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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북한산 숨은벽(詩山會 제234회 산행)

북한산 숨은벽(詩山會 제234회 산행)

 

산 : 북한산

 

코스 : 밤골-숨은벽-산장-도선사

 

소요시간 : 4시간

 

일시 : 2014년 5월 11일(일) 10시

 

만나는 곳 : 전철 3호선 구파발역 1번 출구 혹은 의정부 가능역에서 만나 밤골 하차

 

준비물 : 막걸리(밤골은 가게가 없으므로 필수), 안주, 간식, 과일

 

연락 : 임삼환(010-2168-3700)

 

블로그 : blog.daum.net/yc012175

 

시산회 카페 : cafe.daum.net/yc012175

 

 

1.詩가 있는 時論

 

행복의 얼굴/김현승

 

내게 행복이 온다면

나는 그에게 감사하고,

내게 불행이 와도

나는 또 그에게 감사한다.

 

한 번은 밖에서 오고

한 번은 안에서 오는 행복이다.

 

우리의 행복의 문은

밖에서도 열리지만

안에서도 열리게 되어 있다.

 

내가 행복할 때

나는 오늘의 햇빛을 따스히 사랑하고

내가 불행할 때

나는 내일의 별들을 사랑한다.

 

이와 같이 내 생명의 숨결은

밖에서도 들이쉬고

안에서도 내이쉬게 되어 있다.

 

이와 같이 내 생명의 바다는

밀물이 되기도 하고

썰물이 되기도 하면서

끊임없이끊임없이 출렁거린다.

 

-詩評

술을 마셔도 주흥이 생기지 않고 무엇을 해도 흥이 나지 않으니 올해의 봄과 여름은 그렇게 슬프고 우울하게 지나갈 것 같다. 어버이날에 꽂아주는 꽃에도 자식들이 먼저 생략하자고 한다. 이심전심이다. 마나님은 하루종일 TV에 시선을 뺏기고 나의 타박도 무시한다. 간혹 눈도 빨갛고 한숨도 내쉰다. 어른으로 더 할 말도 없다. 우울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라고 행복에 관한 시 중에서 골랐다. '행복의 문은 밖에서도 열리지만 안에서도 열리게 되어 있다'는 3연은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는 나올 수 없는 시구다.

 

-時論

에피쿠로스는 기원전 341년 소아시아에서 태어났다. 그는 쾌락주의자로 상식처럼 알려져 있지만 상식이 빗나간 사람중의 하나다. 마치 소크라테스의 처 크산티페가 악처 중의 악처로 알려진 것 처럼. 카렌 암스트롱의 <축의 시대>나 알랭 드 보통의 유쾌한 철학 에세이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같은 책을 읽어보면 우리의 상식이란 어처구니 없는 것으로 보인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를 이해하는 사람이 많지 않는 것처럼. 에피쿠로스는 일찍이 철학에 전념하여 많은 철학자들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여행을 다녔지만 소위 철학자들이 가르쳐주는 내용에 만족하지 못하여 자신의 사상을 정리해 삶의 철학으로 삼기로 해서 작성한 책이 모든 주제에 걸쳐 300권이 넘었으나 재난으로 기록들이 거의 사라져 오늘날에는 <사랑론> <음악론> <정당한 협상론> <인생론> 그리고 <자연론>이 남아 전한다. 그는 육체적인 쾌락보다 차라리 음식에 탐욕을 냈으나 양보다 질을 따졌으며 비싼 것을 선호하지도 않았다. 오두막 한 채와 우정, 자유, 사색 그리고 우월감과 거만함, 내분, 경쟁이 끼어들지 않은 성스러운 대화를 행복의 조건으로 삼은 듯하다.

 

진도 앞바다에서 돌아가신 영령들과 남은 사람들에 대한 위로는 되지 않겠지만 아픔을 영원히 함께 지고 갈 수는 없으니 살아있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가자는 의미로 몇 자 적어본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착하지만 집단이 모일 때는 절대로 착해질 수 없다. 단적으로 말하면 이기심 때문이다. 긴 얘기가 남아 있지만 오늘은 여기서 맺는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고 다시 태어난다면 이런 지구가 아닌 어느 머나먼 별의 낙원에서 태어나소서.

 

 

2.산행기

호암산 산행기(2014. 4. 26.)

