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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관악산 둘레길(詩山會 제155회 산행)

관악산 둘레길(詩山會 제155회 산행)

산 : 관악산

코스 : 까치산생태육교-무당골-전망대-낙성대공원-갈림길(이후 코스는 산우들이 결정)

소요시간 : 4시간

일시 : 2011년 3월 13일(일) 10시

모이는 곳 : 전철 2호선, 4호선 사당역 6번 출구

준비물 : 막걸리, 안주, 과일, 카메라

연락 : 박형채(011-250-5382)

블로그 : 사진 blog.daum.net/sisan20

산행기 blog.daum.net/yc012175

카페 cafe.daum.net/K-20

 

1.시를 통한 시론

 

금강경 읽는 밤 - 전윤호(1964~ )

내가 잠든 밤

골방에서 아내는 금강경을 쓴다

하루에 한 시간씩

말 안하고 생각 안하고

한 권을 온전히 다 베끼면

가족이 하는 일이 다 잘될 거라고

언제나 이유 없이 쫓기는 꿈을 꾸다가

놀라 깨면 머리맡 저쪽이 훤하다

컴퓨터를 켜놓고 잠든 아이와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 속에서

경을 쓰는 손길에 눈발이 날리는 소리가 난다

잡념처럼 머나먼 자동차소리

책장을 넘길 때마다 풍경소리

나는 두렵다

아내는 나를 두고 세속을 벗어나려는가

아직 죄 없는 두 아이만 안고

범종에 새겨진 천녀처럼

비천한 나를 떠나려는가

나는 기울어진 탑처럼 금이 가다가

걱정마저 놓치고 까무룩 잠든다

의기가 소침해진 한 가장의 내면이 반어적으로 나타나 있다. 이 가장 밤에 쫓기는 꿈에 놀라 깰 때마다 아내가 골방에서 ‘금강경 베껴쓰기’라는 두려운 공작(工作)을 벌이는 속셈을 읽어낸다. 사실은 세속을 떠나고 싶은 자신의 속셈인 거지만. 아내의 금강경 쓰기는 가족의 안녕을 위한 기도라는 떠남이고, 쫓기는 꿈처럼 늘 도망 중이었던 남편의 ‘아내의 금강경 쓰기 엿보기’는 몸 묶여 비천한 그만큼 높은 꿈으로의 기도며 떠남인 것. 두 아이를 안은 아내와 남편, 세속이라는 범종에 새겨진 천남 천녀들. <이진명·시인>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일상을 떠나고 싶다고 하는데 나는 자주 그런다. 나는 무엇이 두려워서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애들이 다 커서 일자리를 잡았으므로 제 앞가림을 할 수 있으니 가계에 대한 부담도 없는데 무엇이 아쉬워서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세상에 빼앗기고 더 빼앗길 것도 없는데 어떤 미련이 남아서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산 속의 절이든, 따뜻한 해남의 바닷가든, 동해의 한 섬이든 '떠난다 떠난다'하며 살다보면 떠날 날이 있으리라. 그런 날을 꿈속에서 꿈을 꾸며 산다. 우리와 함께 하는 꿈들은 우리가 이끌어가는 삶과 대비되는 경우가 많다. 떠돌이는 집으로 돌아가는 꿈을 꾸고, 한곳에 터를 잡고 사는 사람은 해보지 못한 일을 하기 위해 먼 곳으로 떠나는 것을 꿈꾼다.<도봉별곡>

 

2.산행기

시산회 제154회 칼봉산 산행기

□ 산행일/날씨 : 2011년 2월 26일(토)/쾌청

□ 산행코스: 칼봉산(899M, 경기도 가평군 소재)

가평역/칼봉산자연휴양림/한석봉마을/경반분교/배씨농가/회목고개/

칼봉산정상/용추폭포 방향 우측능선길/경반분교/[가평역 원점 회기

□ 참석자 : 6명(김정남/김종화/이경식/이원무/전작/조문형)

□ 동반시 : 회귀-영수를 위하여/강은교

□ 뒤풀이 : 섬마을수산(해물샤브샤브, 상봉역 5번 출구 부근)

 

어제 늦은 밤, 사정이 있어 참석 못하는 박 총장에게서 산행시와 참석자 명단을 받았다. 산 이름이 무시무시해서 그런지 참석자가 많지 않다.

