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산행기록

족두리봉으로 올라 삼천사 계곡으로 내려옵니다(詩山會 제142회 산행)

족두리봉으로 올라 삼천사 계곡으로 내려옵니다(詩山會 제142회 산행)

산 : 북한산

코스 : 불광역-대호통제소-비봉-사모바위-삼천사 계곡

(하산은 산우들의 다수 의견에 따라 변경할 수 있음)

소요시간 : 4시간

일시 : 2010년 9월 5일 10시

모이는 곳 : 전철 3 · 6호선 불광역 9번 출구

준비물 : 살얼음낀 막걸리, 안주, 과일, 카메라(하산 후 뒤풀이 겸 점심)

연락 : 이재웅(010-3454-7717)

블로그 : 사진 blog.daum.net/sisan20

산행기 blog.daum.net/yc012175

카페 cafe.daum.net/K-20

 

1.詩를 통한 時論

 

오늘, 쉰이 되었다 / 이면우(1951~ )

서른 전, 꼭 되짚어 보겠다고 붉은 줄만 긋고

영영 덮어버린 책들에게 사죄한다

 

겉 핥고 아는 체했던 모든 책의 저자에게 사죄한다

마흔 전, 무슨 일로 다투다 속맘으로 낼, 모레쯤 화해해야지,

작정하고 부러 큰 소리로 옳다고 우기던 일 아프다

세상에 풀지 못한 응어리가 아프다

쉰 전, 늦게 둔 아이를 내가 키운다고 믿었다 돌이켜보면,

그 어린 게 날 부축하며 온 길이다

 

아이가 이 구절을 마음으로 읽을 때쯤이면

난 눈썹 끝 물방울 같은 게 되어 있을 게다

오늘 아침 쉰이 되었다, 라고 두 번 소리 내어 말해보았다
서늘한 방에 앉았다가 무릎 한 번 탁 치고 빙긋이 혼자 웃었다

이제부턴 사람을 만나면 좀 무리를 해서라도
따끈한 국밥 한 그릇씩 꼭 대접해야겠다고, 그리고
쓸쓸한 가운데 즐거움이 가느다란 연기처럼 솟아났다

 

-고생을 많이 한 이들에게서 왜 좋은 시가 나올까? 아무튼 이 시인은 보일러실에서 하루 일을 끝내고 나와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시를 건진다. 당신도 서 계셨을 정류장. <시평. 강은교·시인>

 

세상을 알고 사는 사람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시다.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는 이런 말은 이 시인의 입에서 나올 법한 말이다. 정확하게 기억은 못하지만 젊은 시절 읽었던 수필집의 제목이다. 저자는 형법학자 황산덕 교수로 기억한다.

 

35년이 흘쩍 지난 젊은 날의 아픈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법대 졸업반 때 길었던 휴교령이 끝나고 졸업시험을 앞둔 나는 시대의 절망감에 떨며 앞날의 불안감에도 시달렸다. 유신헌법과 긴급조치, 시위와 휴교령, 학우들과의 반목과 불신, 갈등과 폭력 등으로 점철된 지겨운 4년이었다. 4년을 내리 휴교령이 내려졌으니 대부분의 시험을 레포트로 대체하고 제대로 된 수업을 들었을 리가 없다며 학장은 구술시험에 불학격하면 법대생 자격이 없으니 졸업을 시키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훗날 실제로 세 명이 불합격되어 1년을 더 다녔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 학교를 다니는 것이 얼마나 지겨웠는지 모른다. 박정희라는 절대악과의 싸움이 무서워서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졸업해서 학교를, 학우들을 떠나고 싶었다. 졸업을 못하면 군대를 가야지 하는 심정으로 법서를 멀리하고 가벼운 수필집을 읽다 갑자기 토스토에프스키의 무겁고 어두운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집어 들고 읽기 시작했다.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하던 친구들이 이 어렵고 바쁜 시기에 무슨 일이냐고 의아해했다. 자신에 대한 불만이나 어떻게 되겠지라는 자기포기의 심정이었을 것이다. 졸업시험 중에 아버님이 간경화로 돌아가셨다는 전보를 받았다. 암담하고 어려웠던 시절도 그렇게 지나갔다. 살다 보니 세상은 그렇고 그렇게 지나가더라. 한 갑자를 살면서 겨우 터득했다.

