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정초, 나는 30여 년 일했던 신문사를 떠나 한 지방 문화재단 대표를 맡게 됐다. 말인즉 대표이지 도청 예산으로 일하는 하급기관이니 도청 계장·과장이 하늘 같은 존재였다. 더구나 도의회 예산심의 철이 되면 추상같은 젊은 도의원들의 호령에 오금 저려야 했고 툭하면 지방 언론의 ‘호구’가 되어 얼토당토않은 기사로 가슴 졸이고 속상해하는 때였다.
이 무렵 『나는 을(乙)이다』라는 시집을 받았다. ‘눈 여겨 보는 이 없는 풀처럼, 뜨거운 적의를 내려놓고 몸에 밴 새우등으로 어둠의 갈피에 눈물자국 숨기고 돌아가는’ 을의 삶을 참으로 절절히 대변하고 있었다. 내가 과연 을인가. 신문사에서 일하면서 제멋대로 남을 재단하고 비난하면서 남의 눈에 피눈물 흘리게 한 적 없는가. 새우등으로 살아가는 진짜 을에게 성주처럼 ‘갑질’을 한 적은 없었던가. 그때서야 나는 반성했다. 자신이 갑이면서 을인 척한 것을, 갑과 을은 돌고 돈다는 사실을. 을의 낮은 자세, 을의 경청의 자세, 을의 봉사의 자세로 살아가자. 그것도 인생의 황혼기에서 깨닫는 그 노치(老痴)여!
선장과 승무원이 승객을 진정으로 모시는 을의 자세였다면 이번 세월호 참사는 없었을 게다. 관료들이 을이라고 자신을 낮출 그때에야 비로소 재난구조기관이 제대로 작동할 터이다. 세상의 갑들이여! ‘나는 을이로소이다’를 하루 한 번씩만 복창하자.
권영빈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詩評과 時論
시평은 어려운 시가 아니니 위의 시평으로 가름한다. 이 시는 중앙일보에서 연재하는 명사들의 '나를 흔든 시 한 줄'에 나오는 시의 전편이다. 부분만 실려있으나 전체를 올려봤다.
시론도 서울대 교수 시국선언문으로 가름한다. 꼭 읽어보기 바란다.
다음은 서울대교수 시국선언 전문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정부는 존재 이유가 없다"
차마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 일어났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믿고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던 천진난만한 학생들, 무고한 시민들이 배와 함께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것을 가족들과 함께 온 국민이 지켜보아야 했다. '나라초상'을 당하여 참으로 '숨쉬기도 미안한 사월, 오월'이었다. 무책임한 어른들 때문에 졸지에 자신의 꿈을 난파당한 어린 영혼들이 저 세상에서나마 평화와 안식을 얻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그 어떤 위로의 말도 유가족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 없겠지만, 300명이 넘는 희생자를 낳은 이 대재난을 근원적으로 성찰하는 길만이 희생자들에 대한 최선의 애도이고, 또 이 땅에 살아가는 지식인으로서 져야 할 최소한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가 지닌 문제들을 총체적으로 드러냈다. 세월호 침몰에는 생명과 안전을 도외 시하고 오직 돈만을 추구한 '청해진 해운'의 천박한 기업행태와 함께, 감독기관의 부패와 행정 공백, 그리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 만들기'를 위한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 더 근본적으로 온갖 종류의 '관피아'로 지칭되는 일련의 '연줄관계망'의 구조적 폭력과 이윤, 결과, 속도, 효율성만을 강조해온 신자유주의적 자본축적의 논리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작동했다.