 

오늘은 약간 쌀쌀하나 봄기운을 느낄 수 있는 산행하기에 딱 좋은 쾌청한 날이다. 요깃거리와 행장을 꾸려 가벼운 옷차림으로 출발하려는데, 마나님이 복장점검 후, "산 날씨는 모르니 내복 입을 것!" 한마디 한다. 명령에 따라 복장 수정 후 출발했다.

 

9시 10분경 상봉역에 도착해보니 최근 기존 지하철역을 중앙선과 경춘선의 통합 환승역으로 새로 확장하여 엄청 복잡하다. 경식, 원무, 문형이와 핸드폰으로 서로 연락하여 겨우 만나 가평역으로 가는 9시 40분경 경춘선 열차를 타고 출발해서 망우역에서 기다리고 있던 정남, 종화와 합류 했다.

 

산우들과 기차 창 밖으로 펼쳐진 자연 풍광을 보면서 정담을 나누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 진다.

 

11시경 가평역에 도착했다. 역사 내 편의점에서 부족한 막걸리를 산 후 택시 2대로 칼봉산 자연휴양림관광사무소에 도착하여 정남 전회장의 안내에 따라 경반분교 쪽 코스로 올라 가기로 했다.

 

조금 올라 가니 '한석봉 마을'과 '백학서당' 이라 쓰인 돌 비석이 보인다.

이곳과 한석봉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조선 선조 때 가평현감을 지냈다고 되어 있다. 아무튼 조그마한 것이라도 관광상품화 하려는 지방자치기관의 세심한 노력에 감탄 할 따름이다.

 

평탄하지만 응달진 곳 군데군데 눈과 얼음이 덜 녹은 길을 따라 한 참을 가니 폐교된 경반분교가 나온다. 이 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외딴 농가의 주인에게 물어 보니 한 때는 이 깊은 산중에도 화전민이 꽤 살았고, 이 학교에서 얼마 전 박찬호가 얼음 깨고 물속으로 들어 간 '강호동의 1박2일'을 촬영했다고 한다. 이것도 관광상품으로 만들려나?

 

조금 올라 가니 개 키우는 농장이 있다. 큰 개 짓는 소리에 경식이가 멈칫한다. 경식이 왈 “작은 개는 집에서 키우는데 큰 개는 보기만 해도 겁이 난다”고 하면서 걸음아 나 살려라 개장 옆을 지나간다.

 

경반사 방향으로 한 참을 가니 갈림길이 나온다. 정남이 안내로 칼봉산 정상 방향으로 올라 갔다. 상당한 경사 길이다. 나와 문형이는 입었던 내복을 벗었다. 그런데 등산로가 없어 졌다. 이 곳에서 한 30여분간 길을 찾았으나 못 찾고 다시 오던 길로 되돌아 갔다. 경반사와 회목고개 갈림길에서 회목고개 쪽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이곳에서 회목고개까지는 완만한 오르막 길이었다. 회목고개에 도착해서 떡, 땅콩, 한과, 막걸리로 간단히 요기하고 잠시 휴식을 했다.

 

회목고개에서 정상을 올라 가는 길은 능선 길 양쪽이 급경사다. 그래서 '칼봉산'이라고 한 것 같다. 오르랑 내리랑 숨이 차기 시작한다. 하산 길의 40대 한 쌍을 만났다. 오늘 처음 산객과 조우했다. 이 한 쌍 왈 “ 이 산은 매니아들이 오는 산 이다 ”.

우리 시산회 산우들을 알아보고 한 말 같다.

