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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도봉산과 오봉(詩山會 제194회 산행)

도봉산과 오봉(詩山會 제194회 산행)

산 : 도봉산

코스 : 보문능선-오봉샘-오봉-송추(1안)

냉골-10휴식처(청룡사터)-다락능선-망월사역(2안)

소요시간 : 1안-4시간. 2안-3시간

일시 : 2012년 9월 16일(일) 10시

만나는 곳 : 전철 1호선, 7호선 도봉산역 7호선 대합실

준비물 : 막걸리, 안주, 과일, 카메라

연락 : 전작(010-9858-2858)

사진 : blog.daum.net/sisan20

산행기 : blog.daum.net/yc012175

카페 : cafe.daum.net/K-20

1.詩를 통한 時論

 

가을의 소원 - 안도현(1961~ )

적막의 포로가 되는 것

궁금한 게 없이 게을러지는 것

아무 이유 없이 걷는 것

햇볕이 슬어놓은 나락 냄새 맡는 것

마른 풀처럼 더 이상 뻗지 않는 것

가끔 소낙비 흠씬 맞는 것

혼자 우는 것

울다가 잠자리처럼 임종하는 것

초록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

소란을 잃고 의문을 버리고 이유가 없어지는 것. 이지와 논변에서 벗어나 가까운 자연의 빛에 젖어보는 것. 욕망의 끈질긴 촉수들은 스톱시켜야지. 다음엔 또 자연의 샤워에 몸을 맡겼다가, 인간으로 돌아와서는 깨끗이 울어봐야지. 그러다간 죽어도 좋겠다는 것. 죽고 싶다는 건 아니고…. 마침내는, 병들어 시름시름하는 가을이 그토록 살찐 초록을 단숨에 쓰러뜨렸는데도 아무런 항변이 없어지는 것. 그런데 가을엔 왜 자꾸 기도하고 싶어질까. 긴긴 겨울이 쳐들어오고 있어서겠지. <이영광·시인>

백로가 지났으니 가을이 왔다고 생각하는 분위기다. 새벽에는 벌써 홑이불이 허전하다. 시성 서정주 시인은 초록이 지치면 단풍이 든다고 했다. 짧은 시이지만 생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한 흔적이 도도하게 보인다. 자의반타의반으로 도서관에 다닌 지 벌써 2년이 넘었다. 책을 읽으며 느끼는 것은 지적 호기심을 채워가는 과정이 육체적, 관능적인 욕구를 채우는 것보다 즐거움에는 뒤지지 않는다는 점, 내가 아는 것이 너무나 적어 대가들의 사상이나 경륜에 비해 초라함을 느끼는 것, 그들은 한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 수 십 년의 세월을 바치기도 한다는 것에 존경의 마음을 갖게 한다. 시인은 그런 것을 일러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라고 표현했는데 백 마디의 웅변보다 훨씬 나은 표현이다. 도서관에 긴 시간을 앉아 있어도 허리가 아프지 않는 것, 잔글씨를 오래 읽어도 눈이 피로하지 않는 것, 싫증이 나지 않는 것, 졸리지 않는 것 등이 다행스럽고, 지적 호기심과 지적 허영의 중간에서 적당히 줄타기를 하는 즐거움도 만만치 않다. 글을 쓰다, 혹은 메모를 하다 막혀서 막걸리 생각이 나면 한 달에 한 번쯤 중앙시장의 한 모퉁이에 있는 전집의 항상 무표정한 표정의 늙은 주모가 무심하게 반겨주는 것도 반갑다. 남편이 외환은행 지점장 출신이었다는데 남편의 깨끗한 얼굴에서 풍기는 풍모가 그 이상이다. 방심해서 당한 사기가 자신을 이 지경으로 몰아넣었지만 이제는 팔자려니 하고 달관하고 산단다. 도서관에서 오래 지내다 보니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키는 점은 좋지만 변화 없는 생활에 마음이 가라앉아 병원에 갔더니 아주 약한 우울증 초기 증세다. 의사의 말은 더 많이 산에 오르라 한다. 자기가 아는 약물치료 빼고는 햇볕을 쬐며 산에 오르는 것이 우울증 치료에 가장 좋다고 한다. 아니면 책을 편다는 목적을 가지고 글을 읽던지 해야 한다니 그것도 어려운 일이니 내년에는 도서관 생활을 작파하고 도봉산 지킴이를 하러 매일 도봉산에 올라야 할까!

<도봉별곡>

 

2.산행기

시산회 제193회 청계산 산행기/정해황

참석자 : 김용우, 김정남, 김종화, 남기인, 박형채, 이경식, 이원무, 위윤환, 전작, 정해황, 조문형. 조영훈. 최근호(이상 13명의 시산인)

그간 발목이 좋지 않아 시산회 등반에 많이 빠졌다.

