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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설악산 울산바위와 권금산성(詩山會 제206회 산행)

설악산 울산바위와 권금산성(詩山會 제206회 산행)

 

산 : 설악산(1,708미터)

 

코스 : 설악동-흔들바위-울산암-설악동-권금산성-설악동-기사문리항

 

소요시간 : 4시간 반

 

일시 : 2013년 3월 9일(토) 7시

 

만나는 곳 : 전철 4호선 사당역 및 잠실역 너구리상 근처

 

준비물 : 막걸리, 안주, 아이젠 필수

 

연락 : 조문형(011-259-2915)

 

사진 : blog.daum.net/sisan20

 

산행기 : blog.daum.net/yc012175

 

카페 : cafe.daum.net/K-20

 

 

 

1.詩를 통한 時論

 

 

얼음 호수 - 김명인(1946~ )

 

가장자리부터 녹이고 있는

얼어붙은 호수의 중심에 그가 서 있다


어떤 사랑은 제 안의 번개로

저의 길 금이 가도록 쩍쩍 밟는 것

마침내 산산조각이 나더라도

빙판위로 내디딘 발걸음 돌이킬 수 없다


깨진 거울 조각조각 주워들고

이러저리 꿰맞추어보아도

거기 새겼던 모습 떠오르지 않아 더듬거리지만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던 한때의 파문

어느새 중심을 녹여버렸나

나는 한순간도 저 얼음호수에서

시선 비끼지 않았는데


가장자리부터 녹고 있는 그러나 아직 얼어붙은 호수 중심에 한 사람이 서 있다. 위태롭다. 이미 주변이 녹기 시작한 쩍쩍 금이 가는 얼음장 위를 밟고 간 사람이다. 산산조각이 나더라도 빙판 위로 내디딘 발걸음을 돌이킬 수 없는 것은 제 안의 번개 같은 사랑 때문이다. 늦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가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훗날 깨진 거울 조각을 주워 꿰맞추어 봐도 거기 새겼던 모습 떠오르지는 않아 더듬거릴지라도 사랑은 아직 얼어 있는 중심을 향해 무릅쓰고 달려드는 것이다. 어느새 중심까지 녹아버려 그것이 한때의 파문이 되고 끝내 흔적조차 사라질지라도… 다른 한편에는 얼음 호수와 그 중심에 서 있는 사람에게서 한순간도 시선을 비끼지 않은 다른 사람이 있다. 시인의 가슴에 이처럼 단단하고 아슬아슬한 사랑이 파문처럼 몇 번은 지나갔으리라. 그리고 짐짓 아무 일 없는 듯한 호수가 되었으리라. [곽효환·시인]

 

이 시가 사랑의 시일까! 절기는 춘분이니 벌써 봄이다. 길고 유난히 추웠던 겨울은 가고 나무에 물이 오르는 춘분이다. 꽃샘추위는 언제나 오고 가는 현상이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아직도 얼어붙은 호수에 서있는 사람은 조심하라. 그게 사랑이든 놀이든 지나치면 안된다. 요즘 세 개의 화두를 들고 산다. 새옹지마, 빛과 그림자,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이 화두들을 들면서 세상을 다 살아버린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은 어리석지만 황당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앞으로도 시련이 오겠지만 미리 예방할 수도 없는 일이니 운명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다. 최근에 셀리 케이건의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읽으면서 죽음이란 별게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삶도 사랑도 재물도 별게 아니라는 생각까지 드니 이 나이에 망녕이 들었나?

