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산 始山祭(詩山會 제126회 산행)
산 : 도봉산
코스 : 탐방지원센터-도봉계곡-용어천계곡-관음암 사거리-마당바위-산정약수-무수골
소요시간 : 오름 1시간 반 내려옴 1시간 반
일시 : 2010년 1월 10일 10시 30분
모이는 곳 : 전철 1,7호선 도봉산역 7호선 대합실
준비물 : 막걸리, 안주, 과일, 아이젠(하산 후 뒤풀이 겸 점심은 무수골에서 흑산 홍어의 사나이
임삼환 산우가 조용하고 신나게 쏜다)
연락 : 이재웅(010-3454-7717)
블로그 : 사진 blog.daum.net/sisan20
산행기 blog.daum.net/yc012175
카페 cafe.daum.net/K-20
영하의 추위
검푸른 하늘을 향해 가지를 툭툭 뻗고 있는 고목을 보면
내 가슴은 이상하게 뜨거워오니
저 강인한 자연 속에 순명을 다하고 있는 것들의 아름다운 침묵이
내 안에서도 무지개처럼 조금씩 조금씩 달아오르기 때문일까
-모닥불’ - 이시영(1949 ~ )
이름으로 봐선 동생 같은 소한(小寒). 대한이 소한네 가서 얼어 죽었다는 추위의 절정. 하늘도 퍼렇게 질려 먹먹하니 금세 뭐라도 또 쏟고 쏟을 듯하고. 하늘 무색하게 뻗어 오른 고목도, 땅 위에 납작 엎드린 차나무도 오들오들 추위에 순종하고 있거늘. 그러나 절정의 이 추위 하얀 차 꽃 피우고 고목 크림색 가지 예비하고 있는 게 자연의 순리. 사람 마음도, 사람 사는 세상도 이와 같아 한파 속에도 달아오르는 가슴 있거늘. <이경철·문학평론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에는 103년만의 폭설이 내렸다 한다. 길이 막히고 출근이 늦어졌다고 짜증을 내기도 하나 누가 봐도 이것은 분명 서설(瑞雪)이다. 올해는 가뭄이 들지 마라는. 하여 풍년을 기약하는 祥스러운 눈이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자주 겪다보면 습관이 된다. 하물며 생각도 그럴진대 슬픔의 습관을, 비관의 습관을 버리자. 아침에 깨어났을 때 가족이 옆에 있음을, 흰 눈이 풍성하게 내려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있음을 즐거워하자. 눈도 자연의 한 조각이 아니겠는가! 정초의 서설로 인해 2010년은 우리 모두의 해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지 않는가! 한 송이 이름 모를 꽃을 피우기 위해 눈도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에게 기자가 물었다. “당신은 왜 황제가 됐다고 생각하는가?” 그의 답은 간단했다. “항상 이겨봤기에”. 승리도 습관이다. 돈을 버는 것도 습관이다. 그들은 결코 겸손하지 않다. 겸손은 공맹의 시대에 맞는 아이콘이다. 승자와 부자가 겸손한 것을 보았는가? 모험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신념이 강한 자, 하여 기(氣)가 센 자만이 승자가 되고 부자가 된다. 뒤에서 남을 비난하고 비판하는 것도 습관이 된다. 그러한 습관은 그를 제 5열로 남기고 국외자를 만든다. 뒷전에 있는 자가 승자가 되는 것은 부자가 천당에 가기보다 힘 드는 일임을 우리가 모르지 않다. 올해의 화두는 임용복 수석의 인사말처럼 “부자 되세요”로 하자.
시산회 제125회 관악산(납회) 산행 (2009. 12.19 / 이경식)
▣ 참석자 : 16명 (김정남, 김종화, 신원우, 이경식, 이원무, 이재웅, 임용복, 임삼환,
조문형, 한양기 - 산행 참석자 10명)
* 뒤풀이 합류 : 6명(김용우, 위윤환, 정해황, 최광일, 이승열, 구자빈)
▣ 동반시 : “12월”/ 안세영
▣ 뒤풀이 : 소고기, 야채 두루치기에 소,맥주 /‘우마루’(낙성대)
12월 19일,12월 세 번째 토요일이다. 오후에 최용식 친구의 장남 결혼식과 시산회 납회 일정이 겹친다. 꼭 참석해야 하는 결혼식이지만 2009년도 시산회 마지막 산행을 빼 먹을 수는 없다. 물과 같이 흐르는 세월에 사람들은 인위적으로 시간을 정하고 의미를 부여해서 축하하고 기념한다. 그래도 마지막은 뭔가 착잡하고 아쉽다. 한해를 마감하는 12월이라면 더욱 그렇다.
