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쟁이와 애늙은이 / 도봉별곡
-아저씨, 한여름이라 더운데 항상 넥타이를 매고 계셔요?
-신언서판이고, 손님들에 대한 예의란다. 근데 너 왜 왔냐? 무슨 시비를 걸려고.
-아무리 생각해도 궁금한데요. 하루 24시간인데 12간지로 나누면 2시간 사이에 태어난 사람은 사주가 같네요. 그러면 과거와 미래의 삶도 같을 거 아녀요?
-누가 그러데?
-제가요.
-애야, 사주는 우주의 구성요소인 음양오행을 활용하는데 실은 삼분의 일은 어림짐작이고 삼분의 일은 눈치고 나머지 삼분의 일은 관상이나 수상, 족상 핑계를 대는 거여.
-......
-역설적인 얘기인데 사주쟁이는 모두 거지 팔자를 타고 나는 사람이 하는 짓거리란다. 그래서 너의 문간방에서 그냥 기거하면서 먹고 자지 않니. 마누라도 없고.
-역설적이란 말이 뭐예요?
-나도 몰라.
-에이, 말은 철학연구소라 붙여 놓고 옆에는 주역, 관상, 수상, 작명, 택일, 궁합을 연구한다고 했는데 그 말을 몰라요?
-......
-좋아요, 주역은 울 아버지가 점치는 것이라고 하시던데 점도 치세요? 그건 진짜 맞지 않는다던데. 복불복이라고.
-주역은 세상의 이치를 따지는 것이기도 하단다.
-작명도 한다면서요?
-왜?
-제 이름이 맘에 들지 않아서요.
-하긴, 그래. 너희 아버지가 영광사람이라 원불교 신도이니 네 이름 자 두 개 모두 불교와 아주 밀접한 것들로 지어 너 잘못하면 중 된다.
-중 되는 것이 잘못하는 거라구요?
-장가도 못 가고.
-세상에 반이 여자인데 그럴 리가요. 관상이나 봐줘요.
-관상은 눈이 전부다. 나머지는 군더더기다. 상대방의 눈을 5분만 뚫어져라 쳐다보면 다 보인다.
-뭐가 보이는데요?
-나이와 심성, 형편, 직업, 미래 등.
-제 눈을 봐주세요.
-우리 눈싸움하자.
-그건 자신 있어요. 한 번도 진적이 없어요.
-시작.
-..............................
-눈이 크니 겁이 많고 촉촉하니 색기가 흐르고 눈빛이 강하니 배짱이 크고 눈동자가 또렷하니 집중력이 강하겠다. 눈싸움 잘 하니 고집 세고 성질머리는 고약스럽고. 근데 너 누나들 그만 잡아라. 네 아버지가 항상 하시는 말씀, 여자는 약하고 귀한 존재다 아끼고 사랑하라고 하신단다.
-그래서 바람을 많이 피워 엄마 속을 그렇게 썩이나요. 누나들도 엄마 속 썩이면 내가 가만 두지 못하죠. 누구든지 울 엄마 건드리면 가만 안 둬요. 엄마 심부름 가야 해요.
애늙은이가 돌아서면서 혼잣말로
-괜히 시간만 손해 봤네.
사주쟁이가 애늙은이의 뒤통수에 대고
-사주, 관상, 이름을 봐준 값은 너희 엄마에게 받으마. 효자 아들 뒀다고.
*제2시집 <시인의 농담>에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