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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남한산성(詩山會 제232회 산행)

남한산성(詩山會 제232회 산행)

산 : 남한산

코스 : 마천역-만남의 광장-수어장대-남문-유원지-산성역

소요시간 : 3시간 반

일시 : 2014년 4월 12일(토) 10시

만나는 곳 : 전철 5호선 마천역 1번 출구

준비물 : 막걸리, 안주, 간식, 과일

연락 : 임삼환(010-2168-3700)

블로그 : blog.daum.net/yc012175

시산회 카페 : cafe.daum.net/yc012175

 

 

1.詩를 통한 時論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가운 빗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 함형수(1914~46) ‘해바라기의 비명(碑銘)’

 

다섯 줄의 장거리 시행(詩行)이 전부다. 노란 해바라기와 태양과 푸른 보리밭은 반 고흐를 상기시킨다. 먼발치의 살구꽃과 마당가의 채송화를 좋아했던 내게 해바라기는 싱거운 키다리 호박꽃이었다. 호박꽃도 꽃일까? 이 시와 반 고흐를 알고 나서 해바라기가 꽃으로 다가왔다. 예술은 변화와 전복을 초래한다. 자연이 예술을 모방한다는 말은 그래서도 맞다. 서정시가 대체로 그렇지만 20세기 한국 시는 특히 애상적이다. 그 가운데서 이색적인 D장조의 절창(絶唱)이다.

 

명동백작 이봉구(1916~83)에게 ‘속·도정(續·道程)’이 있다. 육이오 직전에 발표된 이 단편을 통해 해바라기 시편을 접하고 혹했다. 전쟁 후 15개월의 강요된 방학 동안 신산을 겪었다. 춥고 배고프던 시절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되고 싶었다. 별을 그리는 부나비의 가소로운 꿈이었지만 꿈이 있던 세월이 행복이 아니었을까? 행복은 허락되지 않으며 잃어버린 행복이 있을 뿐인 것 같다.

 

반 고흐처럼 함형수도 정신착란을 겪었다 한다. 해바라기 시편 외엔 쓸 만한 게 없다. 그 점 그는 단벌 시인이다. 하지만 그렇고 그런 백 편보다 한 편의 절창이 얼마나 눈부신가.

-시평(유종호 대한민국 예술원회장)

 

-詩評

이 한 편의 시는 내게 경이로 다가왔다. 나는 이런 류의 시가 좋아 나도 이런 류의 시를 즐겨 쓴다. 선산에 가면 39기의 조상묘가 있는데 예외 없이 비석이 서있다. 비석이 없었던 경우에 내가 세웠지만 나는 정작 죽으면 수목장을 할 것이며, 당연히 평장이고 죽어 차가운 비석은 사절하며, 천 년이 간다는 주목으로 만든 비목을 세워달라고, 돈을 들여 공원묘지에 모시는 것은 싫다고 유언할 예정이다. 물론 제사도 사양한다. 다만 ‘기일이 되어 나를 기억하고 싶다면 나의 웃는 얼굴만을 기억해 달라’고 하겠다. 나의 기일은 축제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므로 같은 맥락에서 나의 유언은 앞뒤가 맞다. 두고 읽어도 좋은 시이므로 나의 애송시에 넣어둘 것이다. 세상에 내놓은 내 시는 8편이며, 시평은 거의 무거운 내용이라는 촌평이 나왔으나 개의치 않는다. 내 인생이 무거웠다고 그것과 달리 편하고 가볍게 쓸 생각은 전혀 없다. 달리 할 일도 없고 모두 내려놓은 사람이므로 시를 읽고 쓰며 지내는 요즘의 생활에 전혀 불만이 없고 행복하기만 하다. 사랑하는 가족들, 산과 시, 술, 친구들이 있어 내 인생은 쓸쓸할 수가 없다.

