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산에 오릅니다(詩山會 제128회 산행)
산 : 천마산(812 미터. 남양주 마석)
코스 : 청소년 수련장-정상-과라리 고개-보광사-가곡리 혹은 상명생활관-호평리로 하산
소요시간 : 오름 2시간 내려옴 2시간
일시 : 2010년 2월 7일(일) 10시
모이는 곳 : 마석역 조금 못 가서 쉼터휴게소. 청소년수련원 입구이다. 북부지역은 청량리에 서 함께 갈 예정이니 강남도 모아서 가면 좋을 듯. 마석역에서 가깝다.
준비물 : 막걸리, 안주, 과일, 카메라. 아이젠(하산 후 뒤풀이 겸 점심)
연락 : 이재웅(010-3454-7717)
블로그 : 사진 blog.daum.net/sisan20
산행기 blog.daum.net/yc012175
카페 cafe.daum.net/K-20
가까이 다가서기 전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어 보이는
아무것도 피울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겨울 들판을 거닐며
매운 바람 끝자락도 맞을 만치 맞으면
오히려 더욱 따사로움을 알았다
듬성듬성 아직은 덜 녹은 눈발이
땅의 품안으로 녹아들기를 꿈꾸며 뒤척이고
논두렁 밭두렁 사이사이
초록빛 싱싱한 키 작은
들풀 또한 고만고만 모여 앉아
저만치 밀려오는 햇살을 기다리고 있었다
(중략)
겨울 들판을 거닐며
겨울 들판이나 사람이나 가까이 다가서지도 않으면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을 거라고
아무것도 키울 수 없을 거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기로 했다.
-겨울 들판을 걸으며(부분) -허형만(1945~ )
짧아서가 아니라 2월 이미지는 아무것도 없는, 겨울 들판 같은데. 그래 자연과 한 몸으로 살던 인디언 수우족은 ‘홀로 걷는 달’이라 불렀던가. 홀로 겨울 들판 걸으며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매운 바람 다 맞고 난 후 움트는 희망 몸소 체험하란 달일까. 추운 것들끼리 오종종하게 모여 서로 감싸 안는 체온들이 따스운 햇살 부르는 2월. <이경철·문학평론가>
2월 시샘달-잎샘추위와 꽃샘추위가 있는 겨울의 끝 달이다. 봄이 멀지 않은 입춘이다. 겨우내 움츠렸던 가슴을 펴보자.
제127회 주흘산 산행기
(2010.01.23/이경식)
▣ 참석자 : 김용우, 김정남, 이경식, 이원무, 이재웅, 정해황
▣ 동반시 :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킴벌리 커버거)
잠실에 도착해보니 오늘 참석인원이 6명이다.
오랜만에 가는 장거리 산행인데 참석인원이 너무 적다.
영하 12도의 날씨 탓 인가 ?
세월에 비례하여 약해지는 건강 탓인가..?
아니면 의욕상실인가 ?
사실 오늘 같은 엄동설한의 새벽 등산은 의지가 없으면 가기가 어렵다.
아침에 주섬주섬 옷을 챙기고 있는데 “젊은 청춘도 아닌 영감님이 이 추운데 어딜 산에 가셔..? ” 와이프가 핀잔을 준다.
산우들하고 애기해 보니 모두들 오늘 등산을 집에서 만류한 모양이다.
해황이도, 용우도, 정남이도.....마나님들이 집에서 한소리씩 했다고 한다.
07시10분 잠실을 출발하여 09시27분에 문경세재 주차장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차가운 세재의 골짜기 바람이 확 밀려온다.
모두들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중무장을 했다.
추위 때문에 오늘 산행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물러 설 수 없는 일, 오르자 그러다 보면 추위도 도망가겠지...
해발 640미터 이정표에 도착하여 정남표 한과, 용우표 조껍데기술, 재웅표 쵸코바로 군것질을 하고 잠시 쉬었다.
길바닥은 돌멩이와 잔설과 빙판이 어우러져 때로는 경사가 급하고 때로는 완만하기를 반복했다.
