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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도봉산과 용어천계곡(詩山會 제115회 산행)

도봉산과 용어천계곡(詩山會 제115회 산행)

산 : 도봉산(용어천계곡)

코스 : 도봉탐방지원센터 - 도봉계곡 - 용어천계곡 - 주봉사거리 - 관음암 - 거북바위, 거북샘

소요시간 : 3시간(오름 1시간 30분, 내려옴 1시간 30분)

모임일시 : 2009년 8월 9일(일) 10시

모이는 곳 : 도봉산역(7호선) 대합실

준비물 : 물, 간식, 막걸리와 안주, 사진기 등 (점심은 하산 후 뒤풀이 겸함)

연락책 : 이재웅(010-3454-7717)

블로그(사진) : blog.daum.net/sisan20

산행기(안내) : blog.daum.net/yc012175

카페(산행기,동반시,사진 등) : cafe.daum.net/K-20

 

 

 

 

길을 가다가 문득

되돌아보니

 

또렷이 남긴 모래 위 발자국들이

파도에 씻기고 있다.

 

지난 초여름 어느 계곡에서 만난

아리따운 풀꽃이거나

 

아직도 손을 꼭 잡고 놓지 않는

고향 친구의 우정이거나

 

언제나 눈을 껌뻑이며 등을 또닥이는

이웃이나

 

함께 동행 하는 것이 아니라

주마등같이 스쳐가고 있다.

 

- 정순영 '인생 · 1' 전문 -

 

 

인생은 참으로 아련하다. 눈에 박힐듯한 선명한 기억도 그저 바닷가 모래위 발자국이 파도에 씻겨나가듯이 일순간 사라지기 때문이다. 도대체 우리는 살아온 인생의 몇 퍼센트를 기억이란 창고에 보관하고 있는 걸까.

 

우리는 모래알보다 작은 기억의 편린을 부둥켜앉고, 그걸 인생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풀꽃도, 우정도, 이웃도 알고보면 모두 스쳐지나갈 뿐이라는 대목이 마음에 와 닿는다.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返) 생자필멸(生者必滅)로 윤회하는 게 삶이라는 생각에서다.(남궁 덕의 평)

 

 

詩山會 제114회 “우이령고개” 산행기 (2009. 07.25. 맑음 / 최근호)

 

▣ 참석자 : 11명 ( 김용우, 김종화, 박형채, 염재홍 이원무, 이재웅, 전 작, 정해황,

조문형,최근호, 한양기 )

 

▣ 동반시 : “단 하나의 이름” / 이제니

 

▣ 뒷풀이 : 수육, 팥 칼국수 /“오우가”(고양시 덕양구 효자동)

 

 

금번 산행코스인 ‘우이령고개’는 1968년 1월 21일, 북한공작원 31명이 이 고개를 통해서 청와대로 침투하는 이동 경로로서 그동안 41년간 일반인의 통행이 제한 되었던 곳이다.

 

군 시절, 이곳 주위에서 어려운 여건 속에서 벙커공사를 한 추억이 깃든 곳이기에 평소에 가 보고 싶었던 장소이기도 하다. 시산회에서 계획된 등산 중 다른 등산은 개인 사정으로 종종 불참하기도 하였으나 이번만은 놓치지 않겠다는 큰 기대를 건 산행이었다.

 

전날 밤, 내일 산행에 잔뜩 기대를 걸고 일기예보를 보니 한때 흐림으로 비는 오지 않는다 하였는데, 갑자기 빗방울이 후두둑하고 떨어져 ‘일시적이겠지’ 하고 생각 했지만, 밤새 비가 내려 내일 산행에 차질이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였으나 아침에 일어나니 맑은 햇살이 내마음을 밝게하여 주웠다.

