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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도봉산 우이암(詩山會 제131회 산행)

도봉산 우이암(詩山會 제131회 산행)

 

산 : 도봉산

 

코스 : 탐방지원센터-보문능선-우이암-오봉-송추(하산은 우이암에서 결정)

 

소요시간 : 오름 2시간30분 내려옴 1시간 30분

 

일시 : 2010년 3월 27일(토) 10시

 

모이는 곳 : 전철 1.7호선 도봉산역 7호선 대합실

 

준비물 : 막걸리, 안주, 과일, 사진기

 

연락 : 이재웅(010-3454-7717) 이경식(011-222-1028)

 

블로그 : 사진 blog.daum.net/sisan20

 

산행기 blog.daum.net/yc012175

 

카페 cafe.daum.net/K-20

 

 

어지러워라.

 

첫사랑의 아픔은 항생제로도

 

듣지 않는다.

 

뜨겁게 달아오른 체열로 밤을 하얗게

 

밝힌 아침,

 

 

봄이 오는가 싶더니 문득

 

눈보라가 몰아친다.

 

벌던 꽃잎을 접고

 

맨 몸으로 오한을 견디어내는

 

뜰의 홍매화 한 쌍.

 

-오세영 '꽃샘추위' 전문

 

꽃을 시샘하는 추위는 꼭 이맘 때 찾아온다. 하필이면 앙증맞은 움을 틔우려는 순간에 덮치는 눈보라의 질투. 올해도 사나흘에 한 번 꼴로 날선 바람이 꽃망울들을 괴롭힌다. 꽃으로서야 빨리 세상 구경을 하고 싶겠지만 그게 어디 그런가. '뜨겁게 달아오른 체열'을 혼자 감내하며 '벌던 꽃잎'마저 접고 견뎌야 하는 오한의 조춘(早春).하긴 추위를 이긴 꽃일수록 열매가 단단한 법. 눈 덮인 뜰의 홍매화가 그러하고, 아슴프레한 첫사랑이 그러하고, 선운사 동백숲의 알싸한 만남도 그러하다.

-시평(고두현. 언론인)

 

제130회 시산회 관악산 산행기

(관악사지에서의 재경총동창회산악회 시산제에 참여하다.)

 

- 일시 : 2010년 3월 7일 일요일 12시

- 장소 : 관악산 관악사지

- 참석자 : 조문형, 김용우, 김정남, 김종화, 이원무, 이경식, 이재웅, 신원우,

염재홍, 한양기, 박형채, 한천옥 이상 12명

 

“9시 30분까지 4호선 정부과천청사역 8번 출구에 집결하여 재경총동창회산악회 시산제에 참석하고 연주대의 기를 받아오자!”는 이회장의 어제 저녁의 다급한 문자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집을 나서면서 시계를 보니 7시 50분쯤이다.

건대역에서 7호선을 타고 가다가 이수역에서 4호선으로 바꿔 탔다. 서 있을 때는 몰랐는데 과천쯤에서 자리가 생겨 앉아서 두리번거리다가 맞은편의 문형이와 눈이 마주쳤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거의 동시에 “어! 이게 얼마만이야?” 새삼스럽게 무척이나 반가웠다. 정부과천청사역에 도착하여 8번 출구로 나와 핸드폰 시계를 보니 9시가 조금 넘었다.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낯익은 얼굴은 보이질 않는다. 다만 길 건너편의 대운동장에 노란 조끼를 유니폼으로 입고 있는 인파가 눈에 띤다. 무슨 체육대회인지 너무 이른 감이 없지 않다.

이 쌀쌀한 날씨에...

역시나 용우가 해맑은 웃음을 띠고 나타난다.

정남, 종화, 원무, 재웅, 경식, 원우, 재홍이가 입장하고, 형채는 조금 늦는다는 문자를 받았고, 양기는 총동창회산악회 집결장소에 도착하였다는 연락을 받고서야 우리도 “재경광주고 총동창회 산악회 시산제”라는 프랭카드가 걸려있는 집결장소로 이동하였다.

간단한 의식과 새로운 재경총동창회산악회 회장단 소개, 그리고 우리의 자랑스럽고 든든한 1회 선배님들(여섯분)의 소개를 마치고 본부에서 준비한 음식을 나누어 배낭에 넣고 10시경에 출발!

 

케이블 계곡의 입구에서 “광주첨단산악회”에서 올라온 고향 사람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던 중에 현재 모교에 재직하고 있는 26회 후배선생님을 만나는 즐거움까지...

 

코스가 달라 아쉬운 작별을 하고 본격적인 등반 시작!

