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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불암산에 오릅니다(詩山會 제238회 산행)

불암산에 오릅니다(詩山會 제238회 산행)

 

산 : 불암산(510미터)

 

코스 : 상계역-제5등산로-정상-불암약수터-제3등산로-당고개역(변경 가능)

 

소요시간 : 3시간

 

일시 : 2014년 7월 13일(일) 10시

 

만나는 곳 : 전철 4호선 상계역 대합실

 

준비물 : 막걸리, 안주, 간식, 과일

 

연락 : 임삼환(010-2168-3700)

 

블로그 : blog.daum.net/yc012175

 

시산회 카페 : cafe.daum.net/yc012175

 

 

1.詩가 있는 時論

 

내 작은 비애 - 박라연(1951~ )

소나무는 굵은 몸통으로

오래 살면 살수록 빛나는 목재가 되고

오이나 호박은 새콤달콤

제 몸이 완성될 때까지만 살며

백합은 제 입김과 제 눈매가

누군가의 어둠을 밀어낼 때까지만 산다는 것

그것을 알고부터 나는

하필 사람으로 태어나

생각이 몸을 지배할 때까지만 살지 못하고

몸이 생각을 버릴 때까지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

단명한 친구는

아침 이슬이라도 되는데

 

나는 참! 스물 서른이 마냥 그리운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것이 슬펐다

 

시집<너에게 세들어 사는 동안>에서

 

 

-時評

메디컬 다큐멘터리를 보면, 의약의 급속한 발전을 실감하게 된다. 인간 수명 100세 시대는 이제 머지않은 것 같다. 결국 노년의 투병기간이 점점 길어진다. 온전치 못한 몸과 마음으로 오래 살기만 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자문하게 된다. 하지만 막상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을 때, 그것은 자신의 의지대로 선뜻 넘어설 수 있는 경계선이 아니다.

가족들이 환자를 이승에 붙잡아 두려고 온갖 노력을 다 하는 것도 임종을 인위적으로 연기하는 데 큰 몫을 한다. 누구도 어느 가족도 이런 상황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생각이 몸을 지배할 때”를 넘어서, “몸이 생각을 버릴 때”가 되어도 의약에 의존해 고통을 연장하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할까.
<김광규·시인, 한양대 명예교수>

 

-時論

우리의 여명(餘命)이 평균 나이로 본다면 대략 20년이 남았다. 20년 × 365일 × 하루 10시간의 활동 = 73,000시간이 된다. '73,000시간이나 남았다'와 '73,000시간밖에 남지 앟았다'는 심리적으로 굉장히 큰 차이가 있으니 산우들은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내 생각에는 돈으로 73,000원은 큰 돈이 아니듯 아무리 후하게 생각해도 긴 시간은 아니다. 하여 시간은 되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며, 흔적도 남지 않으니 덧없이 보내지 말고 잘 살아보자.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실천 가능하며 뚜렷한 목표를 세우고 촌음을 아껴가며 살아야 한다.

<도봉별곡>

 

 

2.산행기

의왕 백운산(詩山會 제237회 산행)

산 : 백운산(567m)

코스 : 의왕톨게이트-백운산-의왕톨게이트

소요시간 : 4시간

일시 : 2014년 6월 22일(일) 10시

참석자 : 임삼환, 고갑무, 이경식, 나양주, 김윤환, 김정남, 조문형, 기세환, 전작, 김종화, 박형채, 염재홍, 최근호, 정해황, 신원우, 나양주, 남기인(17명 무순)

 

이런 저런 핑계로 빠지기 시작한 산행이 벌써 몇 달째 결석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렇게 빠져선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종화가 내 마음을 읽은 걸까? 이번 산행은 현직에 있는 친구들 참석도 유도할 겸 의왕 백운산으로 하자고 하여 집행부가 의견을 수용하기로 한 것 같다. 어쩌면 이렇게까지 했는데 빠질 거냐는 무언의 협박도 내재된 듯싶다.

 

더구나 요즘 연일 문상을 다니면서 삶 속에서 나의 모습을 돌아보는 계기도 되었고 그 동안 보지 못한 친구들도 만나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특히 며칠 전 광주고등하교 20회 동창인 고 ‘김천수’ 친구를 영영 작별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였다.