11시40분경, 아뿔사 안전사고가 났다.
약수터 근방에서 앞에 가던 이재웅 총장이 빙판에서 순식간에 어~~하면서 넘어진다.
오른쪽 눈 위에서 피가 솟아 나왔다. 상처를 보니 조금 깊었다. 대강의 응급처치를 하고 산행을 계속했다.
마지막 정상 100미터 지점에 도착했다.
멀리 산 정상부위의 상고대가 햇볕에 반사되어 고고하게 경관을 뽐내고 있었다.
길바닥은 온통 빙판으로 굉장히 미끄러웠다.
13시, 드디어 주흘산 정상에 도착했다.
정남표 한과와 굴로 피로를 풀고 탁 트인 겨울산하를 보면서 우리는 자위했다.
“그래도 집에서 텔레비전 보면서 빈둥거리는 것보다는 이게 훨씬 좋아...”
암 좋고말고....비할 데가 있으랴..
해발 1000여 미터 정상에서 이경식이 낭랑하게 시를 읊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
30분 쯤 머물다 13시30분에 하산을 시작했다
오를 때는 다른 등산팀이 거의 없었으나 하산 시에는 몇몇 팀이 보였다.
전부합해도 10여 팀이나 될까..?
장엄한 겨울산은 조용한데 우리와 겨울바람만 바삐 서둘러서 계곡을 빠져 나오는 것 같았다.
이윽고 14시40분에 해국사 앞에 도착했다.
고려 공민왕이 피난와서 한동안 머물렀다는 애기가 전해지는 절이다.
드디어 15시30분에 제 1관문에 도착했다.
관광안내소에서 이 총장의 상처를 좀 더 확실하게 지혈시킨 후에 파전과 막걸리로 뒤풀이를 했다.
17시05분에 서울을 향하여 출발,19시23분에 7호선 청담역에 도착하여 해산했다.
※ 산행후기에 대하여 얘기가 많았다.
산행기를 쓸려면 특별하게 쓸 말도 없고 부담스러우니 특별한 산이 아니면 짧고 간단하 게 기록만 남기자 라는 의견이다.
오늘 산행은 이렇게 간단하게 기록만 남긴다.
이후에 쓰는 사람도 참고 했으면 한다.
그러나 자유롭게...할 말이 많으면 길게 쓰고...없으면 짧게 쓰고...자유롭게 쓰자.
각 개인의 성향대로 느낌대로 그냥 썼으면 한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 킴벌리 커버거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
금방 학교를 졸업하고 머지않아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으리라.
아니, 그런 것들을 잊어 버렸으리라.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에는
신경쓰지 않았으리라.
그 대신 내가 가진 생명력과 단단한 피부를 더 가치있게 여겼으리라.
더 많이 놀고, 덜 초조해 했으리라.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데 있음을 기억했으리라.
부모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고
또한 그들이 내게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사랑에 더 열중하고
그 결말에 대해선 덜 걱정했으리라.
설령 그것이 실패로 끝난다 해도
더 좋은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아, 나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리라.
더 많은 용기를 가졌으리라.
모든 사람들에게서 좋은 면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그들과 함께 나눴으리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나는 분명코 춤추는 법을 배웠으리라.
내 육체를 있는 그대로 좋아했으리라.
내가 만나는 사람을 신뢰하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었으리라.
입맞춤을 즐겼으리라.
정말로 자주 입을 맞췄으리라.
