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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남산 송년 산행(詩山會 제275회 산행)

남산 송년 산행(詩山會 제275회 산행)

산 : 남산(262미터)

코스 : 남산한옥마을-남산 순례길

소요시간 : 3시간 반

일시 : 2015. 12. 27. (일) 오전 10시 30분

모이는장소 : 전철 3·4호선 충무로역 1번 출구 대한극장 앞/한옥마을은 3번 출구

준비물 : 막걸리, 안주, 간식, 과일

송년 모임 장소 : 종로5가역 4번 출구 80미터 대창수산 횟집 5시

연락 : 위윤환(010-6230-3180)

카페 : cafe.daum.net/yc012175

블로그 : blog.daum.net/yc012175

 

 

1.반성과 회한을 담은 시론(時論)

 

천축사 범종각(梵鐘閣) / 도봉별곡

 

가을 한 철 떠도는 하늬바람 한 줄기 능선 너머 골 타고 흐르다 선인봉(仙人峰)에서 우뚝 선다 그 사이 상수리나무·굴참나무·갈참나무·졸참나무·신갈나무·떡갈나무는 도토리 떨구고 산국·감국·뇌향국·구절초·갯국화·개미취·쑥부쟁이 짝 지우고 지친 가을잎 다독이다 곤줄박이·박새·동고비·직박구리 깃털 세운다 오늘 밤은 어느 그늘에서 뜨거운 달빛 가리나 불상 안에 붓다 없듯이 절 안에 법(法) 없다 사하촌(寺下村) 곡차 파는 집 들어가 한 모금 마시고 醉禪 즐기면 졸고 있는 풍경소리에 더 취하고 목탁 소리에 깨기 전에 자! 梵鐘閣에서 한바탕 놀아보자 까까중머리 쓰다듬으며 놀아보자 감로수 술 빚어 銅鐘 거꾸로 잡아 술잔 삼고 木魚는 푹 삶아 생선찜 만들고 法鼓는 소고기전 부치고 雲版은 구름과자 법어(法語) 되어 법당 앞 흰 잣나무는 그만 자라라 사천왕도 무섭지 아니하고 一柱門 기둥이 하나인가 둘인가 不一不二不異卽化一如 하나도 둘도 아니니 다르지도 않다가 싸우다 지쳐 한가운데 길로 나간다 차가워진 달 무너져 내리는 밤 발우(鉢盂)는 비었고 붓다의 얼굴 닮은 달빛은 넘쳐난다 오백나한의 박수 받으며 나서는 산문(山門) 혜초의 천축국은 여기서 얼마나 멀까 혜초의 신라만큼 멀까 혜초의 17년에 당신의 붓다와 나의 붓다가 바뀐다

 

 

 

토요일 공부 모임 선유식회(禪唯識會)에서 가진 여름 단식 명상에 다녀온 후 당혹스런 현상과 일이 벌어졌다. 명상이란 마음을 진리의 공간 혹은 자신이 가장 중요한 가치를 두는 것에 몰입시키는 수행의 하나인데 너무 몰입했는지 전에 보이지 않는 현상이 일어났다. 명상의 방법은 유식참선의 방식이므로 눈을 감지 않으며 자세에도 신경을 쓰지 않고 편한 자세를 취한다. 붓다는 명상의 자세에 관하여 평생 거론한 적이 없다. 가부좌는 우리의 신체적 조건에도 맞지 않으며 남방불교에서는 편한 자세를 취하며, 의자에 앉아서도 명상을 한다는 것이다. 한국빨리어성전협회 회장 전재성 박사의 주장이다.