하지만 국민을 진정으로 분노하게 만든 것은 세월호 구조과정에서 드러난 정부의 무능과 '국가'의 부재였다. 승객들과 선박을 돌보지 않고 제일 먼저 탈출한 선장을 비롯한 승무원들은 스스로 '재난의 컨트롤 타워(관제탑)'임을 부정한 청와대의 대응과 판박이거니와, 사고 발생 직후 해양경찰의 초기 대응 실패는 이번 참사가 무엇보다도 인재(人災)임을 보여준다. 정부의 재난관리시스템은 전혀 작동하지 않은 채 해양경찰이 해군 및 민간잠수사의 활동을 방해하고, '언딘'이라는 일개 민간업체가 구난과 구조 업무를 사실상 이끌었으니 해양경찰과 해양수산부는 직무유기를 넘어 그 존재가치를 스스로 부정하였다. 이는 그간 정부 자체가 공공성을 허물면서 '기업 프렌들리'를 외쳐온 '기업국가'의 필연적인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이것도 나라인가?' 하는 자조가 국민의 분노를 부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고 이후 정부 및 정권의 대응은 분노를 넘어서 정부와 국가에 대한 신뢰기반을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있다. 정부는 자신의 무능은 아랑곳 하지 않고 언론과 국민 여론을 통제하고 사건을 축소·은폐하려고 했고, 사복경찰을 동원하여 피해자 가족의 동정을 살피고 심지어 대화를 몰래 녹음하는 등 피해 가족 및 시민들을 부당하게 감시했으며, 비판자들에게 압력과 협박을 가하여 국민의 알 권리를 제약하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 정부 관리와 여당 의원, 언론사 간부는 유족들과 실종자 가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 대통령은 정부의 부실하고, 무능하며, 무성의한 사태 해결 노력에 대해 정부의 최고 책임자로서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주기보다는 유족 대신 조문객을 위로하는 보여주기식 정치와 행정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정부의 구조 행위에 대하여 '살인행위'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지만, 대통령과 정부는 자신들이 져야 할 책임의 몫을 과거 정부로 떠넘기며 적폐(積弊)를 운운하고 있다. 현 정권 들어서 국정원의 선거 개입, 간첩 조작 등 민주주의 근간을 위협하는 사건이 연이었고, 그에 대해 우리 사회는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시종일관 요구했지만 그러한 국민적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위기의 징후는 곳곳에 있었으나 그 경고음을 현 정부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현 정부에 의한 민주주의의 훼손과 비판·감시 기능의 상실이야말로 적폐를 키울 수 있었던 배경이었다. 적폐의 온상은 현 정부의 비민주성과 무능, 무책임성이고, 그 정부를 이끌고 운영하는 사람들이 '적폐' 그 자체이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세월호 참사를 취재하던 기자들이 희생자 가족들은 물론 온 국민으로부터 '기레기' 취급을 받았고, 유가족들은 국내 언론을 불신하고 외국 언론을 상대하였다. 해외 교포들은 세월호 참사에서 나타난 한국 정부와 언론의 행태를 비판하는 전면광고를 세계적으로 유수한 신문들에 게재하기에 이르렀다. 사태를 이 지경까지 만든 데 대해 언론인들의 자성과 자기개혁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시급한 것은 정부의 언론 통제 철폐와 권언유착의 고리를 끊는 것이다. KBS 사태에서 드러나듯이 정부의 방송 장악 기도, 언론 통제와 권언 유착의 실상이 낱낱이 폭로되고 있지만 청와대를 비롯하여 관련 기관 어느 곳도 사실을 인정조차 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대통령 인수위원회 관여 인물을 방통심의위원장에 내정하는 등 정부의 언론 장악 획책은 지칠 줄을 모른다. 이제 국민들은 언론을 정부의 홍보 대행기구, 선전도구 정도로 여기게 되었다. 실상이 그렇다면 국민의 언론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것 역시 당연한 일이다. 세월호 참사 수습의 중심에 언론 통제 철폐와 언론 개혁이 있다.
많은 분들이 현 대통령의 복지 공약을 보고 그녀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 정권의 복지공약은 어디로 갔는가? 현 정부는 복지는커녕 국민의 생명과 안전도 책임지지 못하는 무능한 정부임을 세월호 참사가 증명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만큼 중요한 안보가 어디 있을 것이며, 그 조차 지키지 못한다면 정부로서 자격도 없는 것이 아닌가. 또 현 정부는 대선부정 문제를 비롯하여 자신들의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은 종북으로 몰거나, 전 검찰총장의 실례에서 보듯 개인적 문제를 트집 잡아 인격살인을 통해 비판자를 몰아내는 일 따위를 자행함으로써 사회구성원들이 사회적 현안에 대해 정당한 문제제기를 하고 자기교정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거해 왔다. 정부가 돌아봐야 할 것은 과거의 적폐나 일개 기업의 비리, 한낱 선장의 무책임한 행동이 아니라, 자신들의 무능력과 공약 위반, 그러한 사태를 낳은 자신들의 허물과 국정철학, 그리고 집권 이래 현 정부가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훼손해가며 쌓고 있는 적폐들이다. 이번 참사는 근본적인 인적 쇄신 없이 부서 이름 바꾸기 차원의 재난 대응과 말만 번지르르 한 안전대책들로 수습될 문제가 아니다. 담당 부서와 안전대책들이 없어서 눈앞에서 어린 영혼들을 수장시킨 것이 아니지 않는가?
