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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문경새재 주흘산(詩山會 제127회 산행)

문경새재 주흘산(詩山會 제127회 산행)

산 : 주흘산(1106 미터. 문경)

코스 : 새재 1관문(주흘관)-여궁폭포-혜국사-정상(영봉)-원점회귀

소요시간 : 오름 2시간 반 내려옴 2시간

일시 : 2010년 1월 23일(토) 아침 7시

모이는 곳 : 전철 2호선 잠실역 3번 출구

준비물 : 막걸리, 안주, 과일, 아이젠(하산 후 뒤풀이 겸 점심은 새재 1관문 앞 주막

에서 먹 을 예정)

연락 : 이재웅(010-3454-7717)

블로그 : 사진 blog.daum.net/sisan20

산행기 blog.daum.net/yc012175

카페 cafe.daum.net/K-20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 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 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바람의 말/마종기(전문)

 

 

이상하게 심금을 울리는 무거운 시다. 내게는 좋은 시를 간직하는 노트가 있는데 낯이 익기에 전에 올렸는지 한참을 찾아봐도 없다. 어두웠기에, 무거웠기에 동반하지 않았나 보다. 내 마음이 어두워서 이 시를 이제 올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걸까? 어둡다고, 힘들다고 외면하고 포기할 인생은 없다. 내 인생에서 버리는 것도 취하는 것도 모두가 나의 몫인 것을 어찌할 것인가.

 

 

1월의 둘째 일요일. 10일. 구름.

참석 : 김종화, 김순단, 박형채, 임삼환, 위윤환, 이경식, 정해황, 김정남, 한양기, 이원무, 한천옥, 신원우, 조문형, 최광일, 이재웅(15인의 산우. 염재홍 산우는 뒤풀이에 참석. 계 16인)

1월을 해오름달이라 한다. 새해 아침 떠오르는 해처럼 희망을 안고 힘있게 한 해를 시작하는 달이다.

1월의 첫째 산행이 시산제라 술도 참았고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씻고 아침에 집을 나선다. 이 총장이 마침 집까지 방문하여 시산지 ‘산과 시’를 받아든 마음은 감회가 깊다. 교정과정에서 미리 읽었기에 내용을 더 볼 필요는 없다. 다만 내가 쓴 부분의 내용이 지금에 다시 보려니 부끄럽고 민망하다. 시산제를 거행하는 경건한 날이라 마음도 부드럽고 넓게 가지려고 중·고동창인 김명호 신경정신과 원장에게 받은 우울증약을 빼지 않고 복용하고 집을 나선다. 사람으로 인해 생긴 병이라 대화 중에 자주 각(角)이 세워지니 걱정이다.

 

기상청이 생긴 이래 104년 만에 가장 눈이 많이 내려 가까이 보이는 도봉산이 흰 눈으로 덮여 있다. 다만 자운봉, 선인봉, 만장봉 부근은 온통 바위라 눈이 쌓이지 않고 암봉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집결지에 도착하니 9시30분이다. 무려 한 시간이나 남았다. 집행부에 관한 걱정이 많은 이 총장이 그 얘기를 하려고 작심하고 일부러 집에 빨리 온 것으로 사려된다. 많은 얘기를 나눴지만 둘이서는 결론을 낼 수도, 결론이 날 리도 없다. 자신이 이미 뱉은 말이니 주어 담을 수도 없는 일이니 회장은 잠시 공석으로 놔두고 혼자서 꾸려갈 테니 나더러 옆에서 보조하면서 도와달라는데 작년 후반기에 거의 나오지 못한 나로서는 거절할 명분이 없다. 도움쇠의 직을 충실히 해달라는 부탁에 다름 아니다. 이제 틀이 잡혀 내가 없다고 좌초할 것도 아닌데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마침 금강경의 한 귀절이 생각났다. “큰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말씀이 그의 심정일까 싶다. 지금은 그가 시산회의 중심이고 실세(實勢)이지 않은가! 그가 하는 말의 행간을 읽어 보았으니 내 맘도 무겁다. 이제는 회원 중에 지명하여 회장직 등을 부탁하기도 싫으니 그냥 흘러가자고 했다. 회장직이 절대로 필요한 자리도 아니고 산행기를 써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니 산행기를 쓰는 것은 가나다 순으로 돌아가면서 쓰면 되는 일이나 우선 안 쓴 산우들은 한 번은 써야한다고 하면서 거명을 한다. 그 산우들은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같은 비용을 내면서 한 번이라도 더 써야 남는 장사다. 그러니 사양할 일이 아니다. 나도 많이 썼다고 많이 내기 싫다. 다만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는 김종화 전 회장이나 이경식 산우, 내가 꼭 참석하여 써달라는 부탁이 있었다.

