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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북한산 정릉계곡(詩山會 제181회 산행)

북한산 정릉계곡(詩山會 제181회 산행)

산 : 북한산

코스 : 정릉계곡-보국문-위문-백운대-하루재-영봉-우이동계곡(하산 코스는 식사 때 결정)

소요시간 : 4시간

일시 : 2012년 3월 25일(일) 10시

만나는 곳 : 전철 4호선 길음역 2번 출구

준비물 : 막걸리, 안주, 과일, 카메라

연락 : 전작(010-9858-2858)

사진 : blog.daum.net/sisan20

산행기 : blog.daum.net/yc012175

카페 : cafe.daum.net/K-20

 

 

1.시를 통한 시론

 

고형렬/4월

 

죽은 것들이 돌아오느라

 

죽은 것들이 눈이 멀어 돌아오느라

 

줄기 부르트고,

 

꽃으로 애쓰던 잊은 것들 찾아오느라

 

살아 있던 날을 기억하려고

 

다른 '나'로 빠져나오려고

 

허연 죽음의 중심 목질부를 만지려고

 

물을 찾아 다시 움을 틔워 일어나느라

 

구름을 모아 문을 열고 달려가느라

 

접혔던 부문 하염없이 펴느라

 

가장 빛나는 생명의 꿈을 따르느라

 

좁은 길을 풀고

 

기억할 수 없는,복제할 수 없는

 

형상을 입느라 자기 하나 옷을 만드느라

 

천지는 눈 시리게 숨쉬기 바쁜,

 

안 보이는 이름을 찾아내느라

 

한줄기 목숨을 얻어 끊어진 길 이으려고

 

길을 대고 처음 생에 닿느라

 

아 이름 부르며 부스러진 티끌들 모아

 

안 지치고 기쁘게 찾아오느라

 

 

사람이든 초목이든 생명이 태어나는 데는 고통이 따른다.

죽은 것들이 돌아와 줄기 부르트고 다른 '나'로 빠져 나오는 과정이 어찌 순탄하겠는가.

다시 우리 앞에 펼쳐진, 눈 시리게 빛나는 연녹색의 세상엔 그토록 아프고 절절한 사연이 깃들어 있다.

길고 긴 고통과 짧은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계절. 누구든 4월을 허투루 보내선 안 될 일이다.

-시평(이정환. 언론인)

 

4월은 잎새달이라 한다. 물 오른 나무들이 저마다 잎 돋는 달의 뜻이다. 우리가 정릉계곡을 지나 북한산을 오를 때면 3월의 마지막 일요일이 된다. 길고 추운 겨울을 지났으니 만물은 기지개를 켤 것이고 남녘 섬진강가에서는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산수유꽃이나 매화는 피어 있기도 하겠다. 모든 꽃이 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기는 어렵다는 노랫말이 생각난다. 곧 다가올 4월은 ‘잔인한 달’이라 하여 동서양을 막론하고 조용하게 넘어가지 않는다. 그 알량한 국회의원들을 뽑는다고 벌써부터 시끄러우니 4월의 중순쯤 되면 또 변함없이 세상이 요동칠 것이고 우리는 그 눈 시린 꼴들을 봐야 한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여야가 선거 때마다 바뀌면 좋겠다. 그러면 싸울 일도 없지 않겠는가. 봄날에 한 마당의 어지러운 꿈같은 생각이지만. 육십년을 살아 보니 경제적으로 전성기였던 시절보다 약간은 부족한 듯한 요즘의 삶이 더 풍요롭고 자유롭고 만족스러운 삶이라고 생각한다. 가족은 더 가까워지고 화목해지고 딸들은 새벽에 전철역까지 태워달라고 어린양을 부리는데 싫지 않고 즐겁다.

<도봉별곡>

 

 

2.산행기

관악산 총동문회 시산제 산행기(2012. 3. 10. 토)/김정남

참석 : 고갑무, 김용우, 김정남, 김종화, 나양주, 남기인, 박형채, 전작, 조문형, 한양기(이상 10인의 산사람들)

 

3월은 물오름달. 뫼와 들에 물 오르는 달이다.