<도봉별곡>

 

2.산행기

시산회 제205회 재경 광주고 동문회 시산제/김종화

산행일/집결지 : 2013. 3. 09일(토) / 도봉산역 (09:45)

산행코스 : 도봉산역-도봉탐방지원센터-광륜사-도봉서원-금강암-구봉사-성도원-용어천계곡-제6휴식처(시산제)-원점회귀-뒤풀이장소

동 참 자 : 17명 (갑무, 용우, 정남, 종화, 형채, 원우, 재홍, 경식, 원무, 삼환,

용복, 전작, 정한, 해황, 문형, 영훈, 근호)

동 반 시 : 달은 어둠 속에 집을 짓는다/ 임영석 (32회 이오배 총무 부인 낭송)

뒤 풀 이 : 손두부요리, 해물파전, 모듬전에 막걸리 / '도들샘' (최근호 찬조)

 

안개가 조금 낀 따뜻한 봄 날씨다. 지난주만 해도 시린 칼바람에 귓볼을 감싸고 다녔었는데, 경칩(3/5일)이 지나서인지 날씨가 완연히 따사롭다. 이제 두터운 겨울철 등산복은 장롱 속으로 들어가고 한결 가벼운 봄, 가을철용 등산복으로 갈아입었다.

 

지난해 4월초에 의식을 잃은 채 넘어져 뇌수술을 할 정도로 심각하게 건강을 잃어 그동안의 세월은 무척 힘들었다. 구입한지 얼마 되지 않는 승용차도 폐차처럼 아파트 주차장에 그대로 방치하여 두었는데, 이미 배터리가 방전돼 운행을 할 수 없는지가 오래되었다. 때마침 개인사정상 외국에 가 있던 손아래 처남이 내 집을 방문, 승용차를 빌려 쓸 일이 있다고 하여 어제는 배터리를 교환, 처음으로 드라이브를 하였다. 내 건강은 산신령과 하나님의 보호인지, 산우들의 나를 위한 염원인지 많이 회복된 상태이다.

 

처남은 전철로 가지 말고 승용차로 본인이 살았던 도봉산역 근처에 태워 주겠단다. 처남의 개인적인 일도 있겠지만, 승용차를 어느 정도 움직여 봐야만 했었다. 교통체증을 예측, 7시 반경에 집을 나섰다. 약 3년 전까지만 해도 도봉산의 암벽에서 ‘릿지(ridge)’를 즐겨했던 처남은 지금도 70대 후반의 한 노인이 ‘도봉산’ 광륜사 뒤편의 암릉에서 ‘릿지 교육’을 강행하고 있을 것이라 한다. 연세가 많은 노인네가 건강에 욕심이 강한지? 아님 손가락의 힘이 산행에 꼭 필요한 것인지? 궁금한 일이다.

 

토요일이라 많이 막힐 것으로 예상했던 동부순환도로는 막히지가 않고 순조롭게 잘 운행, 도봉탐방지원센터 앞까지 1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광륜사 뒤편 집결지에 먼저 가서 기다리는 것보다 너무 빨리 온 것만 같아 도봉산역으로 이동하였다. 7호선의 도봉산역(대합실)으로 갔었을 땐 용우 총장님이 대합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전철 내에서 항상 보는 모양새 이지만, 대부분의 산우들이 도봉산역에 도착하기까지 스마트 폰을 활용, 좋은 글을 보내기도 하고 서로들 ‘어디쯤 가고 있다’며 심심함을 면하고자 카톡 채팅놀이를 하고 있었다. 조 총장님이 보냈던 집결시간인 09시45분까지 15명의 산우가 모였다. 임용복 산우는 길 건너 만남의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단다. 정남인 재경 광주고 산악회원들이 집결하기로 되어있는 광륜사 뒤편으로 먼저 가 있어 오늘 참석인원은 17명인 것 같다.

 

광륜사 뒤편에 도착 하였을 때는 20회를 기준으로 하여 선배님들은 제법 많은 분들이 참석하셨으나 21회 이하의 후배님들은 참석인원이 그렇게 많지가 않았다. 우리들의 몇 년 전의 심정과 같은 현상일까? 나이 차이가 한참 많은 선배님들과 함께 산행하는 게 그리 달갑지가 않는 모양이다. 정남인 시산제를 지낼 장소를 안내하기 위해 이정표를 붙여 가며 용어천계곡(제6휴식처)으로 먼저 출발하였단다. 정남인 내년도부터 재경 광주고 산악회회장으로 선임되었다. 금년도엔 시산제 장소를 당초 집행부에서 사패산으로 정하였으나 많은 인원이 식사를 하기에는 좁아 용어촌계곡으로 장소를 변경했다고 한다.