박 회장님과 전 총장님, 계속 문자를 보내주는 수고를 하는데 많이 미안했다. 그래서 금번 9. 2.의 청계산 등반은 꼭 참석하리라 마음먹었고 오랜만에 참석하는 시산회 모임, 여러 친구들이 좋아하는 모시떡을 다른 때보다 좀 더 여유 있게 준비해 가리라 생각했다.

전날 미리 예약한 떡을 찾으러 가니 누구에게 줄 선물이라고 생각했는지 떡이 담긴 예쁜 꽃무늬 박스가 핑크색 보자기에 잘 포장되어 있어 보자기는 주인에게 다시 주고 박스만 배낭에 넣고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양재역에서 청계산행 열차를 기다리는 중 윤환과 정남을 오랜만에 만나니 그 반가움이야......

청계산역에 도착, 비록 2번 출구에서 만나기로 했지만 지상에는 그늘이 없기에(현재의 우리나라 복지수준으로는 기이한 현상임) 지하 1층에서 친구들을 기다리자 원무, 문형, 경식, 등이 도착했고 시간이 되어 1층으로 올라가니 몇 친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정남에게 근황을 물으니 요즘 도서관에서 책 읽는 재미로 산다며 동서양을 아우르는 종교의 창시자나 동서고금의 聖人들에 관한 얘기를 했다. 그들의 사상은 사랑, 자비, 仁 등으로 거의 비슷한데 그 이유는 서로 모방하고 짜깁기 해 용어만 약간씩 바꿔 사용했기 때문인 것 같단다. 공감이 가는 얘기지만 그들 사상에 무조건적인 모방만 있지 않고 약간의 창의적인 것도 있지 않나 생각한다.

비록 출퇴근에 큰 제약은 없지만 1시간 반 이상 걸려 의정부까지 출퇴근하는 나로선 자기 하고픈 것에 푹 빠져 사는 정남의 생활이 부럽다.

곧이어 종화가 오늘의 뉴 페이스 조영훈 친구와 함께 도착하여 13인의 산우가 모두 도착했다. 청계산은 집에서 비교적 가까워 자주 찾은 산으로 원터골 코스는 너무 붐비기에 옛골 쪽 코스를 자주 이용했다

본인은 평소 원터골이란 지명이 발음도 좋지 않은데 이렇게 쓰인 데에는 그이유가 있을 터인데 하고 궁금해 하던 차 금번 인터넷을 검색 해 보았다.

예로부터 국가주요시설이 있었던 곳은 院(이태원, 인덕원, 조치원)이란 글자가 들어갔고 院주변으로 유동인구가 많아 여관 등이 있었던 곳은 원터, 원터골, 원터말, 원지말 등으로 불렸는바 청계산 아랫마을도 원터골이라 불렸다. 지금은 이를 한자로 표기해 원지동(院址洞)으로 바뀌었다 .

교통이 편리해 驛이 있었던 곳은 역(역촌동, 역삼동)이란 글자가 들어갔는데 지하철역이 들어서기 전부터 사용했던 양재역(말죽거리로도 알려짐)이나 벽제역 구파발역이란 명칭도 옛날에는 역이 있었던 곳이었다.

참고로 문정동은 인조가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몽진하던 중 문정동 근처에서 우물물을 마셨는데 그 우물이 문 씨들이 사는 마을 우물이라 하여 文井洞이라 불리게 되었고, 흙이 하얗다는 白土고개에서 인조가 오금이 저렸다하여 오금동이라 불리게 되었다한다.

청계산역을 출발한 13인은 굴다리를 지나 10여 분후 갈림길에서 사람들이 덜 붐비리라 생각되는 개울 왼쪽 어둔골 약수터길을 택했다. 그 어느 때 휴일보다 등산객이 많지 않아 뒷사람에게 떠밀리고 앞사람 엉덩이만 쳐다보고 가는 고통은 덜고 푸르른 신록을 감상하며 가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20여분을 더 오르니 배낭이 무거워서인지 땀이 많이 나는데 마침 벤치가 나오니 선두가 휴식을 하잔다. 얼른 배낭을 풀어 떡을 친구들에게 돌리고 나니 배낭이 한결 가볍다. 마침 우리 옆에 있던 60대 중반의 등산객에게도 하나 드렸더니 떡이 아주 맛있다 하신다.

