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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함백산과 천년 주목(詩山會 제119회 산행)

 

함백산과 천년 주목(詩山會 제119회 산행)

산 : 함백산(1,572 미터. 태백, 정선)

코스 : 만항재-정상-중함백-은대봉-싸리재

소요시간 : 오름 1시간 반 내려옴 2시간

일시 : 2009년 12월 11일(일) 7시

모이는 곳 : 전철 2호선 잠실역 3번 출구 너구리상을 지나 호텔 남측

준비물 : 살얼음낀 막걸리, 안주, 과일, 카메라(하산 후 뒤풀이 겸 점심)

연락 : 이재웅(010-3454-7717)

블로그 : 사진 blog.daum.net/sisan20

산행기 blog.daum.net/yc012175

카페 cafe.daum.net/K-20

 

 

 

굳이 어느 새벽 꿈속에서나마

 

나 만난 듯하다는

 

그대

 

내 열 번 전생의

 

어느 가을볕 잔잔한 한나절을

 

각간 유신의 집 마당귀에

 

엎드려 여물 씹는 소였을 적에

 

등허리에

 

살짝

 

앉았다 떠난

 

까치였기나 하오

 

 

그날

 

쪽같이 푸르던

 

하늘빛이라니.

 

-김원길 ‘취운정 마담’ 전문 -

 

 

꼭 이맘때, 안동 임하호가 내려다 보이는 지레예술촌에서 이 시를 처음 들었다. 시인은 임하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놓인 의성 김씨 종택을 200m 위로 옮겨 지레예술촌을 만들었다.시인은 눈을 지긋이 감고 벼락같이 써내려갔다는 이 시를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우리는 억겁을 뚫고 전생으로 돌아가 소와 까치의 조우를 지켜봤다.

 

낮과 밤의 기온차가 커지면서 여름과 가을이 임무를 바꾸고 있다. 쪽빛 하늘 한 모퉁이에 걸려 있는 쪽빛 사랑. 사랑은 찬바람이 돌때 영그나보다.

 

-시평(남궁 덕. 언론인)

 

내가 의성인이라 시를 선정하다보니 눈에 띄었다. 하여 올려본다.

작년 꼭 이맘때, 나도 안동에 갔었다. 내가 의성 김씨인데 어렸을 적 아버지의 손을 잡고 다녀온 후 간혹 간 적이 있었는데 오랜만에 마산에 볼 일이 있어 가는 길에 잠간 들렀다. 학봉 김성일의 종택도 들르고 내 앞(川前)의 종택도 들렀었다. 지레예술촌에 있는 종택이나 학봉 종택은 후손들이 관리를 잘 하고 있으나 내 앞의 종택은 규모가 크고 문화재임에도 불구하고 쇠락해 가고 있는 느낌이 들어 가슴이 아팠다. 학봉의 자손들은 임진왜란의 원인이 학봉 할아버지의 탓만은 아니었겠지만 벼슬과 정치를 멀리하며 학문에 매진했고 내 앞의 종택 자손들은 벼슬과 정치에 뜻을 두고 정계에 진출하여 이름을 날렸으나 현재의 자손들은 쇠락하였는지 관리에 별 뜻이 없는 것 같다. 하긴 세상이 바뀌어 각박하게 살다보니 시제사에 참여하는 종친의 수가 매년 줄어드는 것을 보면 이 좋은 미풍양속도 우리의 자식대에 가면 없어질 듯하니 한편 서운하기도 하다.

 

마산에서 일을 보고 저녁에 어시장에서 주먹보다 큰 전복을 두 개 사들고 복으로 유명한 식당에서 전복회를 부탁, 복찜에 복맑은탕(지리)을 안주로 술 한잔 거나하게 걸쳤던 기억이 새롭다. 다음 날, 일정에 여유가 있어 나 원장의 권유에 따라 남해섬의 해안도로를 일주하였는데 제주와 남도의 중간쯤 되는 풍광이 멋있다. 남해섬의 정상인 금산을 오르려 했으나 국립공원직원이 입구에서 국내 삼대 기도도량 중 하나인 보리암은 승용차로는 오를 수 없고 도로보수 중이라 셔틀버스도 운행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신 이사를 팔았으나(?) 역부족이었다. 등산복과 신발을 준비하지 않아 등정을 포기했다. 내친 김에 전복 속에 몸을 묻을 양으로 완도까지 내려가서 한양기 산우와 통화, 보해소주와 전복의 맛에 흠뻑 취했다. 일박하고 아침은 숙취해소를 위해 전복죽을 맛있게 먹었다. 점심은 벌교에 들러 꼬막정식을 주문하여 꼬막 데침, 전, 무침, 탕 등으로 맛있게 먹고 저녁은 전주에서 육사시미로 여정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귀경했다.