<도봉별곡>

 

-時論

우리나라는 종교천국의 나라다. 종교의 자유는 헌법에 보장돼 있으며, 단일민족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종교가 존재한다. 세계의 역사는 종교와 전쟁의 역사라는 학자들의 의견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현재의 한국은 지역적으로 극단적인 반목은 있으되,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전혀 없으니 다행이다. 도서관에서 종교에 관한 책들을 읽다보니 받아들일 것이 많아 세계의 4대 성인에 대하여 언급해보고 싶었다. 장유유서의 원칙으로 탄생 순으로 적는다.

 

붓다는 모든 존재가 지닌 착한 본심을 강조하며, 지혜와 자비에 바탕을 두고 지상에서 천국을 구현하여 우리의 일상생활이 천국에서의 삶이 되도록 노력하였다. 그러한 정신은 지금까지 내려와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방식이 되었다. 그것이 자(慈), 비(悲), 희(喜), 사(捨)의 사무량심(四無量心)이다. 단적으로 모두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공자는 인(仁)을 강조했는데 인의 의미는 내면의 도덕성, 남을 사랑하는 착한 본성이라고 봤다. 인의 성격은 선악과 정사를 분멸하는 차별적 사랑이다. 인의 실천은 내 맘을 미루어 남을 헤아리고 인간관계에서 성실과 신뢰를 위주로 하는 것이고 인(仁)은 예(禮)를 통해 외면적으로 실현되어야 한다고 했다. 정치사상에서는 정명론으로 각자의 지위와 신분에 맞는 역할을 다 해내야 한다고 했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사상은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로 큰 의미를 두었으며 사람들과 토론하는 것을 즐겼다. 보통 교사들이 제자들에게 답을 주는 형식을 반대로 제자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스스로 무지를 자각하려고 하였다. 델포이 신전에 가는 길의 돌에 새겨졌었다는 고대격언 ‘너 자신을 알라’는 그를 통해 더욱 유명해졌다. 델포이 신탁은 그를 ‘가장 현명한 사람이다’라고 선언하였으며 그는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라고 하면서 다녔다. 인간은 문답법을 이용한 내면의 탐구와 무지에 대한 자각은 자연에서 인간으로 철학적 관점이 옮겨갔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 생활에서 절제를 추구했던 소크라테스는 선을 중시하고 관련되어 있는 질문을 토론과정에서 많이 던졌다. 그는 옳은 것을 알았을 때는 비로소 바르게 행하게 된다고 하여 앎과 덕을 동일하게 여겼다. 선의 추구를 위해 덕이 무엇인지 알아야한다고 하였다. 그는 불경한 것, 경건한 것이 어떤 의미인지, 정의는 무엇인지, 무모함과 신중함의 다른 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정에 대한 관점 등 상대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계속해서 답을 찾아 나가는 방식으로 답을 구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변증법 방식은 그 이전부터 존재하였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발전시킨 것은 소크라테스이다. 그의 철학은 정치적으로도 해석이 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스스로의 무지 자각, 화려한 연설의 비난, 현인의 통치, 앎과 덕의 일치는 민주주의 아테네 정부에 위협적으로 비춰졌던 것이다. 그후 이러한 사상을 제자 플라톤이 발전시켜서 이상적인 철인정치를 보다 강력히 주장하였다.

 

예수는 그의 산상수훈(신약성서 마태복음 5장~7장)을 보면 그의 정신과 사상을 거의 알 수 있다. 신약성서는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이므로 종교와 관계없이 모두의 집에 있다. 길어서 지면상 상세한 서술은 생략하니 일독을 권한다. 붓다도 있었지만 비슷하므로 예수의 황금률을 소개한다. ‘네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 싶다면 네가 먼저 남을 대접하라’

 

이들의 공통점은 그들이 살았던 시기는 침략과 전쟁으로 얼룩진 시대였으며, 신분 간의 격차가 심해 좌절과 절망으로 점철된 시기였다. 그러므로 진리와 선의 의미를 강조하고 선을 행하여 세상의 모든 사람이 행복하기를 바랐다는 점이다.

