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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그리운 우이령(소귀고개)에 오릅니다(詩山會 제114회 산행)

그리운 우이령(소귀고개)에 오릅니다(詩山會 제114회 산행)

산 : 도봉산과 북한산의 경계 우이령

코스 : 우이동-우이령-송추

소요시간 : 오름 1시간 내려옴 1시간

일시 : 2009년 7월 25일 9시 30분

모이는 곳 : 전철 4호선 수유역 1번 출구에서 모여 택시로 이동하는 것이 빠르고 편함

준비물 : 살얼음낀 막걸리, 안주, 과일, 카메라(하산 후 뒤풀이 겸 점심)

연락 : 이재웅(010-3454-7717)

블로그 : 사진 blog.daum.net/sisan20

산행기 blog.daum.net/yc012175

카페 cafe.daum.net/K-20

 

 

 

유리병이 버려진 논물 위로

 

소의 귀 모양을 한 풀잎들이 나와

 

아, 아, 아, 입을 갖다 대며 쭈그리고 앉아 놀던 학교 길

 

손을 묻어 물을 만지면 곰지락거리는 소녀가 느껴졌다

 

 

막 뜯은 편지 봉투처럼 가난한 마음을 들고

 

나이 많은 남자를 만나 배배 꼬인 연애를 하러 가던

 

누나는 중학교밖에 못 마치고

 

쇠귀나물 뽑힌 논에서 모를 심었다

 

쇠대나물 쇠태나물 쇠택나물 수사 곡사 급사 택사 물택사

 

버려지면 이름도 아무렇게나 불린다

 

물집 잡힌 하얀 꽃잎 우리 누나

 

중퇴한 교실 창 안에 대고 친구들에게 뭐라고 했나

 

쇠귀에 뭐라고 했나

 

소리치고 밀쳐도 남자는 꿈쩍을 않고

 

세상에 골똘해야 하는 일을 쇠귀에게 속삭이는 일로 알았던

 

유리병 안에 들어간 나비가 팔랑거린다

 

쇠귀나물 잎 떨어진 자리가 구드러지고 있다

 

-쇠귀나물(황학주. 전문)

 

 

시인이 '버려지면 이름도 아무렇게나 불린다'라고 말할 때 나는 마음이 아프다. 시인이 논 언저리에 앉아 논물에 버려진 유리병을 바라보며 굴곡 깊은 누이의 생애를 추억하는 모습이 떠오를 때 나는 마음이 아프다.

 

어떤 가족사에도 다른 식구의 등을 할퀴고 가버린 누군가가 있기 마련이다. 그 누군가를 생각하는 일은 사실은 이 드난한 세상을 비비며 살아가는 내 생애를 반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쇠귀나물의 다른 이름들을 불러보면서 어떤 식구의 드난했던 생애를 반추할 때,

 

문득 나의 생애도 시인이 불러보는 쇠귀나물의 다른 이름이 되어있는 것이다. 잎이 소의 귀를 닮았다고 해서 쇠귀나물이라고 불리우는 이 풀이 하얀 꽃을 피울 때 그리고 그 꽃잎이 논물에 버려진 유리병 안으로 들어가 나비가 될 때 누추한 우리의 생애도 유리병 속에서 팔랑거리는 것이리라.

 

-시평(허수경. 시인)

 

마침 오르는 곳도 우이령(소귀고개)이고 프롤로그 시도 쇠귀나물이다. 우리가 차를 타고 광주로 올라갈 때 신작로로 나가야 했다. 그때 넘던 고개길 같은 우이령이다. 그 시절 우리의 누이들은 우리 아들들을 위해 진학을 포기해야 했던 서럽고 어려웠던 기억이 있다. 이제는 늙어버린 누이도 생각나고 그 길도 생각나서 이 시를 읊어본다. 누이야, 건강하게 오래 살아라. 이제 손잡고 정겹게 살자.