 

 

시산회 제118회 북한산(형제봉능선) 산행기(2009.9.26,맑음/전작)

▣ 산행코스 : 경복궁역(3번출구)-롯데삼성아파트 앞-형제봉통제소-형제봉-일선사입구 지나 대성문 600m 전방 삼거리-정릉탐방지원센터

▣ 참석자 : 5명(박형채, 염재홍, 이경식, 이재웅, 전작)

▣ 오늘의 동반시 :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이외수

▣ 뒷풀이 : 서울레저사우나(길음시장 내) 및 한라수산 산오징어(창문여고 부근)

 

산에 가는 날은 아침 일찍 눈이 떠진다. 오늘은 근교산행이라 만나는 시간이 10시로 여유가 있다. 그래도 수첩을 꺼내 메모해 두었던 시간과 장소와 준비물을 다시 확인한다. 느긋하게 아침 식사를 하고 생수, 막걸리, 간식거리를 챙겨 집을 나선다. 이번 산행은 약속이 겹쳐 두 번 빠져서 인지 오랜만인 것 같다. 전형적인 가을 날씨라 친구들과 산행 할 생각하니 몸이 가뿐하다. 경복궁역에 막 도착하자 이 총장의 전화가 왔다. 잰 걸음으로 3번 출구로 나가니 반가운 이 총장, 경식, 형채 3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반갑게 수인사를 하고 나니, 이 총장께서 “오늘 산행 인원은 북악터널 입구에서 만나기로 한 재홍이 포함하여 총 5명” 이라고 걱정스럽고 미안한 마음(?)으로 얘기한다.

서로를 배려하는 시산회 회원답게 누군가 “추석 직전이고 애경사가 많은 때라 참석인원이 적은 것이제~” 이 총장에게 덕담 한마디 한다.

 

10시 5분전, 단출한 인원이라 버스대신 택시를 타고 북악터널 입구(옛 올림피아호텔 자리에 지은 삼성아파트 앞)로 이동하였다.

가는 길에는 대원군 별장(현재는 유명 한식집 “석파랑”)과 세검정의 유래에 대하여 서대문구 지리에 밝은 경식이의 프로 관광안내원 수준의 해설도 들었다.

이런 것이 시산회에서만 얻을 수 있는 덤 아니 던가?

삼성아파트 앞에 도착하니 바로 재홍이가 왔다.

5명이 길을 건너 “삼각산영화정사” 팻말을 보고 오른쪽으로 향하니 바로 형제봉 능선 코스 들머리가 시작된다. 입구에서 꼼꼼한 이 총장이 오늘은 인원도 단출하니 풀코스(?)로 산행하자고 산행계획을 소상히 설명한다.

 

이 총장의 철저한 산행준비에 늘 고마울 따름이다.

이어서 이 총장이 치부책을 꺼내 손가락을 짚어 가더니 나에게 메모지와 볼펜을 건넨다.

산행지와 산행기 필자 선정은 가급적 집행부의 결정에 따르기로 한 시산회의 아름다운 전통이 있지 않은가? 감히 거역 할 수가 없다.

 

5명이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완만한 흙 길을 따라 올라 간다.

가는 길에 형제봉통제소가 보이지 않았으나 북한산을 잘 아는 재홍이와 경식이 덕에 능선 길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이 총장이 오늘 풀코스의 의미는 북한산 종주(?), 오지 못한 산우와 차별화를 위해 산해진미로 먹산회(?)로 하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너스레를 떤다. 18년 된 차 바꿀 계획도 얘기한다. 형채는 순단 여사가 도봉산에 가 있단다. 재홍이는 정릉 서경대 부근으로 이사 갔단다.

 

도봉산 선녀와 북한산 나무꾼이 된 형채 부부가 참 보기 좋은 것 같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워밍업을 위해 계속 걸었다.

가는 도중 이 총장과 김 회장이 통화한다.

제주도에서 녹동으로 오는 배 안에서 바쁜 출장 중 임에도 불구하고 시산회 일을 챙긴다.

몸은 출장지에 있어도 마음은 시산회와 함께 북한산에 있는 것 같다.

시산회를 위해 봉사하는 김 회장이 고맙다.

 

능선을 따라 올라가니 재홍이가 전망 좋은 곳에서 경치 구경 좀 하고 가 잔다.

평창동 숲 속에 형형색색의 나지막한 고급 주택가가 가을 하늘과 어우러져 한 눈에 들어오고, 멀리 한강도 보인다.