새삼 금년 한해를 돌이켜 본다. 가정사도, 직장도, 시산회 산행도 약간은 부족한 듯하지만 그냥 무난했다. 시산회 회원으로서 남보다 열성을 갖고 참여하지도 않아서 다른 친구들에게 도움도 주지 못했다.
무난하게 한 해의 산행을 마무리하는 데는 김종화 회장과 이재웅 총장의 남다른 노력의 결과라는 것을 회원 누구나가 너무 잘 알고 있다. 특히, 김종화 회장은 남보다 늦은 2006년 납회(50회)때 입회하여 2007년 하반기 이후부터 지금까지 총장과 회장을 역임하며 누구보다 열심히 봉사하여 왔다. 절대로 누구에게 싫은 소리 하지 못하는 게 큰 장점이자 단점이지만, 어느 누구도 그의 성실성에 이의를 달지는 못하리라.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일기예보는 오늘이 금년 들어 제일추운 영하 12도, 체감온도는 영하 18도라고 한다. 사실 이런 날은 산행이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 오랜만에 텅 빈 집에서 돌침대를 뜨끈뜨끈하게 해놓고 편하게 뒹굴었다. 주간조선을 이리저리 뒤척이면서 커피도 한 잔하고, 안방의 아늑함을 맘껏 즐기다가 아점을 들고, 스틱만 들고 사당역으로 출발했다. 배낭 없는 등판이 조금 시원하다.
사당역 오후 1시에 1명 빼고는 모두 다 모였다. 인사를 나누자마자 신원우 친구가 블랙야크 다용도 미니배낭을 선물한다. 시산회 산행기에 선물은 곰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다. 즐겁게 받았다. 그냥 삼삼오오 이합집산을 하면서 산길로 접어들었다. 바람이 별로 없어서 생각보다는 훨씬 덜 추웠다.
관음사 앞에서 우회전하여 冠登亭에 당도하니 임용복 친구가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시산회에서 관악산 지리를 제일 잘 아는 그가 오늘의 안내자이다. 임삼환이 준비한 따끈따끈한 유자차를 들면서 잠시 쉬었다. 조금 더 가서 이번에는 김정남표 한과로 입을 즐겁게 했다. 조금만 부지런하면 다른 친구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으련만 나는 그게 잘 되지 않는다.
그 마음을 알아챘는지 누군가가 낙지가 그립다고 한다. 위윤환과 내가 낙지를 잘 대령 했는데, 언제부턴가 그 미덕이 그만 사라져 버렸다. 곧 부활시켜서 친구들에게 봉사 좀 해야 할 텐데...
오늘도 한양기군의 입담은 계속이다. 등산행렬 중간에 서서 쉬지 않고 본인의 博學多識함을 우리에게 전파했다. 호르몬제 주사를 맞은 후 엉뚱하게 口力만 더 쎄진 것 같다. 주사를 잘 못 맞았나?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think tank 용량이 넘쳐서 누군가에게 풀어야 새로운 신지식이 또 유입 되리라고 이해한다.
가다보니 사진 찍기의 명소 거북바위가 나왔다. 많은 등산객들이 거북머리 부분에 올라 기념사진을 찍는다. 이사람저사람에게 무수하게 짓밟히니 거북으로 태어난 슬픈 바위가 되었다. 바다로 가야 할 거북이 산에 터를 잡고 천년세월을 버티고 있으니 무슨 전설이라도 하나 만들어서 얘깃거리를 만들어야 할 텐데.