-도봉생각

 

 

시산회 113회 “도봉산”산행기 ( 2009.07.12, 집중호우 / 나창수 )

 

▣ 참가자 : 11명 (기세환, 김정남, 김종화, 나창수, 이경식, 이원무, 이재웅, 임삼환, 전 작, 최광일, 한천옥)

 

▣ 동반시 : 다시 바닷가의 장례 / 김명인

 

▣ 뒷풀이 : 훈제 오리고기에 쏘,맥주 / “옛골토성”

 

 

시산회 창립 이래 집중호우로 산행을 못한 일이 발생하였다. 이 총장님께선 산행도 하지 않고 나에게 산행기를 쓰라고 하니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허나 집행부의 엄명이니 군기반장인 내가 쓰지 않을 수가 없지 않는가? 하여 마음으로 느끼는 ‘심산일기’로 대신할까 한다.

토요일 저녁, 일기예보를 보니 중부지방에 장마전선이 점차 발달하여 내일 일요일 새벽부터 집중호우로 많은 자연재해가 예상되니 각별히 주의하라고 강조한다. 모처럼 참석하는 나 이기에 산행계획이 취소되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앞선다.

 

최근에 중년층의 TV.인기드라마‘찬란한 유산’을 시청하면서 잠이 들었다. 새벽녘에 아주 세찬 빗소리에 잠시 잠에서 깨어 창문을 열고 밖을 보니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오늘 산행은 힘들겠구나’하고 다시 새벽잠을 청하고 일어나니 이 총장의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집중호우로 집결 시각이 당초 9시에서 11시로 변경되었고, 만나서도 폭우가 지속되면 도봉산 산신령님께 인사하고 쐬주파티를 한다는 전갈이다.

 

만나는 시간이 넉넉하여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마나님께 대방역까지만 태워달라고 부탁하고, 9시30분에 집을 나섰다. 억수 같은 빗방울이 자동차 앞유리창에 떨어진다. 시야가 흐려 마나님께 조심운전을 당부하고 한강변을 따라 가는데, 마나님께선 오늘 산행이 불가할 것 같으니 집으로 돌아가자고 권한다.

 

한 달 반 동안 산행에 동참하지 못해서‘오늘 산행약속을 못 지키면 시산회에서 퇴출당할지도 모른다’고 엄살을 피웠다(믿거나 말거나...). 비는 계속 내리고 있는데, 대방역사에서 배낭을 메고 빠져나오는 등산객들이 몇몇 보인다. 우리같이 산행을 좋아하는 산객들인가 보다.

 

소요산행 전철을 환승하고 도봉산역에 도착하기까지 약 1시간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법정스님의 법문집‘일기일회’를 읽었다. 법정스님의 강론 중 욕망과 욕심이 우리들의 영혼을 빠져 나올 수 없는 그물 속에 가두어 버린다는 무소유의 말씀이 마음에 와 닿는다. 책을 읽다보니 잠간 사이에 집결지인 도봉산역에 도착하였다.

 

산우들과 만나기로 되어있는 7호선 대합실에는 제일 먼저 우리 시산회 회원을 위해 항상 열성적으로 봉사하는 이 총장님의 모습이 눈에 띈다. 산우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오늘 일정을 물으니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집중호우 때문에 산행을 금지한다고 한다.

 

집결시간인 11시가 다 되어 맨 마지막으로 정장차림을 한 임삼환 산우가 커다란 우산을 들고 영국신사처럼 등장하였다, 산행보다 산우들이 보고 싶었나 보다. 오늘 참석한 산우들은 11명이다.

 

순진한 나와 기 전임회장, 이 총장 등 3명만이 배낭을 메고 오고, 나머지 산우들은 가벼운 간소복차림으로 산행은 아예 생각지도 않고, 비가오니 빈대떡에 막걸리나 마시려 온 모습들이다.