서울이 정말 아름답다. 동네마다 산이 있고 강과 개울이 있다.

 

잠시 후 다시 산행이다.

오늘은 파란 하늘, 맑은 공기, 따사로운 햇빛 정말 날씨 환상이다.

다들 몸이 풀려서 인지 속도를 내서 걷는다.

몸 속에서는 열기가 나고, 피부는 서늘한 바람에 땀은 맺히지 않는다.

최고의 등산이다. 보약이 필요 없다.

시산회 친구들, 올 가을에는 산에서 자주 만나세.

 

이제 숨고를 시간이다.

널찍한 곳에 앉아 형채가 내놓은 순단여사표 나주 배로 1차 갈증을 풀었다.

물기가 많고 달다. 순단여사 늘 고맙소이다. 이어 찐 밤과 사탕으로 에너지를 보충했다.

이 총장의 홍어회와 막걸리는 점심 때 먹기로 했다.

가는 길에 5명이 경치 좋은 바위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시산회 역사상 최소 단체사진이다.

경기도 바닥 찍었다고 하니 시산회도 바닥 찍었겠제?

 

12시를 조금 넘은 시간, 보현봉 아래 능선 소나무 밑에서 드디어 이 총장께서 가져 온 홍어회로 홍탁을 먹기 위해 좌판을 벌였다. 이 총장이 돌아가신 장인어른의 단골집 - 그 유명한 남광주시장내 홍어전문점 - 에서 특별 주문하여 북한산까지 가져 왔다.

불그스레 잘 삭았다. 먹기도 전에 군침이 돈다. 쫀득쫀득 입안에 넣으니 살살 녹는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역대 시산회 홍어 중 최상품(삼환표와 막상막하??)이 아닌가 한다.

참석 못한 산우들은 나중에 홈피에 올라온 사진을 보기 바랍니다.

5명이 막걸리 3병에 홍어 열 댓 명분을 맛나게 다 먹었다.

 

본인이 산행시를 읽었다. 앞으로는 4명 앞에서 산행시를 낭독하는 불상사(?)가 없었으면 좋겠다.

중간중간 시산회 산행 방법 – 정상정복, 높이에 더하여 다양한 산행 방법 개발 – 등에 대하여 서로 얘기를 하였다. 향후 집행부와 산우 모두 참고 하기 바란다.

 

김밥에 남은 순단표 나주배로 디저트까지 하니 북한산 종주 할 일이 걱정이다.

경식이가 “능선에서 정릉 쪽 가는 길이 기가 막히다”고 바람(?) 잡는다.

아무래도 대성문 코스를 변경 했으면 하는 분위기다.

1시간 남짓 포식하고 일어섰다.

 

일선사 입구를 지나니 삼거리에 갈림길 팻말(대성문 600m, 정릉탐방센터 2.5km)이 있다.

형채와 재홍이는 도봉산에 선녀가 있고 길이 좋아 10분이면 간다고 “대성문파”로, 경식이와 나는 홍어를 폭식한 탓에 ‘정릉파”로 나뉘었다.

이 총장께서 고심 끝에 “홍어 탓 명분론”의 정릉파 손을 들어 주었다.

정릉 가는 능선 길을 따라 쉬지 않고 하산 했다.

하산 길 이곳저곳에 이름 모를 산열매가 탐스럽게 익어 있다. 참 아름답다.

 

2시40분경 정릉탐방센터에 도착했다

입구에 풍물 장터 행사가 있다. 잠시 낙원동 떡, 태안 고구마, 진도 미역 등을 시식했다.

가을이라 해도 쉬지 않고 하산하니 땀이 난다.

이심전심 다들 다음코스는 사우나다.

정릉유지인 재홍이가 잘 아는 사우나가 있단다. 그곳으로 가기로 했다. 완전동의다.

 

3시경 길음역 부근 뉴타운재개발 지역 사이를 돌아 길음시장 안에 있는 “서울레저사우나”에서 뜨거운 물에 1시간 남짓 몸을 풀었다.

무릉도원에 갔다 온 기분이다.

사우나를 나왔다. 기왕에 풀코스(?)를 하기로 했으니 마나님 일손 덜어 주도록 간단히 요기나 하자고 한다. 만장일치다.

 

이번에는 이 총장이 가까운 창문여고 부근 횟집을 추천한다. 또 만장일치다.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 갔다. 가는 도중에 횟집 전화가 잘 안되어 이 총장께서 이사간 가게를 겨우 확인 했다.

 

4시 반경 횟집에 도착했다. 아주머니가 문을 뻐끔 열고 문 밖에 서있는 우리들에게 5시부터 문을 여니 그 때 오란다. 퇴짜 맞았다.