 

오늘 산행의 집결장소는 수유역(1번출구)으로 9시30분 까지이다. 대부분의 산우들이 약속시간 전에 도착하여 ‘매 회를 거듭할수록 점차 시간관념이 철저해 지는구나’ 하는 신뢰감이 들었다. 하지만, 오늘 산행코스를 추천한 이경식 산우가 약속시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를 않아 몇 번이고 회장님과 총장님이 연락을 하였건만 전화가 불통이란다. 혹시나 싶어서 약 20여분 동안을 더 기다려주는 배려를 베풀었다. 뒤에 안 일이지만, 산행일이 내일(일요일)인줄 잘못 알고 느긋하게 늦잠을 주무셨다고 한다. 함께하지 못한 본인의 심정이야 오죽했으랴... 치매증상이 벌써 왔나?보다. 하지만, 산우들 모두가 충분히 이해를 할 수가 있었다.

 

수유역에서 이 산우를 기다리는 동안 한양기 산우는 우리 시산회 회원들은 배 나온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하여 모두들 한바탕 웃었으나, 내 자신이 스스로 느끼기에도 다들 보기가 좋고 활기찬 모습이어서 이렇게 좋은 등산 모임이 있을까? 하는 자부심과 긍지을 가져본다.

모두가 다 그동안의 회장님과 총장님의 주도면밀한 계획과 회원들의 협조로 이렇게 잘 유지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 노고를 아끼지 않는 집행부에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들머리인 그린파크호텔 근처까진 택시로 이동하여 잠시 입구에 세워져 있는 안내판을 살펴 보았다. 우이령 길은 우이동 쪽에서 고개마루까지 올라가는데 1.5Km이고, 송추 방향으로는 내리막길로서 3Km이다. 총 거리 4.5Km의 등산코스 라기보다는 산보(트래킹)코스라 하는게 맞을 것 같았다. 코스가 완만하며 잘 닦아놓은 소로를 걷는 기분이다. 오늘따라 주말이라 산객들이 초만원이다. 또다른 이유인즉, 7월26일(일)까지는 예약없이 이용이 가능하나, 7월27일부터는 인터넷으로 예약을 해야만 산행이 가능하며, 인원(우이동쪽 390명, 송추쪽 390명, 계 780명, 1인당 4명까지 예약가능)도 제한되어 있기에 인터넷으로 예약 후 산행을 하기보다는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함이 아닌가? 하고 생각되어 진다.

 

쾌청한 날씨에 상큼한 공기를 마시며 활기찬 발걸음으로 우이령 고개마루에 도착하니 도로 양 옆에 대전차장애물이 눈에 띈다. 이러한 대전차장애물은 군 공병장교 시절, 직접 제작해 설치도 했고, 비상시를 대비해 모의 폭파훈련도 해서 감회가 새롭다.

 

우이령고개를 넘어 송추 쪽으로 200여m를 내려오니 넓은 공간의 쉼터가 있었다. 화장실도 설치되어 있었고, 이 곳에는 벌써 많은 산객들이 자리를 잡고 간식을 먹거나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우리도 자리를 잡고 준비해 온 간식에 막걸리를 한 잔씩 걸치니 짧은 코스이지만, 걸어오면서 흘린 땀과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것만 같다.

 

특히 오래간만에 참석한 정해황 산우가 준비해 온 고소한 콩가루에 찍어 먹는 모싯잎떡은 별미로서 옛 추억을 느끼게 해 주었고, 다소나마 허기를 가시게 하였다. 먹는데 정신이 팔리다보니 산행시마다 항상 뒤처져서 오는 이 총장이 보이질 않는다. 많은 산행인파 속에 어여쁜 아짐씨 궁둥이에 매료되어 뒤따라 간 건지? 우리 일행을 못 보고 벌써 송추방향으로 한참을 내려 갔었단다. 누군가가 김 왕회장님이 계셨으면 한 소리 들을뻔 했다고 하면서, 천만다행이라고 한다.

 

조문형 산우가 요즈음 하시는 일이 불경기라 새로운 일자리를 찾았다 한다. 충남 서천땅 부사방조제가 보이는 춘장대해수욕장 근처에서 돈(豚) 약 1개사단을 거느리는 관리인이 되셨다고? 부디 잘 관리하시어 금년이 가기 전 가실녁에는 돈바베큐를 맛 볼 수 있는 기회가 있길 기대해 본다.