대통령이 뒤늦게 책임을 인정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해경해체만으로 모든 책임을 면하려는 태도는 스스로의 책임을 전가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철저한 진상 조사와 잘못된 시스템에 대한 진단을 통해서 책임소재를 밝히고, 그에 상응한 개혁을 즉각 실시할 것을 요구한다. 그 전에 이 정부의 국정을 파탄으로 몰아가고 있는 청와대와 권력기관들의 인적쇄신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구시대적인 적폐의 근원이 되고 있는 청와대 비서실장, 국정원장, 안보실장, 홍보수석, 그리고 검찰총장의 자리를 쇄신하는 것이 그 시작이 될 것이다.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숨 쉬기도 미안한 4월, 또 미래세대의 교육을 담당한 사람으로서 제자들 얼굴 보기가 부끄러운 5월을 보내고 있다. 침몰 현장에서 인명 구조를 위해 대기했던 민간 잠수사들, 진도에서 유가족들과 함께 밤을 지새운 자원봉사자들, 분향소마다 길게 줄을 이어 늘어선 조문객들, 어린 영혼들과 유가족들을 위해 전국 각지에서 켜진 촛불들, 그리고 이 모든 사태를 묵묵히 지켜본 우리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앞장서서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켜줄 줄 아는 정부, 의사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고 언론통제가 없는 나라, 그리고 이 땅의 모든 부모형제들이 더 이상 슬픔과 분노로 자신의 눈자위가 붉어지지 않는 사회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온 국민의 비탄과 공분을 받들어 우리는 다음 사항을 요구한다.
1. 해경해체 등 조직개편 이전에 철저한 진상규명이 우선이다. 정부는 진상 조사의 주체 이전에 조사 대상이니 유가족 대표와 시민 대표가 주도하는 진상조사단을 구성하고, 좌초와 침몰의 원인, 각 단계별 인명구조가 지연되고 실패한 원인, 무책임한 정부 대응을 한 점 의혹 없이 규명해야 한다.
1. 청와대부터 정부 각 부처에 이르기까지 전면적이고 철저한 인적 쇄신이 이루어져야 한다.
1. 정부는 그동안 자행한 언론 통제에 대해서 사과하고, 언론 통제 철폐를 약속해야 한다. 또한 전국 각지와 해외에서 일어나고 있는 국민들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억압해서는 안 된다.
1. 세월호 사건의 뿌리는 지난 정권부터 계속된 무분별한 친기업 규제 완화이다. 정부는 제2의 참사를 예고하는 과잉친기업 정책을 즉각 폐기하고 생명과 안전을 중심에 두는 국정을 운영하여야 한다.
1. 대통령은 이번 사고 대처에서 나타난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에 대한 최고책임자일 뿐만 아니라 이번 참사의 근원적인 수습에 대해서도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위의 요구들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대통령은 다시 국민적 사퇴 요구에 부딪힐 것이다.
이른 새벽에 임삼환 총장이 전화를 해서 오늘의 기자를 부탁한다. 기자가 정해지지 않아 고민하는 임 총장의 전화에 두말없이 동의했다. 사실은 안순모 아들 결혼식에 참석해야 할 처지였으나 무엇보다 시산회가 우선 순위의 맨 앞이다.
일찍 채비를 차리고 자전거를 타고 잠실역에서 승차하여 구파발역에 9시50분에 도착하니 원우, 진오, 삼환이가 도착해 있었다. 비가 온다는 소식에 짧은 산행을 의논하다가 임 총장이 특유의 뚝심으로 원안대로 추진하니 모두 동의하고 버스로 이동하게 되었다. 송추 경유 의정부행 35번 버스를 타기위해 줄을 섰고 승객이 많아 뒷문으로 겨우 승차를 했다.