2012. 3. 10. 전날 마신 술 탓인지 깨어보니 새벽 4시다. 전날 밤, 폭음하는 성격이 아닌데 길고도 지겨운 송사가 겹쳐 상대방에 대한 섭섭한 마음을 안주 삼아 지인과 통음을 했다. 평탄한 인생이란 없으며 평탄하면 인생이 아니다. 사마천의 사기 중 ‘한신’편에 위기에 처한 한신이 “사지에 빠져봐야 비로소 살 수 있고, 망한 땅에 놓여봐야 비로소 살아남을 수 있다. 평탄한 전쟁이란 없다. 항상 이기는 전쟁은 더 없다. 이런 고난을 겪으면서 강한 군대가 된다.“고 하면서 부하들을 독려해서 위기를 벗어나고 항우와 유방의 초한 전쟁의 3걸 중 한 사람이 된다. 결국은 ‘토사구팽(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이라는 사자성어의 비운의 주인공이 된다. 우리가 잘 아는 배수진, 다다익선, 필부지용(匹夫之勇), 과하지욕(袴下之辱 : 큰뜻을 이루기 위해 남의 가랑이 밑이라도 빠져나간다) 같은 고사는 모두 한신과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그의 활약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 한신이 없었으면 유방은 항우를 이길 수 없었을 것이며, 한순간의 실수와 방심으로 유방의 처인 여태후에게 억울한 죽임을 당한다. 그것도 아녀자에게 속아서. 측근 참모 괴통의 말을 듣고 유방을 치고 항우를 잡아 난세에 패권을 잡았더라면 중국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운명이다.

 

살아가는 긴 여정에 고민을 함께 나눠가질 지인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적어도 실패한 인생은 아닐 것이다. 저명한 사람 중, 록펠러였던가, 나이 들어 여섯 명의 친구가 있다면 그 사람은 매우 행복한 사람이라 했다. 나는 매주 1회 산행을 하기 위해 갑자기 잦아진 결혼식이 시산회 산행과 겹칠 때는 사촌까지도 집사람을 보내거나 축의금으로 대신하는 경우가 있다. 아침에 산행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설 때 오늘은 누가 나올 것인지 궁금하고 설렌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그만큼 격주에 한 번씩 보는 산우들이 반갑기 때문이다. 우리 시산회는 25명이나 되는 대가족의 개념이니 여생이 외로울 수 없다. 일곱 살 손위인 큰동서의 경우를 보면, 경기고 동창끼리 모아진 12명의 산악모임으로 부부동반하여 매달 1회 원거리 산행을 하였는데 92회차에 와서 분란이 생겨 깨질 위기가 왔다고 한다. 이유는 집행부의 독단과 장기집권에 있는데 집행부에 주어진 회비 면제 특권 때문에 서로 맡으려 해서 생긴 불화가 원인이라니 코끝을 스치며 지나가는 봄바람도 씽긋 웃을 일이다. 그 말을 듣고 시산회원들이 자랑스러웠다. 한편으로는 타산지석 혹은 반면교사로 삼을 일이다.

 

내가 가져가는 남해산 생굴은 비싸지 않으면서 간편하고 배부르지 않아 산행 때 간식으로 먹으면 좋으므로 10월부터 4월까지는 단골메뉴로 가져간다. 지난번에 청계산에 갔을 때 집사람에게 사다줄 것을 부탁했는데 두 봉지 중 하나를 집의 묵은 굴과 슬쩍 바꿔치기를 한 것이 탄로(?)나 핀잔을 들었던 마나님은 앞으로 사다주지 않겠다고 복수(?)한다. 송년모임 때 생굴 공급의 대가로 받아서 주었던 거금 3만원 가치의 상품권이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에효! 괜히 상품권을 주었고, 말했다 손해만 봤다. 밤에 남해에서 올라와는 싱싱한 굴을 파는 하나로마트가 오전 8시에 문을 열므로 그 시간에 맞추다보니 정부과천청사역에 10분정도 늦어 도착했다. 물론 전 총장에게는 미리 알리고 양해를 구했다.

 

재경광주고 총동문회 산악회 시산제 현수막이 붙어 있는 공터를 보니 모여 있는 참석자가 200명을 넘어 보인다. 가까이 가니 언제 보아도 반가운 9명의 얼굴들이 보인다. 오지 못한 산우들에 대한 근황 및 이유를 전하는 전작 총장의 얼굴에서 짙은 아쉬움과 함께 완성된 인품을 보았다. 진심으로 존경하고 싶은 산우다. 그가 나를 오늘의 기자로 임명해주니 고맙다. 이 경우는 세 번의 사양은 결례가 된다. 전작 총장이 참가비 10만원을 납부하고 가져온 막걸리 3병과 백설기떡, 알미늄 물병, 홍어무침, 행사리본을 나누어 배낭에 넣었다. 갑자기 어깨를 치는 사람이 돌아보니 19회 김선칠 선배가 반갑게 웃고 있다. 같은 대학 정외과를 다닌 룸메이트다. 국민의례를 마치고 19회 조성갑 회장의 인사가 있었다. 앞으로 2년을 맡을 중책이라 어깨가 무거우니 동문들이 많이 협조해주기 바란다는 간단한 인사말이 있었다. 1회 선배 3분이 참석하셨는데 모두 80살이 넘었는데 불구하고 정정하시다. 우리 또래의 예상수명은 85살이라지만 모두가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시산회 회원들은 꾸준하게 산행을 하고 있으므로 건강수명을 누릴 최소한의 조건은 된다.