 

‘인간의 본성은 착하지만 인간이 사는 세상은 지옥과 같다’는 일본 유명 작가의 말을 새겨보면 인간의 이기적 욕심 때문에 벌어진 사단이다. 종교는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탄생하지만 종교가 더 악해지는 현상을 많이 봐온 지금에 이르러 과연 인류가 멸망할 때까지 이런 현상은 없어지지 않을까? 여러 학자들이나 사상가들이 제시하는 대안은 종교통합이나 그게 쉬울까? 답답해지는 오후다.

 

뱀의 꼬리

붓다를 존경하는 사람이나 불교는 종교가 아니므로 나는 불교도가 아니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그러나 가장 평화적인 종교인 것은 확실하다. 불교의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 있으나 수행법 중에는 참선과 명상법이 있다. 대승불교의 화두선은 너무 막막하다. 논리가 통하지 않아 질문과 답이 따로 노는 것을 ‘선문답’이라 했겠는가. 붓다가 했다는 위빠사나 명상법은 여러 책을 읽어보니 소위 ‘깨달았다’는 사람마다 자기류에 빠져 가르치는 방식이 다르다. 나의 판단에 따라 좋다고 생각하는 명상법을 소개한다.

 

우리가 큰 사랑과 자비를 베풀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명상이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어렸을 때 명상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처음 배운 단계는 매일의 일상에서 벗어나 그저 단순하게 앉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나의 감정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 다음 배운 것은 호흡에 마음을 집중하는 것이었는데,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에 집중함으로써 평온을 찾도록 숙달하는 것이었다. 내가 이 방법을 정확하게 습득하였을 즈음, 아버지께서는 내게 무상(無常), 괴로움, 카르마(업.業), 무아(無我), 자비에 대해서 깊이 관찰해 보라고 말씀하셨다. 열두 살 즈음에 하루에 한 시간씩 명상과 관찰을, 나중에는 그 시간을 두 시간으로, 때로 나는 며칠 동안 명상을 하는 경우도 있었고, 점차로 몇 주일, 나중에는 몇 달씩 명상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명상을 하는 것이 앞으로 내가 할 일 중에서 주된 것이 될 예정이었기에 점차 명상 시간을 늘렸던 것이다.

<인생의 참주인을 찾는 깨달음의 길-내가 누구인가라는 가장 깊고 오랜, 질문에 관하여/사쿙 미팜 지음>

 

 

2. 산행기

 

청계산(詩山會 제231회 산행) 산행기/김정남

일시 : 2014. 3. 22.(토)

참석 산우들 : 김종화, 전작, 임삼환, 임용복, 나양주, 이경식, 김정남(이상 7인의 산사나이들)동반시 : 산을 오르며/천양희

뒤풀이 : 과천 아구탕집

 

새벽에 습관으로 굳어져 깨어나는 시간은 5시다. 잠시 일어나 산행 날의 습관대로 밖을 보니 여명이다. 아! 오늘이 춘분이라 했지! 신문을 읽을까 잠시 생각을 하다가 더 자두는 게 낫겠다싶어 다시 잠을 청했다. 깨어보니 아뿔싸! 8시 25분이다. 샤워는커녕 고양이 세수를 하고, 곤히 자는 마나님을 깨우지 않고 내 방에서 조용히 준비. 서두르자, 역으로. 창동 하나로 마트에서 생굴을 사면 늦겠지만 항상 사는 것이고 거의 끝물에 가까우니 카톡 문자로 양해를 구하고 싱싱한 생굴을 구입. 차를 기다리는데 간절히 기다릴 때는 항상 늦게 오는 법. 머피의 법칙이라 했던가. 차를 타고 계산을 해보니 15분이 늦는다. 차에서 뛰어갈 수는 없는 법. 아인슈타인은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서 중력의 법칙에 관한 아이디어가 떠오른 후,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했다는데 물리학의 양대 이론인 미시(微視)의 세계를 지배하는 양자역학(量子力學)과 거시(巨視)의 세계인 상대성이론을 하나로 통일하는 통합이론인 '양자중력론'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과학자가 스티븐 호킹 박사다. 달리는 차에서 뛰어간다고 빨리 도착할 수는 없으니 괜한 생각이다. 포기하고 차분히 부족한 잠을 청한다.