얼마가지 않아 언덕 끝에 쉼터가 나오는데 먼저 온 등산객이 모두 차지하고 있어 이곳은 지나치고 약간 평평한 곳에서 막걸리 한잔씩을 마시기 위해 멈췄다. 땀을 많이 흘린 후 샤베트가 된 막걸리를 친구들이 가져온 여러 안주에 한잔하니 갈증이 쫙 해소된다.

7월말 전 총장님의 인솔 하에 중국에 갔던 얘기와 함께 11월중의 여행지로 우리나라 최서남단의 섬 가거도에 대한 얘기도 나왔다.

10여분을 더 오르니 매바위가 나오고 매바위에서 100여 미터를 더 올라 오늘의 목적지인 매봉(582.5m)에 도착하여 표지석을 뒤로하고 13인은 인증샷을 했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기다렸던 식사시간이다. 각자 아내와 또는 며느리가 싸준 음식보따리를 푸니 무친 홍어에 막걸리, 족발과 새우튀김, 한과 그리고 과일류 등 너무나 푸짐하다. 여러 유쾌한 얘기가 오가는 중에 분위기를 다운시키는 얘기도 나왔다.

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 국립공원에서 음주가 허용되는 유일한 나라로 음주 후 사고가 빈번하기 때문에 정부가 국립공원에서 음주를 못하게 하는 내용의 법안을 입법추진하고 있다는데 입법이 된다면 시산회 회원들은 모범생들이라, 一樂이 없어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한다.

식사 후 뒤처리도 1등인 시산회 멤버들, 몇 친구가 쓰레기를 담아 그 봉지를 배낭에 매달았지만 가장 큰 봉지 1개가 남아 소시적 기분으로 돌아가 가위 바위 보를 하니 정남이 친구가 당첨되었다. 정남이 복 받을 끼여.

하산길에 문형친구가 윤환과 함께 당구를 치잔다. 그러나 윤환 어제도 등산을 해 오늘은 피곤해서 안 되겠단다. 서운하지만 별 수 없다. 우리고교 시절 당구는 담배연기 자욱한 곳에서 불량청소년들이나 하는 놀이 라 해 이미지가 별로 안 좋았는데 지금까지 그런 고정관념을 가질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비록 초보지만 당구에 대해 말하자면 본인의 가장 큰 취미중 하나인 바둑같이 쪼그리고 앉아 많은 시간을 소비하지 않고, 테니스나 여타운동에 비해 격렬하지 않아 부상위험도 없고, 골프의 1/10의 비용으로 손쉽게 배워 즐길 수 있고 또한 시내에 당구장이 고개한번 돌리면 곳곳에 있어 장소에도 구애받지 않는 등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따라서 나이 먹어 친구를 만날 때 특별한 용무가 없으면 한두 마디 나누고 나면 할 얘기가 별로 없어 술에 의지하여 한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하는데 당구 한 두게임 하고 식사를 하면 서로 지루하지 않으면서도 많은 운동을 하게 되어 술도 적게 먹게 되고, 여러 가지로 좋은 운동이 아닌가 생각되어 여러 친구들에게 권하는 바이다. 우리친구들이 등산 외에 다른 취미도 공유하면 오래도록 좋은 친분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청계산은 높이가 낮고 흙산이라 내려가는데 부담이 없어서인지 얼마 되지 않아 오늘의 뉴 페이스 조영훈 친구가 쏘기로 한 소담채 라는 뒤풀이 장소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생두부와 해물파전, 녹두빈대떡을 안주삼아 맥주를 마시면서 여러 얘기를 나눴다. 아무튼 영훈 친구, 덕분에 잘 먹고 잘 마셨네. 회원 모두가 환영하는 분위기이므로 자주 볼 수 있기 바라네.

그리고 여러 얘기 중 김종화 친구의 아래내용의 부탁의 말도 있었는 바 우리시산회에 도움을 주었던 ‘독도사랑협의회’라는 모임에서 9. 10. 오후 2시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 측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한 규탄 시낭송이 있으니 우리 시산회 측에서도 시낭송도 해주고 많은 회원이 참석해주기를 바란다는 요청이 있었다 한다. 9. 10.의 행사에 많은 친구들의 참여를 바라면서 이만 글을 마치겠습니다.

2012. 9. 2. 정 해 황 씀

3.산행지

이번 산행지는 도봉산으로 정했다. 시산제는 정초에 도봉산에서 하는 것이 정해진 것이고, 2월에 오르고 9월에 오르니 7개월만이다. 뒤풀이 때 다음 산행지를 정하는데 불암산이 거명되었는데 산행하기 좋은 계절에 오르기는 싱겁다는 의견이 나와 도봉산으로 결정하는데 남기인 산우의 눈치가 보였다. 그에게는 너무 먼 곳이라 미안한 일이다. 나는 걸어서 가족과 둘레길을 걸울 수 있을 만큼 가까운 산이니 굳이 산우들과 오르지 않아도 혼자 자주 오르는 산이다. 2월에 오른 코스는 오봉으로 올라 여성봉을 거쳐 송추로 내려왔는데 반응이 좋았으며, 이번에는 어디로 오를 지 안내도 앞에서 산우들이 결정할 일이다. 산이 크고 넓어 코스가 다양하므로 청계산만큼은 번잡하지 않으며 나무 그늘과 물이 많아 여름 산행에 좋다.