 

26회 김영록 후배의 사회로 산악회 회장님(19회 조성갑)의 인사의 말씀, 시산제 선물(등산용 양말)과 제물(시루떡, 막걸리)을 각각 제공받아 배낭 속에 넣은 후 선배님들부터 먼저 시산제 장소로 출발하였다. 날씨가 많이 풀려 따뜻해서 인지 산행길의 좌측 계곡에선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약 10여분을 오르니 서울시에 하나 밖에 없는 서원, ‘도봉 10대 명소’중의 하나인 ‘도봉서원‘이 공사 중에 있다. 서울시(도봉구청)에서는 기념물 제28호인 ’도봉서원‘을 내년까지 복원사업을 하고 있단다.

 

도봉산을 올라가는 산행코스 옆에는 자그마한 암자와 사찰들이 많다. 산행로 우측엔 여승만이 기거하는 조용한‘도봉산 금강암’이 있고, 더 올라 좌측엔 약사여래불을 모신‘구봉사’가 보인다.‘구봉사’엔 무너져 가는 범종각과 대웅전, 그리고 정문에서 뒤편을 보면 큰 금빛 좌불상이 보인다. 사찰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소박하기만 하다.‘구봉사’위쪽에는 작은 폭포가 흐르고 있다. 그래서 이 곳 위 계곡의 육교명칭을‘폭포교’라 명하였나 보다.

 

계곡에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조금 더 오르니 ‘성불사’로 향하는 육교(삼거리교)가 있고 바로 앞에‘성도원(成道院)’ 이란 표석이 세워져 있다. 이름으로 봐 처음엔 무슨 기도원인가라고 생각했는데, 인터넷을 찾아보니, 아담한 절이라고 한다.

더위를 참지 못하고 우이암과 자운봉, 마당바위로 갈 길을 표시해 놓은 이정표의 옆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모두 겉옷을 벗어 배낭 속에 넣는다. 조 총장님은 캔디(‘달고나’)를 드시면 피로가 풀린다고 하며 하나씩 나눠 준다.

 

‘문사동(問師洞)’ 이란 안내문이 바로 곁에 있었다. 바위에 ‘문사동‘이라는 조선시대 각자가 초서로 새긴 것은 계곡을 멋지게 표현, 문사동의 의미는 ’스승을 모시고 시원한 계곡에서 스승이 강론을 하고 제자들이 뜻을 물어보는 계곡‘이란 뜻을 가지고 있단다. 조선시대에 그 당시 깊은 산중이었을 이곳에 왜 이러한 각자가 새겨져 있을까? ’군자(君子)의 도(道) 실현‘을 가장 중시했던 조선시대 학자들은 군자의 도를 가르쳐 주는 스승이 있다면, 그 스승이 아무리 깊은 계곡에 숨어 있어도 찾아 갔다고 한다.

 

이 글씨는 도봉계곡 내 도봉서원과 관련된 조선선비가 새겨 놓았을 것으로 추정되고, 그 선비는 굽이굽이 흐르는 도봉계곡을 따라 올라가며, 멀고 먼 학문의 길을 떠올렸을 것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멋과 철학을 우리는 ‘문사동‘ 이라는 각자에서 느낄 수 있었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도봉계곡의 바위에 초서로 새겨진 문사동 마애각자를 이해한 후 다시 땀을 훔치며 오른다. 우이암과 주봉, 용어천계곡으로 갈라진 이정표에 안내 표지가 붙여 있었다. 집행부에서는 광륜사 뒤편 집결지에서 목적지로 가는 길을 잃을 것을 방지하기 위해 A4용지에 안내표를 각 기수별로 나눠 주었다. 용어천계곡은 여름철에 많은 피서 등산객들을 피해서 이곳에 올라오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고 한다.