 

산을 오를 때마다 느끼는 생각 중에 오를수록 흥미가 생기면서 내가 작다는 생각과 오른 후에는 반드시 내려와야 한다는 것, 살아갈수록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느낀다. 다만 좋은 책을 읽으면 조금씩 알아간다는 것, 알아지는 지식의 1%는 지혜가 된다는 것, 지적 호기심은 참으로 좋은 것이라는 생각, 깨끗하게 늙어가기에 가장 좋은 방법일 것 같다는 생각, 작은 산에 올라도 그런 생각이 드는데 히말라야같이 높고 거대한 설산(雪山)에 오르면 어떤 생각이 들까?

 

산은 본래 좋아했지만 내 생애에 가장 어려웠던 순간에 나를 치료해 준 의사가, 구원해 준 은인이, 부족함을 일깨워 준 스승이 되어주었다. 거기에 시를 가까이 하게 되면서 내 인생에 꽃을 피웠다. 지금에 이르러 내가 산과 시를 몰랐다면 이렇게 좋은 산우들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욕심 많고, 화를 자주 내고, 어리석은 늙은이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산은 녹색을 상기시켜준다. 초록이 지치면 단풍이 되고 단풍이 넘치면 눈이 된다. 눈이 내린 정초에 우리는 버릴 것을 다 버려 산과 하늘이 곧바로 보이는 겨울나무가 우거진 산을 찾아 시산제를 올린다. 겨울산은 신성하며, 우리는 나무의 영혼이 깃든 산에서 제의를 올린다. 우리의 삶처럼 순환하는 산에서 신성한 산제를 올린다.

 

동창이면서 짝꿍이었던 이인 원장을 만나 부처와 관련한 마음공부를 하게 된 것도 나 원장의 권유 덕분이었으니 내가 말년에 친구들 덕을 많이 본다. 고단했던 인연들을 떨쳐내고 말년에 만나는 맑은 만남은 그 자체만으로 고마운 일이고 더 없이 행복하고 복 받은 일이다.

 

세계적인 석학 영국의 버트런드 러셀 卿이 자서전에서‘단순하지만 누를 길 없이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해왔으니,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이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을 읽고 그런 생각을 가진 것이 아니라 이런 저런 책들을 읽으면서 갖게 된 생각들이다. 희말라야의 스승들, 옴마니반메훔, 나마스테.

산과 시는 둘인 듯 하지만 하나일 수 있으니 내게는 젊은 날에 꼭 필요한 정인 같은 존재다. 그때부터 내 삶의 축이 그것들로 옮겨갔다. 신이 되려다 받침 하나가 부족한 시는...... 언어로 만들어진 발의 옷이다/유안진, 시인이란 우주가 불러주는 노래를 받아쓰는 사람/안도현, 시적 영감이 오는 순간 당신은 신과 하나가 될 수 있다/나탈리 골드버그.

 

약간 된 비알을 힘들게 걸어 등성이에 오르니 갑자기 아름다운 새소리가 요란하게 들려 쳐다보니 중간 크기의 직박구리가 가지에 앉아있고 조그만 동고비 한 쌍이 시끄럽게 신호와 대화를 주고받는다. 먹이 싸움이거나 영역 다툼이려니 생각하고 지나치려는데 그 조그만 몸집에서 울려나오는 울음은 처절한 삶의 아름다운 소리다.