원기를 보충하면서 한참을 떠들다가 송추쪽으로 하산하니 ‘오봉’이 한 눈에 들어오는 전망대가있어서 절경을 담아갈 양으로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우리들도 여기서 활기차고 생동감 넘치는 산우들의 기념사진을 한 컷 남겼다.

 

다시 계속 내려오니 넓은 유격장의 연병장이 있었고, 여기에서 ‘오봉’ 기슭에 자리잡은 석굴암도 올라갈 수 있는 코스가 있었다. 당초에는 석굴암까지 가는 안도 협의 하였으나 대다수가 곧장 내려가기를 원하여 희망자에게만 별도로 시간이 주어졌다.‘유격’이라고 새겨진 큼직막한 표시돌에서 단체로 기념사진을 한 장 남겼다.

 

유격 연병장은 유격 장애물통과 훈련을 받기 전에 PT체조 등을 통하여 체력을 단련하는 예비훈련을 하는 곳이다. 군에 다녀온 산우라면 힘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리라 생각된다. 나 또한 군시절, 한탄강 유격장의 교관이 불의의 사고로 공석이 되어 갑자기 차출되어 졸지에 유격장 교관을 하게 된 시절이 있었다. 유격 교관은 새벽부터 취침시까지 바쁘고 힘들며, 긴장의 연속이었으나 꽤 보람은 있었다. 호르라기를 불면 그 소리에 많은 교육생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볼 때 이것이 사회에서 볼 수 없는 군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였었다.

 

유격훈련 중 장애물통과 훈련시 가끔씩 사고가 있기는 하나 별 것은 아니었고, 가장 난코스라 할 수 있는 도르래를 타고 하향횡단 후 강물에 뛰어 내리는 훈련인데, 뛰어내릴 목표지점에서 교관이 호르라기와 깃발을 올리면 뛰어 내려야 하는데, 담력이 부족하거나 겁이 많은 교육생은 목표지점을 지나 뛰어 내리거나, 아예 벽면 끝까지 가서 부딪치는 일도 간혹 발생하여 안전사고에 많은 신경이 쓰였던 기억이 났다.

 

유격 연병장을 지나 송추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일반도로와 비슷하였으며 쉬엄쉬엄 정겨운 대화를 나누면서 내려오니 4차선의 큰 도로에 도착하였다. 이 곳이 송추의 교현리라 한다. 혼자 설굴암을 다녀오기로 한 이원무 산우를 기다리며 점심(뒷풀이)식사 메뉴를 협의하였다. 당초에 점심은 송추에서 해결하기로 하였었는데, 한 산우가 여기서 구파발쪽으로 조금가면 팥 칼국수를 잘하는 곳이 있으니 오래간만에 고향의 정취도 느낄겸 팥 칼국수가 어떻겠느냐?는 제안이 있어 만장일치로 결정, 버스를 타고 음식점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였다(12시30분).

 

조문형 산우가 간혹 왔었다는 그 곳은 ‘오우가’라는 이색적인 음식점으로 주인장의 취미가 특이하여 옛 것들을 수집하여 식당내 여기저기에 진열해 놓았으며, 이제 갓 배운듯한 붓글씨로메뉴판을 적어 놓았고 창(민요)소리가 분위기를 새롭게 하여 주었다. 뒤에 잠시 알아 봤더니 맛을 찾는 매니어들이 즐겨찾는 전통 전라도 홍어삼합 전문식당으로서 별미로는 팥 칼국수와 낙지비빔밥이 별미 중에 별미라고 자랑한다. 북한산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고풍스러운 실내장식이 색다른 멋이 있어서 그런대로 아늑하고 좋았다.

 

우린 팥칼국수를 주문하고 국수가 나올때까지 남아있은 막걸리를 한 잔씩 할 양으로 수육을 시켰는데, 수육은 딱 두 접시밖에 없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그거라도 달라하여 먹어보니 산우들 모두가 맛이 별로라 한다. 하지만, 팥 칼국수는 큰 사발에 푸짐하고 맛이 감칠맛이다. 여기에 사탕가리(설탕)를 타서 먹으니 별미로서 우리가 어렸을적 배고픈시절 어렵게 살면서 맛있게 먹었던 그 때 그 시절의 추억이 생각난다.