 

도봉산이 암반으로 형성된 산이지만 암벽에 소나무들이 그 삶을 유지하고 있었다. 멀리 앞쪽에 선인봉과 자운봉이 보인다. 용어촌계곡 입구에서 주봉 방향으로 약 20여분을 오르자 앞에 플랜카드들이 붙여져 있고, 확성기 소리도 들린다. 재경 광주고총산악회 뿐만 아니라 ‘열린토요산악회’외 2개의 산악회에서 시산제를 지내고 있었다. 제경 광주고 총산악회 시산제의 장소는 맨 위쪽으로 정남이가 선정하였다고 한다. 어쨌든 높은 곳이 좋은 곳이다.

 

시산제를 지내는 장소의 바로 옆에 우리 시산회의 휴식처를 정하고 인원파악을 해 보니 용우, 정한, 영훈 산우가 보이질 않는다. 한참 후에 상봉을 하게 되어 알게 되었지만, 좋은 날씨에 정신없이 오르다 보니 주봉 가까이에 까지 오르다가 일행을 놓쳤다는 것을 알게 되어 되돌아 시산제를 지내는 곳을 찾아오는 못난 추억을 남겼단다. 영훈 산우는 간혹 앞만 보고 걷다가 잘 지나치는 경향이 있다.

 

시산제의 자리를 만들고 조성갑 산악회장님의 맨 처음 제례와 선배, 후배님들의 순으로 산신령님께 산행의 예를 빌었고 우리 20회 시산회는 다음의 집행부로 선정되어 종헌례를 지내다 보니 맨 마지막으로 정남과 전작 시산회회장님, 조 총장님, 형채 전 회장님 그리고 몇몇 산우들이 대표하여 시산제 산행의 예를 표했다.

 

우리들이 만난 것은/ 우리들이 건강한 것은/ 우리들이 행복한 것은/ 바로 산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산을 통하여 우리는 삶의 진리를 배웠고/ 산을 통하여 우리는 겸손을 배웠으며/ 산을 통하여 우리는 봉사와 나눔의 정신을 배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산에 대한 감사함과 경외심, 공경심을 표하고/ 산 사랑의 예를 올리겠습니다/ 안전하고 행복한 산행을 하게 해 달라고/ 산신령님께 정성을 다해 빌었습니다...

 

준비해 온 제물과 음식(홍어, 눌린 돼지머리, 묵은김치, 막걸리, 떡, 과일 등)을 맛있게 음복하고, 동반시를 낭송하는 시간이다. 나의 순서이기에 어제 정남으로부터 메일로 전송을 받아 몇 번 낭송 연습을 하였다. 하지만, 산우들은 오늘 시산제 음식 준비에 수고를 많이 하신 32회 이오배 후배님의 부인께 낭송을 부탁 하잔다. 처음에는 사양을 지극히 원했으나 마지못해 시 낭송을 하신다.

 

역시 시 낭송은 목소리가 아름다운 것이 좋을 것 같다. 지난번 덕유산 산행 때도 공정거래위원회 ‘공정산악회’의 총장님으로 수고하시는 성복용 조사관님께 동반시 낭송을 부탁하였었는데, 동반시의 낭송은 여자들의 목소리가 듣기가 너무나 좋았고, 시적인 분위기도 또한 한층 감흥이 있어서 좋았다.

 

달은 어둠 속에 집을 짓는다 / 임영석

 