 

모두 집결하였으므로 오늘 일정을 협의하였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도 산행을 금지하고 있고, 계속 내리는 비 때문에 도저히 산행은 할 수가 없으니 어디 찜질방을 찾아 허리나 찜질하자고 말하였더니 누군가가 산행에는 3단계가 있다고 말한다

 

첫 번째 단계는 초보자들이 힘들게 하는‘走山’이고, 두 번째 단계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여유롭게 즐기는‘見山’이요, 세 번째 단계는 거의 해탈한 경지로 마음으로 느끼는‘心山’이라 하는데, 오늘은 그‘心山’을 하자고 제안을 하니 모두들 동의를 한다. 하기야 우린 심산의 경지에 도달한 산우들이 아닌가!

 

비는 계속해서 줄기차게 내린다. 일부 산우들은 점심시간이 너무 빠르니 사우나를 먼저하고 식사를 하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도봉별곡’왕 회장님의 의견에 따라 잘 아는‘옛골토성’에서 훈제오리 안주에 쐬주를 하기로 정하고, 역사를 빠져나와 옛골토성에 도착하였다. 항상 부쩍 데던 들머리 입구의 주변 음식점들도 오늘은 비오는 날이라 한가하기만 하다.

 

야외에 포장천으로 만든 막사 밑의 나무탁자에 자리를 잡고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이미 예고하였듯이 이 총장님의 마나님께서 독일에서 특별히 가지고 온‘존펠더’포도주의 달콤한 맛을 음미하면서 한 잔씩 돌리니 그런대로 운치가 있어서 좋았다.

이어서 푸짐한 훈제오리와 소,맥주가 나오니 먹산회(별칭)답게 잘들 자신다. 시산회 회원 중 대부분의 산우들이 복부비만증이 없는 것을 보면 등산이 건강에는 제일 좋은 운동인 것만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오늘 점심 겸 뒤풀이는 기 전회장님께서 부모님 부음 시 회원들의 조의에 대한 감사함을 표하였다.(감사히 잘 먹었나이다.)

 

오늘의 동반시 김명인의‘다시 바닷가의 장례’는 김 회장님이 빗소리에 음률을 맞춰가면서 낭랑한 목소리로 읊었다. ‘끝없는 영원’은‘열려다 다시 주저앉는다’고 시인은 우리에게 들려준다. 영원을 믿지 않는 그 순간도 저렇게 황홀할 수가 있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삶이 그나마도 누추하지 않는 건, 소멸의 순간을 저렇게 아름답게 해득해 내는 인간의 눈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허수경 시인의 시평의 일부분...)

 

 

“다시 바닷가의 장례” / 김명인

 

 

내가 이 물가에서 그대 만났으니

축생을 쌓던 모래 다 허물어 이 시계 밖으로

이제 그대 돌려보낸다

 

바닷가 황혼녘에 지펴지는 다비식의

장엄함이란, 수평을 둥글게 껴안고 넘어가는

꽃수레에서 수만 꽃송이들이 한번 활짝 피었다 진다

 

몰래몰래 스며와 하루치의 햇빛으로 가득 차던

경계 이쪽이 수평 저편으로 갑자기 무너져 내릴 때,

 

채색 세상 이미 뿌옇게 지워져 있거나

끝없는 영원 열려다 다시 주저앉는다

 

내 사랑, 그때 그대로 한 줌 재로 사함받고

나지막한 연기 높이로만 흩어지는 것이라면

이제, 사라짐의 모든 형용으로 헛된

불멸 가르리라

 

그대가 나였던가, 바닷가에서는

비로소 노을이 밝혀드는 황홀한 축제 한창이다

 

 

다음 산행은 이경식 산우가 제안, 41년 만에 해제된‘우이령고개’로 정하였다. 장대같은 비가 줄기차게 계속 내리니 김 회장님은 잠시 가까운 곳에서 노래라도 한곡 하고 가자고 한다. 콘테이너 박스내에 설치된 노래방에서 오랜만에 목청껏 스트레스를 풀고 나니 먹은 음식이 소화도 되고, 술도 깨고 비도 그쳐 오늘 심산(心山) 일정을 모두 마무리 하였다. ‘심산’의 단계에 오른 시산회원들아! 오늘 반갑고 즐거웠다. 앞으로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몰아쳐도 모두 모이자. 하여 많이 남은 생을 아름답고 즐겁게 살자. 앞으로 90세까지는 쉽게 산단다.