 

모두들 맛있게 두,세그릇씩 배부르게 자시고, 고개마루에서 읊지 못한 동반시 “단 하나의 이름(이제니)”은 오늘 산행의 글짓기 당번인 내가 조용히 낭송했다. 다음 산행장소는 집행부에 일임하고 오늘의 모든 일정을 마친후 구파발로 향하였다. 짧은 산행이라 귀가 시간이 빨라서 인지 부담도 없고, 시산회 산행중 가장 편안한 산행이었던 것 같다.

 

시산회 산우들이여!!!

이제 우리에게 남은 재산은 건강 뿐이지 않는가? 나이가 들수록 먹는 식습관보다 운동습관이더 중요하다고 했고, 다이어트는 적게 먹는 것 보다 많이 움직이는 것이라고 했네. 허리 둘레는 가늘수록 좋고, 허벅지 둘레는 굵을수록 좋으니 하체운동을 많이하여 다리근육이 증가되면 혈관이 맑아지고 깨끗해 진다네. 원컨데 하체운동을 많이하여 남은 인생을 건강하게 삽시다.항상 건강관리 잘 하여 즐거운 삶이 되시길 빌면서 산행후기를 맺습니다.

 

2009. 07. 28 최 근 호 올림.

 

[ * 동반시 * ]

 

단 하나의 이름” / 이제니

 

얼어붙은 종이 위에서 나는 기다린다

얼음의 결정으로 떠오르는 기억의 물처럼

발설하지 않는 이름을 대신할 풍경이 몰려올 때까지

 

월요일에 나는 잃어버린 사람이 되었지

아니 화요일 아니 수요일 아니 목요일 아니 금요일

이미 잃었는데도 다시 잃고야 마는 요일의 순서들처럼

수면양말에 담긴 너의 두 발은 틀린 낱말만 골라 디뎠지

 

이곳은 너무 어둡고 너무 환하고 텅 빈 채로 가득 차 있다

이 휜색을 이 검은색을 고아라고 부를 수도 있을까

 

사랑하는 나의 고아에게

오늘의 심장은 어제의 심장이 아니란다

건초더미라는 말은 녹색의 풀이 한 계절을 지나왔다는 말

세계의 끝으로 밀려난 먼지들의 춤도 이와 마찬가지

소리가 되기 위해 모음이 필요한 자음들처럼 이제 그만 울어도 좋단다

 

말없는 자매들처럼 돌아누워 나누는 애도의 목례

검은 종이 위에 검은 잉크는 이름 하나를 흘려 쓴다

 

아득히 맴도는 이름 : 너를 부를 때마다 고통을 느낀다

흑연의 어조로 천천히 닮아가는 이름 : 우리는 함께 혼자였다

입 속에서만 부플려온 단 하나의 이름 : 우리는 우리라는 이름을 아껴야만 했다

 

언제나 나는 도착하고 싶었다

도착한 순간조차도 도착하고 싶었다

 

이대로 얼마나 오래 태양을 바라볼 수 있을까

고개를 돌리면 작고 둥근 흑점으로 번져가는 얼굴

나란히 누워 눈멀던 날들의 빛은 어디로 사라졌나

 

세계의 끝은 얼음으로 뒤덮여 있다

녹고 스미는 것들이 두 눈 가득 차오른다

나는 이상하게 푸르스름하게 살아 있다

 

 

항상 말없이 해맑은 미소를 지닌 다정다감한 최 산우! 육사를 나와 중대장까지 군 복무후 약 10년동안 공직에 몸을 담고 있다가 뜻하는 바가 있어 그동안 건설분야에서 설계, 시공, 감리분야를 거쳐 안전진단 업무를 수행하면서 건설업의 마지막 분야인 건설 분쟁의 중재 및 법원 감정업무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 현재는 안전진단사업부 대표로 10여년째 업무를 수행해 오고 있으며, 건설기술교육원에서 건설기술자, 감리자, 주택관리사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나가고있다. 바쁘신 시간을 할애하여 산행후기를 작성, 보내주신데 대해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한다. 산행 일정중 일부의 빠진 내용과 체재만 편집하여 그대로 올린다.

