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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수리산 태을봉(詩山會 제252회 산행)

수리산 태을봉(詩山會 제252회 산행)

산 : 수리산(489미터)

코스 : 명학역-성문교회-관모봉-태을봉(하산길은 거기서 결정)

소요시간 : 4시간

일시 : 2015년 1월 25일(일) 10시 30분

만나는 곳 : 1호선 명학역 대합실

준비물 : 막걸리, 안주, 간식, 과일

연락 : 위윤환(010-6230-3180)

블로그 : blog.daum.net/yc012175

시산회 카페 : cafe.daum.net/yc012175

 

 

1.詩가 있는 時論

오래 된 지갑을 열며/도봉별곡

 

신혼여행 끝에 내민 작은 지갑

작은 게 더 비싼 거 아시죠!

어느 신발보다 비싸다는 걸까

 

2달러 지폐는 무슨 의미일까

아빠는 더 벌지 않아도 된다던 애가, 설마

더 많이 벌어서 남겨 달라고?

나이 들어

필요 없는 사람에게 무슨 실례의 말씀을,

돈은 필요한 사람이 가져야지

내가 욕심을 낸다는 것은

필요한 사람의 몫을 빼앗는 거란다

 

살다보니 산 너머 산은 오히려 쉬운 길

사막이 가로막힌 적이 한두 번이었던가

이뤘다 싶으니 또 안에 문이 있어

집에만 문이 있는 게 아니다

지갑에도 여러 개의 문이 있다

 

오래 된 지갑 속 마나님은 큰 사진

두 딸은 작은 사진으로

보기 쉬운 곳에 있으니

내 재산목록 영순위다

 

지갑은 돈을 모으고 간직하라고 있는 게 아니라

쓰라고 있는 거란다

지갑의 문은 항상 열려있어

쉽게 들어오거나 쉽게 나가도 좋은 구조니

어차피 다 쓰지도 못할 것들

네가 더 채워주렴

 

혹여 더 좋은 곳에 쓸 수 있다면

모두에게 좋은 일

‘모두가 잘 되기를 바라면 네가 먼저 잘 된다’*

 

*붓다의 황금률

-시 창작 교실의 시제가 ‘가방’이어서 지어본 시다. 작은딸이 스위스와 이탈리아로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엄마에게는 큰 가방을 건네고 내게는 작은 지갑을 주면서 미안해서 한 말이 생각나서 썼다. 몇 개의 여분이 있어 필요하지 않는 것인데 고이 간직했다가 소중하게 써야겠다. 내 시는 관념적이어서 시풍을 바꿔보는 게 좋겠다는 선생님의 당부가 있었다. 일종의 생활시다. 죽을 때까지 써야하니 바꾸는 것도 좋겠다. 돈이란 필요한 사람이 가져야지 별 필요가 없는 사람이 욕심내서 더 갖는 것은 삶의 지혜와 이치에 벗어나는 것이다.

<도봉별곡>

 

2.산행기

 

제251 도봉산 시산제 산행기/고갑무

 

시간 및 집결장소: 2015. 1. 11.(일) 10 : 30분 7호선 도봉산역

 

참석자: 18명(산행인원 16명, 뒤풀이 참석인원 2명)

 

산행지: 도봉산 만장봉 아래 명당자리

 

동반시: 자연(自然)/이성복

 

뒤풀이: 굴사냥집(생굴, 굴찜, 굴떡국, 주류 등)

 

靑羊의 해 을미년 새해가 밝았다. 지난 갑오년 한해는 정말 다사다난한 한해였던 것 같다. 우리 모두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전 국민을 슬픔에 빠뜨린 세월호 사건 등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려오지만 이런 사건을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다시는 이런 원시적이고 후진적인 사고가 재발되지 않도록 관련 법령과 제도가 정비되어 안전선진국의 기반이 확고하게 정립되고 모든 국민이 사고 없는 안전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면 돌아가신 영령들도 조금은 마음의 위안을 받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 시산회가 지금까지 큰 안전사고 없이 산행을 해 왔던 것은 역대 회장단의 안전에 대한 뚜렷한 목표의식과 우리 산우들의 안전을 최우선시하는 산행자세도 한 몫을 했지만, 그래도 대한민국 최고의 명산 도봉산의 만장봉 아래에서 좌 선인봉 우 자운봉의 영험한 기운을 받으며, 우리 산우들이 정성들여 장만한 祭物과 우리의 염원을 잘 담아 해마다 시산제를 지냈기에 우리의 정성을 가상히 여긴 산신령께서 이를 흡족히 생각하시어 우리의 안전을 책임져 주셔서 가능한 일이라 여겨진다. 내년부터 祭主로 선정된 산우는 시산제 전 목욕재계하고 특히 색을 멀리하고 경건하고 정결한 마음으로 祭主 역할을 하여줄 것을 요청하는 바이다.

