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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청계산 이수봉(詩山會 제177회 산행)

청계산 이수봉(詩山會 제177회 산행)

산 : 청계산

코스 : 대공원역-이수봉-옛골

소요시간 : 4시간

일시 : 2012년 1월 28일(토) 10시

만나는 곳 : 전철 4호선 대공원역 2번 출구

준비물 : 막걸리, 안주, 과일, 카메라, 아이젠

연락 : 전작(010-9858-2858)

사진 : blog.daum.net/sisan20

산행기 : blog.daum.net/yc012175

카페 : cafe.daum.net/K-20

 

 

1.시를 통한 시론

 

도종환/그대 잘 가라

 

그대여 흘러흘러 부디 잘 가라

소리없이 그러나 오래오래 흐르는 강물을 따라

그댈 보내며

이제는 그대가 내 곁에서가 아니라

그대 자리에 있을 때 더욱 아름답다는 걸 안다

어둠 속에서 키 큰 나무들이 그림자를 물에 누이고

나도 내 그림자를 물에 담가 흔들며

가늠할 수 없는 하늘 너머 불타며 사라지는

별들의 긴 눈물

잠깐씩 강물 위에 떴다가 사라지는 동안

밤도 가장 깊은 시간을 넘어서고

밤하늘보다 더 짙게 가라앉는 고요가 내게 내린다

이승에서 갖는 그대와 나의 이 거리 좁혀질 수 없어

그대가 살아 움직이고 미소짓는 것이 아름다워 보이는

그대의 자리로 그대를 보내며

나 혼자 뼈아프게 깊어가는 이 고요한 강물 곁에서

적막하게 불러보는 그대

잘 가라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 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로 시작하고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 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

로 끝나는 노래가 있다. 가객(歌客) 김광석의 ‘부치지 않은 편지’다. 국방과학연구소 시절에 만나 35년이 지난 현재까지 친구처럼 지내는 대학 후배가 있다. 그 친구는 같은 야구 모임의 투수로 던지는 공의 빠르기는 선수급인데 콘트롤이 좋지 않아 백인천 선수와 함께 경동고 야구팀원이었던 한용 감독(당시 우리는 같은 직원이었던 그를 그렇게 불렀다)은 힘 빼고 정확하게 던지라는 잔소리를 자주 했다. 반면에 나는 3루수로 주전급 투수는 아니었는데 공의 빠르기는 별로였지만 콘트롤이 좋았고 구종이 다양해 릴리프로 적당하다고 했다. 열심히 연습했지만 광주민주화 운동을 계기로 그는 국방과학원을 거쳐 광주과학기술원으로, 나는 남대문극장 건물 상가 4층으로 가면서 우리는 사회인 야구로 발돋움을 하지 못하고 헤어졌다. 지난해에 행정관리단장을 마지막으로 퇴직하여 서울로 올라온 그가 술을 마시면 ‘임을 위한 행진곡’과 함께 부르는 노래인데 광주 사람보다 더 광주 사람답게 부른다.

 

자식을 먼저 보내면 가슴에 묻는다고 한다. 우리도 차마 보내지 못하고 가슴에 묻는 사람이 있다. 추운 겨울에 얼어서 차디찬 땅에 묻으면서 차마 보내지 못하고 내 따뜻한 가슴에 묻은 사람이 있어 이토록 추운 날에 그 사람 생각이 나서 실어본 시다. 아! 그런 사람을 언제 다시 만나 보겠는가. 내 나이도 어언 육십인데. 그대 잘 가라.

<도봉별곡>

 

 

2.산행기

詩山會 제176회 도봉산 始山祭 산행기(2011. 1. 8)

만나는 장소: 전철 1.7호선 도봉산역 대합실

참석자: 13명( 무순: 김정남, 김종화, 박형채, 신원우, 염재홍, 위윤환, 이경식, 이원무, 임삼환, 전작, 조문형, 나양주, 고갑무)

 

임진년 흑룡의 해가 시작한지 8일째 되는 정월 초여드레 우리 시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모임인 시산회는 소한의 추위가 채 가시지 않는 오늘 산중의 산 도봉산의 地氣가 한데 모인 선인봉 하단의 좌청룡 우백호의 명혈에서 정성껏 준비한 제물을 차려놓고 천지신명에게 임진년 한해 우리 시산회 산우들의 안전한 산행을 기원하는 始山祭를 지내니 단기 4345년 서기 2012년 임진년의 새해는 우리 산우들이 대자연의 위대함속에서 마음과 몸을 바르게 하고 단련하는 그런 건강하고 알찬 한해가 되기를 마음깊이 바라며 산행기를 적고자 한다.