코스를 잘 아는 정남 왕회장이 숨은벽의 들머리가 밤골과 사기막골인데 밤골은 계곡 코스이니 이왕이면 어렵지만 용감하게 사기막골로 들머리를 잡자고 한다. 입구에서 하차하여 걸어 가다가 정남이가 다리 위에서 숨은벽 쪽을 보며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백운대(837m)와 인수봉(811m) 사이에 숨어 있는 숨은벽은 멀리서 보기에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북한산 둘레길로 접어들어 20분쯤 올라가니 백운대로 오르는 갈림길이 나왔다. 내가 가져온 호박고구마 구이와 참외 보따리가 무거워서 첫 번째 쉬는 곳에서 보따리 장사를 한다고 먼저 던져놓았다. 바람이 불고 햇빛이 없어 서늘한 산행길이다.
오랜만에 산행을 하니 다리가 원활하지 않다. 내 우측 다리가 불편해서 척추 디스크부터 고관절, 무릎까지 정밀검사 결과로 병가를 냈다. 우측 엉덩이 소등근과 이상근이 파열되어 치료해야 한다는 진단이 나왔고 술을 많이 마셨더니 간에서 쓸개로 넘어가는 쪽과 심장 등을 복부 CT촬영하였다. 의사는 결과를 놓고 조심하라는 소견을 내주었다. 40년 교직 생활에 마지막을 지내기가 어려운 처지다.
갑무가 5월 31일에 며느리를 본다니 부럽다. 요즘 아들을 결혼시켜 분가시키는 것은 돈도 많이 들지만 며느리라는 남의 식구를 상전으로 들이는 일, 아들을 사돈에게 빼앗겨야 한다는 등, 여러 가지로 어려운 일이 생긴다. 저녁 식사 시간에 주례 할 분을 만나는 약속을 했단다. 현직에서 은퇴한 후, 말년에 공기 좋은 봉평에서 요양원 관리책임자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습이 좋아보였다. 언젠가는 시산회가 봉평 쪽 산을 골라 등산도 하고 그곳을 방문해 노후를 생각해보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한 번뿐인 결혼식이니 축의금도 두 배로 두둑이 넣고 모두 축하해주자. 갑무, 시산회의 대표주, 소위 테마주 막걸리를 준비해주면 안 잡아먹지......
한참 세상사 이야기를 하며 오르니 쉼터가 보였다. 산 아래를 보니 젊은 시절 예비군 유격훈련을 했던 노고단 예비군 훈련장이 보였다. 정남이는 둘째딸을 낳고 훈련을 받으러 갔는데 연병장 한 켠에 무심히 서있는 A텐트가 첫눈에 들어 오더란다. 지겨운 훈련을 일 주일간 받을 생각을 하니 갑자기 갑갑해져서 맨 먼저 손들고 나가 정관수술을 했다니 모두 즐겁게 웃는다. 참으로 성격이 강해서 장단점이 섞여 있지만 다혈질적 성격만 빼면 우리에게는 도움이 되고 사연이 많은 친구다. 그때에는 시설이라야 사격장 정도였는데 많은 시설이 들어서있다. 우리 9인의 산우들이 오붓한 자리에 모여서 순단표 참외를 맛있게 나눠 먹고 일어났다.
멋있는 숨은벽 쪽 장면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서 천천히 올랐다. 김종화 산우가 생각해보니 2007년 12월 중순, 그러니까 7년전에 숨은벽 계곡을 산행한 적이 있단다. 그때는 우리가 50대 중반으로 젊음이 있었겠지! 된 비알로 된 바위 능선을 오르면 절경이 나타나고, 길 모퉁이를 돌면 비경이 눈앞에 펼쳐지니, 훌륭한 경치에 사진 촬영시간이 길어진다. 마당바위에 밑에 있는 해골바위를 보니 움푹 파인 얼굴이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마당바위에서 단체 인증 사진을 찍고 갈증해소를 위해 진오표 오이를 먹고 또 오른다.
숨은벽 옆 계곡을 두 번 쉬며 반가운 약수터에 맛난 물 한바가지를 벌컥 들이키고 힘겹게 올랐다. 백운봉과 인수봉 사이에 너른 터가 있어서 한숨 돌리며 2시가 가까워진 늦은 시간에 점심 먹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자리를 깔고 식전행사로 굳어진 오늘의 동반시를 읽는다.
