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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북한산 진달래능선(詩山會 제207회 산행)

북한산 진달래능선(詩山會 제207회 산행)

 

산 : 북한산

 

코스 : 아카데미하우스-대동문-진달래능선(혹은 소귀천계곡)

 

소요시간 : 3시간

 

일시 : 2013년 4월 14일(일) 10시

 

모이는 곳 : 전철 4호선 수유역 1번 출구

 

준비물 : 막걸리, 안주, 과일, 사진기(하산 후 한정식으로 뒤풀이 예정)

 

연락 : 조문형(01-259-2915)

 

블로그 : 사진 blog.daum.net/sisan20

 

산행기 blog.daum.net/yc012175

 

카페 cafe.daum.net/K-20

 

 

1.시를 통한 시론

 

 

봄밤 - 김수영(1921~1968)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 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靈感)이여


김수영은 거대하고 암울한 현실을 향해 자유의지를 쏘아 올린 ‘퓨리턴의 초상’과 같은 시인이다. 그의 가장 큰 매력은 현실의 후진성과 자신의 육체와 정신에 깃든 반근대성에 대립각을 세우고 불화의 길을 걸은 데 있다. 늘 자신을 시대의 첨단에 가져다 놓으려 한 그가 봄밤 애타는 마음에 결코 서둘지 말라고 한다. 개가 짖고, 종이 울리고, 기적 소리가 슬퍼도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고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에 서둘지 말라고 한다. 절제하라고, 절제는 나의 귀여운 아들이고 영감이라고. 반세기도 더 전에 쓰인 시를 읽는 봄밤, 시인의 예지력과 변하지 않는 시대의 서툶을 생각한다.

(곽효환·시인)

 

김춘수 시인의 '꽃'과 김수영 시인의 '풀', 이형기 시인의 '낙화'는 나의 애송시 중 하나다. 김수영의 일생을 더듬어보면 지병과 자조, 반항, 좌절로 이루어진 것을 알수 있다. 의용군으로 전선에 끌려간 그는 거제포로수용소에서 절망의 끝을 보았고, 열하게 살았던 그는 48세의 나이로 타계했을 때를 넘어서 그의 시적, 문학사적 가치가 극대화되고 아직도 시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그의 시는 가장 많이 배우고 싶은 시이다. 시인이 더 살았더라면 얼마나 더 좋은 시를 남겼을 것인가를 생각해본다. 나는 약 3년간의 도서관 생활을 시작하면서, 처음에는 시 공부를 했다. 공부가 부족했던 탓인지 내겐 시인의 자질이 없음을 알고 아직까지 읽지 못 했던 소설을 읽었고 역사, 행복, 철학, 천문학, 경영, 종교, 삶과 죽음, 소유와 무소유를 공부해왔다. 어떤 때는 하루에 한 권의 책을 읽었고, 일주일에 두 권의 책을 읽기도 했다. 소송에 메일 때는 한 달에 한 권의 책을 읽을 때도 있었다. 이제 소송도 끝나고 주변으로부터 자유러워지니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내가 절박하여 막다른 길에 이르렀다면 뭔가를 했어야 할 시간이었는데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지 않은가 보다. 그런다고 일부러 막다른 길로 들어설 수도 없는 일이니 조금은 막막하다. 소유도 즐기지 못하면 무소유와 같다는 것을 알고 한 갑자를 살았으니 삶의 의미도 조금은 알 것 같고 죽으면 육신과 영혼은 소멸하지만 내가 남긴 자취는 남는다는 것을 알게 되는 나이다. 이순(耳順)의 나이에 이르니 순명(順命)도 알게 되더라. 우리 나이에 평균 여명은 30년이라는데 긴 30년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도봉별곡>

 

 

2.산행기

설악산 주전골을 가다 시산회 206회 산행/나양주

코스 : 용소폭포-금강문-선녀탕-성국사-오색약수

참석 : 이원무, 정해황, 정한, 임삼환, 조문형, 전작, 이경식, 고갑무, 염재홍, 김정남, 나양주, 김종화(이상 12인의 산사나이)

 

지난 주말 완연한 봄 날씨를 보여 유난히도 길었던 겨울 추위가 드디어 물러가는가 싶었는데 봄을 시샘이라도 하는 듯 춘분날에 기온이 급강하 하더니 요 며칠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린다. 다행히 주말엔 날씨가 풀린다는 예보가 있어서 좀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설까도 했지만 얇은 옷을 입고 추위에 고생을 하느니 조금 두꺼운 옷을 입고 땀을 좀 흘리는 것이 낫겠지 싶어 겨울 등산복을 입고 산행에 나서기로 하였다.