 

연일 계속되는 소한의 강추위 속에 괜히 아침운동이라도 나갔다가 감기라도 걸리면 하는 일 없이 일거리 만든다고 잔소리 들을까봐 지례 겁을 먹고 거의 두문불출수준으로 집에만 박혀 있으니 갑갑하기가 이를 데 없다. 그래도 하루 세끼는 꼬박꼬박 챙겨먹으니 소화상태도 예전만 못한 것 같고 아랫배도 조금 나온 것이 신경이 쓰인다.

 

해서 추위가 조금 풀린 느낌이 들어 급기야는 토요일 아침에는 한강 고수부지에 나름대로 방한복을 챙겨 입고 용감하게 나갔는데 강변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추위를 잊으려고 뛰다가 걷다가를 반복했지만 이마에 땀이 나기는커녕 손끝이 아리도록 춥기만 하다.

 

내일 일요일은 금년 들어 시산회 첫 산행이고 始山祭를 지내는 날인데 이렇게 추우면 어떡하나 하고 적이 고민이 된다. 금년에 총장직을 수행하는 전작 친구는 새해 시작되자마자 始山祭 참가여부를 통보해달라고 특유의 부지런함으로 연신 문자를 날리고 나 역시 회신통보를 게을리 했다가 젊잖게 경고 받은 경험도 있어 이번에 바로 참가를 통보하였으니 내일 날씨는 하늘에 맡기고 기다릴 수밖에......

 

집에서 버스로 세 정거장 정도 떨어진 학동역에서 도봉산역까진 인터넷으로 조회해보니 약 41분이 소요된다고 하니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출발할 요량으로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어 목적지에 도착하니 친구들 얼굴이 안 보인다. 너무 빨리 왔나보다 잠시 서성이며 시간을 보내니 제일 먼저 전 총장이 손에손에 비닐봉지를 잔뜩 들고 환히 웃으며 개찰구에서 나오는 모습이 보인다. 전 총장도 기쁨이 넘치면 눈이 잘 안보여...... 반갑게 인사하고 봉지 중에서 하나 골라 내 배낭에 집어넣었는데 제법 묵직한 느낌이 온다. 내가 나이들었나.

 

오늘은 임삼환 친구 소개로 나양주 친구가 새로 참여했다. 한 40여년 만에 만나는 친구라 첨엔 얼굴이 생소한 느낌이 있었지만 자세히 보니 조금씩 어릴 적 모습이 생각나는 듯하다. 머리칼은 반백으로 변하고 얼굴 여기저기엔 세월의 흔적이 보이지만 그래도 고등학교 친구는 재빨리 필이 온다. 반갑네 친구야! 이제 인생의 반환점을 좀 지나서 다시 해후하였지만 남은 시간일망정 같이 재미있게 행복하게 보내세! 우리 시산회 산우들 모두가 마음으로부터 자넬 환영할 걸세.

 

김용우 친구는 지독한 독감으로 참여가 어려움을 문자로 익히 통보해 왔고 이재웅 친구는 아침에 갑자기 회사일로 못 온다고 문자를 보내 와 웬만하면 시산회에 빠지는 일이 없는 친구라 상당히 급한 일이 생겼나 하는 생각이 든다. 친구! 그냥 급하기만 하지 다른 더 급한 일은 안 생겼으면 하네. 약속한 10시가 조금 지나 오늘의 始山祭 장소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경식 친구와 60이후의 재무생활에 대해 나름 의견을 교환하며 천천히 올라가는데 생각보다 날씨가 많이 풀려 산행하는 발걸음이 가볍기만 한 느낌이다. 중간에 막걸리도 한 병 사고 하면서 천천히 올라갔더니 앞길을 먼저 올라온 일행들이 갈림길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다. 고마운 친구들! 임삼환 친구는 겨울철 등반에만 등장하는 특유의 몽고표 모자를 쓴 덕분에 멀리서도 눈에 쉽게 띄어 우리들의 움직이는 좌표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다. 자네 덕분에 금년 동절기 산행에 길 잃을 염려는 없을 것이여......