호두나무 / 이진
기척도 없이 불현 듯 속살 드러냈는데
그토록 단단한 앙심
품고 있을 줄이야
땅으로부터 버림받은 한이었을까
하늘로부터 배척당한 설움이었을까
일생 그는 붙들린 채
의지와는 상관없이 흔들리기
기분과는 상관없이 쪼이기
또 한 번씩은 그네들의 데코레이션 인생으로
생살 꺾이고 찢기기
비바림 몹시 들이치던 그날
한도 설움도
붙박인 세상에선 부질없음을
섬광처럼 깨우친 후
그는 빈털터리가 되었네
목구멍에 걸려있던 앙심들
땅바닥에 죄 토해놓고, 오늘 아침
딴청부리고 있네
호두 속 알알이 일평생 모아 놓은 피와 땀
유골처럼 허옇게 핏기 말라 있네.
이 시는 위정자들에게 휘둘리며 살아야 하는 민초들의 삶을 읊은 시, 마지막 행 ‘유골처럼 허옇게 핏기 말라 있네.’는 시의 상징 기법의 절정이라는 김정남 해설가의 말씀이고 보면 내용이 훨씬 다가오리라 믿는다. 요새 시 짓기 공부를 하는 중에 시인 선생님께서 추천해 주신 시로서 시를 읽고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전송해야 한단다. 인증 샷, 한 컷. 시인의 아버지는 소설가 이정환 선생으로 <샛강>, <까치방>의 저자인데 70년대 박정희의 유신시대를 어둡게 지낸 우리들에게는 큰 위안을 주었던 분임을 다시 소개한다.
이제 식욕이 당기니 막걸리 한 잔씩 들고 건배! 건배사는 ‘모두가 잘 되기를'. 갑무의 압구정표 떡이 있고, 임 총장표 돼지꼬리찜과 데친 무양념 엄나무순, 정남이표 한과, 종화표 유부초밥, 원우의 풍성한 과일, 필자의 고구마구이 등을 곁들인 막걸리 파티가 가을걷이를 끝낸 후의 추수감사절처럼 풍요로웠다. 음식도 풍족하고 마음 또한 풍족한 시산회 등산이라 더도 덜도 말고 오늘의 등산만 같아라.
광고 총산악회장으로서 김정남 산우는 식사하면서 24일의 다음 산행 때는 광고 총산악회 등산일로 시산회원 전원이 참석해달라는 간곡한 협박성(?) 부탁을 했고, 세월호 사고로 팽목항이 전국민과 언론에 주목 받고 있는데 그 항구를 신원우 산우가 설계했단다. 좋은 일로 진도 팽목항이 국민들의 기억에 남았으면 좋으련만 아쉬운 일이다. 문득 진도아리랑 한 구절이 문득 떠올랐다. 진도 아리랑은 여느 아리랑과 달라 가사가 750개가 된다고 하니 대표적인 가사 몇 개만 소개한다.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 응 응~ 아라리가 났네
1> 문경새재는 웬 고갠가
구부야 구부 구부가 눈물이 난다
2> 오늘 갈지 내일 갈지 모르는 세상
내가 심긴 호박 박모 울타리를 넘네
3> 만경창파에 두둥실 뜬 배
어기여차 어야 뒤어차 노를 저어라
4> 저건너 저가시나 눈매를 보아라
가마타고 시집가기는 영 틀렸네
5> 사람이 살면은 몇 백 년이나 사나
호박 같은 이내세상 둥글둥글 사세
6> 가지 많은 나무는 바람 잘 날이 없고
자식 많은 우리 부모는 속편할 날이 없네
7> 만나니 반가우나 이별을 어이해
이별을 할려거든 왜 만나는고
8> 노다 가세 노다나 가세
저 달이 떴다지도록 놀다나 가세
[출처] 진도아리랑 가사[모두보기]듣기|작성자 아마도
“나를 버리고 간 놈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날거다”