장사는 맛도 중요 하지만 주인장 마음씨도 중요한 법 아닌가?

음식준비 하는 동안 들어와서 시원한 생맥주라도 한 잔 하고 있으라고 하면 좋을 텐데.

이구동성이다.

 

부근 “한라수산 산오징어” 집에 가서 전어 무침, 우럭 회와 매운탕, 소맥주로 오늘 풀코스의 마무리를 지었다.

소주 2병 시켜 놓고 1병 마셨다.

재홍이가 “시산회 갔다 온 날은 적당하게 일찍 귀가하니 온 가족이 좋아한다”고 한마디 거든다.

주도에 관한 한 시산회의 품격은 대단하다.

6시경 일어서 지하철을 탔다.

 

오늘은 정말 행복한 하루였다.

 

Make new friends, (새 친구를 사귀어요.)

But keep the old. (하지만 옛 친구도 저버리지 말고.)

One is silver, (새 친구는 은이요.)

The other is gold (옛 친구는 금이지요.)

 

서양 노래 가사의 한 소절이네.(끝)

 

 

 

참으로 맛깔스럽게 잘 쓴 글 속에 맛난 음식맛까지 녹아들어 있다. 산행기를 돌아가면서 쓰자는 전통은 이래서 계속 이어져야 한다.

 

다음 산행지를 정하는데 집행부에서는 일단은 홍천 팔봉산으로 잠정적으로 정해놓고 그래도 전임 회장이라고 의견을 물어왔다. 자주 참석을 하지 못해 미안한 감이 들었으나 높은 산이 좋을 듯하여 강력하게 추천하여 집행부에서 결정했다. 물론 산우들의 의견을 들었을 것이다. 초대회장이었던 시절, 휴가다 명절이다 하여 길이 막히니 근교 산으로 가자고 강력하게 주장해놓고는 정작 본인은 바쁜 일이 생겨 참석을 못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고 근교 산행만을 하다보면 참석자가 현격하게 줄어드는 경향이 있었다. 하여 명절이나 휴가를 불문하고 오르지 않았던 원거리의 명산을 오르면 참가자가 급속히 늘어나는 경험을 했었다. 산우들이 새로운 산을 좋아하는 이유는 남자는 새것을 좋아하는 원초적인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함백산으로 정해놓고 십이선녀탕과 대승령, 대승폭포를 지나서 오색에서 해수사우나를 하고 기사문리항에서 방어를 맛나게 먹은 5월의 즐거웠던 설악산행 때, 대승폭포에서 바라보았던 건너편 가리능선의 삼형제봉, 가리봉, 주걱봉이 떠올라 장수대 탐방지원센터에 전화를 했다. 아쉽게도 휴식년제가 적용되는 구간이다. 풀리면 언젠가 가보자.

 

해묵은 산행노트를 펼쳐보니 ‘함백산. 2003년 8월 26일. 흐림 후 비. 제 120회 산행. 들머리 만항재 날머리 정암사. 정상의 바위들이 멋있고 중함백으로 오르는 길의 우측 주목보호단지 안의 주목들이 천년의 세월을 두고 온갖 비바람을 이기며 살아온 흔적이 역력하다. 정상에 오르니 비가 많이 내렸는데 서쪽에서 흘러온 비구름이 중함백을 넘지 못하고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모습이 장관이다. 산이 높고 골이 깊다보니 이런 장관도 있구나! 사진기가 없는 것이 매우 유감이다. 우산은 없고 비를 피할 곳이 없어 두 사람이 비닐을 머리에 쓰고 몸에 두른 후 어둡지 않은 비닐집 안에서 점심. 비오는 날, 높은 산의 정상에서 내리는 비를 맞고 먹는 점심의 맛이란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결코 알 수 없는 생소한 맛이다. 상당히 인상에 남는 산이다.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적멸보궁으로 유명한 정암사에 들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다음에 오르게 되면 한강의 발원이라는 검룡소는 꼭 들른다. 오름 1시간 반, 내려옴 2시간 10분.’

 

이번 코스는 그때와 다르니 시간도 다르다. 그때는 정암사로 내려왔는데 이번에는 싸리재로 내려올 예정이다. 하산 코스는 정상에서 결정하자. 권하고 싶은 산이다. 모두 모이자. 나는 창동 하나로마트에서 제주산 문어를 많이 사서 들고 갈 예정이다. 이 총장의 진도문어 맛은 따라가지 못할 런지 모르나 그래도 같은 남쪽바다산이니 많이 참석하여 맛나게 먹어주기 바란다. 우리 모두에게는 이 총장의 미안하고 허전했던 가슴을 훈훈하게 꽉 채워줄 의무와 빚이 있기 때문이다. 바빴던 김 회장님과 전임 기 회장도 빨리 건강을 회복하여 자주 참석해주기 바란다.