 

집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의왕 톨게이트까지 집사람이 태워주어 편하게 갈 수 있었다.

내가 맨 먼저 왔겠지 했는데 기세환 산우가 이미 테이프를 끊은 후였다. 예나 지금이나 별로 변하지 않은 기세환 친구의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나는 많이 주름졌는데 말야--)

 

白雲 靑山은 옛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아이콘 아닐까? 흰 구름과 푸른 숲은 우리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힐링의 도구일지도 모른다. 비록 하얀 뭉게구름은 아닐지라도 적당하게 덮은 구름과 숲속 길을 따라 정다운 이야기를 나누면서 오르다가 힘들면 길가에 주저앉아 막걸리 한잔 나눠 마시고 힘들게 준비해온 산해진미 안주를 친구 입에 넣어주는 훈훈한 인정으로 詩山은 날로 발전하고 있는 것 같다. 멀리 담양 고향에서 어렵게 준비해온 죽순을 직접 삶아온 임 총장의 시산 사랑에 무한한 찬사를 보낸다.

 

의왕 톨게이트에서 김종화 친구가 저기 보이는 능선을 따라 오를 것이라고 설명할 때는 힘들지 않게 오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날씨가 무더워서이기도 하겠지만 아직까지 다리가 뻐근하다. 백운산의 거의 정상 부근에 한 때 기름 누출로 문제가 되었던 미8군 메이슨 부대가 위치하고 있다. 상당 수 친구들이 메이슨 부대까지 갔을 때 이제 그만 갔으면 하는 눈치를 보였으나 강력한 임 총장의 명령에 누구도 거역하지 못하고 힘든 다리를 이끌고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누구나 힘들면 쉬고 싶고 졸리면 자고 싶겠지만 어디 세상사가 그렇게 녹녹하던가. 때로는 강력한 리더가 민초들을 옳은 방향으로 이끌어 줄 때 역사는 발전하지 않을까 한다. 간혹 일부 정치가들이 선거 때마다 세금, 병역, 근로, 교육에 대하여 선심 공약하는 것을 보게 된다. 세금 많이 내고, 일 많이 하고, 군복무 오래 하고, 공부하기 좋아하는 사람 별로 없으므로 함부로 이 부분은 건드리지 않아야 한다. 아무튼 임 총장의 강한 추진력으로 백운산 정상을 밟았고 그곳에서 정상주를 나눌 수 있었다.

 

참가인원이 많아서도 그렇기도 하겠지만 정상에서 펼친 갖가지 음식은 가히 잔칫집을 연상할 정도였다. 항상 산우들을 위하여 아침 일찍 시장에 들러 해물을 준비해오는 김정남 전회장의 시산회 사랑이 바탕이 되어 오늘의 시산회가 되지 않았을까?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무엇보다 시산회 산우 서로가 친구를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이 모여서 시산회는 발전하고 있을 것이다. 정상에서 식사를 마치고 깨끗이 자리를 청소하고 남아있는 쓰레기봉투를 기꺼이 배낭에 담고 내려오는 윤환이의 모습도 아름다웠다. 이런 작은 실천이 역사를 올바르게 발전시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젊은 나이에는 나이 먹음을 자랑하였건만 어느새 우리 모두는 늙음을 피하고 싶은 나이가 되고 말았다. 누군가 정상 담소에서 “여기에 60넘은 사람 있냐”는 물음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아 모두 박장대소하였다. 어떤 친구는 시산회 정관에 60세 이상은 자동 탈퇴하자고 말하기도 한다.

 

 

산 안에 또 산이/마종기

 

산 안에 또 산이 하나 있구나.

 

눈앞에 보이는 산 안에

 

숨어사는 산이 있으니

 

산에 오르면 싱싱하게

 

산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구나.

 

거친 산의 피부 안에

 

깊고 부드러운 산냄새.

 

 

물 안에 물이 없으면

 

우리들이 물 안에 보일리도 없겠지.

 

바다에 혼자 나가서도

 

멀리서 오는 말을 들을 수가 없겠지.