 

식전 행사인 시 낭송의 시간, 추천은 종화가 했고 낭송은 오늘의 기자인 내 몫이다. 산행 중의 대화에서 “7명만 오니 참 좋다, 더도 덜도 말고 우리만 오자”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 그만큼 화기애애했다. 임 총장은 “누구 죽일 일 있느냐“며 항의(?)를 했으나 그날의 우리 맘이었음을 이해 바란다. ”빨리 세 살을 더 먹어 지공도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나왔다. 그러면 춘천도 가고 용문산도, 온양도 공짜로 가니 얼마나 좋은가. 아이러니한 현상이다. 손익을 따져본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 어차피 먹어야 할 나이, 3년의 세월에 크게 바뀔 것도 없는 시절이 우리에게 성큼 다가왔다. 시간이 흘러 나이를 먹는 것은 절대 돌이킬 수 없는 비가역적(非可逆的) 현상이다.

 

산을 오르며/천양희

 

낮은 데서 바라보면

누가 저같이

높이 서고 싶지 않으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가더라도 산꼭대기

작은 꽃보다 더 작은 우리

 

높이 더 높이 서기 위해

얼마나 많은 길 올랐나

높이 올라가

더 높이 무엇을 세우려 하나

 

산 가운데

사람소리 울리지 않고

메아리만 저 혼자 되돌아온다

 

우리도 어차피

제자리로 올 것이지만

세상은

산꼭대기에 높이 선 사람의 편

엉거주춤 산 밑의 많은 사람들

 

나날이 오르면서

오르지 못하면서

산봉우리 오래 바라본다.

 

맛있는 뒤풀이를 기대하며 양지 바른 곳에서 양념두부 부침개와 생굴, 과일, 한과, 떡 등으로 푸짐하지만 간단히 요기를 마쳤다. 산행 계획은 이수봉을 넘어 옛골로 내려가는 것이었으나 이수봉은 멀다고 먹었으니 내려가자는 의견이 지배적이어서 원점회귀 산행이 되었다.

 

산을 보면 인간 세상이란 얼마나 하찮으며 덧없는가. 그야말로 공환(空幻)이다. 우리는 길어야 백 년인데 산은 억 년을 넘어서도 그대로 변함없이 자리를 지킨다. 하여 나는 산을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것이 시산회 설립의 근본 취지다.

 

뒤풀이는 나양주 산우가 자기 동네에 왔다고 기쁜 마음으로 쏘았으니 아구탕의 맛이 배가되었다. 내가 생각한 바가 있어 건배사를 제안했다. 처음은 “모두가...... 잘 되기를”였는데 성인들의 얘기를 현재는 육성으로 들을 수 없어 눈으로 듣고 읽어보니 그들은 세상의 모든 것이 잘 되기를 바란 분들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었다. 다음 “내가...... 00다”를 제안했는데 내가 나다, 내가 예수다, 내가 공자다, 부처다, 우주다, 산이다, 시인 등등의 것이 되고 싶다든가 현재 무엇이다, 술을 마시고 있다, 산에서 내려왔다의 의미였다. 명사든 동사든 관계가 없다. 원래 내 화두는 대학시절에 얻은 ‘판치생모’다. 이인 원장과 공부하면서 잠시‘가아와 진아’를 들다가 지금은 다시 ‘판치생모’다. 판치생모의 유래는 120살까지 살았던 조주 선사에게 제자가 “달마가 서쪽에서 오신 까닭은 무엇입니까?”고 묻자 이가 모두 빠진 조주 선사가 “앞 이빨에 털이 났다”고 답한 데서 나온 화두다. 너무나 막막해서 지금은 ‘모두 것이 잘 되기를’로 바꾸려고 한다. 화두로서 문제가 있다면 삶의 나침반이나 생활신조로 삼아도 좋겠다.

 

다만 우리가 고마움에 대한 답례로 건배사 “양주, 고맙네, 잘 먹었네”를 빼먹었으니 아쉬움으로 남았다. 굳이 임 총장이 회비를 생략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회비 납부를 고집한 것은 ‘옥에 티(?)’였으나 살림살이를 잘 하겠다는 강한 의지로 봐주면 그를 비난할 일도 아니다. 나를 제외하고 ‘인격종결자’들이 모였으나 나도 언젠가는 그 축에 끼일 것임을 약속한다.

