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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비봉산에 오릅니다(詩山會 제392회 산행)

비봉산에 오릅니다(詩山會 392회 산행)

일시 : 2020. 8. 23. 10 : 30.

만나는 곳 : 안양역 2번 출구

준비 : 성인음료, 간식

 

1.시가 있는 산행

 

숨은 운명 / 천수호

 

아무리 더 가지려 해도

()은 단호하게 거기까지!” 네 음절의 칼날로 내리친다

칼끝과 칼끝이 부딪치며 멈춘

냉철한 선()의 세계

 

더 가질 수 있는 날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니까

 

틀이 깨질 때까지 수건을 절반으로 접는 연습을 했다

저곳은 유연해

허리를 쉽게 휘는 것들은 창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아

 

묘안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눈동자가 봉분 같은 고양이가

물어뜯을 것이 있는 쪽으로 허리를 휘는 장면처럼

매미소리가 내 몸을 아무 곳이나 뚫으면서 애벌레 걸음으로 왔다가 간다

 

내게 저렇게 왔다 가는 것들

창을 건드리지 않으면 도저히 담장을 넘을 수 없는 것들

 

창을 내다보다가

순간이라는 말이

화면을 닫았다가 열면서 검은 새떼를 쫓는 장면을 목격한다

 

오늘의 창은 여기까지!

선을 자르는 칼날 연습 중

 

불쑥 나타났다가 사라진 몇 마리 하루살이의 율동으로

맨발은 더 걸어 나갈 수가 없다

 

창을 깨고 맨발이 피를 흘린다

 

아무리 더 가지지 않으려 해도 운명은 숨어서

바깥 날씨를 마음껏 저장하고 있다

 

계간 시와 사람2020년 봄호

1964년 경북 경산 출생
명지대 박사과정 수료
2003조선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아주 붉은 현기증』 『우울은 허밍

 

2.산행기 / 정겹고 아름다운 산행 사진으로 대체하니 많이 방문해서 함께 즐깁시다.

 

시산회 391'왕송호수'(용문산 대체) 탐방 사진"2020.08.08()김종화

산책(대체) : 용문산 산행이나 장마철로 비가 올 것 같아 의왕시 의왕역 옆 '왕송호수' 산책으로 대체함.

산책코스 : 의왕역-생태학습교육장-연꽃밭-팝업뮤지엄-레일바이크정차장-포토존-스피드존-미스트존-탑습장-꽃터널-뒤풀이 식당-조류생태과학관-연꽃밭-의왕역

동반시 : "8월의 시" / 오세영, "그늘 만들기" / 홍수희

뒤풀이 : '파전' ·맥주막걸리 / "함지박 칼국수 보리밥 정식"<의왕시 월암동, (031) 462-1278>

 

동반시

 

"8월의 시" / 오세영

 

8월은
오르는 길을 멈추고 한번쯤
돌아가는 길을 생각하게 만드는
달이다

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
가는 파도가 오는 파도를 만나듯
인생이란 가는 것이 또한
오는 것
풀섶에 산나리, 초롱꽃이 한창인데
세상은 온통 초록으로 법석이는데

8월은
정상에 오르기 전 한번쯤
녹음에 지쳐 단풍이 드는
가을산을 생각하는
달이다

 

"그늘 만들기" / 홍수희

 

8월의 땡볕
아래에 서면
내가 가진 그늘이
너무 작았네...

 

애써 이글대는
태양을 보면
홀로 선 내 그림자
너무 작았네

벗이여,
이리 오세요
홀로 선 채
이 세상 슬픔이
지워지나요

나뭇잎과 나뭇잎이
손잡고 한여름
감미로운 그늘을
만들어가듯...

 

네 근심이
나의 근심이 되고
네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될 때

벗이여,
우리도 서로의
그늘아래 쉬어 갑시다

 

3.오르는 산

이번 산행에 비봉산을 추천합니다. 대림대 뒷산으로 옛날 소나무가 군락을 이룬 해발 295미터의 아름다운 산입니다. 두 세 시간 산행 후 인근에 맛좋은 보리밥집에서 점심하면 딱 좋습니다. 아름다운 산우 나양주의 추천의 말씀이다.

올 여름은 유난히 날씨가 신경질을 부려 오르느 우리는 빛나지만 산을 탐색하여 골라야 하는 수고를 겪는 홍 총장님은 눈물겹습니다. 그 또한 지나가리니, 피할 수 없으면 즐깁시다.

 

4.동반시

한때 유명한 소설가였지만 연로해서인지 새 작품은 나오지 않는다. 요즘은 소설가 한승원보다 맨 부커 국제 문학상 수상자 소설가 한강의 아버지로 불린다. 훌륭한 소설가를 딸로 둔 아비의 자랑이다. 시인 고은이 노벨상을 꿈 꿨다지만 지금은 중국의 장강을 넘어간 옛이야기고, ‘한강이라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지 않을까고 조심스럽게 기다려본다. 몇 년 전 가족여행으로 간 장흥의 바닷가 어느 길에는 한승원길이라는 이정표가 바닷바람에도 정좌하고 있다. 아아, 나도 그쯤에 혼자 살면서 노후를 보내면 얼마나 좋을까. 동네 아줌마들 모아 철학을 곁들인 시교실에서 창작의욕을 자극하면서 생을 조용히 마감하고 싶다. 지금은 천안 호두마을 명상센터 마하시선원의 조그마한 꾸띠(개인 수행처)에서 걸림이 없는 주말을 즐기고 있다. 그러나 소설과 시의 간극에서 헤매고 있으니 날은 저물어 가는데 아직 길은 멀다. 잘들 다녀오시라.

 

노을 / 한승원

 

한여름의 뙤약볕 속에서 포장도로위에 던져진 그대의

뜨거운 피 속에서 내가 타고

내속에서 그대가 타고 있다

재가 된 나와

그대는 잎사귀에 스며들고 스며들어 비가 되어 쏟아지고

꽃이 된다.

 

2020. 8. 20.

시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詩山會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