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가야산과 남연군묘(詩山會 제124회 산행)
산 : 가야산 석문봉 (653 미터)
코스 : 남연군묘-관음전-옥양봉-석문봉-남연군묘
소요시간 : 4시간
일시 : 2009년 12월 6일(일) 7시
모이는 곳 : 전철 2,3호선 교대역 9번 출구
준비물 : 가벼운 간식, 막걸리, 안주, 과일, 카메라(하산 후 온천욕, 뒤풀이 겸 점심)
연락 : 이재웅 총장(010-3454-7717)
블로그 : 사진 blog.daub.net/sisan20
산행기 blog.daum.net/yc012175
카페 cafe.daum.net/K-20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기형도 '빈집' 전문
사랑은 삶의 동력(動力). 그걸 잃었음은 사지가 잘려나가고, 심장이 멈춘 거나 진배없다. 불꽃 같은 열망이 사그라드니 세상을 향해 열려있던 창(窓)도 닫히게 되고. 졸지에 빈집에 갇힌 신세. 그 참담한 추락은 '…쓰네' '…밤들아' '…잠그네' 등의 타령조로 고스란히 전달된다. 모든 게 끝났다는 탄식. 소리 내 읽어보면 요절 시인의 쓸쓸함을 절절하게 느껴볼 수 있을 터.
심야극장에서 스러져버린 이 시인을 생각하면 마음이 항상 을씨년스러워진다. 그가 했을 사랑. “사랑, 그 지독한 거짓말”이라고 복효근 시인이 말했던가. 사랑도 계절도 날씨도 삶도 모두 쓸쓸하다. 그래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 있다. “잘 가요, 내 사랑” 이 한 마디에 마음이 훈훈해지는 계절이다.
-도봉별곡
청계산 산행기(참석 : 김종화, 임용복, 전작, 정해황, 위윤환, 김용우, 이원무, 이재웅, 이경식, 김정남 등 12인의 詩山人)
11월의 세 번째 토요일. 맑은 날이다. 이제 가을은 막바지고 오히려 겨울에 가까운 날이다. 전철 중앙선을 타고 국수역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30분에 한 대가 배정되니 늦으면 먼저 온 산우들이 많이 기다려야 한다고 늦지 말라는 당부를 미리 했었다. 도움쇠는 1호선 근처에 사니 가까운 회기역를 경유하는 노선이므로 8시 30분에 집에서 출발했다. 중간에 이 총장을 보았는데 나와 맞은 편에 앉았는데도 모르고 뭔가 열심히 전화하고 메모한다. 참석자를 다시 체크하고 확인 전화를 하는 것 같다. 참으로 시산회에 관하여 열심의 정도를 넘어서서 존경의 념이 들 정도다. 약속시간보다 7분이 이른 9시 53분에 국수역에 도착했다. 7년 전에 청계산을 오른 기억이 있는데 그때의 역은 간이역으로 오래되고 낡고 붉은 벽돌로 지어진 건물이었는데 세월이 많이 변했음을실감할 수 있었다. 염재홍 산우는 독감이 심해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못 할 정도로 아프고 이경식 산우는 다친 허리가 도졌는지 도저히 오지 못 한다는 연락이 왔단다. 김종화 회장님과 이원무 산우만 오면 되는데 아마 교행하는 열차관계로 20분정도 늦는단다. 내 경험인데 바빠도 중간에서 갈아타는 차편보다는 조금 기다리더라도 목적지까지 한 번에 가는 차편을 이용하는 것이 실수를 예방할 수 있다. 유의하자.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두 산우가 올 때까지 기다리면서, 산림청에서 나온 직원의 산행에 관한 브리핑과 설명을 들었는데 정상까지 2시간 10분 정도 소요된다는 설명이다. 우리는 목왕리로 내려와서 하루에 몇 번 오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뒤풀이를 하자는 것에 모두 동의한다. 국수역 앞의 순두부집에서 먹걸리에 순두부를 먹으면서 기다리자는 위윤환 산우의 주장(?)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이름하여 입산주다. 두 순배쯤 돌아갈 때 두 산우가 도착한다. 즉시 이 총장이 배낭에서 꺼내든 것은 오늘의 등산지도와 동반시를 적은 종이다. 위 산우가 받아들고는 오늘은 동반시를 모두 같이 낭송하는 날이니 목을 가다듬자고 건배를 외친다. 한 순배 더 돌아가고 일어서는데 위 산우가 미리 계산한다. 그 동안 천주교에 입교하여 김수환 추기경님과 같은 ‘스테파노’라는 영세명을 받았다. 그래서 자주 빠져 미안한 마음에 간단하게 쏘았다는 설명이다. 양평 청계산으로 모신다는 메일에 자주 참석해 줄 것을 간곡하게 썼더니 위 산우도 나오고 무릎이 아픈 임용복 수석도 나왔다. 모시 쑥떡의 정해황 산우와 수술 후유증으로 고생한 김용우 산우도 나와 줬으니 고마운 일이다. 서울막걸리 두어 잔에 순두부와 손두부로 미리 요기하니 힘이 솟는다. 산행 당일은 소화가 더딘 단백질이나 지방성분이 많이 들어간 음식보다 탄수화물이 많이 들어간 음식이 열량을 빨리 발산하기에 더 좋다는 것이 정설이다. 해서 늦은 이원무 산우에게 지각한 것에 대한 벌로 막걸리 한 병과 두부 한 모를 사올 것을 주문했다. 앞으로 늦은 친구들에게 이런 방법으로 벌을 가하는 것이 좋겠다. 군기반장 나 원장! 기억하소.