참석 : 한양기, 신원우, 김정남, 김진오, 고갑무, 조문형, 임삼환, 김종화, 나양주, 정한(10인의 산사나이들)

동반시 : 공중의 천막/김용우

뒤풀이 : 서담(홍어와 닭도리탕)

 

오늘 산행지는 집에서 멀지 않은 삼성산이라서 약간의 떡과 포도를 등산배낭에 챙겨 넣고 느지막하게 집을 나섰다. 하늘은 곧장 비라도 내릴 듯이 잔뜩 흐려있다. 다행히 아침 일기예보에서 저녁 무렵에나 비가 내린다 하니 산행하기에는 좋은 날씨이다.

 

우리가 만나기로 한 전철1호선 관악역에 도착하여 출구를 나서며 두리번거리는데 먼발치에 임삼환 총장과 정한 산우가 눈에 띈다. 반가운 마음으로 가까이 다가가 악수를 청하고, 곧이어 양기, 진오, 원우 산우가 도착한다. 뒤이어 문형, 정남, 종화, 갑무 산우들도 도착해 오늘 산행에는 모두 10명의 산우들이 참가하였다. 형채 산우도 참석하기로 했다는데 ‘잠에서 깨어보니 오전 9시52분이더라’ 면서 동참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연락이 왔다 한다. 우리 나이에 아직도 늦잠이라니 한편으론 부럽다는 생각도 해본다.

 

오늘 산행은 이곳 산 지형을 훤히 꿰뚫고 있는 양기 산우가 안내를 맡기로 하고 10시가 한참 지나 관악역을 출발하였다. 우리는 경수대로 삼막사거리에 위치한 ‘한마음선원’을 지나 경인교대 방향으로 삼성산을 향해 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안내를 맡은 양기 산우가 오늘 행선지를 ‘호암산’으로 변경하자고 하면서 왼편의 관악 이안아파트 방향으로 들머리를 돌린다.

 

삼성산과 산줄기를 잇고 선 호암산(虎巖山)은 해발 393미터로 그리 높지 않고 비록 관악산의 명성에 가려 있긴 하지만 수려한 산세에 있어서는 모자람이 없는 산이다. 조선 초기에 무학 대사가 도성을 향해 포효하는 호랑이 모양의 암봉을 호암산이라 이름을 붙이고 그 아래에 호압사(虎壓寺)라는 절을 지었다고 하는데, 호랑이의 기세를 누르기 위해 꼬리에 해당하는 지점을 택하여 사찰을 앉힌 것이라는 설화가 있다

 

우리는 관악 이안아파트 입구를 들머리로 호암산을 향해 조금 언덕진 산길로 접어들었다. 등산객들이 잘 다니지 않는 등산로라서 그런지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주위를 둘러보니 작은 들꽃들이 반갑다는 듯이 봄바람에 고개를 흔들며 피어있고, 이름 모를 잡목들은 연록의 새잎들로 싱그럽다.

 

산행 초입은 대부분의 산들이 그렇듯이 오르는 길이 가파르다. 제2경인고속도로 끝자락에 있는 삼막터널 위로 나있는 길을 지나 가파른 산길을 걷다보니 어느 새 호흡이 거칠고 이마에는 땀이 홍건하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서서 땀을 훔치고 있는데 흙과 풀 내음 가득 실고 봄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온다.

 

가파른 산길을 따라 얼마쯤 올라가자, 산책하기에 딱 좋은 평탄한 석수능선길에 접어드니 불그스레한 마사토의 황톳길이 이어져 푹신하니 걷기에 참 좋은 능선길이 이어진다. 한참을 가다보니 이 구간이 관악산 둘레길 ‘서울 금천구 구간’ 으로 3키로 정도 이어진다는 안내표지판이 서있다.

 

석수능선길은 겨울에 눈이 쌓여있을 때 오르기 좋은 산행길이라고 이번 산행의 안내를 맡은 양기 산우가 소개한다. 우리는 석수능선길을 따라 걷다가 안내표지판이 서있는 갈림길에서 호암산 방향으로 발길을 돌렸다.

 

호암산으로 가는 산길은 소나무가 쭉 이어지고 주변 나무들도 연록의 새잎으로 갈아입어 그늘진 오솔길처럼 상쾌하고 기분 좋은 길이었다. 이 길을 따라 한참을 가니 시흥계곡과 한우물로 가는 갈림길이 나와 우리는 한우물 방향으로 다시 발길을 돌린다.