까치가 은행나무 가지 사이를 파고 집을 짓는다

그 사이 달빛도 어둠을 파서 집을 짓는다

처음에는 손톱 같더니, 그 손톱 같은 사랑을 키우더니

치악산 소나무 위에 걸어놓는다

나, 하루 일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서 바라보면

둥근 달, 치악산 솔바람소리를 껴안고

일 년 열두 달 허물고 짓고 허물고 짓다가

행구동 저수지 물속에 앉아 참선(參禪)을 한다

저수지 물고기 함께 참선을 하다가 답답함을 이기지 못해

물 밖으로 뛰어 오르며 파문을 일으킨다

그 파문 속에서도 달은 너울너울 춤을 춘다

치악산 그림자 저수지 물속에 들어와 더위를 식히며

어둠 속에 집을 짓는 달을 내려다 본다

몇 년을 내려보았는지 치악산 눈빛은 능선 따라서 길이 나고

머릿결 같은 앉은뱅이 나무 구름 한 점 잡아두지 못하고

바위 곁에 앉아 어둠 속에 집을 짓는 달만 바라본다

나, 나는 바라만 봐도 현기증 난다

저수지 물속 치악산은 거꾸로 매달려 나무를 키우고

달은 그 치악산 머릿결 같은 나무에 달빛을 엮어 집을 짓는다

 

이 시는 임영석 시인의 ‘어둠은 묶어야 별이 뜬다(한국문학도서관, 2006. 5.5)’라는 시집의 제3부(‘봄비는 푸른 희망을 잡아당긴다’)에 실려 있다. 시집의 시에는 곳곳에 깊은 어둠이 배어있다. 이 어둠은 삶 속에서 겪게 되는 많은 고통과 상처로 세월이 누르는 무게라 할 수 있다. 이 시집에서 이러한 어둠은 빛의 세계에 도달하기 위해 거쳐야만 하는 과정이며 빛을 존재하게 하는 전제조건이 된다. 삶은 스스로의 진정성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시적 언어의 표현 기법이 두루 들어간 시 이었고, 시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면 배울 것이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시를 추천한 정남이 산우는 오랫동안 가슴에 담아두었던 시’ 라고 한다. 함축과 모호성이 들어가고 극적인 은유와 상징, 의인(擬人)도 들어간 시이다. 이 시의 크라이맥스는 '치악산 그림자 저수지 물속에 들어와 더위를 식히며 어둠 속에 집을 짓는 달을 내려다 본다' 의 부분이다.

 

7년을 송사에 휘말려 지내온 시간들이 정남 산우에겐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단다. 극적으로 합의는 했다고 하지만, 결과는 이익은 제3자가 가져가고 양쪽 모두가 패자란다. 순간의 욱한 감정이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많지만, 대신 인생 공부를 많이 했으므로 큰 손해만은 아니란다. 이제는 다 털고 시 공부를 열심히 하시게나. 또한 산 지킴이나 숲 해설가 등 좋은 취미생활도 겸하시어 건강한 삶을 사시길 바라네.

 

단체 증명사진 촬영은 26회 김영록 후배님에게 부탁하였다. 매년 재경 광주고 산악회의 행사 때마다 수고를 아끼지 않고 있어 개인적으로는 고마움을 전했다. 카카오스토리에 가끔 산행사진을 올리고 있는 김영록 후배님께 따뜻한 격려의 말도 전하였다.

 

산행의 즐거움을 여러 산우들과 함께 따사로운 봄볕을 느끼며 하산할 시간이다. 산우들은 시산제 때에 사용했던 쓰레기 봉지들을 자진해서 들고 내려간다. 얼마나 착실하고 모범적인 산우들인가. 도봉 주능선과 보문능선, 또한 용어촌계곡에서 흘러 합치는 도봉계곡의 물은 깨끗하고 가슴 속 깊이 시원하기 그지없다.

 

도봉탐방지원센터를 지나서 부터는 등산객들이 시골의 5일장의 시장길처럼 복잡하기만 하다. 뒤풀이 장소를 계곡수가 보이는 한적한 곳을 잡으려다 말고 메뉴가 다양한 ‘도들샘’이란 식당으로 들어섰다. 손님은 팀당 2~4인으로 몇 팀밖에 없었으나 조금 후 광고 22회 후배님들이 사모님들과 함께 곁의 좌석을 메운다. 금년 한 해 동안 우리 시산회와 재경 광주고 산악회의 산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의 건강과 안산, 즐산을 위해 수차례 건배를 하였고, 정남 왕회장의 뜻 깊은 협조에 축하를 겸하였다. 특히 근호 산우의 아들 결혼식에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근호 산우가 뒤풀이 비용을 치렀다. 고마운 일이다. 경조사에 참석하는 것을 보아도 우리의 모임은 진정 알차고 보람이 크다는 것을 부인할 산우는 없다.