칼봉산 정상이 바로 보인 것 같은데 정상 같은 봉우리를 몇 개나 오르랑 내리랑 한다. 또 30대 남자 한 산객을 만났다. 지나 가면서 “ 용추계곡으로 하산하면 미끄러우니 조심하라 ” 고 한다. 남을 배려하는 이 산객의 마음이 아름답다.

 

오후 2시 30경 드디어 칼봉산 정상(해발 899M)에 도착했다. 오늘 따라 시야도 좋아 가평군 일대 높고 낮은 산과 들이 다 보인다. 가슴이 후련하다. 이 맛에 산에 오는 것 같다. 이곳에서 정상표지석을 배경으로 서초산악회 여산객의 도움을 받아 단체기념사진을 찍었다. 이 남녀 두 산객은 “구제역으로 대부분 산이 입산통제되어 평소 오지 않은 이 산을 다음 주에 오기 위해 사전 답사 차 왔다”고 한다. 구제역이 소와 돼지 뿐만아니라 산악회 사업에도 피해를 주었음을 알았다.

 

두 산객이 비껴준 바람 없는 자리에 돗자리를 펴고 생굴, 한과(정남), 가오리무침(경식), 오리훈제(문형), 떡(종화), 막걸리 등 진수성찬을 차렸다. 산 정상에서 좋은 친구들과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산해진미로 원기 보충하고 아름다운 시 한 수 낭독하고 덕담 나누는 이 맛…….최고 최고다.

 

벌써 오후 3시 30분경이 되어 안전을 위해 양지쪽 방향으로 서둘러 하산하기로 했다.

내려가는 능선길이 엄청 가파르다. 낙엽이 수북하고 군데군데 낙엽 밑에 얼음이 있다. 거리도 장난이 아니다. 아마 하산 길이 이리 힘든 것은 시산회 역사상 몇 손가락 안에 들 것 같다. 다들 참나무 군락지를 조심 조심 내려오다 보니 5시 30분 경에야 경반사 앞 길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택시가 기다리는 관광안내소까지 꽤 긴 길을 잰 걸음으로 하산 했다.

가평역에 도착하자마자 운 좋게 오후 6시 20분 상봉역행 급행 열차를 탔다.

상봉역에서 내리자 이 회장께서 오늘 뒤풀이는”‘돈 좀 쓰자”고 하면서 샤브샤브집에서 하자고 한다. 다들 건강을 위해 해물 샤브샤브로 하기로 했다. 해물도 야채도 싱싱하여 맛난 집이다. 소주, 맥주, 막걸리 반주에 식사까지 하고 나니 밤 9시다. 다음 산행지는 관악산으로 하고 뒤풀이를 끝냈다.

 

집에 도착하니 세시봉 프로가 방영되고 있다.

조영남,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이 나와 좌담과 노래를 한다.

우리 시대 사람, 우리 시대 노래를 보고 들으니 마음이 편하다.

오늘은 행복한 하루 였다.

 

시산회 산우들 이여! 세시봉처럼 다시 한 번 힘내서 떠봅시다.(끝)

 

전작 올림

 