 

한우물로 가는 길은 지금까지 왔던 길과는 조금 달랐다. 바윗길에 흙먼지가 푸석이고 비탈이 져서 오르는 발걸음이 더디고 힘이 든다. 올봄 유독 비가 내리지 않는 봄 가뭄이 심한 탓이다. 필자는 과천청사 건너편 청계산 자락에 조그만 주말농장을 경작하고 있는데 3월 말경 씨앗을 뿌린 상추, 쑥갓, 열무, 봄배추 등이 봄 가뭄으로 싹을 틔우지 못해 얼마 전 다시 뿌린 적이 있다. 그 만큼 올봄은 비가 거의 내리지 않고 있는데 오늘 저녁부터 비가 내린다 하니 다행이다.

 

우리는 한우물로 가는 길목에서 쉬어가기로 하고 소나무들로 둘러싸인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산우들은 각자 가져온 먹거리들을 배낭에서 내어 놓는다. 조문형 회장이 변함없이 의무감(?)에서 가져오는 듯한 홍어무침을 비롯해 임삼환 총장의 돼지머리고기와 유부초밥, 신원우 산우가 가져온 모시떡, 김정남 산우의 한과, 김진호 산우가 필자의 고향이기도 한 장성에서 가져왔다는 유기농 사과와 두부김치 등 잘 차려진 음식들로 입맛이 당긴다.

 

젓가락을 들고 무엇부터 먹을까 하고 음식들을 살피는데 오늘 산행기자인 필자더러 시낭송을 먼저 하라며 시가 적힌 종이를 내민다. 오늘 산행에 사정상 동참하지 못한 김용우 산우의 자작시 ‘공중의 천막’ 이다.

 

공중의 천막/김용우

 

안이 밝아 밖을 분간할 수 없네

통증의 기억이 발효되는 시간에

허공을 나는 새도 둥지를 틀어

생명에 새긴 사랑의 서약은

아름답고 아픈 세상이 된다네

 

죽은 지 오래여서 죽음을 모른다네

책갈피에 고요히 숨 멎은 귀뚜라미

아직 식지 않은 촉촉한 눈동자가

운명이라는 말로 위로가 되어

삶을 위해 삶을 떠나야 한다네

 

고개를 꺾어 나의 등을 볼 수 없네

뫼비우스의 띠를 손짓하는 간절함에

구겨져도 신음을 모르는 착한 영혼

덜컥 밧줄 잡고 빙벽을 오른다네

오래오래 당신 손짓하던 곳으로

 

시낭송은 가수가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낭송자가 시가 가진 본래의 뜻을 이해하고 자기의 것으로 해석하고 재창조하여 청중이 감동을 받게 그 뜻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낭송할 사람은 미리 낭송할 시의 배경이나 주제, 시를 쓴 시인의 시심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오늘 산행에서는 필자가 바빴던 탓도 있었지만 한번 읽어보지도 못하고 갑자기 낭송을 하려고 하니 책이나 원고를 보고 읽듯이 아무런 감동이나 기교도 없이 그저 읽어 내려가기에 급급하여 낭송이 아닌 낭독이 되고 말았다.

 

사실 오늘 동반시는 읽어 가면서도 너무 난해하여 전혀 마음에 와 닿지를 않았는데 필자만의 생각은 아닌 것 같았다. 앞으로는 동반시를 산우들의 자작시로 정할 경우 가급적 시를 쓴 산우가 먼저 시의 배경이나 주제 등을 설명하고 나서 낭송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며, 동반시 낭송자를 정하는 것도 꼭 산행기 작가로 할 것이 아니라 동반시의 낭송에 어울리는 목소리로 시를 감동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산우가 낭송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는 산우들이 준비해온 간식을 맛있게 먹고 나서 호암산 국기봉을 향해 출발한다. 누군가가 30분이면 국기봉 조망대에 도착할 수 있다고 한다. 점심을 겸한 간식으로 배를 채우고 막걸리를 두어 잔 마신 탓인지 다리가 풀려 가는 걸음이 느리고 힘이 든다. 조금 걸으니 서울 호암산성의 일부인 제2한우물과 옛 건물터를 지나고 한참을 더 가니 한우물이 나타난다.

