다. 또한 난, 강화도에 올 일이 많아(장모님이 한동안 강화도 인화리에서 거주 하였음) 그 때마다 석모도에 들리고 해서 상당히 친숙한 섬이기도 하다.
석모도는 행정구역상으로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삼산면이다 섬 전체가 하나의 면(面)인 것이다. 삼산면이라 하는 것은 산이 3개가 있어서 삼산면(三山面)이라 하였다고 한다. 즉, 해명산(327 m), 낙가산, 상봉산(316 m)이라는 3개의 산이 있는데, 이 산들은 떨어져서 독립된 산이 아니고 능선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면서 높은 봉우리 3개가 각각의 이름을 달리하고 있는 결국 하나의 산이다.
가장 높은 산봉우리를 가지고 있는 해명산은 섬의 동쪽에 있으며, 가장 낮은 낙가산이 중간에 있고 보문사가 이 산에 자리하고 있으며, 섬의 서쪽 방향으로는 상봉산이 위치해 있다.
오늘의 들머리인 전득이고개에 도착(9시25분)하여 종합안내판 앞에서 임용복 산우는 오늘 우리가 가야할 코스와 석모도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준다. 다른 산 들머리에도 산행 안내판이 있어 그 산을 찾는 산객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지만, 큼직한 등산로 종합안내판이 있어서 석모도를 찾는 등산객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것 같았다.
< 석모도 해명산 등산안내도 >
전득이고개를 시작으로 하는 등산코스는 오르락내리락의 연속이다. 능선을 따라 좌우의 바다를 구경하며 걷다보면 상봉산에 곧 다다를 것 같았으나 보통코스가 아닌 것 같았다. 우리는 일단 들머리에서 상봉산을 목표로 출발을 하였으나 시간을 봐 가면서 중간에 보문사로 내려갈 것인지 결정하기로 하고 보문사 6.2 km라는 푯말을 뒤로 하고 오르기 시작하였다.
오늘은 초여름이지만, 무척 더운 날씨이다. 나무가 욱어져 있고 바람이 불지않아 땀이 많이 난다. 첫 번째 봉우리를 오르니 좌우에 희미하지만, 서해 바다가 보이고 조그만 섬들, 염전과 민머루해수욕장이 한 폭의 그림과 같은 전경이 그만이다.
계속하여 몇 개의 봉우리를 오르락내리락하며 밧줄을 붙잡고 바위를 오르니 벌써 얼굴과 등에는 땀으로 범벅이다. 능선 주위엔 소사나무가 많이 서식하고 있었으며, 한 산악회 명찰을 단 산객들이 줄지어 올라왔다. 인천에서 왔다는 여성산객들과 허접한 몇 마디를 주고받으며 쉬엄쉬엄 오르다 보니 드디어 “해명산” 정상에 도착하였다.(10시 50분)
정상의 까만 표지석 옆에는 지적 측량의 기준이라는 지적삼각점이 있었다. 정상에서 단체로 증명사진을 찍으려 하였으나 몇몇 산우들은 앞장서서 먼저 가버리고 할 수 없이 뒤에 처져간 김 회장, 이 총장 등 일부 산우들만 사진을 남겼다. 정상에 올랐으니 시원한 서해바다를 바라보며 정상주를 한 잔씩 하고 싶었으나 정상에는 마땅한 자리가 없어 조금 더 내려가 그늘진 곳에 자리를 잡고서 몸에 좋다는 파프리카 안주에다 조껍데기술과 살얼음 낀 막걸리, 서울 장수막걸리를 한 잔씩 돌렸다.
땀을 흠뻑 빼고서 정상에서 마시는 시원한 막걸리 한 잔! 그 맛을 뭐라 표현해야 좋을지? 아무런 잡념이 없어 언뜻 생각이 나질 않는다. 안해 봤으니 말을 말아야지. 오늘은 강화도의 명물 인삼막걸리 까지 가져왔으니 더욱 더 술 맛이 진하다.
막걸리로 원기 보충을 하였으니 다시 출발이다. 가야만 할 길이 멀어 배낭을 챙겨 메고 앞에 선 산우들의 발 뒷꿈치만 보고 능선을 따라 계속 오르락, 내리락이다. 먼저 앞서 간 산우들이 널찍한 바위에 쉬고 있다. 남은 막걸리마저 비우고 가자고 하나 너무 많이 마시면 뒷풀이가 걱정스럽다고 일부 산우들은 그냥 가잔다.
다시 길을 재촉하여 새가리 고개에 도착,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산행코스를 논의 하였다. 대부분의 산우들이 땀을 많이 흘렸으니 여기서 보문사로 곧장 하산 하자고 의견 통일이다. 상봉산을 저만치 눈앞에 두고 보문사를 향하여 출발하려고 하는데, 누군가가 남아있는 막걸리와 먹거리는 다 먹고 가자고 하나, 이미 몇 명이서 다 마셨으니 남아 있을 턱이 있겠는가? 먼저 앞서 간 산우들이 두 번째의 휴식을 몰랐던 것이다. 산행시마다 입담으로 양기를 돋아주는 한 산우가 한마디 명언을 남긴다. “인생의 성공은 기다림이냐? 조급함이냐? 에서 갈린다”고 한다.
