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산행기록

북악산에 오릅니다(詩山會 제141회 산행)

북악산에 오릅니다(詩山會 제141회 산행)

 

산 : 북악산

 

코스 : 안국역-와룡공원-말바위 쉼터-삼청각-김신조 루트-호경암(바위)-하늘마루(정상)

(하산은 산우들의 다수 의견에 따라)

 

소요시간 : 오름 1시간 반 내려옴 1시간 반

 

일시 : 2010년 8월 15일 10시

 

모이는 곳 : 전철 3호선 안국역 2번 출구

 

준비물 : 살얼음낀 막걸리, 안주, 과일, 카메라(하산 후 뒤풀이 겸 점심)

 

연락 : 이재웅(010-3454-7717)

 

블로그 : 사진 blog.daum.net/sisan20

 

산행기 blog.daum.net/yc012175

 

카페 cafe.daum.net/K-20

 

 

1.詩를 통한 時論

 

산중문답 제3장 - 신석정 (1907 ~ 1974)

<구름이 떠가며 무어라 하던?>

<골에서 봉우리에서 쉬어가자 합데다>

<바람이 지내며 무어라 하던?>

<풀잎에 꽃잎에 쉬어가자 합데다>

<종소린 어쩌자고 메아리 한다던?>

<불러도 대답 없어 외로워 그런대요>

<누구를 부르기에 외로워 그런다던?>

<불러도 대답 없는 사람이 그립대요>

내 자랑 한마디 할까? 이 시는 700부 한정판으로 석정 선생이 말년에 출간하신 시집 『산의 서곡』에 실려 있는 시다. 나에게 있는 그 시집에는 659번째라는 숫자가 선명히 쓰여 있다. 1960년대 말이었지, 아마. <강은교 양에게>라는 붓글씨를 앞에 커다랗게 쓰신, 그래서 어느 날이던가, 그동안 아주머니가 된 내가 깜짝 놀라 다시 읽은, 유달리 크고 두꺼운 시집. 그뿐 아니었지. 석정 선생이 신진 시인인 나에게 보낸 그 두루마리 편지들, 자랑 삼아 들고 다니다 잃어버렸지만. 아무튼 그 시절엔 그런 일도 있었다. 원로 시인이 새파란 신인에게 시집을 보내고 팬레터를 하던. 유난히 산을 좋아한 석정 시인, 시대의 외로움을 누구보다 진하게 느꼈던 석정 선생!

-시평<강은교·시인>

 

 

2.산행후기

 

시산회 140회 도봉산(도봉계곡-우이암) 산행기 ( 2010.08.01/구름과 가끔 비, 전작 씀)

□ 산행일 : 2010년 8월 1일(일요일)

□ 참석자 : 고갑무/김정남/염재홍/이경식/이계신/이원무/이재웅/임삼환/전작(9명)

산행코스 : 도봉산역-도봉탐방지원센터-능원사-도봉사-도봉계곡-성도원-작은 마당바위-문사동-

보문(우이암)능선-원통사-무수골-자현암-성신여대생활관-8번 마을버스정류장

□ 동반시 : 모항으로 가는 길 / 안도현

□ 뒤풀이 : 낙지회무침, 낙지볶음, 맥주, 막걸리 (명가 낙지마당 – 도봉구청 앞)

 

도봉산역 도착 직전에 “ 도봉산역 7호선 대합실로 오시게 들, 웅 09시46분 “ 이재웅 회장님의 문자메시지가 왔다. 잰 걸음으로 대합실로 가니 이 회장, 갑무, 재홍, 경식 산우가 밝은 얼굴로 기다리고 있다. 언제 봐도 반가운 산우들과 수인사를 한다. 재주 많고 부지런한 이 회장님은 휴대폰으로 인원 파악에 분주하다. 원무-곧 도착, 정남과 삼환-지원센터 입구에서 만남, 문형-오는 도중 급한 사업 관련 일이 생겨 되돌아 감, 계신-오랜만에 산행 참석…… 복더위에 휴가철에 이 정도면 참석률 O.K(?) 총원 9명 인원 점검 끝……총무 일까지 하는 회장님이 짠(?)하다.

 

10시 조금 넘어 이동 시작. 막걸리 안주를 준비 못해 가는 길에 통닭구이 1마리를 샀다. 막 구운 통닭이라 뜨거워서 배낭에 넣지 못하고 검은 비닐봉지에 넣어 손에 들고 걸었다. 도봉산 탐방지원센터 가는 길에 삼환, 계신 산우 만나고 마지막으로 왕회장 정남 산우가 합류 했다.(이하 회장님을 제외한 산우는 존칭 생략함)

 

등산로 입구는 등산객으로 인산인해다. 등산안내판을 보고 정남이가 오늘 산행코스를 설명한다. 다들 오늘 날씨가 무덥고 하니 쉬엄쉬엄 몸 컨디션 봐서, 올라가면서 코스를 정하자고 한다. 10시30분에 산을 잘 아는 정남이가 앞서 안내하며 산행을 시작했다. 누군가 먹거리가 가득한 배낭을 멘 정남이를 걱정한다. 어깨 수술 후 아직 회복이 안 되었지 않은가? 넉넉한 마음을 가진 계신이가 빈 몸으로 온 덕(?)(계신이는 평소 도봉산 정도는 배낭 안 메고 가볍게 오르내린다 함)에 자원하여 정남이의 배낭을 대신 멨다.