 

말로만 듣던‘우이령고개’산행은 기대가 너무 큰 탓인지? 산행에 참석한 대부분의 산우들에게는 이 총장님이 이미 예고했듯이 약 두시간 반 동안의 짧은 산보 코스였다. 난, 그 뒷날 일요일 마나님과의 약속을 이행한 후 대학친구와 함께 청계산(약 6시간 코스)을 다녀 왔었다. 하산 도중에 계곡에서 시원하게 등목도 하였으니 여름철 산행으로서 더할나위 없이 즐거웠다.

 

누구나 다 마찬가지로 생각하겠지만, 산행은 무엇보다 즐거움이 따라야 하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야 한다. 가까이 있는 좋은 들은 많은 등산객들로 붐빈다. 수 많은 등산객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한꺼번에 몰리다보면 사람들로 인해 짜증스럽기 그지없다. 해서 가능하면 여름철 산행은 산의 높,낮이를 구분하지 말고 사람들이 분비지 않고 시원한 계곡물이 흐르는 계곡산행이 좋지 않을까 생각된다.

 

다음 산행은 집행부에서 정하기로 하였다. 하여 지난 주말까지 이 총장님과 상의하여 서울근교에 물이 흐르는 계곡을 대상으로 몇몇 곳을 알아 봤으나 썩 내키지를 않아 고민하다가 지난 제113회 때 갈려다가 폭우로 인해 가지 못한 도봉산(용어촌계곡)으로 정하였다. 여름철 휴가철이라 많은 산우들이 참석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믿는다. 사업상 또는 주변여건상, 몸이 좋지않는 등 개인사정으로 인하여 산행에 계속 불참하는 산우들이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다. 바쁘신 가운데서도 자신의 건강을 위하여 새로운 기분으로 산행에 동참하여 주시길 기원해 본다.

 

오늘 오전에 초딩 친구들이 8월21일~23일(2박3일)까지 지리산 종주산행을 한다고 하여 숙박할 장소의 인터넷 예약관계로 친구와 잠시 협의하고 있는데, 김 왕회장님으로 부터 전화가 왔었다. 회사일로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으니 산행 안내문과 동반시를 나에게 일임 하겠다고 한다.

 

오후에 잠시 시간을 내어 인터넷을 뒤져 블로그와 카페에 연재된 수 많은 시들을 접하였다. 찾아 본 시들 중에 한국현대시 100주년을 맞아 조선일보가 연재한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시리즈가 지난 5월5일 김영랑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노래하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단다.

 

최남선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기점으로 한 한국현대시 100년의 주옥 같은 '애송시 100편' 시리즈는 새해 첫날 박두진의 '해'를 띄우면서 힘차게 시작했고, 김소월의 '진달래꽃', 정지용의 '향수', 박목월의 '나그네' 등 한국인의 애송시들이 시를 사랑하는 독자들과 함께 실려 있었다. 이 100편의 애송시중에서 한 편을 고를까? 하다가, 아니다 싶어 여름철이라 계절에 맞는 시 한편을 골라 안내문을 작성하고 있는 차에 왕 회장님으로부터 메일이 왔었고, 초안이 거의 다 완성될 즈음에 다시 전화가 왔었다. 세무점검차 토요일까진 시간을 낼 수가 없으나 일요일 산행때엔 동참하여 산행코스와 뒷풀이 장소의 안내를 맡겠다고 약속하였다.