 

특히 새벽 명상 때 나타나는 현상은 거론하기 부담스럽고, 시를 쓰는 게 돈이 안 되지만 본업인데 명상과 시 쓰기는 뇌의 주파수가 틀려서인지 우선순위에서 밀려 시 쓰기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명상은 여실지견(如實知見 : 있는 그대로 보아라), 시는 상상력의 비실재적 영역이라 엄연히 다른 점은 인정하지만 명상에 몰두하게 되니 시는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그렇다고 심각하게 고심한 적도 없다. 때가 무르익지 않았으므로 무작정 기다렸다. 문집의 마감일이 다가오자 새롭게 쓴 시는 없으니 전에 써놓은 시는 마음에 들지 않아 고쳐서라도 올려야 하는데 자괴(自愧)와 포기 사이에서 헤매다가 잠시 명상을 끊었더니 새롭게 쓰는 것은 어렵더라도 전에 쓴 시는 고쳐지는 게 아닌가. 겨우 6편을 고쳐 올리고, 망설이지 않고 다시 명상 모드로 돌아갔다. 문집에 올린 시 중의 하나, 산문체로 쓴 시다.

 

법당의 불상, 오백나한상, 법당의 풍경과 범종각의 四物 동종, 목어, 법고, 운판을 두고 희롱했으니 수행의 방편이라지만 붓다의 노여움이 하늘까지 닿았다면 벌을 받아도 싸다. 혹시 아는가, 답답함을 풀기 위한 나름의 방편으로 시도한 것이므로 본심은 아니었으니 자비의 화신께서 용서해주실지. 희망은 내년에 바라고 내 인생에 하나의 방점을 찍은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 영원히 다시 오지 않을 그대여, 부디 잘 가시게.

<도봉별곡>

 

2.산행기

詩山會(제274회) 무등산 산행기(2015. 12. 13 (일) / 이원무)

 

참석자(15인) : 고갑무, 김정남, 남기인, 나창수, 박찬재, 임삼환, 임용복, 위윤환, 이경식, 이원무, 이재웅, 정해황, 조문형, 최근호, 한양기(뒤풀이 : 정한, 김종국, 박시건) 이상 18인의 山人

 

산행코스(10여 km ) : 산장입구 – 서석대 중봉 갈림길 – 장불재 – 중머리재 – 증심사 입구

 

소요시간 : 4시간 40분

 

일시 및 집결지 : 2015. 12. 13(일) 오전 7시. 사당역, 양재역

 

뒤풀이 장소 : 미진옥 생선구이집

 

오늘 산행 코스는 당초 서울 삼성산으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평소 우리 시산회에 초창기부터 관심이 많고 지금까지 꾸준히 후원을 해온 김동주 동창 회원의 장인상과 겹쳐 회장단에서 광주 김동주 장인상 조문 겸 무등산 산행으로 회원의 의견을 수렴하여 실행하게 되었다. 개인 사정상 시산회 산행에 자주 빠진 본인은 평소 산행과 달리 이른 시간인 오전 7시에 늦지 않으려고 서두르다 보니 20분 일찍 도착하여 승차하고 있는데, 조 총장이 호출해, 과일 및 음료수 몇 박스를 차에 같이 싣고 나니 산행 회원이 하나, 둘, 총 13명이 약속시간에 맞춰 승차하여 오전 7시에 사당역을 출발, 10분 후 양재역에 도착하여 4명을 더 승차시킨 후, 경부 고속도로와 천안-논산 고속도로와 호남 고속도로를 달려 10시 50분경 광주 하남 소재 스카이 장례 예식장에 도착하였다.

 

도착해 보니 이동석, 정한, 박찬재 등 동창들이 먼저 와 있었고 우리는 단체로 김동주 장인 상가에 들려 김동주 부부와 간단히 인사한 후 단체 조문을 하였다. 시산회 창설 이래 버스를 이용, 단체 장거리 조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생각된다. 조문 후 김동주 회원으로부터 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호상임을 알았고, 30분 정도 식사와 음료를 하고 11시 30분경 무등산으로 이동하여 12시경 무등 산장에 도착하여 하차, 무등산 등산코스 게시판에 모여 상의하여 중봉사거리-장불재-중머리재-증심사입구 코스를 향해 도로를 쭉 따라 트래킹하기로 결정하고, 임용복 산우가 앞장서서 오르게 되었다.