 

본래 청색은 복을 기원하고 행운과 긍정의 의미를 내포하며 진취적이며 신뢰감을 주는 색상이라 금년 한해는 우리 시산회 산우 여러분 모두에게 다복하고 행운이 일 년 내내 함께하는 그런 한해가 되기 바란다. 또한 양의 특징은 법 없이도 살 정도로 착하고 온순함을 나타내는데 너무 부드럽고 온순하면 자칫 우유부단한 모습으로 비쳐질 수도 있으니 이 또한 우리들이 경계하며 살아야 할 것 같다. 윤환이 친구는 옆에서 지켜보면 말수가 많은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달변도 아닌 조용한 친구로 생각했는데 어제 우리 시산회 산우들에게는 중차대한 문제라 할 수 있는 산행기 건을 주제로 격의 없는 토론을 주관하면서 내가 보기에는 상당한 대중장악력과 함께 회의를 큰 동요 없이 이끌어 가는 것을 보면 단언컨대 절대로 양띠는 아닌 것이 확실하다.

 

각설하고 산행기를 테마로 많은 산우들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였고 나 역시 산행기의 본 모습이 뭐일까 새삼스레 궁금하여 인터넷 검색을 하였더니 많은 사례를 접할 수 있었고 그 중에서도 가을 주왕산을 주제로 작성한 산행기를 읽어 보았는데 작성자는 가을 주왕산의 이모저모를 예쁜 사진으로 담고 산행을 하면서 보이는 주위의 아름다운 모습이나 본인의 느낌을 한줄 또는 몇 줄로 요약해서 적어 놓았는데 사진을 보는 재미도 좋았고 문장이 길지 않아 작성하기에도 편해 보였다. 아마 무엇을 쓰는 것에 쉽게 마음이 내키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런 식의 사진위주로 자신의 느낌이나 감정을 정리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단 조건이 있다 사진을 그럴 듯하게 찍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진은 영 아니올시다 인데 설명하는 말만 주옥같으면 무얼 하겠는가! 집돼지 아무리 처발라도 절대로 꽃돼지 되는 것 아니다.

 

금년까지 시산제 산행기만 내리 세 번째 작성하는 거라 마음 같아서 일시와 참석자 그리고 날씨하고 뒤풀이장소 등만 살짝 바꾸어 ‘작년과 同一,’ 이렇게 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면 분명히 성의 없다고 핀잔할 사람이 있을 것 같아 맘 약한 내가 다시 쓰기로 하였다. 금년 들어 한 살씩 더 드셨기 때문에 맘만 청춘이지 몸은 천근만근 무거울 우리 산우들 어제 시산제에서 치성을 드리는 맘이 여느 때와는 달리 지극정성이고 간절하였을 것만 같다. 금년 한해도 무탈해서 頂上에서 먹는 음식을 기막히게 소화시켜 오장육부 건실하고 하산할 때 잘 살펴서 顚倒사고 없게 하고 뒤풀이 집 음식솜씨 혀를 살살 녹이도다. 거기다가 금상첨화 주인마님 어여쁘니 입도 호강 눈도 호강 이 아니 기쁠쏜가! 세상만사 어렵지만 천국이 따로 없네.

 

어제 시산제를 위해 준비해온 플래카드를 걸어놓고 모두들 祭 준비에 한 참 바쁠 때에 누군가가 플래카드에 詩자가 時자로 적혀 있는 걸 지적하고 다들 한바탕 웃었는데 정작 플래카드를 준비한 총장은 실수했다고 미안해하는 표정을 짓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굳이 미안해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사실 말씀 ‘언’이 날 ‘일’로 바뀌면서 시간을 의미하고 있고 거기다가 한글 음은 동일하다. 결국 우리의 시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깊어지고 원숙해지면서 눈으로만 읽는 시가 아닌 마음으로도 시를 느낄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시산회가 정말로 시를 사랑하고 시를 이해하는 산사나이들의 모임으로 완성되려면 역시 시간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간파한 총장님의 사려 깊은 행동으로 이해하고 싶다(아부가 좀 심했나?).

 

이제 60대 초반에서 중반으로 넘어가는 우리 친우들! 이제 우리도 노년의 삶과 생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나이에 접어들고 노후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친구들 아닌가! 건강이 뒷받침되고 항상 지근거리에서 만나 허심탄회하게 속마음을 열어 보일 수 있는 자네들이 있어서 정말 반갑고 고맙네. 금년 한해도 모두들 건강관리 잘해서 내년 원숭이해에도 어제처럼 웃고 떠들고 원숙한 노년의 삶을 노래하고 즐길 수 있는 그런 한해가 될 수 있으면 좋겠네. 그리고 내년에는 제발 내가 시산제 산행기는 안 쓰면 좋겠네. 시산제가 무서워지네.