 

오랜 세월을 하늘을 쳐다보기 민망한 자괴의 심정으로 가슴 속에만 깊숙히 묻어두었던 얘기를 갑자기 꺼낸 이유가 무엇일까? 나도 늙어가는 것일까? 가을을 재촉하는 비 탓일까?

가슴이 서늘해진다.<도봉별곡>

 

2.산행후기

詩山會 (제141회) 북악산 산행기 (2010. 08. 15. 맑음 / 최근호)

 

참석자 : 12명 (김정남, 김종화, 나창수, 남기인, 이경식, 이계신, 이원무, 이재웅, 임삼환, 전작, 조문형, 최근호)

 

코스 : 안국역 - 와룡공원 - 말바위 쉼터 - 숙정문휴게소 - 김신조 루트- 호경암 - 하늘마루(정상) - 길상사 - 뒤풀이

 

소요시간 : 오름 2시간 반 내려옴 1시간 반

 

일시 : 2010년 8월 15일 10시

 

모이는 곳 : 전철 3호선 안국역 2번 출구

 

뒤풀이 : ‘강촌’ 쌈밥집

 

금번 등산은 북악산으로 등산 코스는 1968년 1월 21일 북한 공작원 김신조 외 30명이 이 길을 통해서 청와대로 침투했던 이동 경로로 일명 김신조 루트라고 하는데 평소 우이령과 함께 가보고 싶었던 곳이며 42년 동안 일반인 통행이 제한되었던 곳이다.

 

군 시절 이 곳은 가까운 육사 동기가 지휘관을 하고 있어 몇 차례 부대를 방문하곤 했지만 철통 같은 경비 속에 삼엄한 분위기는 가슴을 싸늘하게 하였으며, 근무하는 동기는 자부심을 갖고 자랑 삼아 이야기 하지만 별로 부럽지 않은 곳이었다.

 

전날 밤 내일의 등산을 기대하며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우루루하는 천둥소리가 들려 잠을 깨어보니 장대 같은 비가 하염없이 내리고 있었다. 오늘 등산하는데 애로가 많겠구나 생각했는데 새벽을 지나 아침이 되니 말쑥하게 개었다.

 

오늘 산행은 안국역(전철 3호선)에서 10시에 모여서 마을버스나 택시를 타고 와룡공원에 집결하여 산행을 시작하기로 되어 있다. 안국역에는 산우들이 약속시간 전에 대부분 도착하여 있었고 몇 몇 산우는 오고 있는 중인데 조금 늦을 것 같다는 전갈이 왔다. 시간이 되어 먼저 도착한 산우들은 마을버스를 타고 와룡공원으로 출발하고 약간 늦은 산우는 회장님이 홀로 남아 마지막 산우가 올 때까지 기다려 택시로 와룡공원에 도착했다.

 

출발에서 부터 회장님의 산우를 위한 세심한 배려와 마음 씀씀이에 고맙고 감사할 뿐이다. 우리 회장님!! 멋져부러!!

 

10시 30분 경 와룡공원을 출발하여 호경암 쪽으로 등산을 시작하였는데 조금 가파르긴하나 등산이라기보다는 동네의 높은 구릉을 산보한다는 표현이 더 옳지 않을까 한다. 날씨도 덥고 하니 집행부에서 산우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로 부담 없는 코스를 선택한 것 같다. 한참을 오르니 말바위 쉼터가 나왔고 여기서 잠깐 휴식을 취하고 다시 등산을 계속하니 삼청각이 보이고 숙정문 안내소가 나왔다.

 

오늘은 광복절행사로 숙정문 방문은 통제되어 있다 하여 주위의 휴식터에서 각자 가지고 온 간단한 음식을 나누어 먹다보니 한잔하자는 의견이 나와 준비된 막걸리를 들이키면서 그간의 소식과 못다한 얘기들을 나누었다.

 

12시 경 숙정문안내소를 출발하여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데 호경암이 나왔고, 이 곳은 1.21사태 때 김신조 일당의 1개팀이 근거지로 삼아 저항하다 3명이 사살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바위에 여기 저기 총탄자국이 선명히 나타나 있었으며 소총자국이라기 보다는 기관총이 동원되어 집중 사격을 하지 않았나 보이며 그 당시의 치열하고 처참했던 상황이 눈에 아른거린다.