 

멀리 보이는 관악산 정상의 모습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고고한 한 마리의 학 같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제 눈에 안경이니 누가 탓하랴. 총무가 코스를 설명하는데 향교를 거쳐서 올라간다니 내가 싫어하는 코스다. 내가 관악산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서울대 쪽에서 올라가는 코스와 향교 쪽에서 올라가는 코스가 작은 돌들로 이어진 길이기 때문이다. 기수 별로 올라가는데 나양주 산우가 코스의 변경을 조용히 제안하는데 귀가 솔깃하다. 구세군본부를 거쳐 능선으로 들머리를 잡자고 한다. 선두의 박형채 회장님에게 뜻을 전하고 방향을 바꿨다. 향교에서 연주암으로 오르는 길은 돌이 많은 길로 무릎이 좋지 않은 산우에게는 괴로운 길이다. 완만하게 오르면서 툭 터진 조망이 좋고 3월의 밝은 해와 얼굴을 스치는 맑은 바람을 맞는 느낌이 좋으니 최상의 선택이었다며 모두 덕담을 한 마디씩 한다. 왼쪽으로는 도도한 오봉능선이 힘차게 이어지고 오른쪽으로는 사당동에서 오르는 완만한 능선이 반갑다.

 

시산회 산행이 즐거운 이유는 반가운 산우들과 자세한 안부를 묻고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앞서거니 뒤서거나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나누는 이야기에 몰두하다 보면 산행이 전혀 어렵지 않다. 무르익은 인생의 의미 깊은 화제건 정치, 경제 등 일상의 잡사건 상관이 없다. 잠깐, 산우들과 나눴던 내 큰딸의 걱정스러운 얘기다. 1년 전에 뜬금없이 정보통신기술사 응시자격이 됐으므로 거처를 회사의 근처로 옮겨 시험준비를 하겠으니 승낙을 해달라는 것이다. 과년한 딸이 시집을 갈 생각은 안 하고 무슨 소리냐고 분명하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미리 준비한 것처럼 즉시 나온 딸의 반박은 자기 회사는 서울대나 카이스트 출신 아니면 팀장부터는 승진이 어려우니 고위 직급은 애초에 글렀고, 아비가 딸에게 자신의 일은 자신이 하고 결혼도 혼자의 힘으로 벌어서 가라며 지원을 끊었는데 자기가 무슨 방법으로 신분을 상승시킬 수 있겠느냐, 마침 과장으로 승진했고 원룸의 월세는 별 부담이 되지 않으니 멀고 어렵지만 새로운 도전을 해보겠다는 것이다. 최근호 산우의 말대로 30대 중반 이후가 보장된다는 기술사가 무슨 하늘에 뜬구름 이름인가. 결혼은 언제 할 것인지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자식들에게 아르바이트를 시키지 않고 학비를 대준 것 외에 해준 것이 없고 ‘보증을 서주지 마라, 일가를 이루고 싶으면 자신의 힘으로 해라’를 가훈으로 내걸었던 것은 비록 딸들이지만 강하게 키우기 위한 핑계였지 부모마음이 그랬겠는가. 어쨌든 어설픈 핑계가 어쩔 수 없는 현실이 됐으니 나쁠 것도 없다는 생각에 어렵고 힘들겠지만 쉽게 포기하지는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 흔쾌히 승낙했다. 결혼은 일생의 큰일인데 앞으로 미뤄질 것이고 그것도 제 운명이다. 마나님은 결혼할 것을 조르니까 피하기 위한 수작(?)이라고 하나, 그래! 뭐가 좋은 건지는 살아봐야 안다. 세상사 모두가 양날의 검처럼 다면적이고 동전의 양면과 같이 좋은 것과 나쁜 것이 공존한다는 것에 항상 공감하고 살아온 터라 이왕 도전할 때는 크고 어렵고 높은 곳이 실패하더라도 남는 것이 있지 않겠는가. 최근호 산우와 기술사에 대한 얘기를 나눴지만 정년이 없는 그가 부럽고 한편으로 자랑스러웠다.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으며 조망이 좋고 너른 바위에 이르러 휴식의 시간을 갖는다. 2012년 들어 처음으로 나온 한양기 산우가 예의 입산주 타령을 한다. 그가 나오지 않은 4번의 산행에서는 입산주가 없었으니 입산주의 원조는 그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입산주에 대하여 산우들의 반응이 별로 없으니 본인이 석 잔을 마시는 것으로 두 병을 비웠다. 가파른 산길을 오를 때 한 잔의 술도 부담이 될 때가 있다. 그때부터 그의 입담이 시작되고 목소리가 커지는 것으로 봐서 그 기운의 동력은 입산주였던가 보다. 새바위에 이르러 쉴 때, 조성갑 산악회 회장의 후임으로 2년 후에 맡게 될 20회의 시산회에서 누가 회장을 할 것인 가에 대해 잠시 얘기가 있었다. 전에 사양을 했더니 이번에는 내 의사를 묻지 안길래, 옛날부터 임금이 벼슬을 내려도 체면치레로 세 번은 사양한 후에 받는다 했는데 한 번 사양했다고 다시 물어보지 않으면 섭섭하다고 익살을 부렸더니 모두 웃는다. 참으로 격의 없이 순수한 산우들이다. 나는 한 번의 시산회 초대 회장으로 충분하게 만족하는 사람으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시산회 회장이나 총장을 맡아 봉사할 준비는 되어 있어도 그 직을 맡을 마음이 털끝만큼도 없다. 2년 후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모르고 우리 앞에 닥치면 그때 논의해도 될 사안이다. 그리고 우리끼리 상의하면 총동문회 산악회 발전을 위해 필요한 열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 나올 것이다.