흠뻑적신 땀을 식히며 잠시 내려오니 보문사입구 옆에 한 그루의 커다란 뽕나무에 오디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임 수석을 비롯한 몇몇 산우들은 뒤처져서 손에 빨간 물이 배도록 따 자시고 내려온다.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아 산행을 포기한 남 산우와 우리의 애마가 기다리는 보문사입구 주차장에 도착하니 오후 1시가 조금 지났다.
남기인 원장은 우리들을 기다리는 동안 뒷풀이 할 장소를 부지런히 물색하여 현지 답사 후 가장 좋다고 예약한“돌캐식당”으로 안내를 한다. 오늘 차량 준비에 식당 점검에 아픈 몸을 이끌고 여러 가지로 수고를 아끼지 않으신 남 원장님에게 감사를 표한다. 역시 골라골라 선정한 식당이라 전망도 좋고 시설도 깔끔하다.
바다가 시원히 보이는 야외 식탁에서 신발과 양말까지 벗어 제치고 이곳의 별미인 밴뎅이회무침에 시원한 맥주를 한 잔씩 하고나니 오늘 산행의 모든 피로가 가신다. 함께 나온 산채비빔밥 또한 다들 게눈에 뭐 감추듯 눈 깜작할 사이도 없이 순식간에 먹어 치운다. 역시나 먹산회 산우들 답다. 막걸리가 몇 병 남아 있었지만, 뒷풀이땐 소맥이 우선이다. 보문사에 들러 시주하러(?) 간 전작, 원무 등 몇몇 산우들은 한참 뒤에 뒷풀이에 합류하였다.
뒷풀이를 맛있게 한 후 공지사항으로 년초에 김 회장이 제안하였던 백두산 산행은 참석 희망인원이나 일정(4박5일)상 어려움이 있어 별도로 추진키로 하고, 7~8월의 더운 여름철 산행은 원거리 산행을 자제하고 서울근교 산행을 하기로 협의 하였고, 차기 산행은 의견이 다분 하였으나 결정은 집행부에 일임하기로 하였다.
정상에서 읊어야 할 동반시“무인도(박주택)”는 산행기를 써야 할 내가 있는 폼, 없는 폼 잡아가며 조용히 읊었다. 지난 번 어머님 부음에 대한 산우들의 온정을 진즉 보답 했어야 하였었는데, 기회가 오지 앟아 늦게나마 오늘에야 고마운 마음을 담아 뒷풀이 경비일부를 제공했다. 정상에서 찍었어야 할 단체 증명사진 또한 뒷풀이후 식당 간판을 배경삼아 한 컷 남겼다.
피곤한 몸을 우리의 애마에 맡기고 한 숨 자고나니 강화 풍물시장 앞이다. 잠시 일부 산우들은 시장에 들러 마나님을 위하여 순무김치 등 특산물을 사가지고 온다. 오후 3시반경에 강화도를 출발하여 서울(이수역)에 도착하니 오후 5시가 넘었다. 오늘도 좋은 산우들과 즐거운 산행을 하여 보약을 한 재 먹은 것 같아 기쁘기 한량없다. 항상 건강관리를 잘 하여 다음 산행 땐 더 많은 산우들이 함께 하시길 기원하면서 미출한 산행기를 맺는다. < 2009년 07월 08일 염재홍 씀.>
“무 인 도”
- 박 주 택 -
우리가 서로에게 젖다 다시 홀로 스스로의 길로
걸어 돌아갈 때 언뜻 스쳐 지나가는 부드러우면서도
삐걱거리는 외로움을 마음에 새겨두라
그 외로움의 성분에 곰팡이가 끼고 누룩 뜰 때쯤
어느 멀리서는 이기지 못하는 괴로움으로 횃불을 피우고
더 먼 곳에서는 유해들이 배를 깔고 탄식하는 소리로
적막하기 그지없는 밤을 채우기도 하니까
바깥에서, 높은 곳에서, 운명이 비웃으며
우리들에게 약속의 증서를 써주었던 손으로
계약서를 찢어버리고 창문으로부터는 봄에 머물렀던
나뭇가지들이 기어올라온다. 어리석게도
껍질이 벗겨지는 곳에서 강이 태어나고
기념비적인 죽음도 생겨나리라. 서서히 묘역에서는
사랑했지만 이별한 사람이 먹다 남은 빵이 노래에 싸여
굳어지는 것을 본다
오랜만에 동반시를 선정하고 산행기를 뺀 메일의 초안을 미리 써놓고 기다렸는데 염 산우의 산행기가 올라오자 않아 기다리다 수요일 밤에 도착하고 목요일 새벽에 쓴다. 역시 시산회원들 모두 명문장가다. 나만 여러 번 간 줄 알았는데 염 산우는 강화에 장모님이 계셔서 여러 번 갔구나.