 

중간휴식 시간에 이경식 친구가 내민 초콜릿을 음미하며 가쁜 숨을 진정시키고 있는데 우리 회장님께서 내 이름이 자음 순으로 볼 때 제일 빠르니 금년 첫 산행기를 쓰라고 거부할 수 없는 의견을 내시니...... 아이고! 이런 영광이...... 임진년 첫 달의 첫 산행기라! 不敢請 固所願이지요.

 

아름다운 우리 산 그 중에서도 도봉산은 그 수려함과 아름다움이 뛰어난 명산이지만 올라가는 도로가 온통 돌밭이라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할 겨를이 없다. 괜히 어쭙잖게 산수의 진면목을 감상하려다 넘어져 코라도 깨지면 이 나이에 어찌 하냐는 이경식 산우의 말대로 도봉산은 말 그대로 山山水水가 아니라 山山乭乭이다. 이런 와중에서도 빠짐없이 연신 성능 좋은 스마트폰 카메라를 눌려대는 김종화 친구는 거의 詩山日報 카메라맨 수준이다. 보기에 그냥 찍어대는 것 같은데 사진을 한 장씩 살펴보면 구도랑 배치가 나름 일가견을 가지고 있다. 진즉 그 분야로 정진하셨다면 지금 만나 뵙기가 쉽지 않았을 터......

 

드디어 그 약속의 땅 명혈에 도착하니 시간은 12시 10분 시간 참 기막히게들 맞추네.

 

준비한 제물을 정성스레 차리고 위윤환 산우의 사회와 총장의 초혼에 따라 회장님이 산신제를 정성스럽게 거행하고 뒤에 옹립한 우리들도 재배를 하고 음복을 하니 천지신명도 우리 시산회의 안전한 산행을 분명히 약조하셨음을 모두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

 

회장님! 전 총장! 정초부터 시산제 준비하느라고 고생이 많았네. 자네들 헌신덕분에 금년 시산제는 조촐하지만 아주 흡족한 상태에서 잘 끝 마쳤네. 모두들 고맙게 생각할 걸세.

 

祭禮가 끝나고 조문형 산우가 가져온 몽고산 보드카와 막걸리 그리고 언제나 빠지지 않는 김정남표 구-울 및 과일 등으로 약간은 허기진 배를 달래고 나니 회장님이 직접 왕희지 필법으로 일필휘지 선장한 始山祭 휘호에 대해 설명이 있었고, 뒤이어 지난 1년 동안 회장직을 역임하면서 많은 수고와 배려를 아끼지 않았던 이경식 산우에게 감사의 보답으로 ‘忠孝心良國 文章移迷仗’이라는 글을 선사하니 보기에도 좋을 뿐 아니라 부럽기까지 하였다. 하여 몇몇 친구들이 차기 총장직에 미리 줄을 서겠다하여 모두를 웃게 만들었다.

 

始山祭를 끝내니 빨리 하산을 재촉이나 하는 듯이 갑자기 찬 기운이 주변을 엄습하여 더 이상 그 곳에 머물기도 쉽지 않아 서둘러 하산을 하기로 하였다. 도봉산 터줏대감인 김정남 친구의 안내에 따라 하산 시에는 지름길을 택하였더니 올라갈 때 거의 40여분 걸리던 거리가 단 10여분 만에 천축사까지 내려올 수가 있었다. 역시 아는 것이 힘이여...