 

가끔은 만약에 내가 계속 사업을 했더라면 아직도 나는 술이나 마시고 사업을 합네 하며 바쁘게 살았을 것이다. 산에 다니지도 않았을 것이고 시는 먼 나라의 얘깃거리에 불과했을 것이다. 오죽 남편이 미웠으면 마나님이 나를 ‘돌아온 탕아’라 했을까. 큰딸이 아빠 같은 남자를 만날까봐 시집을 가지 않겠다고 했을까. 그러나 가파르게 변했던 주변의 상황은 나를 산에 오르게 했고 시를 접하게 했다. 그 후로 산과 시를 접해야 할 운명은 그림자처럼 내 곁에 붙어 다녔다. 지금은 내 오피스텔 근처의 신당도서관에 나와 책을 읽고 약간의 사색을 즐기며, 잡문을 끄적거리는 일상사에 만족을 하지만 죽기 전에 해야 할 내 버킷리스트에는 세 가지의 계획이 적혀있다. 시집 내기, 컴퓨터 전문가 되기, 침과 뜸 배우기다. 원하는 것이 많으면 집중도가 떨어져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우선 세 가지만 정했다.

 

두꺼비바위까지 가면서도 관악산 정상의 위용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이 코스는 나무 그늘이 별로 없어 햇볕이 따가운 여름 산행에는 적합하지 않다. 가파른 듯하다 부드러운 흙길이 나오고, 암릉이 있어도 우회코스가 있으니 위험하지 않으나 결코 쉽지 않아 적당하게 운동을 할 수 있는 훌륭한 코스다. 모두 나양주 산우에게 감사의 말을 한다. 오르면서 나온 화제는 부동산 가격의 지속적인 하락의 문제, 특히 전작 산우가 사는 은마아파트나 고갑무 산우가 사는 압구정 현대아파트에 관한 얘기, 자식들의 혼인이 늦어지는 것은 대세이며 특별한 대책이 없다는 얘기, 세상은 급격하게 모계사회로 가고 있다는 얘기, 중국의 농산물 수입이 끊어지면 가격을 3-4배로 폭등할 거라는 전작 총장의 얘기, 2017년 이후부터 늘지 않는 구매력이 있는 인구에 대한 대비 등은 나이 들어가는 우리가 걱정한다고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니 이럴 때 우리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말이 적합할까. 쉬면서 사진을 찍으면서 가는 길에 산우들과 함께 있으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흘러갔지만 행사에 늦는다고 누구 한 사람 걱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연초에 미리 했으니 늦으면 말지.

 

정상으로 가는 길과 행사장으로 가는 갈림길에 여섯번째 철탑이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고도계를 보니 581미터. 오른쪽으로 연주암이 보이고 절밥을 먹겠다는 행렬이 길다. 누군가 연주암의 밥이 짜다고 하니, 싱거우면 많이 먹는다는 즉답이 나온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도봉산 천축사 밥은 국이 있는 1식 4찬이니 절밥치고 훌륭하고 설악산 봉정암 밥은 미역국에 단무지나 오이김치 한 덩이로도 맛있다. 행사장인 관악사지에 도착하니 벌써 행사를 시작했다. 박 회장님이 돼지 입에 지폐를 끼우고 시산회의 안전을 기원했다. 우리는 넓고 양지 바른 곳에 자리를 펴고 음식을 차린 후 회장님이 올 때까지 배고픈 마음으로 기다렸다.

