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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청계산으로 모십니다(詩山會 제208회 산행)

청계산으로 모십니다(詩山會 제208회 산행)

산 : 청계산

코스 : 청계산역-원터골-정상(하산은 정상에서 결정)

소요시간 : 3시간

일시 : 2013년 4월 27일(토) 10시

만나는 곳 : 신분당선 청계산역

준비물 : 막걸리, 안주, 과일, 카메라

연락 : 조문형(011-259-2915)

사진 : blog.daum.net/sisan20

산행기 : blog.daum.net/yc012175

카페 : cafe.daum.net/K-20

 

 

 

1.시를 통한 詩論

 

고비의 고비  - 최승호(1954~ )

 

고비에서는 고비를 넘어야 한다

 

뼈를 넘고 돌을 넘고 모래를 넘고

고개 드는 두려움을 넘어야 한다

고비에서는 고요를 넘어야 한다

땅의 고요 하늘의 고요 지평선의 고요를 넘고

텅 빈 말대가리가 내뿜는 고요를 넘어야 한다

고비에는 해골이 많다

그것은 방황하던 업덩어리들의 잔해

고비에서는 없는 길을 넘어야 하고

있는 길을 의심해야 한다

사막에서 펼치는 지도란

때로 모래가 흐르는 텅 빈 종이에 불과하다

길을 잃었다는 것

그것은 지금 고비 한복판에 들어와 있다는 것이다.


몽골어로 풀이 자라지 않는 거친 땅이란 뜻의 고비. 고비사막을 건너는 법은 고비를 잘 넘는 데 있다. 고비사막에서 가장 힘든 것은 곳곳에 널려 있는 뼈와 해골, 돌과 모래뿐인 척박한 땅이 아니다. 동서로 1천6백 킬로미터 남북으로 8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하늘과 땅과 자연이 펼쳐놓은 황량한 고요, 고비에서 방황하고 주저앉은 업덩어리들의 잔해, 그리고 고개 드는 두려움의 고비를 넘어야 한다. 그곳에서는 있는 길을 의심하고 없는 길을 만들고 넘어야 한다. 용기와 도전정신이,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 지금껏 걸어온 길은, 과거는 한낱 신기루에 불과하다. 한바탕 모래바람이 쓸고 지나간 뒤 사막에서 펼치는 과거라는 지도는 텅 빈 종이조각처럼 아무런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삶에 고비를 맞았다면, 길을 잃었다면 고비의 한복판에서 고비를 넘어야 한다. 여러 해 전 제법 긴 시간 동안 고비사막에 머물렀던 최승호 시인이 이렇게 고비의 고비를 넘었을 것이다. (곽효환·시인)

 

삶에 고비가 없을 수 없다. 삶이라는 여정에 평탄한 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평탄하다가 내리막길이 있고 이내 오르막길이 나타난다. 길게 보면 평탄했을 것 같은 길이 순간 고비가 왔지만 이겨내고, 기억이 흐려져 현재만 생각하게 되니 평탄했던 것 같다. 산행을 하다보면 먼 곳의 능선은 평탄해보이지만 기억을 더듬어보면 결코 평탄한 능선은 아니었던 기억이 날 때가 있다. 골이 깊으면 산이 높고, 행복과 불행 등 모든 것에는 반전(反轉)이 있으며,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버릴 줄 알아야 한다. 버릴 때 편안해진다는 것을 안다면 인생의 깊이나 묘미를 아는 지혜롭고 행복한 사람이다. 옛말에 회갑 진갑을 넘길 때는 몸이나 마음에 큰 생채기를 내고 지나간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그 시기에 해당되는 나이니 현명하게 잘 넘기고 지나가자.

<도봉별곡>

 

2.산행기

시산회 제207회 북한산 진달래능선 산행기/전작

일시 : 2013.4.14(일) 10:00~16:30

코스 : 북한산

수유역-아카데미하우스-둘레길공원안내센터-애국지사묘역-운가공원지킴터-운가암-진달래능선자락-대동문-소귀천계곡-용담수-할렐루야기도원-소귀천공원지킴터-우이분소-뒤풀이장소

참석자 : 14명

고갑무,김용우,김종화,나양주,박형채,신원우,이경식,이원무,이재웅, 전작,조문형,조영훈,최근호,한양기

뒤풀이 : 행복들깨칼국수수제비집(박형채 산우 제공)

 

春來不似春, 입춘이 지난 지가 한참인데 아직도 눈이 내리고 날씨는 오락가락 한다. 계절을 상실한 듯 4월인 데도 눈이 왔다.