3.산행지

이번 산행지는 관악산 둘레길이다. 총동문회 시산제가 3월 둘 째 일요일에 열리는 관행을 깨고 첫 째 토요일에 열리는 바람에 참석을 하지 못했다. 항상 우리 20회의 참석인원이 가장 많았으니 아쉽고, 작년에는 전체 동문 산악인들 앞에서 시 낭송을 했는데 올해는 기회를 놓쳤다. 이 회장님께서는 시산회의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전체 동문 산악회가 년 초에 일정을 발표하면 좋겠다는 의사를 표시해주기 바란다. 동문회의 일정과 관계없이 정해진 대로 관악산 둘레길 산행을 한다. 코스는 임 수석이 추천하고 회장님이 동의해서 정했다. 코스를 검색하고 의견을 나눴지만 아직 제대로 정비가 되지 않고 자갈길이 있어 불편하다는 네티즌들의 의견이 있으니 감안하고 산행을 한다. 위에 적은 코스까지는 오르고 다음 코스는 산우들의 의견에 따르겠다는 것이 이 회장님의 생각이다. 제154회 가평 칼봉 산행은 많이 걸었으니 이번 산행은 가볍게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칼봉을 산행하면서 또 늑대소년(?)이 되었다. 코스는 다르지만 2004년 초 눈 쌓인 길을 가볍고 쉽게 오른 것으로 산행노트에 적어 놓았고 기억도 생생해 그대로 표현했는데 산우들은 조금 힘들었던지 도움쇠의 말은 도대체 믿을 것이 못 된다는 푸념과 불평(?)을 번갈아가며 들었는데 나도 억울하고 할 말이 있다. ㅎㅎㅎ! 아니면 우리가 8년 전에 비해 많이 늙어버렸는지. 산우들아! 돌이켜 보건데 나이가 들수록 세월이 흐르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니 단 한 시간도 헛되이 보내지 말고, 즐길 수 있을 때 즐기고 시간을 황금보다 소중하게 여기자. 집행부의 요청에 따라 2011년 산행지를 선정하면서 강남과 강북의 산행일정을 산의 수에 비례해 적당히 안배했으며, 산행일의 요일에 관한 의견교환이 있었는데 년 초에 공지한 산행지와 일정에 약간이 변경이 있을 수 있으니 감안하기 바란다. 꽃샘추위는 오고 간다. 우리 산행의 날은 신이 보우하사 항상 날이 좋았다. 관악산행의 날도 날씨가 풀리고 맑다니 모두 모여 명산 관악산 자락에서 하루쯤 맘 놓고 놀고 지고.

 

4.동반시

동반시와 프로로그시를 선정할 때 전에는 인터넷에서 검색하다가 요즈음 동반시는 그간 모은 시집에서 뽑는다. 시집들은 서가의 내 눈높이와 같은 위치에 꽂혀있고 그 중에 유난히 눈길이 자주 가는 시집이 있다. 우리와 나이가 비슷하고 영문학 교수를 지낸 고 강경화 시인의 시집이다. 완치되었다고 믿었던 유방암이 재발하여 2009년 꽃 피는 4월에 돌아가셨는데 희미하게 웃는 시인의 사진을 보면 가슴이 아리다. 시인은 '이제 나는 머물지 않을 수 있는데'라며 시를 통해 사랑하는 사람들을 놓고 마음 비우고 편하게 간다고 했지만 쉽게 놓아졌겠는가. 어느 곳에나 있지만 아무데도 없는 게 사랑이란다. 때로는 구원이지만 영혼을 옥죄는 감옥 같은 사랑도 있고 모든 인간에게 오고 가는 게 사랑이다. 사랑은 열병과 같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우리를 덮쳤다가 사라진다. 사랑은 소나기와 같다. 무더운 여름날 오후, 갑짜기 먹구름이 끼면서 쏟아져 내리지만 개인 후에는 더 후덥지근한 무더위가 몰려온다. 사랑은 쉽지 않다. 사랑을 얻는 것도 사랑할 준비를 하는 것도......하지만 더 어려운 것은 그 사랑을 지키는 것이다. 사랑을 하면서 죄와 책임의 문제를 묻지 마라. 사랑할 때는 도덕과 윤리와 정의를 떠올리지 마라. 금지된 사랑이란 없다. 사랑은 꼭 필요하며, 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우리도 벌써, 자기의 생각과 다른 남의 말을 들어도 거슬리지 않고 사람과 생각의 다양함을 이해하고 부질없이 반발하지 않게 된다는 이순(耳順)의 나이가 되어 버렸는데 어떤 삶이건 삶의 한 순간 한 순간이 소중하니 물처럼 쉬지 않고 흐르는 시간을 아껴 쓰고 소중하게 보내자.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아끼지 말고 미움과 원한은 풀고 사랑은 베풀고 가진 것을 나눠가며 살자. 망설이지 말고 더 많이 사랑하자. 최근호 산우의 말처럼 인생 뭐 별거냐, 가지고 가는 것도 아닌데! 갈 때 남아있는 것이 많다면 아주 잘못 산 삶이라는 게 나의 지론이다. 많이 남겨 가족에게 물려주고 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게 어머님의 생각이셨으니 그분을 존경하는 내 생각도 크게 틀리지 않다.