 

오늘 날씨는 구름이 끼고 비가 오락가락 할 듯 습도가 높아 몹시 무덥다. 시원하고 사람이 적은 숲과 계곡 길로 걸어도 땀이 난다. 가는 길에 건강과 수명에 대하여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누군가 조선나이 60세 전후인 우리들은 의학이 발달하여 평균 수명 90세가 넘을 거라고 한다.

 

다들 화두는 자연스럽게 “ 은퇴 후 적어도 20~30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에 모아졌다. 건강하게 살아야 제~, 문밖으로 나다닐 정도는 돼야 제~, 등산도 너무 무리하면 안 돼 제~, 스트레스 안 받고 살아야 제~, 남을 배려하고 살아야 제~, 베풀고 살아야 제~, 친구들하고 잘 지내야 제~, 마누라에게 잘 해야 제~, 시산회 회원 간에도 서로 배려해야 제~, 서로서로 얼~씨구 판소리 추임새 넣듯 끝이 없다. 이 대목에서 이 회장님이 영어 속담 “ Charity begins at home. “ 한 마디 한다. “ 사랑(=배려)은 가정에서 시작되니 가족을 먼저 사랑하라” 라는 의미 같다. 역시 시산회 회장님은 품격이 있다. 이 회장님은 시산회 회원들에게는 “ Charity begins at SiSanHoe. “ 라고도 말을 하고 싶었지 않았나 생각한다.

 

문사동 계곡은 삼삼오오 모여 탁족을 하는 사람으로 가득하다. 평화로운 풍경이다. 11시30분경, 누군가 우리도 숨을 고를 겸 이른 점심을 먹자고 한다. 웬만한 산의 명당자리는 다 알고 있는 정남이가 오늘도 터를 잡았다. “문사동” 암각 바위 바로 아래, 너른 바위가 처마처럼 튀어 나와 그늘 진, 10여 명이 편히 앉을 수 있는 계곡 옆 널찍한 곳이다. 돗자리를 펴고 산우들이 가져온 – 묵, 게맛살, 두부김치, 문어, 한과, 파전, 모시 떡, 송편, 김밥, 통닭, 막걸리, 주스 등등 – 으로 한 상 차린다. 산해진미 없는 것이 없다. 이중 묵한은 - 시산회의 대장금 - 전 여사님이 정성을 담아 준비한 음식이다. 정남이 어부인께 모두 감사~감사~ 전합시다. 오늘의 모시떡은 재홍표다. 해황표 모시 떡에 인이 벤 산우들을 위해 재홍이가 해황이의 참석여부를 확인까지 해가며 준비한 특식이다. 재홍이의 배려에도 감사~감사~. 정남이의 세르파 겸 포터역을 한 계신이에게도 감사~감사~. 물소리, 새소리, 맑은 공기 가득한 명당자리에서 산우들과 이런 저런 환담하며 함께 식사하는 즐거움을 아는 우리가 바로 신선 아닌가?

 

오늘의 시는 윤도현 시인의 “모항으로 가는 길“이다. 꽤 긴 시다. 오늘은 내가 시를 읽었다. 갑무가 시어 중 “통성명”과 “깨끗한 방”이 좀 거시기 하다고 시평을 한다.

 

1시간 남 짓 식사, 환담과 휴식 후 “問師洞” 암각 바위 옆으로 갔다. 처음 본 나는 한문 초서로 쓰여 읽을 수가 없다. 정남이가 훈까지 달아가며 “문사동’이라 알려준다. 그래도 의미를 알 수가 없다. 산우들 의견도 분분하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조선 11대 임금 중종 때 조광조가 사화를 피해 은둔하던 곳을 제자들이 수소문하여“스승을 찾아다닌 곳“, 스승을 찾은 후 “ 예를 갖춰 스승을 모신 곳 “ 또는 “ 스승에게 물어 보는 곳 “ 이라고 되어있다.

 

13시 10분에 문사동에서 용어천다리를 지나 우이암능선 쪽으로 올라갔다. 우이암이 잘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서 단체로 증명사진을 찍고 구경한 후 더위를 감안하여 바로 무수골 계곡으로 하산하기로 했다. 내려오는 길에 잘 자란 쪽동백나무가 있었는데, 바로 이 나무 열매가 옛날 우리 어머니들의 머리카락 단장에 쓰던 동백기름의 원료였다는 것도 박학다식한 정남이의 설명을 듣고 알게 되었다. 소나무 숲에서 솔향기를 맡으며 쉬기도 하고 쉬엄쉬엄 내려오니 우이암을 올려다 볼 수 있는 원통사에 도착 했다. 삼환이가 이곳에서 우이암을 보면 요상한 모양이니 찬찬히 잘 보라고 한다. 전에도 이곳을 두세 차례 왔는데 우이암을 소의 귀로만 보고 갔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소귀가 아니라 삼부자의 거시기와 똑 같다. 금강산 만물상에도 없는 오묘하고 신기한 자연의 걸작이다. 역시 서울 산 중에는 코스도 다양하고 철 따라 분위기도 다르고 볼거리도 많은 국립공원인 북한산(도봉산)이 최고다.