신 이사와 김 회장 등 몇 명만 사진촬영을 하고 목적지인 마당바위로 계속 걷기로 했다. 사진 찍을 때 표정을 보면 아주 다양하다. 누구는 찍을 때마다 표정이 활짝 펴고, 누구는 항상 굳어 있다. 전작, 신원우, 기세환, 박형채, 한양기 등이 카메라 앞에서 비교적 표정을 잘 잡는다. 이번에 “산과 시”사진 편집을 하면서 새삼 느꼈다. 자연스럽게 표정을 잡는 연습을 해서 사진으로나마 좋은 분위기를 풍기는 노년으로 여러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싶다.
산행 중 여기 저기 애기가 들려온다. 사랑은 나누고, 즐거움은 더하고, 희망은 곱하고, 슬픔은 빼고... 돼지는 1년에 새끼 28마리를 낳아야 국제적으로 경제성이 있고... 산우들의 애기를 들으면서 묵묵히 걸었다
바짝 마른 낙엽이 꽈배기처럼 허리가 비뚤어진 채 살랑이는 바람에 몸을 맡기면서 이리저리 나뒹굴다 멀리 계곡으로 사라진다. 오늘의 동반시 ‘12월’에서 안세영은 “불꽃처럼 남김없이 사라져 간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라고 개체의 소멸을 허무주의적으로 미화 했지만, 내년 봄의 탄생을 기약하면서 오늘은 소멸하는 낙엽, 이것이 바로 생산적인 자연의 섭리가 아니겠는가? 나무가 수백 년 사는 건 무성한 잎을 겨울에 버리고 봄에 새 생명을 받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느덧 마당바위에 도착했다. 잠시 하산코스에 대하여 이러 저러한 애기가 있었으나 내심 겨울산행을 길게 하고 싶은 마음은 모두들 없어 보인다. 뒤풀이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도 하산 할 때가 되어서 낙성대 방향으로 코스를 잡고 긴 능선을 걸었다. 벌써 겨울산의 짧은 태양이 서쪽에 걸쳐있다. 12월의 겨울햇살은 너무 힘이 없어 보인다. 그림자만 길게 드리워져 스산한 계곡을 10명 의 산우들이 하산길을 재촉했다.
한참을 내려오니 安國祠가 나타난다. 安國祠라... 강감찬 장군을 기념하기 위한 사당이 서울대 옆(낙성대역방향)에 고즈녁히 자리 잡고 있었다. 원래 이곳은 강감찬 장군(948-1031년)이 태어날 때 하늘에서 이 자리로 별이 떨어졌다 하여 落星臺라고 한단다.
참배객 하나 없는 사당에 우리만 사진 찍고, 서명하고, 기념사진 찍고, 안내문을 읽으면서 겨울바람에 칼을 휘두르며 말을 달리는 강감찬 장군의 동상에서 그의 충절과 기상을 느낀다.
드디어 ‘友마루’에 도착했다. 며칠 전에 예약은 했으나 막상 도착하니 방이 없었다. 금년의 뒷마무리를 홀에서 하기에는 부적합하지만, 주인아줌마의 싹싹한 마음에 끌려서 마지못해 자리를 잡았다. 다음부터 납회 모임은 방이 있는 지의 여부가 최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만 할 것 같았다.
창가의 식탁에 자리를 잡고 먼저 정상에서 읊지 못한 동반시를 읊잔다. 오늘의 동반시는 내가 글짓기를 하기 때문에 내가 읊어야 하는데, 그동안 총장과 회장을 맡아 수고한 김 회장에게 시(오세영 시인의‘12월’) 낭송의 기회가 주어졌다. 한 해의 마지막달을 보내는 시점에서 동반시의 제목이 그럴싸하다. 가는 세월을 막을 순 없지만, 절망의 끝자락에서 희망의 꽃망울을 찾는 시인의 혜안이 돋보였다.
우리 시산회의 금년 한 해 산행을 뒤돌아보며 김종화 회장의 이임 인사말에 이어 금년 한 해 동안 시산회의 발전을 위해 열의와 정성을 다한 산우들(원무, 창수, 경식)의 포상이 있었고, 다음 집행부의 선임이 있었는데, 불문율이지만 총장이 후임 회장을 맡기로 되어있어 이재웅 후임 회장의 간단한 인사말을 들었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후임 총무 선임이 난제다. 신임 이재웅 회장은 어떻게든 총무를 선임하려고 노력했으나 모두 고사만 하여 총무 후보가 없단다.