 

2009년 7월 21일 나창수 씀.

 

 

시산회 창설 이후 집중호우로 인하여 처음으로 계획대로 산행을 못하였다. 진료 차 바쁘신데도 불구하고‘心山’일기를 써서 보내주신 나 원장님께 감사드린다. 아마도 군기반장 직함을 내 놓기가 싫은 모양이다. 이 총장님이 얼마나 으름장을 놓았으면 산행도 하지 않은 심산기를 써서 보냈으니 말일세...

 

일부 내용과 체제만 편집하여 그대로 올린다. 내가 아는 지인들이 우리 시산회를 평하기를 우리나라 산악회 모임 중 가장 모범적이고 건실한 산악인들이라고 말한다. 그저 단순히 산행을 하고 사진을 찍어서 카페에 올리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다. 하지만, 한 번도 빠짐없이 동반시를 가져가서 읊고,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지속적으로 산행후기를 남기는 산악회는 찾아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산우들이 산행기 작성에 대한 부담은 있을 것이다. 즐거워야만 할 산행이 산행기 작성의 부담 때문에 괴로운 산행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년 초에 제가 언급했듯이 이 총장님은 산우들에게 절대로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 산우들 모두가 스스로 협조하는 마음에서 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회원들 모두가 다 글 쓰는 소질이 있고 자질이 풍부하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다음 산행은‘우이령고개’산행이다. 지금은 목사가 된 무장공비 김신조 씨 등 북한 무장공비 31명이 1968년 1월21일 이 고개를 거쳐 서울로 들어온 직후부터 폐쇄 하였다.

 

7월10일부터 7월26일 까지는 그 까다롭고 귀찮은 인터넷 예약 없이 이용이 가능하다고 하기에 급히 일정을 잡았으니 가능한 많은 산우들이 함께 하시길 바란다.

 

< 을왕리에서 김 종 화 배.>

 

 

 

 

나 원장은 자신의 글 솜씨가 형편이 없다고 엄살을 부렸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나더러 정정과 가필을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겸손을 부리고 있음을 산우들이 모두 안다. 겸손이 지나치면 오만이 된다. 무릇 글에는 글을 쓴 사람의 인격과 품위가 깃들어 있음을 우리 모두가 모르지 않는다. ‘心山’이라는 격조가 높은 단어를 대입하여 멋지게 산 없는 산행기를 써내는 그는 독서를 풍요롭게 하며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내는 능력이 탁월한 사람이다. 나는 그를 지척에서 끊임없이 40년을 봐온 친구이기에 누구보다 잘 안다. 그의 순수함은 그의 눈을 보면 알게 되므로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품격이 높게 나타나 보이는 글이다.

 