 

이 총장은 지난 북한산행 참석인원이 5명밖에 안 된 것이 자신의 잘못인 양 미안해하나 가을에 근교산행을 했을 때 흔하게 겪는 일이니 앞으로 가을에는 꼭 원거리에 있어도 좋은 산으로 선택하면 된다. 하여 간혹은 산우들의 의견을 듣지 말고 집행부에서 선택하여 결정하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음을 잊지 말기 바란다. 내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이다. 명절과 휴가를 많이 의식하지 말고 오르지 않았던 새롭고 좋은 산으로 결정하면 오르고 싶은 산우는 꼭 참석한다.

 

내가 주변에 참석하고 정리할 일이 많아 산행도 자주 빠지고 동반시의 선정도 김 회장님에게 부탁하다 보니 이번 산행이 몇 회인가 가물거린다. 심지어 김 회장님이 어렵게 선정한 시들과 산우들이 정성을 다하여 힘들게 작성한 산행기들을 읽는 여유조차 없었던 미안함을 고백한다. 갑자기 닥쳐온 호된 시련을 겪으며 산과 시와 산우들을 잠시 잊고 살았다. 가족조차 남이었다. 작은 일에 유난히 아파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고 하얗게 지샌 밤이 얼마였던가를 세지 못한다. 그나마 임 수석과 나 원장의 위로를 잊지 못한다. 산우가 아닌 친구들의 마음씀도 고맙다. 이제야 하나는 알겠다. ‘세월이 약’이라는 것을. 스치는 바람 한 점이나 별빛 하나에도 고마워하며 살아야겠다. ‘개똥 밭에 굴러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다’고 하지 않는가. 오랜만에 산우들을 만나 즐거운 산행을 할 생각을 하니 마음이 설렌다.

 

 

 

동반시다. 시평을 미리 읽고 낭송하거나 들으면 좋은 시다. 철은 호시절. 국화꽃 피는 가을이다. 가을은 짧다. 좋기에 짧은 것이다. 여름과 겨울이 길고 지루한 것은 힘들기에 그렇다. 이 짧고 좋은 가을에 좋은 산, 좋은 산우들, 좋은 시를 놓치기에는 가을이 너무 짧다.

 

-시평(허수경. 시인)

장석남 시인의 말 아끼기,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장석남이 얼마나 비밀을 잘 다룰 줄 아는 시인인가, 라고 감탄한 적이 있다. 이때 비밀이란 다시 신형철의 글을 빌려 말하자면 '얼굴의 반만을 드러낸 여인처럼 절반만 말해진 비밀'이다.

 

장석남 시의 매력은 말을 아끼면서 말을 널널하게 열어두는 데 있다. 그는 말을 아끼는데 그의 적은 말들은 마치 우주의 비밀을 열 것처럼 진하고 깊이 울린다.

 

'국화꽃 그늘을 빌려' '젖은 눈으로' 살다가 간 가을. 그리고 '국화꽃 무늬로 언 살얼음'으로 들어서는 겨울. 이 시를 읽고 또 읽으면서 삶은 얼마나 비밀스러우며 삶의 비밀을 드러내는 것은 얼마나 조심스러운지 생각하게 된다.

 

장석남 시인이 조심스럽게 전해주는 비밀은 '눈썹달이거나 혹은 그 뒤에 숨긴 내 어여쁜 애인들'처럼 애잔하고 소소하다. 그리고 '너나 나나 마음 그늘을 빌려서' 잠시 살다가 가는 것이 우리들의 생이라고 말한다. 이 매력적인 삶에 대한 단상은 국화꽃 그늘에 숨어있는 아릿한 아름다움 속에 서있다. 그 서늘하고도 말할 수 없는 애잔함의 자리 속에.

 

 

국화꽃 그늘을 빌려 / 장 석 남

 

국화꽃 그늘을 빌려

살다 갔구나 가을은

젖은 눈으로 며칠을 살다가

갔구나

 

국화꽃 무늬로 언

첫 살얼음

또한 그러한 삶들

있거늘

눈썹달이거나 혹은

그 뒤에 숨긴 내

어여쁜 애인들이거나

모든

너나 나나의

마음 그늘을 빌려서 잠시

살다가 가는 것들

있거늘

 

2009년 10월 8일 새벽

詩를 사랑하는 山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도움쇠 김정남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