 

뒤풀이는 임삼환 친구가 쏘겠다하여 도봉산 입구의 옛골토성에 들려 오리훈제를 안주삼아 막걸리로 목을 축이니 역시 산행의 백미는 뒤풀이가 아니던가 하는 오랜 전통을 새삼 확인하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아침에 일찍 도봉산의 정기와 맑은 공기를 마시며 심신을 단련한데다 출출한 허기를 오리훈제로 달래며 우리들의 관심사인 건강관리와 60이후의 원만한 가족관계 정립까지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로 꽃을 피우니 우리 시산회는 공자님 기준으로 人生七十古來稀 우리기준으로 人生百二十古來稀가 되는 날까지 가슴 뿌듯하고 행복한 시간을 가져보길 고대해 본다. 친구들! 금년 임진년에도 모두들 건강하고 행복들 하시게나. 아자! 아자!

 

2012년 1월 8일 고갑무 씀

 

 

 

3.산행지

이번 산행은 청계산이다. 지난겨울에 올랐다가 너무 산객들이 많아 대공원 방향으로 오르면 한가로울 것 같다고 해 오르는 산행 코스다. 1년의 산행 계획에는 관악산으로 적혀있는데 지난 시산제 산행 때 변경했다. 지난겨울 산행 때는 정상인 매봉으로 올랐으나 이번에는 이수봉까지 오르고 옛골로 내려오는 코스다. 추운 겨울이라고 집행부에서 가벼운 코스로 정했으니 20일 만에 반가운 얼굴들을 보자. 내려오면 항상 뒤풀이를 했던 집의 훈제오리고기가 맛있었다.

 

도봉과 북한, 수락, 불암산을 대각선으로 그어보면 금이 만나는 자리에 내 집이 있다. 좋은 산이 있고 조용히 흐르는 강이 있고 건강한 가족과 훌륭한 산우들이 가까이 있어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여 가칭 '행복을 위하여'라는 글을 쓰고 있으나 아직은 부끄럽고 미완이다.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세상에 내놓고 싶을 때 산우들에게 맨 먼저 내놓을 것을 약속한다.

 

 

 

4.동반시

동반시를 고르다보면 첫눈에 들어오는 시가 있다. 머리를 쓰다듬고 가슴을 애무하듯 밝게 즐길 수 있는 사랑의 시를 선택하면 좋겠지만 어떤 때는 눈을 떼지 못한 시가 머리와 가슴에 들어오면 내보낼 수 없게 된다. 지인의 블로그에 들어가서 겨울에 관한 시를 읽다가 눈길을 멈추게 한 이 시가 눈에 들어와 나가지 않는다. 천재성이 엿보였다는 시인은 가난하게 태어나고 살며 30살이 채 되지도 못한 나이에 3류 극장의 심야영화를 보다가 잠들고는 깨어나지 않았다. 가난하게 태어나 헛되고 가난하게 죽었는가. 이 시인도 내 머리와 가슴에 들어와 여간해서 나가지 않는다. 아무리 삶과 죽음이 벗어날 수 없는 자연의 한마당이라 하나 너무 아깝다.

 

9년 째 도움쇠로 시를 고르고 메일을 쓰다 보니 동반시와 프롤로그시 두 편을 미리 골라놓으면 마음이 한가로워진다. 처음에는 나름대로 산우들을 즐겁게 해주려고 무진 애를 써가며 산행기를 썼다. 그때는 한 편의 메일을 보내려면 3번의 새벽을 지내면서 10번은 고쳤을 것이다. 한때의 열정이었던가. 지금은 산우들이 도와주는 덕분에 한 번의 새벽만으로 편하고 쉽게 쓴다. 어휘도 가급적 한자어가 아닌 우리말로 쓰려고 한다. 처음에는 문장이 길었지만 지금은 짧고 혹은 조금 길게 쓴다. 그때는 생소한 시가 나오면 어렵다는 소리를 했지만 이제는 산우들도 많은 시를 접해 시를 이해하는 눈이 높아져 어려운 시가 없다. 그리고 우리들의 지적 수준은 최정상급 아닌가. 어려운 시를 풀어가는 재미도 솔솔하다.

