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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북한산과 문수동자(詩山會 제178회 산행)

북한산과 문수동자(詩山會 제178회 산행)

산 : 북한산

코스 : 불광역-족두리봉-향로봉-비봉-사모바위(하산은 그때 결정)

소요시간 : 4시간

일시 : 2012년 2월 12일(일) 10시

만나는 곳 : 전철 3호선 불광역 2번 출구

준비물 : 막걸리, 안주, 과일, 카메라, 아이젠

연락 : 전작(010-9858-2858)

사진 : blog.daum.net/sisan20

산행기 : blog.daum.net/yc012175

카페 : cafe.daum.net/K-20

 

 

1.시를 통한 시론

 

나무/안찬수(1964~ )

 

아무도 이 나무의 세월을

다 알지 못한다

 

나무는 베어진 뒤에야

나이테의 둥근 물결로

자신이 살아온 나날의

 

바람과

비와

구름을

이야기 할 수 있을 뿐

 

아무도 이 나무의 세월을

다 알지 못한다

 

 

하늘과 바람과 별을 품고 살아가는 나무의 세월을 헤아리는 건 애당초 불가능했다. 나무는 굵은 줄기 안쪽의 깊숙한 속살에 세월의 켜를 차곡차곡 쌓아 나이테를 짓는다. 그러나 앙다툼하며 흐르는 세월을 붙들지 않는다. 말하거나 보여줄 필요도 없다. 세월 깊어지면 나무는 줄기 안쪽의 살점을 스스로 덜어낸다. 세월의 켜는 나무가 비워낸 허공으로 흩어진다. 나무를 살게 한 하늘과 바람과 별의 자취는 안쪽부터 서서히 사라진다. 나이테로 남은 세월보다 허공에 흩어진 세월이 더 길고 깊다. 그리고 다시 다가오는 하늘과 바람과 별을 바라보며 주어진 삶을 살아갈 뿐이다. 나무는 끝내 지나온 세월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고규홍. 나무칼럼리스트>

 

살다보니 사람들은 자신의 역경이나 불행을 과대포장하는 경우가 많음을 보게 되고 내막을 숨기면 알기 어렵다. 그러나 나이테는 나무가 처했던 환경을, 겪었던 기후를 그대로 드러낸다고 한다. 하여 끝내 지나온 세월을 말할 필요가 없다. 우리도 무언가를 남겨야 세상을 살았던 증거가 된다. 나이가 많이 들어가는 요즘은 시간의 개념에 대해 자주 생각해보지만 흘러가는 세월을 막을 수 없으니 다가오는 미래를 잘 대비해야겠다. 글을 쓰는 새벽인 지금도 시간은 흐른다. 세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나는 매우 행복한 편에 속하고 나보다 불행한 사람은 많고 역경에 처한 사람은 훨씬 더 많더라. 잠시 불편한 역경에 처해보니 흔한 말로 속이 조금 들어간다는 생각이 든다. 그 흔한 역경조차 없었다면 속 없는 사람으로 인생을 끝낼 뻔 했다. 그나마 고맙고 다행스런 일이다.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

<도봉별곡>

 

 

2.산행기

시산회 제177회 산행(청계산 2012. 1. 28(토)) 맑음

 

산행일/집결지 : 2012. 1. 28(토) / 대공원역 2번 출구(10시)

 

산행 소요시간 : 5시간 (10:30~15:30)

 

산행코스: 대공원역-서울랜드입구-문원능선-절고개능선-청계사입구-이수봉-철쭉능선-어둔골계곡-봉오재-옛골토성(뒤풀이 장소)

 

동 참 자: 11명 <고갑무, 김용우, 김정남, 김종화, 나양주, 신원우, 위윤환, 이경식, 이재웅, 임삼환, 전작>

 

※ 최광일 : 집결지(대공원역 2번 출구 앞)에만 참석

 

동 반 시: 이 겨울의 어두운 창문 / 기형도

 