 

이순(耳順)의 단계를 넘으면 노병(老病)의 단계를 지나면서 세속의 먼지를 털고 피안(강의 저쪽 언덕), 즉 죽음의 길로 접어드는 것이다. 강의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야 하는데 베다라니 강이라 하며 굉장하게 악취를 풍긴다고 한다. 건너감으로써 세속의 먼지구덩이를 벗어나 허공의 바람소리같이 사라지는 것이다.

 

도서관에서 재능 기부를 하는 이진 시인의 수요일 오전에 시 창작 강좌가 있어 빠짐없이 듣고 있다. 시인은 그 옛날 70년대에 이름을 날랬던 소설 ‘샛강’과 ‘까치방’의 저자 이정환 선생의 따님이다. 반가움과 함께 행복감이 밀어 오른다. 그 분의 분신을 여기서 보게 되는 것은 분명 행운이다. 제목을 내주고 발표하고 평을 듣는 시간의 즐거움을 어디다 비할 데 없이 좋으니 끝나는 시간을 훌쩍 넘기기 예사다.

 

색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면 그 색깔과 현실의 색깔이 섞여 보인다. 이제는 오만과 편견, 아집의 색안경을 벗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자. 그날도 좋은 산, 술, 시, 산우들이 있어 무척 즐거웠던 날이다.

 

2014. 4. 3. 신당도서관 雨休齋에서 김정남 씀

 

 

3. 산행지

이번 산행은 조영훈 산우가 추천했던 개나리꽃이 흐드러지는 응봉산에 대해 반대 의견이 많아 벚꽃이 좋다는 남한산성으로 정했다. 그런데 요즘은 매화, 생강나무꽃, 산수유꽃, 개나리꽃, 벚꽃 등 봄꽃이 동시에 피고 지니, 시기를 따로 정해 꽃구경을 할 수 없게 됐다. 물론 남한산성의 벚꽃도 거의 졌다. 기세환 산우의 첫 시 ‘나목(裸木)’의 창작발표회 및 시 낭송회가 있을 예정이니 모두 축하해주면 참으로 고맙겠네.

 

4. 동반시

K20 마을에 자작시를 올리려고 들렀는데 세환의 시가 첫눈에 들어왔으니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 용우의 창작시 등 여러 개의 시를 두고 숙고하고 있었는데 당연히 동반해야 하지 않겠는가. 시를 짓는 것은 시인이 하지만 감상은 독자의 몫이니 내가 여기서 시평은 하지 않고 시인의 시 낭송이 끝나고 신인에게 직접 들어보는 시간을 갖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참석하여 시 낭송을 하겠다고 하니 뜨거운 관심을 가져야 하겠다. 많이 참석해서 새 시인의 탄생을 축하해주기 바란다.

 

 

 

나목/기세환

 

계절의 빗자루가 어지럽던

 

마음의 끈을 쓸어주니

 

굶주린 이성이 하늘을 대고 입을 열었다

 

 

허리 휘지 않은 가여운 뿌리에 매달려

 

예쁜 잎새 주지 않아도 곧은 가지 주지않아도

 

거친 세상 지켜온 내안의 마중물

 

 

한서리 세찬 비바람도

 

너털웃음 옷깃 털듯 품어내고

 

마디마디 별을 보며 두손모아 읊조리던

 

전설 같은 이야기도 낙엽속 바람되어

 

느리게 느리게 내곁을 지나간다

 

 

다시 나를 잊는 순간이 오고

 

나를 보지 못하는 때가 올지라도

 

패이고 휘어진 등허리 봇짐 삼아

 

무디고 무딘 조용함으로

 

무언의 고개를 들리라

 

 

2014. 4. 10. 신당도서관에서

 

詩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김정남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