 

박 회장님이 자리를 잡고 오늘의 동반시는 오늘의 기자인 나더러 낭송하라는데 시를 선정하고 낭송까지 하는 것은 두 번의 노동(?)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 사양했더니 박 회장님이 열린 마음으로 낭낭하게 낭송한다. 시를 낭송하지 않은 대신 나더러 건배사를 선창하란다. 머뭇거리자, 남기인 산우가 즉시 “3월의 밝은 햇빛과 관악산의 정기를 위하여”를 말하라 하니 나도 얼떨결에 따라 했다. 참으로 순발력이 대단한 친구다. 생굴과 문형의 홍어무침, 양기의 김부침개, 과일, 한과, 김밥 등 오찬을 즐기기에 충분한 음식들이 차려지고 한낮의 성찬을 즐기는 시간이다. 몇 순배의 잔이 돌고 취흥은 도도해진다. 그러나 구름이 끼어 해가 구름 뒤로 숨으니 갑자기 느껴지는 추위에 몸을 털고 일어선다. 신라의 향가 중 ‘찬기파랑가’가 있는데 시커먼 밤 구름이 환한 보름달을 가려 세상이 어두워지자 기파랑이라는 화랑이 손을 들어 시커먼 구름을 걷으니 다시 세상이 밝아졌다는 해석을 한 사람이 향가와 고려가요 연구의 커다란 별, 무애 양주동 박사였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악랄했던 박정희가 1972년 10월에 유신을 선포하니 우리들 젊은 가슴은 멍들었고 악이 세상의 빛을 가릴 때, 1973년 가을에 휴교령이 끝나고 기말시험의 중간에 도서관 강당에서 양주동 박사의 강의를 들었던 기억이 났다. 교정에는 유신의 사냥개들이 음흉한 눈을 굴리며 귀를 세우고 있어 그 서슬이 퍼렇고 암울했던 시절, 시커먼 구름을 10월 유신, 혹은 박정희라 암시하고 그 시커먼 구름을 걷을 사람은 높은 기개를 가진 너희 젊은 학생들뿐이라는 표현을 멋진 비유법을 사용하여 사냥개들의 눈과 귀를 따돌리고 걸쭉한 목청을 높이던 그 분을 떠올렸다.

 

먹었으니 내려가야지. 한양기 산우가 나의 메일을 정독했는지 날머리를 낙성대로 잡자고 주장했으나 나양주 산우도 이쪽은 잘 알지 못하다고 하니 모두 아래쪽으로 보이는 길로 들어선다. 임용복 수석이 왔으면 가능했을 텐데 아쉬웠다. 향교 방향으로 내려가는, 돌이 많은 계곡길이다. 앞으로는 동반시를 돌아가면서 선정하자는 의견을 내려했으나 하산을 서두르는 바람에 꺼내지 못했다. 마침 김용우 산우에게 다음 산행의 동반시 선정을 부탁했더니 열린 마음과 웃는 얼굴로 흔쾌히 승낙한다. 항상 웃는 낯으로 마음이 긍정적인 친구다. 2회 산행 때 오서산에 총동문회 산행을 갔는데 버스의 뒷자리에 앉았던 10회 선배가 자기들 산악 모임의 회장이 친필로 회원들에게 산행에 참가해줄 것을 간절한 마음과 따뜻한 정성을 실어 ‘모시는 글’을 보내니 열성에 감복하여 분위기가 좋은 모임이 됐다는 얘기를 듣고 나는 시산회답게 시도 동반하고 산행기도 남기자고 시도했었고 반응이 좋았다. 지금까지 산우들의 마음이 한데 모아져 180회까지 이어져왔으니 감회가 남다르게 깊다.

 