글을 쓰는 것은 자기의 마음을 남에게 비치는 것이라 하여도 자신의 마음이 맑고 풍요로우면 글도 자연스럽게 똑같이 맑고 풍요롭게 쓰여 진다. 하여 마음이 맑고 풍요로운 시산회원들은 글을 쓴 결과에 두려움이나 부끄러움을 가질 필요가 없다. 산행기가 지식을 필요로 하는 글도 아니고 산행의 많은 경험을 필요로 하는 글도 아니기에 다른 회원들의 글 솜씨와 비교할 이유가 없다. 우리의 지식이나 산행의 경험이 결코 남보다 뒤떨어지지 않는다. 글을 잘 쓰면 글로 밥을 먹고 살게 되나 그 직업이라고 좋기만 한 것이 아님을 알지 않는가! 나도 혼자서 산행기를 쓸 때 낮에는 시끄럽고 바쁜 건설업을 하는 입장이라 남들이 잠든 3일의 새벽을 지새워 초안을 잡고 5일의 정정과 가필을 하고서야 수요일 아침에 회원들에게 메일을 보내곤 했다. 보내고 나서도 항상 부족한 것을 느끼고 아쉽고 부끄러웠다. 그러한 압박감에서 빠져 나오려고 이경식 산우에게 거금을 들여 ‘한국 400 산행기’와 ‘4주간의 국어여행’을 사서 억지로 맡기고 산행기를 부탁한 적이 있다. 내가 언제 글을 써봤겠는가. 쉬운 작업이 아니었지만 참으로 좋은 모임의 발기인 중 한 사람으로 오래 지속해도 좋을 모임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열의에 성의를 보태서 거의 빠지지 않고 부지런히 썼다.

 

간혹 글 솜씨를 칭찬해주는 외부의 지인이 있었지만 솜씨를 칭찬해준 것이 아니라 열의와 성의를 칭찬해준 것이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결론이다. 쓰다 보면 는다. 돌아가면서 산행기를 쓰는 관행도 없어질 것이 아니기에 책을 읽는다는 기분으로 부담 없이 써보자. 1년에 한 번꼴도 되지 않는다.

 

 

다음 산행지를 우이령으로 정했을 때 내 머리 속에는 30년 전의 일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연구소 시절 ‘자연보호’라는 명분으로 그 근처를 간 적이 두 번 있다. 우리들은 군부대를 어렵지 않게 통과할 수 있으므로 당시 ‘홍릉 알파인 클럽’의 회장으로 산꾼이었던 행정관리부 차장이 여러 번 ‘자연보호지’로 그곳을 선택해서 쓰레기를 줍는다는 핑계로 놀다 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나무가 많이 우거진 곳이 아니었다. 정상 부근의 약간만 빗물에 씻겨 내리지 말라고 포장되어 있었고 나머지 길은 비포장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는 북한산이나 도봉산이나 나무가 많이 우거진 산이 아니었다. 30년 전 십이선녀탕계곡의 정상인 안산 삼거리에서 설악의 전경이 거의 다 보일 정도로 그때 우리의 산하에 나무가 별로 없었다. 얼마 전에 갔다 왔지만 이제 안산 삼거리는 나무가 우거져 안산조차도 볼 수 없었다. 산하가 많이 변했다. 하여 41년 만에 개통되었다 하니 산행기 메일의 제목을 ‘그리운 우이령’으로 붙여 본다. 이번이 좋은 기회다.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는 것이 쉽겠는가. 신청자가 많아 10초도 되지 않아 다운이 될 것이라는 예상을 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모두 가보자. 많은 것이 생각날 것이다. 송추로 넘어가면 나 원장이 자신 있게 권하는 자장면집이 있다. 자장면 한 그릇에 독한 배갈 한 잔, 캬--- 좋다. 더위가 싹 가실 게다.

 

 

 

 

이 형 기

 

적막강산에 비 내린다.

늙은 바람기

먼 산 변두리를 슬며시 돌아서

저문 창가에 머물 때

저버린 일상

으슥한 평면에

가늘고 차운 것이 비처럼 내린다.

나직한 구름자리

타지 않는 日暮......

텅 빈 내 꿈의 뒤란에

시든 잡초 적시며 비는 내린다.

지금은 누구나

가진 것 하나하나 내놓아야 할 때

풍경은 정좌하고

산은 멀리 물러앉아 우는데

나를 에워싼 적막강산

그저 이렇게 빗속에서 저문다.

살고 싶어라.