 

한우물은 ‘큰우물’이라는 뜻으로 불영암 옆에 있는 자그마한 연못이다. 이 연못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평생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한우물가에는 명품 소나무 한 그루가 그 자태를 멋지게 뽐내며 서있다. 주변에는 ‘사랑의 즐거움’이란 꽃말을 가진 철쭉꽃이 진분홍색으로 화사하게 피어있고 라일락이 진한 향기를 내뿜고 있었다. 멀리는 서양병꽃이 흐드러졌다.

 

한우물 옆으로는 작은 암자인 불영암이 자리하고 있다. 불영암에서 산아래를 바라보니 미세먼지 탓인지 사방이 뿌였다. 바로 밑으로 양기 산우가 산다는 벽산아파트 단지와 시흥대로 주변이 보이고 저 멀리 한강과 북한산도 희미하게 눈에 들어온다.

 

우리는 불영암 주변을 잠시 둘러보고 석수동갈림길에서 능선을 따라 민주동산 조망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한참을 가다보니 널따란 암반이 있는 조망대 국기봉이 우리를 맞이한다.

 

조망대 국기봉에서 바라보는 산자락은 연록의 푸르름으로 생기가 넘치고 싱그럽기 그지없다. 봄의 문턱을 넘어선 그곳이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벅찬 느낌으로 내게 다가온다. 산은 공기도 맑고 온갖 시름에서 잠시라도 벗어날 수 있으니 이런 맛에 너도나도 산에 오르는가 보다. 산을 오르는 일은 자연과 현실 앞에 순응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기도 하다.

 

조망대에서 연록의 산자락에 넋을 잃고 둘러보고 있는데 양기 산우가 ‘전망’과 ‘조망’이 어떻게 다른지를 묻는다. 금방 대답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요즘 도서관에서 파묻혀 지낸다는 김정남 산우가 “전망은 앞을 보는 것이고, 조망은 둘러보는 것이다“라고 정리해 준다. 인터넷 사전을 검색해보니 ‘전망은 멀리 바라보는 것이고, 조망은 널리 바라보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정남 산우의 말이 대강은 맞는 것 같다.

 

우리는 조망대를 뒤로하고 하산길에 나선다. 오늘 뒤풀이하는 식당이 있는 시흥사거리를 목적지로 하여 암반길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니 호압사가 자리하고 있다. 호압사에서 시원한 약수 한 사발을 들이켜니 시원하고 금세 피로가 풀리는 듯하다.

 

호압사에서 잠시 쉬었다가 우리는 잣나무숲이 우거진 호암산 삼림욕장을 거쳐 관악산둘레길을 따라 한참을 내려오니 시흥계곡 입구에 도착하고, 오늘 산행에 나선지 근 5시간 만에 우리의 산행은 마무리 된다. 산행길이 대체적으로 평탄하여 힘든 코스는 아니었어도 꽤나 긴 거리를 걷다보니 다리는 피곤해도 기분은 상쾌하다.

 

마지막으로 뒤풀이는 양기 산우의 안내에 따라 ‘서담’이라는 식당에서 홍어회에 막걸리 한사발 들이키며 오늘 산행의 피로를 풀고 산우들 간의 우의도 다지는 자리를 가졌다. 오늘 먹은 홍어회는 가격이 상당히 비싸 잠시 주문여부를 두고 산우들 간 의견이 갈리기도 했지만 비싼 만큼 육질이 찰지고 적당히 숙성된 맛으로 달콤하여 우리 입맛을 즐겁게 해주었고, 뒤이어 나온 홍어앳국도 전라도식으로 맛을 내어 그 맛이 일품이었다.

 

2014. 4. 8. 나양주 씀

 

 

 

3.산행지

이번 산행지는 오래 전에 올랐던 북한산 인수봉 뒷벽의 숨은벽을 지나 백운대와 인수봉 사이의 좁은 틈을 빠져 나오면 백운산장 위의 너른 공터가 나온다. 거기서 점심을 먹는 코스다. 바로 아래의 백운산장에서 장터국수를 먹으면 일품이다. 구파발에서 만나기로 했지만 도봉, 노원, 강북에서 사는 산우들은 가능역에서 밤골로 가는 버스를 타면 더 가깝다. 봄을 빛내주던 꽃들은 졌지만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의 위용이 호연지기를 일으키는 산이니 모두 와서 고운 여류시인의 시다운 시를 읽으면서 하루를 보람있게 보내는 마음으로 서글픈 시대를 살아가는 마음은 접어두고 모두 모이자.