오늘은 약간의 비가 오고 날씨도 쌀쌀할 것 같다는 일기예보다. 아무튼 요즘 날씨는 어수선한 국내정치와 남북관계같다.

 

지금까지 시산회 산행이 날씨 때문에 취소된 경우가 없었으므로 쾌청하기를 바라면서 간식과 배낭을 챙겨 집을 나섰다.

 

약속시간 10분 전, 수유역 대합실에 도착하여 밝은 모습으로 한담을 나누고 있는 산우들과 반가운 수인사를 하고 나니, 조 총장이 오늘 산행에는 당초 16명이 참석하기로 했으나 정남, 세환 산우는 일이 생겨 못 와 14명이 참석하고 영훈, 형채, 종화 산우는 좀 늦게 도착한다고 알려준다.

 

10여분 후 모든 산우가 도착하여 곧 바로 마을버스를 타고 산행 들머리인 아카데미탐방지원센터로 이동하여 입구에 서있는 산행 안내도를 보면서 오후 일기예보를 감안하여 약 3시간 반이 소요 예상되는 완만하고 짧은 애국지사묘역 /진달래능선/대동문/소귀천계곡/우이분소 코스로 정하였다. 한때 우리 시산회도 해발 800 미터 이상인 산의 정상만을 정복했던 시절이 있었으나 세월이 가면서 산행코스가 편안한 쪽으로 바뀌는 것같다. 우리 나이에 굳이 위험하고 높은 산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도 든다.

 

이 코스는 산우들이 진달래꽃 구경을 할 수 있도록 집안행사가 있는 정남 산우의 동선도 줄이고 국립공원관리사무소에 개화시기를 확인해 가면서 결정했다는 조 총장의 설명이 있었다. 산우들의 개인일정까지 배려하며 – 정남 산우가 참석을 못 했지만 – 세심하게 산행을 챙기는 조 총장에게 박수를 보낸다.

 

출발에 앞서 막걸리를 점검하고 10시 반경에 대동문을 향하여 힘차게 출발! 북한산은 여러 번 왔으나 이 코스는 오늘이 처음이다. 코스가 편안하여 주변의 흙과 나무와 풀들에서 봄 냄새와 기운을 느끼며 천천히 올라가니 애국지사묘역 안내판이 있다. 손병희, 이시형, 신익희, 여운형, 조병옥 등 기라성 같은 한국 근대인물이 산행길 좌우에 영면하고 계신다. 그런데 왜 이런 분들이 국립묘지에 안장이 안되었을까? 하는 혼자 생각을 하며 주변에 핀 진달래꽃을 감상하면서 계속 올라갔다.

 

올라갈수록 진달래꽃은 적어지고 꽃망울만 맺혀 있다. 조 총장이 국립공원관리사무소에 확인한 바로는 80%가 개화한다고 했는데 산중턱 위로는 거의 피어 있지 않았다. 온도에 민감한 진달래 개화시기가 요 며칠 쌀쌀한 날씨 때문에 늦어진 것같다.

 

한 시간 정도 올라가니 누군가 도토리묵에 막걸리 한잔 하자고 하여 양지쪽 평평한 곳에서 쉬면서 조금 뒤에 오는 재웅 산우를 기다렸다. 다들 재웅 산우가 오자, 도토리묵을 재촉하니 재웅 산우 왈 “이렇게 먹으면 제 맛을 못 느끼니 조금 더 가서 점심이랑 같이 먹자” 고 한다. 재웅 산우의 정성을 생각해서 막걸리는 생략하기로 하고 잠시 쉬었다 다시 출발. 이렇게 하여 시산회 역사상 처음(?)으로 막걸리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정상에 도착했다.

 

12시경 대동문에 도착, 성문 안쪽에는 여기저기에 등산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점심을 먹는다. 우리는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성곽 담장 밑 양지쪽에 돗자리를 깔고 각자 정성스레 챙겨온 도토리묵, 홍어무침, 김밥, 떡, 과일, 막걸리 등을 바닥에 가득 꺼내 놓으니, 창수 대신 오늘의 기자인 내가 시 낭송할 순서라 지난번 설악산 산행기를 쓴 양주 산우가 추천한 조병화 시인의 “사월”을 낭송하였다.

 

도토리묵은 재웅 산우가 집에서 일체 이물질을 넣지 않고 도토리가루와 물만 넣어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구수한 도토리향이 가득하고 쫀득쫀득한 순도 100%의 재웅이표 도토리묵은 막걸리와 한잔 하니 맛이 일품이다. 조 총장 며느리표 홍어무침에 또 막걸리 한 잔에다 가져온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따뜻한 인삼차, 커피, 핫쵸코로 후식까지 하고 나서 1시경 다시 하산을 했다.