 

 

그러니 내 속에 내가 있는 것도 할 수 없겠지.

 

내 속에 숨어 사는 나보다 작은 목숨,

 

조용하면 들리는 말소리의 혼.

 

 

오늘의 산행시, 낭독을 하면서 뜻을 생각해보았는데 선뜻 다가서지 않는다. 내 속에 있는 나는 누구일까? 때로는 욕망, 그리움, 비양심 그리고 천사도 간혹 있을 것 같은데--- 알듯 모를 듯하다.

 

산에 오르면서 요즘 불학(佛學)공부에 열심인 정남이가 득도에 대하여 설명한다. 모든 인간에게는 불성(佛性)이 있는데 참선을 하거나 명상을 열심히 해서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불성과 만난다는 것이다. 즉 부처가 된다는 것인데 듣는 순간은 이해할 듯하다가 돌아서면 머릿속이 비어 버린다. 부처님에게 드리는 절은 삼배인데 탐.진.치 삼독을 없애겠다는 의미이며, 오체투지는 삼독과 질투, 교만을 합쳐 오독을 없애겠다는 의지로 본다는 것이니 이것은 상식으로 알아둘 일이다. 남양주에 있는 봉선사 앞에 ‘차나 한 잔 하게’라는 상호의 찻집이 있었다.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지만---. 어느 날 불자 한 사람이 스님을 찾아와 묻기를 “스님 도가 무엇입니까”하고 물으니 스님이 “차나 한 잔 하게”라고 했다하여 그 이름을 사용한다고 설명하던데---. 그냥 어려운 이야기 접어두고 산에나 오르세.

 

며칠 전 고등학교와 대학을 함께 다녔던 20회 김천수 친구를 떠나보냈다. 그 친구와는 많은 애피소드가 있는데 우리 시산 친구들에게 그 소식을 전하고 마지막으로 그를 추도하는 기회를 삼고자 한다. 대학 생활 중 그 친구와는 자주 만나고 술도 자주 마시는 사이였다. 한 번은 이른 아침이었는데 누군가 길가 쪽으로 나있는 내 방 창문을 두드려서 열고 보니 천수가 어서 나오라고 한다. 무슨 급한 일인가 해서 나갔더니 지금 막걸리 한 말 값을 가지고 오란다. 갑자기 이른 아침에 어인 막걸리 한 말 값인가 했더니 어제 밤에 나를 만나러 우리 집에 왔는데 내가 없어서 기다리다가 골목 입구 막걸리 집에서 밤새 술독에 있는 막걸리 한 말을 모두 비웠다는 것이다. 주막집 아줌마가 전날 받아놓은 술독을 모두 비웠다고 해서 할 수 없이 한 말 값을 대신 치룬 적이 있다. 그 외에 이 친구가 술 마시고 버스에서 내리다가 뒤로 넘어져 뒷머리가 깨져 수술을 해야 하는데, 치료비를 미리 납부하지 않으면 수술 할 수 없다고 해서 병원에 내 시계를 저당 잡히고 뒷머리를 몇 바늘 꿰맨 기억도 있다. 기가 막히는 것은 실밥을 빼기도 전에 또 술 마시는 것을 보고 잔소리 하다가 싸운 기억도 난다. 원래 이 친구가 혈압이 높아서 현역 소집이 면제되는 대상인데, 논산 훈련소에서 혈압이 안정 될 때까지 무려 15일간을 대기병 생활했다고 할 정도로 과음해서는 안 되는 친구임에도 불구하고 술을 자제하지 못하였던 것 같다.

 

그 친구가 결혼 한다고 해서 갔는데 글쎄 내가 잘 아는 친구의 동생이 아닌가? 그 신부의 오빠는 중고등학교 6년을 함께 공부한 친구(비밀)였는데 내가 그 친구 집을 갈 때 자주 천수가 동행했던 것 같은데 어느새 그런 관계까지 갔는지 절친인 나도 전혀 모르게 발전했던 것이다. 그래서 남녀 관계는 알 수 없다고 하는지---. 조문하면서 친구 동생인 천수 부인이 마주 앉았지만 정말 뭐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만감이 교차함을 느꼈다.