 

겨울 날씨 답지 않게 바람기 없는 봄 날씨처럼 따뜻하여 등산객이 생각보다 많이 눈에 띄었다. 한 산우가 무등산 등산객이 서울 북한산 다음으로 탐방객수가 많아 3년 전(2012. 12. 27)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고 귀띔한다. 과거 30년 전, 70년대 후반에 필자가 육군 포병학교 교관 재직 시절 장교과정 피교육생을 인솔하여 무등산 정상에 군사시설을 견학한 적이 있는데 그 당시에는 중머리재 이상은 군사제한, 보호구역으로 묶여 일반인 입산 통행이 금지되었으니 정상 부근은 당연히 등산 허가가 나지 않았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이렇게 일반인에 개방하게 되어 정상까지 자유로운 산행이 가능하니 무척 감개무량할 뿐이다.

 

무등산(1186.8m)은 화순군지역(21%), 광주광역시 지역(63.1%), 담양군 지역(15.9%) 총 75.4 km2 로 3개 지역에 걸쳐있는 국립공원이며 국비 190억원 예산 규모로 지원되고 있다. 무등산을 주상절리와 함께 특별한 산으로 만드는 것은 너덜이라는 지형이다. 너덜은 주상절리들이 붕괴되면서 나온 바위들이 식생에 의해 덮이지 않고 넓은 면적에 걸쳐 펼쳐진 지형이다. 또한 원효 계곡, 증심사 계곡, 덕산골, 용추 계곡 등의 계곡과 원효 폭포, 용추 폭포, 사무지기 폭포가 있으며 주요 역사 문화 자원으로는 천연기념물 제 465호인 무등산 주상절리대와 중요 민속 문화재 제 111호인 김덕령 장군의 의복 등이 있으며, 증심사, 원효사, 약사사 등의 전통사찰이 있다. 2013년 현재 탐방 코스는 총 6개이고 산 정상은 천왕봉, 지왕봉, 인왕봉 등 세 개의 바위봉으로 이뤄져 있는데, 최고봉인 천왕봉 일대 및 서석대, 입석대, 규봉 등은 오육각형의 암석 기둥 모양의 주상절리가 석책을 두른 듯 치솟아 있다. 특산물로는 무등산 수박과 증심사 주변 산비탈 춘설차 등이 유명하다.

 

중봉사거리에 이르자 서석대와 중봉, 입석대가 눈에 들어올 만큼 가까운데 오늘은 갈 수 없는 곳이 되었으니 산우들의 아쉬움이 표정에 나타난다. 우리의 모교는 무등산을 등지고 앉아 등교할 때 무등산의 웅지를 품고 자랐다. 넉넉한 어머니와 듬직한 아버지의 모습을 닮았으니 우리에게는 무등산은 항상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고향을 떠났다고 자랑스런 광고인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살았다. 그런 우리에게 비루한 마음을 갖지 않게 해준 무등산과 광고에게 무한한 경의를 표한다.

 

서석대를 뒤로 하고 장불재를 향해 가니 억새꽃은 떨어졌지만 억새의 흔적은 남아있다. 시간이 넉넉하면 내친김에 규봉까지 가면 좋겠다는 한 산우의 탄식에 모두 공감한다. “그래 건강하자, 그러면 기회는 꼭 올 것이다” 고 말하는 위 총장의 표정은 단호하다. 억새가 풍성해지는 가을에는 규봉까지 가보자는 희망을 안고 중머리재로 가는 길로 접어든다. 잠시 귤을 먹으며 쉬는 시간에 나오는 화제들은 거의 학창시절의 아련한 추억담이다. 물론 연애담과 산행담이 단골 메뉴로 계속 이어진다. 추억담으로 밤을 샐 수 있겠지만 서울까지 가야 하는 우리들의 갈 길은 멀다. 모두 갑자기 서두른다.