 

작년 후반기에 개인적으로 어려운 일이 있어 자주 불참했다. 그동안 동반시 선정, 산행기 마무리 등 어려운 부탁을 모두 받아주고 무리 없이 잘 꾸려준 김종화 전 회장이 수고가 많았다. 그러한 수고를 말로 다할 수 없다. 마음으로 받아주기 바란다. 특히 회지 발간과정에서 김종화, 이경식, 이재웅 산우의 수고가 많았으니 저녁이라도 함께 하자는 약속이 있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참석회수가 3분의 2가 넘어야, 총무를 해야, 가입한 지 수 년이 지나야, 경제적으로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조건은 빼고 자진하여 나서서 자신의 색깔로 시산회를 함께 이끌어가고 싶은 산우 어디 없는가?! 위의 조건을 충족하는 산우가 어디 흔한가? 이 총장의 지엄한 명에 의해 내가 총장 보조 및 자문의 역을 맡았으니 내 색깔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내 색깔은 너무 급하고 강해 나도 내가 싫을 때가 많다. 메일을 보니 임시회장의 직을 감히(?) 총장이 임명했으나 월권(?)이므로 그것만은 사양한다. 김종화 전 회장이 회장의 직을 못한다고 했으므로 등반대장의 직을 나도 맡지 못하니 위윤환 산우가 계속 맡아주기 바란다. 대신 부(副)대장을 하겠다. 이경식 산우가 문화부장을 거론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헤어졌다. 자진하여 맡아주면 고맙기 이를 데 없는 일이다. 역활에 대한 압박감이 있으므로 복수로 그 직책을 맡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어려운 얘기를 했으나 우리도 계곡의 물처럼 천천히 흘러 가보자. 아니면 서쪽에서 항상 불어오는 가을철 하늬바람을 타고 느긋하게 날아 가보자. 언젠가는 다시 자리를 잡을 게다. 비 온 후에 땅은 더 굳는다지 않는가.

 

약간 늦은 산우가 있었으나 오지 못한다는 등반대장 위윤환 산우까지 와주니 더 반가웠다. 오랜만에 참석해준 김순단 선생도 반가웠다. 기온은 많이 내려 새벽에는 영하11도다. 100 미터를 올라갈 때마다 기온은 0.7도씩 내려가므로 산은 더 춥다. 바람이 불어 더 추워지면 용어천계곡의 양지바른 절터를 시산제를 거행할 장소로 생각했는데 바람이 불지 않아 모두에게 의견을 물어보니 신원우 이사가 기가 쎈 풍수지리 상의 명당으로 하자고 강하게 주장한다. 모두 이의 없이 동의한다. 제수음식이 많고 무거워 모두에게 나눠서 분담시키니 가볍다. 우리의 역활과 직책도 이러면 좋을 텐데 서로 미루고 있으니 답답하다.

 

대강의 코스를 설명하고 이원무 산우의 전례처럼 대열에서 이탈할 경우에 대비하여 갈림길과 휴식처를 정하고 1차 목적지인 국립공원 및 경찰구조대를 향해 전진. 그곳은 한 건물이나 방을 따로 하여 근무한다. 경찰구조대는 상근이고 국립공원은 낮에만 근무한다. 사고가 나서 신고하면 그들이 가서 경미한 경우는 간단히 처치한 후 부축하고 내려오지만 중상의 경우는 그들의 결정에 따라 헬기가 뜬다. 헬기가 한 번 뜨면 200만원에서 400만원이 든다고 하나 무료이다. 그 비용은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하니 좋은 세상이다.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여 탈세하지 말고 세금을 많이 내고 살자. 15인의 산우가 위풍당당하게 오른다. 많이 참석하니 보기에도 좋다.