모든 준비를 완료하고 힘차게 전진. 10시 50분이다. 산에 오르기 좋은, 바람이 없는 맑은 날이다. 포장길이 끝나고 침엽수림으로 들어가니 공기가 맑고 신선하다. 암에 좋고 아토피, 대상포진, 우울증에도 좋다는 피톤치드에 대한 얘기가 빠질 수 없다. 피톤치드는 침엽수에서 많이 나오는데 편백나무, 구상나무, 삼나무의 순으로 많이 나온다는 것이 요즘의 정설이다. 장사꾼인 나는 금방 이런 생각을 해본다. 3만 평의 산을 준비하고 미래 15년을 내다보고 온 산에 편백나무와 구상나무를 심는다. 삼나무는 일본처럼 따뜻한 곳에서 잘 자라니 빼고 잣나무를 그 자리에 심는다. 잘 심고 가꾸면 그때는 주변사람들에게 좋은 일이 될 것이다. 3만평의 산이 문제이나 ‘꿈은 이루어진다’지 않는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지 않는가. 거북이 형상을 한 마지막 약수터에서 약수 한 모금. 경사가 부드러운 흙산이라 어렵지 않다.
김 회장님과 이 총장이 끝에서 함께 오르는데 시산지인 ‘山과 詩’의 발간에 관한 살림살이 걱정에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한다. 예산이 450만 원이 소요된다는데 십시일반이라고 뭐가 그리 어렵겠는가.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하고 능선에 올라서니 과일과 정해황 산우의 모시 쑥덕이 나온다. 오름길의 하이라이트! 18개를 싸왔으니 9명에게 각 2개씩 배당한다. 콩고물에 묻혀 한 잎 가득 베어 먹는데 “너 본 지 오래다”는 멘트가 여지 없이 나온다. 아껴서 집에 가져가면 아내와 큰딸이 좋아한다. 오늘은 한 점 먹는데 참으로 찰지고 맛있다. 그런데 떡을 먹은 후 먹으려고 아껴둔 과일이 없다. 그 사이 누가 먹었다. 역시 먹산회다. 약간 뒤로 처진 이 총장과 얘기를 나누면서 올라가는데 이 총장의 배낭이 단단하다. 살짝 들어보니 생굴 여섯 봉지가 든 내 배낭무게의 두 배가 넘는다. 내려놓으라고 해서 내용을 보니 물 한 병, 막걸리 두 병, 포도 세 봉지, 기타 사탕류 등등 바리바리 싸온 것이다. 누구를 위한 것일까. 내 원 참. 함백산을 오를 때 나 원장이 앞장서서 다른 산우들보다 빨리 오를 수 있었던 이유를 말했다. 다름 아니라 배낭의 무게를 줄였더니 쉽게 오를 수 있었단다. 산우들의 입을 즐겁게 해주려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고 고맙게 여기니 앞으로는 물만 싸오게나, 착한 친구여. 나눠서 내 배낭에 옮기니 이제는 내가 사서 고생이다. 하하하.