분명코 더 감사하고,
더 많이 행복해 했으리라.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이번 근교 산행지는 주흘산에서 결정하지 못하고, 며칠 전 나의 제안에 따라 근교의 산들은 수차례 올랐으니 가깝지만 오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천마산으로 집행부에서 결정했다. 근교이므로 양평 청계산보다 가까우나 버스로 가면 시간은 더 걸린다. 청량리에서 춘천행 기차를 타고 마석에서 내리면 편하다. 다만 시간을 잘 맞춰가지 않아 차를 놓치면 배차의 간격이 길어 못 가는 수도 있다. 근교의 산행은 서울시내에 있는 산보다 버스나 기차로 1시간 정도 가서 오르는 산행을 생각해본다. 교통이 편해 대학시절이나 직장에 다닐 때 자주 오른 산이다. 최근에 오른 것을 본다. 산행노트에 ‘2001. 12. 26. 맑음. 호평리 평내역을 지나 상명학원 생활관-계곡-천마의 집-정상-청소년수련장-입구. 오름 1:40 내려옴 1:20.’이라고 간단히 쓰여 있다. 뒤편은 흙길이나 이번에 오르는 코스는 암릉이 좋다. 정상의 조명도 좋아 화악산, 명지산, 용문산 등 근처의 명산들이 모두 보인다. 겨울의 끝달이다. 봄이 멀지 않은 입춘이다. 2월은 특히 짧다. 춥다고 집안에서 웅크리고 있는 것보다 밖으로 나와 높은 산에 올라 먼 곳을 바라보며 막걸리 한잔에 큰 시름을 달래보자. 그리고 하루를 즐기자. 좋은 산우들이 있지 않은가! 낮지 않은 주흘산에 올라보니 봄이나 여름에 그리도 힘들게 올랐던 산이 산우들과 막걸리에 맛난 안주를 먹어가며, 정담도 나누며 천천히 오르다보니 하나도 힘이 들지 않더라. 정상에서 결정할 일이지만 호평리로 하산하면 천마산 곰탕으로 유명한 집이 있다. 곰탕보다 약간 비싸지만 임금탕은 인삼과 마를 갈아 국물을 만들었으니 먹을 만하다.
동반시다. 2010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된 시다. 어렵지만 여러 번 읽어보니 조금은 마음에 다가오는 시다. 하여 동반시로 추천하고 싶어졌다. 탁 트인 천마의 정상에서 낭송해보자. 오래 전이라 기억이 희미하지만 직업의 15가지 대분류 중 가장 보람 있고 즐거운 직업으로 첫손을 꼽는 것이 사진작가다. 다음이 문학작가다. 시인이나 소설가, 수필가, 평론가, 극작가 등을 망라한다. 셋째가 작곡가다. 넷째는 화가다. 공히 창조를 주로 하는 직업이다. 창조를 하는 것은 항상 마음을 설레게 한다. 돈 잘 버는 의사와 사업가는 뒤에서 두 번째와 세 번째, 즉 앞에서 열세 번째와 열네 번째다. 공히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이다. 이런 좋은 시는 배가 고파야 탄생한다니 참으로 ‘세상만사는 빛과 그림자가 공존한다’에 공감한다. 시쳇말로 뭐가 좋은 지 살아봐야 안다. 이런 좋은 시를 쓰고 싶은 가난한(?) 산우는 글을 쓰는 일에 매진해볼 일이다. 이제 85세까지 살아야 한다니 긴긴밤과 낮을 어찌 살까나. 돈도 안 되지만 돈이 들지도 않는 일이다.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은 치매에 걸리지 않는단다. 40대에도 치매가 발생하는 세상이다. 잘 생각해보라.
아래에 당선소감과 당선이유를 게재한다.
“독립군처럼 글을 써왔습니다.”
시 부문 당선자 이만섭 씨(55)는 제대로 된 문학 수업 한 번 받은 적 없다. 정읍농고 졸업이 최종 학력이다. 중학교 2학년 때 전북 고창의 ‘벽촌 산골 학교’에서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읽고 문학에의 꿈을 품었지만 집안의 반대로 문학 공부를 지속할 수 없었다. 이 씨의 ‘문학 독학’은 그렇게 시작됐다.