남기인 산우와 동행하면서 내려왔는데 자신의 학원에 문제가 생겼지만 학원에서 죽치고 앉아 있어 봐야 걱정만 늘고 스트레스를 더 받으니 토요일 산행은 오기 어려운데 불구하고 왔다는 것이다. 마침 걸려온 전화를 받는 목소리가 밝다. “학원에 앉아서 걱정을 많이 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해결해주는 게 많다. 차라리 잊고 산에 왔더니 오히려 더 잘 해결됐다. 세상의 어려웠던 모든 것은 시간과 함께 그렇게 지나가더라.”는 그의 말에는 인생에 대한 넓고 깊은 지혜가 담겨있다. 그와 함께 나눈 대화 중, 하나 더 얘기한다. “불가에서 수행의 방편으로 참선과 화두가 자리 잡고 있으나 그 어려운 화두에 잡혀 수십 년을 동굴에 박혀 면벽수도해서 한소식을 들으면 왜 더 깊은 산으로 숨느냐, 부처님처럼 세상에 나와 가르침을 직접 전하고 지혜를 함께 나누는 것이 부처님이 바라는 넓고 환한 세상을 만드는 길이다. 그 어려운 화두를 들고서 세상과 떨어져 십 수 년을 참선을 하느니 세상과 더불어 살면서 팔정도(정견, 정사유, 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 정념, 정선정)만 실천해도 부처에 다름 아니다.”는 대화에는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이 들어 있다. 인류의 스승 중 가장 인격적으로 완성됐다는 공자의 말씀 중에 “세상의 길에는 수많은 삶이 널려있다. 그것을 모두 겪고 알 수 있는 길은 없으니 책을 많이 읽어 그들의 경험을 받아들여라, 그러나 책 속에 담긴 것이라도 깊은 사색이 없으면 저자의 삶을 흉내를 내는 것으로 그친다. 항상 깊이 사색하며 세상과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을 키워라.”며 “책은 과거의 일을 얘기한다. 야사를 읽지 말고 정사를 읽어라, 정사에 넓고 올바른 길이 있고 야사는 흥미는 있으나 그런 것은 한낮의 이야깃거리에 불과하므로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지 마라.”는 말이 있다.

 

잠시 쉬어간다고 생각하고 사기를 지은 사마천이 했던 말을 되새겨본다. 이릉을 변호하다 한무제의 노여움을 사서 처벌을 받게 된 그는 죽음보다 더 한 치욕을 감수하고 사기를 완성하기 위해 사형 대신 궁형을 택한다. “이것이 내 죄인가, 내 죄인가! 이제 몸이 망가졌으니 다시는 세상에 나아가지 못하겠구나!” 형을 받고 물러난 뒤 사마천은 깊이 생각한 끝에 이렇게 말했다. “<시경>과 <서경>의 뜻이 깊고 세세하며 서술이 간략한 것은, 제약된 상황 속에서 자신의 뜻을 펴려고 했기 때문이다. 옛날 서백창은 유리에 갇히게 되자 <주역>을 풀이했으며, 공자는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 곤경에 처하자 <춘추>를 지었다. 굴원 또한 추방당한 몸이 되어 <이소>를 지었고, 좌구명은 실명한 후에 <국어>를 남겼다. 손빈은 다리를 잘리는 형을 받은 후 병법을 저술했고, 여불위는 촉으로 유배된 후에 <여씨춘추>를 남겼으며, 한비자도 진나라에 갇힌 몸이 되어 <세난>, <고분> 편을 지었다. <시경>에 수록된 삼백 편의 시는 대체로 상현들이 발분해서 지은 것이다. 이들은 모두 마음에 깊이 맺힌 바가 있으나 그 뜻을 직접 표현할 수가 없었기에 지나간 사실을 빌려 미래에 그 뜻을 전했던 것이다.” 이처럼 나이와 상황에 관계없이 고난을 창조적 에너지로 전환한 자가 세상을 바꾼 예가 수없이 많다. 나는 사마천의 불굴의 정신에 감복하여 ‘사기’를 즐겨본다.

 

내려오는데 계곡길이라 조망이 좋지 않아 앞만 보며 걸으니 지루하고, 돌이 많고 울퉁불퉁한 길에 불만이 많다. 계곡길은 이런 이유로 싫다. 관악산 지킴이란 시인이 써놓은 시가 만장처럼 붙어있는 곳을 지나 그분이 운영하는 집으로 박 회장님이 안내한다. 두부김치와 도토리묵, 파전을 놓고 뒤풀이 시작. 막걸리를 다섯 병을 갖다 놓았지만 두 병이 남았으니 술을 먹는 량이 줄어들었음을 알겠다. 도봉산 산행 후 송추에서 먹었던 메생이 갈비탕처럼 개인 메뉴가 좋았을까? 다음 산행지를 의왕저수지 부근의 백운산으로 정하고 김종화 산우가 안내를 맡기로 했다. 5월28-29일에 지리산 칠선계곡을 가기로 한 예정에 따라 신원우 산우가 알아봤으나 지난해 폭우로 유실된 곳이 많아 복구 후에 개방한다는 전언을 받았다고 하니 올해는 일정상 어렵게 됐다. 하여 해남 대흥사가 있는 두륜산으로 변경할 것을 잠정적으로 결정했다. 남기인 산우가 학원의 중형버스를 빌려줄 예정이니 미리 말해달라는 당부가 있었다. 고마운 일이다. 한양기 산우는 원거리 코스로 대둔산을 오르자고 추천했다. 회의 시간에는 일절 발언을 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스스로 효력을 정지시켰는지, 몇 번을 빠진 동안에 잊었는지 모를 일이다. 책을 많이 읽어 아는 것도 많고 말 속에 악의가 없으나 목소리가 커서 말이 많은 것처럼 들리니 목소리만 줄이면 장점이 훨씬 많은 사람이다. 본인의 변에 의하면 그것이 참 어렵단다. 새봄을 맞이하여 임용복 수석이 그와 함께 술 한잔 하자더니 바쁜 탓인지 소식이 없다.