 

거대하고 신령스런 당산나무를 지나 증심사로 접어드니 감나무에 빨갛게 매달린 감은 우리를 반기고, 계곡물은 풍성하고 맑다. 단풍나무의 잎은 아직도 빨간 색을 잃지 않고 무성하다. 인심만큼이나 따뜻한 고향의 날씨 덕분이다. 고향은 우리에게 어떤 맛의 잔치를 베풀어 줄 것인가 기대된다. 아쉬운 신행의 끝에 홍어가 기다린다. 요즘 경상도를 비하하는 말로 ‘과메기’, 전라도를 비하하는 말로 ‘홍어’라 한다는데 좁아터진 땅덩어리에서 벌어지는 너와 나의 구별의식은 옛날 박정희가 만든 흉한 부산물이라는 게 통설이다. 한 위정자의 이기적이며 섣부른 행동은 다가서기 어려운 골을 만들었다.

 

김동주 산우가 싸준 홍어 1상자를 아꼈다가 거의 내려와서 먹는데 서울에서 먹는 홍어맛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뒤풀이 장소는 정한이가 권하는 생선구이집으로 정했다. 식도락가인 그의 입맛은 시산회원 모두가 믿으니 별 이견이 없다. 미리 예약을 해서 반갑게 맞아주는 주모의 얼굴이 산객들과 한잔 했는지 보기 좋을 만큼 붉다. 역시 광주의 음식맛은 우리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다. 생선구이가 나오기 전에 차려진 식단을 보니 15가지가 넘는다. 그쪽 동네에 가면 항상 나오는 “본품 요리는 취소하고 반찬을 안주 삼아 막걸리나 마시고 가야겠다” 라는 유머는 호남이 음식 인심은 참으로 좋다는 비유로 보면 된다. 어쨌든 산에서 깜빡 잊고 낭송하지 못한 오늘의 동반시는 읊어야 했으니 당연히 필자의 몫이다.

 

시산회원인 도봉별곡 김정남 시인의 자작시 ‘시인을 위하여’ 를 필자가 처음보고 낭송 하였는데, 시인에 대한 절절한 내면세계를 절제된 시어로 감성 있게 표현한 시로 생각이 되나, 시인의 의도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시였다. 너무 쉬워도 시의 냄새가 옅어짐을 모르지 않다. 오늘은 자작시이고 시인 본인이 참석하였으니 직접 낭송하고 해설을 해줄 것을 기대했는데 술을 앞에 둔 상태에서 읽어선지 약간 소란하여, 그렇지 못한 분위기가 몹시 아쉬웠다. 앞으로 자작 시인이 참석한다면 낭송, 해설하면 더 생생한 전달이 되도록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특히, 조문형 총장의 어부인 이행숙 시인, 기세환 산우의 어부인 김화연 시인님도 초청하는 분위기를 만들면 어떨지 감히 회장단에 건의합니다. 송년모임에 이행숙 시인이 참석하며, 시집을 보내준 데 대한 답례를 하기로 한 것은 반가운 행사다.

 

 

시인을 위하여 / 도봉별곡 김정남

 

나는 딱

시 쓸 만큼의 산과 술과 세월이 있다

자유 같은 건강은 덤

 

아침마다

스스로 자라는 부끄러움과 함께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으로

세상을 향해 자유를 외치지 않아도

시는

그대로 좋다

 

내 자괴(自愧)와 불우를 위하지 않아도

따뜻한 등이면 남고 넘치며

뼈를 깎지 않아도

피를 토하지 않아도

거꾸로 걷지 않아도

뒷눈으로 세상을 보지 않아도

튼튼한 몸으로 쓰면 된다

 

아직 본 적도,

세상으로 내려와 본 적도 없이

스스로 존재한다는 신에게

기도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확신과

그것을 위한 고집이 있을 만큼만 있다면

 

시인에게 시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구도의 길이며

세상을 밝히는 태산 같은 등불이어야 한다

먼 길 함께 가는 친구여야 한다

 

시인이야말로

스스로 존재하는 신 같은 자다

 

오늘 무등산 산행은 일정상 아쉽게도 정상을 탐방하지 못한 산행이었지만, 그래도 과거 고교시절 부터 힐링을 위해 무등산을 자주 찾아 어머니 품 안에 안긴 어린 애처럼 따뜻함을 고스란히 느꼈다. 앞으로 다음 기회에 서석대, 입석대, 규봉 등 천왕봉 일대 탐방을 기약하면서 이만 줄인다. 언제나 애경사와 동창회, 산악회 모임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해준 산우들에게 경의를 바친다.