 

 

4.동반시

동반시는 중구 구립도서관 시창작 교실의 선생님인 시인 이진의 시다. 현재 시를 사랑하는 마음이 넘쳐 재능기부를 하신다. 은유, 함축, 상징 등이 잘 드러난 시다. 선생님의 시 중 <장미>가 좋지만 이 시가 산우들이 좋아할 것 같아 선정한다. 나만의 인생정답이라는 게 누구에게나 있다. 위정자들의 휘둘림에 말라가는 민초들의 삶을 상징적으로 잘 표현한 시다. 마지막의 ‘유골처럼 핏기 말라 있네’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떠날 수밖에 없는 초라한 민초들의 삶을 얘기하는 부분으로 내가 보기엔 ‘상징은 이런 것이다’를 보여주는 절창이다. 상징시는 어렵다. 그렇지만 시를 읽고 분석하며 시인의 마음을 짚어가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면 여느 시보다 맛은 깊고 그윽하다.

 

시인은 70년대 중후반 우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소설 <샛강>과 <까치방>의 작가 이정환 님의 따님이다. 실명한 아버지의 소설을 받아 적으면서 자랐던 시인은 단정한 이마처럼 모든 게 바른 분이다. 매주 주제를 내고 다음 강의 시간에 발표하여 학우들의 비평을 들은 후, 선생님의 시평이 있고서 마지막에 작자의 말을 듣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시산회처럼 막걸리가 있는 뒤풀이를 빼놓지 않는다. 학우들의 비평은 칼보다 날카롭고 아프며, 토씨 하나, 틀린 띄어쓰기도 그냥 넘어가지 않지만 그 만만치 않음에 나도 반성과 더불어 발전함을 느낀다. 선생님은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시 일기를 씁니까, 시 메모는 합니까, 매일 시를 꼭 읽습니까, 국어사전을 읽습니까?" 하고 네 개의 질문을 하신다. 시의 기법, 즉 비유와 함축, 상징은 시의 맛을 살리지만 남용하면, 시를 죽이는 독이 되니 조심해서 시를 쓰고 최소 열 번의 수정을 하라고 강조하신다. 좋은 시어 하나에 목숨을 내놓는다고 마음을 잡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하며, 자신도 마음이 시킨다고 고치지 않고 단번에 써놓고, 후일에 읽어보면 부끄럽다 못해 비참한 생각이 든다고 하신다. 하여 내가 카페에 올린 최근의 시도 수없이 고쳐서 내놓았다. 그러고 읽으면 또 고칠 곳이 나오니 도를 딲고 진리를 구하도자 하는 것처럼 '끝없는 길'이 아니겠는가! 주변의 칭찬에 귀를 기울이면 발전은 없다. "가장 쉬운 말로 써서 가장 독자의 마음에 쉽게 닿는 시가 최고의 시다. 아무리 쓰는 것은 시인의 뜻이고 읽는 것은 독자의 몫이라지만 잘 못 쓴시는 언어의 낭비이며 독백에 지나지 않는다. "는 선생님의 말씀을 오늘도 가슴에 깊이 새긴다.

 

호두나무/이진(1962~ )

 

기척도 없이 불현 듯 속살 드러냈는데

그토록 단단한 앙심

품고 있을 줄이야

 

땅으로부터 버림받은 한이었을까

하늘로부터 배척당한 설움이었을까

일생 그는

붙들린 채

의지와는 상관없이 흔들리기

기분과는 상관없이 쪼이기

또 한 번씩은 그네들의 데코레이션 인생으로

생살 꺾이고 찢기기

 

비바람 몹시 들이치던 그날

한도 설움도

붙박인 세상에선 부질없음을

섬광처럼 깨우친 후

그는 빈털터리가 되었네

 

목구멍에 걸려있던 앙심들

땅바닥에 죄 토해놓고, 오늘 아침

딴청부리고 있네

호두 속 알알이 일평생 모아 놓은 피와 땀

유골처럼 허옇게 핏기 말라 있네.

 

시집 <프라하 일기>에서

 

2014. 5. 9. 신당도서관 雨休齋에서

 

詩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김정남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