 

박 회장님이 즐거운 마음으로 한턱 냈고 우리는 박수로 화답했다. 김용우 동창회 총무가 시산제 참가비를 동창회비에서 내주기로 해서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10만원을 적립하여 원거리 산행에 보태겠다는 전작 총장은 미리 걷은 10만원을 내주기 싫은지 머뭇거렸지만(?) 모두의 “내 돈 돌리도”라는 말에 아쉬운 듯 돌려준다. 알뜰한 총장님 덕분에 당분간 시산회 살림살이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짧지만 즐거웠던 뒤풀이를 끝내고 즐거운 산행을 마쳤다. 친구들아! 아쉬운 마음을 잠시 접고 2주 후에 건강하게 만나 반가운 마음을 활짝 펴자. 끝으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말,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건강하자.

 

2012. 3. 15. 새벽에 도봉별곡 올림

 

3.산행지

이번 산행은 북한산이다. 지난번 산행 때 의왕 백운호수 옆 백운산으로 결정했으나 안내를 맡은 김종화 산우가 갑자기 일이 생겨 안내를 하지 못할 형편이 생겼다. 하여 다음에 가기로 한 북한산과 바꾸기로 하여 변경한다. 그때면 산수유나 개나리가 피어 있을 정릉계곡으로 올라 보국문 근처에서 식사를 마치고 대성문으로 가서 평창동이나 국민대로, 대동문으로 가는 길목에서 칼바위능선을 따라 아카데미하우스, 대동문까지 가서 소귀천계곡, 혹은 진달래능선으로 내려오든지, 내친 김에 용암문까지 가서 도선사, 위문까지 더 가서 하루재를 거쳐 영봉을 지나 우이동계곡으로 내려오는 코스가 있으니 상황에 따라 그곳에서 결정하자. 보국문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우이동으로 내려와 전에 갔던 한정식집에서 뒤풀이를 하면 좋을 것이고 대성문에서 내려오면 불광역 낙지가 한창일 것이다. 이제 추위는 갔으니 따뜻한 봄맞이 산행에 모두 나와 하루를 즐기자.

 

4.동반시

동반시를 내가 독점하여 선정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어 이것을 돌아가면서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적이 오래 됐다. 이제부터라도 나의 짐을 조금씩 덜어줄 것을 처음으로 김용우 산우에게 부탁했더니 흔쾌하게 승낙하고 평소 가슴에 오롯이 담아두었던 5편의 시를 보내왔다. 그중 한 편을 골라 내친 김에 시평까지 부탁했더니 바쁜 업무에 불구하고 바로 보내와서 고마웠다. 좋은 시고 훌륭한 시평이니 잘 읽어볼 것을 부탁하고, 앞으로 돌아가며 부탁할 테니 많이 도와주기 바란다. 고맙다 친구야!

<도봉별곡>

 

전번 관악산 연주대에서 김정남 산우가 다음 산행의 시를 회원들이 추천해 달라는 주문이 있었다. 2주마다의 시산회 산행시를 선정하고 시평을 독점(?)하여 온 김정남 산우의 수많은 새벽시간들이 산처럼 높고 깊었을 것이 분명하다. 꾸벅~@!이 자리를 빌려 무릎을 낮춰본다.

하여 저장해둔 블로그에서 좋아하는 시 몇 편을 보내드렸는데 아예 시평도 부탁 한단다.시평은 감히 생각해 보지도 욕심내 보지도 못한 다른 영역이라 생각해 왔는데 산우의 이야기에 마음 한구석이 탐욕(?)을 부린다. 준비되지 않은 풋내기도 한번 헛발질 해보는 게 어떠냐고.

시평은 작가의 그 시에 대한 속살같은 우물을 보여주는 여울이라 하겠으나 우리들도 느끼는 감정과 전달되는 반사의견을 나타내면 하나의 시평이 될 것이라 감이 생각해 본다.