 

사당역에서 아침 7시 출발하는 버스에 탑승을 해야 해서 미역국에 밥을 말아 아침을 간단히 해결하고 아이젠과 장갑을 배낭에 챙겨 넣고 서둘러 집을 나선다. 춘분이 지나서인지 이른 시간인데도 밖은 훤하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과 상쾌한 아침공기에 오늘도 즐거운 산행이 되겠다는 생각에 설레는 마음으로 사당행 버스에 몸을 싣는다. 버스는 남태령 고개를 넘고 늦지 않게 사당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당역에 도착해 1번 출구를 찾아 가는데 조문형 총무가 전화로 어디냐 물으면서 버스 대기 중이니 어서 오라 재촉이다. 참 부지런하고 책임감이 대단한 친구다. 사당역 1번 출구에 이르러 두리번거리는데 노란 소형버스가 눈에 들어온다. 버스에 오르니 김정남, 이경식, 임삼환 친구가 이미 자리하고 있고 곧이어 정해황 친구도 도착하여 버스는 잠실역을 향해 출발한다.

 

잠실역으로 가는 차안에서 오늘 산행지를 바꾸자는 의견이 제기된다. 당초 가기로 한 흔들바위와 권금성은 문화재관람료와 케이블카 탑승요금 등의 부담도 있으니 한계령 쪽으로 가서 용소폭포, 주전골, 흘림골을 둘러보고 오색약수로 내려가는 코스로 변경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김정남 친구의 제안에 우리 모두 흔쾌히 동의하고 잠실역에서 승차하는 친구들의 의견을 물어 최종 확정하기로 한다.

 

잠실역 1번 출구에 이르자 고갑무, 김종화, 염재홍, 이원무, 정한 친구등 반가운 얼굴들이 버스에 오르고 한참 뒤에 전작 회장을 마지막으로 오늘 산행에 참석한 12명의 친구들을 태운 버스는 설악산으로 향한다.

 

잠실역에서 탑승한 친구들도 오늘 산행지 변경에 동의하였다. 산행지가 어딘들 대수인가 오늘 하루 온갖 시름 접어두고 좋은 친구들과 산에 가서 맑은 공기 마시고 계절 바뀌는 모습들 온몸으로 느끼면서 즐겁게 하루를 보내면 되는 것 아니겠나.

 

버스는 올림픽대로를 거쳐 서울춘천고속도로로 접어들며 설악산을 향해 달린다. 차창 밖 풍경을 바라보니 아직 봄을 맞이하긴 이른 듯 산기슭엔 곳곳에 하얀 눈이 남아 있어 늦은 겨울의 마지막 모습인 것도 같고 이른 봄의 풍경인 것도 같다.

 

김정남 친구 큰딸이 결혼을 염두에 둔 남자친구를 아빠 회갑기념 가족모임에 데리고 왔던 모양이다. 애지중지 키운 딸을 주기에는 여러 조건들이 탐탁지 않아 그 친구에게 20개 항목의 질문지를 주어 답변내용을 보고 허락할지 말지를 정한다 했다고 한다. 예쁘게 키운 딸 남 주려니 괜스레 심술(?)이 났나 보다. 친구들 간 찬반이 오가고 딸 가진 친구들은 참고하겠다며 이메일로 질문내용을 보내달라고 한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웃고 떠드는 사이 배들이 출출했던지 ‘화양동휴게소’에 들러 요기도 할 겸 잠시 쉬었다 가자고 한다. 짬뽕, 유부우동, 짜장면 등 각자 먹고 싶은 음식들을 주문하는데 아침을 챙겨먹고 나온 나도 덩달아 유부우동을 시켜 먹는다. 배가 고픈 상태가 아니어선지 맛은 그저 그랬다.

 

버스는 44번 국도를 따라 한계령(1004m)을 넘어 해발 550m 즈음 중턱에 위치한 ‘용소폭포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전골 자연관찰로 현황’이란 안내판을 보니 이곳에서 도착지인 오색약수까지는 3.2km정도 되고, 소요시간은 1시간으로 산행코스가 짧고 비교적 평탄하여 산행이라기 보다는 산의 풍광을 즐기는 트레킹코스라 할 수 있어 여유를 가지고 가도 될 듯싶었다.