 

김천수는 인천의 어느 중학교 교감으로 재직 시 형수가 돌아가시어 문상하고 오는 중에 차속에서 돌연 뇌졸중을 일으켜 병원에 실려 갔으나 그 길로 반신불수의 몸이 되고 말았다고 한다. 언젠가 내가 병원을 찾았을 때 휠체어에서 일어나 자랑스럽게 약 7-8m를 걸어 보이면서 나에게 자랑하기도 하고, 조금씩 발전된 모습을 보이는 듯 하였으나, 워낙 입원기간이 길고 생활의 활력이 없어서 인지 그 다음부터는 전혀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언젠가는 내가 마음먹고 잔소리를 하였다. “네가 살고 싶으면 퇴원해서 컴퓨터라도 접하여 세상과 소통하면서 살아라”라고 했더니 버럭 화를 내면서 “가 버려 **야!” 한다. 몇 마디 위로 해주고 오면서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 그 날의 기억이 너무 생생하다. 그래도 좀 더 잔소리 하면서 삶의 희망을 놓지 않게 했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도 있다.

 

그 친구가 나에게 어떠한 경우라도 희망의 끈을 놓지 말라고 교훈을 주고 간 것 같다. 우리 시산 친구들 모두 앞으로 살아갈 날이 멀지 않은가? 친구가 어려울 때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친구가 되도록 노력하세.

 

백운산 산행은 입산 지점으로 다시 내려와 광역버스를 타고 사당역으로 가서 나양주 산우가 추천하는 생선조림으로 뒤풀이를 하였다. 땀을 흘리고 마시는 맥주 첫잔은 이 세상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것이다. 우리는 그 진미를 사기 위해 3시간을 백운에 오르고 내려왔다. 다음 7월 13일 산행은 불암산으로 결정하였다.

 

퇴직하여 서울 생활을 접고 경기도 화성에서 생활이 벌써 6년이나 되었다. 여러 가지로 불편한 점이 많은데 무엇보다 친구들과의 약속이 대부분 서울에서 잡히다 보니 때로는 참석이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회장님, 총장님의 너그러운 이해를 바란다.

 

친구가 소중하고, 건강이 가장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새삼 되새기며 우리 시산 친구 모두 건강하게 자주 만나기를 기원한다.

 

파이팅!!!

 

2014. 7. 1. 경기도 화성에서 시산회원 남기인 씀

 

3.산행지

의왕 백운산에서 정한 대로 불암산에 오른다. 그러고 보니 요즘 부처님 얘기가 자주 나오네. 이해들 하시게. 지난 가을에 비가 와서 오르지 못하고 내려왔으므로 다시 간다는 의미로 정했으며 매우 쉬운 코스이니 많이 참석해주기 바란다. 코스 변경이 가능하다니 정상에 올라서 정할 일이지만 삼육대 쪽으로 내려와 통추어탕을 먹고 오는 코스도 좋다. 하산해서 굴찜을 맛나게 먹은 기억이 새롭다. 다만 굴 시절이 아니어서 아쉽다.

 

4.동반시

처음에는 시산회 김용우 시인의 '여름의 무게'를 올리고, 다음에는 나의 자작시 '아침신문-눈 뜨면'을 올릴 예정이었는데 다음으로 미루고 오늘 도서관 시 창작교실에서 애송시 시간에 한 분이 낭송한 시를 선택했습니다. 내 어머님이 살아 계시면 백살이신데, 문득 생각나서, 회한을 이기지 못해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낭송한 분도 여러 번 중단했지만 끝까지 낭송했습니다. 우리들 시대의 어머님들은 이렇게 사셨지만 현재의 자기는 이렇게 살지 못한다고 반성한다고 했습니다. 불암산의 정상에서 이 시를 낭송하면서 어머님을 가슴에서 꺼내 꼬옥 안아드립시다. 어. 머. 니.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심순덕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 썩여도 전혀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줄만-

 

한밤 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2014. 7. 9. 신당도서관에서

 

詩를 사랑하는 山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도움쇠 김정남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