 

2014. 1. 12 고갑무 씀

 

3.산행지

 

예년의 방식대로 정하다보니 서울의 아래쪽이다. 10시에서 10시 반으로 시간을 30분 늦췄으니 정한 시간에 출발한다는 총장의 엄명이 있었으니 잘 지키자. 산의 높이도 낮아져 가고 시간도 늦춰지는 것으로 봐도 도저한 세월의 흐름을 거슬리기 힘들어 지는 나이가 됐다. 산행기는 위 총장이 명료하게 회의를 주재하여 결론이 났다. 그 중 가장 감명 깊었던 의견은 전작 산우의 “시산회의 정체성은 산과 시와 산행기를 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였으니 향후 10년은 더 거론하지 말자. 나이 들어 갈수록 중요한 것은 가족과 친구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으며, 산우들이 자주 하는 말 중에 세월의 지혜와 삶의 향기가 짙게 묻어나는 것, “우리가 산 보러 가는가, 친구 보러 가지”, 뒤풀이 때 자주 나오는 건배사, ‘이 멤버, 리멤버“, ”우리가, 남이냐“, ”시산회여, 영원하라“. 나도 생굴과 한과 싸들고 산우들 보러 갈란다. 반갑게 보자.

 

4.동반시

세 편 올리니 총장이 알아서 가져오시게.

 

그런 건 없겠지만, 사랑이여/박정대

 

그런 건 없겠지만, 사랑이여 그대가 없어도 혼자 담배 피우는 밤은 오네

보르헤스의 책을 펼쳐놓고 <꿈의 호랑이들>을 읽는 밤은 오네

밤이 와서 뭘 어쩌겠다는 것도 아닌데 깊은 밤 속에서 촛불로 작은 동굴을 하나 파고 아무도 읽지 않을 시를 쓰는 밤은 오네

창 밖에는 바람이 불고 가끔 비가 내리기도 하겠지만

내 고독이 만드는 음악을 저 홀로 알뜰히 듣는 밤은 또 오네

한때 내가 사랑했던 그대, 통속소설처럼 떠나간 그대는

또 다른 사람 품에서 사랑을 구하고 있겠지만

이제는 아무리 그대를 생각해도 더 이상 아프지도 않아

나는 아프네, 때로는 그대와의 한 순간이 내게 영원으로 가는 길을 보여줬으니

미안해하지 말게, 사랑이여, 그런 건 없겠지만, 그래도 사랑이여

그대에 대한 짧은 사랑의 기억만으로도 나는 이미 불멸을 지녔네

 

젖지 않는 마음 - 편지ㆍ3 /나 희 덕

 

여기에 내리고

거기에는 내리지 않는 비

당신은 그렇게 먼 곳에 있습니다

지게도 없이

자기가 자기를 버리러 가는 길

길가의 풀들이나 스치며 걷다 보면

발 끝에 쟁쟁 깨지는 슬픔의 돌멩이 몇 개

그것마저 내려놓고 가는 길

오로지 젖지 않는 마음 하나

어느 나무그늘 아래 부려두고 계신가요

여기에 밤새 비 내려

내 마음 시린 줄도 모르고 비에 젖었습니다

젖는 마음과 젖지 않는 마음의 거리

그렇게 먼 곳에서

다만 두 손 비비며 중얼거리는 말

그 무엇으로도 돌아오지 말기를

거기에 별빛으로나 그대 총총 뜨기를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自畵像)/조용미

 

폭우가 쏟아지는 밖을 내다보고 있는

이 방을 능우헌(凌雨軒)이라 부르겠다

능우헌에서 바라보는 가까이 모여 내리는

비는 다 직립(直立)이다

휘어지지 않는 저 빗줄기들은

얼마나 고단한 길을 걸어내려온 것이냐

 

손톱이 길게 쩍 갈라졌다

그 사이로 살이 허옇게 드러났다

흰 삼베옷을 입고 있었다

치마를 펼쳐들고 물끄러미 그걸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입은 두꺼운 흰 삼베로 된 긴 치마

위로 코피가 쏟아졌다

입술이 부풀어올랐다

피로는 죽음을 불러들이는 독약인 것을

꿈속에서조차 너무 늦게 알게 되었다

 

속이 들여다보이는 창(窓)봉투처럼

명료한 삶이란

얇은 비닐봉지처럼 위태로운 것

명왕성처럼 고독한 것

직립의 짐승처럼 비가 오래도록 창 밖에 서 있다

 

2015. 1. 22.

詩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도봉별곡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