강화 석모도를 따라 가지 못 한 것이 못내 아쉽다. 마침 집행부에서 7,8월은 근교의 계곡으로 가자는 산우들의 의견에 따라 나에게 조언을 요청해 와서 몇 가지 안을 냈지만 근교에서 산행과 계곡을 즐기기에는 도봉산 도봉계곡과 용어천계곡을 따라올 곳은 없다는 것이 내 주장이다. 이경식 산우가 좋아하는 무수골은 같은 도봉산이지만 우리 같은 대인들이 놀기에는 계곡이 짧으며 협소하고 원도봉계곡은 너무 짧고 송추계곡은 완전히 유원지다. 북한산 소귀천계곡은 가을단풍은 좋으나 협소하고 사람이 많으며 정릉계곡은 규모에 비해 사람이 너무 많다. 수락산 뒤쪽의 청학동에서 올라가는 금류동계곡은 접근하기에 교통편이 불편하다는 의견이 나왔고 명지계곡과 용추계곡을 권했으나 너무 멀어 부적합하다는 의견이 나와 도움쇠가 향도를 맡는다는 조건으로 도봉계곡과 용어천계곡으로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는데 부수적으로 관음암, 내바위와 거북바위, 그 밑의 거북샘의 시원한 물맛을 보여주고 싶으나 '먹었으니 내려가자는' 등 먹산회 특유의 빛깔이 섞인 돌발적인 의견이 나오면 그만이다. 2,3일 전에 비가 내려준다면 더없이 좋은 계곡이다. 무더운 날씨라 10분 가고 20분 쉬는 춘향이류 거북이 산행이므로 감안하시고 오시라. 도봉은 나무가 많아 나무 그늘 밑이 서늘하므로 여름산행에 좋고 암릉미는 설악에도 결코 뒤지지 않는 다는 것이 도움쇠의 생각이다. 오죽 좋아했으면 블로그의 ID를 ‘도봉별곡’이라 했겠는가. 무더운 여름날 시원한 막걸리 한 잔에 온갖 근심을 떨치고 오자. 모두 모이자.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뒤풀이를 밖의 식당에서 하지 않고 점심을 싸와서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계곡 옆의 너른 터를 골라 술 한잔에 시름을 덜고 오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내려와서 ‘옛골토성’의 훈제오리가 맛있고 맛깔스런 황태찜을 파는 곳도 있다. 그 집의 누룩내음 물씬 풍기는 동동주 맛이 일품이다.
비가 내리는 목요일 새벽이다. 서울에 비가 많이 오니 도봉계곡에 수량이 풍부해지고 우리의 마음도 풍성해질 게다. 많은 산우가 오면 더 없이 좋을 날이다. 비 오는 날의 계곡산행도 좋을 일이다.
동반시를 한국일보의 ‘시로 여는 아침’에서 따와 게재한다. 동반시나 프롤로그시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나 계속하는 것은 내 마음의 양식을 먼저 찾고자 함이다. 찾기 어려운 만큼 산우들도 읽고 반추해보면 얻을 것이 많을 것이다. 미리 시평을 읽어보면 전체나 행간의 의미를 우리가 모를 수 없다. 우리가 누군가. 이런 시를 누가 어렵다 하는가.
아래의 시평은 시인 허수경이 썼다.
사실 소멸한다는 건 슬픈 일이다. 없어진다는 것은 아프고 막막한 일이다. 누가 아무리 좋은 말과 아름다운 언어로 위로를 해주어도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없어진다는 그 사실. 그런데 이 시를 읽고 있으면 소멸한다는 것도 '수평을 둥글게 껴안고'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게다가 그 순간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꽃수레에서 수만 꽃송이들' 한번 활짝 피었다가 지는 순간. 그 순간이 너무나 아름답기에 거짓 불멸을 꿈꾸지 안고 소멸을 소멸로 인정하는 일은 아프다.
'끝없는 영원'은 '열려다 다시 주저앉는다'고 시인은 우리에게 들려준다. 영원을 믿지 않는 그 순간도 저렇게 황홀할 수가 있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삶이 그나마도 누추하지 않는 건, 소멸의 순간을 저렇게 아름답게 해독해 내는 인간의 눈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 바닷가의 장례/김 명 인
내가 이 물가에서 그대 만났으니
축생을 쌓던 모래 다 허물어 이 시계 밖으로
이제 그대 돌려보낸다
바닷가 황혼녘에 지펴지는 다비식의
장엄함이란, 수평을 둥글게 껴안고 넘어가는
꽃수레에서 수만 꽃송이들이 한번 활짝 피었다 진다
몰래몰래 스며와 하루치의 햇빛으로 가득 차던
경계 이쪽이 수평 저편으로 갑자기 무너져 내릴 때,
채색 세상 이미 뿌옇게 지워져 있거나
끝없는 영원 열려다 다시 주저앉는다
내 사랑, 그때 그대로 한 줌 재로 사함받고
나지막한 연기 높이로만 흩어지는 것이라면
이제, 사라짐의 모든 형용으로 헛된
불멸 가르리라
그대가 나였던가, 바닷가에서는
비로소 노을이 밝혀드는 황홀한 축제 한창이다
2009년 7월 9일
詩를 사랑하는 山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도움쇠 김정남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