 

주전골은 용소폭포와 오색약수 사이의 골짜기로 옛날에 위조 엽전을 만들던 무리들이 숨어살던 곳이라서 ‘주전(鑄錢)골’이라는 지명이 붙었다고 한다. 이 계곡은 설악산 주봉인 대청봉(1708m)의 남쪽 골짜기를 이루며 동시에 점봉산(1424m)의 북쪽 골짜기를 이루고 있어 골산(骨山)인 설악산의 섬세한 아름다움과 육산(肉山)인 점봉산의 웅장함을 모두 갖춘 곳이다.

 

용소폭포로 가는 진입로는 아직도 눈으로 덮여 있고 용소폭포탐방지원센터직원의 권유도 있어 우리는 모두 아이젠을 착용하고 산행에 나섰다. 조금 들어서니 덮인 눈이 녹아 맨살을 드러낸 돌멩이들로 걷기가 불편해 모두 아이젠은 벗고 걸었다. 주차장 들머리에서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양지바른 골짜기가 나타나자 누군가 막걸리 한잔 하고 가자면서 자리를 잡고 앉는다.

 

모두들 준비해온 먹을거리들을 내어 놓는다. 산행에서 늘 빠지지 않는 조총무가 준비한 홍어무침을 비롯해 문어, 김밥, 유부초밥, 김부각, 유과, 멸치, 떡 등 친구들이 정성껏 준비해온 음식을 안주삼아 막걸리 한잔씩을 돌리고 오늘 작가인 필자더러 동반시를 낭독하라 한다. 도봉산(205회) 산행의 작가였던 김종화 친구가 추천한 시다.

 

설악산 얘기 / 진교준

 

나는 산이 좋더라

파란 하늘을 통째로 호흡하는 나는 산이 좋더라

멀리 동해가 보이는 설 . 설악 . 설악산이 좋더라.

 

산에는 물, 나무, 돌 . . .

아무런 誤解도 法律도 없어 네 발로 뛸 수도 있는 원상 그대로의 自由가 있다.

고래 고래 고함을 쳤다.

나는 고래 고래 고함을 치러 여기까지 온 건지도 모른다.

 

산에는 파아란 하늘과 사이에 아무런 障碍도 없고

멀리 東海가 바라 뵈는 곳

산과 하늘이 融合하는 틈에 끼어 서면

無限大처럼 가을 하늘처럼 마구 부풀어 질 수도 있는 것을 . . .

정말 160cm라는 건 아무 것도 아닐 수도 있는 것을 . . .

도토리를 까 먹으며 설악산 오솔길을 다리쉼 하느라면

내게 한껏 남는 건 머루 다래를 싫건 먹고픈 素朴한 慾望일 수도 있는 것을 . . .

自由를 꼭 깨물고 차라리 잠 들어 버리고 싶은가.

깨어진 기왓장처럼 五世庵 傳說이 흩어진 곳에

금방 어둠이 내리면

종이 뭉치로 문구멍을 틀어 막은 조그만 움막에는

뜬 숯이 뻐얼건 탄환통을 둘러 앉아 갈가지가 멧돼지를 쫓아 간다는 (註· 갈가지: 강원도 방언으로 범 새끼)

포수의 이야기가 익어간다

이런 밤엔 칡 감자라도 구어 먹었으면 더욱 좋을 것을.

 

百潭寺 내려가는 길에 骸骨이 있다고 했다

해골을 줏어다가 술잔을 만들자고 했다

해골에 술을 부어 마시던 빠이론이 한 개의 해골이 되어버린 것 처럼 哲學을 부어서 마시자고 했다

해· 골· 에· 다· 가 . . . .

 

나는 산이 좋더라 永遠한 休息처럼 말이 없는

나는 산이 좋더라 꿈을 꾸는 듯 멀리 동해가 보이는 설, 설악, 설악산이 좋더라.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격전지이기도 했던 설악산에는 한때 해골이 즐비했는데, 전후 이곳을 고교생의 신분으로 찾은 이가 있었다. 바로 서울고교 2년생이었던 진교준 시인이다. 시인은 그 체험을 ‘경희백일장’에서 ‘설악산 얘기’라는 시로 써냈고, 당시 국어 교사로 재직하던 조병화 시인의 눈에 들어 장원으로 뽑혔다. 시인의 ‘설악산 얘기’는 오늘날까지 40-50대 산꾼들이 가장 많이 알고 있으며, 술자리에서 노래 대신으로 낭송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외대 불문과를 졸업한 그는 우이동이 종점인 6번 시내버스의 운전기사로 일하던 중에 2003년 11월 교통사고로 운명했다. 그는 떠나갔을지라도 그의 설악산 이야기는 전설로 여전히 이 시대 사람들 속에 머무르고 있다.