 

마지막 하산 길에 정남이 안내로 자현암에 들러 잎사귀는 우리 소나무와 비슷한데 껍질이 다른 귀한 백송을 구경하고 성신여대생활관 옆을 지나 16시10분에 마을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뒤풀이는 정남이와 경식이가 강추한 도봉구청 앞 끝내 주는 낙지회무침으로 하기로 하고 마을버스를 타고 16시 40분에 낙지전문요리점 “명가 낙지마당”에 도착했다. 두 산우가 음식점에 들어가면서 서비스 만점인 사장님을 찾으니 아줌마 왈 “ 사장님 오늘 안 나오셨는디, 손님들은 왜 음식점에 오면서 음식부터 먼저 안 찾고 사람부터 찾는지 모르겠당께~ “ 한마디 한다. 일리가 조금은 있는 것 같다.

 

낙지회무침, 낙지볶음에 막걸리와 맥주 그리고 저녁식사까지 적당히 마시고 먹고, 다음 산행지는 청와대 뒤 북악산으로 가자는 의견이 있었고 집행부에서 결정해서 알려 주기로 하고 뒤풀이는 18시 30분 해질 무렵 끝났다. 뒤풀이는 계신이가 오랜 만에 산행에 온 기념으로 쏘았다. 시산회 파이팅~(끝)

 

3.산행지

무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어 이경식 산우가 적극 추천한 가벼운 산책 코스를 택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하루를 즐기자. 성대 뒤로 올라가서 아리랑고개로 내려올 지는 올라가서 생각하자. 남산을 돌고 한옥마을로 내려오자는 의견을 내고 싶었으나 내 목소리가 커서 모임에 해가 될까 싶어 요즘은 목소리를 지극히 낮춘다. 목소리를 낮추니 몸도 낮춰지는 것 같다. 다음에 가면 된다. 하산길에 길상사를 들러 백석과 자야 김영한 보살, 법정 스님 세 분의 향기를 맡고 오면 좋겠다. 백석의 시 한 수를 더 준비하겠다.

 

 

4.동반시

해설 :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유적지의 저녁은 지금 여기의 시간이 아닌, 깊은 시간을 만나게 한다.

 

"나비 한 마리"는 " 천 년의 시간 "을 살았던 존재이고, 그 천 년 전의 시간을 거슬러 가면 "나의 손" 은 나비가 찾아왔던 꽃이었다. 그 깊은 과거의 시간 속에서 "나 "는 하나의 이별을 상기한다.

 

이별은 천 년을 시간을 돌아 지금, 다시 현재의 이별이 된다.

 

유적지의 큰 돌들이 "늙어 그늘진 내 과거" 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은 어쩌면 천 년의 이별이 다시 뼈아프게 다가오는 순간일 것이다. 그러나 유적지의 저녁은 천 년 동안의 망각과 잠을 깨우고 그 깊은 시간을 호출함으로써, 내 존재의 우주적 근원의 자리를 경험하게 한다.

-시평(이광호)

 

한 동안 내 가방 속에 마종기 시인의 시와 시평을 쓴 책을 넣고 다닌 지가 언제더라.
그 책 제목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집 근처 도봉구청 도서관에서 빌려왔으니 제목을 알자고 다시 가기도 그렇고......

의사보다는 시인으로 불리우고 싶어하는 의사.
'바람의 말'이라는 시가 좋던데. 산행 때 동반한 적이 있었다.

읽어보니 슬그머니 '장자의 나비'를 생각하게 한다.
천 년이면 꿈에서나 왔다 갈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인데, 내가 나비인가, 나비가 나인가.
내가 꾸는 꿈이 나비의 꿈인지, 나비가 꾸는 꿈이 나의 꿈인지. 꿈 속의 꿈인지.

 

내가 꿈에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꿈속에서 내가 된 것인지.

모르겠다. 내가 나비이며 나비가 나다. 그것으로 좋다.

 

캄보디아 저녁/마종기

 

천 년을 산 나비 한 마리가
내 손에 지친 몸을 앉힌다.
천 년 전 앙코르와트에서
내 손이 바로 꽃이었다는 것을
나비는 어떻게 알아보았을까.

그해에 내가 말없이 그대를 떠났듯
내 몸 안에 사는 방랑자 하나
손 놓고 깊은 노을 속으로 다시 떠난다.
뜨겁고 무성하고 가난한 나라에서
뒤뜰로만 돌아다니는 노란 나비.

흙으로 삭아가는 저 큰 돌까지
늙어 그늘진 내 과거였다니!
이제 무엇을 또 어쩌자고
노을은 날개를 접어면서
자꾸 내 잠을 깨우고 있는가.

 

2010년 8월 11일

詩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詩山會 도움쇠 김정남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