정상에 도착하니 1시 10분. 2시간 20분이 소요됐다. 멀리 올해 초에 시산제를 지낸 백운봉, 용문산, 명성산이 보인다. 양평읍을 관통하는 남한강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 빛나며 흐른다. 기념사진을 빼놓을 수 없다. 정상에 오른 여성 중 가장 예쁘고 날씬한 분에게 찍어줄 것을 부탁한다. 보는 눈은 있어서. 싸온 음식을 꺼내고 먹기 전에 동반시 낭송의 시간이다. 한 입으로 낭송하는데 목소리는 각각이었으나 마음은 한 마음이다. 구르몽의 ‘낙엽’을 모르는 산우는 없다. 고교시절 문학의 밤이 열리는 가을 무렵, 밤 늦게 도서관에서 나올 때 들리던 시들 중 하나다. 그 시들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니 기회가 있으면 동반시로 추천하겠다. 이원무 산우가 늦은 벌로 사온 두부와 더불어 정상에서 정상주에 곁들여 먹는 생굴의 맛은 언제나 변함이 없다. 전작 산우는 시산제를 지낸 올 초의 백운봉에서의 생굴맛을 잊지 못 하는 듯 자주 얘기한다. 맛있게 먹어주면 무겁게 싸오는 사람은 기분이 좋다. 정상 주변에서 버너를 켜고 라면을 끓여먹는 무개념의 남녀 산객을 혼내주고 우리는 즐거운 덕담을 하며 조촐하지만 맛난 정상주의 시간. 이총장이 바리바리 싸온 포도를 후식으로 가볍지만 즐거운 식사였다. 남은 술이 있으면 한 잔 달라는 중국동포에게 나눠주는 후한 인심들. 흐믓하다. 목왕리로 하산하기로 한 계획대로 내려가는데 응달이어서 미끄러운데다가 너무 심한 비알길이어서 무릎의 관절에 부감이 갈 것 같아 주변 산객의 충고를 받아들여 하산길을 번복하고 오른 길로 하산을 결정했다. 뒤풀이를 할 목왕리에서 합류하기로 한 이경식 산우에게 연락을 하니 마침 양수역을 지나고 있단다.
내려오면서 김 회장님과 후임 집행부 등에 대하여 많은 대화를 하며 내려오는데 중간에 과묵하고 신중한 김 회장님께서 가볍게 던진 말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다. 초대 회장을 맡았던 도움쇠의 성격이 너무 강하다는 단순한 멘트였으나, 나는 인정했고, 하여 나는 창업에 적합한 성격이고 수성은 적합하지 않은 성격이라는 변을 했다. 내 성격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이 어디 한 두 사람인가. 아내를 위시하여 두 딸도 아빠 같은 남자를 만날까봐 결혼을 하기 싫다는 직설적인 표현을 했다. 직선적인 성격은 그 애비에 그 자식들이다. 자주 듣는 아내의 푸념이기도 하다. 옛 회사의 임직원들도 나쁜 의미로 ‘불과 칼을 가슴에 지니고 사는 사장’ 밑에서 힘들다 했다. 혹여 내 독선적이고 고집스런 성격에 상처를 받은 산우들이 있다면 해서해주기 바란다. 모든 사물과 현상에는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며, 동전에는 같은 크기의 양면이 있어야 돈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손바닥과 손등의 크기도 같다. 그래서 시산회가 여기까지 왔다고 자위해본다. 씨앗은 내가 뿌렸고 나무는 기세환 전임 회장이 굳건하게 키웠으며, 김종화 회장님이 詩山誌라는 알찬 열매를 맺는 단계에 와 있다. 임용복 수석에게 내가 뒤풀이 자리에서 ‘성격이 변하면 운명이 변하니 싫다’고 했더니 그래도 바꾸란다. 오랜 친구의 우정어린 충고로 받아들이겠다.
국수역으로 하산하니 이경식 산우가 반갑게 맞이한다. 참석한다고 했다가 허리가 아파 참석하지 못 한 것이 못내 아쉽고 미안했나보다. 그가 탐색해두었던 뼈국집에서 뒤풀이를 하면서 나눈 시산지에 대한 얘기는 대략 다음과 같다. 이경식 산우가 시산지에 대하여 업무상 잘 아는 인쇄소가 있어 그 곳에 맡긴다. 이경식 산우는 더 싸게 하는 곳이 있다면 추천하라는데 이제 와서 어림 없는 일. 소요경비는 100부 발행에 450만원, 200부를 발행하면 70만원 정도 추가. 편집은 이 산우와 김 회장님이 하고 동창회의 회장과 총장이 시산회원이니 최대한 찬조를 받는다. 동창회의 잔여 회비는 약 2,700만원. 12월 동창회 송년모임에 50부 기증. 시산회원은 10만원의 찬조. 100편의 글 중 54편을 쓴 도움쇠는 더 많은 찬조금. 11편을 쓴 이경식 산우도 더 찬조. 앞으로는 너도나도 산행기를 쓰려고 할 것이다. 도움쇠의 졸품을 어쩔 수 없이 많이 게재해서 겸연쩍지만 앞으로는 산우들이 자진해서 쓰기 바란다. 맞춤법과 띄어쓰기 등은 도움쇠의 몫. 동창회 송년회에 맞춰 발간하려면 11월말까지는 안이 확정되어야 하니 많은 협조와 적극적인 참여 바람. 찬조는 거절하지 않으며 남에게 배부하고자 하면 1부당 얼마를 더 받는 것과 연차적으로 부담하는 방법도 나쁘지는 않다. 이런 결정을 내리고 즐거운 산행을 마쳤다. 좋은 친구들, 좋은 산이 있어 행복한 하루였다. 김 회장님과 이경식 산우는 고생이 많다. 격려의 박수를 보내자.