 

2015. 12. 25. 춘강(春江) 이원무 올림

 

 

3.오르는 산

12번의 송년 산행 중 서울 중심부의 산 중에서 선택하는 것이 관례화 된 지 5년이 지났다. 작년에 서대문의 안산에 올랐으니 올해는 남산으로 정한다. 마침 산악인답게 산행 전에 영화 ‘히말라야’를 대한극장에서 관람하게 됐으니 지척인 남산에 오르는 게 당연하다. 극장 뒤에 바로 남산한옥마을이 있다. 도서관 시 창작 교실에서 5기 문집을 만드는데 극장 가까운 충무로 인쇄전문점에 들렀다. 인쇄 및 제본을 마치는데 3시간 이상이 걸리니 4시간 후에 전화로 확인한 후에 찾으러 오라고 한다. 도서관에 갔다 오면 거의 2시간이 걸리니 이번에 가기로 한 남산 순례를 하기로 했다. 천천히 걸어서 한옥마을을 거쳐 내가 다니는 활터 석호정에 들러 활쏘기를 보면서 소나무길로 내려가고, 성곽길을 돌면서 천천히 걸어도 한옥마을로 내려오니 3시간 반이 넘지 않았다. 영화는 1시에 끝나니 순례하고 종로5가의 모임장소까지 가면 거의 맞는 시간이다. 어떤 산우에게는 기쁨이, 어떤 산우에게는 회한이 넘쳤을 것이다. ‘다 그렇게 지나가더라’는 기막힌 절구를 아는 우리에게 올해의 해가 넘어가고 내년의 바람은 불어올 것이다. 일단은 건강하자, 산우들이여.

 

 

4.동반시

동반시를 골라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자 노트북으로 시의 바다를 지나는데 마땅한 시가 걸리지 않는다. 도서관 서가에 내려가서 한참 추려도 눈에 들어오는 시가 없다. 마침 한 생각이 스친다. 시 교실 5기에 들어온 수강자 중 우리 시산회의 수준과 성향이 비슷한 시우의 시가 생각이 났다. 그의 여러 시 중 5기 문집에는 수록하지 않았지만 시인의 의도와 감성이 잘 버무려져 익어서 보기에도 좋은 깊은 시다. 어렵지 않아 산우들은 쉽게 공감할 수 있으니 서울의 복판에서 젊으나 예사롭지 않은 시인의 시를 잘 익은 입으로 읊조릴 산우는 누구일까.

 

섬 / 박지영

 

몇 번이고 바다가 뒤집히는

긴 세월없이도

아픔이 자라면 섬이 된다

 

낡고 찢어진 바지가 흘러내려

반 쯤 엉덩이가 드러난 노인이 사는 곳은

오늘도 청계천 벤치

 

신림동 좁은 방 고시원 박씨

커피 마시게 이백 원만

아니면 담배 한 개비

버릇처럼 내뱉던 어느 날

남의 심장을 빼앗는 일 따위는

별것 아닌 것이 되어버린 옆 방 청년 윤에게

 

광화문 차가운 천막 안에는

아직도 가라앉은 배보다 깊은 슬픔

 

얼마나 많은 섬을 지나갔을까

보고도

듣고도

못 본 척 못 들은 척

명동성당 가장 낮은 게단 아래

휠체어에 몸을 실은 걸인의 바구니

그 섬을 그냥 지난다

 

아픔을 외면하는

나도 오래 전부터 섬이었다

 

2015. 12. 15.

 

詩를 사랑하는 山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도봉별곡 올림