 

우리는 준비한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다시 산행(트레킹)에 나선다. 조금 내려 가다보니 폭포가 보이는데 그게 ‘용소폭포’라고 한다. 갈수기여서 수량은 얼마 되지 않는다. 안내표지판에 “옛날에 이 소(沼)에서 천년을 살던 이무기 두 마리가 승천하려 했으나 암놈 이무기는 준비가 안 되어 승천할 시기를 놓쳤는데, 용이 되려다 못된 암놈 이무기는 바위와 폭포가 되었다”고 전한다.

 

주전골은 거의 산책로 수준이어서 골짜기의 풍광을 즐기기에는 더없이 좋은 코스였다. 골짜기는 그야말로 청정계곡으로 이곳의 햇살에는 이미 봄이 실려 있어 포근하다. 지난겨울 내내 눈과 얼음으로 덮였을 계곡에는 맑은 물이 졸졸 흐르고, 비취색의 계곡물은 우리 심성까지도 맑게 정화를 해준다.

 

조금 더 내려가니 흘림골로 오르는 갈림길이 나온다. 흘림골은 산이 높고 계곡이 깊어 언제나 안개가 끼고 날씨가 흐린 것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오늘은 날씨가 맑아 조망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이다. 이 골짜기는 점봉산의 한 능선으로 여심폭포의 신비로움과 신선이 올랐다는 등선대, 등선폭포, 십이폭포 등 남설악 최고의 절경을 간직한 구간으로 폭포와 기암괴석, 소(沼) 등의 비경으로 이루어진 곳이다.

 

주전골은 골짜기를 가로 지르는 철제다리가 군데군데 여럿 놓여 있었다. 다리 중간에서 걸음을 멈추고 흘림골 계곡 위와 아래를 들러 본다. 하늘을 찌를 듯한 기암괴석의 온갖 형상에 매료되고 눈을 어디에 두어도 동양화 열두 폭, 아니 끝없이 펼쳐 놓은 듯 아름답기 그지없다. 산의 아름다움과 신비함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필자가 수년 전에 가보았던 중국 최고의 절경이라 알려진 ‘장가계’도 무색할 정도의 풍광이다. 뒤돌아 볼 겨를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네 인생길에서도 이렇듯 잠시 쉬며 앞뒤 살펴볼 수 있는 계곡 하나쯤은 남겨 두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오색을 기점으로 이곳부터 주전골의 비경이 펼쳐진다 해서 붙여진 금강문, 꼭대기에 한사람만 겨우 앉을 수 있다 해서 붙여진 독주암 등을 뒤로하고 주전골, 흘림골 골짜기의 수려한 풍광에 취해 넋을 잃고 내려가는 사이 어느새 오색약수에 도착한다.

 

약수교 위쪽 커다란 너럭바위 중간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물을 뜨는 모습이 보인다. 오색약수터다. 입구에 서있는 안내표지판을 보니 16세기 무렵 성국사의 한 스님이 발견했고, ‘오색약수’라는 이름은 성국사 뒤뜰에서 자라던 오색화(五色花)로 인해 붙여진 것이라 한다. 가서 보니 아주 적은양이 암반에서 솟아오르는데 먹어보니 딱 ‘녹물사이다’ 그 맛이다. 세 번을 마셔야 좋다고 하는데 물이 조금밖에 나오지 않아 한번만 떠 마시고는 망월사 입구를 돌아 주차장으로 하산한다.

우리는 오색에 주차해 있던 버스에 올라 뒤풀이 장소인 기사문항에 소재한 ‘경기활어직판장’으로 향한다. 설악산 방면 산행 후에는 뒤풀이 장소로 들리곤 한다는 식당이다. 식당으로 들어서 앉으니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먹음직스러운 생선회가 상에 올려진다. 청어, 광어, 해뜨기, 밀치, 도치 등의 생선회와 안주들이 입을 즐겁게 한다. 요즘이 제철이라는 도치는 이날 처음 먹어 봤는데 오돌오돌한 식감이 아구 껍질과 아주 흡사했다.