뒤 풀 이: 훈제 오리고기에 막걸리, 소주 및 양주 / "옛골토성"(청계산점)

 

아침 일찍 마나님이 준비해 준 간식을 배낭에 챙겨 넣고 밖을 나섰다. 쌀쌀한 날씨이지만 한겨울 치곤 하늘이 맑고 바람이 없어 산행하기엔 더없이 좋은 날이다. 어제 밤에 숙면을 하지 못 하였더니 머리가 무겁다. 요즘 들어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날들이 많아진다. 환갑이 되었으니 이제 노년기의 시초인가 보다. 어제 저녁, 대학친구와 막걸리 몇 잔 마시며 건강관련 여러 골치 아픈 이야기를 한 게 두고두고 생각이 나 잠을 제대로 못 잔 것 같다.

 

산성역에서 전철을 타면서 집결지인 대공원역까지의 시간을 가늠해 본다. 그럭저럭 산우들과 약속된 시간에 맞춰 도착할 것 같다. 좌석에 앉자마자 잠시 잠을 청해보지만 잠이 오질 않는다. 스마트 폰을 끄집어내어 이메일 등을 점검해 본다. 과학의 발달로 스마트 폰이 개발됨에 따라 수많은 정보들을 쉽게 제공받을 수가 있어서 편리하다. 지하철 승객들 대부분이 폰에 눈길을 집중하고 있다. 아마도 인터넷이나 게임, TV 시청 등을 하고 있으리라.

 

대공원역 2번 출구를 나서니 반가운 산우들의 모습이 보인다. 년 초부터 몸이 불편하였던 김용우 총장님과 시산제때에 처음 참석한 양주 친구도 보인다. 광일이는 내가 도착하자마자 갑자기 병원에 문병 갈 일이 있다고 하며, 산행에 동참하지 못한다고 양해를 구한다. 어제 밤 나와 통화했을 땐 꼭 참석하겠다고 했었는데, 갑자기 피치 못할 일이 생겼나 보다. 도봉산 근처에 살고 있는 정남이가 굴을 사러 하나로마트에 들른다고 사정상 조금 늦게 도착, 10시30분경에 출발이다. 오늘의 산행길은 제법 긴 코스로 정하였다.

 

서울랜드 쪽으로 가면서 막걸리 몇 병을 보충하고 양주와 함께 뒤따라가는데, 작이 총장님은 오늘 산행기를 쓸 기자를 지정한다. 가, 나 ,다 순에 의거 용우, 정남의 순이나 두 친구들 모두 업무상 등을 이유로 사양을 한다. 다음이 내 차례이니 난, 바로 내가 쓰겠다고 하였다. 내가 사양한다면 양주, 원우에게 까지 돌아갈 수밖에 없지 않는가. 총장님의 심적인 수고를 덜어주는 차원에서 내가 쓰겠다고 한 것이다. 모두들 산행기 작성에 대한 부담이 많은 것 같은데, 우리 시산회 친구들 모두는 작가이지 않는가? 지금까지 잘 해 온 만큼 앞으로도 집행부에 협조를 부탁드린다.

 

누가 앞장을 섰는지, 산우들은 곤돌라승차창 우측길로 가지 않고 서울랜드 매표소 쪽을 향해 열심히 앞서 가고 있다. 새로운 길을 알고 있는 산우가 있는가 싶었는데, 결국은 약 10여분동안 워밍업만 하고 나와 양주 친구가 알고 있는 들머리로 돌아 갈 수밖에 없었다. 아는 길도 물어서 가라 했는데......

 

청계산의 등산로는 거의 대부분이 흙으로 된 육산으로 산행 초보자나 나이 든 사람들이 걷기에 안성맞춤인 산이다. 작은 매봉을 향해 능선을 따라 한참을 가다가 간이의자가 설치되어 있는 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잔다. 경식이는 지난번에도 가지고 온 초코렛떡을 내어 놓는다. 달콤하고 쫀득쫀득해 씹히는 맛이 좋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출발한다. 많은 산객들을 따라 한참을 가는데, 앞쪽에서 웬 음악소리가 들려온다. 한 남자는 기타를 치고, 한 여자는 찬송을 하고 있다. 다른 일행은 등산객들에게 따뜻한 차와 함께 전단지를 나눠주며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 각 종교단체마다 소망과 비젼은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과천에 소재한 이 교회는 나눔과 섬김을 실천하는 교회로서 2000년도부터 지역사회의 아동 및 청소년과 노인복지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단다.