 

전과가 있는 이원무 산우에게는 특별히 주의를 환기시키고 다짐을 받는다. 탐방지원센터에 물어 보니 11시 현재 3200명이 통과했단다. 여름 한철에는 주말에 3만 명까지 오른단다. 이렇게 많이 오니 산이 몸살이 날 만하다. 정암 조광조 선생과 우암 송시열을 모시는 도봉서원 앞에서 아이젠을 부착하고 눈 쌓인 코스를 천천히 오르니 도봉의 암봉들이 바로 올려다 보이는 대피소와 등산학교가 있는 시인의 마을에서 잠시 휴식하고 인원점검. 올해부터 다시 등산학교를 활성화한다는 신 이사의 설명이 있었다. 이쯤 오면 한양기 산우의 입산주 타령이 나올 만한데 오늘은 경건한 날이라 조용하다. 산신령에게 올리는 술을 먼저 마실 수 없는 일. 좁은 길인데 벌써 올라갔다 내려오는 산객이 많아 빨리 오를 수 없다.

 

만월암 갈림길에서 다시 인원을 점검하고 도봉산에서 제일 맛있다는 약수인 ‘푸른 샘’에서 약수 한잔 하자고 제안하고, 오르는 길목에서 약간 들어간 곳에서 사철 마르지 않는 약수 한 잔씩. 시원하지 않고 미지근하다. 당연하다. 겨울이니까. 여름에는 입이 시릴 만큼 시원하다. 12시 15분. 1차 목적지인 구조대 옆의 너른 공터에 섰다. 암봉들이 아득하게 올려다 보인다. 언제 보아도 멋있는 암봉들이다. 항상 산꾼들이 붙어 있는데 겨울에는 없다. 도봉의 암릉을 오르는 산꾼들은 북한산 인수봉의 산꾼들을 초보로 본다고 하니 그 만큼 난이도가 높다는 의미다. 요즘은 암벽을 타는 장비가 매우 발달하여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조심하면 거의 사고가 없다. 건방지게 안전장비를 갖추지 않고 릿지(암릉)를 타는 산꾼들이 부상을 당하는 사고가 난다고 한다. 이 장소도 시산제를 지내기에 좋다는 의견이 나왔으나 지나다니는 산객들이 많다는 이유로 신 이사는 명당자리로 옮길 것을 주장한다. 거기까지는 3분 거리.

 

자리를 옮기고 주산, 좌청룡 우백호가 뚜렷한 자리로 이동했다. 나뭇가지 사이로 선인봉이 뚜렷히 보인다. 모두에게 맡겼던 제수음식이 나오고 이 총장은 정성스레 음식을 차린다. 이원무 산우가 포도주를, 정해황 산우가 모시쑤떡, 내가 한과를 더 내어 놓는다. 엄숙하게 시산제를 거행한다. 박형채 산우는 붓글씨로 쓴 시산제임을 나타내는 제호의 프랭카드를 준비해 왔으니 정성이 가득하다. 촛불을 켜고 향을 올린다. 이 총장은 시산제를 진행하는 사회의 역할을 하고 제주는 순서에 따라 박형채 산우가 맡는다. 이 총장이 준비해온 식순에 따라 엄숙히 거행하고 모두 산신령에게 재배를 하고 회장이 공석인 관계로 전임 회장이었던 기세환 산우가 불참했으므로 초대 회장이었던 내가 축문을 읽는다. 종헌례를 마치고 음복례까지 끝났다. 한양기 산우는 내가 가져온 한과를 먹으면서 집사람인 전 여사가 만들었느냐고 묻기에 더 맛있으라고 립써비스 차원에서 그렇다고 하니 너도 나도 한 점씩 입에 넣는다. 요즈음 한과를 집에서 만드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한과공장을 하는 친구가 매달 한 상자를 보내오는 덕분에 가져온다. 한과공장을 운영하는 날까지 보내준다고 약속했다. 팥과 찹쌀로 만든 제수떡이 맛있다고 한 마디씩 한다. 이 총장이 제수음식을 준비하느라 고생했다. 대부분의 산우들은 술들을 거의 마시지 않는다. 그러나 이원무 산우가 내어놓은 포도주는 일찍 동이 난다. 이제는 술은 목을 축일 정도만 마시고 취하기 위해 마시는 산우는 거의 없다. 나이 탓인가, 산행을 건전하고 즐겁게 하려는 산우들의 마음이 엿보인다. 우리가 먹산회라는 별칭은 있으나 주산회(酒山會)라는 별칭이 없는 게 다행이다. 경건한 마음으로 엄숙하게 시산제를 마치고 하산. 시산제의 진행과정을 사진으로 남겼으니 동창회 카페 k-20마을로 들어가서 보기 바란다.