 

하산 길에 갑무 산우로부터 노인요양원에서 있었던 치매 노인의 생활, 노부부 간의 갈등, 노부모를 둔 형제간의 갈등, 노부모와 자식간의 재산과 봉양에 관한 이런 저런 얘기를 들으면서 지루하지 않게 내려 왔다. 우리 나이에 준비해야 할 화두인 것같다. 오늘 날씨는 일기예보와 달리 너무 좋았고 욕심내지 않은 코스를 택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산 길 끝자락에서 지나가는 분한테 부탁하여 단체사진을 찍고 뒤풀이는 우이분소 아래에 있는 소박한 인상의 주인이 하는'행복들깨칼국수'집에서 돼지수육, 낙지북어볶음에 막걸리를 한잔 하고 보리밥에 들깨칼국수로 저녁 식사까지 하였다. 오늘 뒤풀이는 최근 외손자를 본 형채 산우가 협찬하였네. 형채! 고맙네. 그리고 재웅이도 고맙고. 조 총장 며느리한테도 고맙고.

 

산우들! 나이 들면 말 없이 중용의 미덕을 가르치는 산, 산행이 육체와 정신 건강에 좋다고들 하고, 산우들 화합에도 좋다네. 산에서 자주 보세나!

 

전작 씀

 

 

3.산행지

이번 산행은 근교 산행으로 청계산으로 정했다. 자주 가는 산이지만 언제 가도 포근한 산이다. 교통이 좋아져서 산객이 많아 혼잡한 것은 현재 서울 근교의 산들의 형편이다. 흙산이라 먼지가 많으나 부드러운 장점이 있다. 만사에 반전은 항상 있는 법이니 둘 다 즐기면 되지 않겠는가! 비가 약간 뿌린다는 기상대의 예보가 있지만 우리 시산회의 산행 때는 거의 날씨가 좋았음을 우리가 기억하고 있다. 약간 내린 비에도 꽃이 지고 있다. 꽃이 진다고 바람과 비를 탓하랴, 떨어진 꽃잎을 주워 찻잔에 담가 꽃차를 마시면 그만인 것을. 좋은 봄이 하릴없이 지나가기 전에 모두 모여 반가운 벗들과 하루를 보내자.

 

 

4.동반시

황동규 시인은 소설가 황순원 교수의 아들, 박동규는 시인 박목월 교수의 아들이다. 친했던 두 사람은 아들을 낳으면 동규라는 이름을 붙이자는 약속을 했고, 하여 그들의 이름이 탄생했다. 아버지가 훌륭한 사람이니 자식들 역시 훌륭한 사람들이다. 나는 대학시절 내내 황순원 교수를 보고 지냈다. 작은 체구에 밝은 얼굴빛에 베레모를 쓰고 다녔다. 손에는 항상 가죽가방을 들고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기도 하지만 나이가 들어보니 좋은 점도 많다. 전작 회장님께서는 유난히 책임감이 강한 분인데 바쁘다보니 산행기가 늦어져서 나도 덕분에 게으름을 부렸다.

 

시가 어렵다는 산우들의 불만이 벌써 귀에 들리지만 전작 회장님께서 바빠서 나에게 선정을 요청했기에 마음 먹고 시를 골랐다. 그러나 음미하다보면 우리의 실력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시다.

 

오래 기다린 하루 / 황동규

오래 참고 견딘 자의 참음이 끝날 때
친구 세상에서 홀린 듯 사라지고
대낮에 불현듯 촛불 켜놓고 싶을 때
나는 듣는다
꽃 피는 소리, 꽃나무들 뜰을 헤매이는 소리를.

남몰래 방황했다.
머리 사발의 물 사라져
창 위에 황홀한 성에를 그리고
그 성에 몇 차례 지워져
짧고 소란한 잠 올 때
나는 방황했다, 떠남도 없이.

오래 기다린 자는
보리라, 오래 기다린 하루를,
헤매이는 나무 줄기에
한없이 헤매이는 작은 벌레를.
그의 등에 과녁처럼 박혀 윤나는 무늬
그 무늬 위에 잠시 떠도는 광망(光芒)을
바흐의 무반주 첼로 사라방드를
제가(祭歌)의 속속들이를
정신이 끌고 다닌 모든 수레를.

 

2013년 4월 30일 신당동에서

 

詩를 사랑하는 산살마들의 모임 詩山會 도움쇠 김정남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