 

여인의 아름다운 노fot소리를 들으며 따뜻한 차 한 잔을 마 신후 다시 출발이다. 전망이 좋은 작은 매봉은 시간관계상 오르지 않기로 하고, 8부 능선에서 좌측으로 우회하여 청계사 쪽을 향하였다. 응달진 등산로는 쌓인 눈이 녹지 않고 얼어붙어 있었다. 이런 길은 항상 발 끝에 중심을 두고 긴장을 하며 걸어야만 한다. 산행 때마다 산우들의 화제에 정치 분야와 여자의 이야기는 빠질 수가 없는가 보다. 나이 들어 노년기에 접어들어 거시기는 점차 힘이 없어도 여자이야기가 나오면 모두가 기를 쓰고 한마디씩 거든다. 나이 들면 양기가 입과 눈으로 몰리는가 보다. 입과 눈으로라도 실컷 즐기는 게 보통 남자들의 마음일 테니 앞으로 좋은 정보가 있으면 서로가 공유토록 하세나.ㅎㅎㅎ

 

청계산 능선 중간지점인 헬기장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 가지고 온 간식을 먹자니, 조금 더 가서 먹자니 하며 두 팀으로 나눠 한참을 옥신각신 하다가 결국엔 양지 바른 곳에 자리를 폈다. 전 총장님은 우선 동반시부터 낭독하자며 2012년도 산행계획(안)과 회원명단이 양면으로 복사된 동반시와 산행지도를 나눠 주신다. 동반시, 기형도 시인의 ‘이 겨울의 어두운 창문’은 산행기를 작성하기로 한 내가 낭독하였다. A4 용지의 한 면을 가득 채운 장문의 시 다. 목청을 한껏 가다듬고 오랜만에 시를 낭독하였다.

 

기형도 시인, 그는 인천 옹진 태생으로 연세대 정치외교과를 나와 중앙일보 문화부, 정치부, 편집부 기자생활을 하며 주로 유년의 우울한 기억이나 도시인들의 삶을 담은 독창적이면서 개성이 강한 시들을 발표하였다. 대학시절에 윤동주 문학상과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서 ‘안개’가 당선되며 문단에 등단하였으나 29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였다. 주요 작품집으로는 유고시집인 ‘입 속의 검은 잎’ 등이 있다. 우리 시산회에서는 100회 관악산 산행 때 그의 시 ‘질투는 나의 힘’을 동반하기도 하였다

 

때마침 곁에서 자리를 잡고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가 시를 낭독하는 우리일행의 모습을 본 다른 산악회팀에서 오늘 시산제를 지냈다며 제물음식을 가져다준다. 답례로 정남이 가지고 온 한과를 드렸더니 그들은 또다시 과일을 준다.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만의 아름다운 모습 일게다.

 

오늘도 산우들이 가지고 온 먹을거리가 풍부하다. 정남의 생굴, 재웅이 남광주시장에서 우송한 홍어, 내가 가져간 구룡포산 과메기무침, 전작 총장의 두부, 삼환의 버섯부침개, 원우의 찰떡, 감귤 등등 모두 다 기억할 수가 없다. 더불어 갑무는 3년 동안이나 아껴뒀다 가지고 온 안동소주를 내어 놓는다. 쬐금 비싼 술이라 그런지? 알코올 도수가 낮은 막걸리는 뒷전으로 밀렸다. 재웅도 양주를 두 병이나 가져왔으나 안전한 산행을 위해 뒤풀이 때 마시기로 하였다.