건설·주택 관련 일을 하고 리모델링 사무실을 운영하며 돈을 벌었고, 김윤식·김현 등의 평론집과 ‘문학사상’ ‘현대문학’ 등 문학잡지를 빼놓지 않고 구독하며 문학의 꿈을 놓지 않았다. 처음에는 소설을 쓰고 싶어 소설 공부와 소설 쓰기에 매진했다. 이문구와 김주영의 소설 등 1970년대 작가들의 소설을 섭렵했다. 그러다가 5년 전부터 시를 썼다. 장에 천공이 생기면서 치료를 위해 일을 그만두고서다.
“수술받고 요양하면서 시간이 많이 생기니까 시를 본격적으로 쓰게 되더군요. 병석에 있었던 시간들이 오히려 시 쓰기의 끈을 붙잡아 준 것 같아요.”
좋았기 때문에 계속 할 수밖에 없었던 글쓰기다. 김승희 시인의 “목숨 걸고 쓰라”는 말을 되새기며 글을 썼다. “우러나와서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불가피한 일”이라고 그는 말했다.
인터넷에서 문학 카페를 운영하며 글을 썼고, 5년간 1600여 편의 시를 써왔다. 지방 문예지 등을 통해 등단할 수 있는 기회가 몇 차례 있었지만 마다하다가, 지난해부터 주변 친구들의 권유로 신춘문예에 응모하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두 번째, 올해 당선됐다.
집 앞 슈퍼마켓에 포도를 사러 나갔다가 당선 소식을 들은 그는 순간 먹먹해 할 말을 잊었다고 했다. 묵묵히 남편을 지켜봤던 아내와 두 아들은 뜨거운 축하를 보냈다. 자식이 ‘돈 안 되는 문학’을 하는 것을 한사코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던 팔순 어머니도 지인이 당선 축하의 의미로 보내온 꽃바구니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셨다.
당선작 ‘직선의 방식’은 사물을 바라보는 이 씨의 깊은 사유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사물이나 대상과의 교감을 통해 이끌어낸 정제된 언어로 시를 쓰고 싶다”는 이 씨의 말처럼 직선에 대한 이 씨의 사유가 정갈한 언어로 담겨 있다. 서정주, 박재삼, 고정희, 김명인, 나희덕 시인의 시를 좋아하는 이 씨는 “사유를 담는 좋은 시, 참된 시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신춘문예 당선작은 한 편만 실리는데 한 편으로 스스로를 지탱할 만한 표면장력이 제일 센 분이 이만섭이었다.
당선작 ‘직선의 방식’의 시인 이만섭에게서는 붓이 닳아지도록 그림을 많이 그린 화가가 느껴진다. 안정감이 있다. 그런데 그의 포에지랄지 시상이 한 지점에서 맴돌고 있다. 말하자면 거듭 부연하고 있다. 만만찮게 여겨지는 그의 역량이 그에 대해 스스로를 어떻게 설득하고 깨뜨려 다른 세계를 열어줄지 궁금하다. 축하드린다.
직선의 방식 / 이 만 섭
직선은 천성이 분명하다 바르고 기껍고
직선일수록 자신만만한 표정이다
이는 곧 정직한 내력을 지녔다 하겠는데
현악기의 줄처럼 그 힘을 팽창시켜 울리는 소리도
직선을 이루는 한 형식이다
나태하거나 느슨한 법 없이
망설이지 않고 배회하지 않으며
좋으면 좋다고 싫으면 싫다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단순한 정직이다
밤하늘에 달이 차오를 때
지평선이 반듯하게 선을 긋고 열리는 일이나
별빛이 어둠 속을 뻗쳐와
여과 없이 눈빛과 마주치는 것도
직선의 또 다른 모습이다
가령, 빨랫줄에 바지랑대를 세우는 일은
직선의 힘을 얻어
허공을 가르며 쏘아대는 직사광선을
놓치지 않으려는 뜻이 담겨있다
그로 인하여 빨래는
마음 놓고 햇볕에 말릴 수 있을
것이다
바지랑대는 빨랫줄로 말미암고
빨랫줄은 바지랑대 때문에 더욱 올곧아지는
그 기꺼운 방식
2010년 2월 3일 몹시 추운 날 아침
詩를 사랑하는 山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도움쇠 김정남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