수년을 다니면서 나름대로 도봉팔경을 정해봤다. 더 다니고 결정하려 했으나 잊고 있다가 갑자기 생각이 나서 다시 올린다.

1.신선일출 2.칼봉낙조 3.송추오봉 4.용어천단풍 5.거북약수 6.우이월출 7.자운운해 8.도봉계곡 (9.송추폭포 10.포대능선 11.만장단애 12.문사동 13.Y계곡/Y능선)

다가오는 가을은 유난히 짧다고 한다. 10월 초에는 물과 단풍이 화려하게 어우러진 십이선녀탕 계곡의 단풍도 즐길 수 있고 장흥 천관산이 좋다니 그 산도 올라 다도해를 봐라볼 기회도 있을 것이다.

4.동반시

동반시는 정해황 산우가 추천했다. 정해황 산우의 말에 의하면 무거운 듯하지만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한 흔적이 있다. 동반시가 때로는 무거울 때도 있고 솜처럼 가벼울 때도 있으니 올려달라고 했다. 낮이 익은 시라 검색을 해봤더니 85회 산행 때 이정하 시인의 '부르면 눈물날 것 같은 그대'라는 시와 경합했으나 이시의 주제가 무겁다고 다음으로 미룬 시다. 시인들은 말한다. 시는 슬픈 자들을, 가난한 자들을, 사랑을 잃은 자들을, 실패한 자들을, 절망에 빠진 자들, 억울하게 빼앗긴 자들을 위한 기도라 했다. 삶은 빼앗은 만큼 돌려주기도, 준 만큼 빼앗아 가기도 한다는 것을 우리가 모르지 않다. 그렇다고 삶이 항상 권선징악적이지 않다. 부처는 깨달음의 진정한 목적은 지혜를 얻기 위한 것이라 했다. 다만 착하게 산다고 많은 것을 이루는 것이 아니지만 자존심을 잃지 않고 초라하지 않으려고 바르게 사는 것이다. 그것이 삶의 지혜다. 지혜롭게 살기 위해 고집멸도의 네 가지 진리와 팔정도, 중도, 탐진치 삼독의 무서움, 연기를 말씀하시며 '늘 깨어 있으라'했다. 신격화나 개인숭배를 반대하고 자신을 '늘 깨어 있는 자'로 기억해달라 했다. '천성천하 유아독존'은 해석의 오류이거나 다른 의도를 가진 후세들이 지어낸 어리석고 허황한 신화일 뿐이다. 그는 쓸데없는 욕심을 부리면서 초라하게 살지 말고 자존을 잃지 말고 살자고 했다. 자! 가을이 오니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

<도봉별곡>

아아, 삶이 / 이 경 림

 

절망이라고 치욕이라고

말하지 않고 그냥 시름이라고만

말할 수 있어도 얼마나 좋으리

시름처럼 순하게 시름처럼 아득하게

깊어질 수 있다면 또 얼마나 좋으리

시름처럼 천천히 해가 뜨고 시름처럼

하염없이 늙어가는 나무 아래선

펄펄 끓는 치욕을 퍼먹어도 좋으리

노란 평상 위에서 온갖 웬수들 다 모여

숟가락 부딪치며 밥 먹어도 좋으리

그때 머리 위로는 한때 狂暴했던 바람이

넓적한 그림자를 흔들며 가도 좋으리

시름처럼 수굿한 구름이 나무 꼭대기에서

집적대고 좋으리

 

그래

끝이라고 문 닫았다고

말하지 않고 그냥 시름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또 얼마나 좋으리 시름처럼 따뜻하게

시름처럼 축축하게 한시절

뒹굴뒹굴 보낸다면 얼마나 좋으리

시름의 방 속에서 어른거리는 것들의

그림자를 보는 일도 좋으리

문밖에서 휙 지나가는 도둑고양이 같은 시름들

못 본 척하는 일도 좋으리

풀섶에서 눈 번득이는 작은 짐승처럼

그저 고요히 두근거리는 일도 좋으리

 

그 또한 시름 같은 것

 

2012년 9월 11일

詩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도움쇠 김정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