도봉산 신령님! 올해도 무탈하고 즐겁게 산행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임삼환 산우가 예약하고 아침에 봐둔 음식점으로 이동. 임삼환 산우가 쏘기로 한 음식점이다. 산정약수를 지나 무수골로 내려가려 했으나 모두의 의견이 30분이 더 소요되는 그 코스보다 도봉산 입구로 가서 버스를 타고 가는 짧은 코스로 선택하자는 의견이 지배적인 것을 보면 역시 먹산회다. 염재홍 산우가 뒤풀이 장소에 미리 와 있다. 기세환 전 회장은 장소를 물어보았다는데 분당에서 거리가 멀었는지 오지 않았다. 산행 후의 맥주는 역시 ‘이맛’이다. 배가 고프니 수육과 육회가 맛있고 후에 나온 설렁탕도 모두 비운다. 오늘의 동반시는 산행기를 쓰기로 한 내가 읽을 차례였으나 제주인 박형채 산우가 읊었다. 당연히 제주가 오늘은 제일 주요 인사 아닌가. 식사 도중에 공석 중인 집행부에 관한 의견이 나왔으나 약속이 지켜지지 못해 무효가 되었으니 더 거론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뒤풀이가 끝나고 나와서 신 이사의 제안에 따라 동그랗게 둘러서서 손을 모으고 시산! 시산! 시산회!를 외치고 헤어졌다. 아쉬운 점이 있었으나 즐거운 하루를 보냈음을 의심할 바 없다. 그날 뒤풀이를 흔쾌히 쏴준 임삼환 산우에게 감사한다. 1월 15일. 그의 은퇴식에 다녀왔다. 형채, 강국, 시건, 찬재, 원무, 도움쇠 등이 참석하여 36년을 근무하고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그의 찬란했던 족적을 아쉬운 마음으로 함께 돌아봤다. 이제 할 일이 없으니 시산회의 산행에 부지런히 참석할 일밖에 없다고 하더이다. 바쁜데 자리를 빛내줘서 고맙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끝으로 도봉산, 북한산 부근에서 40년 가까이 살면서 나름대로 보고 느끼며, 생각해 본 도봉 8경이다. 아직 미완성이다. 물론 지리 10경을 참고했다. 좋은 산이다. 지금도 주 1회는 오른다. 40년을 오르니 이제야 길이 보이는 것 같다. 그래도 아는 길보다 모르는 길이 더 많다. 북한산은 더 올라보고 선정해 볼 일이다.

1.신선/만장일출 2.칼봉낙조 3.송추오봉 4.용어천단풍 5.거북약수 6.우이월출 7.자운운해 8.도봉계곡 (9.송추폭포 10.포대능선)

 

뒤풀이 때 원거리 산행의 차례라 어디로 가냐는 물음에 급한 성정의 내 입에서 불쑥 문경 조령산에 관한 제안이 나왔고 산우들은 이의 없이 결정했다. 조령(鳥嶺)의 뜻은 새재라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새재가 바로 가까이 붙어있는 주흘산이 적합할 것 같아 변경한다. 두 산 공히 문경에 있으나 조령산은 이화령에서 올라가고 주흘산은 새재관문을 지나 올라가는 코스니 겨울철 미끄러운 고갯길까지 올라가서 시작하는 산보다 보다 들머리가 평지면서 역사적인 의미가 더 큰 주흘산이 더 나을 것 같다. 특히 등반대장인 위윤환 산우가 가고 싶어 하던 산이다. 두 산 중 주흘산이 100미터 정도 높으나 조령산의 들머리인 이화령은 해발 548미터이고 주흘산의 들머리인 새재 1관문의 고도는 240미터이니 약 400미터를 더 올라가야 한다. 조령산은 날머리 부근의 침엽수림에서 나오는 피톤치드의 향이 그윽한 숲길이 백미이고 주흘산은 정상이 영봉으로 붙여질 만큼 산세가 예사롭지 않고 정상의 조망이 뛰어나다.