더 이상 분노만 하고 기억하지 않는 우리들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가르치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더 아리고 쓰리다. 수학여행도 수련회도 심지어 소풍도 올스톱이란다. 또다시 이런 비극이 없는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다. 무전기를 잡은 상태로 통통 불어터진 몸으로 나타난 사무장, 구명조끼를 양보하여 자신은 맨몸으로 나타난 여선생님, 비록 입술은 파랗게 변했지만 꽃보다 더 아름다운 얼굴로 나타난 23살 여승무원을 보라. 살아 남은 자들은 죽음보다 못한 삶을 살 수도 있다. 어쩌다 세상이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가, 가난하게 살았던 것이 한이 되어 물질적인 풍요만 추구하다 더러운 욕망이 앞을 서고 윤리나 도덕은 뒷전으로 물러난 세상이 되었는가, 왜 죽음의 자유를 모르고 삶의 고통을 외면하는가. 그래봤자 영혼 없는 삶과 의로운 죽음의 차이인데, 그래봤자 저 넓은 우주 안에서 티끌보다 작은 지구 안의 일인데, 그래봤자 100년 안의 일인데, 왜 영원히 사는 법을 모르는가. 내 장담하리라, 윤리교육을 시켜야 한다느니, 어려서부터 명시보감이나 소학을 공부시켜야 한다고 야단법석을 떨지만 6개월만 지나면 없었던 것들이 되어 버리고 잊혀진다. 왜냐고? 국민성이 냄비보다 더 지랄같으니까! DJ시절에 총리를 지냈던 이홍구 씨가 영국대사로 부임했을 때 영국 국민들을 지켜보며 절망을 했었단다. 잠시 인용하면 "우리는 그들을 따라가려면 몇 백년이 걸릴지 모른다. 아니 영원히 선진국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나라는 전체적으로 흐르는 분위기는 차분하고 점잖으나 우리는 정조대왕의 언문 사찰에도 나오는 '신하들이란 것들이 모두 뒤죽박죽'이란다는 표현이 딱 맞는다. 위가 그러는데 밑의 우리라고 다를 것이 없다. 하여 나는 절망한다." 유학정치가 국가의 정치이념이라는 나라가 이 모양이었는데 지금의 우리는 이념이라는 것이라도 있는가. 남과 북이 갈리는 것도 지랄 같은데 동(영남)과 서(호남)로 갈려 으르렁거리고, 친기업정부를 지향하는 정부와 유착된 부자들의 행태도 지랄들이다. 서민들도 큰소리 칠 것 없다. 이런 류로 쓰려면 끝이 없겠다. 우리 모임도 상대방을 배려하고 더 점잖아지면 좋겠다는 반성을 해본다.
4월 16일에 사고가 났으니 6월 4일 지방선거일이 49제를 지내는 날이다. 그들의 원혼이 화를 풀고 영면하게 되어야 할 텐데, 과연 한 번도 얼굴을 보여준 적도, 내려온 적도 없는 하나님이 그날은 내려오시려나? 친구들아, 꼭 투표해라, 현재 위로부터의 개혁을 기대할 수 없으니 아래로부터의 반란이라도 벌여보자. 한마당의 어지러운 춤이라도 춰보자.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3시 5분경 늦은 점심 식사를 마치고 도선사 쪽으로 하산하기 위해 위문을 지나 왼쪽으로 하산하게 되었다. 우리의 심정을 알아차린 하늘도 슬픈지 빗방울이 우리들의 발길을 재촉하고 발걸음을 분주하게 만들었다.
시산회가 8대 회장이 취임했으니 짧지 않은 세월이다. 지나간 시간을 반추하면서 반성 반 칭찬 반의 따뜻한 마음으로 그들에 대한 역할의 정의를 내리면서 한적한 길을 내려간다. 산중한담(山中閑談)이다. 초대 정남이는 땅을 고르고, 2대 세환이는 땅을 팠으니 3대 종화가 씨를 뿌렸다. 4대 재웅이는 물을 줬고 5대 경식이는 싹을 틔웠으며 6대 필자는 가지를 세웠단다. 7대 작이는 비료를 주었으며 8대 문형이는 입이 무성하도록 관리를 잘 했다니 9대 삼환이는 무었을 하려는지? 30대 회장이 되면 무엇을 해야 할까? 산우들의 상상력이 풍부해 끝이 없다. 하긴 길도 끝이 없다는데, 특히 산길은.