 

이원무 친구가 준비해온 21살 발렌타인은 신선한 자연산 회 안주에 금새 동이 났다. 맛있게 배를 채운 우리는 기사문항 방파제로 향한다. 오후 들어 하늘은 잔뜩 흐려있고 바닷바람이 제법 쌀쌀하다. 동해의 넘실대는 푸른 물결들이 방파제에 부딪쳐 물보라를 일으키며 흩어진다. 멀리서 서핑보드로 파도타기를 즐기는 한 무리가 보인다. 서핑보드를 즐기는 동호회 모임인 거 같은데 누군가 추운 날씨에 미친 짓들 한다고 핀잔이다. 나도 그 말에 공감이 가는걸 보면 우리가 나이를 먹긴 먹었나 보다.

 

어느새 오후 3시 반, 우리는 귀경을 위해 버스에 오른다. 돌아오는 차내에서는 입담 좋은 친구들의 재미있는 이야기들로 파안대소가 이어진다. 특히 조문형 총무가 이야기 한 가발에 얽힌 애환(?)에는 모두들 배꼽을 잡는다.

서울에 들어와서 정한이 남도사계한정식집 '하얀 물결'에서 입회식을 한다고 한다. 맛깔스러운 홍어 삼합을 포함하여 기억하기 어려울 만큼 진수성찬이 동동주를 곁들여 나와 실컷 마시고 맛나게 먹었다. 정한이! 부담이 컷겠지만 우리는 즐거웠네.

 

오늘도 산우들 덕분에 즐거운 산행이었다.

2013년 3월 나양주

 

3.산행지

이번 산행은 계획대로 진달래 꽃맞이 산행이지만 4월이 반이나 지나갔지만 우리의 산하는 아직도 봄이 이르다. 매화, 산수유, 남쪽의 벚꽃, 목련과 개나리꽃은 피었지만 북한산 진달래는 양지 바른 기슭만 꽃이 피어 있단다. 이때가 되면 어김없이 진달래꽃이 만발했지만 봄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 하여 아카데미하우스로 올라가 대동문에서 막걸리를 간단하게 한잔하고 진달래능선에 진달래꽃이 피지 않았다면 소귀천계곡으로 내려오자. 진달래능선은 원래 지루한 코스이니 진달래꽃이 만발하지 않았다면 소귀천계곡으로 하산하는 것이 낫다. 산행이 부족하면 도선사까지 가도 되며, 마음이 시킨다면 백운대는 못 올라가랴! 봄이 오는 길목에서 모두 반갑게 모여 하루를 즐겁게 이야기하자.

 

 

4.동반시

나양주 산우가 추천한 봄의 시다. 날씨가 봄 같다가 겨울이 다시 온 듯, 외투를 다시 꺼내 입는다.

T. S. 엘리어트가 '4월은 잔인한 달'이라 했는데 시의 원전은 다음과 같다.

 

April is the Cruellest Month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fromThe Waste Land 황무지에서

 

April is the cruellest month, breeding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Memory and desire, stirring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Dull roots with spring rain.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Winter kept us warm, covering 겨울은 따뜻했었다.

Earth in forgetful snow, feeding 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어주고

A little life with dried tubers. 가냘픈 목숨을 마른 구근으로 먹여 살려주었다.

 

'잔인한 4월'이 가면 산에는 철쭉꽃이 피고 들에는 유채꽃, 정원에는 라일락꽃이 피는 5월이 온다. 5월에는 철쭉꽃이 피는 지리산 바래봉이나 산철쭉이 만발하는 소백산이 가까워진다. 조병화 시인의 사월을 읽으면서 항상 베레모를 쓰고 파이프를 입에 물고 라일락꽃이 만발한 도서관 옆 교수회관으로 올라가는 시인의 모습을 떠올린다. 아, 같은 모양의 베레모를 쓰고 다니는 조그만한 체구의 황순원 교수의 모습도 떠오른다.

 

사월/조병화(나양주 추천)

 

푸른 바다에서 불어오는

따스한 바람을 타고

어디선지 길게 들려오는 먼 기적소리

 

언덕을 두른 긴 담 아래선

아늑히 햇빛을 쪼이며

파릇파릇, 잡초들의 싹이

뾰죽뾰죽, 솟아오른다

 

나라를 지키다 떠난 사람들은

아직 어두운 사당 안에서 말이 없고

살아있는 사람들에게만 사당 밖에서

다시 돌아온 봄에 풀려

옛날을 잊는다

 

아, 봄은 이렇게 오는 건가

 

세월은 만고무언,

열리는 먼 하늘에 흰구름 한 점

오늘도 띄워놓고

 

세상은 불안한 희로애락,

봄이 상륙하는 바닷가에서

무거운 겨울을 벗는다.

 

2013년 4월 11일 신당도서관에서

 

詩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도움쇠 김정남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