임원자격에 대한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임원으로 선임되면 등산 참석률이 최소 70~80% 정도는 되어야 하고, 근무시간 중이나 집에서 아무래도 이리저리 연락을 취해야 하니 회원 모두가 무언의 부담을 갖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아무나 맡아서도 될 자리가 아니다.
시산회에 대한 열정과 보이지 않고 부드럽게 회원을 이끌어야 하는 중요한 위치다. 박형채 친구가 오늘 참석하지는 않았으나 그의 성품과 적극성을 보고 참석자 전원(16명)이 연명으로 해서 차기 총장으로 추천했다.
오늘 모임에 꼭 참석하리라 믿었던 기세환 친구가 보이질 않아서 궁금했는데, 일본 출장가서 지금 이리로 오고 있다는 전언이다. 웬만하면 공항에서 집으로 바로 가도 되는데도 굳이 모임의 끝자락에 기 산우가 차를 몰고 나타났다.
연말이라 주차난 때문에 석별의 악수만 하고 헤어졌다. 따뜻한 국물에 밥이라도 한 그릇하고 갔으면 좋으련만. 오늘 저녁도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은 오가는 사람으로 분주했다. 친구들! 내년, 庚寅年에도 산우들 모두가 건강하세나!
“12월”/ 오세영
불꽃처럼 남김없이 사라져 간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스스로 선택한 어둠을 위해
마지막 그 빛이 꺼질 때.
유성처럼 소리 없이 이 지상에 깊이 잠든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허무를 위해서 꿈이
찬란하게 무너져 내릴 때.
젊은 날을 쓸쓸히 돌이키는 눈이여,
안쓰러 마라.
생애의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
사랑은 성숙하는 것.
화안히 밝아 오는 어둠 속으로
시간의 마지막 심지가 연소할 때,
눈 떠라, 절망의 그 빛나는 눈.
시산제를 거행하는 산행이다. 납회 때 원거리는 비용이 많이 소요되니 근교의 산으로 하자는 집행부의 의견이 있어 봐둔 곳이 있는 도봉산으로 제안했고 집행부는 그곳으로 정했다. 북한산은 동장대나 사모바위 근처가 좋을 듯하나 산객이 너무 많아 번거롭고, 수락산은 번잡한 정상 부근 외에는 마땅한 곳이 없는 것 같고, 불암산도 정상 밑에 좋은 곳이 있으나 주변의 산세에 밀리는 감이 있어 다음으로 미루고 관악산은 매년 총동문회 산악회에서 시산제를 올리는 곳이니 당연히 제외한다. 도봉산은 암산이라 기가 센 곳이므로 내가 제안하여 집행부의 승낙 하에 도봉산으로 정했다. 산세를 볼 줄 아는 지인이 도봉산 중에서 가장 좋은 명당을 알려준 곳이 있으나 천기누설(?)을 했다는 걱정이 들어 생각 중이고, 오봉샘 근처가 따뜻하여 좋을 듯하나 그곳도 사람이 많아 번잡하다. 만장봉을 바라보며 도봉산 산신령을 접견할 수 있는 두 곳이 있다. 이름하여 내바위와 석굴암 밑의 국립공원·경찰구조대 건물의 뒤다. 어쨌든 용어천계곡의 따뜻하고 한적한, 절터였던 편편한 곳으로 일단 정하고 당일의 날씨를 고려하여 집행부와 산우들의 의견을 모아 당일에 최종적으로 결정하겠다.