4시반경 도선사 입구에 도착했고 도선사 신도들을 나르는 버스에 500냥씩을 지불하고 승차하였다. 종점에 도착하여 자숙하는 의미에서 뒤풀이를 생략하자는의견이 나았지만, 그것을 생략하면 산행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협박에 뒤풀이 장소로 생맥주를 파는 통닭집을 선택해서 도로 옆 탁자에서 또 슬픔을 담은 건배! “이놈의 세상! 비라도 실컷 내려라”는 산우들의 망연자실한 심사를 아는지 빗줄기가 더욱 굵어진다. 비가 잦아들고 헤어질 시간이다. 마지막 수확은 10년 전, 2004년 10월 10일의 1회 도봉산 산행기를 근거로 8인의 발기인에 대한 논의를 끝냈다. 인사동 해인에서 모였던 김정남, 김종국, 박형채, 이경식, 이원무, 임용복, 최근호, 한양기 이상 8인의 발기인에 대한 거론은 다시는 하지 않기로 했다.
오랜만에 임 총장의 뚝심의 산물인 6시간의 긴 산행이었지만, 멋드러진 암봉들을 실컷 보면서 가슴이 만족하고 눈이 행복했던 산행 끝에 비도 적절히 피하며 등산을 마치니 밀려드는 성취감에 무거웠던 마음이 가벼워졌다. 텃밭에서 나를 기다리는 친구들이 반가워하는 봄 한철의 단비가 내리니 내일부터는 바빠지겠다. 어서 빨리 텃밭의 친구들을 보러 가야지. 비가 내린다. 남아 있는 사람은 살아야 한다.
시산회 산우들이여, 이제 자신의 건강은 물론 옆에 있는 친구도 건강하게 만드는 건강 전도사가 됩시다. 여러 산우들 덕분에 오늘의 기자는 즐거웠네 그려.
사랑하네들, 그리고 존경들하네!
2014. 5. 15. 송파에서 박형채 올림
3.산행지
광고 총산악회 봄 정기산행인데, 나이 드신 선배님들 위주로 코스를 골라달라는 간곡한 부탁이 있었다. 전에는 관악산을 자주 갔는데 어려웠던지 자주 불만을 털어놓으신 선배들을 위해 코스가 다양하며 계곡과 샘이 많은 곳을 정했다. 우리는 Y계곡을 지나 오봉샘에서 점심을 먹고 오봉을 지나 봄이라 한창 물 오른 여성봉에 올라 늙으막한 오르가슴을 느끼고 송추로 내려오자. 송추에는 맛난 갈비탕이 기다린다. 코스가 길어 완만하게 이어지는 산길이니 북한산 숨은벽 코스보다 어렵지 않지만 암릉미가 빼어난 산이고 최절정 코스이니 쉬엄쉬엄 가면 충분히 즐거운 하루가 될 것이다. 특히 영훈이는 꼭 올라야 한다. Y계곡을 오르지 않고 도봉산에 올랐다고 말하지 마라.
총산악회 정기 산행 행사에 약속대로 거금을 하사해주신 회원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고맙네, 산우들. 내 잊지 않고 재능 기부는 얼마든지 함세."
4.동반시
나의 자작시다. 중구구립도서관의 시 창작교실에서 지은 시다.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자면서 선생님이 시제로 선택해준 것이다. 현재의 사태를 보면 기가 막히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만 남은 사람은 살아가세. 이 시가 남은 사람들에게 조그만 위안이라도 됐으면 좋겠다.
행복 바이러스 - 행복을 위하여/김정남
작은 것이 더 아름답지만
큰 것을 이기니
힘든 봄, 바다
더 힘들어져도
모든 것은 다 그렇게 지나간다고 믿을 것
여태까지 그래 왔으니까
죽음이 다가 온다면
윤회 같은 허황한 것을 따지지 말며
새로운 세계로 여행 간다고 마음먹으면
얼마나 설레는 일인가
남겨진 사람은 기도와 명상을 즐길 것
비우고 빠르게 잊는 법을 가르쳐주니까
더 살다가
넘어지고 싶지 않으면 둥그렇게 살자
공은 굴러만 가니까
외로우면 시를 쓸 것
‘인간이 신에게 말을 걸면 기도
신이 인간에게 말을 걸면 정신병‘
시는 내가 내 안의 나에게 말을 거는 것
‘나마스떼’
시를 입에 물고 산에 오를 것
힘듦은 반이 되고
가슴에 담겨진 기쁨은 배가 되니까
‘나마스떼’
모두가 잘 되기를 빌어라
그러면 너부터 그리 되리라
불행은 쉽게 밟히고
행복은 더 빨리 퍼져간다
‘나마스떼’
*나마스떼 – 내 안의 신이 당신 안의 신에게 인사드립니다. 히말라야 부근 사람들의 인사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