 

주변에서 지금부터는 시를 배우고 글을 익히며 편안하게 살아가라 하는데 평생의 팔자가 그러지 못한지 다른 주변이 나를 그냥 놔두지 않는다. 평생 몸과 마음이 바빠야 할 운명인가 보다. 60년 전 흑룡띠의 해에 태어났고, 가슴에 새겨진 상처야 없는 사람이 없으니 몸에 큰 상처 없이 살아왔음을 고맙게 생각한다. 덤으로 한 살부터 먹는다는 마음으로 주변의 사람을 더 이해하고 화해하며,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겠다. 설 연휴 때 처음으로 남들처럼 가족이 찜질방에 가서 양머리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맥반석계란으로 머리를 쳐서 깨뜨리고 식혜와 팥빙수를 먹으며 금쪽 같이 단란한 시간을 보냈다. 항상 어렵고 강압적이었던 애비에서 어질고 웃는 애비로의 첫걸음을 디뎠다. 애비의 권리와 의무의 자리를 바꾸니 가족의 얼굴이 밝게 바뀌는 것을 이제 알았다. 그런 것이 생각보다 쉽고 즐겁다는 것을, 권리와 의무가 다른 몸이 아니고 한 몸이라는 것을.

 

이 시에는 가난과 실연, 배신 등과 관련하여 젊은 날의 부조리한 세상에 대하여 느끼는 분노와 환멸, 막막함이 묻어 있다는 시평이 있다. 함께 시를 쓰는 후배가 기관원이었다는 것, 선후배들이 강제로 군대에 끌려가는 것, 데모의 주도를 했다고 제적당하는 것 등은 흔한 풍속도에 불과한 시절이었다. 그런 아픔들이 민주주의로 성장하기 위한 성장통이나 통과의례였다면 희생자들에게 너무 미안한 일인가. 어쨌든 박정희나 전두환은 나쁜 놈들이다.

 

 

이 겨울의 어두운 창문/기형도(1960~1989)

 

 

어느 영혼이기에 아직도 가지 않고 문밖에서

 

서성이고 있느냐

 

네 얼마나 세상을 축복하였길래 밤새 그 외로운

 

천형을 견디며 매달려 있느냐

 

푸른 간유리 같은 대기 속에서 지친별들 서둘러

 

제 빛을 끌어 모으고 고단한 달도 야윈 낫의 형상

 

으로 공중 빈 밭에 힘없이 걸려 있다.

 

 

아느냐, 내 일찍이 나를 떠나보냈던 꿈의 짐들로

 

하여 모든 응시들을 힘겨워 하고 높고 험한 언덕들을

 

피해 삶을 지나다녔더니, 놀라워라. 가장 무서운 방향을

 

택하여 제 스스로 힘을 겨누는 그대, 기쁨을 숨긴 공포여

 

단단한 확신의 즙액이여

 

보아라, 쉬운 믿음은 얼마나 편안한 산책과도 같은 것이냐

 

어차피 우리 모두 허물어지면 그 뿐,

 

건너가야 할 세상 모두 가라앉으면 비로소 온갖 근심들

 

사라질 것을. 그러나 내 어찌 모를 것인가. 내 생 뒤에도

 

남아 있을 망가진 꿈들, 환멸의 구름들

 

그 불안한 발자국 소리에 괴로워할 나의 죽음들

 

오오, 모순이여, 오르기 위하여 떨어지는 그대

 

어느 영혼이기에 이 밤 새이도록 끝없는 기다림의

 

직립으로 매달린 꿈의 뼈가 되어 있는가. 곧이어 몹쓸

 

어둠이 걷히면 떠날 것이냐. 한때 너를 이루었던

 

검고 투명한 물의 날개로 떠오르려는가. 나 또한

 

얼마만큼 오래 냉각된 꿈속을 뒤척여야 진실로 즐거운

 

액체가 되어 내 생을 적실 것인가. 공중에 빛나는

 

달의 귀 하나 걸려 고요히 세상을 엿듣고 있다.

 

 

오 오, 내 어찌 죽음을 비웃을 것이냐 삶을 버려둘 것이냐

 

너 사나운 영혼이여! 고드름이여

 

 

2012년 1월 26일 새벽에

詩를 사랑하는 山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도움쇠 김정남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