 

이것저것 배부르게 먹고 마셨으니 다시 이수봉을 향해 가야 할 시간이다. 윤환인 재미로 두 친구를 선정, 사다리타기를 하여 쓰레기를 가져가게 하잔다. 결과는 나와 원우가 당첨되었다. 원래 좋은 일이란 복이 많은 친구들이 당첨된다는 생각으로 뒷자리를 정리한 후 단체 인증샷도 남겼다. 출발 후 정남인 급한 볼 일이 있다하며 옆길로 샌다. 삼환과 나는 보호 차원에서 함께 옆길로 올랐는데, 주능선의 단축코스인양 경사도가 만만치 않다. 숨을 가쁘게 내 쉬면서 한참을 오르니 능선길이 나온다.

 

만경봉으로 가는 삼거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산우들이 어디쯤 오는가를 알아보는데 산 속이라서 전화통화가 잘 안 된다. 잠시 후 덩치가 듬직한 원우를 앞세우고 산우들이 나타난다. 반갑게 조우하여 잘 정비된 능선을 조금 더 걸어가니 ‘이수봉’이란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수차례 이곳을 올라왔지만, 이곳은 항상 수많은 등산객들의 쉼터이다.

 

‘이수봉’의 유래는 잘 알겠지만, 조선 연산군 때의 유학자인 정여창 선생이 스승 김종직과 벗 김굉필이 연루된 ‘무오사화’의 변고를 예견하고, 한때 이 산에 은거하여 생명의 위기를 두 번이나 넘겼다하여 후학인 정구 선생이 이곳을 ‘이수봉’이라고 명명하였다고 전해진다. 우린 잠시 쉬면서 표지석을 배경으로 증명사진을 촬영한 후 옛골로 향하였다. 등산객 중 6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산객은 라디오볼륨을 크게 틀고서 맨발로 걷고 있다. 잔돌이 거의 없는 흙산이라 걷는 데는 어려울 게 없고, 건강에도 매우 좋아 보였으나 조용한 시간을 갖고 싶어 하는 다른 등산객들에겐 꼴불견이다.

 

옛골에 도착, 항상 뒤풀이를 하였던 단골식당인 산하가든집을 찾았으나 새롭게 개축중이다. 별 수 없이 ‘옛골 토성’집으로 향하였다. ‘옛골 토성’은 훈제 오리고기가 유명하다. 장작불에 바비큐식으로 은근히 구운 오리고기도 맛이 있는데, 산우들의 입맛은 ‘옛골 토성’하면 훈제 오리고기인가 보다. 먹산회 답게 우린 훈제 오리고기를 안주로 막걸리와 소주, 그리고 재웅이가 가지고 온 양주 두 병마저 다 비운 후에 뒤풀이를 마쳤다.

 

산행계획과 관련하여 협의된 사항은 7~8월중, 원거리산행 시 여수엑스포도 구경할 겸 1박2일로 고향 쪽인 고흥 팔영산(도립공원 이었는데 최근 국립공원으로 변경)을 가기로 하였다. 다음 산행은 2월 둘째 주 일요일엔 북한산을 산행하기로 결정한 후 불광역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벌써 입춘이 지나고 오늘이 정월대보름이다. 머지않아 대동강 물이 풀린다는 우수이고, 개구리가 잠에서 깨어 나오는 경칩도 얼마 남지 않았다. 따뜻한 봄날이 멀지 않았으니 산우들 모두가 건강관리 잘 하여 다음 산행 때에는 많은 산우들이 함께 하시길 빌면서 산행후기를 맺는다.

 

- 성남에서 김종화 씀. -

 

< 동반시 >

 

이 겨울의 어두운 창문/ 기형도

 

 

어느 영혼이기에 아직도 가지 않고 문밖에서 서성이고 있느냐,

네 얼마나 세상을 축복하였길래 밤새 그 외로운 천형을 견디며 매달려 있느냐.