하산하여 따뜻한 방에서 비싸지 않은 훈제오리를 먹으며 2010년의 산행을 상의하는 시작의 장으로 만들자. 모두 참석하여 의견을 풀어놓자. 처음의 계획은 이러하였으나 메일을 정리하는 수요일 밤에 이 총장을 통하여 임삼환 산우에게 연락이 왔는데 산정약수를 거쳐 무수골로 내려가면 수육을 맛있게 조리하는 집이 있어 자신이 납회 때 참석하지 못한 죄, 총장을 맡지 못하는 죄로 조용하지만 신나게 쏘겠다는 전갈이 왔다. 이럴 때는 우리도 조용히 참석하여 신나고 맛있게 먹어주는 것이 그가 쏘는 것에 대한 최대의 예우가 아니겠는가. 그의 오랜 집이 도봉에 있고 근무지도 도봉이니 거의 토박이 도봉인이므로 그의 구역에서 그는 쏘아도 되고 우리는 손님이니 받을 만하다.
마침 눈이 많이 내려 눈 내린 도봉산은 곳곳이 절경이니 카메라는 꼭 가져오자. 스틱과 아이젠도 필수다. 이 총장(?)은 시산제의 제주에게는 필히 참석할 것을 강권하기 바란다.
납회 때 방이 없어 좁은 홀에서 다른 손님들과 어울려 음식을 먹다 보니 일본에서 돌아와 길이 막힌 데다 보고 싶은 가족들을 마다하고 일부러 참석해준 기세환 전 회장에게 저녁도 대접하지 못한 미안함을 전한다. 좌석이 꽉 차서 돌아가는 손님들을 보니 미안한 마음에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었다. 김종화 전 회장과 이재웅 총장의 안절부절했던 마음을 봐서라도 해서하기 바란다. 나도 저녁을 함께 하자고 했어야 하는데 술 한잔 하자고 했으니 술을 마시지 않는 그에게 서운함을 보태 더 할 말이 없다. 미안했다.
총장을 선정하는 문제로 전임 이 총장이 속이 많이 상한 듯하다. 몇 산우가 후보에 올랐으나 모두 고사하는 바람에 이 총장도 회장직을 고사하고, 총장을 연임하겠다는 의사를 비치고 회장직을 사양하니 회장의 공백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런 사태를 예상한 것은 아니지만 초기에 회장도 총장도 없기로 하고 도움쇠를 자임했던 나로서는 걱정이다. 후에 내가 회장이 되고 한양기 산우가 총장을 맡았지만 그는 인터넷을 모르니 산행기는 내가 독점하여 쓰고 그 산행기를 메일로 보내면서 한양기 전 총장에게는 별도로 팩스를 통해 보내야 했다. 연락도 내가 했으니 1인3역이었다. 한참 후에 회비를 내고 그는 회비에 대한 정리를 했고 후에 내가 바쁠 때 연락을 부탁했다. 집행부는 희생과 봉사를 해야 하는 자리이나 길어야 1년인데 서로 미루니 답답하다. 그러나 강권할 수는 없는 일이니 전 선우나 박 산우 등도 미안해하지 마라. 어디로 가는지 물이 흐르듯 흘러가보자. 물은 절벽을 만나면 폭포가 되고 곁물을 만나면 합쳐져서 합수곡(合水谷)이 된다. 계곡에서는 춤을 추며 흘러가고, 둑을 만나면 잠시 머물다 썩기도 하지만 마침내는 큰 바다로 나가 세상을 이룬다.
프롤로그 시와 동반시를 선정하면서 프롤로그 시는 내가 선정하더라도 동반시는 산행기를 쓰는 산우가 선정하면 좋을 듯하니 이것도 시산제의 날에 상의하고 싶다. 어려울 것이 없다고 본다. 인터넷의 바다를 항해하다 보면 얻어지는 훌륭한 시가 있다. 다만 산우들은 그냥 지나칠 뿐이다. 해보지 않았기에 어렵다고 생각할 뿐이다. 산행기를 쓰는 것도 힘들어 하는데 이것도 욕심인가?