 

지난 2월27일(수), 한민족독도사관에서 주최한 대한민국 독도음악회가 세종문화회관(대극장)에서 있었다. 독도사랑협의회 회장인 시인 박정순(호 난설) 님께서 표를 구해 드릴 테니 우리 시산회 회원 중 뜻이 있는 분들이 함께 감상하실 것을 원했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나를 포함하여 두 산우밖에 참석하지 못하여 결국은 귀중한 표가 사장되었기에 ‘난설’님께는 결례를 저지르고 말았었다.

 

금년의 겨울은 춥고 외롭기만 하다. 하루빨리 따뜻하고 꽃 피는 봄이 왔으면 좋겠다. 다음 산행은 당초 정선의 소금강에서 설악산(울산바위, 권금산성)으로 변경하였나 보다. 장거리 산행의 기금 충당과 원활한 집행을 위하여 조 총장님께서는 자동차보험 등의 보험가입 협조를 부탁하신다. 지금까진 산우들의 협조가 전반적으로 잘 되어 왔으나 우리가 벌써 노년에 들어서인지, 개인적인 사정 때문인지는 몰라도 협조가 잘 안 되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아무쪼록 산우들의 건강과 협조를 기대하며, 재미있고 즐거운 산행이 지속되길 바랍니다. 시산회 파이팅!

2013년 3월 13일 김종화 씀.

 

 

3.산행지

이번 산행지는 정선 소금강에서 설악산으로 변경했다. 형채 산우가 작년에 정선 소금강을 가겠다고 계획을 세웠는데 내가 소금강의 끝인 몰운대까지 차가 가니 걸을 수 없으므로 다른 곳으로 가자고 해서 변경한 적이 있다. 하여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가 이번에는 가려고 했는데 주례를 서게 되어 가지 못한다고 한다. 조 총장도 올라가는 시간도 있어야 한다고 반대를 한다. 동해로 가는 길에 기사문리항에서 회를 먹고 오자는 계획도 있어 설악산 흔들바위와 울산암을 오르고 케이블카를 타고 권금산성을 올라가서 도보로 내려오기로 했다.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흔들바ㅏ위까지 오른 적이 있다. 그 마음으로 다시 올르자. 내 마음으로는 한계령으로 올라 서북주릉까지 가서 설악산을 한눈에 보고 한계령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선택하고 싶다. 가는 차 안에서 다시 상의하자. 형채 산우가 주례사가 끝나고 시를 한 수 낭송하고 싶은데 추천해달라고 하여 김춘수 시인의 '꽃'을 추천했다. 두 편을 추천해달라고 했지만 결혼식에 어울리는 시는 단 한 편, 이 시라는 믿음에 한 점 의심도 없다. 순단 선생께서는 시 낭송을 반대한다고 하지만 시산회원답다. 결혼식에서 주례가 시 낭송을 하는 것은 아마 대한민국 주례사에 없는 일이고 그는 선각자임에 틀림없다.

 

 

4.동반시

도봉산 산행의 기자였던 김종화 산우가 추천한 시다. 도종환 시인의 '산을 오르며'와 함께 추천을 했으나 이미 동반했던 시이고 개인적으로 이 시가 어울리는 시라 생각하여 건의를 했더니 본인도 이 시가 좋다고 한다. 시인의 설악에 대한 숙명을 적으면서 시평을 대신한다. 그는 진정한 '설악인'이었다. 그는 비록 갔지만은 혼백은 설악에 묻혀 있을 것이다. 설악을 오르는 사람들을 지켜주고 있을 것이다.