 

푸른 간유리 같은 대기 속에서 지친 별들 서둘러 제 빛을 끌어모으고

고단한 달도 야윈 낫의 형상으로 공중 빈 밭에 힘없이 걸려 있다.

 

아느냐, 내 일찍이 나를 떠나보냈던 꿈의 짐들로 하여 모든 응시들을 힘겨워하고

높고 험한 언덕들을 피해 삶을 지나다녔더니,

놀라워라. 가장 무서운 방향을 택하여 제 스스로 힘을 겨누는 그대,

기쁨을 숨긴 공포여, 단단한 확신의 즙액이여.

 

보아라, 쉬운 믿음은 얼마나 평안한 산책과도 같은 것이냐.

어차피 우리 모두 허물어지면 그뿐, 건너가야 할 세상 모두 가라앉으면

비로소 온갖 근심들 사라질 것을. 그러나 내 어찌 모를 것인가.

내생 뒤에도 남아 있을 망가진 꿈들, 환멸의 구름들,

그 불안한 발자국 소리에 괴로워할 나의 죽음들.

 

오오, 모순이여, 오르기 위하여 떨어지는 그대.

어느 영혼이기에 이 밤 새이도록 끝없는 기다림의 직립으로 매달린 꿈의 뼈가 되어 있는가. 곧이어 몹쓸 어둠이 걷히면 떠날 것이냐.

한때 너를 이루었던 검고 투명한 물의 날개로 떠오르려는가.

나 또한 얼마만큼 오래 냉각된 꿈속을 뒤척여야 진실로

즐거운 액체가 되어 내 생을 적실 것인가.

공중에는 빛나는 달의 귀 하나 걸려 고요히 세상을 엿듣고 있다.

오오, 네 어찌 죽음을 비웃을 것이냐 삶을 버려둘 것이냐,

너 사나운 영혼이여! 고드름이여!

 

- 그의 유고시집인 “입 속의 검은 잎”에 실려 있음 -

 

 

3.산행지

이번 산행은 북한산이다. 코스는 불광역-족두리봉-향로봉-비봉-사모바위까지 가서 하산은 거기서 결정한다. 내친 김에 문수봉으로 올라 정릉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권하고 싶다. 길다면 승가사를 거쳐 구기동으로 내려오는 남쪽 코스도 좋다. 내려와 나 원장과 정초에 산행 후 들렀던, 따뜻하고 푸짐한 두부김치에 설렁탕을 파는 집의 막걸리가 맛있었다. 추운 겨울의 막바지 추위에 몸을 움츠렸지만 모처럼 만나는 산우들이 반갑지 않겠는가. 모두 모여 반가운 얼굴들이 잘 있었는지 살펴보자.

 

집행부에 제안한다. 동감한다면 산우들도 제안해주기 바란다. 2012년도 산행계획에 184회 5월 19일에 대모-구룡산에 가기로 했으나 마침 5월 28일은 석가탄신일로 연휴니 일정을 조절하여 5월 27~8일에 1박2일 코스로 신원우 동창회장님이 말한 지리산 칠선계곡을 다녀오면 좋겠다. 국립공원 측의 탐방일정이 5~6월과 9~10월에 한하여 추성주차장에서 천왕봉으로 오르는 요일은 월. 목이고 천왕봉에서 추성주차장으로 내려오는 요일은 화. 금에 한정하고 있으니 기회가 별로 없다. 2012년의 달력을 보면 일. 월 연휴는 한 번뿐이다. 오르는 시간은 8시간으로 계획하고 있으나 평생을 가도 보기 어려운 절경이라 하니 지루하지 않을 것이고, 점심시간을 빼면 7시간 정도로 지리산 종주도 하고 설악의 공룡능선을 탄 우리들의 실력으로 봐서 어렵지 않다고 생각한다. 일요일 오전에 출발하여 진주까지 가서 진주성과 남강 논개바위를 보고 저녁에 간단하게 술 한잔하고 진주나 백무동에서 자든지 추성주차장 근처에 숙식할 곳이 있으면 그곳에서 숙식을 해결한다. 이 계획에는 지정한 요일에 한하여 15일 전에 예약한 하루에 40명의 탐방객만을 허용한다는 것이 국립공원 측의 방침이고 작년부터 신 회장님의 제안이 있었으니 협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천왕봉에서 옛 빨치산사령부였던 법계사까지는 1시간이면 내려갈 수 있고 그곳에는 순환버스가 있어 중산리로 쉽게 하산할 수 있다. 다시 진주로 가거나 백무동으로 가서 버스로 올라온다.