 

호경암을 지나 하늘마루 정상에 도착하였다. 도착 후 주위의 경치를 잠시나마 즐기고 다음 코스는 길상사 쪽으로 가자는 의견이 통일되어 내리막길 길상사로 향하게 되었다. 내리막길은 북악 스카이웨이 옆으로 나 있었으며 산보하기에는 더할 나위없이 좋은 코스였으며 잠시나마 내 자신을 정리해 볼 시간적 여유도 있었다.

 

며칠 전 법원에서 판결이 나왔는데 판결문에는 내가 작성하여 제출한 감정보고서 내용이 그대로 인용되었고, 감정인 000라는 실명이 거론되어 크게 놀랐다. 혹 제출된 감정보고서를 원ㆍ피고 쌍방이 검토했을 텐데 전문성, 공정성, 중립성 등이 결여되지 않았나 부담이 되고, 현재 진행 중인 감정업무도 이와 비슷한 결과의 보고서가 나올 텐데...... 머리가 복잡하였다. 재판에서 원ㆍ피고의 쟁점에 대해 감정보고서가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과 어깨가 무겁고 등산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평소 법원이라는 곳은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고 재판이라는 것도 학창시절 교과서를 통해 습득한 지식이 전부인데, 법원 감정인으로 등록되어 감정 업무를 수행하다보니 법학을 전공하지 않는 나로선 법률용어 부터 시작하여 법정에서 질의 답변 등 모든 것이 어렵고 힘이 든다.

 

그러나 재판과정을 통하여 나의 전공을 살릴 수 있고 사회의 이면을 여실히 볼 수 있어 씁쓸하긴 하나 사회생활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 이러한 민사소송이 1년에 백만 건이 넘는다 하니 우리 사회가 얼마나 황폐화되고 각박한 현실인가를 느낄 수 있다.

 

무거운 마음을 뒤로 하고 상큼한 공기를 흠뻑 마시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길상사에 도착하였다. 길상사는 삼각산 아래자락의 7000여평 대지에 자리 잡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사찰로 고급요정 '대원각'을 운영하던 김영한(법명 길상화)이 대원각을 송광사에 시주하여 탄생하였다고 한다.

 

김영한님은 시인 백석과의 첫만남에서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영원한 이별은 없을 것"이라는 백석의 말에 평생을 그리워하면서 백석의 생일인 7월1일이 되면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는 소설 같은 러브스토리가 있으며 1997년 백석문학상을 제정하기도 하였다. 밀실 정치의 현장이었던 요정 대원각이 길상사로 변신하게 된 데는 법정스님의 대표 산문집 '무소유'가 다리 역할을 했다고 한다.

 

1995년 6월 13일 대한불교 조계종 송광사의 말사인 '대법사'로 등록하였으며 1997년에 길상사로 사찰명을 바꾸어 창건하였다. 사찰 내의 일부 건물은 개보수하였으나 대부분의 건물은 대원각 시절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법정스님은 길상사 창건 후 회주(법회를 이끄는 어른스님)를 맡아 정기법회에서 법문을 들려줬으나, 2003년 12월 회주 자리도 내놓았다. 하지만 법정스님은 그후에도 길상사에서 열리는 대중법회에 참석해 법문을 해왔고, 이번 생의 마지막 시간도 길상사에서 보내셨다.

 

길상사 경내를 돌아보며 이 많은 재산을 개인이 시주하였다는 것은 범인으로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인생은 마지막 한줌의 재가 되어 저승에 가는 것은 정해진 수순으로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이치이고 순리가 아닌가! 살아 생전에 좋은 일 많이 하고 후회없는 삶을 살아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길상사 경내 사찰을 돌아보고 다음 코스인 뒤풀이를 어디서 어떻게 할 것인가가 화두가 되었는데 이계신 산우가 자기 동네이기에 주변 음식점을 잘 안다 하여 유명한 ‘한강’쌈밥집을 소개하였다. 길상사를 뒤로하고 한더위에 10여분을 걸어가니 조금 짜증이 나긴 하였으나, 식당에 도착하여 시원한 맥주 한잔에 더위와 짜증은 물러나고 싱싱한 채소에 쌈밥을 맛있게 배불리 먹어 세상 부러운 것이 없었다.