 

바빠서 그런지 몰라도 시간이 너무 빨리 가고 세월이 너무 빨리 흐른다. 시간은 왜 점점 더 빨리 흘러가는가? 실제로 경험한 시간과 앞으로 주어진 시간 사이에는 어떤 비례관계 같은 것이 존재하는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시간이 더 빨리 지나가는 것은 남아 있는 생이 줄어들기 때문인가? 휴가의 끝을 앞두고서 휴가의 전반부보다 후반부가 훨씬 더 빨리 지나가듯이? 아니면 그것은 우리의 목표와 상관있는가? 젊은 시절에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까닭은 마침내 우리가 성공을 거두기를, 명성을 누리고 부자가 되기를 초조하게 기다리기 때문이고, 나중에 나이가 들어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까닭은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이 더 이상 없기 때문인가? 아니면 우리가 하루의 일정을 훤히 알기 때문인가? 우리가 어떤 길을 다닐수록 그 길을 점점 더 빨리 갈 수 있는 것처럼? 시간을 잡는 방법은 빛의 속도로 가는 것인데 불가능한 일이므로 그냥 열심히 살자. 내가 '사랑과 행복'에 대한 글을 쓰고 싶어 메모를 시작하면서 바쁜 마음이 든다. 글이 되어 책이라도 편다면 좋을 일이고 아니면 말고. 일본의 인기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책을 쓸 때 길게는 일 년을 쓰고 일 년은 덮어두고 실컷 놀다가 일 년을 고친 다음, 그러다보니 삼 년 후에 책을 펴낸다고 한다. 시인은 바람이 부는 곳에는 늘 강이 있다고 했다. 나는 늘 바람같이 살고 싶다했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오뉴월 서쪽에서 불어오는 하늬바람처럼.

 

좋은 시니 동창들을 위해 애쓰고 희생하는 김용우 산우가 나와 하늬바람 부는 먼 하늘을 향해 시인보다 더 시인답게 읊어주면 좋겠다.

 

새 / 강경화

 

바람 부는 곳에는

늘 강이 있다.

아아, 회오리바람 부는 곳이

나는 싫어라.

 

산들이 겹겹이 저를 감추는 첩첩산중

안개 자태 고운 곳에 둥지를 틀고

그림 속을 날아가는, 나는 새가 되고 싶었다.

아아, 그림자 없는 달이 되고 싶었어라.

 

사람들 눈물이 번져 강물이 되었노라고

누군가 죽은 이의 옷가지를 건지며 안개 속에

희미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고통은 지워야 하는 것,

보이지 않는 곳, 들리지 않는 곳을 찾아

우리는 애써 모닥불을 피운다.

 

가슴이 따뜻하면 등이 춥고

등이 따뜻하면 가슴이 시린 곳에서

잊는 것을 배우는 것이 사내다움이다.

술을 마시렴.

 

그러나 굴곡진 선들이 아련한 산 속에서도

나는 결코 새가 될 수 없었다.

산에 숨을수록 높은 발 아래 눈물진 강이 보여

나는 누군가의 고통이 될 수밖에 없으리라.

 

아아, 회오리바람 부는 곳

깨어지고 떨어져 부서지는 곳,

강으로 나가는 것이 싫어도 희망은

강에만 산다고

희디흰 날개를 휘저으며 새들은 노래를 부른다.

 

시인 양력 :

1951년 공주 출생. 동덕여대 영문과 교수.

1998년 유방암 발병 4기. 1999년 완치 판정.

2008년 재발하여 이듬해 4월 영원히 잠들다.

 

2010년 3월 11일

詩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도움쇠 김정남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