- 진교준(秦敎俊 ; 1941년생 ~ 2003년 11월 17일 오전 5시30분 교통사고로 운명) -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격전지이기도 했던 설악산에는 한때 해골이 즐비했는데, 전후 이곳을 대담하게도 고교생의 신분으로 무단결석을 하며 찾은 이가 있었다. 바로 서울고교 2년생이었던 진교준 시인이다. 그리고 그 체험을 ‘경희백일장’에서 ‘설악산 얘기’라는 시로 써냈고, 당시 국어 교사로 재직하던 조병화 시인의 눈에 들어 ‘장원’으로 뽑혔다. “나는야 설, 설악, 설악산이 좋더라”로 시작되는 진교준 시인의 ‘설악산 얘기’는 오늘날까지 40-50대 산꾼들이 가장 많이 알고 있으며, 술자리에서 노래 대신으로 ‘낭송’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백담사 내려가는 길에 해골이 있다고 했다/해골을 줏어다가 술잔을 만들자고 했다/해골에 술을 부어 마시던 바이론처럼’…이라는 대담한 시구도 보인다. 이 시를 썼던 진교준은 문단진입에는 등한하기만 했는데, ‘재건운동 시대’의 척박 속에서는 ‘슈르 레알’의 문학공간을 마련할 방도가 없었던 것이었을까. 방정환 윤석중 등과 함께 ‘색동회’를 이끌었던 진장섭이 부친이었고, 해외 특파원으로 활동하던 언론인 진철수가 그의 형이었다.

 

2003년 11월 17일(월) 오전 5시30분 교통사고로 운명 -

 

그는 떠나갔을지라도 그의 설악산 이야기는 ‘전설’로 여전히 이 시대 사람들 속에 머무르고 있다

 

설악산 얘기/진교준(김종화 추천)

 

나는 산이 좋더라
파란 하늘을 통째로 호흡하는나는 산이 좋더라
멀리 동해가 보이는
설 . 설악 . 설악산이 좋더라

 

산에는 물, 나무, 돌 . . .
아무런 誤解도
法律도 없어
네 발로 뛸 수도 있는
원상 그대로의 自由가 있다.
고래 고래 고함을 쳤다. 나는
고래 고래 고함을 치러
여기까지 온 건지도 모른다.

 

산에는
파아란 하늘과 사이에
아무런 障碍도 없고
멀리 東海가 바라 뵈는 곳
산과 하늘이 融合하는 틈에 끼어 서면
無限大처럼 가을 하늘처럼
마구 부풀어 질 수도 있는 것을 . . .
정말 160cm라는 건 아무 것도 아닐 수도 있는 것을 . . .

 

도토리를 까 먹으며
설악산 오솔길을 다리쉼 하느라면
내게 한껏 남는 건
머루 다래를 싫건 먹고픈
素朴한 慾望일 수도 있는 것을 . . .
自由를 꼭 깨물고
차라리 잠 들어 버리고 싶은가

 

깨어진 기왓장처럼
五世庵 傳說이 흩어진 곳에
금방 어둠이 내리면
종이 뭉치로 문구멍을 틀어 막은
조그만 움막에는
뜬 숯이 뻐얼건 탄환통을 둘러 앉아
갈가지가 멧돼지를 쫓아 간다는 (註· 갈가지: 강원도 방언으로 범 새끼)
포수의 이야기가 익어간다
이런 밤엔
칡 감자라도 구어 먹었으면 더욱 좋을 것을

 

百潭寺 내려가는 길에 骸骨이 있다고 했다
해골을 줏어다가 술잔을 만들자고 했다
해골에 술을 부어 마시던 빠이론이
한 개의 해골이 되어버린 것 처럼
哲學을 부어서 마시자고 했다
해· 골· 에· 다· 가 . . . .

 

나는 산이 좋더라
永遠한 休息처럼 말이 없는

나는 산이 좋더라
꿈을 꾸는 듯
멀리 동해가 보이는
설, 설악, 설악산이 좋더라

 

2013년 3월 20일

 

詩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도움쇠 김정남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