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관한 간단한 질문 / 도봉별곡
사랑에 관한 짧은 기억들 펼치며
왜 사랑에 빠지는가, 생리적 화학작용일 뿐
그러나
목에 스카프 또는 넥타이 매듯 사랑에 목숨 걸지 마라
그의 변덕이 그러했듯
너의 변덕도 그러하리라
사람의 마음이 한 찰나에 백팔만 번 바뀐다는 것에 동의한다면
집 짓는 것, 초상 치루는 것, 재판해보는 것 말고도
사랑을 해봐야 남는 게 없다는 것을, 인생의 극히 짧은 한 부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해답은 각자의 몫이고 정답은 없겠다
질문의 내재율에는 왜 어떻게 무엇을, 이라는 것들이 들어 있다
내재율이 혼돈의 터널 속 어두움을 지나면서
사랑의 권위는 경추고정술을 거친 내 신경처럼 무너지고
무장해제된 내 손가락은 무엇을 위한 은유일까
신기루 같아진 배신은 항상 산동네의 쓰레기처럼 산하에 널려 있다
사랑의 반대는 증오가 아니라 배신이다 착각하지 마라
사랑의 광장에 올라서서 외사랑이든 짝사랑이든 착각하다가 죽어버려서
하여 사랑을 화장해봐라
혹여 남는 것이 있다면 괴로움과 허무라는 재가 회색
사리舍利로 남는다
사리라 이름 붙여 당연한 것이리
배신에 분노하고 응징하라 그것만이 해답이다
그러나 용서하라 그것이 정답이다
‘투 마더스’나 ‘전쟁과 한 여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같은 자기만의 색깔을 가질 일이다
티끌 같은 교차로에서 살아나는 사랑의 제단 앞에
이기심이 존재를 이어가는 극적 요인이 되었듯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 위에서 말을 종횡무진 부리다가
헬렌 피셔의 36개월의 전설 앞에 무기력해지는 사랑의 열정
시인과 철학자 · 과학자 · 화가 · 소설가 · 음악가의 대화 속에서
신과 인간은 무엇으로 무엇을 믿으며 사는가를 묻지 말며
사랑에 대한 질문을 금하며 답을 구하려 하지 마라
사랑의 의미는 이 시만큼 난해하며 혹은 무의미로 가득 차있기 때문이다
오늘 새벽에도 불암산佛巖山 뒤에서 해가 떠오르는 이유다
*투 마더스 : 중년의 두 여자 친구가 서로의 아들을 교차하여 사랑하는 프랑스 · 호주 영화
*전쟁과 한 여자 : 전쟁 중 앞날을 기약하지 못 하는 한 여자의 섹스와 사랑에 관한 일본 영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사랑에 대한 좌절로 인해 자살하는, 괴테의 자전적 작품
*해변의 묘지 : 폴 발레리의 시.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는 시구로 유명해진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