 

 

4.동반시

동반시를 잡지 못해 시들의 언저리에서 서성이다 눈에 들어온 시다. 한국작가회의에서 271인의 시인에게 의뢰하여 펴낸 책으로 ‘내가 뽑은 나의 시’라는 책 속에 조개 속의 진주처럼 묻혀 있던 시다. 시는 쉬운 언어를 사용해야 하며 풀이는 쉬어야 한다는 것은 시를 대하는 나의 변함없는 자세이며 태도다. 함축과 비유, 상징 등의 어려운 기법을 이용하여 지어내는 그물 같은 언어들, 그것도 다의(多意)성이 다분한 말들을 풀어내는 것은 우리들의 몫일진대 모두가 쉽게 공감하는 것들이어야 한다. 가슴에 오롯이 들어온다면 열 번이라도 읽어 반드시 뜻이 통해야 한다. 그래도 풀리지 않으면 그때 '쾌도난마'라는 단어를 떠올리고 시보다 더 날카로운 칼을 들면 된다. 2장에 ‘바람을 파내면 무엇이 불어올까?’의 부분에 눈이 가서 다른 곳으로 시선이 흐르지 않았다. 그날 우리는 사모바위 근처의 너른 터에 자리 잡고 앉아 가벼운 식사를 할 것이고 누군가는 이 시를 읊을 것이다. 그 누가 시를 쓴 시인보다 더 시인답게 이 시를 읊어 저 멀리 문수봉에 사는 문수동자가 '염화시중의 미소'처럼 살며시 웃어보게 할 것인가. 나도 모르게 봄이 다가오는 이때에 서쪽에서 가벼운 시가 불어오니 무거운 북한산이 동해로 흐른다. 시작과 끝은 결코 한 몸임을 우리가 모르지 않는다.

 

 

시작과 끝/박시하

 

1

그 시작은 나의 시작.

 

 

오래된 고백 같은 수면 위로

 

오랫동안 철새들이 찾아오고

 

안녕, 안녕, 날아갔다.

 

 

 

밤이 씻은 얼굴을 거울 위에 비추었다.

 

아침이 금빛 돛을 던 천 개의 요트를 띄웠다.

 

 

사랑스런 이름들이 구불구불 맺혔다.

 

 

 

꽃과 달을 품에 안고

 

바람이 먼저 깊어졌다.

 

바람을 타고 별이 흘렀다.

 

 

2.

흐르지 않는 사람들.

 

 

바람을 파내면 무엇이 불어올까?

 

별을 뽑아내면 무엇이 빛날까?

 

대답이 없다.

 

귀가 없다.

 

 

그들은 쇠로 된 팔을 들어올린다.

 

칼과 자를 들고

 

세상의 가장자리를 반듯이 잘라낸다.

 

 

별의 조각이 썩어 들어가는

 

네모난 왕국 위로

 

석양이 내리지 않는다.

 

 

시작과 끝이, 영원히

 

흐르기를 멈춘다.

 

그 끝은 우리의 끝.

 

 

꿈의 순서를 바꾸어버린 후

 

시작되지 않는 끝 위에서

 

안녕을 외치면서도 눈 감을 수 없다.

 

 

3.

훨씬 오래 전부터

 

모든 강은

 

다른 모양의 새벽을 갖고 있었다.

 

 

2012년 2월 9일 신새벽에 밝아오는 중랑천을 바라보며

詩를 사랑하는 山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도움쇠 김정남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