삼사십 분쯤 올라갔을까? 막걸리 한잔하고 가자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시원하고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 쪽으로 빠져 나와서 자리를 잡고 본부에서 나누어준 막걸리에 홍어, 돼지머리고기, 시루떡까지...

 

생각만 해도 침이 꼴깍 넘어가지 않는가. 인원점검을 해보니 신원우 동창회장이 보이지 않는다. 관악산이 떠나갈 정도로 “시산회”를 외쳤으나 답 없는 메아리만 허공을 가른다. 혼자 뒤처진 걸로 생각하고 뒤도 안돌아보고 내질렀나 보다. 원기를 보충하였으니 힘을 내서 또 올라가야지! 연주암이 0.5km라는 이정표를 보고 막바지 급피치를 올리려고 하는 찰나에 길옆 커다란 바위 위에 낯이 익은 얼굴의 도사(?)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다. 핑계거리가 생겼으니 우리도 같이 좀 쉬었다 가야지!

 

신 회장 덕분에 한숨을 돌리고 연주암에 도착하니 인파가 장난이 아니다. 정부과천청사 대운동장에 모여 있던 인파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지난주에 대학친구들과 케이블능선을 따라 연주암까지 올라와서 점심을 좀 얻어먹겠다고 줄을 섰다가 결국은 포기하였는데 오늘도 예사롭지가 않다.

 

연주암 삼성단에서 시산제 장소인 관악사지를 내려다보니 아득하다. 다행히 계단을 설치하였는데 213계단이란다. 관악사지 한복판에 커다란 바위가 누워있다.

경식이와 재홍이를 모델로 증명사진 한 컷!

 

여기저기 적당한 장소에 자유롭게 앉아서 공급받은 음식을 맛나게 먹고 있는 여유로운 모습이 너무나 보기에 좋다. 제단 바로 앞에 시산회가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시산제 제문 낭송 후에 시산회 오늘의 시를 낭송 순서를 삽입하였다고 신 회장이 귀뜸한다. 오늘의 기자인 내가 낭송을 해야 한단다. 오늘따라 유난히 맛있는 홍어 한 점을 막 입에 물려고 하는데 시산제의 시작하겠단다. 술을 따르고 2010년 산악회의 무사, 무탈을 기원하는 제문을 낭송한 후에 1회부터 차례차례 나와서 돼지 입에 봉투를 물리고 술을 한잔 따라 올리고 제배를 하였다. 20회의 차례가 되었다.

사회자께서 “시산회”와 작년 연말에 발간한 “산과 시”에 대한 소개를 거창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시산회 오늘의 시(‘별까지는 가야한다’)를 낭송할 기회도 주었다. 오늘의 시를 낭송하고 나니 여기 저기 오늘의 시를 찾는 동문들이 많다. 이 회장이 준비했던 오늘의 시가 동이 났다. 남은 음식을 말끔히 처분하고, 의기양양하게 기념촬영까지 하고 나니 13시 30분!

 

이제 하산해야지! 사당역까지 거리는 5km가 좀 넘는단다.

왜 이렇게 머냐니까 재홍 왈 “사당역이 이사를 갔다”는 구먼!

그러나 하산 길을 언제나 사뿐하고 가볍다.

 

사당역에 도착하니 15시!

뒤풀이 장소를 찾아 들어간 곳이 “서오능 올갱이”

사당동에 웬 서오능? 분점이란다. 본점은 당연히 서오능에 있지!

부추에 들깨가루, 올갱이를 넣고 끓인 “깨탕”은 추가주문에 리필을 요구할 정도로 인기 만점! 요즘 관심 많은 웰빙식품으로 손색이 없다.

 

맥주, 소주, 막걸리를 취향대로 따라 건배!

뜨끈한 방바닥에 피로가 풀리면서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명함까지 한 장씩 챙겨가지고 나왔다.

모처럼 마무리 화이팅을 하자는 김정남 전 회장의 제의에 따라, 11명이 다모여서 손을 포개 얹은 다음에 “시산! 시산!” 그리고 손을 하늘 높이 들어 올리면서 “화이팅!”

 

지하철을 타기 위해 5번 출구 쪽으로 가니까 상가집에 간다고 먼저 내려간 형채가 마나님과 함께 멋쩍은 모습으로 맞이한다.

가긴 어딜 가!