사람 그리운 정에 못 이겨

차라리 사람 없는 곳에 살아서

청명과 불안

기대와 허무

천지에 자욱한 가랑비 내리니

아 이 적막강산에 살고 싶어라.

 

 

위의 시를 미리 선정해놓고 생소하지 않아 동반시의 색인을 찾아보니 없다. 회심의 미소를 짓고 느긋하게 나 원장의 산행기를 기다렸는데 나 원장의 산행기를 받고 마무리를 하려다 아무래도 이상해서 다시 검색해보니 분당의 영장산에서 읊은 시다. 이제는 내가 바빠졌다. 급히 시의 바다를 헤매다가 건진 시다. 본인의 시작노트도 있다. 사랑시다. ‘사랑이 식으면 내 마음도 슬퍼라’는 시 같은 노래가 있다. 아니다. ‘사랑이 식으면 인생도 식는다’는 게 나의 꾸준하고 고집스런 지론이다. 나이 먹고 늙어도 사랑의 끈을 놓지 않아야 오래 산다. 그것도 건강하게 오래 산다.

 

 

시인의 시작노트---사랑에 관해 말할 때 우리는 왜 애도의 방식을 취하는 걸까. 이미 지나간 것이 아닌, 사랑 안에 있을 때조차도 사랑의 기미로 가득한 걸까. 그리하여 이미 지난 뒤에야 발설해보는 단 하나의 이름. 네가 나를 부르는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부르던 너의 이름과 한 짝이었을까. 이름 붙일 수 없는 그 모든 것들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사라져가는 걸까. 은밀한 암호처럼 부드럽게 낙인을 찍듯 어떤 이름 하나 불러보는 일은 대상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 그럼에도 의심 없는 이름 하나를 붙여주려는 안간힘은 또 얼마나 아득하게 아름다운가. 얼마나 아름답고 슬픈가.

 

 

단 하나의 이름 / 이제니

 

얼어붙은 종이 위에서 나는 기다린다

얼음의 결정으로 떠오르는 기억의 물처럼

발설하지 않은 이름을 대신할 풍경이 몰려올 때까지

 

월요일에 나는 잃어버린 사람이 되었지

아니 화요일 아니 수요일 아니 목요일 아니 금요일

이미 잃었는데도 다시 잃고야 마는 요일의 순서들처럼

수면양말에 담긴 너의 두 발은 틀린 낱말만 골라 디뎠지

 

이곳은 너무 어둡고 너무 환하고 텅 빈 채로 가득 차 있다

이 흰색을 이 검은색을 고아라고 부를 수도 있을까

 

사랑하는 나의 고아에게

오늘의 심장은 어제의 심장이 아니란다

건초더미라는 말은 녹색의 풀이 한 계절을 지나왔다는 말

세계의 끝으로 밀려난 먼지들의 춤도 이와 마찬가지

소리가 되기 위해 모음이 필요한 자음들처럼 이제 그만 울어도 좋단다

 

말없는 자매들처럼 돌아누워 나누는 애도의 목례

검은 종이 위에 검은 잉크는 이름 하나를 흘려 쓴다

 

아득히 맴도는 이름: 너를 부를 때마다 고통을 느낀다

흑연의 어조로 천천히 닳아가는 이름: 우리는 함께 혼자였다

입 속에서만 부풀려온 단 하나의 이름: 우리는 우리라는 이름을 아껴야만 했다

 

언제나 나는 도착하고 싶었다

도착한 순간조차도 도착하고 싶었다

 

이대로 얼마나 오래 태양을 바라볼 수 있을까

고개를 돌리면 작고 둥근 흑점으로 번져가는 얼굴

나란히 누워 눈멀던 날들의 빛은 어디로 사라졌나

 

세계의 끝은 얼음으로 뒤덮여 있다

녹고 스미는 것들이 두 눈 가득 차오른다

나는 이상하게 푸르스름하게 살아 있다

 

2009년 7월 22일

詩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도움쇠 김정남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