 

그리고 식대 계산은 집행부에서 하리라 생각했는데 자기 동네 왔으니 자기가 계산해야 한다는 이계신 산우 주장에 지난 번 산행 때도 뒤풀이를 주선하였는데 조금 부담스러웠고 고마웠다. ( 잘 먹었당께!! 친구 고마우이!! )

 

식사가 끝나고 다음 산행지를 논의하고 결정은 집행부가 하여 통보해 주기로 하고 해산했다.

 

※ 산행 과정의 사진은 전임 회장님이셨던 김종화, 김정남 산우께서 K-20 카페에 실어 놓은 사진으로 즐기시길 바랍니다.

최 근 호 올림

 

 3.산행지

141회 북악산행 때 이번 산행은 집행부에 위임했기에 산우들에게 알린다. 도봉산 회룡계곡-송추폭포-송추계곡을 생각했으나 도봉산은 최근에 다녀왔으니 다음으로 미루고, 북한산 진관사-삼천사 계곡 코스는 임용복 수석이 추천하는 코스이나 은평 뉴타운이 들어서서 교통편이 매우 불편해졌다. 긴 생각 끝에 불광역에서 올라가는 족두리봉 코스로 결정한다. 특히 임용복 수석의 아들이 9월 12일에 광주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이 코스를 자신이 앞에서 인도하고 하산 후 아들의 결혼과 관련하여 뒤풀이를 미리 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고 마다할 이유가 없어서 집행부에서 결정했다. 모두 와서 미리 축하해주고 맛난 뒤풀이를 즐기자. 북악산행 때 찍은 코스를 올린다.

 

멀리 능선 사진의 왼쪽부터 족두리봉, 비봉, 사모바위, 승가봉 등이 보인다. 그날의 능선 코스다. 오른쪽의 높은 봉우리가 보현봉이다.

 

 

4.동반시

마량이 어딘가? 땅끝마을 해남에 붙은 남도 강진의 한 포구다. 강진은 아름다운 여인, 돌아가신 장모님의 고향이며 내 누님의 시가가 있는 곳이다. 누구나 세상의 눈총을 외면하고 숨겨놓은 여자랑 석달 열흘쯤 놀다오고 싶은 게 세상 남정네들의 숨겨진 심사다. 그러고 싶은 곳이 한적하고 외진 남도의 마량 포구쯤일 것이다. 살다 보니 뜻대로 되는 것보다 안 되는 것이 많다. 뜻대로 되면 인생이 아니라지 않는가! 우리가 그것을 모르지 않으나 답답해지면 세상을 버리고 남도의 포구 한 모퉁이에 박혀 살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때는 세상의 이목이 두렵겠는가. 그나마 가을을 재촉하는 밤비가 내려 세상에 밀린 가슴을 촉촉히 젹셔주는 밤이다.

 

앞으로 산우들에게 동반시를 추천받고자 하니 유념하기 바란다. 이 시는 천리향 김종화 산우의 블로그에 실려있다.

 


좋겠다, 마량에 가면 / 이재무(천리향 김종화 산우의 추천시)

 

몰래 숨겨놓은 여인 데불고

소문조차 아득한 먼 포구에 가서

한 석 달 소꿉장난 같은 살림이나 살다 왔으면,

 

한나절만 돌아도 동네 안팎

구구절절 훤한, 누이의 손거울 같은 마을

'마량'에 와서 빈둥빈둥 세월의 봉놋방에 누워

발가락 장단에 철지난 유행가나 부르며

사투리 쓰는, 갯벌 같은 여자와

옆구리에 간지럼이나 실컷 태우다 왔으면,

 

사람들의 눈총이야 내 알 바 아니고

조석으로 부두에 나가 낚싯대는 시늉으로나 던져두고

옥빛 바다에 시든 배추 같은 삶을 절이고

절이다가 그것도 그만 신물이 나면

통통배 얻어 타고 휭, 먼 바다 돌고 왔으면,

 

감쪽같이 비밀 주머니 하나 꿰차고 와서

시치미 뚝 떼고 앉아

남은 뜻도 모르는 웃음 실실 흘리며

알량한 여생 거덜냈으면,

 

2010년 8월 31일

詩를 사랑하는 山사람들의 詩山會 도움쇠 김정남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