2010년 3월 10일 천옥이가

 

다음 산행지는 선자령이었는데 참석인원이 6명밖에 되지 않아 임 수석의 장인상에 모인 산우들의 의견에 따라 도봉산으로 변경한다. 오르기 좋은, 완만한 우이암 코스로 정한다. 보문능선을 타고 오르면 힘들 것이 없는 코스다. 체력이 남아 오봉을 거쳐 송추로 내려와 팔보채 안주에 이과두주 한잔이면 행복하겠다. 선자령의 들머리인 대관령까지 가는 버스의 대절료가 35만원이니 6명의 인원만 가기에는 경제적이지 않다는 생각을 한 이재웅 회장님이 건의하고 모두 동의하여 내린 결정이다. 선자령에 관한 자료는 이경식 문장관이 파일에 첨부한 것을 읽어보았는데 자신이 다녀왔다고 생각하고 각자 읽어보기 바란다. 임 수석 장인의 명복을 빈다. 그 자리에 온 사람의 대부분이 시산회원이었다니 참으로 좋은 사람들이다.

 

 

동반시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항상 느끼는 점은 선정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지금은 시산회원들의 이해와 해석의 수준이 올라 산우들 모두 준시인급이지만 처음에는 시의 종류나 주제 및 소재에 대하여 산우들이 불만을 터트린 적이 많았다. 예나 지금이나 시를 잘 알지 못하기에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세월이 가고 자주 접하게 된 산우들의 이해의 수준이 올라가니 쉬울 줄 알았는데, 올라간 수준에 맞추려하니 그것은 더 어렵다. 동반시와 프롤로그시를 선정하기 위해 들어가는 사이트의 수는 통상 열 개가 넘는다. 고르다보면 현재의 내 환경이나 상황에 따라 마음에 녹아든 시를 고르는 경향이 없지 않음을 안다. 위 산우가 자주 지적했지만 씁쓸하고 어두운 시를 고른다 해도 이해하기 바란다.

 

시와 관련된 이야기이니 법정 스님의 이야기를 꺼내 본다.

법정 스님이 입적하신 날, 많은 사람들이 집에 있는 물건들을 정리해서 버리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줬다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들었다. 다들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려니까 또 법정 스님의 책값이 물경 15만원에도 이른다는 뉴스도 나왔다. 나는 젊어서 불가에 잠시 몸과 마음을 담았던 사람이라 법정 스님의 애기를 간접적으로 들은 적이 있다. ‘無소유’, ‘서 있는 사람들’, 山房閑談‘ 등의 책을 접한 적이 있으나 3·40년 전에 읽은 기억만 나지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젊은 날, 우주의 기원, 신의 존재, 영혼의 존재, 삶과 죽음의 차이와 경계, 천당과 지옥의 존재, 선과 악의 귀결, 有와 無의 실체, 가득 채움(滿)과 비움(空)의 관계 등에 대하여 고뇌하지 않은 청춘은 없다. 그 당시 선가(禪家)의 1,800개 화두 중에 나는 ’무(無)‘자 화두를 꺼내 들고 한소식을 듣겠다고 달려들었다. 그때 한 스님이 주신 “그 무(無)는 有無의 無가 아니다”라는 힌트(?)를 믿고 살아왔으며 오늘날까지 그것을 간혹 꺼내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았으나 근처의 근방에도 접근하지 못하고 살았다. 항상 ’안개 속의 한 모퉁이 같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법정 스님이 입적하면서 그 분이 하신 말씀 중에 수많은 답 중의 하나가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았다. 무소유란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것임을. 무(無)란 필요하지 않는 것임을. 누구나 자신의 그릇이 있으며 욕심을 부려 넘치게 채우면 오히려 화가 된다는 것을. 법정 스님의 명복을 빈다.

 

하여, 정한용 시인의 ‘봄 편지’ 중 어느 시를 동반할까 생각하다가 시를 좋아하는 어느 분의 사랑방에서 본 아래의 시를 동반한다. 이제 보니 사랑과 더불어 삶과 죽음이 일상사이거늘.

 

 

쓸쓸한 편지 / 정 호 승

오늘도 삶을 생각하기보다

죽음을 먼저 생각하게 될까봐 두려워라

세상이 나를 버릴 때마다

세상을 버리지 않고 살아온 나는

아침햇살에 내 인생이 따뜻해질 때까지

잠시 나그네새의 집에서 잠들기로 했다

솔바람소리 그친 뒤에도 살아가노라면

사랑도 패배할 때가 있는 법이다

마른 잎새들 사이로 얼굴을 파묻고 내가 울던 날

싸리나무 사이로 어리던 너의 얼굴

이제는 비가 와도

마음이 젖지 않고

인생도 깊어지면

때때로 머물 곳도 필요하다

 

2010년 3월 24일

詩를 사랑하는 山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도움쇠 김정남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