 

산행노트를 보니 ‘2002년 4월 2일. 맑음. 40회 산행. 새재주차장-주흘관(제 1관문)-혜국사-1016봉-1030봉-정상(영봉)-동화원-조곡관(제 2관문)-원터-주차장. 오름 2시간 30분. 내려옴 4시간. 1관문에서 2관문까지 평지이나 지루한 긴 코스. 30년 전 젊은 시절(28살)에 간 코스. 그때는 토요일 오후에 올라 조령관(제 3관문)으로 내려오는데 정월 대보름달이 떴다. 그때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어 소원을 비는데 옆의 여직원이 들리는 소리로 “올해는 좋은 남자 만나 시집가게 해 주십시오”라는 소원을 빌었던 기억이 난다. 수안보온천으로 가서 온천욕을 하고 빈대떡에 막걸리를 맛나게 먹었던 기억.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충주 탄금대와 고구려 중원(중앙)탑을 들렀었다’로 쓰여 있다.

 

수안보온천 근처에 있어 온천욕을 즐기는 나 원장이 좋아할 텐데 토요일이라 아쉽게 가지 못한다. 시간이 없으므로 바로 올라가서 그 길로 내려오는 코스가 적합할 것이나 산우들의 의견에 따르겠다. 아침에 나올 때 가볍게 식사를 하고 간식을 많이 준비해오면 좋겠다. 식사에 시간을 많이 소요하면 산행시간이 촉박하다. 결코 만만한 산이 아니다. 정상의 이름이 월악산처럼 영봉이다. 예사롭지 않은 산이니 이번 기회에 많이 참석하기 바란다. 문경새재는 탄금대와 더불어 임진왜란과 관계가 깊은 곳이다. 문경새재는 조선시대에는 경상도에서 한양으로 바로 올라가는 유일한 길목이었므로 선비들의 과거길이었다. 북상하는 왜군을 그곳에서 막았더라면 북상을 저지하는 것 쉬웠을 텐데 미리 대처하지 못해 충주까지 밀려 명장 신립 장군이 금강변에 배수진을 치고 막으려 했으나 역부족으로 관군이 전몰한 곳이 탄금대다.

 

 

지난 번 메일에 쓴 대로 이번에 동반할 시이다. 회한이 남는 지난해는 무겁게 보내고 새해를 시작하는 해오름달의 의미처럼 새해를 가볍게 다시 시작하자. 남는 것보다 부족한 것이 많은 게 우리 인생 아닌가. 이 시에 설명을 붙이면 군더더기에 불과함을 우리 모두가 잘 안다. 나처럼 잘못한 것이 더 많은 생을 살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귀감이 될 시다. 고치려면 지금도 늦지 않음을 알려주는 시다.

하늘이 나에게 내린 소명이 무엇이지도 모르는 채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를 지나 자신의 구미와 취향에 맞지 않는 생각과 행동도 너그럽게 포용하는 마음을 품을 수 있다는 이순(耳順)의 길목에 서서 지난 세월을 반추해 본다. 이순의 근처에도 가지 못한 채 도대체 맘에 드는 게 별로 없으니 실패한 인생 아닌가! 아니다. 그래도 남아 있는 게 있다. 영원히 아끼고 사랑해야할, 목숨보다 더 귀한 가족은 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 킴벌리 커버거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

 

금방 학교를 졸업하고 머지않아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으리라.

 

아니, 그런 것들을 잊어 버렸으리라.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에는

 

신경쓰지 않았으리라.

 

그 대신 내가 가진 생명력과 단단한 피부를 더 가치있게 여겼으리라.

 

 

더 많이 놀고, 덜 초조해 했으리라.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데 있음을 기억했으리라.

 

부모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고

 

또한 그들이 내게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사랑에 더 열중하고

 

그 결말에 대해선 덜 걱정했으리라.

 

설령 그것이 실패로 끝난다 해도

 

더 좋은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아, 나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리라.

 

더 많은 용기를 가졌으리라.

 

모든 사람들에게서 좋은 면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그들과 함께 나눴으리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나는 분명코 춤추는 법을 배웠으리라.

 

내 육체를 있는 그대로 좋아했으리라.

 

내가 만나는 사람을 신뢰하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었으리라.

 

 

입맞춤을 즐겼으리라.

 

정말로 자주 입을 맞췄으리라.

 

분명코 더 감사하고,

 

더 많이 행복해 했으리라.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2010년 1월 20일 안개가 끼고 겨울비가 내리는 날

詩를 사랑하는 山사람들의 모임 시산회 도움쇠 김정남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