 

이장욱 시인은 1968년(44세) 서울생이고 고려대학교 노문학과 문학박사로 서울 도봉구 창동에 거주하고 있으며 2010년 올해의 시로 선정된 ‘겨울의 원근법’을 비롯하여 ‘동사무소’ ‘내 맘속의 모래산’ ‘생년월일’ ‘고객의 제왕‘ 등이 있다. 그는 시와 소설 그리고 평론이라는 세 가지 작업을 수행하는 관계로 그에게 있어 언어는 수단이며 목적이 되어 세 꼭짓점의 역학이 사뭇 복잡하기도 하고 다소 어려운 편이라 생각되지만 현재를 해부하여 반성하고 미래를 연습한다는 의미에서 그의 시어는 우리가 되돌아가야 할 상처이자 출발점이 된다.

 

“오른손은 모르게”는 마태복음의 한 구절이다. 성인의 가르침에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했으며 티벳의 정신적 지주인 달라이 라마는 “오른손이 한 것을 오른손조차 알지 못하게 하라”하였고 불가에서는 남에게 사심 없이 넘겨주는 것을 “보시”라 하여 내가 누구에게 주었는지를 주고 나면 잊어버려야 한다는 의미이다.

 

“왼손은 조금 더 가까운 데서 생각한다”/는 것은 오른손에 가장 가까이 있으며 오른손의 하는 일을 다보고 있는 것이 왼손이 아니겠는가? 오른손이 잡았다 놓쳐버린 것들도 오른손이 원하는 것마저도 알고 있는 왼손이기에 그런 서정어로 표현한 것이라 생각된다.

오른손이 그리워하는 것을 알아주고 오른손의 편이 되주는 “왼손에겐 친구가 필요해”/라는 우리 시산회 산우들의 향기나는 마음이 살그머니 보인다.

 

“왼손이 좋아하는 것은 갑자기 왼손이 되는 것”/“당신의 손바닥을 뚫고 튀어 나간 나의 왼손은”/의 표현에서는 나의 동공을 점령하고 긴 세월 낡았던 나의 입술을 열리게 한다.

 

태양을 보기 위해 촛불을 켜는 자가 있는가? 촛불을 켤 때는 사방이 어둡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둡기도 하지만 촛불을 항시 필요로 하는 만큼 어두운 건 아닐지 모른다. 플라톤의 말처럼 동굴을 나와 태양을 보며 살아야 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이장욱 시인은 소규모 인생계획으로 살아가라고 말하는 듯 하다. 일상 속 접합지점에서 더불어 함께 나누며 오늘의 끝에서 내일을 시작하여야 하고 혼자가 아닌 공동체의 하나 된 의식이 마주해야 한다고 소리 지르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오른손은 모르게’/왼손이 하는 일을 왼손조차 모르게/ 아니 그 왼손의 주인마저 모르게 해야 한다는 것은 진정한 보시이다. 인간의 기억은 탐욕이 될 수 있고 그 헛된 사슬에 구속되는 이유로 아름다운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입맞춤이 아니라 오른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조차 모르게 하는 아름다운 자유를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또한 왼손이 하는 일은 왼손이 알아야 하고 오른손도 알아야 하며 오른손이 하는 일은 오른손이 알고 왼손도 알며 그 손의 주인도 알아야 한다는 반전의 의미를 눕혀 생각해보면 이장욱 시인은 우리에게 “양날의 칼”을 시퍼렇게 쥐어 주고 있는지 모른다.

-시평<김용우>

 

오른손은 모르게/이장욱<김용우 추천시>

 

왼손은 수십 개의 사소한 실망들을 알고 있다.

왼손은 조금 더 가까운 데서 생각한다

왼손은 먼저 떨린다

 

지붕 위에 내려앉는 새들의 무게와 함께

밤의 이동속도로 나의 왼쪽에서는 무언가

꿈틀거리는 기색

 

왼손에겐 친구가 필요해

아주 분명한 친구

안개 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손목으로

악수를 청하는 친구.

 

왼손이 좋아하는 것은

갑자기 왼손이 되는 것

 

안개야 양떼처럼 흩어질 수 있겠지만

그 순간 왼손은 사냥개가 되는 것.

그것에 꽂히는 것

 

매일 오른손도 모르게

왼손이 사라진다.

세어야 할 것들이 많은데

가리켜야 할 것들이 많은데

 

스르르 펴진 뒤에 왼손은

낯선 이에게 인사하는 데 천재

쥐락펴락 혼자 손금을 만들다가 불현듯

그것이 되는 것 역시

 

한낮의 거리에서 당신과 손을 잡고 걸어가다가

당신의 손바닥을 뚫고 튀어나간

나의 왼손은

 

2012년 3월 20일 춘분의 낮에

詩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도움쇠 김정남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