 

시 선정을 함에 있어 두서너번 김 왕회장님의 명을 받들어 내가 선정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그의 고심을 알 것만 같았다. 산행후기야 산행한 과정의 사실을 그때그때 살을 붙여 일기식으로 쓰면 된다지만, 동반시는 그 시의 내용과 본질을 알아야만 하였기에 더더욱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그동안 우리 시산회를 위해 귀중한 시간을 내어 좋은 시를 선정해 주신 왕회장님께 고마운 마음을 보낸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고른 시 이기에 이번에는 프롤로그 시는 김 왕회장님이 보내준 것을 택하였고, 동반시는 이 무더운 여름철에 맞아 난해하지 않는 쉬운 시(‘여름에는 저녁을’/오규원)를 선정하였다.

 

이 시를 읽으면 먼 옛날, 어린 시절의 한여름철 저녁이 생각난다. 우리들의 소시적 여름날의 저녁은 대체로 마당에서 먹었다. 마당 한 켠에는 쑥대로 덮은 모캐불을 피워 놓고, 마당 가운데에 덕석(멍석의 방언)을 깔거나 감나무 밑에 와상(평상의 방언)을 놓고 그곳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 시절엔 가부장적인 시대라 아버지는 한 쪽에 따로 상을 차리고, 나머지 가족은 모두 둥그런 밥상에 빙 둘러앉아 먹었는데, 반찬이라고 해야 방금 텃밭에서 따온 풋상추와 풋고추, 가지나물, 열무김치 그리고 멸치를 넣고 되직하게 끓인 된장찌게가 전부였다. 매캐한 모캐불 냄새와 살짝 찐 부드러운 호박잎에 된짱찌게로 쌈을 싸 먹던 그 맛은 얼마나 구수하고 맛이 있었잔던가...

 

초딩 시절, 우리는 방학을 하면 여름날 오후, 찌는 땡볕 속에서도 소 먹이러 동네 냇가로 갔었다. 당시 소는 재산목록 제 1호 였고, 따라서 소를 잘 먹이는 건 아주 중요한 일이였다. 소를 먹이러 갔지만, 사실 소는 먹이는 것이 아니라 지들끼리 먹도록 냇가에다 풀어 놓을 뿐이고, 우리는 우리들끼리 놀았다. 흐르는 맑은 개울에서 입술이 파래질 때까지 목욕을 하며 놀기도 하고, 벅수(피리통)을 놓아 고기도 잡고, 돌밑을 뒤져 참게나 자라를 잡기고 하였다.

 

해가 떨어져 땅거미가 내려앉고 저 멀리 동네 마을에서 저녁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올 즈음 배가 불룩해진 소를 이끌고 워낭소리를 들으며 소와 함께 자랑스럽게 집으로 들어왔다. 요즘같이 무더운 여름밤, 동무들과(그때는 친구가 아니라 동무로 불렀다) 함께 숨박꼭질을 할 때 숨어가던 한 골목의 그 집들도 이젠 하나 둘 없어지고, 몇 채가 남지 않았다. 고향가면 허물어진 담 너머로 보이는 이웃집 마당엔 인적은 간데없고 무심한 잡초만 무성한데, 희미한 옛 추억의 그림자가 달빛에 아른거릴 때가 있다. 아! 세월은 이렇게 흘러 가는가 보다... 이 시를 읽으면서 잠시 어렸을적 추억이 생각이 나서 삼천포로 빠져버렸네 그려... ㅎㅎㅎ

 

오규원(1941~2007) 시인은 경남 밀양에서 출생, 1966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동아대(법대)를 나와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를 역임하고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여름에는 저녁을/ 오 규 원

 

 

 

여름에는 저녁을

마당에서 먹는다

 

초저녁에도 환한 달빛

마당 위에는 멍석

 

멍석 위에는 환한 달빛

달빛을 깔고 저녁을 먹는다

 

 

마을도 달빛에 잠기고

밥상도 달빛에 잠기고

 

여름에는 저녁을

마당에서 먹는다.

 

밥그릇 안에까지

가득 차는 달빛

 

아! 달빛을 먹는다

초저녁에도 환한 달빛

 

 

2009년 8월 6일

시를 좋아하고 산을 사랑하는 산 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 김 종 화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