‘산과 시’의 제호를 가지고 우리의 회지를 발간했다. 전임 김종화 회장, 이재웅 총장, 이경식 산우의 노고를 높이 치하한다. 나는 처음에는 발간을 반대했으나 김종화 전임 회장의 의지가 매우 강해 더 이상 만류할 수 없었다. 나는 단지 교정만을 보았을 뿐인데 노동(?)의 강도가 너무 강해 목과 어깨, 허리가 결려 보름 이상을 고생했다. 한 편에 40분을 잡아도 백 편이니 총 4000분이 된다. 시간으로 환산하면 66시간이 되더라. 그런데 30편쯤 교정을 보다가 급한 성격이 발동하여 특유의 방정맞은(?) 실수로 교정한 것을 날려 보냈으니 한동안 자판을 두드리기가 싫어졌다. 거의 80시간을 투자하여 교정을 마쳤지만 보고 또 봐도 고칠 곳이 나오더라. 나중에는 지쳐서“여기까지”하고 포기하고 김종화 전 회장과 이경식 산우에게 넘기고는 한 동안 컴퓨터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편집과 교정을 거금의 수고료를 주고 전문가에게 맡겨도 주인이 다시 봐야한다는 경험을 아파트 분양 팜프렛을 자주 만들어본 나는 일찍이 겪은 적이 있기에 적지 않은 수고를 감수한 산우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내가 이러했는데 오랜 기간을 전적으로 발간을 맡은 세 산우들의 노고가 어떠했음을 충분히 안다. 4년 후 다음 회지를 발간할 때는 미리 준비하면 훨씬 쉬울 것이다. 적지 않은 금액을 흔쾌히 내준 산우들에게도 감사를 올린다. 그러니 앞으로는 낸 돈 아깝지 않게 많이, 자주 쓰기 바란다.
인터넷의 넓은 바다에서 항해를 즐기다가 시인 류시화의 편에서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시인. 킴벌리 커버거)이라는 시를 읽고 망설이다가 이 시로 정하고 그 시는 다음으로 미룬다. 이 시는 짧고 순하지만 전하는 메시지는 강하다. 하여 정초, 그것도 한 해의 산행을 알리는 성스러운 날에 감히 올린다.
-시평(남궁 덕. 언론인)
이 시에 설명을 붙이면 군더더기일 뿐. 읽히는 대로다. 마음을 열지 않으면 절세가인도 그냥 나무토막이나 쇠덩이에 다름 아닐 것. 한마디로 마음 먹기에 따라 세상이 달리 보인다는 얘기. 남을 탓하기보다는 내 마음을 먼저 활짝 열고. 새해를 맞이하시길. 그래야만 정령 복이 깃들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마음을 열지 않으면 / 나태주
내가 마음을 열지 않으면
흰구름도 흰구름이 아니요
꽃도 꽃이 아니다.
내가 마음을 비우지 않으면
새 소리도 새 소리가 아니요
푸른 하늘도 푸른 하늘이 아니다
내가 인정하지 않는 한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같은 강물도
결코 그림이 될 수 없으며
사랑하는 사람도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없다.
2010년 1월 7일 오전
詩를 사랑하는 山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도움쇠 김정남 올림
*시산제 축문
2010年 詩山會 도봉산 시산제
檀紀 4343年 西紀 2010年 庚寅年 1月10日 바야흐로 '詩를 사랑하는 山사람들의 모임'의 희망을 밝히는 찬란한 새해를 맞으며 '詩를 사랑하는 山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會員 一同은 庚寅년 도봉산 始山祭를 행함에 앞서 天地神明과 도봉산 山神께 엎드려 고하나이다.
전지전능하신 천지신명이시여. 금일 우리는 선현의 발자취가 은은히 느껴지는 이곳에서 지난 한해를 감사하고 반성하며 내일의 번영과 도약을 다짐하기 위한 일념으로 전체 회원의 정성을 모아 성스러운 祭를 올리나이다.
우리 시산회 일동은 산행을 통하여 대자연의 정취와 미의 극치 속에서 자연을 흠모하며 자연과 동화되며 125회의 산행을 통하여 인내와 협동으로 화목과 단결을 배웠으며 소박하고 준엄한 교훈 속에서 심신을 단련하여 왔습니다.
거듭 비옵건대 경인년 한해도 우리 회원 모두를 굽어 살피시어 화합 속에서 안전한 산행이 되도록 엎드려 고하나니, 천지신명이시여, 우리가 정성을 다해 올리는 이 술들을 흔쾌히 흠향하여 주옵소서.
檀紀 4343年 西紀 2010年 1月10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