이번 산행은 김 회장님이 추천하여 정한 산이다. 도움쇠의 산행노트를 보니 ‘2004. 2. 27. 159회 산행. 서울 8시30분 출발. 남연군묘 10시 50분 도착. 옥양봉 11시 50분. 식사 12시 30분. 석문봉 1시 5분. 남연군묘 2시 10분. 대원군 이하응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를 지나 옥양봉으로, 석문봉을 지나 10분을 가니 저수지 쪽으로 하산길. 정상인 가야봉은 출입금지. 흙산이고 하산길만 약간 암릉이다. 남연군묘는 풍수지리에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좌청룡, 우백호가 뚜렷한 명당의 지세로 보인다. 하여 고종과 순종 등 왕들이 탄생한 것일까!’라고 쓰여 있다. 풍수지리에 관심이 있는 산우는 미리 남연군묘를 검색하여 정독한 후에 꼭 참가하여 2대에 걸쳐 황제가 나온다는 최고 명당의 표본을 보기 바란다. 온천욕을 특히 좋아하는 나 원장은 꼭 참석하기 바란다. 이번에는 김 회장님이 생굴을 싸온다고 하니 맛있게 먹어주자.
동반시다. 우리는 만나면 늘 반갑다. 우리는 과거와 현재를 같이 하고 있고 미래를 같이 할 산우들이기 때문이다. 사랑도 그러하다. 과거에 부서질뻔한 일이 있었으면 포근하게 보듬어줄 수 있기에, 현재가 괴로우면 같이 가면 어려움은 반감된다. 미래는 희망이므로 함께 오르면 즐거움은 그 몇 배가 되기에 우리들은 항상 반갑다.
아래의 시평은 소설가 김수연이 썼다.
새벽에 길을 걷는데 갑자기 주변이 어떤 소리로 가득해졌어요. 환청 같은 소리들. 작은 알갱이들이 일제히 떨어지는 소리들. 살펴보니 그건 일기예보에서 들은 대로 말하자면, '첫눈다운 첫눈'이 아스팔트로 떨어지는 소리였어요. 영상 15도일 때, 소리는 시속 1,200㎞의 속도로 날아간다더군요. '첫눈다운 첫눈'이 떨어지는 소리는 내 곁에 있다고 치고, 그럼 지난 여름에 들었던 빗소리는 지금쯤 어디까지 날아갔을까요? 달까지? 혹은 화성 정도? 그렇다면 그 시절, 우리의 웃음소리들은 또 어디까지 날아갔을까요? 그 한숨소리는 또 어디까지?
저녁 노을, 낮은 한숨으로 지는 그대 / 정 남 식
여름 한낮 구름의 얼굴
하늘 푸른 거울에서 하야말간 낯을 지우며
햇빛은 우리 사랑의 물기를 고양이처럼 핥는다
길 떠난 사랑 또한 오지 않고
먹을거리 가게의 처마 끝엔
웬일인지 여름 고드름이 무장 열리고
오지 않는 뜨거운 사랑을 견디며
고드름을 서서 따먹는다
꼬드득, 씹는 혀끝으로 내 사랑 부르리라
사랑은 지루하게 더디고
구불구불한 날들의 끝처럼
텅 마른 그대 날 저물 듯이 오리라
그대, 구름 같은 그대
하늘 푸른 거울에 낯 붉히며 비치는 구름이여
저녁노을, 낮은 한숨으로 피었다
지는 그대
2009년 11월 27일 새벽에
詩를 사랑하는 山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도움쇠 김정남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